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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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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보는 눈을 바꾸게 한 친구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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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울린 이 사람

영정사진 속 친구의 미소

 
초등학교 때 교회에서 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학교는 달랐지만 멀리 떨어진 서로의 집을 수시로 오갈 만큼 마음이 통했습니다. 다행히 같은 중학교에 진학하여 매일 얼굴을 보며 웃고 떠들 수 있었습니다. 시험 기간에는 같이 공부를 하기도 했고, 학교가 파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배고프면 중국집에 들러 자장면 한그릇을 나눠 먹으며 깔깔대곤 했습니다.


책을 좋아했던 우리는 함께 서점에 들러 일주일에 한권씩 책을 사서 돌려가며 보았습니다. 같은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었던 둘도 없이 좋은 친구였지요. 그러나 ‘뺑뺑이’라 불리던 고등학교 추첨에서 우리는 너무 먼 학교에 배정되어 이전처럼 자주 만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독서모임을 만들고 수석을 놓치지 않던 친구는 에스(S)대 법대 장학생으로 입학했습니다. 그의 앞날이 활짝 열린 듯했습니다. 그러나 휴학했다는 연락을 받고 만났습니다.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신장병 때문이었습니다. 얼른 건강을 회복해서 세상을 위해 같이 일해보자고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친구와의 만남은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받던 그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영안실로 달려가 영정 사진 속 친구의 미소를 보는 순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장례를 치르는 3일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내 평생 그렇게 많이 울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친구편집.jpg

*영화 <친구> 중에서


친구를 보내며 세상을 바라보는 내 눈이 달라졌습니다. 내일을 알 수 없는 세상에서 나만을 위한 삶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습니다. 신학교로 진학하여 목사가 되었습니다. 친구 덕에 미련 없이 인생의 진로를 바꿀 수 있었고, 세상의 의를 위해 살자고 약속했던 친구의 몫까지 해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친구가 떠난 지 벌써 30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종종 꿈속에서 함께 웃으며 뛰놀곤 합니다. 그는 아직도 내 가슴에 살아 세상을 향해 함께 달려가고 있습니다.


며칠 전 진도 팽목항에 다녀왔습니다. 사회적 타살로 죽어간 아이들의 절규가 파도 소리 속에 들려왔습니다. 이들의 억울한 죽음 앞에 눈물 흘리는 것으로 끝내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세상의 거짓과 치열한 싸움을 하겠다고 맹세하며 하늘로 올라간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보았습니다. 끝으로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다시 한번 약속했습니다.
“보고 싶은 친구 호근아, 앞으로도 네 몫까지 세상을 위해 열심히 살게.”


최병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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