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단단한 성벽에도 문은 있다
올해 노벨평화상은 파키스탄의 소녀 유사프자이(17)와 인도의 사티아르티(60)에게 돌아갔다. 앙숙 사이인 파키스탄의 무슬림과 인도의 힌두교인이 공동수상했다는게 초점이다. 힌두교가 주류인 인도와 무슬림 국가 파키스탄은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분리돼 접경 카슈미르에서 두번이나 전쟁을 치르고 뭄바이 등 대도시에서도 크고작은 테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보복과 전쟁의 애초 기획자는 식민 지배를 쉽게 하려는 제국주의 영국이었다. 자기들끼리 싸워 진짜 큰적엔 대항할 수 없게 하는 ‘분리 지배(devide and rule)’ 전략이다.
분열책은 외부에서 내부로 파고든다.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라고 외친 이들이 누군가. 지배자인 로마인들이 아닌 동족 유대인들이었다. 힌두-무슬림 화해 통일을 위해 헌신한 간디를 죽인 것도 파키스탄 무슬림이 아닌 인도의 극우 힌두교인이였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의 자치를 허용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라빈 이스라엘 총리의 암살자도 팔레스타인 무슬림이 아니라 극우 유대인이였다.
얼마전 방인성·김홍술 목사가 세월호 참사 유족들을 껴안고 40일간 단식한 광화문 농성장엔 이른바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를 자칭한 이들이 와 노란리본 제거에 나섰다. 서북청년단은 해방 후 북에서 공산당에게 핍박을 받고 월남해 영락교회에서 한경직 목사의 지원으로 설립된 극우청년단체다. 그들이 해방공간에서 얼마나 많은 민간인 학살에 앞장섰던가. 개신교인 백범 김구를 암살한 안두희도 같은 개신교인 이승만의 홍위병인 서북청년단원이었다.
그런 분열책은 외부의 기획자에 호응한 내부의 권력자에 의해 실행된다. 전쟁 상황을 연출해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정권안보를 유지하려는 권력자의 조종에 의해 내부를 통합하려는 지도자들은 제거되었다. 이로인해 대립은 더해지고, 공동체 내에 무력감과 패배감이 팽배해진다. 2차대전 뒤 지구상 대표적인 분쟁지역들에서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실행된 공통의 모습이다.
이에 따라 일부에선 분노심을 고무시켜 총을 든다. 탈레반이나 이슬람국가처럼. 그러나 상대를 악마화하며 싸우는 사이 자신도 어느내 악마가 되어간다.
*비노바 바베의 모습들.
이를 간파한 이들이 간디와 비노바 바베였다. 그들은 폭력으로 내부인들끼리 싸우다 결국 강자의 먹이가 되고마는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영적인 길을 제시했다. ‘사티아그라하’(진리를 향한 전진)였다. 이는 누구에게나 내면에 선의가 있음을 발견하기 위해 비폭력적으로 나아가는 희한한 운동이다.
10여년 전 신문사를 쉬고 인도를 순례할 때 비노바 바베아쉬람에 머문 적이 있다. 간디의 권유로 1940년부터 20여년간 ‘부단(토지헌납)운동’을 이끈 비노바와 함께 인도전역을 걸었던 제자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비노바는 영국지배체제에서도 부족함없이 살아가던 지주들을 찾아가서 말했다고 한다. “만약 당신이 다섯명의 자녀를 두었다면 땅 없는 가난한 농부를 여섯번째 자식으로 여기고 6분의 1의 땅을 내어주십시오.”
씨도 안 먹힐 듯한 말을 하며 걸어다닌 비노바는 놀랍게도 스코틀랜드의 넓이만한 땅을 기증받아 농민들에게 나눠주었다. ‘권력과 부를 독점하고도 조금도 나누려하지않는 그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 이들에게 비노바는 말했다.
“그들의 이기심은 벽과 같다. 그러나 그 벽에도 작은 문이 있다. 벽을 깨고 들어가려하기보다는 그 작은 문을 찾아 들어가라. 아무리 완고한 성벽에도 문은 있는 법이다.”
석가, 예수, 간디, 김구, 라빈은 그 ‘좁은 문’을 향해 걸어간 이들이다. 그들은 세속적으로 실패했다. 그럼에도 어깨 걸고 나아가는 것이 바로 바로 신앙이다. 철벽처럼 완고하게 보여도 그 안에 태양처럼 신성과 불성이 빛나고 있다는 확신을 주었기에 그들이 희망이다. 그러니 또 한번 그 철벽에 다가갔다가 실패한다한들 더 좌절할 것이 없다. 부단운동에서 지주들에 앞서 먼저 가슴을 연 사람은 누구였던가. 비노바였다. 그러니 오늘 먼저 가슴을 열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조현 종교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