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수행·통역 정제천 신부
교황과 세월호 유가족 이어준 끈
*정제천 신부(오른쪽)가 지난 15일 충남 당진 솔뫼성지 내 김대건 신부 생가 터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을 수행하고 있다. 정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기간 내내 통역을 맡았다. 당진/사진공동취재단
판검사 꿈꾸던 법학도 출신
대한문 쌍용차 미사 종종 봉헌
‘빈민 대부’ 정일우 신부와 활동도
정제천(57)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4박5일 동안 그림자처럼 수행하고 통역했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같은 예수회 소속인데다 교황의 고향인 아르헨티나의 모국어인 스페인어에 능통하다는 점 때문에 교황이 한국 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늘 함께했다.
그는 교황이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을 챙기는 데 숨은 공로자다. 지난 16일 광화문 시복식 때는 세월호 특별법 통과를 위해 한달 넘게 단식중인 세월호 참사 유가족 김영오씨가 한국 경호원들에게 가리자 김씨 쪽으로 교황을 안내한 이도 그였다. 그는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 미사 전에 세월호 유가족과 단원고 학생을 만날 때도, 17일 오전 세월호 유가족 이호진씨의 세례 때도 통역을 했다. 교황은 18일 서울공항에서 로마로 떠나면서도 그와 가장 깊은 포옹을 나눴다.
정 신부는 원래 판검사를 꿈꾸던 법학도였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그가 사제의 길을 걷기로 한 데는 고난의 삶과 무관치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고교와 대학 동창이었던 한 친구는 “사업이 파산해 어려움 속에 살던 부친이 경찰서에 잡혀갔을 때 ‘아버지를 풀려나게 해주면 하느님의 뜻을 따르겠다’고 기도했고, 이어 다니던 성당의 신부가 시국사건에 연루돼 연행됐을 때도 같은 기도를 했는데 두 분 다 풀려나자 사제가 되기로 결심한 것 같다”고 회고했다. 대학 때 서울 대방동의 이바돔이란 야학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기도 했다. 군부독재 등 암울한 시대 상황도 그가 출셋길을 포기하고 성직자의 길을 택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정 신부는 1990년 2월 예수회에 입회했다. 이어 스페인 코미야스 교황청대에서 1994년부터 2000년까지 유학해 석·박사 학위를 받고, 그사이 1996년 7월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사제가 되어서도 가난한 이들을 잊지 않았다. 한때는 지난 6월 선종한 빈민의 대부인 정일우 신부와 함께 서울 공덕동 빈민가에 기거하며 빈민들과 어울려 살았다. 또 지난해 대한문에서 쌍용차 해고노동자를 위해 사제들이 225일간 미사를 봉헌할 때도 종종 함께했다.
교황은 예정에 없이 그가 사는 집, 즉 예수회 사제관도 방문했다. 그때 제주 강정마을에서 제주해군기지 반대운동을 펼치다가 막 올라온 김성환·이영찬 신부와 박동현 수사를 소개하자, 교황은 “최고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격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신부는 지난 6월 초 예수회 차기 한국관구장으로 임명돼 9월부터 예수회 한국관구를 이끌어간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