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십자각 앞에서 조성택 시민행성 대표
“우리나라에서 근대 이후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을 높게 평가해주는 사이, ‘(인격적)훌륭함’이란 가치는 실종돼 버렸다.“
서울 종로구 사간동 경복궁 동십자각 네거리 난사진관 3층에 인문학 모임 ‘시민행성’과 ‘화쟁아카데미’가 최근 들어섰다. 두 단체 창립의 주역이조성택 교수(57·고려대 철학과)다. 그가 강의실과 사랑방을 갖춘 인문학 산실을 꾸린 것은 인문학과 현실의 만남을 위해서다. 그래서 ‘저 혼자만 살려는’ 욕망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훌륭함이 우리 삶 속에 스며들게 하기 위함이다.
조 교수는 고려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인도철학과 대학원에 진학해 당대의 불교석학 이기영 박사로부터 배운 뒤,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대승불교 기원’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뉴욕주립대에서 7년간 교수를 하고 귀국해 고려대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2005년 한국연구재단(당시 학술진흥재단)인문학단장으로서 석학인문학, 시민인문학, 재소자 인문학 등 인문학 대중화사업을 주도하기도 했다. 인문학 박사들 300여명이 대학에서 연구할 수 있도록 한 ‘인문한국(HK)’ 사업을 가장 앞장서 추진한 이도 그다. 미국 대학에서 가르친 경험을 토대로 한국의 인문학을 부흥해보고자 애썼다. 그러나 상황은 녹녹치 않았다.
“10여년 전부터 ‘대학철밥통’이란 말이 나오며, 대학도 평가의 대상이 됐다. 그런데 인문학 쪽마저 이공계 쪽의 양적 평가방식이 그대로 도입돼 30대 교수부터 연간 5~6편의 논문을 쓰다보니, 역사적 사회적 성찰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사라졌다. 사회에서 인문학에 대한 요구는 날로 커져가는데, 이를뒷받침해줘야 할 대학의 인문학은 다 죽은 것이다.”
그가 대학 밖에 인문학 공부방을 만든 데는 “시민들의 인문학 요구를 지금 잘 이끌어주지 못하면 ‘공주파’나 양산하게 되고 말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공주파’는 ‘공부하는 주부파’다. 현실과 역사에 대한 성찰이나 비판의식은 전혀 없이, 그저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자기 만족에 안주하는 부류들이다.
“이웃과의 관계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고, 세상을 보는 눈이 새로워지고, 자기와 자기 가족을 넘어서 사회적 실천에 나서고, 신문도 비판적으로 읽을수 있는 안목을 갖추는 게 인문학이지 자기 만족이나 하는게 인문학일 수 없다.”
이곳에선 고전과 인문학을 통해 현실을 보는 눈을 트여주기 위한 각종 강좌가 개설돼 있다. 그가 ‘21세기 한국 불교’를, 박수밀 한양대 교수가 열하일기를, 이형대 고려대 교수 등이 ‘고전시대의 아웃사이더들’ 강좌를 각각 개설했다. 그는 불교학자지만, 모든 종교에 열려 있다.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실장인 김진호 목사의 바울신학 강좌를 개설한 데 이어 다양한 종교의 강좌도 열 예정이다.
조 교수가 생각하는 한국 종교들의 특성은 두가지다. 종파성과 기복성이다. 둘 다 이기적 욕망으로부터 비롯되는 것들일 수 있다.
“한국이 종교적인 나라라지만 인구조사에서 49%는 종교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미국에선 ‘종교 없다’는 인구 비율이 9%에서 12%로 늘었을 때, 연방정부가 상당히 우려했다. 종교적 가치보다는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이 그만큼 늘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불교와 개신교, 천주교가 3등분으로 황금분할하고 있고, 여전히 절반 가까운 인구가 블루오션(미래 고객)으로 남아있다고 좋아할 게 아니라, 왜 그들이 제도적 종교에 등을 돌리고 돌아섰는지 심각하게 각성해야 한다.”
국민 절반 정도가 종교에 실망하는 것을 먼저 심각하게 성찰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자신이 속한 불교가 가장 현실적 성찰이 절실한 종교로 보고 있다.
“스님들은 종권(종단권력)에 매몰돼 있고, 신자들은 여전히 ‘도인 불교’라는 틀 속에 갇혀 있는 게 한국 불교의 현실이다. 이 세상이야 어떻게 가든지 사람들이야 죽든지 말든지 오불관언 대웅전에 앉아 있는 부처처럼 불자들도 가만히 있는 게 불교가 아니지 않은가.”
그는 추상적인 관념 속에만 빠져 불교적 진리를 세상 사람들의 눈높이 맞춰 제대로 설명도 못하는, 인문학 부재의 한국불교를 안타까워한다. 시민의식없는 불교에서 벗어나 정치적으로도 각성하고 현실에도 참여해 불교적 이상을 현실에서 실현할 수 있는 ‘시민 보살’로 거듭나는 것이 보살도와 대승불교를 구현할 수 있는 길이라고 보고 있다.
“2600년 불교 역사상 이렇게 오래도록 ‘부처관’이 박제화한 적이 없었다. 화경불교·법화불교·대승불교가 제각기 인간을, 만생명을, 초월적 비인격체를 각자 부처로 제시했다. 그 뒤 선불교로 아주 새로운 부처관이 등장했다. 그런데 그 후 1천년 동안 그 옛날의 관점만 반복할 뿐 새시대에 맞는 부처관과 불교관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
그는 “동남아시아는 위파사나만, 티베트는 티베트불교만, 일본은 일본불교만 하는데 반해 한국에선 다양한 불교가 시도돼 새로운 불교를 열어갈 수있다”며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인문학적 깨어남을 주창한다.
시민행성 citizenplanet.or.kr 화쟁아카데미 hwajaeng.org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