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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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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된 승가의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사람들이 스님을 편협한 시각으로 보는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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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만다라 4 - 초발심 행자에게 띄우는 네 번째 편지

如來十號 여래십호- 이 시대의 승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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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과 신도들. 출처 : 조계사 홈페이지


지난 4월 23일 몇 분의 스님들이 고등학교 선생님 두 분과 대학교 선생님 한 분을 모시고 그 분들의 말씀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저도 그 자리에 참석하였습니다. 모임을 연 취지는 ‘생각 있는’ 많은 청년들을 출가수행자의 길로 안내하기 위해서입니다. 
출가수행의 길은 무엇보다도 자신과 세상에 빛이요 감로수로서 의미 있고 성스러운 길입니다. 진정한 삶을 고민하고 제3의 길을 찾는 청년들에게 출가수행자의 길을 안내하는 것도 우리들의 몫일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을 만나 어떻게 그들을 안내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논해보았습니다.
먼저 선생님들을 통해서 우리시대의 청년들이 불교와 절, 스님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보았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주어진 문제는, 청소년들이 절과 스님을 ‘무섭다’고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로서는 매우 의아한 일이었지만, 이유는 아주 단순했습니다. 절의 사천왕상과 탱화 등 상징물들이 무섭고, 스님들의 표정은 굳어있어 인자한 모습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음 문제는 청소년들이 불교를 매우 ‘어려운’ 종교로 생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경전은 한자투성이라 어렵고, 색즉시공 공즉시색 운운하는 염불도 알아들을 수 없고, 법문은 딴 세상 이야기인 것 같아 낯설기만 하다고 합니다. 
또 스님은 ‘힘들게 사시는 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즉 불교를 믿거나 스님의 길을 가게 되면 죽도록 고생만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졸음을 참아내야 하는 철야정진과 장군죽비, 발우공양, 삼천배, 새벽 3시 예불……. 이런 일들 때문에 스님생활은 고생이며, 인간이 누려야 할 욕구와 행복을 포기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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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워보이는 사천왕상

그 자리에서 우리 모두는 망연했습니다. 그들의 인식과 지적이 바로 핵심을 찔렀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거울에 비친 불교와 절, 스님의 모습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우리들 삶의 모습이며, 현세적 업보였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런 생각에 공감하면서도 ‘너희들의 생각은 전적으로 오해야’라고 힘주어 항변하고 싶었습니다. 사천왕과 탱화는 무섭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스님들은 무섭지 않아, 부처님 말씀은 사람들의 고통을 소멸하고 행복과 안락을 주는 가르침이야, 스님의 생활은 쓸데없이 고생스러운 것이 아니고, 밝고 맑으며 의미 있고 보람되고 진짜로 행복한 것이야, 출가수행자가 되면 모든 구속과 집착으로부터 자유롭고, 하고 싶은 공부도 마음껏 할 수 있고, 자신의 능력을 펼치면서 사회의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 있어 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나의 항변에 그들은 또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스님, 그런데 왜 저희들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일까요?” 

행자님! 이 시대 사람들이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모습’이 우리들이라면, 그들의 지적을 인정하고 문제를 진단해야 합니다. 거울에 비친 우리들 모습은 본래의 승가상에서 너무도 많이 이탈되어 있습니다. 아주 많이 뒤틀리고 꼬이고 일그러진 자화상을 보는 듯합니다. 우리가 항변하고 변명하기보다 오늘의 승가의 역할이 부족하고 편협함을 정직하게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행자님! 석가모니 붓다와 그 시대의 승가상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승가상이란 무엇입니까? 출가수행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일까요? 
저는 그 답을 먼저 석가모니 붓다에게 찾고자 합니다. 대중이 붓다에게 부여하고 찬탄한 명호와 능력에서 승가상을 찾고, 붓다의 생애와 역할에서 이 시대의 승가상을 정립해보고자 합니다.

행자님도 잘 알고 있는 ‘여래 십호’의 내용과 의미를 살펴보면 붓다의 역할과 대중의 요청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붓다는 늘 진리와 함께 하셨고 번뇌와 욕망을 항복 받고 일체로부터 자유로우셨습니다. 지혜와 자비행의 실천자였습니다. 세간의 삶을 잘 이해하고 중생의 고뇌를 해소하여 대중의 스승으로서 공경을 받으셨습니다. 당대의 왜곡된 세계관을 타파하고 연기와 무아의 진리로 대중의 눈을 열어 주셨고, 팔정도의 실천행으로 번뇌와 고통을 소멸하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사성계급의 차별을 부정하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존귀한 존재라고 주장하셨습니다. 다툼이 있는 곳에는 중재자가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살인마 앙굴리말라를 받아들였고, 똥치는 니이다의 손을 잡아 주셨으며, 외아들을 잃고 비탄에 빠진 키사 고타미의 고뇌를 해소해주었습니다. 

행자님! 이렇게 붓다의 역할을 숙고해보면 붓다는 한 몸을 가진 여러 몸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계정혜 삼학을 구족하고 실천하셨으며, 지혜와 자비를 구족하고 실천하셨으며, 수행과 전법을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출가수행자를 정의할 때 단순하게 하나의 명칭으로 정의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가령 “우리는 수행자이다”, “우리는 도 닦는 사람이다”, “우리는 마음 닦는 사람이다”, “우리는 깨닫기 위해 정진하는 수행자이다”……. 이렇게 승가의 모습과 역할을 한정하고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오늘날 사람들은 스님을 편협한 시각으로밖에 보지 못한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행자님! 우리가 오늘의 지점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보다도 붓다는 승단의 스승을 넘어 세간의 스승으로서 역할을 하고, 세간의 존경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왜 세간의 존경을 받았을까요? 세간 모든 사람에게 눈길을 주고 마음을 열었고 그들의 손을 잡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시대의 승가의 모습과 역할을 결코 절과 승단, 그리고 불교대중의 울타리에 가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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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중에서

몇 해 전 위빠사나 수행자로 널리 이름이 알려진 버마의 고승에게 어느 분이 버마의 군부독재와 그로 인한 국민의 고통에 대해 불교와 수행자의 생각과 역할을 물었습니다. 그 때 버마의 위빠사나 수행지도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수행자는 세간의 일에 관심을 주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매우 혼란했다고 합니다. 행자님도 이 상황을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석가모니 붓다는 세간과 사람들의 문제에 침묵하거나 무관심하지 않았습니다. 문제에 대해 ‘발언’하셨고 ‘답’을 주었으며, ‘대안’을 찾으셨습니다. 
행자님! 승가는 무엇입니까? 붓다의 뜻을 확신하고 따르는 제자들의 무리이지요. 그렇다면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은 승단을 넘어 세간에 이르기까지 지혜와 자비를 ‘구족’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들이 실천해야 할 몫입니다. 

행자님! 또 다른 측면에서 승가상을 생각해보기로 하지요. 출가자가 실천해야 할 수행의 항목이 무엇입니까? 팔정도, 십바라밀, 사무량심, 사섭법 등이 되겠지요. 한 번 나열해 보기로 하지요? 정견.정사유.정어.정업.정명.정정진.정념.정정이 팔정도입니다.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반야.방편.원.역.지가 십바라밀입니다. 자.비.희.사가 사무량심입니다. 보시.애어.이행.동사가 사섭법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실천하는 일이 바로 수행입니다. 세상을 연기와 공성으로 보는 정견의 구족과 실천, 일상의 언행을 진리에 합당하게 가져가는 일, 늘 사색하고 성찰하여 존재의 실상을 통찰하는 일, 자신의 변화와 성숙을 위하여 노력하는 일, 비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일, 모든 사회와 역사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일, 대중의 고뇌와 요청에 대해 응답하겠다는 원력과 능력을 갖추는 일, 연민과 자애를 함께 나누는 일 등이 바로 ‘수행’이고 그런 불교적 실천을 하는 사람이 바로 출가수행자이고 승가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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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에 물을 주고 있는 동자승. 출처:조계사 홈페이지

행자님! 요약하자면 도덕과 윤리의 실천자, 지혜의 구족과 실천자, 사회와 역사에 부응하는 자비의 실천자, 그것이 어느 시대 어느 삶터에서도 구현해야 할 보편적 승가상입니다.
그리고 각각의 시대와 사회의 여건에 따른 승가상이 필요합니다. 기아와 질병과 인권이 유린되는 사회에서는 출가수행자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경쟁과 성장의 틀에서 긴장과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산업자본주의시대에는 어떤 역할이 필요할까요? 입시에 시달리고 자살이 늘어가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위로하고 힘을 주어야 할까요? 정보화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우리 자신을 다지고 지켜내고 성숙시켜야 할까요? 이 모든 당면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이시대가 요구하는 승가상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행자님! 지금 행자님은 어떤 모습을 그리고 있고 어떤 역할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석가모니 붓다의 길을 따르고자 하는 초발심의 원력을 다시 새기고 시주의 은덕을 생각하면 우리의 모습과 역할이 보다 분명해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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