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長安)에서 반야심경을 만나다
1.장안은 나라의 중심이었다.
추석연휴가 끝난 뒤 서안(西安)을 찾았다. 그 옛날 당나라의 수도 장안(長安)이다. “서울장안”이란 말에서 보듯 장안이란 말 자체가 ‘나라의 중심’을 의미한다. 당시에 서역(인도 유럽 포함)과 동녘(신라 일본포함)에서 저마다 꿈과 환상을 가지고 이 지역으로 꾸역꾸역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유동인구를 제외한 상주인구만 해도 일백만명을 자랑할 정도였다. 당나라 때 일백만명은 현재의 일천만명 이상의 북적거림 이었을 것이다.
2.자식에 대한 필요이상의 집착을 버려라
중국은 이런저런 일로 몇 번 다녀왔다. 그럼에도 서안은 처음이다. ‘중국! 어디까지 가봤니?’하고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형편이다. 정말 세상은 넓고 참배해야 할 성지도 너무 많다. 고색창연한 장안을 그리면서 왔는데 기대가 너무 컸던지 서안은 생각보다 작고 초라했다. 하지만 만만찮은 규모와 7층의 높이(64m)를 자랑하는 대안탑은 예나 지금이나 이 지역을 상징하는 건물로서, 오늘도 변함없는 위상을 유지하고 있는지라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유수의 국적 항공사 광고 덕분에 우리나라와도 더욱 친숙한 탑이 되었다. 그 광고의 마지막 자막은 대안탑을 배경으로 간절하게 합장한 채 정성스럽게 허리를 숙이는 아주머니 옆모습(고3 어머니인듯?)에 “생지축지 생이불유(生之畜之 生而不有 낳고 기르되 소유하지 않는다)”라는 한자(漢字)가 오버랩된다. 이 카피가 교육열에 관한 한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이 땅의 엄마들에게 적지않는 잔잔한 울림을 주었을 것이다. 노자(老子)는 일찍이 자식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스스로 경계하라고 남긴 여덟글자가 TV화면 속에서 우리를 향해 다시 걸어나온 것이다.
3. 기러기의 은혜를 잊지 않다.
대안탑(大雁塔)은 대자은사(大慈恩寺) 경내에 있다. 이 절은 현장(玄奘600~664)법사를 위해 당나라 조정에서 번역공간으로 제공한 곳이다. 사찰 곳곳에 스님의 체취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대안탑의 ‘대안(大雁 큰기러기)’은 순례길에서 겪었던 어려움이 그대로 묻어난 이름이기도 하다. 당시 인도로 가는 길은 목숨을 담보로 한 위험천만한 여정이었다. 숱한 고통이 뒤따랐다. 언젠가 사막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마침내 정신마저 아득해 졌을 때 어디선가 기러기가 나타났다. 날개짓으로 길을 안내해 준 덕분에 그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탑을 조성한 본래 목적은 당신이 수집해온 엄청난 분량의 경전을 보관해두기 위한 법보전(法寶殿)이었다. 하지만 탑이름을 ‘대안(大雁 큰 기러기)’으로 지은 것은 기러기 은혜에 보답하기 위함이다. 말 못하는 날짐승의 은덕까지 기억하고 있기에 이 도량은 ‘큰 자비심 그리고 은혜(大慈恩)의 공간이 될 수 밖에 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미물을 향한 애틋함까지 함께 음미하면서 꼭대기 7층까지 천천히 올라갔다. 탑중심이 비어있는 탓에 안전을 위해 난간이 둘러져 있는 나무 계단을 한 칸 한 칸 조심스럽게 밟았다. 층층마다 사방으로 창문을 낸 덕분에 시가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기능까지 겸한 중국풍의 전형적 벽돌탑이었다.
4.반야심경을 독송하다
일행들과 함께 반야심경을 합송했다. 번역의 역사적 현장(現場)에서 번역자인 현장법사께서 직접 지켜보는 자리에서 그 경을 읽으니 사뭇 감(感)이 달랐다. 그동안 수천번은 읽었을 터인데 이번 독송은 또다른 느낌으로 닿아온다. 아마 세상사람들에게 가장 유명한 불교경전을 꼽으라면 하나같이 반야심경을 열거할 것이다. 또 불교에 관심있는 이들은 가장 먼저 접하고 외우는 경(經)이기도 하다. 알고보면 반야심경을 매개체로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장 자주 만나는 스님이 현장법사인 셈이다. 후학들은 짧은 한 편의 경구 속에서 당신의 땀과 열정을 접하게 된다. 더불어 촉(觸)이 더 발달한 이는 천년 전 대자은사의 공기와 흙 냄새까지 글자와 글자사이에 그리고 행간에도 스며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5.더럽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언젠가 반야심경의 “불구부정(不垢不淨)”이라는 4글자 앞에서 호흡이 멈추었다. 더러운 것도 없고 깨끗한 것도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늘 더러움은 피해가고 또 깨끗함만 찾아가려고 애쓴다. 쓰레기통이 있기 때문에 주변이 청결하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쓰레기통을 멀리 하려고만 든다. 더러움이 없으면 결국 깨끗함도 있을 수 없는 것인데도 말이다. 이 상대적인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불구부정(不垢不淨)이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 수 있을 것 같다.
6.장안은 불야성의 원조도시다
그 시절 장안대로 주변은 국제도시답게 늘 불야성(不夜城)을 이루었다. 알고보면 불야성의 원조는 장안인 것이다. 시류를 따라 당시 스님네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너도 나도 서울로 진출했다.
뒷날 낭야혜각 선사는 이런 유행에 대하여 젊잖게 타일렀다
“장안수락 (長安雖樂)이나 불시장구(不是長久)니라. 장안이 비록 좋은 곳이기는 하지만 절대로 오래 머물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