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라우라 아영이
글의 주인공 청소년들은 살레시오 남녀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마자렐로센터>와 <살레시오 청소년센터>에 현재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법원에서 ‘6호처분’이라는 재판을 받았습니다. '6호 처분’이란 소년법 제32조에 의한 보호처분을 말합니다. 비행성이 다소 심화되어 재비행의 우려가 있는 청소년을 교육을 통해 개선하기 위한 법입니다. 센터에 머무는 법정기간은 6개월이며 퇴소 후 집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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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토니아 화초가 너무 자랐다. 큰 화분으로 옮겨 심고 현관 앞 그늘진 곳에 놓아둔다. 오며가면서 들여다보면 적응하느라 용을 쓰는 게 느껴진다.
센터에 갓 입소한 아이들도 마찬가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면 시간과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약 한 달 동안 ‘씨앗반’에서 적응프로그램을 실시하여 지금까지 밖에서 보낸 ‘니나노 생활’을 청산하고 낯설지만 여기서 새롭게 한 번 시작해 보자는 마음을 갖게 한다. 새로 입소한 아이를 센터에서는 ‘새로미’라 칭한다. 새로미가 ‘씨앗반’에서 적응 중인 같은 시간에 기존 아이들은 정규 수업을 받는다. 다 같이 마주하는 쉬는 시간이면 기존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떠들고 재잘거리면서 눈으로는 새로미를 살핀다. 이때 새로미는 무척이나 쑥스럽고, 외로우며 만감이 교차한다. ‘나도 쟤네들처럼 여기서 잘 살 수 있을까? 저 무리에 나도 빨리 끼고 싶다’는 바람이 조금씩 올라오면 적응 성공이다.
아영이는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던 중 경찰에게 붙잡혔다.
‘올 것이 왔구나. 그래, 내가 잘못 한 거니까. 언젠가는 잡힐 줄 알았어.'
아영이는 멍한 상태로 서대문구 은평경찰서 유치장에 갇혔다. 시멘트벽과 바닥에서 올라오는 습한 냉기로 몹시 추었다. 세끼 반찬 통엔 단무지. 밥, 국이 나왔다. 엄마는 딸이 붙잡혀 경찰서에 일주일 있는 동안 한 번도 안 찾아왔다.
*영화 <써니> 중에서.
아영이의 범죄의 시작은 가끔씩 함께 노는 친구들이 하는 걸 보고 자기도 해보고 싶은 호기심에 충동이 발동한 것이다. 어느 날 아영이는 친구와 계획을 짰다. 하얀 피부에 단정한 교복차림. 얌전히 학교 잘 다니고 특히 어른에게 공손한 아영이를 누가 한 치의 의심을 하겠는가.
“높은 구두를 신고 있는 여자에게 가서 휴대폰 좀 잠깐 빌려달라고 해서 주면 바로 뛰는 거야.”
그 다음 인터넷으로 거래 시작.
“휴대폰 사실 분.”
하고 올리면
“네, 연락주세요. 언제든지 갑니다.”
바로 답변이 오고, 아영이는 만날 장소를 알려준다.
“여기, 증산역이에요. 몇 번 출구로 와 주세요. 휴대폰은 갤럭시 노트에요.”
남자는 금방 온다. 그 사람은 우리가 가지고 온 휴대폰에 흠이 났는지 안 났는지 꼼꼼히 확인하여 A부터 C까지 등급을 매기고 등급에 맞는 돈을 주고 사 간다. 아영이는 10일 동안 일곱 번, 같은 수법으로 휴대폰을 갈취하여 똑같은 그 남자에게 팔았다. 아영이는 검은 돈으로 갖고 싶은 것도 사고, 먹고 싶은 것도 자유롭게 사먹었다.
‘씨앗반’에 들어온 아영이도 <안녕, 마인>책을 필독했다. 아르헨티나 청소년 ‘라우라’가 열악한 환경과 온갖 유혹 속에서도 끝까지 자신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부도덕한 생활을 하는 엄마를 위해 목숨을 바친 실화를 편지 형태로 엮은 책이다.
“안녕! 친구야? 만나서 반가워. 난 말이야. 너의 큰 선배야. 왜냐고? 나도 너처럼 아주 예전에 살레시오 수녀님들과 함께 생활했거든. 그러니까 너와 나는 ‘선후배’ 관계야…….”
이렇게 시작되는 라우라 언니 책을 읽다보면 아이들은 금방 언니와 마음이 통한다. 비록 나라가 다른 언니지만 자신들처럼 어려운 가정 형편, 새아빠의 폭력 등 같은 점이 참 많기 때문이다. 책 마지막 부분에서 소녀 라우라는 이렇게 당부한다.
“사랑하는 친구야! 산다는 것은 말이야. 누구에게나 슬픔도 기쁨도, 그리고 어려움도 즐거움도 모두 공평하게 다 겪게 되어 있어. 난, 나의 후배인 네가 이곳 센터에서 정말 잘 적응하고 새롭게 변화되길 바랄게. 그리고 어려움이 있으면 날 기억해. 나도 너에게 힘이 되어 줄게. 난 너와 늘 함께 하고 싶어. 너의 슬픔과 기쁨, 너의 소원도 다 알고 싶어. 그러니까 나에게 편지도 보내고, 기도도 부탁해봐. 그럼 내가 직통으로 예수님께 꼭 전해 줄게. 날마다 기쁘게 바르게 살자. 응, 안녕…….”
-천국에서 널 사랑하는 선배 라우라가-
센터에서는 이 책의 주인공 ‘라우라’ 소녀를 청소년의 모델로 제시하고 매월 한 명의 라우라를 선정하여 <라우라 상>을 수여한다.
아영이는 학교에서 그랬던 것처럼 센터에서도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봉사활동으로 풀었다. 봉사를 하면 선생님이 자기를 칭찬해 주니까 기분이 좋고 격려가 되어 스트레스가 사라졌다. 그러나 센터 친구들은 아영이가 선생님에게는 90도 각도로 인사를 하며 “봉사할 것 있어요?”라고 하면서 자기들한테는 틱틱 거리고 비꼬는 식으로, “뭐해? 야, 뭐하는 거야?”라고 하는 모습을 가식이라고 욕했다. 그래서 아영이의 봉사는 센터 아이들 도마 위에 오르는 비판의 월척이었다.
그래서 아영이는 라우라 상을 받기로 결심했다. 자신이 라우라가 되면 아이들의 노골적인 비난도 없어질 것이고 또 자신의 봉사를 가식이라고 보지 않을 것 같았다.
라우라가 되려면 좀 특이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먼저 본인 자신이 상을 받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새로운 달이 되면 스스로 <라우라 추천서>를 들고 센터 친구들 열 명과 다섯 명의 스탭들의 사인을 받는다. 이 과정이 몹시 쑥스럽기는 하나 막상 시작하고 나면 포기하고 싶지 않다. 사인 받은 추천서를 팀장 수녀님께 제출하면 교사회의를 거쳐 그달의 <라우라>를 선정하는데 최종 발표는 매달 22일에 있다.
라우라로 뽑히면 상도 받고 약간의 혜택도 누릴 수 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포상으로 떨어지는 혜택 좀 누려보자는 게 더 크게 작용한다. 아영이는 좀 예외의 경우라 할 수 있다. 동기야 어찌되든 센터의 스탭들은 그들 안에 숨겨져 있는 선한 마음을 믿기에 평소에 은근슬쩍 아이들에게 미끼를 던진다.
“얘, 지원아, 라우라 한 번 도전해봐.”
“제가요?”
“그럼, 열심히 하면 될 수 있어.”
“정희야, 넌 그 욱하는 성질만 고치면 라우라 상, 충분히 받을 수 있는데…….”
“그러게요∼∼.”
“수민아, 너도 생각 있지?”
“히히, 알았어요.”
아이들 과거의 행실을 보면 싸가지 없이 살아온 고수들이다. 하지만 사탕 하나에 기뻐하고, 아이스크림 하나에 감동하는 소녀의 그 순수한 정서와 선한 마음은 결코 사라진 것이 아니다. 아픔과 분노와 나쁜 습관에 잠시 묻혀 있을 뿐이다.
아영이의 첫 번째 라우라 도전은 뽑히지 않았다. 엄청 실망했다. 두 번째 도전 발표 결과, 이번 달에는 라우라 할만한 사람이 없다고 발표했다. 실망과 함께 충격. 아영이는 자신을 뽑아주지 않는 수녀님, 선생님들 욕을 하고 평상시 했던 봉사도 하지 않았다. 세 번, 네 번 추천서를 냈으나 또 또 실패 실패. ‘아, 나라는 사람은 될 수 없는가?’
다섯 번째 도전 할 때는 잠도 잘 못 잤다. 현정이의 말이 떠올랐다.
“아영아, 너 또 추천서 냈다며? 그런데 이번에도 경쟁이 장난이 아닌가봐.”
아영이는 속으로 ‘이번에도 안 되면 어떡하지?’라며 깊이 고민하며 라우라 언니에게 엄청 기도하며 빌었다.
‘언니, 나처럼 스트레스 받으면 봉사하는 거 말고요. 자기 마음에서 우러나와 봉사하는 라우라로 뽑히게 해 주세요.’
라우라 상이 발표되는 22일 아침 모임시간. 아영이는 자신의 이름이 불릴 때 너무 놀라 그만 빽,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상 장 송아영 위 사람은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성장하려고 노력하는 생활태도가 다른 친구들의 귀감이 되기에 이달의 라우라로 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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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이는 상장과 포상 그리고 매일매일 착한 일 두 가지 이상을 기록하는 <라우라 선행 노트>를 그 전달 라우라인 미선이로부터 인계 받았다. 라우라로 뽑히면 날마다 자신의 선행을 이 노트에 기록하는데 정말 놀라운 것은 하루에 두 가지가 아니라 열 가지도 넘게 선행을 실천한 라우라가 대부분이다. 아영이는 지난 달 라우라였던 미선이의 기록을 읽어본다.
1. 사탕 껍질을 주워 쓰레기통에 버렸다.
2. 세탁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옷걸이들을 걸어 두었다.
3. 나와 어색한 친구에게 조금 더 가까워지자는 편지를 썼다.
4. 신경혜 선생님을 도와, 1층에 있는 화분에 물을 주었다.
5. 지현 언니와 작은 다툼이 있었는데 내가 먼저 가서 사과를 했다.
6.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해 주고 고민을 들어주었다(슬비언니).
7. 떨어져 있는 볼펜 주인을 찾아 주었다.
8. 조그만 것에도 감사하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9. 샤워실 신발이 나와 있어서 집어넣었다.
10. 식당 쓰레기통이 넘실대서 손으로 꾹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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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라우라가 된 아영이도 이번 한 달 동안 자신의 선행을 이 <라우라 노트>에 새겨 넣을 것이다.
선한 마음의 너에게
안녕! 친구야.
내가 마자렐로 센터 <라우라>로 뽑힌 후, 어떤 변화가 나에게 있었는지 너에게 말할게. 어제 있었던 일이야. 태이가 엄청 고민에 빠져 있었어. 태이는 나 다음으로 라우라로 뽑힌 친구야.
내가 “태이야, 왜 그래?”하고 물으니까 갑자기 울려고 하면서 말했어. “글쎄 수정이가 복도를 지나가면서 일부러 쓰레기를 버리더니 야, 너 라우라면서 왜 쓰레기 안 주워?”라고 했다는 거야. 또 청소 할 때 자기들이 하기 싫으면 “너는 라우라면서 왜 이런 걸 안 해?”라고 한다는 거야.
나는 태이에게 말해줬어. 걔네들, 네가 부러워서 그러는 거야. 라우라는 엄청 좋은 거고. 라우라는 숨은 선행을 하면서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거니까 그런 거에 신경 쓰지 말라고. 니가 엄청 잘 하니까 그러는 거라고 감싸줬어.
친구야!
솔직히 나도 라우라 할 때는 가끔씩 하기 싫을 때도 있었고, 내가 왜 추천 용지를 냈는지 후회도 했어. 그런데 막상 딱 끝나니까 엄청 허무했어. 매일 저녁 자율학습 때마다 숨은 선행을 노트에 썼는데 지금은 라우라 노트가 태이한테 있잖아? 되게 슬펐어. 나는 진짜 하루도 안 밀리고 썼어. 또 한 달 마치고 나니까 나를 아이들이 좋게 보는 거야. 진짜 라우라 하길 잘 했어. 예전엔 아이들이 퇴소 편지를 쓰고 갈 때, ‘너는 입이 싸고, 말 전달이 심해서 너 앞에서는 얘기도 않고 피했다’는 둥, 안 좋은 말이 많았는데, 요즘 퇴소 편지를 읽으면 ‘아이들한테 들었던 네가 아니야. 아영이 넌 진짜 착한 것 같아’라면서 긍정적인 말을 써 주고 가.
난 라우라 마지막 날에 내가 쓴 선행노트를 처음부터 다 읽어보면서 나도 놀랐어. 왜냐하면 아이들한테 하는 봉사보다 선생님께 하는 봉사가 더 많이 적혀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내가 즐기면서 좋은 마음으로 하니까 친구들을 도와주는 게 훨씬 많았어. 그래서 내가 얼마나 변화되었는지를 알았어. 그리고 라우라 하기 전에는 친구들이랑 별로 안 친하고 같이 어울리는 친구가 없었는데, 라우라가 끝난 후에 내 곁에는 친구도 많아지고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은 친구도 있는 거야.
친구야!
라우라가 된 처음에는 솔직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선행이 무엇인지 잘 몰랐어. 첫날 한 첫째 선행은 이거야. 성탄을 준비하는 안젤라 수녀님을 도와 아멘방(기도방)에 장식할 나뭇가지를 물감으로 칠했어. 무지무지 뿌듯하고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시선을 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정말 좋았어. 그렇게 하루하루 지날수록 착한 일 할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 난 마자렐로 센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선행을 찾아 했어. 새로미 친구들에게 규칙도 알려주고, 돌아오는 크리스마스 축제 준비도 알려주며 뜻 깊게 지냈어. 드디어 크리스마스 이브. 하늘도 날 축복해주는지 눈이 펑펑 내렸어.
친구야!
성탄날 내가 한 선행 중 한 가지는 아직도 기억 속에서 기쁨을 주고 있어. 그날 민정이가 센터에 새로 들어왔어. 이곳이 처음인 민정이는 고양이에게 쫓겨 다니듯 도망을, 아니 다른 아이들을 피하고 싶어 자기 옷으로 자꾸만 입을 가리고 얼굴을 가렸어. 민정이의 그 모습은 마치 나의 첫 입소 때 모습과 비슷했어. 난 민정이를 챙기며 정말 슬펐어. 하지만 한 달이 지난 민정이는 지금 아주 당당하고 다른 아이들과 무지 잘 어울리는 아이가 되었어. 그렇게 변한 민정이를 바라보는 나는 꼭 엄마가 성장하는 딸을 보고 뿌듯해 하는 그런 마음이야. 지금도 민정이를 보면 너무 기뻐.
나의 숨은 선행은 참 많아. 새로미의 옷에 이름도 써 주고, 혼자 공기놀이를 하는 민지 언니와 함께 공기도 해주고, 예슬이가 울어서 달래줬어. 무거운 짐을 들어 옮기는 선생님도 도와드리고 청소를 할 때 행동 느린 아이들도 도와주고 여러 가지 선행을 하며 지냈어. 그러던 또 어느 날.
친구야!
정말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일이 생겼어. 3층 하늘빛 방 변기가 막혔는데 내가 뚫었던 사건이야. 아이들은 신기해했고 그 다음부터 변기가 막히면 선생님이 아니라 나를 불러주었어. 이렇게 변기를 뚫다보니 아이들이 나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난 ‘변신’이라는 별명까지 생겼어. ‘변기 뚫는 신’ 이라는 뜻이야.
사랑하는 나의 친구야!
이 일이 있고 나서 나는 선생님들을 도와주는 일보다 친구들을 도와주고 고민을 들어주는 일들이 더욱 행복한 일이 되었어. 내가 먼저 다가가니 아이들이 나를 찾아와주고 좋아해 주었어. 항상 혼자 다니던 나에게, 아이들이 먼저 다가와 줄수록 나의 숨은 선행들이 정말 고맙고 행복했어.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아진 나는 고민들을 더욱더 많이 들어주었어. 날 믿어주는 친구들이 정말 고마웠어.
그리고 난, 내가 마음 먹기에 따라 착하게 살면 착하게 친구들이 다가오고, 나쁘게 살면 나쁜 친구들이 날 찾는다는 걸 알았어.
선한 마음 친구야!
선행은 때론 무지 힘도 들고 짜증도 나고 귀찮았지만 지금 내 뒤를 이어 라우라로 활동하는 태이를 보면 정말 대견해. 내가 했을 때보다 더 잘 하는 것 같아 질투가 나기도 해. 하지만 내가 라우라 활동을 할 당시의 내가 자랑스럽고 제일 뿌듯해.
“한 번 라우라는 영원한 라우라. 나는 누가 뭐래도 지금까지 마자렐로 센터 라우라 중 제일 선행을 잘한 진정한 라우라다”라고 나에게 당당하게 말해 주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