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서울 태평로 삼성주식회사(삼성그룹) 사옥에 한 스님이 찾아왔다. 이병철 회장을 만나겠다며 막무가내로 버텼다. 퇴근 시간이 다된 이 회장이 할 수 없이 문을 열어줬다.
"스님이 무슨 일로 저를 보자고 하십니까?"
"우리나라에서 돈이 제일 많은 회장님께 돈 버는 비결을 배우고 싶어서 왔소. 내가 그 비결을 좀 배워서 모든 중생을 잘살게 하려고 합니다."
"하하하하.... 그래요?"
평소 잘 웃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이 회장이 기분 좋게 웃었다.
이 회장은 스님에게 저녁 식사까지 대접했다.
나중에 스님이 말했다.
"이 회장 돈 버는 비결은 도둑놈을 사람 만들어 쓰는 재주더군."
평소 남다른 기행과 거침없는 언행, 혹독한 수행으로 살았던 성수 스님 이야기다. 스님은 "이병철 회장을 만나서 도둑놈 사람 만드는 재주나 중생을 구제하는 불교의 진리나 다를 게 하나도 없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
"내가 오도독 오도독 재미나는 인생을 갈쳐주까? 매일 아침 첫 마디는 남을 상처 주는 '송곳 말'하지 말고 좋은 말로 시작해야 하는 거요. 몸을 움직일 때는 태산처럼 무겁게 걸어야 해. 또 하루 중에 단 5분이라도 부처님 흉내를 내서 앉아 있었봐. 그래서 있는 복이라도 잘 관리하고 잘 쓰면 사는 재미가 나는 거지."
사람들의 말이 험하고 자세가 바르지 못하니 개인의 몸과 마음이 아프고, 사회가 병들고, 정치가 어지럽다고 했다.
성수 스님은 항상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독창적인 법문을 했다. 불교의 불살생(不殺生) 계율에 대해서도 독특하게 풀이했다.
"생명을 죽이지 마라는 뜻이 다가 아녀. 죽지 마라, 즉 생사의 윤회에서 빠져나오라는 풀이가 부처님의 말씀에 더 가깝다고. 사람들이 파리 한 마리 죽이는 것은 마음 아파 하지만 매일 제 목숨 죽는 것을 모르잖아. 제 목숨을 죽이지 마라, 그게 불살생이란 말여. 옛말에 대인(大人)은 자기 걱정에 여념이 없고 소인은 남의 일만 걱정한다 했어."
스님은 이것만은 잊어서는 안 된다며 "헛말 하지 말고, 헛일 하지 말고, 헛걸음 하지 마라. 남 탓 하지 말고, 나를 탓해라"고 여러 차례 당부했다.
스님은 '이 뭣꼬', '똥막대기'같은 전통적인 화두를 내려주지 않았다. 세상 모든 것이 화두고 선이다. 각자 자기에게 가장 절실한 것, 그리고 죽고 사는 근본적인 문제가 화두라고 했다.
"마음에 부딪치는 모든 것, 나를 괴롭히는 일들을 모두 고마운 문수보살로 만들어야 하지. 자연은 때를 아는데 인간은 그러지를 못해. 자연을 봐. 날 때 나고, 클 때 크고, 꽃필 때 꽃피고, 열매 맺을 때 열매 맺고, 마침내 익어서 결실을 보잖아. 우리 인간은 예순 살이 돼도 익을 줄 모르기 때문에 늙어 썩어지고 버림받는 거라고."
평생 '괴각승(괴짜스님)'을 자처하며 한바탕 당당하고 멋지게 살았던 '황석산 대쪽'성수 스님은 2012년 4월15일 양산 통도사 관음암에서 열반의 길로 갔다. 세수 아흔 살, 출가 69년째였다.
<마음살림 - 큰스님 27인이 전하는 마음을 살리는 지혜> (김석종 지음, 위즈덤경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