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세월호 희생자 합동 분향소에서 한 수녀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 사진 신소영 기자
오강남 교수의 아하!
4월16일 세월호 참사로 생명을 잃은 이들, 특히 꽃다운 어린 학생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미어 온다. 이럴 때 종교인들이라면 이런 비극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신이 있다면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답답한 일이다. 기독교 계통의 인터넷 언론사 대표로 있는 분은 SNS에서 이런 답답함을 하소연하며 “차라리 신이 없다고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신이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라기보다 우리가 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닌가 여겨진다. 유대인들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오래 전 유대인들은 신이 자기들만을 위한 신이라 여겼다. 이 신이 자기들을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시켜줄 때 이집트인 집 장자들은 다 죽이고 자기네 집 아이들은 무사하게 살아남게 하고, 그 후 가나안을 정복할 때도 자기들을 직접 진두지휘하며 모든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주었다고 믿었다. 이들이 가지고 있던 이런 신은 이른바 ‘부족신관(部族神觀)’에 의한 신이었다.
그러다가 기원전 6세기 유대인들은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포로로 잡혀 가게 되었다.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들을 지켜주는 신이라 철석같이 믿었는데,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외국의 침입에 쓰러지도록 하다니, 우리가 받들던 신이 도대체 어떤 신이란 말인가. 이런 참담한 현실 앞에서 이들이 그때까지 가지고 있던 부족신관이 크게 바뀌었다. 자기들이 받들고 있던 신은 이제 자기 민족만을 위한 신이 아니라 온 세상을 다 함께 다스리는 우주적 신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른바 인격적 보편신관(普遍神觀)의 등장이었다.
그리고 또 오랜 세월이 흘렀다. 신은 이 세상을 공평하게 다스린다고 믿어왔는데, 나치 치하에 유대인 6백만 명이 생명을 잃게 되었다. 이런 엄청난 비극 앞에서 그들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신이 도대체 뭘 하고 있단 말인가? 그들이 가지고 있던 신관은 다시 도전을 받게 되었다. 그 후 많은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던 인격신으로서의 신관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서양에서 불교를 비롯하여 동양 사상을 선호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유대교 배경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다.
저 위에 계셔서 우리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고, 특히 선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악한 사람에게는 벌을 준다고 여겨지는 초자연적 신을 상정한다면 인간사에서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너무 많다. 마치 뉴턴의 역학을 가지고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에서 다루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까?
이런 엄청난 참사 앞에서 종래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던 신관에 입각해서 공연히 신을 들먹이거나 원망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비극을 자초한 우리 인간의 잘못을 통절하게 뉘우치고 이 같은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면밀하게 조처하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유가족의 아픔을 보듬고 살아남은 이들의 상처를 감싸주는 일일 것이다.
(종교너머 아하!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