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노숙의 달인
글의 주인공 청소년들은 살레시오 남녀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마자렐로센터>와 <살레시오 청소년센터>에 현재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법원에서 ‘6호처분’이라는 재판을 받았습니다. '6호 처분’이란 소년법 제32조에 의한 보호처분을 말합니다. 비행성이 다소 심화되어 재비행의 우려가 있는 청소년을 교육을 통해 개선하기 위한 법입니다. 센터에 머무는 법정기간은 6개월이며 퇴소 후 집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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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중1. 가을 어느 날 비가 오고 추웠다. 갈 때도 잘 곳도 아무데도 없었는데 무작정 옷 몇 개만 챙겨 살던 시설을 몰래 나와 그냥 걸었다. 걷다가 골목에 있는 어느 빌라 건물에 들어가 옥상까지 올라간다. 문이 잠겨 있다. 옥상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린 곳을 찾아 또 다른 빌라 계단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길 수차례. 찾으면 그 곳이 오늘 나의 잠자리다. 그러니까 옥상으로 나가기 전 사각 공간에 옷을 깔고 자면서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옥상으로 통하는 문을 열고 나가서 하면 된다.
내일은 어디를 가지? 이 생각을 하면서 일단 오늘 버티고 보자 한다. 찬 바닥에 누워 자는 것보다 앉아 자는 게 더 낫다. 앉아서 자다 깨고 자다 깨길 반복한다. 양쪽 어깨가 너무 춥다. 다행히 아무도 안 왔다.
참 슬펐다. 나는 왜 집이 아닌 시설에서 살아야 하나. 이런 생각도 들었고, 내가 만약 집이 있으면 부모님도 있고 그럴 텐데. 이렇게 밖에서 지내다가 또 시설에 가야하는구나. 나도 부모가 있었으면……. 이런 저런 생각을 수없이 한다.
나와 언니를 우리 부모 둘이서 시설에 던져 놓고 가버렸단다. 나와 두 살 터울인 언니는 엄마, 아빠 모습이 조금은 기억난다고 하나 난 전혀 없다. 그때 언니 나이 네 살이었다.
시설을 나온 다음 날, 나는 무조건 터미널로 가서 친구한테 전화를 했다. 다행히 전화를 받았다. 그날은 친구 집에서 잤다. 친구 부모님은 나를 좋게 보지 않았다. 가정 형편도 안 좋은 나랑 놀지 말라고 했던 상황이어서 눈치가 보였다.
한 번은 보일러실에서 잤다. 1층은 음식점, 2층에 보일러실이 있었다. 문이 열려 있어 들어갔는데 아늑하고 따뜻했다. 형광불도 있었다. 친구 집에서 담요와 이불을 들고 와서 바닥에 깔고 잤다. 밖에 나오면 잠자는 게 제일 힘들다. 낮에 돌아다니다가 어두워지면 졸음이 쏟아져서 자야는 하는데 특히 춥고 그럴 때는 더 힘들다. 그 보일러실에서 거의 한 달 가까이 있었다. 매일 아침이 되면 밤에 썼던 물건을 다 빼고 다시 밤에 들어갈 때 가지고 갔는데 한 달 쯤 되어서 들키고 말았다. 계속 안 들켜서 짐을 빼지 않고 거기 두었다가 발각된 것이다.
어느 날 나갔다가 밤에 잠을 자려고 가보니까 보일러실 문이 잠겨 있었다. 철문 밑에 약간 틈이 있어 쭈그려 앉아 고개를 바닥에 대고 안을 들여다봤더니 짐이 하나도 없었다. 버린 것이다. 이제 난 어디 가서 자지?
병원에서 잔적도 있다. 늘 열려 있는 응급실을 통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응급실은 3층 병실하고 연결되어 있었다. 올라가면 병실이 쭉 있고 복도 끝에는 환자나 보호자가 쉬는 공간이 있는데 의자가 여러 개 있다. 거기 앉아서 보호자인 척하고 잤다. 병원에서는 연달아 이틀은 못 잔다. 하루 자고 일주일 후에 또 갔다.
어느 날 자고 있는데 간호사가 와서 말했다.
“며칠 전부터 계속 보이던데…… 여기서 자면 안 돼요.”
“죄송합니다.”
그때가 새벽 2-3시. 어두웠다. 막막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되지? 이제 어디로 가지? 어디로 가지? 나가야는 되는데 발걸음이 안 떨어졌다. 그날은 병원을 나와 공원에 쭈그려 앉아 있다가 날을 샜다. 그럼에도 시설에 갈 생각은 없었다.
*영화 <써니> 중에서
그렇게 추웠는데 어떻게 견뎠을까? 추워도 시간은 갔다. 나 혼자 다니지 않고 같이 다니는 얘들이 있었다. 밤이 되면 다 지쳐서 춥고, 배고프고 말할 힘도 없다. 모두 쭈그리고 앉아서 담배 있으면 피우고, 그냥 가만히 있으면서 추워? 안 추워? 이런 말밖에 안 한다.
밤이 되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 아, 내가 뭐하는 짓이지?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하다가도 아침이 되면 놀자 하고 나간다. 우리는 그게 의리라고 생각했다. 같이 나왔으면 같이 집에 가야한다고. 우리 중 어느 한 명이 나 집에 가야겠어. 하면 쟤는 배신자야. 배신자야 했다. 그때 생각은 내가 이 무리에서 빠져 나가면 친구사이에 의리를 깨는 거라고 믿었다.
놀이터 동굴미끄럼틀 안에서도 잤다. 그날은 친구랑 둘이었는데 진짜 잘 곳이 없었다. 아파트 주변 놀이터에는 미끄럼 통이 여러 개가 있었다. 나는 친구에게
"내가 여기서 잘게, 너는 저기서 자.”
하면서 각각 따로 미끄럼틀 속에서 잤다. 한 통에서 둘이는 잘 수 없었다.
여름에는 아파트 옥상이 진짜 너무 시원하다. 닫힌 아파트 현관 앞에 앉아 있다가 사람이 들어가면 쫄쫄 따라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꼭대기 층까지 올라간다. 철문을 열고 옥상으로 나간다. 옥상에 있는 기둥과 기둥 사이에 줄을 두 개 묶고 그 위에 이불이나 담요를 올리면 지붕이 생긴다. 그 밑에서 바닥에 담요를 깔고 자는데 모기에게 많이 물렸다. 다음 날에는 모기향을 사가지고 갔다. 밤에 사람이 옥상 위로 올라오지는 않으나 한 군데 계속 있으면 안 된다. 한 이틀이나 삼일 딱 있다가 옮겨야 한다.
빈 집에도 들어갔다. 연립 주택이 많은 곳이었다. 어른들과 옥상에서 술을 먹다 그 자리에 계속 있기가 뭐해서 친구랑 몰래 빠져 나와 걷고 있는데 문이 열려 있는 집이 있었다. 잠깐 들어가서 집안을 얼른 둘러봤다. 거실, 부엌, 방 하나. 엄청 작은 집이었다. 뭐 있어? 뭐 있는데? 우리 중 한 명이 저금통을 들고 나왔다. 며칠 후 그 집을 또 갔다. 방문이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우리는 신발 밑, 화분 밑을 뒤치다 신발 밑에서 열쇠를 발견했다. 문을 따고 들어갔다. 한참을 있었는데 아무도 오지 않았다.
“우리 여기서 자고 아침 일찍 나가자. 아무도 모를 거야.”
밖에서 잔 경험 중에 그날이 가장 편하게 잔 것 같다. 아무도 없으니까 괜찮겠지 하고 잤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했던 것 같다. 어떻게 그렇게 했을까……. 지금은 그 집 주인한테 정말 죄송하다.
집을 나오면 당장 돈은 필요하니까 나쁜 짓은 다 하게 된다. 그때는 양심의 가책도 없었다. 진짜 왜 그걸 못 느꼈지? 의문이 들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았다. 재판을 받고 센터에 오기 전까지는 몰랐는데 결국에는 내가 한 만큼 받는 것 같다. 이것을 어느 날 확 깨달은 것은 아니다. 서서히 생각하면서 아, 내가 그때 그랬는데. 내가 그렇게 한 벌을 받는구나. 점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기회를 놓치는 너에게 친구야! 그러던 중 밖에서 함께 놀던 재은이가 전학을 가게 된 거야. 걔가 없으니까 이제 나가봤자 뭐하지? 그러면 이제부터 공부를 하자 생각이 들었어. 시설에서는 학원가고 싶으면 갈 수 있었고 성적도 나쁘지 않았으니까. 난 시설은 나왔으나 공부 미련은 있었나봐. 놀던 아이들 중에는 재학생도 있었는데 한 명 한 명씩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나타 난거야. (생략) 나도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싶었어. 난 알바를 해서 번 돈 3만원으로 고입 검정고시 교재를 사서 찜질방 안에 있는 식당에서 공부했어. 같이 어울려 노는 아이들이 잠을 잘 때 난 식당에서 계란을 먹어가며 공부했어. 잠에서 깬 아이들이 그 시간에 잠 안 자고 공부하고 있는 나를 보고 아직도 해? 너 정신 나갔니? 놀자며 욕하고……. 그러는데도 난 지금 아니면 공부할 시간이 없다. 하면서 멈추지 않았어. 낮에는 돌아다니니까 앉아 있는 시간은 저녁 아니면 밤이었어. 친구들은 날 미쳤다고, 쟤, 정신이 나갔다. 분명 며칠 못 간다 했지만 난 그렇게 두 달 정도 공부했어. 검정고시를 보려면 6월에 원서접수를 해야 하는데 난 그 기간을 그만 놓쳤어. 밖에 나와 있어도 내가 시험을 친다고 했으니까 시설에서 다 알아서 해 주겠거니 한 거야. 며칠을 놀다가 무조건 교복을 입고 학교를 찾아갔어. 담임선생님은 시설로 들어가면 널 받아 주겠다. 그렇지 않으면 출석일 수 안 채워주겠다. 했어. 그래서 들어가야겠다고 마음잡았는데, 그때 내 핸드폰으로 시설 언니들이 엄청 입에 담기 어려운 심한 욕을 해댔어. 문자로. 언니들은 진짜 무서운 존재였거든. 난 그만 시설에 들어가는 걸 포기했어. 못 들어갔어. *영화 <써니> 중에서 친구야! 그런데 친구야! 친구야! 친구야! 친구야! |
남 민 영 수녀
바람 따라 물결 따라
목적지 없이 이리 저리 흩날리는 민들레 홀씨처럼
부드럽고 촉촉이 품어 줄 땅을 만나면
그 안에 자신을 묻고 꽃을 피우련만
차갑고 단단한 아스팔트
선입견과 편견의 강철 같은 땅
결국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허공에 흩날리는 가여운 영혼들이여
주님,
세상의 거센 비바람으로부터 지켜줄 따뜻한 품에
한 번도 머물러보지 못한 가여운 영혼들이
그 어디에도 맘 편히 머물지 못하고 오늘도 방황합니다.
단순히 비바람을 피하는 잠자리가 아니라
세상 모두가 나를 외면해도
나를 꼭 품고 지켜줄 그 품이 그리워 오늘도 허공을 헤매입니다.
주님,
제가 조건 없이 이유 없이 품어주는 어머니가 되게 하소서!
촉촉하고 부드러운 땅이 되어
영혼들이 뿌리내리도록 보살피는 대지(大地)의 마음이 되게 하소서!
입으로만 허공에 뿌리는 공허한 기도가 아니라
삶으로 행동하며 실천하는 사랑의 기도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