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창] 보성에서 만난 천사
호인수 인천 부개동성당 주임사제
남도의 봄은 아름다웠다. 오월의 연록빛 차밭과 거울 같은 율포 앞바다, 일림산 등성이를 덮은 자줏빛 고운 철쭉의 군무는 황홀했다. 어제도 오늘도 도시 변두리의 잿빛 연립주택들에 둘러싸여 눈 뜨고 감는 내겐 그랬다.
서른넷의 전신장애인 최씨를 만난 건 보성읍내의 비교적 높은 지대에 널찍하게 자리잡아 시야가 탁 트인 성당 마당에서였다. 이달 초에 운 좋게도 나는 그곳 수녀님의 주선으로 신자들과 함께 해외 성지순례를 떠난 주임신부를 대신해서 열흘간 거기 머무르며 미사를 드려주고 있었다. 최씨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와서 때마침 산에서 내려와 씻으려고 막 사제관에 들어가려던 나를 만나겠다고 수녀님께 청했다. 목소리가 여러 발자국 떨어져 있는 내게도 들릴 만큼 크고 거칠었고 발음은 매우 어눌했다. 수녀님은 그의 말에 익숙한 터라 그가 주일미사에서 들은 내 강론이 재밌어서 차를 한잔 대접하고 싶어 왔다고 통역(?)을 했다. 힘겹게 움직이는 오른손은 작동키를 잡고 있고 다른 한 손엔 접힌 천원짜리 두 장이 들려 있었다. 귀찮았다. 유명한 보성의 녹차고 뭐고 다 싫고 쉬고만 싶었다. 게다가 저 장애인이 차 대접을 핑계로 내게 무슨 엉뚱한 요구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랴! 냉정하게 거절하고 돌아선다면 좋았던 내 이미지가 한순간에 구겨질 수도 있으니. 웃는 낯으로 나무그늘 밑 벤치에 앉았다.
그가 태어날 때부터 장애가 있었고 나이 들어 겨우 한쪽 손을 움직일 수 있어 휠체어라도 타게 되었다는 것을 나는 몇 번씩 되묻고야 비로소 알았지만 비교적 쉽게 이야기를 나누기까지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취미가 뭐냐고 물으니 그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걸 제일 좋아한다고 했다. 뭐가 제일 먹고 싶으냐? 특별히 먹고 싶은 건 없다. 밥은 하루에 한 끼만 먹는다. 어렸을 적부터 습관이 돼서 여태껏 그렇게 산다. 집엔 몇 식구가 사나? 엄마와 둘이 산다. 형은 인천에 사는데 신부님이 인천에서 왔다니 더 좋다. 내 물음은 그저 의례적인 것들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나와는 달랐다. 사제생활에 고민은 없느냐고 묻는다. 우린들 왜 고민과 걱정이 없겠냐는 내 대답에 그는 신부님들은 아무 걱정거리도 없는 줄 알았단다. 시골에 오니 불편하지 않으냐? 아니, 오히려 편하고 조용해서 좋다. 나의 피로감과 경계심은 어느새 말끔히 가셨다. 갑자기 그는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신부님 수고비는 받으세요?” 설마 돈 얘기랴 싶어서 다시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내 입에서는 자동응답 같은 소리가 튀어나왔다. “아니요, 그런 것 없어요!”
솔직히 고백한다. 있었다. 보성성당에 도착한 이튿날 직원은 내게 주임신부가 전하라고 했다며 봉투 하나를 건네주었다. 여기 계시는 동안 쓰시라고 했단다. 내가 대신 집을 봐주는 대가, 그야말로 수고비였던 셈이다. 전혀 예상 밖이라 안 받는다고 단호히 거절했지만 직원이 그냥 돌아서는 바람에 봉투를 책상 한쪽에 밀어놓았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나의 속물근성이 슬슬 머리를 들기 시작했다. 봉투 속부터 확인했다. 그때부터 나는 지갑을 열 때마다 그 봉투를 챙길까 말까 갈팡질팡했던 것이다.
챙긴들 흠이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남몰래 봉투를 들었다 놨다 했다. 더없이 창피한 일이다. 이런 나의 본색을 최씨는 귀신같이 꿰뚫었다. 나는 왜 생각도 안 하고 불쑥 거짓말을 했을까?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아, 그는 하늘이 내게 보내신 천사였구나. 그 덕에 나는 봉투와 함께 쪽지 한 장을 써놓고 보성을 떠날 수 있었다. “암만 생각해도 수고한 게 없어서 놓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