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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효과'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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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창] ‘교황효과’를 기대한다


교황환호.jpg


지난 주일미사에는 신자들이 갑자기 눈에 띄게 많아졌다. 고해소 앞에 늘어선 줄도 평소보다 길었다. 틀림없는 교황효과다. 교황이 가톨릭 신자들에게 주일미사에 빠지지 말고 꼭 참례하라고 당부하는 말을 나는 들어보지 못했다. 100시간이 채 안 되는 체류 기간 중에 교황은 어떻게 그동안 교회를 멀리하고 미사에 소홀했던 많은 신자들을 성당에 나오게 했을까?


교황효과는 교회 안팎의 예상을 초월했다.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타 종교 신자들이나 신앙을 갖지 않은 이들까지 연일 그의 행보를 따르며 일거수일투족에 감탄하고 환호했다. 성문 밖까지 마중 나와 열렬히 예수를 환영하던 군중들.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를 연상케 했다. 그가 이 땅에 머무는 4박5일 동안 우리는 눈물 흘리며 행복했다. 도대체 교황의 무엇이 온 국민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는가? 나는 이번에 힘없고 말 못하는 우리 민중들이 얼마나 지쳐 있고 얼마나 간절히 메시아를 고대하는지 열광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잘라 말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다. 그도 우리도 그것을 모르지 않는다. 낱낱이 공개된 그의 언행은 결코 ‘새로운 가르침’(마르 1,27)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디선가 한 번쯤은 보고 들은 듯한, 누구나 할 수 있고 마땅히 해야 하는 것들뿐이었다. 떠날 때까지 직접 손에 들고 다닌 낡은 가방과 가슴에 단 노란 리본이 그랬고, 광화문의 환영 인파 속에서 차단벽에 막혀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하는 유민이 아빠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그랬다. 그의 말과 행동에 새롭고 특별한 것은 없었다. 다만 그는 아무도 하지 않는 것을 평범한 일상처럼 자연스럽게 했을 뿐이고 거기서 우리는 여태껏 우리의 대통령이나 추기경에게서 보지 못하던 새삼스런(?) 모습을 본 것이다. 그가 누군가? 일개 국가의 원수를 넘어 전세계 12억 가톨릭 신자들의 수장인 교황이다. 곁에서 느끼는 감동은 수십배, 수백배로 커지게 마련이다.


그래서다. 지위가 높고 책임이 큰 사람들이 나서야 한다. 대통령이 나서라. 추기경이 거리에 나와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을 재현하라. 각 교구의 주교들이 교황의 언행을 익혀 흉내라도 내라. 주교가 달라지지 않으면 사제는 스스로 바뀌지 않고 사제들이 대오각성하지 않으면 단언컨대 교황이 누누이 강조한 교회의 쇄신이나 개혁은 없다! 나는 교회가 앞장서 회개하고 복음화되지(마르 1,15) 않으면 하느님 나라는 어림도 없다고 생각한다. 윗물이 맑은 것을 우리는 이미 눈과 귀로 확인했다. 만사를 제쳐 두고 먼저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를 살려라. 생명평화운동이다.


“교황님이 직접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로했지만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습니다. 여야가 재합의한 특검안은 결국 거부되었습니다. 애초에 시복미사를 이유로 고통에 빠진 사람들을 외면하고 강제로 내쫓을 수 없다는 절박감에 단식을 이어왔습니다. 시복미사까지 16일을 함께했습니다. 유가족들과 그들을 돕는 이들이 지금 머리를 맞대고 있습니다. 사제단 역시 유가족의 마음을 헤아리며 뜻을 모으고 있습니다. 광화문 농성장의 고통받는 이웃을 찾아주시고 지지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복음의 기쁨이 선포되었다면 이를 몸으로 이웃에게 나르는 사도들이 태어날 차례입니다.”


정의구현사제단의 문자를 받고 광화문에 나갔다. 김영오씨의 천막이 닫혀 있다. 탈진해서 병원에 실려 갔단다. 아, 장기전이구나. 숨고르기를 해야겠다.


호인수 인천 부개동성당 주임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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