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100살 이상 장수를 누리는 이를 만나긴 쉽지 않다. 한 세기를 산다는 것은 아직은 개인에게 축복일 수도 있고, 불행일 수도 있다. 친구도 모두 떠나고, 반려자도 떠나고, 심지어 자식도 먼저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만큼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어야 하는 생로병사를 진하게 체험하며 살아온 시간의 집합일 것이다.
특히 백살까지 건강하게 살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각종 질병의 ‘지뢰밭’을 피해 누구의 도움없이 하루 하루를 두발로 걸어다니며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그야말로 드문 일이다.
그런 점에서 구당 김남수는 정말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지난 9일은 그의 99번째 생일이었다. 그는 중국 베이징에서 백수(白壽)생일 밥상을 받았다. 중국 의학계에서 그를 초청해 그가 평생 연구한 침뜸 강의를 들으며, 그를 위해 생일상을 차려 준 것이다. 한반도에 침뜸을 전해준 동양의학의 본고장에서 구당을 공부하고 있다. 그의 ‘무극보양뜸’은 중국 최고위층의 치료를 담당하는 ‘인민해방군 301병원’의사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구당은 한 달에 한 번씩 중국에 가서 이틀 동안 30여명의 환자를 치료해 주고 있다.
지난 12일 서울역사 4층에 자리잡고 있는 ‘구당 침술원’에서 만난 구당은 ‘백세 어르신’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활기찼다. 전날 일주일간의 중국 출장에서 돌아온 구당은 이미 자신의 출장 기간중 치료를 받지 못한 환자 10여명을 치료한 뒤였다. 안색은 20대 청년처럼 혈색이 붉었고, 그가 구사하는 언어는 정확했고, 힘이 있었다. 두시간 이상 대화를 나누었으나 한번도 물을 마시지 않았고, 피곤한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대화 내내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끈질기게 풀어놓았다.
‘정말 백살 어르신이 맞나?’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그는 에너지가 넘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 당연한 질문을 했다. “그런 건강에 비결이 있나요?” 아마도 그는 이런 질문을 숱하게 받았을 것이다. 구당은 허허롭게 웃어 넘겼다. “이제 나이가 백살이 되니 뭔가 특별한 장수 건강 방법이 있는가 모두 궁금해 해요. 운동하냐구요? 운동할 수 있는 여유가 있으면 좋은 팔자지요. 뭔가 특별한 것을 먹냐구요? 남들과 똑같이 먹어요. 하루 세끼, 가리지 않고.”
구당은 서울 청량리에 있는 집에서 서울역 침술원까지 버스를 타고 출근한다. 출퇴근 동안 걷는 것이 그의 유일한 운동이다. 그리고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침과 뜸을 놔준다. 구당은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구당은 환자를 치료해주고, 그 환자가 좋아지는 것을 보면서 무한한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환자의 병세가 좋아지면 어쩌면 환자보다 제가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맛에 평생 즐겁게 살아 왔어요.”
물론 구당이 말하는 건강의 비결은 있다. 그것은 바로 뜸이다. 구당은 매일 한차례씩 자신의 몸에 뜸을 뜬다. 물론 집에서는 딸과 며느리가 떠주고, 집에서 못 뜨고 출근하면 제자들이 떠준다. 구당은 서슴치 않고 이야기한다. “뜸만 뜨면 병도 예방하고, 치료도 하는데 왜 힘들게 다른 방법으로 건강을 찾으려 애쓸까요?” 그런 구당에 대해 기존 한의학계나 양의학계에서는 구당이 자신의 치료 행위를 과장시키고 부풀린다고 비난한다. 그의 호인 구당(灸堂)은 ‘뜸을 뜨는 집’이란 뜻이다. ‘구(灸)’는 ‘오랫동안 불을 지핀다’는 뜻이다. 평생 구당을 외로운 투쟁을 하게 만든, 그러나 그를 행복하고 건강하게 만든 ‘뜸’은 정말 효과가 있는 것일까?
구당은 그에게 치료받은 많은 환자 가운데 김재규씨를 가장 잊지 못한다고 한다. 10.26 사태를 일으킨 김재규는 1979년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중앙정보부장이었다. 어느날 한밤중에 김재규는 부하들을 시켜 구당을 자신의 집에 불렀다. 구당을 태운 차는 비상등을 켜고 달렸다. 김재규는 구당에게 “나 잠 좀 자게 해주시오.”라고 부탁했다. 불면증에 오래 시달린 것이다. 그런 김재규를 진찰한 구당은 침과 뜸을 시술했고, 편하게 잠을 이룬 김재규는 한동안 밤마다 구당을 불렀다.
구당은 1962년 3월 국민의료법이 개정되며 사라진 침구사 관련 규정을 부할시켜줄 것을 김재규에게 부탁했고, 김재규는 “10월30일 박정희 대통령과 구당과의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그러나 약속날짜 나흘을 남기고 궁정동에서는 총성이 울렸고, 구당이 애쓴 침구사 부활은 물거품이 됐다고 한다. “그 이후 법(法)보다는 술(術)을 남겨놔야 한다고 생각해 침구사 관련 입법 보다는 침술원을 개원해 후진을 양성하기로 했어요.”라고 구당은 아쉬워한다.
구당은 기존 중국의 뜸술이 361개 온몸의 혈에 뜸을 뜨는 것을 남자는 12곳, 여자는 13곳으로 축약시켜 ‘무극보양뜸’으로 이름을 붙혔다. 구당의 침술은 그의 아버지에게로부터 시작됐다. 한의사였던 아버지에게 한학과 한의학을 배운 구당은 정규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다. 구당은 “11살 때 국민학교(초등학교)에 들어가려고 하니 학교에서 허락을 하지 않아 포기했다”고 말한다. 그때부터 구당은 침과 뜸을 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국의 유명한 한의사를 찾아 다니며 침과 뜸을 배웠다고 한다. 그의 형도 유명한 침사였다. 구당은 침보다는 뜸에 주목했다. 왜냐하면 침은 배워야 하는 의술이지만 뜸은 어린아이도 쉽게 할 수 있는 민간의술이기 때문이다. “뜸을 뜨면 피부에 약한 화상을 입으며 혈액에 이종단백질이 생깁니다. 이 단백질이 체내에 흡수되며 면역력과 치유력을 키웁니다. 뜸 맛을 알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구당이 말하는 뜸맛은 이렇다. “뜸자리에 붙여 놓은 뜸쑥이 타들어가면서 피부에 뜨거운 열감이 생깁니다. 찌르는 것과 같은 예리한 뜨거움과 함께 섬뜩한 냉감도 한순간 듭니다. 뜸이 끝나면 몸 전체가 가벼워진 느낌이 옵니다.” 구당은 뜸을 뜰 때 3년 묵은 쑥을 쓰는 이유는 쑥의 약성분이 뛰어 나서가 아니라 식물 가운데 가장 낮은 섭씨 60도에서 열도를 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살갗에 뜸을 뜨면 흉터는 조금 남아요. 그 흉터는 건강의 증거입니다.” ‘배워서 남주자’를 외치는 구당은 머리 한가운데인 백회(百會)혈에 남아 있는 뜸자리를 보여준다. 평생 뜸 뜬 자리다.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