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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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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이 넘치는 시대 필요한 소비법은 재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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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것은 확실한 듯하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연필 사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다. 12자루가 들어있는 한 다스를 사고, 그걸 다 쓰고 엄마한테 돈을 받아 또 사곤 했는데, 살 때마다 연필 디자인을 따지고, 얼마나 잘 써지는 지를 따져서 신중하게 고르곤 했다. 

그런데 요즘엔 공짜 연필이 넘쳐난다. 초등학생 딸을 키우고 있는 분에게 얘길 들었는데, 요즘에는 학교 앞에서 학원 등의 광고를 하면서 등하교하는 아이들에게 공짜로 연필을 준다고 한다. 연필을 사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받아온 연필이 꽤 되고, 돈 주고 산 것이 아니다 보니 조금 쓰다 잃어버려도 크게 개의치 않고 물건을 아껴 쓰지도 않게 된다고 한다. 

물자가 풍요롭지 못하고 돈도 항상 쪼들렸던 시절에는 꼭 필요한 물건도 넉넉지 못해서 아끼고 아껴 쓰고, 새로 살 때에도 따지고 고르고 샀다. 그런데 지금은 돈 주고 사지 않아도 물건은 넘친다. 

일회용 비닐봉투를 쓰지 않기 위해 쓴다는 장바구니와 에코백. 이제는 이것들마저 넘쳐나서 장바구니와 에코백 때문에 환경이 파괴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공정거래 물품을 파는 쇼핑몰에서도 물건을 사면 사은품으로 에코백을 주고, 다니는 치과에서도 개원 기념으로 장바구니를 주고, 도서관에서도 에코백을 준다. 행사 자료들도 에코백에 담아서 준다. 얼떨결에 주는 대로 받아오다 보면 어느새 안쓰는 장바구니와 에코백이 꽤 많다. 또 내가 필요한 크기와 모양의 장바구니는 따로 있어서, 받아온 것들을 쓰기보다 새로운 가방을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제조사들의 제품 밀어내기도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싶다. 필요한 만큼 생산하고 끝까지 아껴 쓰는 것이 아니다. 많이 팔아서 많은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 무조건 많이 생산하고, 넘치는 물건을 떠넘긴다. 제대로 팔지 못한 대리점은 손해를 줄이기 위해 덤핑으로 물건을 넘기고, 덤핑으로 넘겨진 물건은 ‘1+1’ 등의 할인행사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넘어간다. 우유 1팩만 있어도 충분한 어떤 사람은, 대폭 할인된 가격을 보고 1개 값에 우유 2개를 산다. 하지만 필요한 양보다 많기 때문에 1개만 먹고 나머지 1개는 결국 버리고 말지도 모른다. 멀쩡한 우유는 그렇게 버려지고, 우유를 생산하는데 든 여러 가지 유무형의 비용(환경 훼손을 포함한)도 그렇게 버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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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럼 물품에서 챙겨놓은 포장지와 끈들. 버리지 않고 한 곳에 모아놓으면 포장물품을 따로 사지 않아도 필요할 때 골라 쓸 수 있다. 


물자가 넘치는 시대의 필요한 소비법은 남아도는 물건을 재사용, 재활용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남는 에코백을 분해해서 필요한 조그만 손가방을 만들 수도 있고, 부엌이나 화장실의 발매트를 만들어도 좋을 것이다. 아니면 잘라내서 물건 받침대나 식탁매트로 써도 좋을 것 같다. 

요즘엔 음료수, 잼 등의 음식물을 담은 포장용기도 튼튼하고 예쁘게 잘 나온다. 한번 먹고 버리기엔 너무 아깝다. 음식그릇을 새로 사기보다 그런 병들을 소독해서 재사용하면 참 좋다. 집에서 담근 막걸리를 다 먹은 술병에 담아 선물하기도 하고, 담근 차를 나눠 담아 선물하기도 한다. 물론 집에서 먹는 반찬을 담기에도 좋다. 

나도 여기저기에서 기념품으로 받은 공짜 연필이 꽤 많아서, 한동안 모아뒀다가 아는 학생에게 선물로 갖다 주었다. 

옷도 고쳐 입으면 좋다. 재봉기를 사기 전에는 안 입는 옷은 내놓기에 바빴는데 지금은 어떻게 고치면 입을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한다. 산 지 5년도 훨씬 넘은 롱 트렌치코트가 있었다. 요즘엔 긴 트렌치코트를 잘 입지 않기 때문에 입으면 좀 촌스러워 보인다. 재활용가게에 기증하려고 내놓았다가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작년에 트렌치코트 스타일 디자인의 여름 원피스를 샀는데 그 디자인이 무척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그 스타일을 떠올리며 롱트렌치코트 길이를 15센티미터 정도의 잘라냈다. 그리고 가운데 단추가 끝나는 지점부터 치마 밑단까지를 재봉기로 박아서 벌이지 않게 원피스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랬더니 훌륭한 긴팔 트렌치코트 스타일 원피스가 됐다. 유행지난 옷을 버리지 않고 활용하면서, 즐겨 입을 수 있는 좋아하는 디자인의 원피스 한 벌이 생긴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롱 트렌치코트는 재활용가게에 보내고 아마 원피스 한 벌을 새로 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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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다보면 생활비가 은근히 많이 줄어든다. 필요하다고 물건 하나하나 모두 사다보면 끝도 없는데, ‘필요한 것은 돈 주고 산다’는 생각을 버리고, ‘이게 필요한데 어떤 걸 활용하면 될까’를 생각하다 보면 웬만하면 주변에 굴러다니는 것들에서 신기하게도 충당할 수 있다. 환경파괴도 줄일 수 있다. 창의성 또한 커질 것이다. 제조사가 정해 공급하는 상품에 자기 취향을 맡기지 않고, 주변의 물건을 활용해 자신의 필요에 맞게 만들어내는 기쁨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다고 했던가. 필요한 물건도 바로 옆에서 답을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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