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선 평화학교에서 논어를 이야기하다
*비무장지대 인근에 수학여행 온 학생들. 한겨레 자료사진
작년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뵌 적이 없었지만, 아들을 통해 말씀을 들은 정지석 목사님으로부터였다.
올해 국경선 평화학교라는 대안 대학을 비무장지대(DMZ) 안에 개설할 예정인데, 논어 강독을 4일 정도 해주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었다.
사실 이렇게 며칠 계속해서 집중적으로 해 본 경험이 없어서, 자칫 지루해지거나 재미없어지면 어떨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대학의 구성에 대한 관심, 특히 DMZ 안에서 평화학교를 운영하시려는 그 뜻에 동감해서 그렇게 해보겠다고 말씀드렸다.
한 참 후의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느덧 시간이 되어 지난 5월 7일부터 10일까지 4일 동안 철원에 다녀왔다.
처음에 걱정했던 것과 달리 정말 재미있게 지내고 왔다. 정지석 목사님 부부의 따뜻한 환대와 이현아 간사, 한가선 간사 그리고 82세의 낸시 여사, 학생들(모두 여덟분이셨는데, 20대에서 50대에 이르는)과 저녁 시간에만 동참한 철원지역의 주민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철원도 처음이었지만, 민통선을 드나들면서, 또 소이산 정상에서 철원평야와 그 너머의 북녘 땅을 바라보면서 평화를 생각하고 같이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겐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특히 민통선 경계를 지나칠 때마다 보게 된 우리 병사들의 그 아름답고 순수한 모습들, 그 귀엽고 앳된 표정들을 보면서 어떻게 이런 청년들을 참혹한 전쟁으로 이끌 수 있을까, 그것은 가장 상상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너무 강하게 느껴져 왔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 청년들의 해맑은 모습들이 눈에 선하다.
*비무장지대 철책선의 경비를 서는 군인들. 한겨레 자료사진
논어 강독을 하면서 보다 새롭게 다가오는 구절들이 있었다.
절문이근사(切問而近思; 본질을 묻되, 구체적으로 탐구한다)라는 구절이 보다 선명하게 다가왔고, 전에 책을 쓸 당시, 따지고 보면 처음에 논어 강독을 할 때 들었던 지천명(知天命)에 대한 생각이 다르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지천명을 ‘진리를 깨달았다’는 뜻일 것이라고 읽혀졌는데(졸저 논어-사람을 사랑하는 기술에 그렇게 썼다), ‘무지(無知)’를 선언하면서 끝까지 탐구(好學)를 놓치지 않는 공자, 용지즉행 사지즉장(用之則行 舍之則藏; 쓰이면 행하고, 쓰이지 않으면 안으로 간직한다)을 이야기한 공자의 적극적 수동성을 생각할 때, 지천명(知天命)은 ‘자신의 소명 또는 자신의 분수’를 깨달았다라고 보는 편이 옳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특히 최근에 읽은 ‘소명은 당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의 진정한 기쁨과 세상의 깊은 허기가 만나는 지점’이라는 프레더릭 뷰크너의 이야기와 오버랩되면서 더 그런 쪽으로 생각이 된다.
공자야 말로 진정한 기쁨을 도(道)를 발견하고 그것을 실천하는데서 찾았던 분이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읽어가면서 새롭게 보여오는 세계가 열린다는 것이 고전을 함께 읽는 즐거움인 것 같다.
적어도 오랜 기간 공자나 논어의 영향을 받아온 아시아인들끼리라도 함께 논어를 통해 공자가 말하는 ‘인(仁)’이 생명과 평화를 신장시키는 길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그 시대를 초월한 지혜가 우리 시대-이 혼란스러워보이는 문명전환기에 한 줄기 빛으로 작용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