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론과 아킬레스/출처:위키피디아
그리스 신화에서 반은 인간, 반은 짐승인 존재 중 하나는 케이론이다. 케이론은 '반은 인간, 반은 말'로 수많은 영웅과 현자들을 길러낸 스승이다. 대표적으로 의신(醫神) 아스클레피오스, 로마의 건설자 아이네이아스, 그리스 최고의 전사 아킬레스와 영웅 헤라클레스 그리고 영웅들의 두목 이아손 등이 있다.
이 대목에서 궁금해진다. 크레타 왕 미노스의 부인과 수소 사이에서 태어난 괴물 미노타우로스와, 케이론 모두 반은 인간, 반은 짐승인에, 어떻게 한쪽은 천하의 못된 괴물이 되고, 한쪽은 현자와 영웅들의 스승이 될 수 있을까.
인간이 짐승과 다른 것은 머리로 생각하고 말하며 판단하는 이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스 철학은 잠자는 이성을 깨우는 죽비다. 이성을 가진 인간과 달리 짐승은 본능대로 살아간다. 그런데 미노타우로스는 머리 부분이 소이고, 허리 아래가 인간이다. 이성적 판단을 해야 할 두뇌 부분이 짐승이다. 반면 행동을 나타내는 아랫부분이 인간이다. 머리는 짐승인데 행동력을 나타태는 아랫도리는 나약한 인간인 것이다. 머리는 본능대로 하고 싶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부조화의 극치다. 아랫도리로 짐승처럼 제대로 욕구를 해소하지도 못하니 광폭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소년소녀를 질근질근 씹는 것으로 화를 표출한다.
반면 케이론은 허리 아래가 튼튼한 말이니 쏜살같이 산을 달릴 수도 있고, 최고의 정력까지 발휘할 수 있다. 게다가 머리 쪽은 사람이니 이성적이다. 이성의 힘으로 본능적인 하체를 잘 조절하고 활용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인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영향을 미친 이집트의 스핑크스도 마찬가지다. 왕의 상징인 스핑크스는 머리는 사람이고 몸은 사자다. 인간의 이성적 지혜와 사자의 힘과 용기를 함께 갖출 때 진정한 왕이 될 수 있다.
케이론에게 훌륭한 지도자의 자질을 배운 이들은 민첩하고 강한 말 같은 육체와, 이를 잘 활용하는 명철한 지혜를 동시에 터득하게 된다. 이아손도 당연히 그렇게 키워진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반지원정대를 이끈 대장 아라곤을 연상할 수 있는 아르고호 원정 대장 이아손은 테살리아 지방 이올코스의 왕자다. 그러나 그의 삶이 순탄했다면 아르고호 원정대가 오늘날까지 아이들의 모험심을 자극하는 상징이 될 리 없다. 그의 아버지 이아손은 이복형제 필리아스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난다. 그의 어머니는 어린 이아손을 켄타우로스족의 현자 케이론에게 보내 양육을 부탁한다.
장성한 이아손은 왕위를 되찾기 위해 고국에 돌아간다. 펠리아스는 조카 이아손을 곤경에 빠뜨릴 심산으로 꼬드긴다.
"지상에서 가장 먼 콜키스에 가서 황금으로 된 양모피를 가져오면 왕위를 물려주겠다."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려는 속셈을 알면서도 이아손은 이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결국 이아손은 50명의 원정대를 이끌고 콜키스로 간다. 이아손에게도 도움을 줄 낙랑공주가 나타난다. 그는 콜키스의 공주 메데이아의 도움을 받아 황금 양모피를 찾는 데 성공한다. 천신만고 끝에 귀환길에 오른 이아손이 맨 마지막에 들른 곳이 크레타 섬이다.
*크레타섬 풍경
물도 바닥나고 지칠 대로 지친 일행은 크레타 섬에 상륙해 미노스 왕을 만나 물과 식량을 제공받을 꿈에 부푼다. 그러나 이게 웬걸. 막상 크레타 섬에 이르자 거대한 거인이 마치 불타는 청동 탑처럼 번쩍번쩍 빛을 내며 감시하고 있다. 청동 거인 탈로스다. 거인은 아르고호를 발견하자마자 단번에 계곡을 뛰어내려와 경고한다.
"이 곳에 내리기만 하면 저승에 보내겠다."
다른 용사들이 "불처럼 뜨거운 청동 거인을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느냐"고 두려움에 떨며 말릴 때 메데이아만 코웃음을 친다. 그는 탈루스의 몸이 액체로 된 불로 채워져 있지만 정맥만은 못으로 봉해져 있다는 비밀을 알고 있었다.
메데이아가 용사들의 도움을 얻어 크레타 섬의 해안가에 내리자 거인이 득달같이 달려와 위협을 한다. 메데이아는 동요하지 않고 '마법의 노래'를 들려준다.
"인생은 짧지만 달콤한 것. 그러나 영원히 살 수 있다면 훨씬 더 달콤하겠지요."
그는 청동 거인에게 영원히 살 수 있는 젊음의 묘약, 이코르를 몸에 넣어 주겠다며 달콤한 노래로 유혹한다.
'영원한 젊음'을 선물로 주겠다는 유혹에 넘어간 대가는 컸다. 메데이아는 이코르를 넣는 척하며 정맥을 못을 뽑았고, 탈로스는 생명을 잃고 고철덩어리가 되고 말았다.
좀 더 오래 살고, 좀 더 많은 것을 얻으려는 갈망이 자신을 태워 고사시키고 만 것이다.
*크레타 미노스 왕이 지은 미궁
<그리스인생학교>(조현 지음, 휴) '11장 자유의 섬, 크레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