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향해 다시 점프
글의 주인공 청소년들은 살레시오 남녀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마자렐로센터>와 <살레시오 청소년센터>에 현재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법원에서 ‘6호처분’이라는 재판을 받았습니다. '6호 처분’이란 소년법 제32조에 의한 보호처분을 말합니다. 비행성이 다소 심화되어 재비행의 우려가 있는 청소년을 교육을 통해 개선하기 위한 법입니다. 센터에 머무는 법정기간은 6개월이며 퇴소 후 집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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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요즘 덥다고 야단이다. 하지만 난 추운 겨울을 생각하면 여름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이 시간이면 명동오거리, 그러니까 명동성당으로 올라가는 그 길에는 노점들이 가득 메우고 있을 것이다. 관광객은 물론 내국인들도 재미난 풍경과 쇼핑, 먹거리를 즐기는 곳이다. 샤넬 구찌 등 명품 브랜드 짝퉁을 파는 노점도 여기저기 볼 수 있다. 가방, 지갑, 패션 소품들의 구색을 갖춰 놓고 사람들의 발길을 잡는다.
한때 나도 이 오거리에서 이미테이션 일을 했다. 불법으로 짝퉁을 파는 일이었다. 주로 일본인,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사간다. 짝퉁을 진짜 진품과 비슷하게 파니까 이익은 엄청 남는다.
나는 오전 11시에 나가서 밤11까지 일을 했다. 하루 종일 서서 짧은 일본말로 손님을 불렀다.
“이랏샤이마세. 이이 카방 캇테쿠다사이(어서 오세요. 좋은 가방 사세요).”
“야스이데스(쌉니다).”
“이이 카방 웃테마스(좋은 가방 팔아요).”
명동거리는 노점들의 자리다툼이 치열하다. 그래서 서로서로 마음에 좋지 않는 앙금이 많다. 우리 같은 이미테이션만이 아니라 잡상인도 많다. 겨울에는 자리다툼이 더 심하다. 왜냐하면 한정된 공간에서 바람도 덜 불고, 사람도 많이 지나다니는 자리를 차지하려다 보면 치고 박고 싸우는 일이 자주 난다.
어느 날 악세사리와 모자를 놓고 파는 아저씨랑 우리쪽 오빠들이랑 자리다툼이 터졌다.
“먼저 오면 그만이지. 니자리 내자리가 어디 있어.”
“이 개 상놈의 새끼들아. 내가 딸이 셋이나 있는데 어따 대고 반말 짓거리냐?”
싸움은 주먹다짐까지 오고 갔다. 경찰이 오고 아저씨는 다리가 골절되어 병원에 실려갔다. 그 아저씨는 연세가 우리 아버지 뻘이었다.
이미테이션은 경찰에게 걸리면 모두 다 구속된다. 그래서 더 자리를 잘 잡아야 하는데 그 즈음 한창 단속기간이어서 오빠들이 아주 예민해져 있었다.
출근을 하면 1시간은 영업 준비를 한다. 명동에서 두 정거장 떨어진 곳에 수레를 모아놓은 곳이 있다. 수레차장이라고 하는 데 거기까지 걸어가서 수레를 끌고 와서 자리를 잡고 수레 밑에 넣어 놓은 물건을 꺼내서 세팅을 한다. 10분이면 끝나지만 수레를 끌고 오는 시간이 길다.
장사는 큰 사장님이 계시고 오빠 두 명과 친구 성민이, 나, 이렇게 네 명이 했다. 오빠들이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일본인 관광객을 끌어오면 우리는 일본말로 맞이하고 물건 파는 것은 또 오빠들이 알아서 팔았다. 오빠들은 나이가 20대 중반, 후반이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돌아가면서 먹고 온다. 겨울에는 뜨거운 국물 있는 걸로 사 먹었다. 아침은 일찍 일어나면 내가 해 먹기도 하고 급하면 나가면서 김밥이나 빵을 사 먹었다.
*추운 날씨에 움츠린 청소년.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중에서
겨울은 진짜 춥다. 가장 힘들었던 12월 3일. 칼바람이 불었던 그날은 잊혀지지 않는다. 난로를 몇 개씩 피워도 너무 추워서 일하다가 얼어죽을 것 같아 다 걷고 들어갔다.
나는 명동에서 가까운 원룸을 얻어 살았다. 주급으로 일주일에 72만원씩 받아서 30만원씩 저축도 좀 하고 주말에는 친구들 만나서 놀고, 먹고, 사고 싶은 물건도 샀다. 그때는 학교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명동 거리를 학생들이 지나가면 부럽다기 보다는, 내가 학교를 다니면 어떻게 다니고 있을까? 학교는 왜 가나 귀찮게. 그런 생각이었다. 너무 철없이 돌아다닐 때였다. 중3이었으니까 내 나이 16살. 처음에는 나 스스로 일할 것이 있다는 게 좋았다. 16살은 사회에서 할 일도 주지 않았기에 “아, 드디어 내 스스로 일한다.” 하면서 엄청 좋아했다. 첫 주에 72만원 받아서 바로 원룸 잡고 그때부터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핸드폰 번호도 바꾸고 가족들과 연락하지 않는 채 살았다.
일하면서 아픈 적이 있는데 그날은 머리가 너무 아파서 중간에 퇴근하여 원룸에 누워 있었다. 열이 펄펄 끓었다. 그때 나와 같이 일하는 친구 성민이가 놀자고 찾아 왔다. 그 친구는 오후 한 시에 출근하여 밤11시까지 일하고 일 주일에 50만원 받았다. 성민이는 내가 빨리 퇴근한 걸 알고 같이 점심을 먹자고 왔다가 나를 응급실로 데리고 갔다. 병원에 이틀을 입원했다. 한 번 심하게 아프고 나니까 면역력이 생겼는지 그 후 크게 아픈 적은 없었다. 정말 그날은 눈뜰 힘도 없었다.
겨울에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 옷 입는 노하우가 있다. 안에 털이 들어있는 기모 츄리닝 바지를 입는다. 꽉 낀 청바지를 입으면 절대 안 된다. 길바닥에서 오랜 시간 서 있다보면 피가 통하지 않아 다리가 저리고 동상에 걸린다. 윗도리는 나시 위에 티셔츠, 그 위에 후드티 입고 그 다음 잠바를 입는다. 머리에는 귀마개와 목덜이를 두른다. 발은 보통 양말 두 컬레, 그 위에 수면 양말 신고 운동화를 신는다. 아니면 피가 통하라고 실내화를 신는 경우도 있다. 부츠는 안 신는다.
평소에도 일 끝나고 밤11시에 들어오면 거의 씻지도 못하고 잤다. 겨울에는 특히 더 심했다. 발이 엄청 시리고 부어서 들어가면 방이 완전 냉골이다. 누가 보일러 틀어 놓은 사람도 없으니까. 그래서 일부러 아침에 나올 때 보일러 켜놓고 나온다. 그래서 겨울철에는 기름값이 방세보다 더 많이 나갔다. 이불 속에서 몸 좀 녹이다가 샤워도 못하고 그대로 잔다.
9월에 이 일을 시작할 때는 아, 스스로 일하면서 살 수 있다. 집에 들어가지 말아야지 했는데 엄청 추운 겨울이 되고 12월이 오니까 너무 힘들었다. 사람이 할 일이 못 되었다. 다시 봄이 되고 날씨가 따뜻해지니까 괜찮았다. 봄과 여름에는 할 만 했으나 겨울에는 진짜 못 하겠구나 해서 관뒀다. 명동거리를 그냥 지나가면서 그 일을 보는 거랑 해본 것과는 정말 다르다. 두 달 쉬다가 8월쯤에 신발매장에서 정직원으로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손님 한 명 한 명씩 친절하게 접대 하면서 신발 파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만약 손님에게 실수를 하게 되면 점장님이 엄청 호되게 혼냈다.
한번은 커플분이 왔는데 여자 분이 신발을 이것저것 신어봤다. 근무하다 보면 손님을 딱 봤을 때 아, 저 사람은 신발 사겠구나 하는 감이 온다. 그날따라 손님이 많았는데 그 여자는 신발을 살 것 같지 않았다. 그냥 들어와서 신어본다는 느낌이 들었다. 계속 열 켤레도 넘게 신어 보길래 화가 나서 물었다.
“손님, 신발 사실 거예요?”
“왜요?”
“신발 사실 거냐구요.”
“손님한테 너 말투가 왜 그래? 싸가지가 영 없네.”
아차 실수다. 나는 바로
“죄송합니다. 손님 죄송합니다.”
사과를 했는데도 그 여자 분은 당장 점장님을 불렀다. 점장님은 무조건 나를 혼냈다.
내가 명동거리에서 처음으로 했던 알바는 망치과자 파는 거였다. 둥그런 과자 겉에 쵸코렛이랑 딸기잼이랑 크림이 묻어 있는 과자를 비닐봉지에 넣어 망치로 부셔서 손님에게 주면 끝이다. 진짜 맛있다. 그런데 그 망치가 엄청 무거웠다. 두 달 일하니 인대가 늘어났다, 한 동안 깁스한 상태에서 일을 했는데 그 옆에서 이미테이션 하던 오빠가 나에게 이거 한 번 해보라고 해서 시작하게 되었다. 짝퉁 장사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사실 추운 겨울만이 아니었다.
이 장사는 모두 불법이다. 진열장 위에는 찐*(진품)을 올려놓고 밑에는 짝*(짝퉁)을 놓고 팔다가 경찰들이 오면 그걸 조리 있게 잘 넘겨야 하니까 되게 힘들다. 짝이면 다 끌려간다. 통째로 수레까지 다 가져간다. 이 일을 하다가 교도소 들어간 사람들이 꽤 많았다. 경찰에 끌려가는 것도 많이 목격했다. 그래서 항상 마음이 불안했다. 언젠가는 저렇게 되지 않을까 조마조마 하는 마음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학생답게 사는 너에게 친구야 안녕! 친구야! 친구야! 짝퉁 알바 일을 그만두고 신발매장에서 7개월간 일하면서 자리가 조금씩 잡히니까 학교도 가고 싶고, 친구들도 만나고 싶어졌어. 마음이 편안해 지니까 하고 싶은 게 생긴 거야. 가족들이 보고 싶었어. 학교도 다시 다니고 싶었어. 그래서 신발매장 일을 그만 두고 집에 들어갔어. 나의 친구야! 친구야! 친구야!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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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
남민영 수녀
모진 비바람을 이겨내고
희망의 씨앗을 마음속에 품기 시작한 그대는
참 소중한 사람
아름다운 사람
지나온 걸음 걸음은 비틀거렸어도
이제부터 희망을 향해
올곧게 걸어갈 용기를 낸 그대는
참 소중한 사람
아름다운 사람
모든 꽃씨는 저마다의 고유한 빛깔의 꽃을 품고 있고
모든 젊음은 저마다의 희망의 삶을 품고 있기에
그대는 아름다운 사람
희망의 사람
‘희망을 품은 자’ 그대의 또 다른 이름
그대는 아름다운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