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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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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팔 휘저으며 이크, 두 다리 사뿐거리며 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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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과 삶] 택견 인간문화재 운암 정경화씨

두 팔 휘저으며 ‘이크’…두 다리 사뿐거리며 ‘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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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무술 가운데 유일하게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지정돼 있는 택견의 인간문화재 정경화씨가 택견의 부드럽고 강한 몸짓을 보여주고 있다.
 

두 팔의 움직임은 봄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의 화려함이다. 활짝 펴서 상대의 시선을 홀리기도 하고, 때로는 굽이치는 물결처럼 거세게 사방을 휘젓는다. ‘활갯짓’이다. 마치 독수리가 푸른 하늘을 활공할 때 날개를 펼친 것처럼 자유로우면서도 부드럽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상대의 공격을 걷어내기도 하고, 자신의 허점을 내보이며 상대의 공격을 유인하기도 한다.


상체가 활갯짓으로 맘껏 기를 발산하는 동안, 두 다리는 삼박자로 움직인다. 좌우로, 앞뒤로 갔다가 왔다가 한다. ‘품밟기’이다. 한자 품(品)자 모양대로 ‘듬성듬성’ ‘꾸욱’ 눌러 밟는다. 아주 독특한 보법이다. 크게 전진했다가 물러서기도 하고, 상체를 비틀어 방향을 바꾸는 데 요긴하다.
활갯짓과 품밟기가 동시에 어우러지면서 짜임새 있고 정교한 몸동작이 연출된다. 마치 몸 주변에 투명 유리병을 씌워놓은 듯 빈틈이 없다. 버드나무의 ‘능청거림’과 허리의 ‘휘청거림’이 겹치고, 오금과 무릎이 살짝살짝 탄력을 받으며 ‘굼실거림’이 가세한다. 그리고 ‘이크, 에크’라는 단전으로부터 내뿜는 짧고도 강한 구령이 몸동작을 호위한다.


폐결핵 투병하며 망가진 몸
건강 되찾으려 시작한 택견
상체는 활갯짓하며 기 뿜고
다리는 좌우앞뒤로 품 밟고
단전에서는 짧고 강한 구령
부드러움 속에 날카로움이
“나이 상관없는 우리의 몸짓”


‘휙’ 하며 다리가 허공을 가른다. 허리를 쭉 편 채 발뒤꿈치로 상대의 턱을 내지른다. ‘곧은 발질’이다. 이번엔 다리를 안에서 밖으로 내지르는 ‘째차기’이다. 마치 가속도가 붙은 창끝처럼 날카롭게 파고든다. 이어지는 ‘돌개질’. 솟구쳐 올라 360도 돌려차는 화려한 발차기이다. 마무리는 ‘두발낭상’이다. 깨금발로 뛰어올라 상대의 턱을 내지르는 필살기이다.
이번엔 상대를 제압하는 ‘본때’기술이 나온다. 주먹을 반만 쥔 채 상대의 턱을 부수는 ‘낙함치기’와 상대의 코를 아래에서 위로 훑어 올리는 ‘코침’, 접근한 상대의 목을 휘감아 돌리며 뒷목을 가격하는 ‘항정치기’, 그리고 손날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며 상대의 빗장뼈를 부수는 ‘손도끼질’. 살인기술이다. 한차례 폭풍우가 휘몰아치더니 고요가 찾아온다. 풀밭에 앉아 180도로 두 발을 벌린 채 두 손을 앞으로 모아 숨을 고른다.
택견 인간문화재 운암 정경화(60)의 몸짓은 왜 택견이 중국의 태극권, 일본의 가라테, 타이의 무에타이 등을 제치고 세계 무술 종목으로는 처음으로, 그리고 유일하게 2011년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는지를 충분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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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아한 백색 고의적삼 한복에 발목을 감싸는 행전을 찬 택견의 복장은 화려한 복장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청량감마저 준다. 한국의 산처럼 둥글둥글하고, 기와집 처마처럼 부드러운 가운데 치켜 올라간 날카로움이 잘 배합된 택견의 용어도 한민족에겐 정겹기만 하다.
육군사관생도가 꿈이었던 운암이 택견과 마주친 것은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였다. 고교 1학년 때 교내 밴드부에 들어가 악기를 불다가 피를 토한 운암은 병원에서 폐결핵 3기 진단을 받았다.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며 충분히 영양 섭취를 못한 탓이었다. 약을 사 먹기에는 가정 형편이 너무 어려웠다. 며칠을 골방에 틀어박혀 고민하던 16살 소년은 당찬 결심을 했다. ‘병든 몸으로 불효하느니, 차라리 아무도 없는 산속에 가서 혼자 죽자.’ 운암은 부모님께 큰절을 하며 “산속에 들어가 마지막으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직 인사를 했다. 속으로는 “저승에서 다시 만나 효도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집 근처의 풍류산 개천사에 들어가 죽음을 준비했다. 그러나 생명은 질겼다. 산에 들어간 운암은 도라지·칡뿌리 등 약초와 지네, 뱀 등을 잡아 생식했다. 절에서는 참선을 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그러길 6개월, 어느 날 주지 스님이 운암의 얼굴을 보더니 “다 나았으니 하산하라”고 했다. 기적같이 폐병이 사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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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몸은 병마와의 싸움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집에 살아서 돌아온 운암은 우연히 라디오 방송에서 송암 신한승(1928~1987)의 인터뷰를 들었다. 당시에는 생경한 택견이라는 무술을 설명하는 인터뷰였다. 어릴 때 연천에서 자란 송암은 택견꾼들의 화려한 발차기를 보며 자랐다고 한다.

대학 시절 레슬링 선수를 하며 국가대표 상비군까지 했던 송암은 30대부터 어릴 때 보았던 택견을 보급하기로 마음을 먹고 전국의 택견꾼을 찾아다니며 택견을 배웠다. 특히 당시 전통 택견을 몸에 지니고 있던 현암 송덕기(1893~1987)로부터 택견 기술을 배웠다. 그리고 1975년부터 충주에 내려와 조그만 도장을 열어 민족 무술 택견을 보급하던 참이었다. 스승은 입문 몇 달 동안 품밟기와 활갯짓만을 하도록 시켰다. 화려한 발차기, 공격과 방어 동작을 배우고 싶었지만 스승은 오직 단조롭고 힘든 기본 동작만을 시켰다. “나중에 깨달았어요. 그 동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모든 무예를 관통하는 동작이었어요.” 송암은 택견을 세상에 본격 내놓은 지 8년 만인 1983년 전통 무술 가운데는 처음으로 택견을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76호로 지정하는 데 성공했다. 송암의 제자 가운데 나이가 든 제자 축에 속했던 운암은 수석사범을 거쳐 1995년 2대 택견 인간문화재가 됐다.


조선시대 말 서예가인 최영년(1856~1935)이 민간에 전승되는 놀이와 세시풍속을 서술한 <해동죽지>에는 “옛 풍속에 발기술이 있는데 다리를 차거나 어깨를 차고, 비각술이 있는 자는 상투를 차서 떨어뜨린다. 이것으로 원수를 갚거나 사랑하는 여자를 뺏는 내기를 하기도 해 법으로 금지시켰다. 이를 탁견이라고 한다”고 서술했다. 조선의 화가인 김홍도의 <대쾌도>에도 저잣거리에서 소년들이 택견을 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고려시대 무과시험엔 택견 겨루기가 필수였다는 기록이 있다. 단재 신채호는 그의 저서 <조선상고사>에서 “택견이 중국에 들어가 권법이 되고 일본에 건너가서는 유도가 됐다”고 기술하기도 했다.


현재 충주에서 택견 전수관을 이끌고 있는 운암은 “세계적으로도 대표적인 무예로 손꼽히는 택견이 정작 한국에서는 ‘국민 무예’로 자리잡지 못한 것을 아쉽게 여긴다”고 말한다. 운암은 “택견은 한정된 공간에서 움직임을 극대화하는 공격과 수비의 기술이 발달한 종합무예”라며 “나이에 관계없이 할 수 있는 부드럽고 우아한 우리의 몸짓이 바로 택견”이라고 설명한다. 현재 태권도·유도·검도는 학교 정식과목으로 채택돼 대학 입시나 경찰 등의 입사시험에 가산점이 인정되지만 택견은 제외된 상태다.


충주/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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