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부족해도 괜찮아, 이것만 있다면
*의도하지 않게 무인도에 표류하게 됐다가 야생생활의 즐거움을 깨달은 남자. 영화 <김씨표류기> 중에서
돈이 있으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시대. 돈을 이길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사람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주어진, 돈을 이길 수 있는 무기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시간이다.
시간이 없는 사람은 돈을 많이 쓴다. 돈을 많이 쓰니 일을 많이 해야 한다. 일을 많이 하니 또 시간이 없어서 돈을 더 쓴다. 이런 순환이 계속 반복된다. 일에 바쁜 맞벌이 부부는 시간이 없어서 외식을 하고, 가사도우미를 쓰고, 사교육을 시키고, 헬스클럽에 등록해 운동을 하고, 자가용을 굴려야 하기 때문에 돈이 많이 든다.
반면 시간이 많으면 돈이 없어도 필요한 것들을 융통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할 수 있다. 시간이 있으니 음식을 재료 사다가 집에서 만들어 먹으면 되고, 운동도 산책하다가 곳곳에 설치돼 있는 공원 운동기구로 운동할 수 있다. 자가용이 없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니 저절로 많이 걷게 된다.
일 하느라 시간이 없으면 옷과 가전제품 등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 세일기간이 아니더라도 그냥 사야할 때가 많다. 이것저것 따져서 고를 시간이 없기 때문에 눈에 띄는 것을 그냥 사기도 한다. 시간이 많으면? 세일할 때까지 기다릴 수도 있고, 이월상품 중에서 잘 골라 좋은 물건을 아주 싼 값에 살 수 있다. 재활용가게나 벼룩시장에 가서 헐값에 나온 중고물품 중 좋은 것을 고를 수도 있다. 이런 과정은 시간에 쫓겨 그냥 고르는 단순구매 행위보다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나 역시 하루 종일 매여 있는 직장생활을 할 때에는 주중에는 일하느라 아무것도 못하고, 주말에야 비싼 수강료내고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곤 했다. 그런데 낮에도 시간이 생기다보니, 세상에 무료이거나 저렴한 강좌와 행사가 무척이나 많은 거다. 시나 구에서 하는 행사와 교육이 적지 않다. 얼마 안 되는 가격에 이런 행사만 찾아다녀도 하루가 무척 바쁘다. 도시농업 강좌, 컴퓨터 강좌 등 필요하지만 돈을 주고 들으려고 해도 찾기 힘든 생활 강좌들도 있다.
돈을 쓰지 않고 시간만으로 얻은 가장 귀중한 것은 건강이다. 회사에 다닐 때는 조금만 아프거나 감기가 막 시작되려고 해도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아 먹었다. 체력이 약했기 때문에 초기에 잡지 않으면 증상이 곧바로 심해져 출근을 할 수 없을 정도가 됐기 때문이다. 심해지기 전 충분히 쉴 여유도 없이 항상 그렇게 약과 주사에 의존했고, 휴식도 부족하고 약에 시달린 몸의 면역력은 점점 나빠졌다. 약에도 보존료와 색소, 향 같은 화학물질이 들어가 있어 몸에 좋지 않은데다가, 자꾸 약을 먹게 되면 몸이 스스로 병을 이길 수 있는 힘 또한 약해지기 때문이다.
시간이 많아진 후에는 감기에 걸려도, 다른 어디가 조금 아파도 약을 먹지 않는다. 충분히 자고 쉬어주고, 잘 먹으면서 몸이 스스로 이겨낼 때까지 기다린다. 최근에도 이렇게 해서 약 한 알 먹지 않고 감기를 이겨내고 있다.
돈이 있으나 시간이 없다는 것은 자신만의 생각을 가다듬거나, 생활을 즐길 여유가 없다는 뜻인 것 같다. 돈은 좀 부족하지만 시간이 많다는 것은, 화려한 생활(대부분 미디어나 광고 등을 통해 과장된 현실임)은 할 수 없지만 자신만의 생활을 만들어갈 여유가 있다는 뜻 아닐까.
그러니 시간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이며 자산인지. 지갑을 열어보기 전에 시계를 보자. 시간이 많다면 또 다른 의미의 부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