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 사진 <한겨레> 자료
김교신 사진 <한겨레> 자료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일제 식민과 남북 분단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 발언이 집중포화를 맞자, 우익들은 “함석헌(1901~89)도 그런 역사관 아니냐”고 맞받았다.
맞다. 삶은 다르지만 그 부분만 따놓고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함석헌은 일제 말 <성서조선>에 쓴 ‘뜻으로 본 한국 역사’에서 “우리는 잔인한 로마 사람에게 한때의 쾌감을 주기 위해 원형극장에서 싸우는 노예나 축생인 듯하다”고 했다. 오산학교 교사였던 그는 한민족에 대해 ‘미신과 숙명론에 빠져 있고, 자존심도 없다’고도 했다. 반면 함석헌의 친구로 <성서조선>의 발행인이자 양정고 선생이었던 김교신(1901~45)은 달랐다.
학생들을 고적 답사에 데리고 다니던 그는 우리 자연의 아름다움과 문화의 탁월성을 발견케 하고 “동양 정신의 정수는 바로 이곳에 있다”고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대륙에 붙어 있는 한반도 기를 거꾸로 걸어놓고 “한반도는 오대양 육대주로 나아가는 항구”라고도 했다. 나라가 망해 장송곡을 부를 때라면 모르지만, 기독교가 도래하기 전 5천년 역사도 자양분으로 삼아야 할 현시대엔 김교신의 말이 더 구미에 당기는 게 사실이다.
새것은 옛것의 폐해를 비판하기 마련이다. 기독교를 받아들여 조선을 갱신하려고 했던 개신교 선구자들이야 말할 것이 없다. 명동촌의 김약연과 조만식, 안창호, 이상재 등은 유교 사서삼경에 달통했으면서도 민족을 살릴 개벽종교로 개신교를 택했다. 양반놀음을 포기하고 스스로 고난을 자초하면서 말이다. 방방곡곡에 학교와 병원, 신문이 생겨나고 비분강개의 연설회, 토론회가 일어나 국민을 깨운 것은 그들 덕이다. 이들에겐 신앙과 민족이 둘이 아니었다. 신앙은 민족 동포를 갱생시켜 패망에서 부활시킬 구원자였고, 민족은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 정신을 실현시킬 터전이었다.
그러나 3·1운동 정신을 무력화하기 위해 ‘한일합방은 상천(上天·하나님)의 뜻’이란 글을 쓴 이완용이나 일제 귀족원 의원을 지낸 윤치호에게 자신은 반드시 영광을 누려야 할 선택자였고, 동포는 이리에게 바쳐도 좋을 희생양이었다. 이승만은 이러한 친일파와 손을 잡고 새로운 구세주 미국을 등에 업고 남한을 개신교 국가로 만들려 했다. 전쟁이 터진 순간까지 전쟁이 나는지도 모르고 가장 먼저 내빼놓고는 엉뚱한 데 화풀이하듯 한두살 어린아이들을 포함한 수만의 양민을 살해한 제주 4·3사건 등 방방곡곡에서 학살극을 벌였다. 이런 그에게서 승리주의 신앙관은 볼 수 있지만 동포애는 느낄 수 없다.
친일파와 손잡은 미국 근본주의 신앙인 이승만 장로의 미국 숭배주의와, 북에서 공산당으로부터 핍박받고 내려온 개신교 월남파의 공산당 증오심이 결합한 게 이 나라 우익의 뿌리다. 수적 세를 불린 대형 교회 목사들이 그들을 외호하며 한국 개신교의 얼굴로 군림하고 있다. 그들이 개신교와 그다지 상관없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에게 찬양가를 부를 때는, 마침내 기득권 이익집단으로 변모한 순간이었다. 이런 친일파와 독재자들을 역사에서 부활시키려는 게 뉴라이트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 계열의 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을 임명한 데 이어 김명수 교육부총리를 지명했다.
문 후보가 강연에서 ‘개신교 덕에 이만큼 축복을 받았다’는 걸 강조했는데, 함석헌은 ‘과거 종교들의 나쁜 짓만을 답습하고 있다’고 개신교인들을 질타했다. 개신교 승리의 축배를 들어 취하게 하는 쪽과 과거의 적폐를 끊어 고난의 역사를 되풀이 말자는 것에서 둘은 달랐다.
과거 종교의 기득권 놀음, 부패에 지금은 어느 쪽이 가장 앞장서는가. 불교는 삼국시대·고려 1천년을, 유교는 조선 500년을 주류 종교로 있었지만 개신교는 불과 130년 만에 그들로 인해 바닥을 드러내며 결딴이 날 판이다. 해방 후 개신교는 주류 종교다. 수적으로는 많다지만 허울뿐인 불교에 비해 언제나 정부 요직도 많이 차지했고 영향력도 지대하다.
그래서 어떤 개신교가 되느냐는 것은 개신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나라가 다시 고난의 역사를 맞느냐, 희망의 역사로 나아가느냐의 문제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well.hani.co.kr
***조현 기자가 우리나라를 살린 기독교 선지자와 영성가 24인의 삶을 발굴 취재한 책 <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