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신학자의 눈으로 본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과 나
김근수 지음
메디치·1만4500원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탈리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공업고를 나왔다. 여자친구와 탱고를 추러 다니곤 했다.
17살 때 특별한 영적 체험을 했다. ‘영혼을 어루만지는 의학’을 공부하러 신학교에 갔다. ‘가난한 이를 위한 교회’를 꿈꿨다. 공산당 발간 잡지를 즐겨 읽었지만, 공산주의자였던 적은 없다. 군부독재 정권이 3만명을 끔찍하게 살해한 ‘더러운 전쟁’ 시기 박해받는 이들을 남몰래 돌봤다. 훗날 “자유와 인권을 해친 자들에게 너무 너그러웠다”며 교회의 공개 참회를 이끌었다.
*프란치스코 교황. AP뉴시스
프란치스코. 전임자의 갑작스런 사퇴로 교황이 됐다. ‘가난한 이의 성자’의 이름을 따 교황명을 정했다. 전용 아닌 공용 엘리베이터를 탄다. 방 한 칸짜리 방문자 숙소에 머문다. 방탄차를 물리치고 보통 차를 탄다. 추기경 때도 버스와 전철을 이용했다. 손수 요리해 끼니를 해결했다. 찾아온 이에게 직접 커피를 끓여 내줬다. 골프나 사교 모임엔 나가지 않았다. 묘비명에 ‘사제 호르헤 베르골리오’라 한 줄 써달라 당부했다.
해방신학자의 눈으로 교황 프란치스코의 생애를 들여다본다. “나이 들수록 더 진보적인 인물로 변화해왔다” 평가한다. “방한을 앞둔 그와 커피 한잔 나누라” 권한다. 그리고 호소한다. “부자 한국 천주교회여, 더 가난해지라.”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