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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명 헌금이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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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린 십일조로 인해 내가 겪은 어려움들

<당당뉴스> 임종석  |  seok944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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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신자 때부터 헌금을 무기명으로

다른 글에서도 썼듯이 필자는 예수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한 초신자 시절부터 비교적 신앙으로 살려고 노력한 편이었다. 하나님께서 목숨이라도 내어 놓으라시면 응당 그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이미 영생을 믿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십일조도 물론 철저히 했다. 그때에도 십일조에 관한 논란이 있었는지 어떤지는 몰라도 그런 것을 알지 못한 필자로서는 믿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십일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말이 십일조지 백수였던 당시로서는 어쩌다 손에 들어온 돈의 십일조라 떼어 놓은 액수가 너무 적어 봉투에 넣을 수조차 없었기에 주일헌금에 슬쩍 끼워 했다. 십일조를 봉투에 넣어 하게 된 것은 취직이 되어 봉급을 받고부터였다.


필자는 십일조를 포함한 모든 헌금을 무기명으로 했다. “너는 가난한 사람을 구제할 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마6:3)라는 말씀을 보고 구제뿐 아니라 헌금도 어떠한 선행도 그리해야 한다고 그냥 단순히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얼마를 그렇게 하다 한 번은 어쩌다 봉투에 이름을 슬그머니 써서는 십일조를 했다. 사십년도 훨씬 더 오래 전의 일이니 왜 그랬는지 확실히는 알 수 없지만 아마 하나님 앞에, 아니 사람들이 보라고 이름 석 자를 밝힘으로 나도 십일조를 한다고 보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단은 그 다음 주의 대예배 때 나고 말았다. 전도사님께서 설교를 통하여 그 일을 극렬하게 꾸짖으셨던 것이다. 당시 농촌의 많은 교회들은 전도사를 교역자로 모셨는데, 필자가 존경하는 그분 전도사님은 사십대 중반이셨는데도 아예 목사가 될 생각조차 하고 있지 않으셨다.

북한이 고향이신 전도사님은 인민군으로 6.25 전쟁에 참전하여 남하하였다가 포로로 잡히셨는데,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된 뒤 오랫동안 필자의 모교회를 섬기며 키우셨다. 그분은 설교를 예배시간에 말로 하는 것보다 삶을 통하여 자신의 전존재로 하시는 분이셨다. 그러기에 교회 안에서도 밖에서도 존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전도사님께서 필자가 하는 무명의 헌금을 내심 기특하게 여기셨던 모양이다. 그러니 갑자기 이름을 밝혀 한 십일조를 책망하신 것이다. 은연중에 헌금은 무명으로 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 설교로도 한 책망인 셈이었다. 필자는 그 책망에서 자신을 향한 전도사님의 사랑과 신뢰를 느꼈다. 지금도 필자는 그분께 신앙을 배운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믿고 있다.


건축에 은사가 있으셨던 전도사님은 재정형편이 어려운 교회 건물들을 많이 세워 주셨고, 큰 비가 오면 사람들이 건널 수 없던 마을 앞의 내에 다리도 놓아 주셨다. 그렇게 바쁘게 지내다 보니 신학대학에 가 공부를 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 되어 버렸다. 무엇보다 사역에 지식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그것만을 의지하여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셨기에 스스로 공부하며 목사가 될 생각은 아예 내려놓고 마셨다.

그러나 전도사님께선 그로 인해 사역을 그만두고 교회를 떠나셨다. 나이 많은 전도사가 젊은 목사의 계급(?)한테 무시를 당하다가 모멸감을 견디지 못하고 교회를 사임한 것이다.

 

드린 십일조로 인해 겪은 어려움들

그 후 교회는 몇 번인가 교역자가 바뀌었다. 오신 분들은 역시 전도사님들이었다. 한 번은 필자가 많은 교인들 앞에서 헌금으로 인해 전도사님으로부터 망신 아닌 망신을 당했다. 헌금을 무명으로 하는 것은 교역자를 무시하는 것이고 교역자의 축복을 바라지 않는 것이므로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태도가 하도 완강하여 필자는 함구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어떻게 교역자를 무시하는 것이며, 축복을 하고 싶으면 이름을 밝히지 않고 드렸지만 하나님께서는 누구인지 아실 터이니 그 마음씨를 어여삐 여겨 축복해 주시라고 기도드릴 수 있을 터인데……’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도 아니었지만, 무슨 말을 한다 해도 득이 될 게 없겠다 싶어 입을 다물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의 교육부가 문교부였던 시절 필자는 정부의 파견으로 일본에 가 재외 교포들의 민족교육을 주업무로 하는 가운데 정치 아닌 문화면에서 민간 외교관으로서의 일을 했다. 그때 필자는 십일조를 교회에 하지 않고 십일조통장을 따로 만들어 꼬박꼬박 거기에 넣어 두었다. 귀국하여 모교회에 하기 위해서였다.


일본의 교회들은 대개가 한국의 교회들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열세인데다가 농촌에 있는 필자의 모교회보다 재정상태가 더 나빴지만 필자는 그리했다. 모교회를 향한 사랑 때문이었음에는 분명하지만, 필자가 좀 더 성숙한 신앙으로 자라 있었다면 결코 그리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3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귀국한 필자는 모교회에 그 십일조를 드리고 유학을 위한 출국준비를 서둘렀다. 귀국 전에 몇 해 전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일으킨 해일로 한바탕 난리를 치른 센다이 소재 도호쿠 대학(東北大學) 대학원의 입학시험에 합격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때 또다시 드린 십일조 때문에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 시골에서는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무명으로 했는데도 소문은 교회 밖으로까지 퍼졌고, 관할 경찰서에서 조사까지 나왔다. 조총련을 통해 받은 북의 돈이 아닌가 해서였다. 문중에서는 교회에 그렇게 큰돈을 희사하면서 종중에는 왜 한 푼도 내지 않느냐 했고, 국민학교 동창회(동기)에서도 돈을 좀 내 놓으라며 윽박질렀으나 응하지 않자 욕을 해 댔다.


석‧박사과정 5년의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필자는 드린 십일조 때문에 또 한 번의 홍역을 치러야 했다. 박사과정까지 마쳤으나 와 달라는 대학이 없다 보니 입에 거미줄을 치지 않게 하려 다시 국민학교에 복직을 해서 10개월 정도 가르치다가 받아주는 데가 있어 어느 명문 사립 고등학교로 옮겼다.

그때 받은 퇴직금과 고향의 땅을 판 돈의 십일조를 했다. 당시 우리 가정은 백 명 남짓 모이는 교회에 출석했는데, 재정 상태가 좋지 않은 교회로서는 결코 작은 액수가 아니었다. 역시 무명으로 했지만 작은 교회이다 보니 누가 했을 거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처음엔 목사님도 장로님도 교인들도 쉬운 일이 아닌데 대단한 신앙이라고 칭찬이 자자했다. 그런데 며칠인가 지나자 웬일인지 목사님과 장로님을 비롯한 교인들의 필자를 보는 눈이 싸늘해지기 시작했다. 목사님이나 장로님으로서도 필자를 대하기가 신앙적으로 버겁게 느껴져 교인들에게 험담을 한 결과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런 일이 있기 전 필자는 목사님께 하나의 건의말씀을 드린 적이 있었다. 그때의 그 목사님께서 새로 부임하시기 전에는 장로님이 두 분이셨다. 한 분은 목사님의 매형으로 재력도 있고 영향력도 크셨으나 다른 한 분은 그러지 못하셨다. 그런데 목사님이 자기의 매형인 그 힘 있는 장로님과 손을 잡고 당회에서 다른 교회와 목사를 맞교환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결과로 그때의 목사님이 오시게 된 것이다. 그런데 떠나신 목사님의 매형이신 그 장로님께서는 교역자를 바꾸어 놓고는 교회를 옮겨 가고 말았다.


혼자가 된 힘없는 장로님의 어깨가 무척이나 무거워 보였다. 그래서 필자가 목사님께 아주 조심스럽게 장로를 한 분 더 뽑자고 건의를 한 것이다. 제가 장로가 되고 싶어서라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기에 “교인들이 뽑아 주지도 않겠지만 만약 뽑아 준다 해도 저는 장로를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약속도 했다.


필자의 건의는 받아들여졌고, 노회로부터 두 명의 장로를 더 뽑을 수 있도록 허락도 받았다. 장로를 뽑는 날 고심 끝에 필자는 고향으로 가 모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당사자가 교인들의 눈앞에 있으면 단 몇 표라도 더 나와 뽑힐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뽑히고 말았다. 필자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괴로웠다. 뽑아주어도 안하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투표 결과를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사양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2주 동안 기도하고 결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기도를 해도 약속은 역시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었다.


필자는 말씀드리기 위해 목사님께 교회로 좀 나와 주십사 부탁드렸다. 평소에는 무엇인가 이야기할 것이 있으면 사택으로 찾아뵈었는데, 그때만은 사안의 중대성 때문에 그리한 것이다. 말을 들은 목사님은 그냥 투표결과대로 하라며 설득하려 하셨으나 필자로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결국 목사님은 순종치 않는다며 화를 내셨다.


그런 일에 십일조 사건까지 겹쳐지자 그 뒤로의 설교는 온통 필자에 대한 비난으로 채워졌다. 우리 가정은 하는 수 없이 교회를 옮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연을 다 이야기하려면 한이 없지만, 어떻든 우리 가정은 견딜 수가 없어서가 아니라 목사님께서 우리 때문에 더 이상 죄를 짓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옮길 결심을 한 것이다.


옮긴 교회는 사오백 명 정도 모였는데, 주보에 실린 칼럼을 보니 내용이 정말이지 좋았다. 문장만 좀 다듬는다면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글이었다. 필자는 목사님께 문장을 이리이리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목사님께서는 본래 문필에 소질이 있으셨던지 문장도 바로 좋아졌다. 필자는 책으로 펴내는 것이 어떻겠느냐 말씀드렸다. 목사님은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책을 낼 수 있겠냐 하셨지만, 필자가 원고의 손질을 했다. 컴퓨터가 일반화되기 전이었던지라 수정해 가며 한 자 한 자를 원고지에 옮겨 썼다. 그리고 목사님을 모시고 국민일보 출판부에 가 거기에서 책을 내기로 구두계약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책이 출간되고부터 시작되었다. 책이 나오자 필자를 대하는 목사님의 태도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당신의 책이 필자의 도움으로 나오게 된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는 중에 교회에서는 장로를 몇 더 세우기로 했고, 그때 십일조는 다시 한 번 문제로 대두되었다. 십일조를 한 교인들의 이름을 주보에 올리고 있었는데, 무기명으로 헌금을 하는 필자이다 보니 거기에 이름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때까지 그에 관심이 없었던 교인들은 장로 선출을 앞두고서야 십일조를 하지 않을 임 집사(필자)가 아닌데 주보에 이름이 없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 목사님께 여쭙기에 이르렀다. 목사님께서는 주보에 이름이 없으면 안 한 것이 아니겠냐며 십일조도 안하는 사람은 장로의 자격이 없는 것이라 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목사님께서는 필자가 이름을 밝히지 않고 십일조를 포함한 헌금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결국 필자는 불과 몇 표 차이로 장로가 되지 못했다.

 

헌금은 이름을 밝히지 않고 하는 것이 옳다

이름을 밝히지 않는 필자의 헌금은 일반교인에서 부교역자로 바뀌면서 끝이 났다. 교역자가 십일조도 안한다는 오해를 받는다면 사역에 이로울 게 없고 교회에 미치는 영향도 작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기명으로 헌금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당당뉴스에 실린 신성남 집사님의 “무기명 헌금을 장려하자”라는 주장의 글을 읽고 필자는 지금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비록 사역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 기명으로 헌금을 하고 있는 필자이지만, 지금 역시 하나님께 드리는 물질 또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처럼 드려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교회의 헌금방법이 기명에서 무기명으로 바뀐다면 헌금의 감소는 불을 보듯 빤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무기명으로 하여 감소된 만큼의 헌금은 엄격히 말하면 헌금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람들에게 자기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 어떻게 하나님께 드리는 게 되겠는가.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또는 “사람의 칭찬을 받으려고” 무엇인가의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자기 상을 이미 받았다”(마6:1-2 참조)고 말씀하고 계신다. 사람들로부터 칭찬받는 것만으로 헌금이라고 낸 돈을 날려 버리고 만 것이 되니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목사들 중에도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는 분들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많은 분들은 그 같은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알지만 헌금이 줄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고쳐 보려는 생각도 않은 채 당연한 일로 자신의 영성을 마비시키고 있는 것일 게다.

헌금이 준다면 교회에서의 사업도 줄이면 된다. 재정 때문에 교회를 운영할 수 없다면 문을 닫는 것이 좋다. 하나님의 교회인데 어떻게 그런 망발을 할 수 있느냐 할 사람도 있겠지만, 내 교회만이 하나님의 교회는 아닐 터이다. 운영이 어려워 문을 닫게 되면 교인들을 하나님의 뜻에 따르려 애를 쓰는 교회로 보내면 된다. 교회가 문을 닫거든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하고,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날품이라도 팔아야 한다. 믿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리해야 한다.


물질로 성도들에게 부담을 주어 괴롭히는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다. 그리고 헌금이라는 명목으로 교인들의 돈을 짜내는 교회도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다. 그렇게 짜낸 헌금 아닌 헌금으로 하는 사업은 어떠한 것일지라도 하나님의 일이 될 수 없다. 전능의 하나님께서 힘이 모자라 당신의 자녀들에게 일을 하라 하신 것이 아니다. 자녀들과의 바른 관계를 위하여 일을 시키신 것이다.

필자는 신성남 집사님의 주장에 적극 찬동한다. 아니 그런 캠페인이라도 벌이고 싶다. 내가 아닐지라도 누군가 나서서 그래 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네가 하면 될 것을 왜 남에게 미루느냐 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나 옳은 일이라고 다 뛰어들 수는 없는 일이다. 사람마다 맡겨진 사명이 같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은퇴를 했다고는 하지만 목사임에는 틀림이 없기에 필자는 아직 헌금을 기명으로 할 것인가 무기명으로 할 것인가를 정하지 못하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담임목사라면 무기명의 헌금을 가르치며 솔선수범하면 되겠지만, 은퇴목사가, 그것도 타교회에서 굴러들어온 목사가 만약 그렇게 주장한다면 교회는 작지 않은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좀 더 기도하는 가운데 좀 더 고민하며 생각한 뒤 자신의 헌금방법을 정하려 한다.

 

십일조를 칼같이 하고도 복을 받지 못한 필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부흥강사를 위시한 많은 목사들이 십일조를 강조하여 말할 때 약방의 감초처럼 인용하는 말씀이다. 그런데 그래도 명색이 목사인데 필자는 부끄럽게도 아무리 머리가 깨지도록 생각해도 이 말씀을 이해할 수가 없다. 주석 같은 관련 자료를 뒤져 읽어 봐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주석은, 하나님은 결코 인간의 시험대상이 될 수 없는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말라기를 통하여 그분께서 이처럼 말씀하신 것은 당신의 능력을 정말로 시험하라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당신께서 약속하신 축복을 누릴 수 있는지 확인해 보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많은 학자들은 ‘시험하다’는 말을 ‘증명하다’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는 역시 이 말씀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필자는 이에 더 이상 매달리려 하지 않은지 이미 오래이다. 십일조가 구약의 율법에 의한 것이니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든 아니든 필자에게는 그게 그리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맞다 생각하는 사람은 안하면 그만이고, 맞지 않다 생각하는 사람은 하면 된다. 목사로서 무책임한 말이 아니냐고 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이를 전적으로 규명하려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고, 필자에게는 필자 나름의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글에서도 이미 밝혔듯이 필자는 십일조를 자신이 하나님께 드릴 물질의 최저선이라는 생각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십일조를 몇 십년동안 칼같이 해 왔고 지금 역시 그런 딱딱한 자세로가 아니라 좀 더 유연한 마음으로 계속하고 있지만, “쌓을 곳이 없도록”은 커녕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형편에 지나지 않는다. 이리되면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드린 십일조에 문제가 있어서이나 보다고 은근슬쩍 얼버무리고 만다. 그러나 필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십일조를 드리며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받기를 원하지도 않았거니와 근근이 살아가는 것이 더없는 축복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용할 양식”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야 말로 가장 큰 축복을 받은 사람이 아니겠는가. 건방진 말로 들릴지 모르지만, 필자는 “일용할 양식”으로 근근이 살아가지만 재벌 못지않은 부요함을 누리고 있다. 은혜! 은혜이다.

십일조를 포함한 헌금은 하나님의 환심을 사서 무엇인가를 얻어내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거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헌금은 받은 은혜가 감사해서 드리는 마음이다.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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