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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국방무예의 고수 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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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과 삶] 최용 24반무예협회 부회장

척추는 곧게 눈은 날카롭게…끊임없는 반복 수련


그는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흰색 무명 속옷을 입곤 그 위에 차곡차곡 조선의 전통 무인 복장을 갖추었다. 정성스럽다. 상투 모양의 가발까지 쓴 뒤 자신의 병기를 꺼내 들었다. 늠름한 자태의 월도(月刀)이다. 우리에겐 삼국지 관우의 ‘청룡언월도’로 익숙한 긴 칼이다.
한 손에 묵직하게 잡혀 있던 월도가 곧 춤을 추기 시작한다. 허공을 시원하게 내리꽂다가 잽싸게 후방을 방어한다. 그의 발놀림도 경쾌하다. 두 손으로 월도를 빙빙 돌리다가 몸을 공중으로 솟구쳐 힘차게 전방에 내지른다. 말 위에 탄 적장을 제압하는 자세이다. 길이 3m, 무게 5㎏가량의 월도는 생명력을 가득 품은 채 자신의 존재감을 마음껏 뽐낸다. ‘휙휙’ 소리를 내지르는가 하면, ‘윙윙’하며 상대를 위협하기도 한다.


정조1.jpg

*조선 정조 때 만든 무예도보통지의 각종 무술을 20여년간 수련해온 최용 24반무예협회 부회장이

경기도 화성의 한 승마장에서 전통 무인 복장을 갖추고 검과 월도 시범을 보여주고 있다.


주인과 한몸이 돼 한동안 거친 숨소리를 내던 월도는 곧 차분한 모습으로 돌아간다.
이번엔 검이 월도의 자리를 대신한다. 칼집에서 수줍게 나온 검은 부드럽게 준비운동을 하더니 이내 본색을 드러낸다. 움직이는 적의 공격을 막아내고, 빈틈을 쉼 없이 파고든다. 360도 몸의 빠른 회전이 수십회 계속되는 동안 숱한 적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진다. 검의 화려하고 전방위적인 움직임은 탄탄한 보법이 기본이다. 몸의 이동은 가볍고 부드러우며, 착지는 대지를 발가락으로 움켜쥐며 안정돼야 한다.


그는 지난 20년간의 무예 수련에서 안법(眼法)에도 치중했다. 손을 정확하고 강력하게 쓰는 수법(手法)과 척추는 곧게, 가슴은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유지하며, 허리를 움직임의 중심으로 잡은 신법(身法), 그리고 상대를 민감하고 날카롭게 파악하며 제압하는 안법이 무예의 기본이다.
“옛날 장수들은 치열한 백병전을 하며 아군과 적군을 순간적으로 구별해야 했어요. 그러기 위해 안법을 수련했어요. 복장의 색깔과 미세한 동작의 차이로 적을 찾아내 베야 한 거죠.”


지난 15일, 30도를 웃도는 한여름의 뜨거운 불볕 햇살 아래 자신의 무공을 한동안 선보인 최용(49) 24반무예협회 부회장은 온몸에 땀이눈에 보이도록 솟아났으나 호흡은 지극히 평온했다. 깊고 오랜 내공 수련의 결과이다.
최 부회장은 우연한 기회에 조선 정조시대 때 무사 백동수와 실학자 박제가, 이덕무 등이 편찬한 무예도보통지의 24반 무예를 접했다. 무예도보통지는 임진왜란을 겪은 조선 왕조가 각종 무예(武藝)를 집대성해 그림(圖)과 설명(譜)을 곁들여 놓은 종합서(通志)이다. 고려를 무너뜨리고 역성혁명을 통해 건국한 뒤 한동안 태평성대를 누리던 조선은 조총으로 무장한 왜병의 침략으로 혼쭐이 난 뒤, 강병을 위해 한민족 전래의 무예와 중국·일본의 무술을 합쳐 군인들을 체계적으로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맨손으로 하는 권법과 검(본국검, 제독검, 쌍검, 왜검, 월도, 협도)과 창(기창, 죽장창), 각종 무기(곤봉, 등패) 등 병장기를 쓰는 기술에 말을 타며 하는 마상무예가 포함돼 있다. 구한말인 1907년 일제에 의해 구식군대가 해산되기 전까지 우리 민족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 온 조선의 국방무예인 셈이다. 선조부터 정조까지 약 200여년간 각종 무예를 갈고닦아 종합하는 과정엔 무예에 출중했던 것으로 알려진 사도세자가 18가지 무술을 정리해 ‘십팔기’라고 이름을 붙이고 기록한 ‘무예신보’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정조2.jpg

 

 

우연히 접한 조선의 국방무예
‘빗자루 도사’ 제자로 입문 20년
전통문화 소중함도 함께 깨달아
“건강한 삶은 공동체 속에서 완성”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운동권 출신의 최 부회장은 대학 졸업 후 농민운동에 전념하기 위해 고향인 전남 영광으로 내려갔다. 당시 영광에는 핵발전소 4기가 가동중이었고, 정부는 원전 2기를 추가로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시민 환경운동단체들은 연합해서 핵발전소 추방 운동을 했다. 이들 운동단체는 운동의 구심점을 찾았고, 광주 임동규(75) 선생의 제자가 됐다.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유신정권 말기 통혁당 재건기도 사건으로 무기형을 받고 수감 도중 다시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에 연루돼 무기형을 받아 ‘쌍무기수’로 불렸던 임 선생은 10여년 동안 1.7평 감옥에서 책을 통해 무예도보통지를 복원했다. 칼이나 창 대신 빗자루로 무예를 연마해 ‘빗자루 도사’라고 불린 임 선생은 1988년 12월 민주화운동에 힘입어 비전향으로 가석방된 뒤, 1989년 3월 고향인 광주에서 ‘경당’을 세우고 24반 무예를 전수하기 시작했다. ‘경당’은 고구려시대에 청소년들에게 글과 무예를 가르치던 교육기관이었다.


민주화와 통일운동의 상징이었던 임 선생과 합숙훈련 등을 통해 무예를 배운 최 부회장은 “건강한 삶은 단지 개인의 건강이 아니라 공동체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노력과 이웃과의 조화 속에 완성된다”고 느꼈다고 한다. 출옥한 지 얼마 안 돼 외모에서 문약한 느낌을 주던 임 선생은 어른 남자 팔뚝 굵기의 대나무를 검으로 ‘싹뚝 싹뚝’ 자르는 무공을 보이기도 했다.
“임 선생은 ‘자주’ ‘자강’ ‘진취’를 강조했어요. 역사 속에서 면면히 흘러 내려온 전통적인 문화적 가치의 중요함을 무예를 통해 깨닫게 됐어요”라고 최 부회장은 말한다. 나이 40에 국악에 빠져 타악기를 다시 전공하고,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최 부회장은 현재 무형문화재 17호인 우도농악보존회 회장으로 활약하고 있기도 하다.


최 부회장은 하루 일과를 동네 아이들에게 전통무예를 가르치는 일로 시작한다. 전남 영광군 묘량면 영당리에 한옥 20여채를 지어 조성한 ‘운암행복마을’에서 최 부회장은 청소년 20여명에게 전통 무술을 전수하고 있다. 농악과 민요도 함께 가르치며 예(禮)와 악(樂)이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무예는 반복의 연속입니다. 사물의 변화와 역사의 발전을 몸으로 체득하듯이 무예도 끊임없이 반복 수련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의 일부가 되는 것이죠.” 최 부회장이 다른 여러 병장기 가운데 무거운 월도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도 월도가 그의 성정과 비슷하기 때문이리라. “월도는 묵직하고, 우직하고, 듬직합니다. 세련되거나 빛나지 않지만 진중한 멋이 매력적입니다.”


화성/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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