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창] 초상집에 선거 축제
호인수 인천 부개동성당 주임사제
*세월호 희생자 추모 촛불집회 모습. 박종식 기자
아무도 예상치 못한 죽음이었다. 하지만 너무나 원통하고 기막혀 앞뒤를 따져보니 이미 오래전부터 충분히 예고된 재앙이었다. 인재였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철석같이 믿은 착하고 순진한 아이들은 단 한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그래서 더 억울하고 분했다. 한반도가 온통 초상집이 되어 곳곳에 분향소가 차려지고 설움에 북받친 조문객 행렬이 줄을 잇고 눈물이 내를 이뤘다. 배가 통째로 가라앉은 지 사십구재가 다가오는데 여태 아이의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한 엄마와 아빠들은 목이 쉬어 소리도 못 내고 눈물까지 메말랐다. 이 죄 없는 이들이 피살된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대통령을 필두로 책임져야 할 사람은 단 한명의 예외도 없이 반드시 책임지라는 함성이 촛불과 함께 산천에 번져간다. 이번만은, 절대로 이번만큼은 예전처럼 또 그렇게 그냥 넘기고 쉽사리 잊어서는 안 된다고 입술을 깨물며 맹세에 맹세를 거듭한다.
서울 지하철이 추돌하는 아찔한 사고가 나는가 하면 일산의 버스종합터미널에서 불이 나 불과 30분 만에 8명이 목숨을 잃었다. 릴레이를 하듯 장성의 한 요양병원에서도 화재로 심신이 자유롭지 못한 노인 등 20여명이 순식간에 질식사했다. 이런 판국에 늘 조마조마한 동해안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에 대한 정부의 호언장담을 누가 믿겠나? “이게 무슨 나라냐”는 자조 섞인 한탄이 조금도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그 누구의 말도 믿을 수 없는 서글픈 불신국의 불신국민이 되어버렸다.
하필이면 이 시기에 우리는 지방선거를 치르게 됐다. 선거는 신뢰와 지지의 표시다. 너라면 내 뜻을 대신해주고 내가 살고 싶은 고장을 만들어줄 충실한 대리인이 되리라 믿고 그에 합당한 힘을 모아주는 선택의 행위다. 내가 부릴 일꾼을 내 손으로 뽑아 세우는 게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더군다나 지난번에 판단 착오로 잘못 뽑은 사람이 매사에 적반하장이라 단단히 벼르고 있음에랴.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분위기는 축제와는 거리가 멀다. 차오르는 슬픔과 분노를 견디고 삭이기에는 덩어리가 워낙 크고 무겁기 때문이다. 한때 나의 무지한 소견으로 장례 절차를 마칠 때까지만이라도 선거를 미루면 어떨까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지위가 높고 권력이 클수록 자신의 책임을 희석시키거나 아랫사람에게 떠넘기기 다반사인데 그들에게 여유를 준다면 고양이 앞의 생선과 다르지 않을 터, 그 틈에 숨기고 속이려고 무슨 말, 무슨 짓은 못할까?
바로 이때, 세월호가 우리의 등짝에 죽비를 내리쳤다. 그 옛날 서울을 버리고 제일 먼저 도망가서 한강 다리를 폭파하라고 명령한 이승만의 후예이며, 군부독재자 박정희와 전두환, 그리고 거짓말투성이 이명박으로 이어지는 지배자들과 맥을 같이하는 세력이 세월호 참사의 원흉임을 기억하라고. 수세에 몰린 그들은 지금 행방이 묘연한(묘연하게 만든?) 유병언 부자에게 모든 죄를 덮어씌우고 사상 최고액의 몸값을 걸어 자신들에게 쏠려 있는 분노의 시선을 돌리려고 무진 애를 쓴다. (어쩌면 선거에 임박해서 체포 소식이 전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어디 한두번 겪어봤나?) 더더욱 속 터지는 일은 목숨 걸고 나서도 시원찮을 야당의 엇비슷한 행태다. 초상집 마당에 넘실대는 빨간색보다는 파란색이 그나마 낫지 않으냐는 구차한 변명으로 보인다. 정말 한홍구 교수의 말대로 싸가지의 문제다. 그래도 어쩌랴! 잠시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투표용지를 꼼꼼히 살펴보자. 그러고 나서 또 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