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ntcast
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Viewing all articles
Browse latest Browse all 3077

티베트 고원에 두고 온 소녀

$
0
0


나를 울린 이 사람

티베트 소녀 케샹의 눈물


티베트소녀조현사진.jpg

*티베트 소녀. 글 내용과는 상관없음. 사진 조현

 
출가수행자에게 은사 스님은 세상의 어버이와 같은 존재다. 내 은사는 조계종 총무원장이던 법장 스님이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심장수술 잘 마치면 함께 티베트 히말라야에 가자!”며 미소를 지으시던 스님께서 2005년 8월8일 갑자기 입적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스님 열반 1년 뒤 사형과 함께 평소 가보고 싶으시다던 히말라야에서 유품과 가사라도 태워 드리고자 티베트로 향했다. 세계의 지붕이라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올라 유품을 태운 뒤, 이곳의 허공과 바람이 되어 자유로우시기를, 또한 다시금 사바세계로 돌아오시기를 눈물로 빌고 또 빌었다. 선가에서는 “애써 돌을 쪼아 비를 세울 필요 없나니, 지나가는 나그네의 입이 곧 비석이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 스님의 삶과 수행 또한 그러할 것이다.


히말라야 베이스캠프에서 내려와 인근의 팅그리란 마을의 여인숙에 묵었다. 그 집 막내딸인 대여섯살 케샹이란 소녀는 하늘과 호수와 별빛을 모두 담은 눈을 가졌다. 달라이 라마 5세께서 사랑했다는 초원의 양치기 아가씨 마지아미의 환생인 듯했다.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지라 장난삼아 내 딸내미 삼아 설산에서만 핀다는 ‘설련화’라고 이름까지 지어주었다. 그랬더니 두 언니가 시샘을 내며 물 긷고 빨래하라는 심부름을 케샹에게만 시켜 신데렐라가 된 듯했다. 이튿날 아침 네팔 국경의 장무란 곳에 가기 위해 일행과 지프차로 출발하려는 순간, 처마 밑 기둥 뒤에 몸을 숨긴 채 우수에 깃든 눈빛으로 바라보는 케샹을 보니 울컥 가슴이 찡해졌다.


케샹을 배낭에다 숨겨서라도 데려와, 교육도 시키고 시집도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어찌 잘 클수 있을는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지 모든 게 걱정돼 차마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다. 그런데도 앙다문 입술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태연히 두 손을 흔드는 것이 기특하면서도 짠하고 안타깝기만 하다. 무정하게 차는 출발하고 케샹은 작은 점이되더니 마침내 사라져버렸다. 건강하고 행복하라고, 꼭 다시 오겠노라고, 그때까지 잘 살고 있으라고 빌고 또 빌었다. 아마도 케샹의 모습 어딘가에 우리 스님의 마음과 내 마음이 함께 깃들어 있었던가 보다.


이제 케샹도 어엿한 숙녀가 되어 있을 게다.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나 설산 아래 초원에서 결혼식을 할 때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신부가 된 케샹을 위해 설련화 꽃다발 한 아름 안고 찾아가리라.


티베트 고원에는 허허로운 바람 되어 허공을 노래하는 우리 스님의 영혼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간직한 설련화 닮은 케샹이란 소녀가 살고 있다.


진광 스님 (조계종 교육원 연수국장)



Viewing all articles
Browse latest Browse all 3077

Trending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