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의 서명은 왜 깨알 같았을까
강우일 주교가 밝힌 ‘교황의 4박5일’
큰 인물로 드러나길 원치 않는듯
친필서명 받으려 큰 종이 드렸더니
깨알글씨로 ‘프란치스코’…웃었다
무릎 안 좋은데 계단 내려와 인사
교황 문장 의자 한번도 앉지 않아
*강우일 주교
교황방한준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프란치스코 교황의 4박5일 방한 일정을 총괄한 강우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제주교구장)은 교황이 출국한 뒤 18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번에 교종(교황)이 주신 말씀을 잘 들여다보면 우리나라에 대해 비판할 것은 하셨다”며 “직접적으로 비판하지는 않았지만 행간에 들어가 있는, 교종이 우리나라 현실을 직시하고 지적하고자 하는 말씀이 무엇인지를 국가를 운영하는 분들이 깨닫고 국가와 사회의 화합을 창출할 수 있는 좋은 가르침으로 받아들이면 좋겠다”고 밝혔다.
강 주교는 “경제지표로 보면 역사상 가장 발전한 우리나라이지만 정의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가슴앓이하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나는 우리 현실을 꿰뚫어보셨다”고 했다.
또 그는 “우리 국민들도 세계의 지도자인 교종이 스스럼없이 정을 나누어주고 가장 낮은 사람에게 가장 기쁘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지도자상이 그런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 국민에게 남긴 메시지에 대해 “우리 모두를 향해서 평화의 일꾼이 되라고 촉구하시는 방문이었다. 정의가 넘쳐흐르도록, 정의를 만들어감으로써 평화의 기본 바탕을 만들라는 광범위한 소명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라고 했다.
방한 일정을 소화하면서 교황은 늘 수행하는 주교단을 “웃겨주셨다”며 방한 첫날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를 찾아 주교단을 면담한 자리에서 있었던 일화를 소개했다. 방문 기념으로 교황의 친필 서명을 받기 위해 큰 종이를 드렸으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큰 종이가 무색하게도 아주 작은 글씨로 ‘Francisco’(프란치스코)를 썼다는 것이다. 강 주교는 “돋보기를 써야 보일 정도였다. 그게 너무 재미있어서 우리 주교들이 다 웃었다”고 했다. 이어 “보통 큰 글자로 썼을 텐데, 일부러 작게 쓰셨을 것이다. 당신이 큰 인물로 드러나길 원치 않으시고, 나도 별볼일 없는 존재라는 것을 겸손하게, 간접적으로 암시하신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일정을 소화하는 동안 자신을 낮추는 겸손하고 겸허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고 했다. 강 주교는 “가시는 데마다 주최 측에서 교황의 문장을 새긴 큰 의자를 준비했지만 그 의자에는 한번도 앉지 않았다. 별도로 준비한 큰 마이크를 쓰지 않고 해설자가 쓰는 마이크를 같이 썼다”고 했다. 그는 또 “무릎이 좋지 않으셨다. 그런데도 아시아청년대회 폐막 미사 때 내가 감사 인사를 드리자 일부러 서너 계단을 내려와 안아주셨다. 작은 몸짓이나 사인에서 이분이 정말로 자신을 낮추고자 하신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검소함을 보여주는 십자가 목걸이에 대해 방한위 집행위원장 조규만 주교는 “제가 하고 있는 게 교황님과 똑같은 것이다. 아르헨티나에서 주교 하실 때부터 매셨던 것으로 가격은 20유로(2만7000원) 정도”라고 했다.
1984년과 1989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방한과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까지 모두 세 차례 있었던 교황의 방한에 관여했던 강 주교는 두 교황의 차이점에 대해 “요한 바오로 2세 교종은 대학 때 연극을 하셔서 그런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땅에 입맞춤을 하시는 등 극적인 장면이 많았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당신 속에 있는 사랑과 연민을 송두리째 내어주시고, 힘들어하는 사람을 끌어안으시는 속정 깊은 모습을 많이 느꼈다”고 했다.
방한 기간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만나 위로한 사람들로부터 받은 선물에 대해 조 주교는 “위안부 할머니께서 그린 그림과 필사하신 성경 등 일단 교황님께 주기를 원했던 모든 선물은 교황청대사관에 전달됐다. 세월호 가족이 보낸 십자가와 함께 이 선물들은 오늘 비행기로 갔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글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사진 김성광 기자 fly2g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