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배 지우기, 자유인‧주인공 되기
강신주,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2014.07.02 <불교포커스> 정성운 기자
*강신주
무문관 12칙은 암환주인(巖喚主人). 서암 사언 화상은 매일 자기 자신을 “주인공!”하고 부르고서는 다시 스스로 “예!”하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깨어 있어야 한다! 예! 남에게 속아서는 안 된다! 예! 예!”라고 말했다.
철학자 강신주 씨가 2013년 한 해 동안 법보신문 지면을 통해 무문관 48칙과 맞선 내용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내놨다. 도서출판 동녘.
강씨는 이 화두에 직면해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한 구절을 불러들인다. “나를 버리고 그대들 자신을 찾도록 하라. 그리하여 그대들 모두가 나를 부정하게 된다면, 그때 내가 다시 그대들에게 돌아오리라.“
강씨는 위 구절을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은 일체의 외적인 권위에 기대거나 모방하지 말라는 명령으로 요약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 “사다리를 딛고 올라간 후에는 그 사다리를 던져 버려야” 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유명한 말을 덧붙인다. 이로써 ‘암환주인’이라는 관문을 뚫기 위한 워밍업을 마친 셈이다.
마침내 무문관 12칙 암환주인은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여기서 사랑은 자기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타자에 대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 주인이 되지 않으면 우리는 자신을 사랑할 수 없게 됩니다”라는 풀이로 변주된다.
강씨에게 불교는 자유인, 주인공 되기다. 누군가를 흉내 내면서 살아가지 않기, 노예가 아니라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무문관 48칙을 비롯한 선어록과 선불교는 자유인, 주인공을 위한 전광석화와 같은 것이다. 자칫 불교와 깨달음을 초월적이거나 신비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이 책을 통해 바로잡는다. “깨달은 마음이란 있는 그대로의 사태를 왜곡하지 않고 보는 마음, 다시 말해 희론이나 가치평가에 물들지 않은 근본적인 경험을 직시하는 마음입니다.”
‘암화주인’을 통과하기 위해 니체와 비트겐슈타인의 생각을 끌어들였듯 베르그송, 들뢰즈, 장자, 칸트, 사르트르 등 동서양 철학이 무문관 48칙과 어우러진다.
어느 스님이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라고 묻자, 운문스님은 “마른 똥막대기”라고 말했다.
무문관 21칙 운문시궐(雲門屎橛)인데, 강씨는 이 화두를 숭배 지우기로 설명합니다. “지금 운문스님은 제자의 숭배 대상을 똥통에 던져버린 것입니다. 숭배하는 것이 없을 때에만, 제자는 스스로 주인공이 될 수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이어 강씨는 정치철학자 바쿠닌을 등장시킨다. “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인간적인 이성과 정의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의 자유를 가장 결정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며, 필연적으로 인간들을 명실상부한 노예 상태로 이끈다.” 예나 지금이나 동서를 막론하고 위대한 철학자의 생각은 불교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