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
가을, 독서와 사색의 계절이라고들 하건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낮 1시의 따가운 빛이 요리하는 자연과 세계의 변모는 시간의 가속을 따갑게 보여준다. 놀이동산에서 질주하는 열차를 타본 사람은 속도에 대해 알고 있으리라. 시간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것일까?
시간의 신비를 오거스틴은 ‘아무도 그것에 관해 묻지 않으면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묻는 사람에게 설명하려 할 때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과거는 지나가버렸고 우리는 현재를 살아갈 뿐이지만 미래를 약속하는 거짓 약속들이 장황한 가운데 현실은 나와 우리의 의지를 비웃으며 자주 실종된다. 밤하늘의 별빛이 이미 사라진 존재의 잔상이듯 현재라고 믿는 것들이 매 순간 과거임을 알지 못한다.
톨스토이는 인생에 있어 정직하게 고백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진실은 삶은 공허하다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50살에 <안나 카레니나>를 완성한 뒤 그는 스스로 일생의 지병으로 인식한 ‘영적 위기’에 몸부림쳤다. 벽의 못을 빼고 가죽띠를 감추어야 할 정도의 격렬한 자살 충동에 시달렸다. ‘나의 생은 멈추었다. 나는 한 발자국도 더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이것은 갑자기 발생한 사태가 아니라 내 안에서 오래전부터 예비된 것이었다.’(<참회록>, 1882) 사람들은 이후 그를 예술가에서 종교적 설교가로 변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극적인 변화는 아니었다. 그의 견해가 정반대로 달라졌다고 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가 자기 치유의 출구를 ‘고백’에서 발견했다는 사실에 방점이 찍혀야 마땅하다.
사실 톨스토이는 초기부터 자기 고백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작가였다. <유년시대>, <소년시대>, <청년시대> 삼부작을 비롯하여 크림전쟁 종군기로 동료들이 죽어나가는 전투 현장에서 써 내려간 <세바스토폴 이야기>는 모두 자기 자신의 고백적인 글이다. <전쟁과 평화>나 <안나 카레니나>, <부활> 역시 자기 고백이 조국 러시아로 확대된 것일 뿐이다. <참회록> 이후 작가의 변화란 고백 형식의 변화이며 고백할 현실에 대한 인식의 변화라 해야겠다.
도스토옙스키는 이 현실에 관하여 흥미로운 언급을 남겼다. ‘나의 관념주의는 그들의 리얼리즘보다 더 진실합니다. 그들은 단지 표면만을 스치고 있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이 거의 환상적이며 예외적인 것이라고 부르는 것이 내게는 현실적인 것의 핵심 그 자체가 되는 겁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심리학자라 부르지만 자신은 오히려 좀더 고상한 의미의 리얼리스트라고 말했다. ‘그들은 우리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재현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현실은 전혀 존재하지 않고 결코 다가오지도 않았다. 사물의 정수는 인간에게 이해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연이 인간의 감각을 통과한 후 관념에 반영된 자연만을 지각한다.’(<작가일기>, 1873)
톨스토이의 묘소
알렉산드르넵스키수도원에 있는 도스토옙스키의 무덤
톨스토이의 <참회록> 표지
사람들은 두 문호를 자주 비교한다. 비교란 두 대상을 분석하여 상이점을 나열해가는 것이다. 그러나 차이점을 더욱 많이 찾아내는 게 도대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인문학에 대한 광범위한 오해는 글쓰기뿐 아니라 글 읽기에도 해당한다. 지성적인 입장이 아니라도 상식과 교양인의 입장에서 독서를 한다면 쓸데없는 논쟁이나 말잔치에 휘둘릴 필요가 없겠지만, 편협한 지식 놀음이 되면 독서는 지식의 공동묘지일 뿐이다.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도덕가, 설교가, 아나키스트, 좌파, 종북분자가 되어 불필요한 논쟁과 엉뚱한 싸움에 말려들어간다. 독서의 비전은 기술적 비교에 있지 않고 덧대고 깁고 보완하는 가운데 끝내는 다다르지 못할지라도 삶의 전체적 종합에 이르는 행위여야 하는 것은 아닐까.
동시대 최고의 작품들을 발표했으면서도 두 사람은 생전에 만난 적이 없었다. 도스토옙스키는 작품 속에 우회적으로 톨스토이의 장엄한 귀족 취미를 비판하기도 했다. 톨스토이가 우상처럼 여겨온 루소를 허영에 미혹된 과장된 고백자라고도 했다. 그러나 그는 일생 동안 톨스토이를 존경했다. 도스토옙스키를 그다지 칭찬하지 않았던 톨스토이도 그의 <죽음의 집의 기록>에 대해서는 경의를 표했다. 그들은 다 <성서>를 사랑했으며 성자들의 생애와 저작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가졌었다.
세 권의 고백록이 있다고들 한다. 오거스틴의 <참회록>, 루소의 <고백록>, 그리고 톨스토이의 <참회록>이다. 그러나 도스토옙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나 <죽음의 집의 기록> 역시 버금갈 고백록이다.
그는 말한다. ‘나는 아픈 인간이다. 나는 심술궂은 인간이다.’ 혹자는 도스토옙스키를 가장 러시아적인 작가라 하고 톨스토이는 동양적인 작가라 한다. 그러나 도스토옙스키야말로 가장 유럽적인 작가가 아니며 톨스토이야말로 가장 기독교적 작가가 아닌가. 고백록이란 필시 유럽적이고 기독교적인 장르일 테니 말이다.
대작가 이전 자연인으로서 두 사람의 공통점은 고백정신에 있다. 고백도 보통 고백이 아니라 오로지 고백으로 충만한 단순함이다. 그게 두 인물의 위대함이다. 고백함으로써 그들은 공허를 넘는 영원을 보여주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고백적 사유가 점점 불능인 상태로 가속도를 높이고 있지 않은가. 독서와 사색할 시간이 별로 없는 지금이야말로 고백의 계절이다. 키르케고르가 말한바 시간의 속력이 요구하는 ‘결단의 지금’이다. 고백엔 용서와 관용이 있고 분쟁을 양산하지는 않는다. 진실한 고백은 그 자체 예언적이다. ‘나뭇잎 내리고 물 끊어져 온갖 언덕 말랐구나. 나 또한 저 멀리 내 참나를 보리로다.’(유학자 주희)
천정근 목사(안양 자유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