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시절 나는 늘 가난했다. … 모스끄바 유학시절 어느 겨울날, 한밤중에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날이 추워 아무도 없는 로모노쏘프 광장으로 나가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내가, 왜? 왜? 왜?…… ."그날 아내와 나는 저녁 무렵부터 티격태격 다퉜다. 우리 수중에는 더 이상 버틸 돈이 없었고, 한국은 IMF라는 들어보지도 못한 미증유의 재앙을 겪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아이엠에프와는 상관없이 벌써부터 송금이 끊겼고 그 이유는 돈을 대어줄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이유 외에 다른 이유가 없었기에 나에게는 단지 생활이 해결되지 않는 아내의 잔소리에 대꾸할 아무런 장담이 없었다. …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그날 밤, 내가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지른 그 사건 이후로 나는 진짜로 경제적인 모든 면에서 해방되었던 것이 아닐까? 누가 들으면 과장의 말일지 몰라도 나는 이 얼토당토않은 믿음을 거저 얻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말하자면 『구약성경』「창세기」에서 낯선 땅을 떠돌다 돌아온 야곱이 고백한 것처럼 내 스스로 '아모리족族 과 싸워 활로써 빼앗은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것들을 사랑한다. 이것들은 나를 나이게 해주는 토대이다. 그리하여 나는 믿음을 빙자해 돈 알기를 우습게 알고 무리한 일들을 벌이는 우리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을 경멸한다. 그들은 돈을 사랑할 줄 모른다. 돈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사람의 진정한 생의 의무를 도무지 모른다. 각자 살아내야 하고 살아내면서도 함께 지켜가야 할 것들을 위한 싸움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인생의 멋과 맛이랄까? 나는 이런 싸움의 의미를 대번에 알아보는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요즘엔 친구들을 만나도 예전 우리들처럼 돈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지가 않은 듯하다. 모두들 돈이 없어서 문제라고 하는 데도 가난함의 저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내가 돈 이야기를 할 때, 나는 나의 남은 날들을 가늠해 본다. 갑자기 말할 수 없는 서러움과 두려움이 몰려올 때가 있다. 이번에는 하늘을 향해 삿대질 따위를 할 수는 없으리라. 그런 기회는 한 번 뿐이니까. 최선을 다해야지. 오직 일념의 집중된 에너지로 내게 부과된 짐을 짊어지고 가보리라. 나는 가난한 나에게 애정 없는 그 누구의 권위도 인정하지 않으련다. 그보다는 나에게 나의 길을 갈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돈을 나는 사랑한다. 그 돈을 나는 하늘로부터 받고 있노라 믿고 있다. 그래서 때로 눈물이 나고, 때로 등줄기가 화끈거리고…… 그 돈으로 내 인생의 모든 기회를 사야 함을 안다. 아아, 나는 돈을 사랑한다. <연민이 없다는 것·천정근 산문집>(케포이북스) 중에서 저자 천정근 1968년 경기도 용인에서 출생하였다. 1987년 태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군 군복무를 제외한 날들을 닥치는 대로 읽고 쓰는 문청으로 보냈다. YS 정권이 들어서면서 출구 없는 환멸의 벽과 맞닥뜨리고 내면마저 황폐해져 좌절과 고난의 이 땅을 떠날 궁리를 하다 아무런 연고 없는 낯설고 먼 러시아로 병든 자신의 그림자 하나, 약 한보따리 싸들고 1994년 훌쩍 유학을 떠났다. 1999년 모스크바국립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러시아문학을 공부하였다. 2006년 합동신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모태신앙인이었으나 뒤늦게 신학을 공부하였다. 현재 자유인성서학당에서 성서를 가르치고 있다. 논문으로 '1880~90년대 똘스또이 중편에 나타난 종교 윤리적 관점'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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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돈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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