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가 바라본 세상과 교회]
그녀들의 고뇌, 그녀들의 향기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양운기 | editor@catholicnews.co.kr
강정 해군기지 공사장입구, 미사시간에 의자를 들고 가서 앉으면 다음과 같은 방송을 반복해서 들을 수 있습니다. “서귀포 경찰서 경비 교통 과장 아무개 경정입니다. 지금 여러분께서는 형법 314조, 업무방해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동하지 않으면 형사처벌 받을 수 있습니다.”
‘아무개 경정’이라는 말에 문득 지난 2012년 말,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 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으로 댓글녀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권은희 경정이 생각났습니다. 그녀는 2005년 대한민국 여성 최초로 경정 특별채용에 응시해 합격한 변호사 출신 여성경찰관입니다.
*제주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공사장 입구에서 경찰에 의해 옮겨지고 있는 한 여성. 뉴시스
국정원이 청와대와 여러 국가 공조직과 짜고 부정선거를 계획하는 사건을 담당한 권은희는 당시 서울 경창청장 김용판으로부터 수사를 방해하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2012년 12월 12일 김용판 당시 서울경찰청장이 건 전화는 압수수색을 하지 말라는 외압이었다”고 말하고 “지난 12월 16일 경찰의 중간수사결과 발표는 대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것이며 서울지방경찰청이 일선 수사팀에 핵심 수사 자료를 넘겨주지 않으려 했고 주요 증거물을 피의자에게 돌려주려 하는 등 지속적으로 수사를 방해했다”고 밝혔습니다. 양심선언을 한 것입니다. 그녀는 결국 송파경찰서로 전보 조치되는 인사보복을 당하고 특채된 경정들이 일반적으로 오르는 총경 승진에도 탈락되며 현재는 관악경찰서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같은 경찰조직에 몸담은, 계급이 같은 경정인데 한 사람은 윗선의 지시대로 안보사업을 빙자한 재벌기업의 불법, 탈법, 위법 사업에 종사하며 해군기지 앞에서 매일 업무방해로 체포한다고 협박하고 있습니다. 또 한 사람, 권은희는 국정원의 어마어마한 대선개입 불법 사건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그 결과 한직으로 밀려나고 총경승진에도 탈락되면서 엄청난 불이익을 받았습니다.
무죄를 구형하기 위해 법정 출입문을 잠근 검사, 임은정
또 다른 그녀가 떠오릅니다. 권은희 경정과 동갑내기 74년생, 임은정 검사입니다. 2012년 9월 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8부는 군부독재정권에서 대통령 긴급조치위반 혐의 등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던 박형규 목사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무죄선고가 당연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만 임은정 검사는 검사의 본분을 잊었는지 무죄를 구형합니다. 법정에 출석한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재판장에게 무죄를 청했습니다.
“이 땅을 뜨겁게 사랑해 권력의 채찍을 맞아가며 시대의 어둠을 헤치고 걸어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몸을 불살라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히고 묵묵히 가시밭길을 걸어 새벽을 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으로 민주주의의 아침이 밝아 그 시절 법의 이름으로 그분들의 가슴에 날인했던 주홍글씨를 뒤늦게나마 다시 법의 이름으로 지울 수 있게 됐습니다.”
법정에서 무죄구형은 사법사상 처음 일어난 일입니다. 지난 2010년 재심을 청구했던 박형규 목사는 그날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다시 서울중앙지검 공판2부 소속이던 2012년 12월에, 1962년 특수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법(반 국가행위) 위반 혐의로 혁명재판소에서 징역 15년이 확정된 고 윤길중 진보당 간사의 유족이 청구한 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구형합니다. 이 사건은 박정희 쿠데타 세력이 자신들을 반대하는 세력을 제거하려고 조작한 ‘통일사회당사건’입니다.
그녀는 검찰 내부 논의 과정에서 무죄 구형을 강하게 주장했지만, 부장검사는 ‘법원이 적절히 선고해 달라’는 이른바 ‘백지 구형’을 하라는 방침을 내렸습니다. 검찰 상부는 그녀가 무죄 구형 주장을 굽히지 않아 다른 검사에게 구형을 하도록 직무이전지시를 내려 다른 검사가 공판에 출석하도록 했습니다. 그녀는 이에 따르지 않고 재판 당일 해당 검사가 법정에 들어오지 못하게 법정 출입문을 잠금 채 무죄 구형을 강행했습니다. 평생 민주화 운동을 했고 권력의 ‘눈엣가시’였던 박형규 목사에게 무죄를 구형할 당시만 해도 검찰은 임 검사에게 관대했지만 대검 감찰본부는 품위 손상 등을 이유로 그녀에게 정직을 청구했고, 법무부는 2013년 2월 정직 4개월을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창원지검으로 좌천되었습니다.
그녀는 이후 ‘무죄 구형이 적법하다고 믿어 직무이전지시를 따르지 않았고, 백지 구형은 법적 근거도 없다’며 소송을 내고 ‘검찰청법상 직무 이전 지시는 검찰총장, 각급 검찰청 검사장, 지청장의 고유권한으로 봐야 하므로 김국일 부장검사의 명령은 무효’라고 주장했습니다. 즉 ‘직무이전명령이 적법한 권한 자에 의해 이뤄지지 않았다’는 주장입니다. 그 결과 그녀는 1심에서 징계취소 판결을 받았고 이에 법무부는 2심에 항소한 상태로 이 소송은 현재 진행 중에 있습니다.
그녀는 다른 검사가 들어오지 못하게 법정 문을 잠그고 무죄를 구형한 이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당연히 무죄가 나올 사인이고 담당 검사로서 (상부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다른 검사에게 사건이 재배당됐다. 때문에 검찰 내부에서 공론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결행하게 된 것이다.” 사실 법원은 2011년 10월에 ‘통일사회당사건’에 대해 ‘북한의 목적에 상응하는 내용을 선전, 선동했다거나 북한의 활동을 고무하거나 이에 동조했다고 볼 수 없다’며 다른 관련자 5명에 대한 재심에서 이미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자신의 십자가로 어두운 세상에 균열을 낸 그녀들
양심을 지키고 진실을 밝혔을 때 불이익을 당하는 것을 그녀들은 몰랐을까요? 경찰, 검찰조직의 만만치 않음을 알고 있었겠지요? 조직에 몸담으면서 자신들에게 불이익이 올 것이라는 판단을 못했을 까요? 윗선의 입맛에 맞추지 않으면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몰랐을까요? 권은희가 김용판 청장의 압력 전화를 받을 때 얼마나 떨렸을까요? 임은정이 무죄구형을 할 때 얼마나 가슴 졸였을까요? 언론과 동료들의 눈총을 생각하며 발길을 돌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모른 척 한 번 눈감고 누구의 비난도 없는 양지에서 머물고 싶었을 것입니다.
옳은 행동은 언제나 깊은 고뇌와 갈등이 따릅니다. 자신의 미래가 깜깜한 먹구름으로 휩싸일 것이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잃을 것을 알면서도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마음속에 품은 진실, 그것 하나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십자가로 어두운 세상에 균열을 낸 것입니다. 그들의 고뇌와 결단이 견고하게 뭉쳐있는 거짓 세력에 틈을 내고 그 틈에 빛이 스미는 것입니다. 숭고한 그들의 땀과 고뇌가 이 슬프고 어두운 세상에 한줄기 빛이 되어 새벽을 열었습니다.
임은정 검사는 법정에서 박형규 목사를 봤을 때의 심정을 다음처럼 표현했습니다. “아! 저분이구나. 그 시절 법의 이름으로 그 분의 가슴에 날인하였던 주홍글씨를 다시 법의 이름으로 지우는 역사적인 순간에 나에게 이렇게 중요한 배역이 주어지다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무죄 논고를 하며 몸이 떨리는 걸 어쩌지 못했다. 어제 당신이 목숨 걸고 만들려 했던 내일이 바로 오늘임을 믿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녀는 떨면서, 그러나 당당하게 무죄를 구형한 것입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산으로 가셨을 때, 그 때 그분의 고뇌도 그랬습니다. 땀이 핏방울처럼 되어 땅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권력의 자리에서 권력은 정의라야 함을 보여준 동갑내기 그녀들,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기꺼이 가시밭길을 걸어가며 고뇌하는 그녀들이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 그것은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는 징표입니다. 고뇌하는 그들에게서 스승님, 그분의 향기가 납니다. 강정 해군기지 공사장 입구에 그녀들의 향기가 머무르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께서는 형법 314조, 업무방해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동하지 않으면 형사처벌 받을 수 있습니다.” 앵무새 같은 방송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양운기 수사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이 글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