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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을 기다리는 물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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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울성지 윤인규 신부-.jpg

내포의 사도 이존창이 천주교를 전파하기 시작한 당진 여사울성지 담임 윤인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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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최대 교우촌이던 당진 합덕 평야의 신리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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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인 다블뤼 주교가 머문 신리 집을 설명중인 김동겸 신부. 1984년 김대건 신부등 시성식은 다블뤼주교가 쓴 

<조선 주요 순교자 약전>의 기록에 따른 것이다. 다블뤼 주교는 이 집 지하에서 상평통보 위조 화폐를

제조해 선교에 썼다고 전해지고 있다.



홍주 최교성 신부-.jpg

백정 황일광이 순교 당했던 홍성 홍주 순교터에서 설명중인 홍성성지 담임 최교성 신부



 오는 8월13~17일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150년 전 수많은 순교자들이 피를 흘린 땅을 찾는다. 교황 방한 기간 중 ‘8회 아시아청년대회(AYD)’가 열리는 내포(서해안 충남 당진·홍성·서산 일대) 지역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나라 광복절이자 성모 승천 대축일인 15일 오후 충남 당진 솔뫼성지에서 아시아청년대회에 참석하는 청년 등 6000여명과 대형 천막 안에서 두시간가량 대화한다. 솔뫼성지는 우리나라 사제 1호로서, 25살에 순교한 ‘청년 김대건’의 탄생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7일엔 오후 4시30분 서산 해미읍성에서 청년대회 폐막미사를 봉헌한다. 돌담으로 둘러싸인 성내 잔디광장 안팎엔 10만명가량이 운집할 것으로 보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미사에 앞서 읍성에서 1㎞ 정도 떨어진 해미순교 성지에서 순교자 묘를 참배하고 기도하며, 아시아주교회의를 주재한다.


 교황이 방문할 이 순교지들을 지난 23일 찾았다. 서해안에서 육지 안으로 움푹 패어 있어 ‘내포’로 불리는 이 지역은 ‘당나라와 연관된’ 지명인 당진이 말해주듯 예부터 해상무역이 활발했던 곳이다. 따라서 한반도 밖의 문물을 가장 먼저 접해 변화에 민감한 곳이었다. 본토인 중국보다 더욱더 완고한 유교 성리학으로 자물통을 걸어잠근 조선에서도 서학과 천주교가 깃들 수 있는 지형이었다. 따라서 자물쇠를 열려던 선구자들이 유달리 피를 많이 흘린 곳이다. 


16일 오전 10시 서울 광화문에서 거행될 시복식에서 시복(성인 전 단계인 복자로 칭함)되는 124위 중 49위가 내포 지역에서 활동했거나 순교한 이들이다. 당진 합덕평야에 있는 천주교 최대 교우촌이던 신리에선 400여명 중 상당수가 몰살을 당하기도 했다.

 

김대건 신부 초상들-이용호 신부-.jpg

시대마다 달라진 성 김대건 신부의 초상화를 설명하는 솔뫼성지 담임 이용호 신부



김대건 신부 턱뼈-.jpg

솔뫼성지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성 김대건 신부의 하악골 모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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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대건 신부 탄생지인 솔뫼성지 전경



 

솔뫼성지는 당진 우강면의 솔밭에 있다. 한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는 지조의 상징이다. 이 솔밭이 둘러싼 곳에서 1984년 이 땅의 ‘103위’ 시성식 때 대표 성인이었던 김대건의 증조부까지 4대에 걸친 순교자가 살았다.


 김대건은 1845년 8월 중국 상하이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그해 10월 충청도 해안에 도착했으나 다음해 5월 붙들려 9월 한강변 새남터에서 참수됐다. 무려 9년 동안 공부해 사제가 되고, 서양 문물과 함께 라틴어, 영어, 중국어, 포르투갈어까지 구사했던 신지식인은 사목활동을 거의 해보지 못한 채 꺾였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죽어서 살았다. 그가 옥중에서 ‘교우들 보아라’고 쓴 ‘마지막 회유문’은 고난에 맞서는 순교신앙의 횃불이 되었다. 한국 천주교에선 김대건 신부의 뼛조각을 1000여곳으로 분배해 숭배할 정도다. 솔뫼성지 주임 이용호(47) 신부는 “매년 10만여명의 순례객이 찾는데, 교황 방문이 확정된 뒤 순례객들이 매일 100명 정도 더 늘었다”고 전했다.



교황 환영 펼침막 붙은 해미읍성-.jpg

조선시대 군사요충지인 감영이자 순교터인 서산 해미읍성



매를 때리는 모습-.jpg

홍주감옥에 전시물. 볼기치기 장면



참형 당하는 모습 전시장-.jpg

홍주감옥 전시물. 참수 장면




참형 때 쓴 도구들-.jpg

순교자들을 참수할 때 쓰던 칼과 도구들



최교성 신부를 치는 김성태 신부-.jpg

홍주감옥 마당에서 합덕성당 김성태 신부가 홍주성지 최교성 신부의 매를 때리는 시늉을 하며

순교당시를 재연하고 있다.



칼을 쓴 모습-.jpg

칼을 차고 있는 순교자들의 모습을 재연한 전시물




 해미읍성 돌성엔 벌써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을 환영하는 펼침막이 부착돼 있다. 이곳은 조선 초기 병마절도사의 처소였다가 중기 이후 1500여명의 군사를 거느린 현감이 머문 진영이었다. 따라서 내포 일대의 ‘국사범’은 성내 옥사에 가뒀다. 순교자 기념관이 된 옥사 앞 300년 된 회화나무가 서 있다. 김성태(41) 합덕성당 신부는 “신앙을 버리라고 해도 듣지 않은 신자들을 이 나무에 철사줄로 목을 매달아 고문을 했다”고 밝혔다. 이곳에 잡혀온 천주교인 중 양반들은 충청감사가 있는 공주나 홍주진영으로 이송되고, 이곳은 주로 서민들이 처형을 당했다. 




해미순교성지 전체모습-.jpg

서산 해미순교성지 전경




끌려가는 순교자들 상-.jpg

해미순교성지 박물관에 전시된, 오랏줄에 묶여 형장에 끌려가는 순교자들 부조



해미 순교자묘 설명 백성수 신부-.jpg

무명순교자들 묘 앞에서 설명중인 해미순교성지 담임 백성수 신부



해미성지 수장 형상화-.jpg

산채로 물속에 매장당한 순교상



해미순교성지의 수몰사진들-.jpg

물 속에 생매장한 모습을 그린 해미순교성지 성당 내 그림



 해미순교성지는 읍성에서 1.5㎞ 거리에 있다. 아름다운 정원에 멋진 건물이 어우려져 있지만 아우슈비츠 감옥 못지않게 참혹했던 곳이다. 1866~1868년 병인박해 때 읍성 안에서 죽이기엔 너무 많은 신자들이 잡혀들자 이곳으로 몰고 와 처형한 곳이다. 이곳은 원래 여숫골로 불린 곳이다. 읍성에서 이곳까지 오던 신자들이 “예수, 마리아”의 호명기도를 하며 오는 걸 ‘여수머리’로 알아들은 비신자들이 붙인 지명이다. 


해미성지 담당 백성수(63) 신부는 “순교자들이 오랏줄에 묶여 읍성에서 이곳까지 강둑을 따라 오던 길은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가던 골고다 언덕과 같은 ‘십자가의 길’이 되어 매년 14만명가량이 이 길을 순례하며 순교 영성을 기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엔 신자들을 산 채로 수장한 ‘둠벙’(웅덩이)도 있다. 전시장에 전시된 유골엔 어린아이의 치아도 적지 않다. 성지 성당 안엔 수장 모습을 담은 그림이 걸려 있다.


 초기 서학은 천주학-천주교로 발전하면서, 유교 성리학을 국가 지배 이데올로기로 삼은 조선 지배세력의 ‘위정척사’(衛正斥邪·성리학적 질서를 수호하고 삿된 종교사상을 배척)에 따른 본격적인 탄압을 받게 되면서 양반계층 학자 중 상당수가 배교했다. 이후 중인들과 여성들이 주축이 돼 신앙을 고수했다. 1790년대부터 100년간 해미진영에서 처형된 3000명의 천주교인들 대부분은 서민이다.


 김대건·황사영 등 천주교 초기 선지자들은 프랑스 군함만 들어오면 이 땅이 달라질 것으로 여겼다. 황일광 같은 백정 순교자는 자신처럼 천민도 인간으로 대우해 주는 새 종교를 대하고는 “하늘의 천국 말고 지상의 천국도 보았다”고 했다. 이제 이 땅은 서구 문물이 지배하고, 동양에서 천주교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가 되었다. 


 그래서다. 이제는 다시 물을 때다. 동양인들을 귀신이나 숭배하며 제사 지내는 미개 인종들로 천시한 천주교는 과연 미신 이상의 신앙을 세웠는가. 


 조선 유교를 반상 차별의 부정의한 종교 사상으로 질타한 천주교는 강자보다는 약자 편에서 불평등을 해소하고, 유교 선비 이상의 정의·윤리·도덕을 실현하고 있는가. 


 지금은 가난한 자, 정의를 외치는 자가 자본과 권력에 의해 핍박받는 새로운 박해시대다.  박해와 순교를 상징으로 내세우는 한국 천주교는 지금 이 시대엔 박해자와 순교자 중 과연 어느 쪽에 서 있는가. 순교자들의 땅에선 이런 물음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기다리고 있다. 


 서산 당진/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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