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준환 경기대 명예교수, 본각선교원 원장
“제정신이 아니다. 하나같이 제정신을 잃어버린 때문이다.”
고준환(72) 경기대 명예교수는 “올해 초 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정한 게 뭔지 기억나느냐”며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이렇게 말했다. <교수신문>이 발표한 올해의 사자성어는 ‘전미개오’(轉迷開悟)였다. ‘어지러운 번뇌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는다’는 뜻이다.
고 교수는 최근 <누가 불두에 황금똥 쌌나?>란 책을 냈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나온 불서다. ‘불두’란 부처님 머리다. 옛날 참새가 불상 머리 위에 똥을 싸는 것을 보고 던진 물음에서 유래된 화두를 본뜬 제목이다. 화두공부란 문답풀이가 아니다. 의심에 의심을 더하게 하는 수단이다. 그래서 그는 이번 세월호 사건도 화두 삼아 우리 사회의 큰 깨달음의 계기로 삼을 것을 요청한다.
그가 불교에 눈을 뜬 것은 대학 2학년 때 청담 스님에게 ‘마음 법문’을 들은 뒤부터였다. 북한산 우이동 도선사에 머물며 조계종 총무원장과 종정을 지낸 청담 스님은 박근혜 대통령의 어머니(육영수)가 믿고 의지했던 스승이다. 서울대 법대 은사로서 주례까지 서준 불자 황산덕 교수와 역시 법대 학장을 지낸 서돈각 교수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유불선 3교에 통했던 탄허 스님에게 화엄경을 배운 뒤엔 불교에 심취해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를 만드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그는 지금도 탄허 스님이 써서 자신에게 선물해준 신화엄경합론 47권을 ‘가보 1호’로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 책 서문에 “열반 30돌을 맞은 탄허 스님에게 작은 정성을 바친다”고 썼다.
대학 졸업 뒤 <동아일보>에 입사해 10년을 근무한 그는 유신 시절 <동아방송> 필화사건으로 투옥되고, 동아일보사에서 잘린 해직기자 출신이다. 그 뒤 경기대 교수가 돼 30년을 지냈다. 경기대 법대 학장도 지냈다. 그는 법학자의 길을 걸으면서, 우리 민족의 자주적 역사관 확립을 위한 연구를 해 7권의 책을 냈다.
그러면서도 그의 의식의 바닥을 흐르는 주요 관심사는 늘 ‘진리 탐구’였다. 고은 시인은 <만인보>의 ‘고준환’ 편에서 ‘그의 뒷모습에는 술과 여자 따위 없지/ 차 한잔 대접받고 일어서는 나그네이기 십상’이라고 썼다.
한때 초월명상과 의식개발 프로그램인 아봐타, 신선도 등을 수련하기도 했던 그는 결국 불교에 귀착했다. 미국 조지워싱턴대 교환교수로 가서는 ‘워싱턴 보현사’(현 구곡사)란 절을 창건하기도 하고, 불승종이란 불교종파의 법사 노릇도 10여년간 했다. 한국교수불자연합회를 창립해 초대 회장도 지냈다.
그는 “아들 둘 낳고 손자 손녀도 넷 두고 교수 생활도 30년이나 했으니 이만하면 자족한데도 ‘내가 누군인지’ 밝히려는 진리탐구 열정은 그친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3년 전 본각선교원을 열었다. ‘본각’은 깨달음이다. 그는 “생각을 쉬면 깨닫고, 마음을 비우면 부처”라고 했다. 이를 목표로 서울 신도림의 한 오피스텔에서 교수 도반들과 공부를 하고, 이를 대중들과 나누고 있다.
“‘공부해서 남 주냐’고 하지만, 공부해서 남 준다. 서로 서로 깨달아 나누고 다 같이 제정신을 다시 찾게 해야 한다. 그래야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보살이 된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