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 따르면 태초의 카오스에서 가이아가 나왔고, 가이아는 우라노스 및 산과 바다를 낳는다. 이어 가이아(땅)와 우라노스(하늘)가 결합해 티탄 족·키클롭스 족·헤카톤케이레스 족을 낳는다. 여러 명의 부인을 두고 있던 우라노스는 자식들을 싫어했다. 그러자 가이아는 자식들에게 복수를 호소했는데, 많은 자식 중 티탄 족 크로노스만 이를 따랐다. 즉 우라노스가 가이아에게 접근하려 할 때, 크로노스가 언월도로 그의 성기를 잘라버린다. 이때 떨어져나간 성기는 바다를 떠돌아다니며 흰 거품을 만들어냈는데, 이 거품에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태어난다. 이로써 하늘과 땅이 갈라졌다고 한다.
*그리스 신과 타이탄의 전쟁을 그린 영화 <타이탄의 분노> 중에서
그 뒤 크로노스는 누이 레아를 배우자로 삼아 헤스티아, 데메테르, 헤라, 하데스, 포세이돈을 낳았다. 그런데 크로노스는 자식을 낳는 족족 삼켜버린다. 자식 가운데 한 명이 자신의 권좌를 빼앗는다는 예언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제우스가 태어나자 레아는 배내옷에 돌을 싸서 아이인 것처럼 속인 후 크로노스가 삼키게 하고, 제우스를 크레타의 한 동굴에 숨긴다. 이 동굴에서 제우스는 요정, 암염소 아말테이아의 손에 키워지고, 젊은 전사들인 쿠레테의 보호를 받는다. 쿠레테는 창검을 부딪치는 소리를 내어 제우스의 울음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했다.
이렇게 장성한 제우스는 아버지와 싸워 아버지가 삼킨 형제자매들을 토해내게 한다. 그리고 형제들인 하데스와 포세이돈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 크로노스를 타르타로스에 있는 한 감옥에 가둔다. 패권을 거머쥔 제우스는 지상을, 포세이돈은 바다를, 하데스는 지하세계를 다스린다.
부자간 살해 이야기가 그리스 신화에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동양에서도 고대에 큰아들을 죽여서 제사에 바치는 풍습이 있었다. 부족 간의 전쟁과 약탈혼이 흔했던 고대엔 이미 임신한 여인들을 데려온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그런 풍습이 나왔다는 설도 있다. 이와 관련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은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자식을 더 사랑하는 이유는 아이가 자기 자식임을 더 확신하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에선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교인들의 공통 조상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여호와 신에게 바치려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삭 살해는 미수로 그쳤지만 《구약 성경》에는 그보다 더 오래된 인류 태초의 살인을 그린다. 아담과 이브의 맏아들인 카인이 시기와 질투 때문에 동생 아벨을 살인하는 장면이다.
*그리스 신과 타이탄의 전쟁을 그린 영화 <타이탄의 분노> 중에서
신화시대에 살인은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 소재다. 《구약 성경》의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등에 보면 여호와가 다른 신을 섬기거나 자신을 섬기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을 살육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도 인간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죽이고, 대홍수를 일으켜 멸망시켜 버리기도 한다.
히틀러나 스탈린, 폴 포트처럼 살육을 일삼은 독재자의 모델은 신화시대의 신일 것이다. 캄보디아의 폴 포트가 아이들의 다리를 잡고 나무에 쳐서 죽이는 장면은 힌두 신화를 그린 사원 벽화 그대로 따라한 것이다.
구약과 신화의 시대는 힘에 의한 공포 통치의 시기다. 이런 폭압의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도덕의 세계를 연 인물이 석가와 공자, 소크라테스와 예수다. 석가는 신에 의해서 인간이 심판 받는 게 아니라 스스로가 지은 행실에 대해 심판 받는다는 인과론을 설파한다. 공자는 수많은 위정자를 두 발로 찾아다니며 공포정치가 아닌 어진 정치를 호소한다. 또 소크라테스는 음해를 받아 죽어가면서도 분노하지 않고 인간 영혼의 지고함을 보여준다. 예수는 수많은 희생제물을 받던 신들과 정반대로 자신을 내놓으며 용서와 사랑을 설파한다. 이들 가운데서 낮은 곳에 머물렀던 예수는 기득권층을 비판하며 그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이들을 도왔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다.
<그리스인생학교>(조현 지음, 휴) '4장 그리스 신들의 산, 올림포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