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자일기
감각의 꽃이 핍니다
법인스님
지난 해 12월 초 일지암 암자에서 단기 출가학교를 열어 20대 청년 7명과 함께 한달 동안 공부한 일이 있습니다.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인터넷과 스마트폰, 육식과 인스턴트 음식을 끊고 불교와 인문학 고전을 학습했습니다.
일지암 마당에는 전기의 힘을 빌린 외등이 없습니다. 청년들은 처음에는 아주 깜깜한 시야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익숙한 것들은 멀리 하고 낮선 것들과 함께 하면서 차츰 그들은 다른 빛과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전등 없이 완전한 어둠에서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어둠의 빛이 새롭고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 중 중산이라는 법명을 가진 김경민 청년이 출가학교를 마치는 전날 밤에 말한 소감이 지금도 마음에 남습니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 시라는 것을 써 보았다고 하면서 이렇게 한 달 수행의 소감을 말했습니다.
“이곳에서는 그저 모든 것이 새롭고 기쁘구나. 눈 뜨며 보는 것 모두가 새롭네. 눈 뜨며 보는 것 모두가 기쁘네. 까만 하늘이 이렇게 기쁠 수가, 새벽 별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는가. 늘 보던 나무와 구름이 이곳에서 왜 이리 다시 보이고 아름다운 것이냐. 귀로 듣는 모든 것이 새롭구나, 기쁘구나. 잠을 깨우는 목탁 소리가 기쁘구나. 새소리 물소리를 듣는 일이 왜 이리 기쁜 것이냐. 이곳에서는 모든 일이 기쁜 일이 아닌 게 없구나. 잠자는 것도 먹는 것도, 벗들과 옹기종기 앉아서 고구마를 먹고 말을 나누는 것도 모두 다 즐겁구나. 장작을 패고 아궁이에 불 지피는 일도 기쁘기만 하네.”
비록 서툰 시이지만 진심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그 청년은 가려지고 오염되고 막힌 감각을 비로소 회복했습니다. 때문에 늘 보던 하늘과 나무가 비로소 보였던 것입니다. 그가 본 하늘과 나무와 구름은 새롭고, 크고, 미세하고, 온전하고, 소중하고, 의미 있고, 감동적인 얼굴이었을 것입니다. 결코 돈으로 값을 매기거나 바꿀 수 없는 절대가치입니다. 수행은 바로 이런 것이지요. 부질없는 것을 쌓기 보다는 그것을 내려놓는 것, 빨리 가기보다 가야할 길을 꾸준히 가는 것, 막히고 가려진 것들을 걷어 내고 온전한 감각을 회복하여 세상을 새로 느끼고 교감하는 일은 세상 어디에서,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수행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이웃들을 보면 공통점은 감각이 너무도 많이 죽어있고 오염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눈앞에서 보고 들어도 보고 듣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오래 보고 자세히 보고 애정으로 보면서 아름다움과 사랑을 가슴 깊이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보아도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눈으로 객관적인 대상을 보는 '행위'이지 '감각'은 아닙니다.
지금 저와 함께 암자에서 살아가는 청년은 동백꽃, 매화, 진달래, 초록빛 쑥이 봄기운과 함께 피었는데도 그 애들에게 별 관심이 없는 듯 합니다. 진달래꽃이 활짝 피어있는 것을 보았느냐고 물으니 조금 생각하다가 피어있는 것을 보기는 보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은 억지로 매화나무 앞으로 끌고 가서 코로 향기를 맡게 하였습니다.
감수성이 필요한 시대라고 여기저기서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나를 깨우고 사회를 사랑으로 연결하는 힘의 원천은 감수성입니다. 자연에 대한 아름다움과 사람에 대한 사랑, 고통, 선함, 사랑, 이 모든 것들에게 편견 없는 공감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감수성을 회복하는 키우기 위해서는 우리의 감각을 가로 막고 있는 것들에 대한 성찰과 확인이 있어야겠습니다. 그리고 감각의 기를 살려 놓아야겠지요. 감각의 회복은 일상에서 잘못된 습관을 바꾸는 일에서 시작할 것입니다. 사색의 시대는 가고 검색의 시대가 왔다고 걱정합니다. 그만큼 우리의 눈은 많은 시간을 컴퓨터와 스마트폰 화면에 집중하고 있으며 손은 키보드만을 건드리고 있습니다. 보고 듣고 만지는 대부분이 하늘, 구름, 별, 산, 꽃, 물소리, 바람소리, 흙을 멀리하고 있습니다. 텔레비전과 인터넷, 스마트폰에 오감을 맡기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표정과 온기가 없습니다. 표정과 온기 없는 것들을 대하는 우리들의 감각은 지극히 건조하고 소통과 교감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또 음식은 어떠한가요? 육식과 과식, 화학첨가물의 가공식품에 길들여져 청신한 미각이 오염되고 죽어 있지 않습니까? 샘물이 참으로 달고 맛있다는 것을 느껴야 할 우리의 어린 아이들이 청량음료 맛에 갇혀 있습니다. 이른바 감각이 속박되고 오염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제 이런 것들과 용기 있게 이별해야 할 때입니다. 작지만 큰 삶의 변화와 혁명은 일상에서 '익숙함'과 '낮선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일입니다. 부디 익숙한 생각과 감각의 습관에서 탈출하십시오. 그리고 자연적이고 원초적인 것들에 눈을 돌리고 집중하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감각을 회복될 것입니다. 흰 구름 걷히면 그대로가 청산입니다. 오염된 생각과 습관의 힘을 걷어내면 그대로가 생생한 감각의 꽃이 핍니다.
세속의 벗들이여! 오늘 당장 집안에서 냉장고, 텔레비전, 인터넷, 스마트폰에게 큰 '사고'를 쳐보지 않으시렵니까? 그리고 기계에 의존하여 놀고 살아가는 일에서 책을 가까이 하고 몸을 많이 움직이는 일로 관심을 돌려 보지 않으시렵니까?
가능한 일입니다. 당신은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