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돌보는 자재병원 이사장 능행 스님
자재병원 내에서 환담하는 환자들
울산광역시 울주군에 지어진 자재병원
17년 전 능행 스님은 한 가톨릭 수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임종을 앞둔 환자가 아무래도 스님인 것 같은데 일체 대꾸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환자는 선방에서 20년 넘게 수행만 해온 비구 스님이었다. 그 스님은 “중생의 은혜로 살면서 아무 것도 못하고 떠난다”고 눈물을 떨구며 능행 스님에게 유언을 남겼다. “불자가 1천만이 넘는데, 스님들이 편히 죽어갈 병원 하나가 없다”며 “나 대신 병원 하나를 지어 달라”는 것이었다.
세상일이라곤 해본 적이 없는 비구니 능행 스님은 감당키 어려운 유언을 받은 이후 기나긴 고행이 시작됐다. 더구나 “중이 수행이나 하지 웬 세상 일이냐”는 핀잔이 정당화는 되는 의식 부재의 불교계에서 맨몸으로 병원을 짓는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나 다름 없었다.
그런데 불가능해 보이던 그 꿈이 현실이 됐다. 정토마을공동체는 오는 15일 오후 1시30분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소야정길에 자재요양병원 개원식을 연다. 능행 스님이 이사장인 정토마을공동체가 충북 청원군 미원면에 독립형 호스피스인 정토마을을 개원한지 14년 만이다. 정토마을공동체는 지난 2005년 이곳에 병원 부지를 매입했고, 지난 2007년엔 의료복지 임상전문인력 양성교육기관인 마하보디교육원을 열어 병원 개원을 준비해왔다.
양방의 내과, 외과와 한방의 한방내과 한방부인과, 한방재활의학, 침구과 등을 갖춘 이 병원은 108병상 규모로 의사 한의사 등 60여명이 환자들을 돌본다. 무료 1만5천여명의 후원자들의 십시일반으로 원력이 성취됐다.
이 곳은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완화의료 전문병원이다. 완화의료병동과 함께 승려들만 입원하는 승가병동이 운영되는게 특색이다.
이 병원은 의료사각지대에 있는 환자들의 의료비를 지원하고, 말기 환자들에게도 총체적 돌봄을 지향한다. 특히 삶의 마지막 순간을 존엄하게 마칠 수 있도록 불교적 임종의식을 따르고 있다.
병원 개원을 맞아 오는 13~15일 다양한 행사가 마련됐다. 13일 오후 2시 부터는 ‘마가 스님과 함께 하는 치유법회’와 ‘피아니스트 정소영과 함께 하는 작은음악회’가 펼쳐진다.
또 14일엔 오전 10시부터 ‘허유지와 함께하는 사경법회’와 ‘도신 스님과 함께 하는 건강한 100세’, ‘개원축하 전야 야단음악회’가 이어진다. 승려화가인 수안스님이 기증품으로 여는 ‘108선서화전과 사인회’도 축제 기간에 열린다.
개원일인 15일엔 오전 10시 고구려 당취소리 공연이 펼쳐지고, 오후 1시30분엔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과 원로회의 의장 밀운 스님, 석종사 선원장 혜국 스님, 운문사 회주 명성 스님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원식이 열리고, 오후 3시30분엔 장사익 공연이 이어진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