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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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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지 않은 내가 튀어나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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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사랑하게 되니 모든 게 변해가네

[일상에서 호흡처럼, 이 노래처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황난영  |  editor@catholicnews.co.kr


어느 날, 사도직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한 수녀님에게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별로 큰 일도 아니었는데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니 결국 자신을 방어하려는 여린 자아의 한 부분이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자 곧 그런 나의 모습이 부끄러워지고 예수님 앞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것이 멀게만 느껴졌다. 다소 우울하게 주님 앞에 앉아있는 내 마음에 노래 하나가 흐르기 시작했는데 학창시절 좋아하던 ‘변해가네’였다.


“느낀 그대로를 말하고 생각한 그 길로만 움직이며
 그 누가 뭐라 해도 돌아보지 않으며 내가 가고픈 그곳으로만 가려했지
 그리 길지 않는 나의 인생을 혼자 남겨진 거라 생각하며
 누군가 손 내밀며 함께 가자 하여도 내가 가고픈 그곳으로만 고집했지
 그러나 너를 알게 된 후 사랑하게 된 후부터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해가네
 나의 길을 가기보다 너와 머물고만 싶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해가네
 우- 너무 쉽게 변해가네 우- 너무 빨리 변해가네”
(작곡 · 작사 김창기 / 노래 김광석)


황난영.jpg  
ⓒ박홍기


사람이 변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고유한 체험 안에 형성되어온 성격이나 기질, 사고방식이 바뀌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 노래에서는 너무 쉽게, 너무 빨리 변해간다고 고백한다. 자신이 좋아하고 고집했던 것들이 ‘너를 알게 된 후부터, 사랑하게 된 후부터’ 다 변해간다고 말이다.


이 노래를 통해 다시 의식하게 되었다.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것, 내가 변화된다는 것은 그동안 ‘나’라고 고집했던 것들보다 그분을 더 사랑하게 될 때 시작되는 선물이라는 것을. 그것도 누군가 강요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며, 어느 순간 달라진 모습을 깨닫고 깜짝 놀라게 되는 선물인 것이다.


사실 예수님을 깊이 체험한 사람들은 이러한 선물을 받았다. 예수님과 함께 지냈던 제자들을 비롯하여 막달라 여자 마리아, 자캐오가 그러했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바오로 사도, 그리고 여러 성인들도 그러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난 뒤 완전히 다른 모습의 사람이 되었으며 예수님으로 인해 새로운 사랑을 체험하면서 이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나 역시 그러한 변화의 삶을 살고 싶은 열망이 있다.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이해하고, 예수님처럼 받아들이는 모습을 갖고 싶다. 하지만 나의 바람과는 달리 현실에서는 성숙하지 못한, 반갑지 않은 내가 불쑥 튀어나오곤 한다. 마치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나는 내가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는 내가 바라는 것을 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합니다.” (로마 7,15).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의 모습을 바꾸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다만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를 구속하고 있는 거짓 자아와 이기심과 깊은 어둠의 뿌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열쇠가 사랑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사랑하게 될 때 변화는 자연스럽게 따르게 된다. 결국 가장 크게 남은 과제는 ‘사랑’이다.


노래를 부르는 동안 무겁던 마음이 어느 정도 가벼워졌다. 마음이 불편했던 사건까지도 주님의 메시지를 듣게 해준 선물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밑바닥을 들여다볼 때 겸손하게 눈과 귀를 열어 주님을 바라보게 되는가보다.


지금 내 마음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는가?

지금 내가 사랑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부활신앙’을 살아간다고 하지만 자주, 아주 쉽게 그것을 잊어버리고 만다. 매일 죽고 부활하는 것을 실천하지 못한다. 아직은 내 자신이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 한가운데 내가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을 때엔 충만한 부활의 기쁨을 체험할 수 없다.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방어하고 남을 밀어내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훌훌 털어버리고 마음의 중심에 예수님을 모실 때 좀 더 쉽게 나를 버리고 ‘사랑’을 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보면 언젠가 변해가는 자신을 바라보며 이렇게 노래할 수 있지 않을까?

“우- 너무 쉽게 변해가네. 우- 너무 빨리 변해가네.”


황난영 수녀 (율리아나)
성바오로딸수도회


*이 글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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