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교사의 날을 맞이하여
못 잊겠어요. 선생님!
글의 주인공 청소년들은 살레시오 남녀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마자렐로센터>와 <살레시오 청소년센터>에 현재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법원에서 ‘6호처분’이라는 재판을 받았습니다. '6호 처분’이란 소년법 제32조에 의한 보호처분을 말합니다. 비행성이 다소 심화되어 재비행의 우려가 있는 청소년을 교육을 통해 개선하기 위한 법입니다. 센터에 머무는 법정기간은 6개월이며 퇴소 후 집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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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선생님은 나에게 그곳 약도를 뽑아주시며 잘 다녀오라며 걱정하셨다. 내가 찾아가는 그곳은 법원이었다. 선생님 입장에서 보면 제자가 사고를 쳐서 법원 문턱을 밟는 게 뭐가 기쁜 일이겠는가. 그래도 선생님은 날 그렇게 챙기셨다. 나의 담임은 여자 분이었다. 결혼하여 아이가 둘 있다고 들었다. 학교를 오지 않는 날이 출석하는 날보다 많았던 나에게 선생님은 얼굴만이라도 비치라고 늘 사정하고 쪼였다. 그날도 선생님 전화를 받고 억지로 발걸음을 학교로 향했다. 교문에 들어서는데 수위아저씨가 날 보자마자
“니, 그딴 식으로 뭐 하러 학교를 다니냐? 학교 다니지 마라.”
시간이 오전 11시가 훨씬 넘었으니 그럴 만도 하나 기분이 너무 빡쳤다. 아저씨가 어느 날은 손짓으로 나를 이리 와 보라 부르면서 한 대 때리기도 했다. 나는 수위아저씨도 알아볼 만큼 학교에서 비행학생이었다.
“아저씨가 알 봐도 아닌데 왜 남의 일에 신경을 써요?”
했더니 담임선생님께 곧장 전화를 했다.
“여기 3학년 6반 학생이 있는데 이 시간에 와도 되는 거 맞아요?”
교문을 지키는 아저씨 입장에서 학교에 점심이나 때우려오는 학생을 그냥 들여보내는 게 용납되지 않았던 거다. 그런데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예, 허락했습니다. 들여보내 주세요.”
*말썽피는 제자와 그를 지도하는 교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파파로티> 중에서
담임뿐만 아니라 교장선생님까지 나한테 기회를 주자하여 벌써 유예될 것을 3~4주 더 늘려 주었다. 나 때문에 3학년 선생님들 전부가 아이들에게는 자습을 시켜 놓고 모두 모여 회의를 통해서 결정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는 정말 죄송했다. 그럼에도 난 출석을 하지 않아 더 이상 유예할 수가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먼저 영어선생님이 말을 건넸다.
“네가 왜 이렇게 나빠지고 잘못된 건지 잘 모르겠으나 우리는 네가 앞으로 걱정이 된다.”
하시면서 안타까워했다. 나에게 지쳐 있던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물었다.
“더 기회를 주면 다닐 생각이 있니?”
선생님들은 나를 학교에 다니게 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다. 이어서 교장 선생님이 한숨을 쉬시며
“네가 사고친거랑 전혀 문제가 없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노력하여 아침에 얼굴이라도 보이면 좋은데, 학교에 왔다가 가면 좋은데 이렇게 기회를 줬는데도….”
교장 선생님은 그만 말을 끊으셨다. 난 선생님들 때문이라도 학교를 다니고 싶었으나 아이들이 싫을 때는 선생님들도 꼴 보기 싫었다. 교장 선생님이 어깨를 툭툭 치면서
“얘기 다 끝났으니까…….”
선생님은 나에게 사탕을 건네며 먹고 가라고 했다. 담임선생님, 영어, 사회, 수학 선생님, 2학년 담임, 도덕, 미술 선생님 성함은 특별하여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나는 그날 선생님들 앞에서는 안 울다가 학교 교문을 나가면서 눈물을 훔쳤다. 집에 왔는데 아무도 없었다. 나는 침대에 쓰러져 펑펑 울었다.
다른 아이가 학교를 관둘 때도 다 비슷하게 선생님들이 관심을 가졌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워낙 내가 집안 환경도 안 좋고 하다 보니 더 나쁜 길로 빠질 확률이 많아서 나한테 더 관심을 써 주신 것 같다. 나는 유예가 된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학교를 한 번 갔는데 선생님이 충효 너 때문에 일을 하나도 못했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장난인데도 선생님의 사랑이 느껴져 기분이 좋았다. 그때 담임선생님과 연락처를 주고받고서 12월에 연락 한 번 드리고 여기 센터에 들어와 아빠랑 동반외출 때 아빠 핸드폰으로 연락을 했는데 수업을 하고 계셨는지 답장이 없었다. 나는 ‘바쁘시구나.’ 생각하고 이곳을 나가면 선생님께 연락한 번 드려야지 했다. 혹시 선생님 번호가 바꿨으면 어떡하지? 만약 안 되면 학교로 찾아가면 될 거다. 센터에서는 핸드폰 사용이 금지다. 아마 내 전화번호였다면 늦게라도 답장이 왔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무지 나를 챙겨주셨던 3학년 6반 담임 선생님은 기술과 가정을 가르쳤다. 제일 기억에 남는 분이다. 내가 학교를 그만 두었는데도 선생님은 집으로 연락했다. 나는 그때마다 안 받았다. 그렇게 계속 안 받다가 어느 날 자고 있는데 누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우리 집은 학교에서 가까운 2층 건물 반지하 전세방이었다. 선생님이 중간에 수업이 비어서 찾아온 것이다. 처음에는 무서워서 문을 안 열다가 충효야 하는 선생님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어드렸다. 그때까지 자고 있던 나는 창피하고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선생님은 종합주스세트를 사 오셨다.
“시간이 있어서 왔다. 잘 지내?”
“네, 잘 지내요.”
“지금 뭐하고 있었어.”
“자고 있었어요.”
“아 그래, 그럼 선생님 이제 갈 게. 이거 먹어…….”
나는 선생님을 우리 집 모퉁이를 돌아서 학교 가까이까지 동반해 드렸다. 잠시 후 선생님은 금방 카톡을 보냈다.
“나중에 또 볼 수 있으면 보자.”
선생님은 아이 둘을 아침마다 유치원에 보내고 오시기에 가끔 늦을 때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날 안쓰럽게 여겼다.
“너도 내 자식들처럼 고생을 시키는구나. 엄마가 없다보니까……. 힘들면 말해라. 내가 도와주마.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떡볶이도 사주마.”
법원에 가고, 분류심사원에 상담하러 갈 때는 일찍 가야 한다. 또 학교수업을 빼고 가야하기에 담임선생님께 미리 말씀드린다. 가는 길도 잘 모르는 나를 선생님이 짠하게 보시고 약도를 뽑아주시며 버스와 지하철을 몇 번 타서, 어떻게 갈아타야 하는가를 상세히 알려주었다. 그리고 중간에 내가 잘 가고 있는지 확인 연락을 하셨다.
“네, 잘 가고 있고 도착하면 연락드릴게요.”
“밥, 거르지 말거라.”
화낼 때는 무서웠으나 따뜻하신 분. 잘못한 게 있으면 부모처럼 크게 혼냈던 분. 선생님에 대한 신뢰를 주셨던 분. 못 뵌 지 1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가 그립다.
어른을 싫어하는 너에게 친구야! 그런데 친구야! 친구야. 친구야!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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