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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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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로인해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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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루터와 종교개혁에 대해 전적으로 감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우리는 정신적 편협함의 사슬에서 자유롭게 되었고, 우리의 근원으로 되돌아갈 수 있게 되었으며, 기독교라는 그 순수함 속에서 모든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땅에 발을 확고하게 딛고 서 있을 수 있는 용기를, 그리고 성령을 받은 인간 본성 안에서 스스로를 느낄 수 있는 용기를 다시 갖게 되었다.


            -괴테(1749~1832), 1831년 에케르만과의 대화에서


                        <루터의 재발견>에 최주훈 지음, 복있는사람 펴냄)에서



루터로인해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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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루터와 종교개혁에 대해 전적으로 감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우리는 정신적 편협함의 사슬에서 자유롭게 되었고, 우리의 근원으로 되돌아갈 수 있게 되었으며, 기독교라는 그 순수함 속에서 모든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땅에 발을 확고하게 딛고 서 있을 수 있는 용기를, 그리고 성령을 받은 인간 본성 안에서 스스로를 느낄 수 있는 용기를 다시 갖게 되었다.


            -괴테(1749~1832), 1831년 에케르만과의 대화에서


                        <루터의 재발견>에 최주훈 지음, 복있는사람 펴냄)에서


지금 아니면 언제 행복할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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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jpg7유형 - 기쁨을 추구하는 사람

두 번째


핵심동기 : 기쁨

자신의 시각"즐거움, 열정, 호기심

타인의 시각: 회피, 다재다능, 낙관적

 

7유형은 기발하고 다재다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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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뇌 회전이 빠르고 비상한 7유형은 무엇이든 빨리 배웁니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고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지요. 그래서 상대방은 7유형에게 걸어 다니는 만물박사’, ‘세련된 팔방미인별명을 붙여줍니다. 잡화사전이라는 별명도 있는데 이는 여러 방면의 지식을 알고 있으나 전문가는 아니라는 뜻이 숨어져 있지요.

 

풍부한 상상력과 무궁무진한 창의력으로 7유형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시합니다. 긍정적일 때 이들은 창조적인 생각과 가능성으로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을 고안해 내지요. 그러나 꼼꼼하고 세밀했던 계획들은 생각자체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7유형은 접하지 못했던 문물의 배움을 좋아해서 처음 할 때는 집중을 잘합니다. 하지만 깊이 파고들지는 못하지요. 시작한 일에 열중하기보다는 이일 저일 자유롭게 옮겨 다니기에 끝마무리가 약합니다.

 

사례 1> 1년 동안 각종 취미생활 배우려 다니기 :

- 인테리어 -> 웃음치료 -> 약초학 공부 등등

*자격증 획득이 아님. 배우는 자체를 즐긴다.

 

사례 2> 잦은 직장생활 이동

 

7유형에게 성취감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계획했던 작업과 결과물이 실패를 해도 말이지요. 이들은 새로운 세계에 도전했다는 것, 시도했다는 것 자체를 즐기고 중요시 여깁니다. 그래서 가족과 타인으로부터 주변이 산만하고 책임감과 지구력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사례 3> 7유형의 어느 신부님 :

- 강의하는 것이 자신감 있고 즐거워서 강의 요청이 오면 모두 수용한다.

그러다가 펑크를 냄. 같은 시간에 강의가 겹치는 줄 모름.

 

 

이것이 지나칠 때 관계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자신은 여러 가지 풍부한 경험이 좋다고 하나,

타인으로부터는 전문성과 경력이 약하다는 말을 듣습니다.

7유형의 실력은 인정하나 선뜻 중책을 맡기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7유형은 행복의 순간을 위해 열정적인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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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유형의 행복이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열정적으로 몰입할 때의 그 순간을 말합니다. 이들은 행복을 맛보기 위해 어떤 것이든 생각과 일에 있어서 흥분과 자극을 원합니다. 이러한 행복을 만끽하기 위해 항상 열린 마음으로 살지만, 지루한 것은 너무 너무 싫어합니다.

 

7유형이 추구하는 삶은 항상 기쁨과 충만함, 능동적인 활력이 넘치며 멈추지 않고 활동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달력에는 즐겁고 흥분되는 계획들로 쉴 새 없이 짜여 있습니다. 반면 괴로운 일은 기꺼이 접어두거나 미루거나 무시하지요.

 

사례 4> 7유형의 여행 계획표 :

*쉬는 시간 없이 끝없이 온갖 체험 및 모험 즐기기

- 1: 김포공항 -> 제주 도착 및 숙소 도착 -> 밤낚시 및 일출

- 2: 아침 맛집 -> 해수욕장 수영 -> 스쿠버 다이버 -> 맛집 탐방 ->

야시장 -> 숙소 도착

- 3: 성산일출봉 -> 우도 -> 맛집 순회 -> 숙소 도착 -> 바비큐 파티

- 4: 오름 -> 맛집 탐방 -> 중상절리 -> 동문시장 -> 제주공항 ->

면세점 쇼핑 -> 김포공항 도착

 

행복을 즐겨야 할 시간은 지금이다. 행복을 즐겨야 할 장소는 여기다라는 말처럼 7유형은 행복하기 위해 어떻게 하면 멋진 시간을 보낼 수 있는지를 발견하는 데에 무서울 정도로 천부적 감각이 있습니다. 이들의 행복은 어떤 한계를 두지 않고 모든 일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세계입니다. 무엇을 완전히 몰두하여 경험하거나 성취하는 열매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지나칠 때 관계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자신은 활기 있는 사람, 융통성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요.

상대방은 노는 것만 좋아하는 사람, 신중하지 않고 가벼운 사람으로 비춰집니다.

 

누가 마음을 멸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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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일종사는 19세 때 연화산 서축림으로 삭발 출가한 뒤, 찬석산 자연정원에서 위암 법사로부터 <사십이장경>과 <이산선사발원문> 등을 배우고, 22세 때 소관 남화사에서 허운 화상(1839~1959)으로부터 구족계를 받았다. 이후 복인 화상의 의발 시중을 들고 있던 어느 날, 은사인 허운 화상이 중국의 내우외환으로 민생이 피폐해지고 불법이 쇠퇴해짐을 개탄하였다. 이때 성일 종사는 단호한 의지로 "그렇지 않습니다! 불법은 마음인데, 누가 마음을 멸할 수 있겠습니까"라며 정법 수호에 한 치의 물러섬이 없었다.


 근대 중국 불교의 4대 고승 성일 종사의 3일 3강 <반야심경 선해>(성일종사 지음. 서재홍 역주, 담앤북스 펴냄)에서

여성수도자의 마지막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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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0김원1.jpg» 기도하는 모습의 박공순 원장. 사진 김원



벽제 동광원의 박공순 원장이 별세했다는 소식을 받았다. 87세였다. 몸소 농사일과 공동체 집안일을 다 해온 박원장은 노환으로 거동이 어려워지자 한달반동안 곡기를 끊고 단식을 하고선 귀천했다. 밝고 맑은 모습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갔다. 


 내가 벽제동광원에 가서 박공순 원장을 인터뷰한 것이 2005년이었다. 그 해부터 이원 사진작가가 매주 벽제동광원을 방문해 박 원장과 공동체의 삶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의 마지막 가는 모습도 찍어 <한겨레>의 인터넷웹진 ‘사진마을’에 있는 ‘이원의 여시아견’에 올렸다. 그 사진을 보니, 박 원장이 어떻게 갔는지 잘 알수 있다.


 오늘 점심 때 동료들과 식사를 하면서, 추석을 앞두고 ‘앞으로 우리들 세대엔 성묘도 하기 어렵고, 제사도 지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대화 끝에 죽음에 대해서까지 얘기했다. 수명이 길어져 거동도 제대로 못하고 정신도 제대로 못 차리는 상태로 장수를 누린다는 게 축복만은 아닐 것이라는 얘기들을 하다가 박공순원장의 부음을 들었다.


 미국의 환경가 스콧니어링도 백세가 되자 곡기를 끊었다. 간디의 제자 비노바바베도 생의 마지막에 80일간 단식으로 삶을 마무리지었다.


 인간이 연로해 신체적으로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박약해지면 생명에 대한 본능이 더욱 강하게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에 스콧니어링이나 비노바바베나 박공순과 같은 삶은 평소에 수도로 연단해온 강한 정신력으로 인해 가능할 것이다.


 더구나 마지막까지 생과 사가 둘이 아닌 여여한 모습을 보인 고승이나 기쁨으로 생을 마감한 박공순의 스승 이현필의 모습은 수도자들의 귀감이 아닐 수 없다.


 박공순의 스승 이현필(1913~1964)은 ‘맨발의 성자’ 또는 ‘동방의 성 프란체스코’로 불린다. 이현필은 1950년 한국전쟁 중 전라도 광주에서 오갈 데 없는 고아들을 돌보았다. 그리스도적 사랑의 실천과 완전한 순결의 기독교공동체를 꿈꾼 이현필 선생은 끼니를 잇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던 당시 “내가 밥을 먹으면 다른 사람이 먹을 몫이 줄어든다”며 거의 밥을 입에 대지 못한 채 피골이 상접한 몸으로, 겨울철 눈보라 속에서도 맨발로 걸어다니며 고아와 장애인들을 먹여살렸다. 그는 폐결핵 환자를 돌보다 쉰한살에 폐결핵으로 숨을 거뒀다. 예수 그리스도가 산상수훈에서 말한 사랑을 그 만큼 몸으로 실천한 사람이 있을까.


 이현필이 설립한 동광원에서 고아를 돌보는 이들은 이현필을 따르는 언님들이었다. 언님들은 자녀를 데리고 집을 나와 동광원에 합류한 이들이기에 자기들 자식들도 있었다. 그런데 동광원에서는 자기 자식들과 고아들을 전혀 차별하지 않고 자기 자녀들을 고아들의 무리 속에 넣어 똑같이 키웠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똑같았다. 먹어도 같이 먹고, 굶어도 같이 굶었다.


 그 때 아이들이 오는대로 받다보니 먹이고 재우는 아이들이 무려 600명이 넘어섰다고 한다. 제대로 허가받은 고아원도 아니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너무 많아지자 시청에서 아이들을 모두 다른 고아원으로 분산시켰다. 가까운 데로 보내면 아이들이 다시 찾아온다며 멀리 순천과 목포로 보내버렸다. 그런데 며칠 뒤 아이들이 절반 이상이 돌아왔다고 한다. 걸을 수 없는 어린아이들을 빼고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며칠 동안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동광원을 찾아왔다. 먹을 것도 없어 굶기를 밥 먹듯 하는 동광원이 그래도 좋다고 찾아온 것이다. 고아들을 자식처럼 대하는 그곳이 어떤 곳보다 좋았던 것이다.


 동광원이 특이한 것은 헌신적인 사랑만이 아니었다. 이현필로부터 훈련 받은 언님들의 삶은 경이로움 자체다. 늘 남 앞에서 무릎을 꿇고 대하는 겸손함이 몸에 베인 태도와 엄격한 순결, 그리고 애처롭고 아름다운 찬송과 절제된 규율이 있다.


 그런 삶을 따르는 제자들이 남원동광원과 벽제동광원, 화순동광원, 무등산동광원, 광주 귀일원 등에서 공동체로 살아가고 있다.

719김1.jpg» 박공순 원장 지난 7월의 모습. 사진 김원


719김원2.jpg» 죽음의 단식을 하며 미소짓는 박공순 원장. 사진 김원



810김원2.jpg» 사진을 찍는 김원 작가에게 잘가라며 이승의 이별을 고하는 박공순 원장. 사진 김원


  경기도 벽제 동광원에서 본 박공순 등 언님들도 감동 그 자체였다. 벽제동광원은 벽제 시립묘지에서 광탄쪽 외길로 20여분을 달려 개명산 자락에서 흘러온 계곡물을 따라 올라가면 나온다. 


 그곳을 찾았을 때 박공순 원장은 한국땅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지 오래된 홀태로 벼를 탈곡하고 있었다. 그 옆에선 80~90살할머니들이 토란대를 다듬고 있었다.


 부양 받아야할 나이의 노인들이 많아 스스로 힘으로 살아가기엔 벅차보이기만 하지만, 이들은 일체의 원조 없이 자립하고 있었다. 


 수입이 거의 없으니 오직 집앞 밭과 산에서 나는 제철음식과 나물들만으로 살아갔다. 그러니 이곳에선 무 꼬랑지 하나도 버려지는 것이 없었다. 땅 한 뼘에 들이는 공도 남달랐다. 홀태질하는 벼도 밭고랑 사이 두세 뼘의 땅에 남이 버린 모를 꽃아 놓았던 것이 자랐다. 


 흙집 뒤 처마 밑엔 이들이 지게지고 산에서 해온 겨우살이용 나무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지난 56년 이곳보다 산에 더 가까운 앵무봉 밑에 풀로 엮은 초막에서 화롯불조차 없이 기도만으로 겨울을 날 때에 비하면 이마저도 호사라고 했다. 


 ‘언님’들은 그 산에서 봄에는 나물만 뜯어먹고, 여름엔 쑥으로 죽을 쒀먹고, 가을엔 도토리를 주어 삶아 먹으며 버려진 땅 4천여 평을 개간해서 80년까지 가꿔 자립 기반을 닦았다. 그 뒤 수도자들이 모여들어 80년대 초반 수도자들이 대부분 광주로 내려가기 전까지는 40~50명이 이 산에서 나는 것만으로 연명하며 수도생활을 했다. 


 벽제동광원 언님들은 물질 세상에선 가장 뒤쳐진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이곳에 정착한지 20년도 넘은 77년에야 전기를 들여왔고, 95년에 방 한 칸에 보일러를 놓았다. 그마저 아까워 지금도 땔감으로 난방을 했다. 스물다섯살에 이곳에 와 50년이 다되가는 박공순 원장은 그 많은 농사를 지으면서도 농약 한 번 쳐본 적이 없고, 풀을 베 썩힌 것만을 거름으로 써왔다. 바깥 사람이 보기엔 너무도 힘든 삶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군불 지피던 할머니는 “세상에 이 보다 좋을 순 없다”고 한다. 이런 궁벽한 곳의 무엇이 이렇게 잔잔한 미소를 가져다주었을까. 박공순 원장은 “숨쉬는 것이 기도지요. 하나님이 주신 공기를 마시는데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소”라고 했다. 그는 “가지면 더 갖고 싶고, 하나님마저 이기려는 게 사람 마음 아니겠소”라고 했다. 


 박공순 원장은 후두결핵으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도 대자연의 모든 것이 감사하던 스승의 마지막 모습을 전해주었다. 이현필은 1964년 3월 17일 새벽 3시 이현필은 53세로 임종하면서 “내가 죽으면 죄인이 죽은 시체이니 절대로 관에는 넣지 말고 헌 가마니에 둘둘 말아서 사람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길가에 묻어 주고, 죄인의 송장을 사람들이 밟게 하시오”라고 당부했다.


 이현필은 황홀경에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그는 “오! 기쁘다. 오! 기뻐! 오메, 기뻐서 못 참겠네. 이 기쁨을 종로 네 거리에 나가서 전하고 싶다. 제가 먼저 갑니다. 다음에들 오시오”라고 눈을 감았다.


 그는 마지막을 “아, 기쁘지 않은가. 아~ 사랑으로 모여서 사랑으로 지내다가 사랑으로 헤어지라!”고 그가 평생 살아온 삶 그대로를 유언으로 남겼다.  이현필은 “청빈과 순결만이 세상을 이기는 길”이라는 유언을 남겼고, 언님들은 그 유언대로 철저히 순결하고 청빈하게 살았다. 박공순 또한 그의 스승처럼 갔다.


친구에게 너무 솔직해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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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 어린 비판도 때론 숙성의 시간이 필요

인생의 ‘똑똑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토론회 때 살짝 거론한 비판이

창으로 되돌아올 때 당혹감


인정욕구도 지나치면 병


유대감 깊어지길 기다리는 게 현명



1-.jpg»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옥시모론’(Oxymoron)이란 표현 들어보셨나요? ‘소리 없는 아우성’ ‘침묵의 소리’ ‘어두운 빛’처럼 서로 반대되는 단어를 배치해 특정한 상황을 더욱 강조하거나 읽는 독자의 관심을 끄는 문학적 기법을 말합니다. 우리말로 표현하면 ‘모순어법’입니다. ‘쓸수록 번다’라는 카드 회사의 카피 문구처럼 광고에서도 가끔 쓰입니다. 서양에서는 카페나 식당 이름으로도 쓰입니다. 그만큼 이 시대는 상호 모순되는 생각과 행동이 지배한다는 증거겠지요. 하지만 가끔 그런 모순적 생각이 지나쳐 주변을 괴롭히는 상황으로 만들 때도 없지 않습니다.


글쓰기 모임에 참석했다가 혹독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30대 여성의 사연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약 두달 정도 강좌를 들은 뒤, 각자 글을 써서 참가자들 앞에서 합평회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참석자 가운데 상담자가 ‘왕언니’라고 부를 정도로 허심탄회하게 지낸 분의 글을 합평할 차례가 되었는데, ‘왕언니’는 활달한 성격에다 명문대학 출신으로 아는 것도 많아 모임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분이었습니다. 발표가 끝난 뒤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느낌과 의견을 말하는 순서가 찾아왔습니다. 다른 참석자들 대부분 낯 뜨거운 칭찬과 공치사를 주로 늘어놓았지만, 실제로는 글을 꼼꼼히 읽지 않은 눈치였습니다. 그 왕언니는 상담자를 지목하며 “다른 분들의 애정 공세가 심하니 이제는 진정한 애정으로 예리한 비평을 해달라”고 했다 합니다. 상담자는 먼저 잘된 것을 주로 언급한 뒤, 발언을 끝맺기 전 특정한 문장과 글의 결말이 조금 아쉬워 보였다고 살짝 말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지적하고 싶은 것의 10분의 1정도만 말할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 전혀 예상치 못한 그 언니의 반응이었습니다.


“참 많이 아시는군요?”


똑 쏘아붙이더니 그것으로 끝이었다고 합니다. 늘 옆자리에 앉아 있기에 자매간 아니냐는 농담을 들을 정도였지만, 그 이후 상담자는 왕언니와 말을 섞을 기회조차 얻지 못했습니다. 몇번이나 다가가서 설명하고 미안하다는 말까지 했지만 얼음장 같은 차가움만이 되돌아왔습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이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럽다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비슷한 어려움을 겪습니다. 군대에서 ‘소원 수리’를 잘못했다가 얼차려 당한 경험, 직장 초년병 시절 사장님이나 본부장님이 주재하는 모임에서 ‘청년의 기백으로 회사의 문제점을 솔직하게 얘기해달라’는 주문을 받고 지나치게 솔직하게 말했다가 불이익을 받았다는 전설 같은 일화들을 어렵지 않게 듣습니다. 조직의 소통 부재가 문제라고 하면서 정작 그 문제점의 당사자가 리더 자신이라는 것은 모릅니다. 그리고 애써 다른 데서 원인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소통이란 기실 자기의 얘기를 들어줄 일방적 통로였던 것입니다. 아랫사람이나 상대방이 전하려고 하는 언로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애정 없는 사랑고백’에 취해 있기 때문입니다. 모순어법 인생인 셈입니다. 들을 준비가 조금도 안 되어 있는 사람에게 ‘애정 어린 비판’을 조심해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모순어법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또 다른 포인트는 ‘열등한 우월감’입니다. 그 왕언니는 늘 자신이 모임을 지배하고 관계를 이끌어야 한다는 우월감으로 가득한 것 같습니다. 지배욕구 한편으로 사람들로부터 끊임없이 인정받기를 원하는 인정욕구 역시 강한 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한다고 칭찬받고, 모임에 가면 인기가 있는 사람 가운데 의외로 인정욕구 중독자들이 있습니다. 적절한 인정욕구는 발전의 좋은 동기로 작용하지만 무엇이든 지나치면 병이 됩니다. 어느 때나 어디서든 인정을 받아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그만큼 괴로워하는 사람들입니다. 과장된 행동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무대 증후군’을 앓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연예계, 방송사 등에서 종종 목격하는 일종의 ‘스타병’이라는 겁니다.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왕자병’ ‘공주병’에 걸려 있습니다. 나이를 먹고, 덩치가 커졌지만 ‘우쭈쭈, 우쭈쭈’ 하면서 자신의 응석을 받아주길 원하는 거죠. 열등감과 우월감 사이를 열심히 왕복달리기합니다. 정치인, 경영자, 지식인들이 특히 심하지만 일반인에게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평소 가깝다고 생각했던 후배의 가벼운 코멘트조차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을 보면, 그 왕언니 역시 그중 한명인 듯싶습니다. 내면에 뭔가 결핍이 가득해, 열등감으로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겠죠. 우월감에 상처를 입었고, 자신의 지배에 대한 항거로 받아들이는 듯합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친구와 팔로워가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가끔 보이는 현상입니다. 이런 성향을 가진 분들에게는 예리함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 때가 많습니다. 우정 어린 코멘트를 공격이나 자신을 무안하게 만들 의도로 오독합니다. 사랑과 애정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조언은 무력합니다. 오히려 적을 만들기도 합니다. 토론회에서 승자가 될수록 인간관계에서는 패자가 되는 이치입니다. 인생의 ‘똑똑 바보’들이죠.


사람 관계에는 때가 있습니다. 장이나 술을 담글 때도 발효 시간이 필요하듯 정서적인 깊은 유대감이 형성될 때까지 또는 두터운 신뢰가 생길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물론 사람마다, 관계마다 그 시간 길이는 다릅니다. 과장된 표현에 주의해야 합니다. ‘형 동생 사이로 지내자’ ‘우리 오늘부터 말 놓고 친구로 지내자’는 사람일수록 빨리 헤어지는 이유입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인정받기의 유무입니다. ‘친구랑 빨리 헤어지고 싶다면, 솔직하게 다 말해줘라’는 서양 격언이 있는 이유입니다. 비판하고 싶은 욕구를 잠시 누르고 기다려주는 것이 현명합니다. 뭔가 애정 어린 비판을 원한다면, 한번 더 침을 삼키고 기다리세요. 적절한 때가 올 겁니다.


상처를 보듬어줄수 있는자가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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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jpg


머로우라는 사람이 캘빈 클릿지를 저녁 파티에 초대하였다.
클릿지는 미국의 정치가로서 국민들 사이에
대통령 감으로 입에 오르내리던 사람이었다.
쿨릿지가 사정 때문에 먼저 연회장을 떠나고 난 뒤에
머로우는 쿨릿지가 미국의 대통령 자리에 올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함께 있던 다른 사람들은 
머로우의 그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쿨릿지는 너무 조용할 뿐 아니라
어떤 분명한 성격이나 특징이 없다는 것이었다.
누구도 그런 사람을 대통령 감으로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들은 말했다.

그때 머로우의 여덟 살바기 딸 앤이 나서며 말했다. 
"나는 그 아저씨가 좋아요.
아저씨는 틀림 없이 대통령이 될 거에요."
앤은 반창고가 부쳐진 작은 손가락을 내밀며 말했다. 
"파티를 하는 동안 내가 다친 손가락을 걱정해준 분은
바로 그 아저씨뿐이거든요."
앤은 웃음을 지으며 덧붙여 말했다. 
"그렇게 때문에 그 아저씨는 좋은 대통령이 될 거예요."

어린 앤의 생각대로 캘빈 쿨릿지(Calvin Coolidge,1872-1933)는
미국의 제 30대 대통령이 되었다.

캘빈 쿨릿지 대통령이 자기 고향 마을 사람들을 
백악관으로 초대했다.
그런데 초대받은 고향 사람들은 백악관 식탁에서의 매너를 
몰라 고민에 빠졌다.

그 때 한 사람이 대통령이 하는 대로 따라하자고 제안했다.
이 전략은 그럭저럭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식사가 끝나갈 무렵 커피가 나오자
대통령이 자신의 커피를 커피 잔 받침 접시에 붓는 것이었다.
손님들도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따라 했다.

대통령은 거기에 설탕과 크림을 탔다.
손님들도 그대로 했다.
쿨릿지는 몸을 굽혀 그 접시를 식탁 밑에 있는 
고양이에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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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일만을 하는 사람이 큰 지도자가 아닙니다.
좋은 지도자는 겸손하고 온유하며
기본적으로 양을 돌보는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국민의 고통을 알고 마음 아파하며 국민의 편에 서서 고민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지도자가 좋은 지도자입니다. 

어린 아이의 손에 있는 조그만 상처에도 관심을 가지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정말 큰 지도자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사람이어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는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 (마태복음 10:43,44)


세속 즐거움이 진정한 행복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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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수사진.jpg


우리는 세속적인 집착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티브이를 보고 
어느 정도 정신없이 수다 뜰고 
어느 정도 여흥을 취하고 
어느 정도 술을 마시고
어느 정도 게으름을 피고
때로는 소풍을 가고
때로는 갈비를 먹고
때로는 여행을 해야 합니다. 
괜찮아요. 우리는 성자가 아닙니다. 스스로를 좀 봐주세요. 
다만 적당히 하세요. 그리고 세속적인 즐거움이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즐기세요. 실체가 없고 환영 같은 가상적인 즐거움을 집착없이 즐기세요. 
그리고 깨어있으면서 하세요. 깨어있음을 더 많이 가질수록 세속적인 즐거움에대한 집착과 의지가 자연스럽게 떨어집니다.

Because we have worldly attachments,
We have to watch TV to an extent. 
We have to gossip to an extent. 
We have to indulge in entertainment to an extent. 
We have to drink alcohol to an extent. 
We have to be a tourist to an extent. 
We have to be lazy to an extent. 
We have to go on a picnic sometimes. 
We have to eat burgers sometimes. 
It's OK. We are not saints. Give ourselves some slack. Just not too much slack. Practice moderation. And try to understand worldly pleasures are not the source of true happiness. Enjoy the pleasures without attachment, knowing they are illusory without a reality. 
All the while, try to maintain awareness. The more we cultivate awareness, the less we rely on worldly pleasures for happiness.



미련하게 사랑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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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쉬는 사람이 사랑도 잘합니다

 사랑의 실천은 노동과도 같은 것


홍성남사진1.jpg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미국의 심리학자 로버트 스탠버그(Robert Sternberg)는 사랑을 여러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우선 길을 가다가 아주 예쁜 여자를 보고 첫눈에 뿅 갔습니다. 혹은 아주 잘생긴 총각을 보고 마음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런 이성 간의 사랑이 에로스입니다. 두 번째는 “ 우리 우정을 영원히 간직하자 ”라고 말하는, 친구 간의 사랑입니다. 이것이 깊어지면 동성애가 되기도 하지요. 세 번째는 유희적 사랑인 루두스입니다. 보통 루두스에 빠지면 이성은 마비가 되고 맙니다.


보좌신부 시절의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저… 여보세요? 성당이죠?”

“네 그렇습니다.” 

“성당에서 결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저희 신자신가요?”

“아니 신자는 아닌데 꼭 성당에서 결혼하고 싶어서요.”

“꼭 그러셔야 하는 이유라도?”

“아 그게…… 저희가 세상의 축복은 받지 못 할 관계라서요. 평범하게 결혼식은 할 수가 없어서… 그러니까 결혼을 했거든요.”

“결혼하셨다구요?”

“네. 각자 결혼은 이미 했는데 저희는 정말 너무나 사랑합니다. 그래서 신부님에게는 꼭 축복을 받고 싶어요.” 


 지금 같으면 “지랄하고 자빠졌네. 끊어”라고 했을 텐데. 그때만 해도 욕을 못할 때라 그냥 다른 곳을 추천해드렸습니다. 

“ 다른 데 알아보세요. ” 


 불륜이라고 하기도 하는 루두스는 대개 중년에 찾아오는 감정입니다. 네 번째는 마니아로 한 사람에게 정신없이 빠져드는 상태인데 심해지면 스토커 소리를 듣지요. 스토커도 종류가 다양합니다. 간이 큰 스토커들은 집 앞에서 죽치고 있습니다. 간이 작은 스토커들은 전화를 걸고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목소리라도 들으려고요. 사제관에는 주로 간이 작은 스토커들이 전화를 합니다. 보좌신부 때는 마음이 착해서 노래도 불러주었는데, 지금은 고래고래 욕을 하고 끊습니다. 마음 약한 스토커들은 보좌신부 전화를 애용하시기 바랍니다. 저한테 하면 상처받고 우울증만 심해집니다. 명동성당 보좌신부 시절에는 다른 신부의 스토커에게서 상처를 받기도 했습니다. 


“신부도 신부 나름이지” 라는 한마디가 가슴에 박혀 한동안 빠지지 않았던 것이지요.이렇게 신부들은 나이에 관계없이 1인 이상의 스토커가 따라 다닙니다. 추기경님도 예외가 아니시지요. 


 다섯 번째는 연애하다가 결혼할 즈음에 하는 현실적 사랑인 프레그마입니다. 이 사람과 결혼하면 경제적으로 잘 살까 못 살까, 사모님 대접을 받을까 못 받을까 따지면서 하는 사랑입니다. 마지막으로 신의 뜻에 따라서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아가페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아가페의 개념은 너무 수준이 높아서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따를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에게 그 수준을 요구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따라서 아가페적인 사랑을 실천하려면 몇 가지 수칙을 지켜야 합니다. 


 첫째, 모든 사람이 내가 주는 사랑을 반기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가끔 나는 마음을 다해서 사랑을 주려고 하는데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속상해하는 경우를 봅니다. 이때는 사랑을 받는 쪽보다 주는 쪽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지요. 상대방이 원하지도 않는데 주려는 것은 아가페가 아니라 상대방의 관심을 끌려는 의존적인 태도일 뿐입니다. 둘째, 사랑을 베푸는 데 꼭 감정이 꼭 일어나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가끔 사랑을 베풀려고 하는데 마음속에서 사랑하는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고민하고 자책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 사랑하는 감정이 일어나지 않으면 참으로 난감합니다. 하지만 사랑이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깊은 이해입니다. 상대방이 가진 문제를 이해하고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키우는 강아지가 병이 들어 괴로워할 때 그저 울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일까요, 책을 찾아보거나 병원에 데려가 병을 치료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일까요. 자기 감정에 겨워서 징징거리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나르시시즘입니다. 감정이 따르지 않는 사랑은 가식적인 것이 아니라 숭고한 희생입니다. 감정이 따라주면 더 좋겠지만 사실 감정에는 기만적인 요소가 많기 때문에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아도 됩니다. 세 번째, 아가페적인 사랑은 힘의 소모가 많습니다. 그래서 아가페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쉽게 지칩니다. 


몇 해 전, 어떤 분이 상담을 청해왔습니다. 자신이 갈 곳 없는 노인들을 모시고 사는데 처음에는 정성을 다해서 모셨지만 갈수록 짜증이 나서 마음이 괴롭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고해성사를 봐도 마음이 편치 않고….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3년 동안 휴가는 몇 번이나 가셨나요?” 

“휴가요? 한 번도 안 갔는데요.”

“지쳐서 그러신 거네요. 당장 휴식부터 취하세요.”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 아니라 미련 곰퉁이 같은 삶을 산 경우입니다. 중노동을 하면서 마음이 즐거울 리가 없지요. 간병을 하다보면 차라리 병자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죄책감을 느낀다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간병하는 일은 지치게 마련입니다. 환자가 죽기를 바라는 마음조차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지쳤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므로 그럴 때에는 자책할 게 아니라 쉬도록 해야 합니다.

 사랑의 실천은 노동과도 같은 것입니다. 쉬지 않고 계속하다가는 지치게 마련이고, 자칫 병이 날 수도 있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사랑 역시 모자람도 지나침도 없어야 합니다. 


빈배에 밝은달만 싣고 돌아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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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尺絲綸直下垂  천척사륜직하수

긴 낚시줄  물 아래 길게 드리우고

 

一波載動萬波隨  일파재동만파수

한 물결 일어나매 만 물결 이는구나

 

夜靜水寒魚不食  야정수한어부식

밤은 고요하고 물은 차가우니 물고기가  아니 물어

 

萬船空載月明歸  만선공재월명귀

빈 배에 밝은 달만 가득 싣고 돌아오누나



야부선사

밝은누리, 무에서 유를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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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서울 인수동·강원 홍천 밝은누리
-전체1.jpg» 강원도 홍천 서석면 효제곡길에 있는 홍천밝은누리 식구들. 뒤 왼쪽건물이 학생들 기숙사인 생활관이고, 뒤쪽건물은 교실 겸 마을밥상. 윗쪽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최철호 교장


 설립자이자 학교교장 최철호 대표
 목사보다 형·오빠·삼촌으로 불려

 신학생으로 교회도 운동권도 실망 
 더디 가더라도 스스로 답 찾아

 마을밥상 저녁식사는 ‘장터 국밥집’
 엄마들도 아빠도, 아이도 신나는 수다

 서울에는 150명, 홍천엔 100명 한가족
 직장인도 있고 이곳이 일터인 사람도

 공부와 삶이 별개가 아니다
 집짓기 수업하며 생활관 뚝딱 짓고

 어린이집·초등 과정은 서울서
 중등-고등·대학 통합은 홍천

 정부 인가 ‘학력’ 매달리지 않고
 기성의 답습이나 권위주의 버려

 
서울 강북구 인수동 청수탕골목 안으로 100여미터를 들어가면 담장 허문 1,2층 단층 주택들 뒤로 인수봉과 도봉산의 진경산수가 펼쳐져 있다. 인수동 516번지 일대는 그야말로 ‘밝은누리’다. 밝은누리는 공동체이지만 울타리가 없다. 이 빌라 저 빌라, 이 집 저집에 흩어져 마을사람들과 공존하고있다. 밝은누리가 운영하는 도토리어린이집과 저학년초등학생 12명이 배우는 살구나무배움터와 고학년초등학생들 18명이 배우는 감나무배움터도 각기 떨어져 있다. 

 그 중심에 마을밥상이 있다. 저녁식사를 하는 ‘마을밥상’은 정겨운 시골장터 국밥집처럼 시끌벅적하다. 식사를 끝낸 꼬마들 셋은 한데 엉켜 뒹굴며 만화책을 읽는다. 아기에게 젖을 물린 엄마 곁 너댓명은 수다잔치다. 이 방에만 아이들이 수십명이다. ‘저출산민국’의 모습이 아니다.

 마을밥상에서 몇미터 떨어진 카페 ‘마주이야기’에선 밥상에서 못다한 수다가 이어진다. 아이들은 품앗이로 보니 어른에겐 자유시간이 많다. 윗층 마을서원과 공방에서 조용히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인수동밥상1.jpg-인수동밥상2.jpg-인수동밥상3.jpg-인수동밥상5.jpg
서울 인수동 마을밥상

-마주이야기1.jpg» 밝은누리가 인수동에서 운영하는 카페 마주이야기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 밝은누리 식구들. 마을밥상과 마주이야기는 밝은누리 식구가 아닌 마을사람들도 이용할 수 있다


 철학과 마음닦기도 실제적으로
 10년전 밝은누리에 들어와 살면서 강남의 직장 인터파크로 출퇴근하는 김현기(36)씨는 “직장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금방 풀리는 밥상으로 오는 퇴근길이 설렌다”고 했다. 아기를 낳아 덴마크대사관을 1년 휴직중인 심지연(35)씨는 “이곳에 오기 전에 ‘불금’이나 해외여행을 통해 한꺼번에 폭발적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곤했는데, 그렇게 자본의 유도대로 소비행렬에 가담해도 해소되지않던 스트레스가 오아시스같은 밥상에서 대화하거나 퇴근후 함께 공부하면서 정화되었다”고 했다. 11년의 직장생활을 접고 이곳에서 4명의 벗들과 마을밥상을 운영하는 고경환(37)씨는 “공동체가 아니었다면 사표를 낼 때 아버지로부터 ‘도대체 어쩌려고 그러느냐’는 한숨을 들으며 불안감을 떨치기 어려웠을텐데 내 결정을 지지해주는 동료들 덕분에 쉬면서 마을밥상을 만들어 운영할 수 있었다’”고 했다. 밝은누리엔 어른 아이 150여명이 함께 산다. 어른들은 다른곳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이 많지만, 고씨처럼 밝은누리가 운영하는 밥상이나 마주이야기, 어린이집과 초등과정배움터를 일터로 삼은 이들도 적지않다.

 밝은누리는 강원도 홍천 서석면 효제곡길에도 있다. 도시-농촌 상생을 위해 10년전 터를 잡은 홍천밝은누리에도 100여명이 산다. 산기슭 기와집과 토담집들이 예스럽다. 홍천밝은누리는 생동중학교와 ‘고등·대학 통합과정’인 삼일학림이 중심이다. 

  학생들에게 학문과 삶은 별개가 아니다. 이곳에서 ‘하늘땅살이’이라고 부르는 농사도 교과의 일종이다. 학생들의 기숙사 격인 생활관에선 교사와 학생 8명이 집짓기 수업을 하고 있다. 이들은 1년간 수업하면서 생활관 한동을 뚝딱 지어낸다. 이 마을 모든 건축물들은 외부의 도움없이 이렇게 손수 지은 것들이다.

 핸드폰이나 텔레비전 속 공상을 벗어나 이들은 자신의 삶을 직접 가꾸는 것들과 함께 한다. 무엇하나 관념적이지 않다. 집짓기나 농사, 건강을 위한  태극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철학과 수신, 마음닦기 같은 고준한 과목들도 실제적이다. 어떤 책을 보더라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공부를 하니, 얻는 것도 실제적이다. 허울좋은 지식이나 관념을 쌓아가 지적교만만 커지는 공부는 이들의 방식이 아니다.

 중학교 교사로 육아휴직중 아이를 키우며 삼일학림에서 배우는 학생이기도 한 서진영(36)씨는 “저도 교사지만 편협성을 내려놓고 열린 눈으로 공부하면서 배움이 주는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면서 “이곳은 종교적 용어는 없지만 신앙을 삶과 별개로 두지않고 신앙을 삶에서 살아내려는 진정한 분투가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삼일학림 2년차인 김다인(17)양은 서울에서 사립초등학교에 다니다 5학년 때 이곳에 왔다. 그는 “중학교 때까지는 친구들처럼 핸드폰도 하고 인터넷도 하고, 화장도 하고 싶고 대중문화도 누리고 싶어 방황도 했다”면서 “그러나 세상적 욕망으로 부터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자유로운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내 스스로 삼일학림으로 진로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삼일학림 3년차인 최성은(18)양은 부모님이 밝은누리에서 사는 공동체원이 아니어서 초등학교를 일반학교를 나오고, 6년전 생동중학교에 입학에 이곳에서 살게 됐다. 그는 “일반학교에서는 학업과 학원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뒷담화와 왕따로 친구를 따돌리고 괴롭히면서 풀고 선생님들고 별 신경을 쓰지않고 서로 상처를 받는 그렇고 그런 관계가 지속됐었다”면서 “하지만 이곳에선 일반학교처럼 친구들을 ‘쌩깔수’도 없어서 수없이 얘기하고 풀고 서로 잘 지내며 남다른 관계를 만들게 된다”고 했다.

 삶과 유리되지않는 공부는 밝은누리 설립자이자 학교교장인 최철호(48) 대표의 정신이기도 하다. 그는 개신교에서도 보수적인 신학대의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그는 ‘문제 의식’으로가득한 젊은이였다. 그는 대학 때 신앙과 실천의 괴리, 사회정의와 현실의 괴리에 무기력한 교회에 실망해 교회를 떠나기도 했다. 목사가 되려고 간 신학생이 교회를 떠났으니 방황은 크고 깊었다. 그는 학교 밖 타대학이나 강연장으로 숱하게 청강을 하고, 온갖 독서동아리를 만들어 ‘문제들’을 파고 들었다. 그를 좌절케한 것은 부조리한 사회현실과 동떨어져 화석화한 교회나 대학만이 아니었다. 운동권 선배들조차 치열한 고뇌없이 문건학습에만 치중해 경직화하거나 교조화되었고, 자기 중심이 없었다. 그들이 비판하던 우익의 영웅주의와 군사문화를 답습하는 모습도 보였다. 특히 대학시절 사회의식과 신념으로 똘똘 뭉친듯하던 선배들도 금새 변해 말과 행동이 달라졌다. 


-놀기1.jpg» 엄마들이 삼일학림 마음닦기 강의를 듣는 시간에 아이를 돌보는 아빠. 자기 아이 남의 아이 구분 없이 품앗이로 아이들을 돌보기에 부모들이 육아에서 벗어나 더 자유로울 때도 많다


-닭밥1.jpg» 코스모스를 따서 닭에게 주는 밝은누리 아이들
 

 -생동중아이들.jpg» 생동중학생들의 수업시간. 일방적으로 강의를 듣기보다는 늘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수업이다

-수업1.jpg» 고등 대학 통합과정인 삼일학림에서 수신 강의를 하는 최철호 교장. 삼일학림에서 고교 대학생 정도 나이인 청소년학생은 12명이지만, 어른들도 배우고싶은 수업을 듣기에 전체 학생수는 70명에 이른다


-수레끌기.jpg» 생동중과 삼일학림은 삶과 공부가 분리되지않는다. 하늘땅살이(농사)와 집짓기도 수업이지만 실제 농사를 짓고, 집을 지어낸다

-집짓기1.jpg» 삼일학립의 집짓기 수업 현장. 1주일에 하루씩 집짓기 수업을 통해 이들은 기숙사격인 생활관 한동을 직접 뚝딱 짓는다


-태극권1.jpg» 태극권도 삼일학림의 수업이다. 최철호 교장이 가르친다. 아이들도 엄마를 따라 함께 하기도 한다

신문사 지국이 그만의 수도원
그는 더디가더라도 스스로 답을 찾았다. 갈등과 방황이 깊어져 몸이 상할 정도가 되면 그는 한겨레신문 지국에 들어가 숙식을 하며 신문배달로 수도를 대신했다. 그는 청년시절 3년을 지낸 그곳이 ‘나의 수도원’이었다고 했다.

 그는 그런 수도를 통해 청년의 신념조차 무력화시켜버리는 쓰나미같은 ‘돈의 힘과 기성문화의 위력’을 직시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혼자서 이겨내기 어려운 쓰나미를 어깨 걸고 함께 이겨내보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함께 공부하던 벗들과 1991년 대학 4학년 때 신학대 근처에 허름한 방을 얻어 밝은누리를 시작했다. 함께 산지 7~8년이 돼 벗들이 결혼, 임신, 출산, 육아를 시작되자 청년시절 혁명의 마음은 혼수와 부동산 등 기성세대의 문화에 젖어 추풍낙엽이 되었다. 

그는 기성세대와 변절자를 비판만 하면서 결국 똑같이 닮아가고마는 굴레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가 군목(사)으로 1998년 군대에 가보니, 군종병들도 구타관행에 젖어있었다. 그가 ‘앞으로 구타하면 영창에 보내버리겠다’고 하자 한 친구가 와서 진솔하게 충고했다. 이곳은 군대지 교회가 아니다는 것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단 한곳이라도 대안과 성과와 사례를 만들어내야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구타를 없애는 한소대를 만들어냈다. 일단 구체적 사례가 등장하자 역사가 변하기 시작했다.

 밝은누리도 기성의 답습이 아니라 ‘무에서 유의 사례’를 만들어내기 위한 곳이다. 젊은시절 기존 목사들의 권위주의를 욕하다 결국 이를 그대로 닮아가는 것을 답습하지 않는 것도 그답다. 이 마을에서 그는 목사가 아니라 형이나 오빠다. 아이들은 누구나 그를 다른 어른들 부르는 것과 똑같이 ‘철호 삼촌’이라고 부른다. 그는 “우리 안의 권력, 내적 파시즘 앞에 정직해져야 하고, 이를 집요하게 파고 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교회 목회를 하는 그의 동창들 대부분은 교인들과 정직한 속애기를 하지 못하고, 외로움을 호소한다. 그러나 그는 공동체식구들과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면서 언제든 편하게 속얘기를 주고받는다. 그는 “이곳에 존경스러운 분들이 많다”며 자신도 “그들에게서 많이 배운다”고 했다.

-아기보기1.jpg» 홍천밝은누리 밥상을 물리고 나면 이렇게 삼삼오오 아기들을 보며 웃음꽃을 피운다


-풋살.jpg» 금요일 저녁이면 밝은누리 여자들 20여명이 서석면 체육경기장에 가서 풋살을 하며 에너지를 발산한다


-흙손.jpg» 밝은누리 어른들은 외부로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도 많지만, 공동체 안에서 다양한 일터를 만들어낸다. 공동체 안 학교, 밥상, 카페도 공동체가 만들어낸 일터다. 밝은누리가 만든 건축팀 흙손 멤버 5명이서 생활관을 짓고 있다. 밝은누리는 모든 집을 자체 일손으로 짓는다


비판만 하며 결국 닮아가는 굴레
 그는 그런 무작정 앞으로 전진하는게 능사가 아니라고 본다. 성찰은 필수다. 공동체원들이 철학 인문학 공부를 했다고 지적 교만에 빠지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는 모든 것을 중지했다. 지난 1999년에도 침묵의 시간을 가졌고, 2007~2008년에도 한달 한번의 연합예배외엔 모든 것을 중지하고, 성찰을 위해 침묵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밝은누리는 그리스도교공동체지만, 교회건물이 따로 없다. 열명가량씩이 기초공동체여서 이들은 주일이면 함께 모여 성경 한구절을 읽은 뒤 삶과 신앙에 대한 진솔한 얘기를 나눈다. 친밀도는 그지없다. 공동예배는 서울 인수동과 강원도 홍천에서 각각 한달에 한번씩만 드린다. 이 때도 최 목사 혼자만 아니라 목회위원의 추천을 받은 두명이 추가로 함께 말씀을 나눈다.

 생동중과 삼일학림은 정부 인가 학교가 아니다. 이곳 학생들이 정부 인가를 거부한 것도 ‘학력’이란 허위의식에 매달려 원치도 않는 관념과 지식들을 습득하느라 삶의 에너지를 다 소비하지 않기 위해서다. 삼일학림에선 어른 학생들도 많다. 교사들도 자신이 필요한 과목은 배운다. 서로 가르치고 서로 배우는 학교다. 어른학생들은 아기를 옆에 보자기에 누여놓고 강의를 듣기도 한다. 수업에 방해가 될법한 서너살 아이들은 품앗이육아로 이웃에 맡긴다. 이들은 공동체를 한몸살이라고 부르는데, 네 자식 내 자식 상관없이 서로 이렇게 돌봐준다.

-태껸1.jpg» 밝은누리는 사라질 위기에 처한 청량분교를 살려냈다. 청량분교 부설유치원과 학생들 절반 이상이 밝은누리 식구들이다. 통상 나이든 은퇴자들이 유입되는데 서석면엔 밝은누리로 인해 젊은 20~40대가 대거 유입되자 홍천군도 놀라워하고 있다. 밝은누리는 매주 토요일 청량분교 아이들에게 태껸을 가르쳐주고 있다. 또 홍반장같은 고영준씨가 토요일에 농사일에 바빠 방치되는 (밝은누리 밖)동네 아이들을 모아 함께 놀아주기도 한다.

 밝은누리에선 아빠가 육아를 돕는다고 하지않는다. 육아는 부모가 함께 한다. 또 온마을이 함께 한다. 모두가 이모 삼촌이 되어준다. 부모뿐 아니라 이모, 삼촌, 언니, 오빠, 형, 친구가 수십명이나 되는 아이들은 얼굴에 장난기 어린 웃음이 떠날 사이가 없다.

그래서 여성들은 밖에서는 꺼리는 모유수유를 하면서도, 오히려 독박육아에서 자유롭다. 금요일 저녁엔 전광등이 설치된 서석면체육경기장에 가서 20여명이 서너시간씩 운동장을 뛰며 풋살을 한다. 생리가 시작되면서 억압된 몸을 마음껏 풀고, 에너지를 발산하는 밝은누리 여성들의 풋살경기엔 에너지가 넘친다.

 17명의 학생들이 자유롭게 자작시를 읊는 생동중학생들의 수업시간에 들어가보았다. 아이들은 자작시에 곡을 만들어붙여 노래까지 만들기도 한다. 승민이의 차례다.
 ‘해적들은 자유롭지/늪같은 공부에 발을 디뎌놓지도 않잖아/머리공부를 하기 보다는 몸으로 배우며 살고/몇 번 겪어야 학습하지/해적들은 자유롭지/나침반에 의존해서/가고픈 곳 찾아가며 살잖아’
 거센 바다를 스스로 헤치고 나갈 생동감 넘치는 해적들이 이렇게 커가고 있다. 

 밝은누리(서울·홍천)/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스님이 이렇게 웃길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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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부처.jpg


 이른 아침 보성 대원사 현장 스님이 일행들과 함께 내 산거를 찾았다. 스님은 일지암을 좋아하여 벗들과 가끔 들르는데 매번 나와 길이 어긋난다. 며칠 세간에 일이 없어 암자에서 독서에 전념하고 있던차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아하! 이번에는 법인 스님이 현장에 있으니 현장 스님을 만나게 되네요”.


 재기 넘치는 현장 스님은 늘 밝고 유쾌하다. 스님은 우리 절집에서 유머재조기로 통한다. 그날도 차담을 하면서 법명으로 시작하는 에피소드를 펼친다. 한번은 법정 스님이 이른 아침 지인에게 전화를 했는데 부인이 받았다. “저, 법정인데요, 00 선생님 계십니까?”. “여보! 전화 받으세요. 당신 무슨 일 있으세요. 아침부터 법원에서 당신을 찾네요”. 이밖에 절집에서 법명에 얽힌 웃음거리는 많다. 탤런트 최불암 씨가  대원사를 방문했다. 현장 스님 왈 “ ‘한국인의 밥상 ’ 끝나면 내가 암자 지어줄터이니 와서 사세요 암자의 이름은 최불암”. 암도 스님은 누가 “암도(아무도) 없으십니까?”라고 물으면, “암도 여기 있소”라고 응대한다. 도범 스님은 절에 사니 자기는 ‘절도범’이라고 소개한다. 아마 십대들이 들으면  아재 개그라고 할지도 모른다.


  과장과 허세는 입담의 또 다른 맛이다. 조선시대 여러 절의 스님들이 모여 자기 절이 얼마나 크고 대중이 많은지를 겨루었다. 먼저 속리산 법주사 스님의 자기 절 자랑, “우리 절 대웅전의 문턱은 큼직한 네모의 무쇠덩어리로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대추나무 같은 단단한 통나무로 들이 대봤자 사흘이 못가서 다 달아 없어진다구요. 그래서 무쇠덩어리로 바꿨는데 하루에 쇠 가루가 서 말이 쏟아집니다”. 이에 맞서 가야산 해인사 스님이 응수한다.“우리절 해우소가 아마 천지간에 제일 큰 해우소일꺼요. 한번은 저녁에 변을 봤는데 이틋날 아침에 겨우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디다”. 마지막으로 지리산 화엄사 스님이 여유있는 미소를 지으며 하는 말, “우리절은 매년 동지날 팥죽을 쑤는데 솟이 너무 커서 나룻배를 띄어 노를 저어 가면서 팥죽을 휘젖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떠난 배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어요”.


 또 수행의 경지를 가늠하는 찰나간의 진검승부도 있다. 전해오는 말인데, 사명대사가 서산대사의 도력이 높다 하여 방문했다. 방을 나오려는 서산에게 사명이 마당에서 새 한 마리를 잡고 묻는다. “큰스님! 제가 이 새를 놓아 주겠습니까? 아니면 손에 잡고 있겠습니까?” 이에 서산이 즉시 한발을 문턱 밖으로 내놓고 하는 말, “내가 지금 밖으로 나가겠느냐? 안으로 들어가겠느냐?”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침묵하거나 진리에 대해 토론하라고 했다. 잡담을 금지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어찌 엄숙하게만 살겠는가? 가끔은 지대방처럼 삶에도 느슨하고 여유있는 허술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 적절한 유머로 가벼워지는 일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그날 현장 스님은 작곡가 한보리의 시를 낭송하며 찻자리를 마감했다. “ 바람이 숲에 깃들어/솔향 가득 머금고 돌아가듯이/그대 산에 들어 푸르러지는가/구름이 산에 들어서/비를 뿌리고 가듯이/그대 근심 두고 가소/깃털처럼 가벼워지소. 

행복하게 죽어간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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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췌장암과 간암으로 생을 마감한 애플사의 스티브 잡스는 이런 말을 했다. “내가 곧 죽게 된다는 생각은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할 때마다 큰 도움이 된다. 사람들의 기대, 자존심,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 거의 모든 것들은 죽음 앞에서 무의미해지고 정말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이다.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무언가 잃을 게 있다는 생각의 함정을 피할 수 있다. 당신은 잃을 게 없으니 가슴이 시키는 대로 따르지 않을 이유도 없다.” 죽음을 직면해서는 도리어 삶을 돌아보게 되고 삶과 사람들에 대해 감사하게 되고 미처 못 보던 것들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죽음이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기도 하다. 


 32살의 젊은 엄마가 있었다. 초등학교도 입학하지 않은 두 딸을 둔 그 엄마는 52번의 항암치료를 받았다. 본인은 중도에 포기하고 호스피스병동에 가고자 했으나 친정 엄마의 간절한 바램으로 그 치료를 다 견뎌내었다. 가정 호스피스를 받던 그녀가 우리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지금 너무 행복하고요. 저는 굉장히 복이 많은 사람인 것 같아요 예전엔 잘 몰랐는 데 (제가 아프면서) 제 곁에 저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너무 좋아요. 치료를 받으면서 나의 삶의 못 보던 부분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었어요. 앞만 보며 달렸던 것 같아요. 지금은 몸은 아프지만 마음엔 오히려 여유가 생겼어요. 아이들은 내가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모르지만 그런 아이들을 보니 나도 행복해요. 나에겐 희망이 있어요. 아이들이 지금처럼 밝고 건강하게 자라주기를 바래요.’


-자매숲.jpg


그리고 아이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며칠 뒤면 엄마는 너희들 눈에 보이지 않을거란다 왜냐하면 하느님 곁에서 천사가 되어 너희 등 뒤에 있기 때문에 눈으로는 보이지 않아. 그렇지만, 엄마는 너희들과 항상 함께 있을거야’ 


 병동에 입원한지 일주일 정도 되었을 때 그녀는 가족과 함께 휠체어로 마당에 산책을 나갔다. 그 다음날은 힘들어서 침대에 누운 채 꽃밭에 나가서 놀다가 들어왔다. 그 다음날은 가족들과 생일 파티를 하고 침대를 두 개 붙여 놓고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포근한 잠을 청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그녀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미처 결혼식을 못 하고 살다가 죽음으로 이별을 앞둔 입원 환자에게 병동에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치러주고는 병실을 호텔처럼 꾸며주고 그 환자의 처방전에 ‘장미 꽃 바구니, 샴페인 한 병, 케익 하나 그리고 밤에 그 방에는 회진하지 말 것’이라 쓰고 간호사에게 전해 주던 호스피스 의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죽어가는 이들이 무의식속에서도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영혼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는 행운을 가진 자들은 많지 않다. 우리는 그 행운을 가진 자들이다. 호스피스 현장에 있는 이들은 이렇게 찾아 온 행운을 떠나가는 이들에게나 남겨지는 이들에게 영원한 행복으로 만들어 되돌려 주고 있다. 


각산스님의 명상힐링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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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산스님.jpg» 참불선원장 각산 스님


<불교방송>과 참불선원이 공동으로 10월26~29일 강원도 인제군 북면 만해마을에서 500명이 참여하는 명상힐링캠프를 연다. 명상 지도는 지난해 초 세계적 고승들을 초청해 세계명상대전을 개최한 참불선원장 각산 스님이 맡는다. 각산 스님은 한국불교의 정통수행법인 간화선 뿐 아니라 미얀마와 타이, 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 초기불교 수행법인 위파사나를  수행한 경험을 살려 초기불교와 간화선 통합명상을 이끈다.


 각산 스님은 “미국 카네기 멜론대학교가 연구결과 명상이 몸 건강 뿐 아니라 마음이 평안해지고 정신이 맑아져 스트레스가 해소되게 한다고 발표하는 등 효과가 다각도로 증명돼 구글, 애플,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기업들도 기업업무 효율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 명상을 장려하고 있다”면서 “휴대폰을 맡기고 오직 침묵 명상으로 ‘바로 지금 여기’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화 1577-3696

작은교회운동의 한마당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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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교회운동1.jpg» 지난해 감신대에서 열린 작은교회박람회의 연주회. 사진 생명평화마당 제공


 올해는 종교개혁 500돌이다. 그러나 개신교 최대 교단인 예수교장로회 ‘통합’과 ‘합동’ 등 주요교단이 1년에 한번씩 여는 최근 총회에서 동성애자 뿐 아니라 동조자·옹호자들까지 신학대에 입학을 금지하고, 국회의 차별금지법 통과를 저지하고, 종교인 과세 시행 2년 유예를 건의하자는 등의 ‘반개혁’ 결의가 있었다. 이 뿐이 아니다. ‘이혼과 재혼은 모두 죄’라고 규정하는가 하면 교회에서 요가와 마술을 금지하기도 했다.


주요교단들이 세계교회의 흐름과 거꾸로하는 소수자와 약자 탑압과 폐쇄적 결정을 내놓으면서 ‘열린 사고’를  지닌 젊은이들로부터 갈 교회가 없다는 자조적인 한숨이 나오고 있다. 개신교계는 대형교회들과 교단들의 반개혁적 폐쇄성이 젊은층들의 ‘가나안성도화’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나안성도’란 ‘(교회)안나가’란 말을 뒤집어, 그리스도인이면서 기성교회에 대한 불만으로 인해 교회에 나가지않은 신자들을 일컫는 신조어다. 가나안성도는 2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작은교회들과 신학자, 개신교활동가들이 초교파적으로 결성한 생명평화마당의 공동대표 한경호 목사는 교단총회들의 반동성애 관련 결의 등과 관련해 “생물학적, 신학적 접근을 도외시한채 합리적 토론과 여과장치가 사리지고 정치적 의제로 변질되고 있다”고 폐쇄성을 비판했다. 


 이에따라 작은교회들이 “그렇게 닫힌 교회들만 있는게 아니다”며 ‘가나안 성도들’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생명평화마당은 오는 9일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 감신대 교정에서 오전 10시~오후 5시 ‘작은교회 한마당’을 연다. 생명평화마당은 지난 4년 작은교회박람회를 열다가 이번에 ‘한마당’으로 이름을 바꿔 최대 잔치를 펼치기로 했다. 이 한마당엔 개교회 등이 140개의 부스를 설치해 자기 교회의 특징을 설명하고 상담한다.

작은교회운동2.jpg» 지난해 열린 작은교회박람회에 설치된 부스



 조직위원장 방인성 목사는 “도심 대형교회들이 그리스도교 복음의 핵심인 생명과 평화를 도외시한채 거대 건물 중심으로 가 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다”면서 전체 교회의 70~80%인 구성원 200명 미만의 작은 교회들이 말 구유에 작디 작은 자로 온 예수님 오신 뜻을 살리는데 힘을 모으자는 게 한마당 취지”라고 말했다. 그는 또 “행사엔 가나안성도들이 궁금한 특정교회를 좀 더 알기 위해 오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번엔 2천여명이 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생명평화마당은 이에앞서 26일 오후7~9시30분엔 감신대 웨슬리채플관에서 작은교회들이 대형교회들의 목회자와 성장, 남성 중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탈성직 △탈성장 △탈성별분과별로 ‘작은교회 운동을 위한 한국적 교회론 심포지엄’을 연다.


우리를 모방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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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를 그대로 따라 하거나 모방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항해하는 배가 되어,

의식을 일깨우는 거품을 남기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그 거품도 이내 사라져 버릴 것이다.

우리를 따르고 싶다면, 우리가 따르는 성령을 따라 주기 바란다.

그 성령을 추구하기 위해 우리도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 성령 또한 세대마다 새롭게 추구해야 할 일이다.


 -17세기 말 요크셔 발비에 거주했던 1세대 퀘이커 교도가 남긴 말


 <공동체로 사는 이유>(에버하르트 아놀드 지음, 토마스 머튼 해제, 안정임 옮김)(예수전도단 펴냄)에서

같은 생각만 되풀이하면 같은 삶을 살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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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리학자인 데이비드 니븐 박사가 쓴 

<나는 왜 똑 같은 생각만 할까>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젊은 영화감독은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제작비는 바닥이 났고, 
제작사의 인내심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온종일 촬영을 했지만 한 컷도 못 건지는 날이 많았다. 
이 공포영화는 그의 메이저 감독 데뷔작이었지만, 
그의 첫 작품이자 마지막 작품이 될 거라는 
소문이 업계에 파다했다. 
문제의 원인은 명확했다. 


영화의 주인공이 통제 불능이었다. 
수백만 달러의 제작비를 쏟아붓고, 
최고의 전문가를 동원해서 만든 '상어 장치'가 문제였다. 
공포를 선사해야 할 상어가 먹잇감을 물어뜯기는커녕 
물살을 가르지도 못했다. 
전기 합선 탓에 꿈쩍도 하지 않았고, 
움직인다 싶으면 금세 오작동을 일으켰다. 
합성 피부는 바닷물에 잔뜩 부풀어 올라서
바다 괴물이 아니라 거대한 마시멜로 같았다. 
날마다 여기저기를 수선하고, 부품을 교환하고, 
땜질을 해야 했다. 


"실패, 실패, 끝없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다행히, 영화감독은 문제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 
생각을 바꾸자 해결책이 보였다. 
'상어가 나오지 않는'상어 영화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상어를 '암시'하자 평범한 공포영화는 위대한 영화로 탈바꿈했고 
관객과 평론가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죠스>는 당시만 해도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북미 흥행 1억 달러 돌파라는 엄청난 흥행 기록을 세웠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말했다. 
"쓸모없는 상어 장치가 신의 선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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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치 아픈 문제가 있다면 
이미 성공의 열쇠를 쥔 셈이다"
"똑같은 생각과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보다 어리석은 생각은 없다"
"똑같은 생각만 하면 똑 같은 삶을 살 뿐이다."
데이비드 박사는 이 책에서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가슴 뛰는 삶을 위한 10가지 생각 전환법>을 제시했습니다.


1. 문제는 밀쳐 버려라 
2. 두려움의 덫에 갇히지 마라
3. 불확실함을 포용하라
4. 노력하지 마라
5. 조직의 힘을 믿지 마라
6. 확신하지 말라
7. 첫 번째 생각은 과감히 버려라
8. 한눈을 팔아라
9. 반대쪽을 용인하라
10. 스스로 생각하라

감옥이던 세상이 이제는 극락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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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법1.jpg» 홍법대사


 시고쿠는 사국이란 뜻이지만 죽음의 나라라는 뜻도 있다.

전국시대에는 작은 소국이었지만 지금은 네개의
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홍법대사로 알려진 공해는 당나라에 유학하여 금강지ㅡ불공ㅡ혜과로 이어지는 밀종의 법맥을 전수받아 일본 진언종의 본산 고야산 금강봉사를 창건한 스님이다.

법맥으로 따지면 홍법대사느느 신라혜초스님의 조카뻘 되는 스님이다.혜초는 금강지에서 불공으로 이어지는 중국 밀종에서 불공의 6대제자로 꼽힌다.


홍법대사 생존시에 나병과 괴질이 유행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나병에 걸리면 가족과 친구들도 외면하고 두려움과 절망감속에 비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다.대사께서는 나병과 괴질환자들에게 그렇게 죽지 말고 시고쿠에 와서 죽으라고 하였다.부처님과 스승님께 귀의하고 보리심을 일으켜 내세에는 병고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제하는 보살로 태어나게 해주십시오.하는 서원의 마음으로 88개 사원을 차례로 순례하게 하였다.


홍법2.jpg


홍법3시코쿠.jpg


홍법대사가 창건한. 88개의 사원을 도보로 차례대로 순례하면 1200키로가 넘는다.그러한 순례 전통이 1200년이 지나도록 계속되고 있다.유럽의 샌디에고 순례길과 함께 동양과 서양의 대표적인 순례길로 손꼽히고 있다.

순례자는 비바람과 햇빛을 가리는 삿갓을 쓰는데 자신의 무덤을 나타낸다.

흰옷은 수의를 나타내며 목에 두른 작은 가사는 부처님께 귀의했음을 나타낸다.

금강장으로 불리는 지팡이는 순례중 죽으면 자신의 묘비명이 된다.삿갓의 정면에는 대일여래를 상징하는 범자가 있고 뒷면에는 이인동행.이라 적혀 있다.


내혼자 걷지만 홍법대사께서 나의 순례길을 지켜주고 함께 동행하고있다고 생각한다.

감사의 마음을 나무다이지 헨조공고.ᆢ걸음걸음 스승의 이름을 부르며 간다.대나무 지팡이는 나의 순례길을 인도하는 대사님이다.

위대한 스승님께 귀의 하오니 진리의 빛이여 나를 밝혀 주소서.ᆢ


홍법4.jpg


삿갓의 좌우에는 홍법대사의 게송이 적혀 있다.

"어리석을 때는 세상이 감옥이더니 깨닫고 보니 이곳이 극락일세 
본디 동서가 없거니 
어디에 남북이 있겠는가?"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서원만을 간직한채 죽음의 길을 한걸음씩 걷는다.


홍법대사가 발심.수행.보리.열반의 길로 인도하는 밀교수행의 이치가 성지순례의 형태로 1200년을 내려오고 있다.

1200키로의 길을 걸으면서 88개의 사찰을 참배하면서 그곳 사찰의 싸인과 도장을 받고500엔씩을 보시 한다.

샌디에고 순례길이 도보로 한달정도 걸린다면 시고쿠 88사 순례길은 도보로 45일에서 50일 걸리는 여정이다.

경쟁심과 선망에 압도되지말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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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친이 감사할 일보다 당신이 좋아하는 일 하세요

확신에 찬 남친 때문에 힘들어하는 여성, “헤어져야 할지…”


남친은 자신이 99% 맞다 확신

뭐든 잘하는 여성이 이상형


억지로 맞추려 하면 피해의식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사진2.jpg»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한 남친은 30대 중반이 되면서 너무도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고 느꼈기에 본인의 생각이 99% 맞다고 확신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이런 남친이 처음에는 멋지고 당당하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서로 의견 차이가 생길 때마다 대화 시간이 길어져 너무 힘이 듭니다.

지나고 보면 정말 아무 일도 아닌 얘기로 대화가 시작됩니다. 예를 들어, 남친은 파스타 잘하는 여자가 좋은데 제가 맛있게 못 만들었어요. 그럼 맛이 없다는 얘기를 돌려서 얘기합니다. 그러고선 안 먹죠. 후에 이 일로 얘기하다가 그때 자기는 짜증 나고 화나고 속상했다. 처음부터 잘하지 왜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게 했느냐고. 제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지 않으냐. 요리를 해주는 것이 고맙지 않으냐 물으면, 하나도 고맙지 않다. 그걸로 재료가 낭비된 것이 아니냐란 식으로 얘기합니다.


남친은 뭐든지 잘하는 여자가 이상형이라 했습니다. 제가 그런 이상형이 아니라 나름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게 맘에는 안 차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그런 일로 말다툼을 하거나 제 의견을 얘기하면 언제나 기승전패입니다. 대부분 제 말이 틀리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답답하다, 속상하다, 다 후회된다는 말을 합니다.



제가 부족한 탓에 저의 죄책감을 이용해 저를 통제하려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중간에 이별할까 생각도 해보았습니다만 그러기엔 서로 좋은 마음이 많아 다시 조율했습니다. 하지만 계속 이런 상황인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말 헤어지는 것이 답일까요? 풀꽃


상대를 만족시키거나 도움 주는 걸 유독 좋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상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애쓰는 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상대에게 필요한 것을 얼른 알아채서 준비해줍니다. 풀꽃님의 사연을 읽으니 문득 그런 유형의 사람들이 떠오르네요.


친절한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합니다. 나의 편의를 우선으로 생각해주는 건 참 좋은 일이지만, 그들이 제공하는 친절에는 대부분 상응하는 대가가 청구된다는 점에서 불편합니다. 그들은 상대가 감사와 고마움을 표현해주기를, 자신의 친절로 상대에게 사랑받기를 원합니다. 오로지 상대의 호의적인 반응에서 자신이 한 행동의 가치를 실감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이들에게는 친절에 대해 자기도취적인 면이 있어서 자기 식대로 친절을 베풀면 당연히 상대가 고마워할 거라고 기대합니다.


그런데 명심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일에 상당히 지쳐 있다는 것을요. 매너와 예의를 지키는 것도 일종의 감정노동과 같아서, 자신이 느끼지 않는 감정을 억지로 표현하는 데서 오는 감정의 부조화를 경험합니다. 고맙지 않지만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해야 하는 것, 별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해야 하는 일에 말입니다. 그래서 나중엔 정말 고마운 일이 있어도 진심을 표현하는 일이 힘들어집니다. 긍정적인 감정이 위선과 뒤섞여 오염되었고, 너무 많은 인사치레에 지쳐버렸으니까요.


풀꽃님! 남친이 지나친 원칙주의자일 수는 있지만, 그렇다 해도 감사를 강요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감사의 마음은 논리적 생각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감정입니다. 감정은 강요할 수 없습니다. 솔직한 마음을 억누르고 가짜 감정을 말해야 할 때, 내면에서는 그만큼의 분노가 생긴답니다.


그리고 풀꽃님! 남친이 감사하게 생각할 일을 하지 마시고,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파스타를 만드는 일이 자신에게 먼저 즐거운 일이어야 합니다. 당신이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까지 그에게 맞추려고 하지 마세요.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할 때 그만큼의 피해의식이 내면에 쌓이고, 그 피해의식이 바로 상대의 칭찬과 인정을 요구합니다.


여성들이 당당한 남성에게 매력을 느끼게 되면 대부분 그가 당당함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도우려고 마음먹습니다. 그렇게 주인공과 조력자의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당한 남성들은 자신이 그렇게 되기까지 수많은 조력자가 있었으며 그 조력자들이 사랑받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자신의 재능이 모두 자신에게서 나왔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남친은 뭐든지 잘하는 완벽한 여자가 이상형이라고 여친에게 당당히 밝히는 사람인가 봅니다. 추측건대 당신은 그런 남친의 이상형에 부응하려고 애쓰고 있고요. 이런 관계에서는 풀꽃님이 계속 위축될 수밖에 없고, 동등한 동반자로서의 관계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풀꽃님! 남친의 이상형에 자신을 맞추는 일은 이제 그만두세요. 그의 이상형을 당신의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늘 부족감과 죄책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의 이성, 그러니까 남성 내면의 여성상이나 여성 내면의 남성상은 대부분 비현실적 이상형입니다. 어찌 보면 신적인 존재지요. 그런 이상형과 경쟁하지 마세요. 당신은 그냥 당신입니다. 당신이 그것과 경쟁하는 순간 당신 자신을 잃게 됩니다. 누군가에게 경쟁심이나 존경심, 선망 등을 갖게 되면 그 순간부터 자기소외가 시작됩니다. 자신의 본성을 외면하고 그와 동일시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와 헤어질까를 고민하기보다 먼저 당신이 그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을 지키는 법을 찾아보세요. 논리로 그와 논쟁하지 마세요. 우리의 욕구와 느낌, 감정 등은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욕구와 느낌을 있는 그대로 표명하세요. 나는 내 의도를 높게 평가해주는 사람이 좋아. 난 그런 사람이야. 난 당신이 친절할 때 행복해져, 그냥 난 그래, 라고 말입니다. 당신의 논리는 반박하지 못하겠지만 완전히 인정하긴 어려워, 왠지 모르겠지만 그냥 그래, 라고 말해도 좋습니다. 마치 당신의 남친처럼 당당하게 말이지요. 그렇게 그 앞에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당신이 사표쓰기를 원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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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식능력, 심미안, 소양, 감각 등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제4 자본


창의자본 또는 매력자본으로 불려


자유직업인에게 꼭 필요한 자본


---자본독립1.jpg



어딘가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보니 확실히 계절이 변한 것같습니다. 콘크리트 숲에 갇혀 있던 도시인들을 유혹하는, 너무나 매혹적인 바람입니다. 사무실 밖 먼 하늘을 바라보는 횟수도 크게 늘었습니다. 요즘처럼 신비한 하늘색이 계속되는 날에는 대책없는 탈출 욕망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1인 기업을 꿈꾸는 사람들, 글과 강연을 하며 ‘스토리 유목민’으로 살고 싶다는 직장인들로부터 부쩍 자문 요청이 많아졌습니다. 멋진 로망이지만, 일과 수입 없는 독립과 자유는 사막의 신기루 같은 것이기에 저는 우선 이 질문부터 던집니다.


“당신에게는 어떤 자본이 있나요? 혹시 제4의 자본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이렇게 말하면 당황하거나 반발합니다.


자본이 있으면 큰 사업가가 되지 왜 굳이 프리랜서(자유직업인)가 되겠느냐, 조직과 거대 자본을 피해 자유와 독립을 추구하기 위한 것인데 웬 자본이냐고 항변합니다. 또 자본 없이 오직 맨주먹으로 시작해 성공한 사람들도 많은데 어찌 그렇게 말하느냐며 흥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마도 자본이라는 단어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인듯싶습니다.


하지만 독립은 일회성이 아닙니다. 뜨거운 열정으로 시작하지만 그 열정이 지속가능해야 합니다. 뜨거운 가슴으로 독립했다가 차가운 현실 앞에 머리 숙이고 다시 조직으로 되돌아가는 경우를 우리는 너무도 많이 목격합니다. 물론 사업이나 독립에는 운이 따르지만, 그것은 따로 논의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독립의 성공 확률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자본 또는 자산인데, 다만 제가 생각하는 자본의 개념은 조금 다릅니다.


자본은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눠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토지, 건물 같은 부동산 자본입니다. 부모에게 유산으로 받은 땅이 있거나 건물이 있을 경우, 그 부동산을 활용한 자영업을 하면 됩니다. 취향을 살려 커피집, 선물가게, 예술 공방을 여는 경우입니다. 자기 건물이니 임대료가 없고 소위 젠트리피케이션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두번째는 금융자본과 동산(옮길 수 있는 재산)입니다. 문자 그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니 자동차나 중기계, 은행 예금, 증권이나 그림 같은 것들입니다. 여기에 특허, 영업권, 자격증 같은 것들이 있으면 금상첨화입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잘 아는 자본입니다.


독립을 선언하는 직장인들은 대부분 첫번째와 두번째 자본이 별로 없습니다. 특별히 유산을 받지 않은 다음에야 대개 그렇습니다. 지금부터 말하는 무형자본(기능, 저작권처럼 형태가 없는 자본)에 특별한 관심을기울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선 사회 자본입니다. 소위 인맥이라 하는 네트워크의 힘이지요. 특정 업종에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과 얼마나 긴밀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사람들이 사는 곳에 사회자본이 없는 곳은 없습니다. ‘관시’(关系)라는 단어로 설명하는 중국에서는 이 자본을 무척 중시합니다. 한국에서도 마케팅, 홍보, 영업, 정보를 다루는 직종이 더욱 그렇습니다. 1인 출판사를 꿈꾸는 이들도 예외는아닙니다.


조직 생활의 인간관계에 지쳐 독립을 선언했지만, 프리랜서 생활은 혼자서 여러 가지 역할을 담당해야 하기에 오히려 세번째자본이 더 중요한 경우도 많습니다. 물론 유명작가, 인기 작곡가, 많은 팬을 거느린 웹툰작가 등 인기 창작자들은 가만히 있어도 수요가 몰리지만 그들은 지극히 예외적 존재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그러하듯 사회자본에도양면성이 있습니다. 맥주의 거품처럼 지나치면 곤란합니다. 허세를 조심해야 합니다. 화려한 인맥을 과시하거나 주고받은 명함의 숫자를 자랑하고, 동창회, 사회인 모임에서 얼마나 많은 감투를 썼는지 떠벌리고 다니는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명함은 휘발성이너무도 강하다는 그 속성을 알아야 합니다.


직장 문을 나오는 즉시 명함의 효력 또한 끝납니다. 많은 이들이 착각하는 면이기도 합니다. 사회자본에 지나치게 몰입하다 보면사회독(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상태)이라 하는 부작용도 나타납니다.


네번째는 ‘문화자본’ ‘매력자본’이라 말하는 무형자산입니다. 문화자본은 프랑스의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것을 원용한 개념인데, 특히 학술, 문화, 예술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자본입니다. 특정한 학위, 전공, 외국어 능력 같은 것들입니다. 감식능력, 심미안, 소양, 감각, 창조적인 아이디어 같은 비정형화된 것들도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창의자본’이라 할수도 있습니다.


매력자본은 런던정치경제대학교 교수였던 캐서린 하킴이 발표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논문 <매력 자본>(Erotic Capital)을 바탕으로 펴낸 책 제목에서 연유된 것입니다.


아름다운 외모, 건강하고 매력적인 몸, 뛰어난 사교술, 유머감각, 패션 스타일 등을 말합니다. 방송, 강연 등 대중을 상대로 하는프리랜서에게 더 중요시되는 자본입니다.


실력 못지않게 매력이 중시되는 세상이기때문입니다. 글과 말에도 남다른 매력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만의 스타일, 자기만의 목소리가 있어야 생존할 수 있습니다.


지식, 문화, 예술 분야에 종사하길 원하는 프리랜서들에게는 특히 이 네번째 자본이 중요합니다. 이 자본은 계량화하고 객관화하기 힘들다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주관적 가치와 시장이 평가하는 객관적 가치의 차이 때문입니다.


많은 프리랜서들이 겪는 혼란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독립을 원한다면 다시 한번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제4의 자본을 갖고 있겠지요,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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