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의 통통통>
박재동 화백
내 고향집에서 기차역에 가는 십리길 중간엔 공동묘지가 있었다. 공동묘지와는 좀 떨어진 바로 길가엔 무덤인지 아닌지 분간키 어려운 조그만 봉분이 있었다. 어린시절 어머니 손을 잡고 그 부근을 지날때면 알 수 없는 슬픔이 손끝을 타고 전해왔다. 그 깊고 무거운 슬픔의 정체를 안 것은 아마 열살이 넘었을 때였을 것이다. 한 친척으로부터 “네가 장남이 아니고, 원래 네가 태어나기 10년도 더 전에 아들이 있었는데 딱 돌 때 세상을 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제서야 20년이 지나서도 그곳을 지날 때면 딱 1년 함께 산 자식이 그리워 어머니가 나 모르게 눈물을 적시는 것을 알게 됐다. 내게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을 해준 분도, 20년이 지난 그 때까지도 여전히 속앓이를 계속하던 어머니였다.
부모와 자식은 한 몸이다. <세설신어>란 책에 나오는, 단장(斷腸)이란 고사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사냥 당한 새끼를 따라온 원숭이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토막토막 끊겨 있었다는 이야기다.
동물도 그럴진데 인간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다. 장성한 아들을 잃은 아픔을 쓴 소설가 박완서의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을 보면 친구가 박완서를 위로하기 위해 다른 동창이 반송장이 되어 누워있는 아들을 돌보는 집에 데려간다. 박완서는 그 상태에서도 동창 모자가 정을 나누는 것을 보고 부러워서 대성통곡한다. 내 자식도 저렇게라도 살아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통곡한 것이다. 그러니 자식 잃은 부모와 함께 울어주고 슬퍼해도 그들은 고통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세월호 참사로 산생명 304명이 목숨을 잃었다. 대부분이 고교생 자식들이다. 40일이 넘는 유민이 아빠의 단식에서 보듯 자식을 잃은 부모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그런데 유민이 아빠에게 욕을 퍼붓고, 심지어 “죽어버려라”고 하는 이들이 있다. 정부 여당은 세월호특별법 왜곡 소문 등으로 이런 음해를 조장했다. 국가정보원 사찰이 밝혀지고 있다. 그들은 죄과를 두려워하지않는듯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반드시 인과응보와 심판이 있다는 것을 확언하지않은 고등종교는 세상에 없다.
맹자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으로 ‘측은’을 들었다. 고통 당하는 이에 대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 이 없다면 ‘인간’일 수 없다는 것이다. 왜나하면 물에 빠진 아이를 보면 안타까워하며 구해주려는 마음은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자연히 나오는 마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 행하지 말라는 것은 유교의 핵심만이 아니라 모든 종교와 진리의 요체다. 예수는 신을 아버지로 인간들을 자식으로 삼아 모든 인류를 형제 자매로 묶었다. 석가는 동체대비라고 했다. 온생명이 한 몸이니 함께 슬퍼하지않을 수 없다.
독일 바이로이트대학교 우테 펜들러 교수가 유민이 아빠에게 보낸 편지에서 “제 딸이 한국어를 공부하느라 서울에서 몇 개월 동안 지냈었습니다. 제딸이 그 배를 탈 수도 있었습니다. 나라면, 어떻게 내 자식의 죽음을 감당할 수 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부모로서) 당신의 심정에 깊이 공감합니다”고 했다. 이게 인간이다.
종교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