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을 걷어차려는가?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평화가 내릴 것이다(마태 10,7~13).”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어느 집에 들어갈 때는 ‘평화를 빕니다.’ 하고 인사하라.” 가르치면서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합당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평화가 되돌아 올 것이다.” 하셨습니다.
어딘가로 부터 나에게 오는 구원이나 평화나 축복은 내가 그것을 받을만해야 받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찾아오던 복은 되돌아갑니다. 축복을 마다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지니 나에게 오는 축복을 되돌아가게 할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받기에 마땅하다. 받을 만 하다’는 건 무슨 소리일까? 오는 축복을 몰라보고 걷어차 버리는 일이 자주 있다는 말이겠지요.
아하, 그래서 잘되는 사람은 아무렇게 해도 잘되고, 안 되는 사람은 제아무리 꾀를 부려도 안 되고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말이군요. 실제로 그렇지요. “나는 내게 오는 복을 걷어찬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뭔가가 찾아왔었는데 그것이 축복과 평화의 씨앗인지 재앙과 우환의 징조였는지를 보는 눈이 없었다는 말이겠지요. 영성의 눈으로 봐야 하는 건데.
어떤 노비가 장가를 들어 아들을 낳았어요. 서당 접장에게 찾아가 “내 아들만은 노비 운명을 벗어날 이름으로 지어주십시오.” 부탁했습니다. 접장은 ‘천복’이라 지어줬습니다. 노비는 좋아하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왜 이왕이면 ‘만복’이라 하지 않고 천복이라 한담...” 하면서 ‘만복’이로 고쳐서 불렀습니다. 나중에 그 소식을 들은 접장은 중얼거리기를 “그 녀석도 노비 운명을 면하기는 어렵겠구나! 운명을 주재하시는 하늘의 ‘天福’이라 지어주었더니 만복이라 고치다니...” 하였다고 합니다.
축복을 걷어차는 것은 욕심이나 어리석음, 거절하는 습관에서 옵니다. ‘평화를 빕니다!’ 하고 인사하면 ‘감사합니다. 당신에게도 평화가 함께 하소서!’ 하고 선의로 대하면 충분할 것을... 평소에 이기적인 태도와 습관으로 거절을 잘하는 성품이 있습니다. 나름 똑똑하고 계산도 잘하겠지만 평생을 꾀를 부려서 먹고 살아야 해서 인생이 피곤합니다. 그런 사람들 주변에 많이 보거든요. 아는 것은 많은데 제대로 되는 일은 거의 없는... 복이 붙지 않는 게 아니라 걷어차는. 오빤 비복 스타일!
공동생활에서 함께 사는 가족이 나에게 무엇인가를 충고한다면 서로와 공동체의 평화에 소중한 충고가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충고는 잘하는데 듣기는 싫어해요. 기분나빠하고 ‘흥, 제까짓 게!’ 기분 나빠하고 ‘너는 안 그러냐?’ ‘내가 뭘?’ ‘너나 잘해’ ‘네가 몰라서 그래!’ 하고 생각하거나 논쟁까지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별히 자기보다 나이 어리거나 공동생활 경력이 짧은 사람이 그런 충고를 할 때 그런 경우가 많지요. 이런 일상의 습관들은 나와 공동체의 축복을 걷어차는 힘찬 발길질이 됩니다. 평화를 누리기에 합당하지 않으니 그 평화와 축복이 되돌아가는 것이지요.
국가사회도 축복을 받을 자격이 필요합니다. 국민들의 소리를 겸허하게 경청하고 법집행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는 권력자와 정치인을 가진 사회는 행복합니다. 축복을 받기에 합당한 사회입니다. 사건이 터지면 진실을 감추고 거짓말로 국민을 기만하고 신문 방송으로 왜곡하고 선동하고 국민을 이간질 하는 그런 권력의 지배를 받고 사는 국민은 불행합니다.
인류 지성은 그런 나쁜 권력을 교체하도록 민주주의와 선거라는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젊은이들과 노동자들이 최루탄의 눈물과 투옥과 고문, 죽음을 통해 쟁취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관망하며 기회를 잡은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지배의 도구로 삼습니다. 언론과 공권력은 민주주의를 할 때는 이기적 태도로 힘을 행사하고 독재를 할 때는 권력의 나팔수와 충견이 됩니다.
그것을 용납하는 국민들은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게 됩니다. 그 결과로 오는 재앙과 불행은 국가 공동체 모두, 특별히 서민층과 그 자녀들이 감당합니다. 천안함 침몰, 세월호 참화의 본질입니다. 축복이 되돌아 가버렸기 때문에 재앙만 남은 형국입니다.
창세기의 아브라함은 얼굴도 처음 보는 거지같은 나그네들을 거절하지 않고 제 집에 모시고 접대하였는데 그것이 야훼께서 복을 내리시고 계약을 맺으신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인정을 베풀고 인격을 존중하면서 ‘내 생각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는 겸손함으로 이웃의 관계와 세상 사물을 바라보고 문제를 식별하고 마음의 문을 열 때 가정의 축복도 시대의 평화도 가능합니다. 당신에게 평화를 빕니다! *
소나기가 퍼부어 오랜 가뭄이 해갈된 듯하다. 비는 천천히 많이 내려야 땅 속 깊이 적시는 건데... 정(情)이란 것도 그렇다. (2014. 6.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