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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와 사람


이제 기도가 성숙해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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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의 기도>를 통해서 본 한국 기독교인의 기도 행위

 

                  진규선 목사(스위스 바젤대학 조직신학박사 과정중)

 

 

11기도-.jpg


들어가며

 

2017, 기도 서적 한 권이 출판되자마자 종교부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심지어 그 책은 일반도서와 경쟁해서도 손색이 없었고, 교보문고에서는 최고 약 50위를 기록했다. 바로 <지렁이의 기도>이다. 필자도 바로 그 책을 직접 읽어고, 전형적인 한국 기독교 신앙을 서술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 책의 내용을 비판적으로 살핀다면, 한국 기독교인들의 전형적인 신앙도 다룰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필자는, 이 책을 중심으로 체험, 윤리, 신학이란 주제 아래 비판적으로 한국 기독교인의 신앙을 짧게나마 다루고 싶다.

 

체험 목록과 현실가능성

 

<지렁이의 기도>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포함하면 27개의 글 모음이라고 볼 수 있는데, 분량상 체험의 모음집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저자의 직접 체험 외에도 간접 체험 목록을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예언

2) 엑소시즘

3) 환상 및 음성

4) 방언과 통역

5) 유체이탈

 

이상이 책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체험 목록이고, 그 외에도 한 추천사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어떤 한 신학자의 과거와 미래를 맞추었다는 부분도 있다. 그리고 저자는, 이것들은 자신의 체험 중 일부이며, 또한 책에 실린 체험의 사실관계를 일일이 재확인했다고 한다.

 

필자는 저자나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의도적인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 두 가지 가능성을 말하고 싶다.

 

첫째, 기억의 왜곡이다. 인간의 기억이란 터무니없이 불완전하다. 객관적 기록이나 증거가 없는 단순한 기억에 의존한 것들은 사실관계를 확인을 했다고 할 수 없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체험 중, 상당수는 객관적 기록으로 남을 수 없는 것들이고, 확인 불가능하다. 그리고 현재의 편견에 따라 상황을 해석하고 기억을 해석하는 방향도 달라진다.

 

둘째, 엑소시즘, 환상 및 음성, 유체이탈은 지극히 개인 체험 및 해석에 속하고, 다른 가능성과 구별할 수 있는 방도가 없지만, 그럼에도 비일상적인 체험 중 충분히 검증 가능한 것이 있다. 예를 들면, ‘방언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실제로 방언을 한다고 주장하고, 또한 방언 통변도 존재한다고 말하기에,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한다면 검증이 가능하다. 이미 언어학 교수 윌리엄 J. 사마린(William J. Samarin)은 방언이 언어로써의 가능성이 있는지 과학적으로 검증하고 그럴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지만(<Tongues of Men and Angels: The Religious Language of Pentecostalism> 참조), 복수의 방언/방언통변가들이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하여 서로 일치한다면, 그러한 결과는 <지렁이의 기도> 저자를 포함한 다수의 종교인들에게 자신들의 정당성을 입증할 수 있는 작은 실마리가 되어줄 것이다.

 

한편, 기적이나 체험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은 자체적으로 기독교 내에 존재하지 않는다. 책의 내용과는 무관한, 그러나 언론을 통해 보도된 사건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KBS2 TV “제보자들이라는 방송 참고). 모 교회 내의 어떤 부부가 임신을 했는데, 정황상 목사와 불륜관계임이 분명했다. 친자확인 결과도 그러한 수치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실제 관계를 맺는 현장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정작 불륜 관계를 맺었다고 의심되는 목사와 해당 신도, 둘 다 그것을 기적적인 기도 응답이라 증언했다. ‘성경에 의하면, 성령 잉태는 예수에게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구약에서도 이삭과 삼손과 세례요한의 경우처럼 일반인에게서도 일어났다. 그리고 해당 교회 교인들도 목사의 말을 믿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 사건을 비난하는가? 그 목사와 관계가 없는 다수의 사람, 심지어 같은 기독교인들은, 그것은 거짓말이고, ‘당연히불륜이라 생각할 것이다. 이처럼 직관적으로는 구별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치밀한 이성적 분석을 시도하면 기준이 모호하다는 사실에 적지 않은 기독교인이 당황할 것이다.

 

혹자는 평소 보이는 삶이나 윤리를 기준으로 제시할 수도 있다. 실제로 다수의 기독교인이 윤리로 기적이나 그러한 체험의 진정성을 판단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다음은 윤리적 문제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배타적인 종교 윤리의 한계

 

<지렁이의 기도>는 전형적인 배타적인 종교 윤리의 한계를 보여준다.

 

1장에서는 무신론자 부모의 자녀가 아토피로 고생하는데, 기도할 수 없는 것을 예화로 들며, 기도할 수 있는 기독교는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타인의 아픔을 예화로 쓰는 것으로 배려심이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1장에서 무신론자들에게는 공허함이 있다고 주장한다. 19장에서는, 부부 중 한 사람이 불교를 믿는 집안에 찾아가 부처님이 집안 경제를 일으키면 부처님을 계속 믿고, 예수님이 집안 경제를 일으키면 개종하라는 말을 했는데, 결국 경제적으로 성공해서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22장에서는 괴로운 상황에서 불평, 불만이라도 쏟아야지, 만일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으면 이교도가 되거나 자연주의의 하나님(이신론을 뜻한다고 보는데,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을 섬기게 되는 위험이 있다고 말한다.

 

4장과 16장에서는 여성 인권에 대한 감각이 결핍된 듯 한 가부장적인 요소가 보인다. 4장의 예화는 모 목사의 책에 실린 어느 이야기를 인용한 것이다. 어느 시어머니가 아들이 기독교인이 여성과 결혼했음에 실망했으며, 그것을 며느리에게 직접 말했다. 그럼에도 그 시어머니는 잘 대해주었고, 그녀는 자발적으로 교회를 다니다가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19장에서는 남편이 술에 지나치게 의존함에 괴로움을 느끼는 아내가, 그럼에도 자신의 남편이 바람도 피우지 않고, 손찌검도 하지 않는 사람임에 감사 기도를 드리는 이야기를 예화로 든다.

 

태어날 아이의 성별을 직접적으로 하나님께 음성으로 듣는 장면도 몇 번 등장한다. 자신은 프롤로그에서 태어날 자기 아이의 성별을 간접적으로도 알려주지 않은 의사에게 화가 났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의료법상 금지이다. 5장에서는 어떤 부부가 4년을 아들을 기다렸는데 저자는 딸이라고 하자, 저자는 셋째는 꼭 아들을 주신다고 하니 너무 실망하지 마시랍니다라고 말해주었고, 실제로 아들을 얻었다고 한다.

 

17장에 등장하는 예화는 악령이 실제하며 그것을 예수 이름으로 물리칠 수 있다는 종교적인 엑소시즘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다. “‘자살의 영이라는 푯말을 붙인 귀신같이 생긴 존재가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 마음을 다잡고는 힘껏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우리 집에서 속히 떠나거라고 소리를 질렀더니 그 시커먼 존재가 옆집으로 갔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종교 서적으로 이해되지만, 그 다음 문장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참으로 조심스럽지만 서평을 위해 이 글을 인용하며, 모든 관련 아픔을 겪은 분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한다) 그렇게 그 시커먼 존재를 옆집으로 쫓아냈더니, 그날 밤 옆집 아이가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고 하며(저자의 직접 경험이 아닌 누군가에 들은 간접 경험이다), “어떻게 그것을 가리켜 신화 혹은 상상 속 관념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다. 23장에는 95세의 비기독교인 노인이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했고 위독한 상태의 혼수상태에서 밤새 예수님 잘못했어요. 제가 몰라서 그랬어요. 용서해주세요.”라고 7시간을 반복하며 소리 지르다가 아침이 되자 세례를 받고 싶다며 지난 밤 예수님이 계신 곳에 다녀왔예수님이 제 몸 아픈 것도 다 고쳐주시고, 제 죄도 다 용서하셨어요.”라는 고백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95세의 노인이 입원하여 그렇게 죽음이 두려워 말년에 회심하는 이야기는 배타적인 기독교인에게는 감동적인 구원 간증일 수 있으나, 한편으로 우리는 기독교인의 협박(천국과 지옥의 이분법)이 노인을 괴롭힌 것은 아닌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저자가 19장에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이 땅에서 복 받고 죽은 다음 저 우주 너머 미지의 세계에 있는 천당에 들어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고 말한 것치고는, 개종을 상당히 중요시 여기는 듯하다.

 

이와 같이 책에 녹아있을 뿐 아니라 한국 기독교 전반에 퍼져있는 배타적인 종교 윤리의 한계는, 우선 다문화/다종교(무신론 포함) 사회 속에서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 부족이다. 또한 법률적인 문제를 포함한 가부장제적 사고, 타인의 아픔을 단순 예화로 소비하는 문제점도 있다. 이것은 불륜보다 덜 심각한 윤리적 문제일까?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기독교인들과 인식하는 기독교인들 사이에는 분명 갈등이 있을 것 같다. 다만 법률적인 문제까지 포괄하는 윤리 의식 혹은 상식의 부재는 다문화/다종교 시민 사회에서 경계되어야 한다.

 

신학적 도전들

 

기도는 고대 종교에 속한 행위였으나, 시간이 지나 신학이 발전함에 따라 까다로운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신의 절대적인 섭리, 작정, 예정 등과 같은 것과 양립가능한지와 같은 중세의 질문부터 시작해서, 자연법칙을 제정한 신과 그것을 깨트리는 신의 기적 혹은 응답 간 모순은 없는지와 같은 계몽운동 시기의 질문, 기도들에 대한 다양한 현대의 실험 등은 기도를 뿌리부터 흔들기 시작했다.

 

따라서 만약 기도의 내용을 신학적으로 다루려면, 당연히 이런 사안들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다수의 기독교인은, 이런 급진적이고 현실적인 질문보다는 보수적인 고대 기독교 세계관의 테두리 내에서 은사지속이냐 은사중지냐의 입장에서 서로를 비판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 서적 역시, 대부분의 기도 서적과 마찬가지로, 진지한 신학적 성찰보다는 동화같이 나열된 체험과 더불어 짧은 조언 정도가 있다. 그런 고로 아쉽게도, 몇몇 신학자들의 추천사처럼(추천인 32명 중 10명이 전문신학자이다), 신학적 내용을 다루었다고 볼 수 없다.

 

그리고 배타적인 종교의 특징은, 명쾌한 기준 없이 타종교의 체험을 평가절하 하거나 같은 종교 내에서의 특정 집단을 이단 내지는 사이비로 몰아간다. 그러나 과연 공평한 잣대 위에서 본다면, <지렁이의 기도> 뿐 아니라 교회 내에서 돌고 도는 기도-동화들은 그들이 무시하는 종교, 이단, 사이비로 몰아가는 집단의 것들과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또한 다른 각도에서 예언에 국한해보자면, 이 책에서 허무맹랑한 예언으로 비판대상이 된 홍 모씨가 아니라, 대통령 후보를 예언하고 맞춘 무속인들을 진실로써 존중해줄 기독교인이 얼마나 될까?

 

공정하게 말해, 다수의 종교 신비체험은 착각일 수도 있다. 종교에 심취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위 그러한 떠오르는 생각을 하나님의 음성이라 믿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머릿속 망상과 진실한 신의 음성을 구별해낼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일까? 추측해보건대, 실제로 맞아 떨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소한 인생의 낮은 확률에 대한 것들은 누구나 우연히 맞출 수 있고, 또한 사람은 다르게 선택할 때 찾아올 미래에 대해서 알지 못하므로, 다시 말해, 다른 선택에 따라 찾아올 결과를 모르기에, 어떤 것이 더 나은 선택이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누군가의 예언에 따라 한 선택이 지금 와서 보니 신의 뜻이었고 진정한 예언이었다는 믿음은 회고적인 해석에 불과하다. 질병의 치유 이야기는 어떠한가? <지렁이의 기도>에는 기도를 통한 기적적인 치유 사례는 없지만, 그럼에도 책의 말미에는, 정작 저자는 수년간 만성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으나, “수많은 공황장애 및 우울증 환자를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고치셨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미 기독교의 기도를 통한 치유에 대한 보고나 기록 그리고 심지어 실험들은, 기도에 의한 치유 효과는 증명불가능하거나, 플라시보, 호손, 로젠탈, 평균으로의 회귀, 자발적 치유 등과 관련이 있는 수준이라는 연구도 있다(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2802370/#CIT32참고). 기적일수도 있지만, 그 정도 수준의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병원에 가는 것이 현명하다.

 

한편, ‘성경적기도란 도대체 무엇일까? 기독교인들의 담론을 지켜보면, 특정 신학적 편견에 사로잡혀서, 명확한 기준을 세워서 얘기하기보다, 편의대로, “성경적이다, 성경적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성경에 나타난 기도의 스케일은 상당하다. 자연 현상을 통제하고, 죽은 자를 살리고, 불치병을 즉시고치고, 물리적인, 화학적인 기적이 일어나고, 엑소시즘을 행한다. 어떤 사람은 절단환자를 위해 기독교인이 기도하여 재생시킨다면(도마뱀은 기적이 없어도 행한다), 전 세계가 하나님을 믿을 것이라고 진지하게 제안하기도 했다(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1924985/#R23참고; 또한 무신론자 샘 해리스가 목사 릭 워렌과의 대화 중에 유사한 제안을 했다. http://web.archive.org/web/20100328002309/http://www.newsweek.com/id/35784/page/1참고). 누군가 나에게 왜 기도하는 기독교인을 모조리 근본주의자 취급하냐고 화낼 지도 모르겠지만, 오히려 나는 그 외에 더 이상 이론의 여지가 없는 성경적이란 형용사 사용법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현대 기도 서적 중, 성경의 기적에 준하는 기도를 권면하고 가르치는 내용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어렴풋이 다수가 그것은 지나친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기도자가 고백하는 전능하신 하나님과 일치하는지, 혹은 <지렁이의 기도> 저자를 비롯한 많은 기독교인들이 비판하는 이신론자들에 비해 신학적으로 일관성 있는 주장인지 또한 되묻고 싶다.

 

나가며

 

기도에 대한 많은 책이 있고, 국내의 많은 교회는 기도 학교나 기도팀을 운영한다. 그리고 많은 기독교인이 틈만 나면, 유치한, 때로는 비도덕적인 반대 집회를 열거나 기도 모임을 갖는다. 기독교계에서, 특히나 개신교계에서 기도에 대한 서적은 언제나 인기다. 하지만 이 세상 도처에서 일어나는 비극에 대하여 무력한, 때로는 책임을 져야하는 지난 기독교 역사 속에서, 여전히 신학적 수준이 고대인들 수준에 머문다면, 아니 심지어 고대인들보다 더 비겁하게 신의 능력을 이런 저런 현학적인 말들로 제한하며 타협하는 자세만 정당화하고 있다면, 어떻게, 기독교의 복음이 온 세상에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겠는가?

 

기도를 자신의 고달픈 인생의 현실에서,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힘겨운 사회에서 도피하는 수단으로 삼는 기독교를 넘어서자. 기도라는 행위는 인격을 성숙시키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거나 슬픔을 위로하고, 무엇보다 사회적 대의명분을 공유하게 만들어주는 훌륭한 인류의 기술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끝으로, 신학자들에게 바라건대, 현대인이자 동시에 종교인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상업적 글보다 때로는 진지한 신학적 고민에 앞장 서주길 간곡히 부탁을 드린다.

홀로만의 시간을 버티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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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손관승-.JPG»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지난 한 해를 정리한다면 여러분은 한마디로 어떻게 표현하시겠습니까? 직장생활 15년차이며 40대 초반인 한 여성은 ‘척척’한 해라고 표현합니다. 무엇을 물어보든지 묻는 대로 척척 대답하는 척척박사라는 뜻은 아닙니다. 어떤 의미인지 구체적으로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해인들 피곤하지 않은 적은 없지만, 올 한 해는 ‘척척’하느라 무척 피곤했습니다. 모임에서 한 번 만났을 뿐인데 매우 친한 척, 없는데도 있는 척, 직장에서도 잘 모르는데도 아는 척합니다.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데도 좋은 척, 기분이 나쁜데도 기쁜 척 하면서 지냈지요. 나와 의견이 달라도 같은 척, 틀렸는데도 옳은 척, 거짓인데도 진실인 척해주면서 살았습니다. ‘나 요즘 얼굴이 망가졌지?’라고 동료가 물어보면 예쁘다고 맞장구쳐줘야 했습니다. 누가 시켜서 그런 것은 아니고 예의상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점점 감정연기자가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회의가 드네요. 진짜 느낌과 생각을 숨기고 남들 기분에 맞춰주면서 살아야 하는 걸까요? 관계에 정말 피곤함을 느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3척 행복’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있는 척, 아는 척, 예쁜 척의 3척입니다. 소셜미디어에 노출된 얼굴은 더욱 그렇습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복입니다. 주변에 인정받고 싶기에 인정중독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출근해서 출근부 도장을 찍듯 맘에 들지 않아도 여기저기 ‘좋아요’를 꾹꾹 눌러주다가 시간이 지나갑니다. 유명 저자의 북 콘서트 뒤풀이 자리에 참석했다가 그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에 올린 장면을 본다면 상대적으로 뒤처진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댓글이나 ‘좋아요’ 수에 연연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많은 이들이 외롭습니다. 아닌 척하지만 사실은 고독합니다. 하루하루 사는 것도 힘에 부칩니다. 가끔은 고립되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고 저런 모임에도 나갑니다. 힘들 때는 이웃이 소중합니다. 모임을 하나라도 거르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빠지지 않고 찾아나섭니다. 그러는 한편으로 누군가를 우상으로 만듭니다. 페이스북 스타를 우상으로 만들고, 교회 목사를 우상으로 만들고, 필명을 날리는 작가를 우상으로 만들고, 가수를 우상으로 만들어 그 황금빛에 취합니다.


혼자서 밥 먹는 것을 끔찍이도 못 견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성보다 남성, 젊은 사람보다 나이 든 사람일수록 그런 경향이 더 있습니다. 퇴직 후에도 당구장에 모이거나 등산모임을 즐겨 찾습니다. 결혼식, 문상 다니느라 무척 바쁩니다. 빽빽하게 메모한 일정표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백수가 과로사할 지경이야!”


물론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어딘가에 소속되어야 안정감을 느끼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일종의 심리적 보험과도 같습니다. 힘들 때 누군가 챙겨주리라는 심리적 안전장치라 볼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에게서 잊힌다는 것은 물론 슬픈 일입니다.


그래서 잊히지 않으려 몸부림칩니다. 하지만 뭐든지 과하면 병이 됩니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관계 맺기는 탈이 납니다. 관계가 넓어지고 깊어지던 어느 날 지독한 ‘관계의 중독’에 빠진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몸도 피곤하고 마음도 탈이 납니다. 금전적으로도 부담스럽습니다.


에리히 프롬이 쓴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저명한 책 제목처럼 사람들은 자유를 말하면서도 실은 자유를 두려워합니다. 바람처럼 살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막상 자유가 주어졌을 때 도망가려고 하는 게 우리입니다. 막연한 누군가와 연결되기 위해 애를 씁니다. 정작 중요한 자기 자신은 빼놓은 채 말입니다.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질 못한다면 ‘사회독’(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상태)을 의심해야 합니다. 직관과 통찰을 중요시하는 수도자들은 사막이나 산속 같은 독립된 공간에서 얼마 동안 홀로 생활하도록 훈련합니다. 왜 그럴까요? 사회관계에서 오는 독을 끊기 위해서입니다. 뭐든지 지나치면 독이 되기 때문인데, 관계도 그러합니다. 세상과 뚝 떨어져서 홀로 지내는 그 기간을 견뎌내야 비로소 혼자 있어도 외롭거나 두렵지 않은 상태가 찾아온다고 가르칩니다. 그것을 가리켜 ‘독존의식’이라고 합니다.


신문기자로 있다가 다른 직업으로 변신한 이들은 ‘잉크물이 빠지는 데 2~3년은 걸린다’고 합니다. 여기서 ‘잉크물’이란 기자라는 자의식을 말하지만, 사람관계 속에 푹 빠져 지내던 생활도 의미합니다. 일찍이 정신치료에서는 혼자 있는 능력을 성숙한 성격의 지표로 보고 있습니다. 혼자 있는 동안 만나게 될 자기 안의 여러 가지 단면과 소통하지 못한다면 나는 나 자신에게서 소외된 것입니다. 나 자신에게서 소외된 사람이 어떻게 세상 그 누구와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을까요?


남을 쫓다가 정작 나 자신을 놓칩니다. 다른 이들의 방식을 따라 하다 내 방식을 잃어버리지 않았을까요? 사람들을 잃는 것은 물론 두렵습니다. 하지만 더 두려워해야 할 것은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다 정작 잃어버리는 나 자신입니다. 나다움이란 내 식으로 사는 라이프스타일을 말합니다. 남과 다르게 사는 것이 최고의 매력입니다. 인맥, 소중합니다. 하지만 과도한 인맥은 정리해야 합니다. 위기 때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하듯 과감히 인맥 구조를 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은 4차 산업혁명을 말하지만, 나 자신에게 더 필요한 것은 자기 혁신 아닐까요? 홀로 있는 시간을 버텨내야 자기 혁신이 시작됩니다. 가끔은 홀로 지내보시기 바랍니다.


못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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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jpg


세상에서 가장 급한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찾는 일이다그런데 사람들은 진짜 급한 일은 잊어 버리고 중요하지도 않은 일로 바쁘다고 한다.

경봉 스님은 16세에 출가하여 35세에 깨달음을 얻었다고요한 방에서 촛불을 바라보고 앉아 있는데 갑자기 한줄기 바람이 불어와 촛불이 춤을 추었다그순간 활짝 마음이 열려 그 심경을 노래하였다.


내가 나를 온갖 것에서 찾았는데

눈앞에 바로 주인공이 나타났네

허허 이제 만나 의혹 없으니

우담발화빛이 온누리에 흐르는 구나.


그 뒤로 걸림 없는 지혜를 얻어 법석을 여니 극락암으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극락암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스님께서는 물으셨다극락에는 길이 없는데 어떻게 왔노?

큰스님 방에는 당신 붓글씨로 좌우명 한귀절을 써서 붙여 놓았다.


몇줄기 구름빛은

산봉우리로 피어 오르고

시냇물 소리는 난간에서 들린다.

고운 것은 미워하고 싫은 것은 즐거워 하도록 노력하련다

큰 활용은 미간조차 꿈쩍않는 것

야반삼경에 촛불춤을 볼지어다.


경봉스님-.jpg» 경봉 스님(1892~1982)


할 말이 있는 이는 10분 이내로 하고 나가도록 한다.

1980년대 초반 가수왕 조용필이 대마초사건으로 위안을 찾고자 큰스님을 찾아왔다.

머하는 사람이고? 노래하는 가숩니다그래 그러면 노래 한번 해보거래이구성진 노래 한가락이 암자에 울려 퍼졌다고놈 참 노래 잘한데이. 네 안에 꾀꼬리가 들었구나네 안에서 노래하는 꾀꼬리의 참주인이 누구인지 아느냐?

찾아보거라 누가 노래하는지?

네 안에서 노래하는 꾀꼬리를 찾으라는 말을 듣고 조용필은 말문이 막혀 산길을 내려갔다내려가는 길목에서 오도송처럼 가사가 터져 나왔다.


못찾겠다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오늘도 술래

못찾겠다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언제나 술래

어두워져 가는 길목에 서면 어린시절 술레잡기 생각이 날거야


대형가수 조용필의 히트곡 ‘못찾겠다 꾀꼬리의 탄생비화이다.


소금이 바닷물에서 나오지만

물에 들어가면 녹아 버린다.

봄이 오면 비바람으로 꽃이 피어나지만 비바람 때문에 꽃이 떨어진다.

여인의 몸에서 사람이 나오지만 여인 때문에 사람들은 쓰러진다.

노년의 큰스님이 시자들에게 들려준 경책의 말씀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도움이 필요한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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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에 인접해 있는 도심리 마을에 85세 되는 아버지와 단둘이 컨테이너로 된 집에 박윤식이라는 형제가 살고 있습니다. 이형제는 군복무 중에 벌을 받다가 선임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허리를 다쳐서 뼈가 두 개나 부러졌습니다. 척추수술을 해서 간신히 걸어 다닐 수는 있지만 무거운 것은 절대 들 수 없습니다. 어떤 직업도 가질 수 없습니다. 정부로부터 생활 보호대상자로 지정이 되어 보조금인 월 30만 원으로 살아갑니다.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너무 큰 고통이었기에 늘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정신적으로 이상이 생겨서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습니다. 삶에 대한 좌절은 그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가끔 방문해서 함께 교제를 나누면서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형제가 살고 있던 땅이 다른 사람에게 팔리면서 새 주인이 그 집을 비워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장 갈 곳이 없어서 그냥 지내고 있었는데 땅 주인이 청부 폭력배들을 동원해서 형제의 집에 마음대로 들어가서 기물들을 부수고 강제로 철거하려고 했습니다. 수도 시설도 부서뜨리고 전기선마저 끊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보일러가 가동되지 않아 추운 상태로 겨울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 형제를 방문하여 그의 하소연을 들어 주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의논했습니다. 결국 경찰에 신고했고 150만 원의 이사비용을 받고 이사하기로 땅 주인과 합의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옆 동네인 풍천리에 이사할 수 있는 빈집이 생겼습니다. 


당시 공동체에서는 선교사 훈련이 있었습니다. 훈련에 집중하다 보니 그 형제를 방문하지 못했습니다. 훈련 프로그램을 마친 후, 주일예배를 드리고 오후에 그 곳을 방문했습니다. 방문해 보니 그 부자(父子)는 이삿짐을 다 옮기고 마지막 정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삿짐은 컨테이너로 옮겼기에 큰 어려움이 없었는데 외부에 설치해 놓았던 보일러 장치가 남아 있었습니다. 이 형제는 허리가 아파서 쇠로 된 보일러를 들지 못하고 있고 연로한 그의 아버지 역시 도저히 들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그 곳에 도착해서 그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제가 도울 일이 있습니까?”

“다른 짐들은 다 옮겼는데 저 보일러는 꼼짝을 하지 않습니다.”

이들 부자(父子)는 보일러를 가리키면서 볼멘소리로 자신들이 도저히 들 수 없음을 하소연이나 하듯 말했습니다. 보일러를 움직여보니 정말 무거웠습니다. 그래서 공동체에 와서 바퀴 달린 짐수레를 가지고 다시 그 곳으로 가서 보일러를 차에 옮겨 실었습니다. 보일러를 차에 싣는데 걸린 시간은 5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보일러 때문에 근심하고 있던 이들은 쉽게 문제가 해결되자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거기에다 추운 날씨에 마실 수 있는 따뜻한 커피와 차를 가지고 가서 함께 마셨습니다. 그 형제의 아버지는 눈물을 글썽거리시면서 말했습니다.  


“이사하는데 동네사람 중에 어느 누구도 쳐다보지도 않아요. 그런데 목사님이 오셔서 보일러도 차에 실어 주시고 따뜻한 커피까지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목사님은 하나님이 보내 주신 구세주입니다.”

그 옆에서 이 말을 듣고 있던 박윤식 형제도 겸연쩍게 웃으며 거듭거듭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맞아요. 목사님은 우리의 구세주입니다.”


너무 과분한 말을 들었기에 저는 부끄러운 마음을 가졌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만큼 도와준 것이고 이것은 저에게 대단한 것이 아닌데 그들에게는 구세주를 만난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사할 장소까지 가서 보일러를 내려 주고 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하늘을 잠시 올려다보며 ‘구세주 되는 것 어렵지 않네.’라고 스스로 중얼거렸습니다. 


어떤 사람의 필요를 알고 그와 함께하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그의 필요를 도와준다면 그 사람에게 그는 바로 구세주가 됩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입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창세기에 처음으로 부정적인 표현이 나오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아담을 만드시고 난 후입니다. 다른 피조물은 창조하신 후에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했지만 아담을 만드시고 난 후에 독처(獨處)하는 것을 좋지 않게 보셨습니다. 그래서 돕는 배필인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으로 하여금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만약 아담이 완벽한 능력의 소유자였다면 도움이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아담은 어떤 부분에 있어서 반드시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였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는 도움이 필요한 존재인 아담에게 하와를 만들어 주시고 그 후에 하나님은 비로소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가난, 전쟁, 기근 등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집니다. 이와 같은 것들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데 필요한 환경으로 보아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우리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찾아봅시다. 한 발 한 발 그들에게 다가가 보십시오. 이미 우리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고백을 그들의 입술로부터 들을 것입니다. 

“내가 당신을 보니 예수님을 보는 것 같습니다.”


진짜를 보기위한 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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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뀐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신년이 주는 새로움은 간 곳이 없고 무덤덤한 그저 그런 일상의 연속이다. 새해첫날 큰맘먹고 북한산에 올랐던 그날을 되돌아보며 스스로를 향한 다짐을 다시금 되새긴다.

11일 새벽 해맞이 산행을 위해 430분에 자명종을 맞추었다. 따르릉 소리에 잠을 깼다. 시계를 보니 자정이다. 꿈과 현실이 둘이 아니라더니 꿈속에서 알람소리를 들은 것이다. 그렇게 설랠 일도 아니고 설랠 나이도 아닌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다시 잠을 청했다. 이번에는 전화벨이 울린다. 같이 오르기로 한 일행의 연락이었다. 430분이다. 세수를 하고 옷을 주섬주섬 챙기니 그제서야 숙소의 자명종이 울린다.

 

밖은 깜깜했지만 춥지 않았고 날씨는 맑은지라 별빛이 초롱초롱하다. 북한산 구기동 입구에는 일출 산행팀 수십명을 세워놓고 안내판 앞에서 유경험자가 열심히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미 잘 아는 길이라 굳이 설명을 들어야 할 필요가 없는지라 그냥 지나갔다. 얼마 후 등산화가 군화같은 저벅걸음 소리를 내며 불빛의 행렬과 함께 뒤따라온다. 뒷팀을 의식한 채 발걸음을 빨리 했더니 금새 지친다. 겨우내 웅크리고 지낸 까닭에 운동부족 탓이리라. 코끝에서 느껴지는 냉기도 만만찮다. 할 수없이 차가운 바위에 기댄 채 휴식을 취했다. 뒷팀이 지나간다. 추월 당한 것이다. 기운을 차린 뒤 천천히 일상걸음으로 쉬엄쉬엄 따라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앞팀의 낙오자가 한 두명 보인다. 금방 앞팀 후미가 나타났다. 경쟁적으로 빨리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꾸준히 걷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선후를 다투지 말고 각자 자기능력에 맞추어 자기 길을 걸어가면 될 일이다.

 

눈이 쌓인 곳은 음지길이고 녹은 곳은 양명한 곳이다. 서쪽 달이 보이면 등성이 길이고 별만 보이면 골짜기 길이다. 손전등이 비추는 한평 불빛에 의지한 길이지만 올라갈수록 뒤돌아보는 서울 시가지의 불빛면적은 기하급수적으로 넓어진다. 서산에 걸린 새해 첫달을 만났다. 카메라로 겨우 잡고보니 화면상으로 일출인지 월몰인지 구별이 불가능하다. 올해는 11일이 음력1115일인지라 보름달을 전송하는 기쁨을 덤으로 누렸다. 이제부터 온통 눈밭이 펼쳐진다. 여기가 빙점인 모양이다. 이내 옅은 아침안개 속에서 내남문이 성벽과 함께 떡하니 버티고 서있다. 다왔구나!

 

문수봉에서 해맞이를 했다. 예전에는 첫일출을 향해 두손을 공손하게 모으고 한해의 소원을 빌었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일출을 찍으려고 두 손을 바닷게 두 발가락처럼 모운다. 핸드폰의 대중화가 일출풍속까지 변화시킨 것이다. 일출도 찍었지만 일출산행객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기도하는 새로운 모습도 함께 찍었다. 합장은 합장인데 두 손바닥이 닿는 것이 아니라 양손의 두 손가락을 스마트폰이 이어주고 있다. 태양신 혹은 일광(日光)보살을 찬탄하는 방식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인가 보다. 누구누구 할 것없이 덕담과 함께 여기저기 일출사진을 보내며 새해인사에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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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과 실상이 구별되지 않는 시대라고 한다. 집에 누워 TV를 통해 전국의 일출풍광을 모두 볼 수 있는 쉬운 방법도 있다. 그럼에도 가상은 가상일 뿐이다. 나만의 실상을 보기위해 새벽부터 산에 오른 것이다.  실상을 보려면 노고와 땀이 수반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실상을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선 가상을 빌려야 한다. 실상은 내것이지만 공유하면 가상이 된다. 또 실상은 순간포착 후 사라지지만 가상은 영원히 보관할 수 있다. 각각 장단점이 있는 법이다. 어쨋거나 나를 통해 실상과 가상이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욱 좋은 일이다.

 

인근 문수사 법당으로 갔다. 고개를 숙이며 새해소원을 기원한 뒤 부엌방으로 가서 떡국을 먹었다. 일출순례객을 위해 떡국을 끓이는 자원봉사자 10여명과 함께 새해인사를 나누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먹는 떡국이다. 누구는 나이 먹기 싫어 떡국이 아니라 만둣국을 먹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여긴 일반식당이 아닌지라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하긴 만둣국을 먹는다고 나이를 피해갈 수 있는 일은 아니겠지만.

절집의 옛시인은 해와 달이 함께 뜨고 지는 날을 이렇게 노래했다.

일월재수미산요(日月在須彌山腰)

해와 달이 수미산 허리에 걸려 있도다.

 

꿈에 '쫒기지'마라

꿈이 현실이 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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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디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서 아이들, 강아지와 함께 뛰어놀며 사는 꿈은 도시인이라면 한번쯤은 꾸어봤을게다. 하지만 대다수는 꿈만 꾸고 만다. 그런데 이 꿈을 현실화한 사람들이 있다. 도시의 직장을 떠나지도 않고서 말이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남산동 신흥마을엔 이렇게 꿩도 잡고, 매도 잡은 이들이 살고 있다. 본량마을공동체네트워크(본마공) 사람들이다.


 광주송정역에서 차로 영광통을 빠져나와 10여분만에 본량초등학교 뒷편으로 돌아가니 평화로운 시골마을이 숨어있다. 시내에서 이토록 가까운 곳에 어떻게 오지 산골같은 느낌의 이런 마을이 있었을까. 도시에서도 보기 어려운 멋들어진 집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퇴락한 시골마을이 아니라 ‘새롭게 흥하는’(신흥) 마을이 틀림 없다. 


 하지만 이 마을도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폐가가 늘어가는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었다. ‘광산군’이 광주광역시에 편입되기 전 광산군 본량면이었던 이 지역은 용진산을 등에 업고, 앞엔 너른 들판과 황룡강, 어등산을 마주한 천혜의 길지다. 그런데도 광산구 유일의 소외지대로 남아 본량동초· 본량서초, 본량중학교가 폐교되고, 유일하게 남은 본량초등학교마저 학생수가 30여명 밖에 안돼 폐교될 위기에 처했었다. 그러나 본량초교는 이제 학생수가 80여명으로 늘었다. 본마공 11가구 41명이 이주해오면서 아이들이 늘어난데다, 소문을 듣고 광주시내에서도 전원속 본량초로 아이들을 보내는 이들이 늘어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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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흥마을은 새로온 11가구가 기존마을 30가구가 함께 살아가는 마을이다. 이곳 역시 원주민은 대부분이 노인들이지만 30~40대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오며 천지개벽했다.

 지난 20일 마을 골목에 들어서니 사람들은 이웃과 마주칠 때마다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길거리에 선채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여자 아이는 이웃집 언니가 다가오자 이산가족을 상봉한 것마냥 얼싸안고 얼굴을 부빈다. 


 본마공은 광주시내에서 육아를 위한 사회적협동조합을 꾸려 ‘햇살가득’공동육아를 하던 이들이 모태가 되었다. 조합원들이 광주시내에 있던 어린이집을 본량 송치마을에 옮겨 시작한게 2006년이었다. 그래서 신흥마을로 이주하기 전에 이미 햇살가득을 마친 아이들을 본량초등학교로 보낸 회원들이 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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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들이 처음부터 공동체마을을 생각한 건 아니었다. 선구자인 박수미씨네가 두아이를 데리고 2009년 12월 본량초교 뒤인 이 마을에 들어올 때까지만도 이런 공동체마을이 될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이어 수미씨 집을 와본 햇살가득 사무국장 김은정씨네가 2011년에 들어오고, 햇살가득 교사였던 최혜영씨네와 이겨레씨 가족이 뒤를 이었다. 이렇게 네집이 되면서부터 공동체에 대한 책도 읽고, 여기저기 공동체마을들을 찾아다니며 배우기 시작했다. 이들은 “땅 200평을 빌려 농약을 사용하지않고 논농사를 짓다가 모두 몸살에 걸려 공동체가 초장에 와해될 뻔 했다”며 웃음으로 회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네 어르신들에게 농사를 배우면서 어르신들과 한결 가까워졌다. 박힌돌과 굴러온 돌이 함께 해보자는 돌돌문화제도 하고, 마을정자에서 음악회도 했다. 복날이 되면 닭백숙을 해 경로당 어르신들에게 대접도 했다.


 2015년엔 건강사회치과의사회광주지회 대표인 이금호씨와 광주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이던 김지연씨 부부가 들어왔고, 이씨의 친구인 박진근씨네가 잇따라 정착했다. 이렇게 여섯집까지는 각자 땅을 사서 집을 지었다. 그런데 그 다음해 공동체건축을 하는 코비즈 정상오 대표가 여러집이 마을공동체 집을 지어 살아보면 어떠냐고 제안하자 소문을 들은 다섯집이 공동으로 마을 한가운데 논 832평을 사서 함께 집을 지었다. 2016년 마지막날 송성주씨네가 입주하며 독수리5형제가 똬리를 틀었다. 노조전임자는 송씨는 “나이 들어서는 이웃을 사귀기가 더 어려워 한살이라도 젊었을 때 좋은 이웃들과 어울리기 위해 들어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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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마공에선 초등학생은 핸드폰 사용을 못하게 한다. 그래도 아이들은 할게 너무나 많다. 봄이면 뒷산에 지천인 진달래꽃을 꺾으러가고, 눈이 쌓이면 천연 눈썰매를 탄다. 봄 여름엔 마당에 텐트를 쳐달래서 유성우와 별자리도 관찰한다. 본마공은 공무원, 교사, 의사, 세무사, 강사, 사회활동가 등 직업도 각양각색이다. 거의 맞벌이다. 그런데도 아이들끼리 신나서 함께 노니, 왠지 어른들은 자유롭고 여유로워졌다고 한다.  마을 아이들 모두를 데리고 놀이동산에 갈때도 어른 둘이 도맡아 데려가면 된다. 아이들은 온마을이 자기집인양 내복을 입고 돌아다니고, 자기 집에서 저녁을 먹고도 친구집에 가서 또 저녁을 먹는 바람에 돼지가 되어가고 있다고 어른들은 걱정 아닌 걱정을 한다. 최근엔 햇살가득 어린이집부터 본량초교까지 쭉 함께 해온 선우, 승준, 주영이, 희아네 넷의 가족들끼리 베트남 다낭 여행을 다녀왔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우리가 ‘햇살가득’ 어린이집도 만들고, 본마공도 만들어 너희를 이렇게 행복하게 해줬으니, 너희는 나중에 우리를 위해 ‘어른이집’을 만들어줘야한다”고 너스레를 떤다. 하지만 어른들도 아이들 못지않은 수혜자다. 누가 해외여행 갔다가 술을 사왔다고 해도, 누가 외출했다가 굴을 사왔다고 밴드에 올리면 즉각 집에 있는 맥주나 포도주나 반찬 한두개를 들고 모인다. 그러면 즉석파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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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마을 출신인 임동규 선생에 의해 전해진 민족무예 경당을 아이들이 배우는 일요일 저녁시간이 되면, 어른들만의 파티가 빠지지않는다. 여름 밤에만 진영이네 하얀벽을 향해 빔프로젝트를 쏘아 잔디밭에서 영화를 보며 한잔을 즐긴다. 광주시청 공무원 정승균 이겨레씨 부부는 “15일간 외국 여행을 다닐때도 마을벚꽃을 즐기는 이웃들을 보면서 우리만 빼놓고 자기들끼만 즐겁게 놀고있다는 생각에 어서 빨리 돌아오고만 싶었다”고 했다. 본마공 사람들은 옆집에 모두 갱엿을 붙여놓은 것만 같다. 그래서 퇴근해 마을에 들어서면 어느 집에 불이 켜졌는지부터 눈이 간다고 했다. 어서 빨리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고 놀고 싶어서다. 이날도 수미씨 생일이라며 송정시장 부근에 카페를 빌려서 공연을 곁들인 파티를 했다. 놀자판이다.

 

 이들이 기쁨만 함께하는 것은 아니다. 2년전 추석 하루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난 단비 엄마 김은정씨를 기리고 추모하며 슬픔을 나누는 것도 공동의 몫이다. 

 본마공은 올해 사랑방 구실을 할 커뮤니티센터를 짓는다. 그 안에 마을도서관을 만들지, 카페와 분식집을 할지, 문화예술인들이 머물 게스트하우스도 할까. 꿈만 꾸는데서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 놀 궁리가 매일 매일 익어가고 있다. 



인생을 망치지않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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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가망신’이라는 말이 있다. 가지고 있는 재산과 명성을 다 날리고 이제는 초라하고 쓸쓸하게 나앉은 경우를 말한다. 지혜롭지 못한 판단과 처신으로 소중한 인생을 망친 사연을 듣게 되면 문득 생각나는 한 사람이 있다. 그 분은 지금 어느 소도시에서 귀금속상을 운영하고 있다.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평범한 시민이다. 내가 이 분의 삶에 주목하는 이유는 지혜롭게 산다는 일이 바로 이런 모습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는 시골에서 11남매의 틈에서 그야말로 찢어지게 가난한 어린 시절을 맞았다. 학교도 못가고 매끼 밥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 시골집에서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소년은 무작정 서울로 갔다. 최소한 밥은 굶지 않겠다는 생각에서 중국식당에 취직했다. 그 때 소년은 이런 생각을 했다. 여기서 내가 사는 길은 오직 정직, 근면, 성실이다. 그러면 주인이 나를 쫓아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몇 년을 식당에서 열심히 일했다. 그러다가 삶을 바꾼 인연을 만나게 되었다.  식당 근처의 금은방 주인이 소년에게 제안을 했다. 너 나하고 일하지 않을래? 평소 소년의 성실한 모습을 주인은 눈여겨 본 것이다.


 귀금속과 시계를 팔고 있는 그곳에서 청년이 된 그는 식당에서 와는 달리 이런 생각을 했다. 이곳에서는 오직 기술을 잘 배워야겠다고. 그렇게 여러 세월 동안 그는 귀금속과 시계에 관한 기술을 익히고 장사의 방법도 터득했다. 어느덧 월급을 착실하게 모은 그는 지방의 소도시에 내려가서 귀금속상을 차렸다. 가게 이름은 자신의 인생철학을 담은 신용당. 사업은 날로 번창했다. 가난했던 소년은 참한 연분을 만나 결혼을 하고 자식들 두었다. 웃음이 넘치는 나날이었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삶의 행적이다. 그런데 평범 속에서 그는 비범한 생각과 다짐을 했다. 이제 돈도 벌고 생활도 안정이 되었는데 어떻게 인생을 망치지 않고 보람있게 살 수 있을까? 어려운 환경을 딛고 이제는 먹고 살만한 주변의 친구들을 보니 노름과 주색에 빠지거나 무리한 사업투자로 패가망신 하는 경우가 있구나. 나는 패가망신하지 않고 나름대로 사는 재미와 보람을 가져야 겠다. 그러자면 책을 읽고 등산을 하고 절을 다니면서 자신을 다스려야겠다.


 지금도 가끔 내게 들러 차담을 나누는 그는 여전히 근면하고 성실하고 헛된 곳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 이 분을 볼 때마다 많이 알기 보다 잘 아는 일이 바로 지혜로운 삶이다, 라는 생각을 한다. 

 

 또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사람은 인생을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한 나름의 처신을 가지고 있다.  “나는 누구에게 줄을 서지도 않고 누구도 줄을 세우지 않는다” 자존감 구겨가면서까지 어딘가에 끼어들어 안심이 되는 세상에 그는 억지로 인맥을 만들지 않고도 사람들과 좋은 사이를 맺고 살아가고 있다.

  책에서 찾지 않아도 이래저래 인생길의 고수들이 많다. 그들의 공통점은 가야할 길과 가지 않아야 할 길을 잘 알고, 분수와 능력만큼 일하고 소유하면서 자족한다는 점이다.      


그이가 마지막 머물던 그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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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가족이 떠난 장소가 남겨진 이들에게는 가장 의미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의미있는 장소이긴 하지만 꼭 추억의 장소이거나 그리운 장소가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때로는 가장 혐오하는 장소, 가고 싶지 않은 장소가 되기도 한다. 사별가족 모임에 오시는 많은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우리 남편이 떠나간 그 병원 근처는 가고 싶지도 않다’ ‘난 그 병원 안 쳐다보려고 일부러 돌아서 다녀요’ 참 안타까운 일이다. 


   어떤 신앙을 가진 이들이건 신앙인들에게는 소중하게 여기는 장소가 있다. 성지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는 예수님과 성모님, 불교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는 석가모니와 관계 있는 장소나 많은 깨달음을 얻은 부처들과 연관된 장소는 그들에게는 특별한 장소이고 늘 가고 싶은 장소가 된다. 그래서 성지 순례라는 프로그램이 인기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가장 사랑했던 가족, 친구들이 마지막을 머물렀던 병원, 병실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하고 의미있는 성지인가? 예수님, 성모님, 부처님의 흔적이 닿았던 곳이 성지라면 피와 살을 함께 나누고 수십년을 한 지붕아래에서 살던 내 가족이 마지막을 보낸 병원은 내게 당연히 성지여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일까? 답은 간단하다. 마지막 지내던 병원에서의 나날들이 좋은 추억 한 두가지쯤이라도 만들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여건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임종이 중환자실에서 이루어지는 현실안에서는 더욱 더 쉽지 않을 것이다.


   제주도가 집이었던 어떤 할머님은 서울의 원자력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포천 모현으로 오셔서 임종을 맞이하셨다. 그 분의 따님은 현재 일본에 살고 계시는 데 해마다 3월이 되면 한번쯤 한국을 찾으신다. 우선 제주도에 가서 어머님 제사를 지내고 포천 모현에 오셔서는 어머님이 마지막 머물렀던 방을 돌아보시고 정원에 나가서 어머님과 함께 거닐었던 추억을 되살리며 산책을 하신다. 그러고는 끝까지 무리한 치료를 권하지 않고 좋은 병원을 소개시켜줘서 고맙다고 원자력 병원에 가서 선생님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다시 일본으로 가신다. 가끔 편지도 보내오고 맛난 과자도 정성스럽게 보내 주는 그 따님은 동경에서 호스피스 봉사를 시작해서 열심히 살고 있다. 너무 먼 길을 오가는 것이 안스러워 이제는 그만 오시라고 하면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전 일년에 한 번씩 성지 순례를 오는 거예요. 이 세상에서 제가 가장 사랑했던 엄마가 마지막 머물렀던 이 장소는 제게 가장 의미 있는 장소, 성지거든요’ 


   호스피스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시실리 손더스 여사는 이런 말을 했다. ‘살아있는 가족들의 기억에는 그 사람이 어떻게 죽었느냐가 영원히 남아 있게 된다’ 우리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이 내게 지금 추억으로 남아있는가? 악몽으로 남아있는가? 한번쯤 생각해 볼 때이다.


휴심여행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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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과 인문학 공부엔 공통점이 있다.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것이다. 습관의 골짜기를 벗어나 처음으로 다른 세계를 보면, 기존의 관념을 더 이상 지속할 수는 없다. 휴심여행도 이를 위한 것이다.

 

 구랍 21~31일 인도 여행을 다녀온 이들도 이런 체험을 통해 변화를 고백하고 있다. 인도를 다녀온 지 한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여행의 감동과 향기를 만끽하며 지난 27일 뒷풀이를 위해 모였다. 


용산 이태원 경리단길 조인성카페 옆에 멋진 집 어반 빈야드에서였다.. 남산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곳에 카페, 레스토랑, 갤러리, 클럽까지 갖춘 집이었다.

어반4-.jpg» 경리단길 어반빈야드의 송점종 이복희 대표 부부

그 집 주인장 송점종-이복희 부부는 토종 티케이이다. 남편은 대우그룹 임원 출신으로, 우리자산관리주식회사와 우리이스테이트, 우리F&C 대표이사 회장이다.

 

그러면 이 부부가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얼마나 보수적일까 생각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분들은 한겨레 창간 이후 한겨레를 봐온 애독자다. 또 한겨레에서 하는 테마여행에 함께하는 단골이기도하다.

 

친구들뿐이니라 주변사람들이 한결같이 보수적인데, 진보적으로 살아온, 원앙 부부의 스토리를 들었다. 한분이 송회장님께 어떻게 저리 참한 미인을 얻었냐고 물었다. 송점종 샘은 박정희 시절 경북대 법대 학생회장이었는데, 시위하다가 긴급조치1호로 수배돼 안동으로 도망갔다. 그곳에서 고등학교 교사를 하고있던 이복희 샘이 자취방에 수배학생을 숨겨줬다는 것이다.

 

어반빈야드에 한겨레 휴심여행으로 조정래 작가랑 함께 인도여행을 했던 분들을 함께 간 이복희 샘이 모두 초청한 것이다. 조정래 선생님은 못오셨지만, 20~30분이 뒷풀이에 참석해 인도, 그 깨달음 여행의 감동을 재확인했다.


녹야원--.JPG» 구랍 21~31일 인도 휴심여행 참가자들이 붓다가 최초로 설법을 한 사슴동산에서 명상을 하고 있따.

 

한분 한분 그 감동과 깨달음을 체화하기 위해 휴심정에 들어와 매일 글을 읽고, 성찰하고, 김옥자 선생님은 제 졸저를 시리즈로 읽고있다고 했다. 송태호 선생님이나 남정구 교수님 등 <사자의서><깨달음의 재발견>, <인도철학사> 같은 책들을 읽고있다는 분들이 적지않았다.

 

어반1-.jpg옆에 앉았던 남 교수님, 김홍기 선생님도 인도여행 그 전과 그후가 다르다고했다. 4남매를 키우면서도 수행을 해온 미야선생님도 인도여행을 통해 삶에서 최후까지 붙들려있던 원증회고를 풀었다고 했다. 자매끼리 온 이화정 은정 자매는 환해진 얼굴로 시종일관 분위기 업 시켰다.

 

전라도 순천 장권익 선생님은 참석 못한다고 벌교참꼬막을 보냈고, 김옥자 선생님은 부산에서까지 과메기를 가지고오셔 식탁이 더욱 풍성해졌다. 정장훈 오경자 선생님 부부는 몸살감기가 왔는데, 강추위인데도 참가해 고급만년필을 가져와 참가자 모두에게 하나씩 선물했다. 서초동에서 영어학원을 하는 송기수 선생님은 분단의 슬픈가족사를 고백하고, 포천 쪽박소펜션 박택현 대표는 가장 연장자임에도 뒷풀이에서 꼬막을 일일이 손수 까는 봉사를 자처하기도 했다.

 

2차를 인생의쓴맛이란 술집으로 갔는데,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은 이들과 고진감래의 달달함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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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분들이 인도여행에서 10일 내내 달리는 버스에서 침튀기며 강의한 나를 통해 많은 기운을 받았다고 해주셨지만. 실은 내가 이분들을 통해 기운을 받았다. 자타일시니 동체대비 이심전심이 된 여행이었다. 그 여행의 감동을 지금도 이어가는 이들을 보니, 어찌 기운이 나지않겠는가. 이번 인도 여행 동행자들중 불교 배경 보다 오히려 개신교 가톨릭 배경인 분들이 더 많아 놀랐다.

 

지금까지 히말라야와 오지들을 주로 혼자 다니는 순례를 해왔지, 사람들과 함께하는 걸 달가워하지않았었다. 그래서 한겨레여행사업팀에서 여행팀을 인솔해달라고 여러번 부탁해왔지만 매번 거절하거나. 외부의 지인들을 소개시켜줬다.

 

그런데 이번엔 조정래 선생님과 함께 한 여행에 처음으로 인솔자로 나섰다. 그런데 함께 순례를 해보고, 줄탁동시의 환호가 터지니 기쁨이 크다. 그래서 7월말에 지구 최후의 성지인 티베트 카일라스 (수미산)로 휴심여행팀을 꾸려 2주간 가기로했다. 이번 인도에 간분들 상당수가 재신청하겠다고한다. 이러다 본업이 바뀔지 모르겠다.


이화정 선생님이 휴심여행팀 카톡방에 띄운 문자다.

 

정말이지 선생님들 열정은 못말리겠고요 솔직히 말리고 싶지도 않네요

왜냐면 인도휴심 선생님들 열정을 보고 느끼는 것 만으로도 제 안에 오래된 응어리들이 녹아나가는 것을 바로 바로 체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도휴심 첫번째 뒷풀이 '어반 빈야드'에서 낙낙하게 넓혀진 마음은 10년을 외면하고 살았던 한 친구에게 먼저 손을 내밀게 만들어줬습니다

어젯 밤그 친구와 수줍은 기쁨으로 재회하면서 한 뼘 자라난 제 스스로에게 쓰담쓰담해줬답니다

 이렇게나 신기하고 기적같은 관계 회복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는 최근의 제 일상은 축복 그 자체입니다.

선생님들의 열린 내공과 진정한 연륜은 제게 옹골진 아집과 두려움으로 꽁꽁 얼어붙은 마음 틀을 말랑말랑한 엿가락처럼 늘이고 녹여버리는 것 같아요

 이 귀하고 소중한 인연을 내려주신 큰 신과 제 생애에 다시 감사드립니다.

전국 사방팔방에 계신 인도휴심 스승님들 평안한 저녁 되시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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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역까지 함께가 마지막에 바이바이한 김홍기 선생님이 인도여행팀 카톡방에 올린 문자다.

 

만남에 대해서 한 차례 더 생각하게하는 오늘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연의 끈이 실재할 수도 있겠구나! 고해를 떠도는 표류의 생일지라도 그 외로움을 공유할 수 있다면 그런대로 살만한 세상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참석자 모두에게 마음을 여며 인사드립니다. 또 뵙겠습니다.


 

네아이 엄마, 미야님이 올린 문자다.

 

뭐랄까요.. 내 마음 편한 친정에 다녀온 느낌이랄까요? 따뜻한 밥 차려주시고 눈 마주치고 웃으며 서로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는 모습들이 아낌없이 다 퍼주고도 행복한 가족 같았어요. 아침에 눈을 떠도 아직 그 따스한 기운이 남아있어요. 모두들 고맙습니다. 다음 번 모임엔 어제 못 뵌 분들도 꼭 보고 싶습니다^^



어떤 사람이 되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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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남의 나쁜 점만 끄집어내서 이야기하는 남편이 있었다. 


그의 아내는 그렇게 하는 남편을 나무랐지만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하루는 그 부부가 어떤 집에 초대를 받아 갔다.

 그런데 그 집에는 양쪽 귀가 없이 기형아로 태어난 아들이 하나 있었다.

 아내는 남편이 그 아이의 귀에 대해 이야기할까봐 걱정이 태산 같았다.

 그래서 그 집에 가기 전에 남편에게 약속을 받았다.

 반드시 그 집 아이의 귀에 대해서는 절대로 이야기하지 않기로 약속을 했다. 

 그 집에 가서 화기 애매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데 귀 없는 아들이 들어왔다.

 아내는 그 순간 긴장했다. 

 혹시 남편이 아이의 귀에 대해 이야기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은 아이에 대해 그 집 부부에게 말했다.

 “흠…흠… 아이가 참 건강하게 보이는군요.“

 그 집 아내가 아이를 보며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아무 일 없이 잘 크고 있어요.“

 한참 아이를 보던 남편이 다시 한 마디 했다.

 ”아이의 시력은 괜찮습니까?“

 그 집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요. 두 눈 모두 1.2 1.2 인데요.”

 아내는 남편이 귀가 아닌 눈에 대해 이야기하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잘 나가다가 남편이 말이 갑자기 꼬였다.

 “참 다행한 일이군요.

 하나님도 참 고마우신 분이시지 어떻게 안경을 

 걸칠 곳이 없는 줄 알고 시력을 좋게 하셨을꼬? ”

 +

 어디가나 이런 사람 꼭 있습니다. 일은 실패하면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사람과 관계는 한번 깨지면 회복하기가 힘듭니다.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과의 관계입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고통스러운 까닭은 하나님에게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으려 들기 때문입니다.

 

 스물에는 세상을 바꾸겠다며 돌을 들었고, 서른에는 아내를 바꾸어 놓겠다며 눈초리를 들었고, 마흔에는 아이들 바꾸고 말겠다며 매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쉰이 되니 바뀌어야 할 것이 바로 나임을 깨닫고 들었던 것 다 내려놓았습니다.

 

 사람은 어디서 태어날지는 선택할 수 없지만, 자신이 어디서 죽을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어떤 얼굴로 태어날지는 선택할 수 없지만, 어떤 얼굴로 죽을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삶의 선택임을 깨닫습니다.

중노릇을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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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에는 천년고찰 만연사가 있다.만연사입구에 다산 정약용 선생 독서기비가 세워져 있다.다산과 만연사는 어떤 인연이 있는지 알아본다.

1778년 다산의 나이 16살때이다.그의 아버지 정재원은 화순현감으로 내려오게 된다.그때 두아들 약전과 약용이 아버지를 따라 화순으로 내려온다.

그해 겨울 다산은 형과 함께 만연사 동쪽에 있는 동림사에 방을 얻어 독서를 하였다.형은 상서를 읽고 다산은 주자와 맹자를 읽었다.많은 책을 다독한게 아니고 맹자만을 반복해서 읽었다.의문이 나면 형제간에 서로 토론하였다.그렇게 해서 학문에 문리가 터졌다.

이때의 일을 잊지 못하여 다산은 회갑을 맞이한 해에 동림사독서기를 남겼다...

자고 일어나면 곧 시냇물로 달려가 양치질하고 얼굴을 씻었다.식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비구니스님들과 늘어 앉아 밥을 먹는다.날이 저물어 별이 보이면 언덕에 올라 휘파람을 불고 시를 읊조린다.

밤이 되면 스님들이 게송을 읊고 불경을 외우는 소리를 듣다가 다시 책을 읽는다.

이렇게 동림사에서 40일을 지내고 나는 말했다..

스님들이 중노릇하는 이유를 내가 지금 알았습니다. 부모형제처자와 함께 지내는 즐거움도 없고 술마시고 고기먹고 음탕한 소리와 여색의 즐거움도 없는데 저들은 어찌하여 고통스럽게 중노릇을 합니까?

진실로 그와 바꿀수 있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형제가 학문을 한지 여러해가 되었지만 일찌기 동림사에서 맛본것과 같은 즐거움이 또 있었습니까? 하였더니 형님도 말했다...

그렇다.그것이 중노릇하는 까닭일것이다.

다산 형제가 동림사에서 경전을 읽고 외우면서 옛성인들과 정신적인 교감을 하고 그 깊은 뜻을 알아가면서 느끼는 마음의 행복을 엿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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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정약전이 머물던 전남 화순 만연사


비탈진 푸른 돌길 타고 오르니
절간이 산봉우리에 붙어 있네
의관은 나뭇가지 스쳐 지나고
뱉은 침은 구름끝에 떨어지네

다산이 17세 나이에 만연사 성주암을 오르며 지은 시이다.다음은 화순 너릿재를 지나며 읊은 시이다.

서석산 남쪽에 나한산이 서렸는데
이속에 좋은 가람 여기저기 보이네
그윽하고 깊기로는 동림사가 으뜸이니
보일락 말락 황홀함 성주암과 어떨는지

다산은 소태동에 이르러서 멀리 무등산을 바라보며 시를 남긴다.

소태라 골짝어귀 작은 시내 뻗었는데
희디흰 은어떼들 두세치가 조금 넘어
삼태그물 통발이며 종다래끼 가져와서
아전이 어부되어 잡아봄도 좋겠구나.

화순에서 광주를 지나가며 눈에 보이는 풍경과 역사인물을 회고하며 계속 시를 남긴다.

지금의 계림동 홈프러스 자리에 있던 경양방죽 관방제림을 지나며 남긴 시다.

잡목은 큰 길가에 늘어섰는데
역루에 가까운 큰 저수지 하나
얼굴 비친 봇물은 아득히 멀고
저문 구름 두둥실 한가롭기만..

대밭 성해 말몰기 여의치 않고
연꽃피어 뱃놀이 제격이로세
위대할사 저수지 관개의 공덕
일천이랑 논들에 물이 넘치네..

다산은 경양방죽을 건설했던 세종때 김방부사의 공덕을 찬탄하고 이괄의 난을 평정했던 금남공 정충신을 기리는 시를 남긴다.

광산부를 지날적에는 정충신 금남공 생각이 나네 
신분은 종직처럼 미천헀으나 재주는 이순신과 견줄만 했지 옛사당엔 풍운의 기운 서렸고
남은 터엔 부로들 전설 전한다.
웅장할사 서석의 드높은 진산
정기모아 큰장부 탄생시켰네..

놀랍다..이같은 해박한 역사지식을 섭렵하고 한시로 표현했던 때가 다산의 나이 17세이다.

그는 무등산에 올라 하늘로 솟아 오르는 태고의 신비를 바라보며 시를 남긴다.

무등산은 높고도 넓어, 걸쳐 있는 고을이 일곱이나 된다.

정상에 오르면 북으로는 적상산을 바라볼 수 있고, 남으로는 한라산을 굽어 볼 수 있다.

월출산과 송광산 쯤은 모두 손주 뻘이다. 위에는 열세 봉우리가 있다. 늘 흰 구름이 지키고 있다.

사당이 있는데 무당이 관리한다.

그 말이,“우레나 번개가 치고, 비와 구름이 일어나는 변화는 늘 산허리부터 일어나 자욱이 아래로 밀려 내려가지요. 하지만 산위에는 푸른 하늘 그대로랍니다.”라고 한다.

그 산 됨이 과연 빼어나지 아니한가?

중봉의 꼭대기에 서면 표연히 세상을 가벼이 보고 홀로 신선이 되어 날아가고픈 마음이 일어나, 인생의 고락(苦樂)이란 마음에 둘 것이 못 됨을 깨닫게 되니, 나 또한 까닭을 알지 못하겠다.


가난하면서 원망치않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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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易(빈이무원난, 부이무교이)

"가난하면서 원망하지 않기는 어렵지만 부유하면서 교만하지 않기는 쉽다."

 공자 <논어>에서

기쁨과 슬픔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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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쁨은 인간이 더 작은 완전성에서 더 큰 완전성으로 이행하는 것이다.


 슬픔은 인간이 더 큰 완전성에서 더 작은 완전성으로 이행하는 것이다.


                                 -스피노자의 <에티카>


감정이 격해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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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는 <중용>() 제1장에서 감정이 존재와 우주의 알맹이라고 말합니다. 감정의 알맹이는 우주의 질서이며 만물의 모태라고 합니다.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이 아직 일어나는 것을 알맹이라 하며 일어나면서 다 꼭 맞으면 좋다고 한다. 그 알맹이라는 것이 세상의 큰 바탕이다. 그 좋다는 것이 세상이 이뤄지는 길이다. 알맹이가 좋다하니 하늘도 땅도 자리잡고 모든 것들이 키워진다.

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희노애락지미발, 위지중; 발이개중절, 위지화. 중야자, 천하지대본야; 화야자, 천하지달도야. 치중화, 천지위언, 만물육언)


 '아직 일어나는 것(미발, 未發)'이어야 말할 수 있지 '아직 일어나지 아니하는 것'이라면 알 수 없습니다. 감정은 언제나 어디서나 끊임없이 끝도 없이 일어나는 것이라서 아직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의 타고나는 감정은 끝내 좋아야 성이 차는 것이 진리이며 행복입니다. 감정은 좋지 않으면 끝내 좋도록 배우기 마련입니다. <논어>의 첫 마디가 "배우며 살아가니 기쁠 따름이다"입니다. 공자는 감정이 우주의 알맹이라고 말합니다.


 맹자는 어떻습니까. 가여워하고(측은지심,心), 다른 사람의 고통을 차마 못 참는 것이 불인인지심()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퇴계는 인간의 감정이 이해하며 보살피는 학문과 인간의 감정을 억누르고 몰아가는 학문을 엄밀하게 분간하고 전자를 이발이기수(理發而氣隨之), 후자를 기발이이승(氣發而理乘)이라고 간결하게 천명했습니다.


 학문관념은 새로운 문제가 아닙니다. 과거에는 없었는데 현대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유학에는 없었는데 서구철학에서 유입된 문제도 아닙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 어디서나 부닥치는 인간사의 초미한 관심사입니다. 학문관념이 올바르면 공부하면 할수록 인간 모두의 행복과 우주의 평화를 도모할 수 있지만 학문관념이 그릇되면 아무리 학문이 출중하다 해도 인간의 행복과 평화는 희소가치로 전락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학문관념은 죽은 사람도 되살리지만, 그릇된 학문관념은 산 사람도 죽입니다. 오늘날 지구촌을 장악하고 있는 학문관념은 감정에는 무력하고 속수무책이지만 지구도 폭파시킬 수 있는 엄청난 파괴력을 과시하는 학문을 불철주야 연마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감정에 주력하며 행복추구 활동을 표방하는 분야들도 전쟁체제를 기반으로 삼고 감정의 참된 자기이해를 뒷전으로 미루고 맙니다. 학문을 소홀히 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총력을 쏟아 연마하는 학습 탓에 사람이 못쓰게 됩니다.


 학문은 직업이나 직장일 뿐이지, 내 삶을 지켜 주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학자는 헛도는 겁니다. 인생을 낭비하는 겁니다. 학자뿐만 아닙니다. 우리가 공부를 하면서 '역시 믿지 못할 게 세상이야'그런다면 우리 역시 학문을 잘못 하고 있는 것입니다.


 21세기에 접어들어 감정이 거슬리면 예술도 인문과학도 사회과학도 자연과학도 위험한 학문으로 전락한다는 체험과 자각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세계의 명문 대학들은 앞다투어 엄청난 자금을 투자해 감정이 무엇인지 관찰하고 기록하는 첨단과학 장비들을 개발하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철두철미하고 정밀한 감정의 데이타라 할지라도, 감정의 수박 겉핥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감정은 밖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이해를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퇴계는 감정이 곤두박질치고 걷잡을 수 없을 때 그 이유를 찾아보면 자기 아닌 남들의 일을 자기 감정의 원인인 줄로 잘못 안 경우라고 말합니다. 나와 남을 나누지 않다 보면 서로 서로 다르고 바뀌는 남의 일과 사정을 자기 것이거니 잘못 알기 십상이며 그러기에 감정은 예외 없이 모든 이유를 자신에게 확인하는 자기이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탓도 남 탓도 잘못하기 시작하면 착오와 혼란에 빠집니다.


 <다 좋은 세상>(전헌 지음, 어떤책 펴냄)에서


 전헌

1942년 태어난 한국사람이고 열여덟 살에 철학 공부에 말을 들였다. 아직 밑도 끝도 없이 재밌게 배우고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서던메소디스트대학교와 프린스턴신학대학교에서 신학을 배웠고, 메코믹신학대학원 신학부, 뉴욕주립대학교 비교문학과,성균관대학교 유학동양학부, 국민대학교 문화교차학과에서 가르쳤다. 



생명평화운동의 수행자적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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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26일부터 27일 까지 경기도 고양시 벽제 동광원수도원에서 28명이 모여 '생명평화마당'좌담회를 통해 대화를 한 이후 광주광역시 대안학교인 지혜학교 김창수 초대 교장이 쓴 소회입니다 


생명1-.jpg» 벽제 동광원에 열린 생명평화마당 좌담회 모습. 사진 김영철 목사 제공


 김창수-.jpg» 김창수 전지혜학교교장인도의 민담에 어떤 수행자의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홍수가 나서 강물이 불어나고 온갖 것들이 함께 떠내려 오는데, 한 수행자가 떠내려 오는 전갈을 발견하고는 그 전갈을 건져주려 하고 있었다. 수행자의 마음에 자비심이 일어 전갈을 건져주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전갈이 물에 떠내려가면서도 자신을 구해주려는 수행자의 손을 쏘아 대었다. 전갈은 홍수에 떠내려가다 익사당하는 것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수행자의 손이 더 두렵게 느껴졌던 것이다. 수행자는 아픈 표정을 지으면서도 기어이 전갈을 손으로 잡아 물에서 건져주었다. 그때 마침 다리 위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구경꾼이 수행자를 조롱하였다. 

 ‘미련한 수행자여, 전갈이 당신의 손을 쏠 것인데 그대는 전갈을 건져주는가!’ 수행자는 조용히 그 말을 듣고 있다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왜 그것을 모르겠는가, 다만 전갈은 전갈의 일을 한 것이고 나는 내 일을 한 것뿐이라오.’ 

 

 도움의 손길인지도 모르고 수행자의 손을 쏘는 것은 전갈의 일이고, 건져주고 싶은 마음이 일어 전갈을 구해주는 것은 수행자의 일이고 비웃는 일은 구경꾼의 일이다. 우리는 세계생명평화운동을 하고자 모였다. 인간에 의한 생태계 파괴가 지구생명 자체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전쟁과 갈등으로 고통당하는 생명체들의 아우성이 온 천지에 울려 퍼지는 데 차마 귀를 닫고 눈을 감고 살기에는 양심이 허락하지 않아 작은 손이라도 내밀고자 한 자리에 모였다. 


생명마당-.jpg» 벽제동광원의 생명평화마당 참가자들. 사진 김영철 목사 제공

 

생명2-.jpg» 벽제 동광원에서 생명평화마당을 마치고. 사진 정은 공동체활동가 제공


 생명평화운동의 진행 과정에서 뜻을 함께 하는 이들이 생길수도 있고 우리가 하려는 일을 방해하거나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고 심하면 우리를 공격하는 이들이 생길 수도 있다. 

 우리는 수행자의 마음자세로 생명평화운동의 길에 나서야 한다. ‘자아’를 잘 다스리거나 해소해가도록 노력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운동이 진행되어야 한다. 70~80년대에 반독재민주화투쟁의 시대에 우리가 믿고 따랐던 어느 시인은 자아를 해소하지 못해 초라한 노인으로 전락하였다. 그는, 자신이 영웅이나 주인공으로 추앙받지 못한 상황을 못 견뎌 해서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생명평화운동은 누구를 영웅으로 숭배하고 하는 운동이 아니고 소수자, 타자, 소외받는 자와 함께 하겠다는 운동이다. 자아를 잘 다스리지 못하면 전갈처럼 우리를 쏘아대는 사람들에게 서운한 마음이나 미움이나 심하면 그들을 향한 증오심도 생길 수가 있다. 

 

 종으로서의 전갈은 생물학적으로 전갈이지만, 인간은 처음부터 전갈로 결정되어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어떤 연유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자기 성찰적 조건을 갖지 못했거나 그런 상황을 접하지 못해서 전갈 같은 사람이 된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우리가 하려는 일을 방해하거나 이해하지 못한다고 서운해 하지 말자. 무 소의 뿔처럼 묵묵히 가자. 그 길만이 우리가 가야할 유일한 길이니까. 구경꾼들이 소곤거리는 것에도 너무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지도 말아야 한다. 구경꾼은 이러쿵 저러쿵 관전평을 하거나 분별심을 갖지만 손수 나서서 물에 빠진 전갈을 구해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도와줄 것인가를 묻지 않는다. 그들이 도와주는 일은 차라리 침묵하는 일일 것이다. 

 

 이번 행사는 벽제동광원에서 치루었다. 장소가 갖는 상징성부터가 예사롭지가 않다. 벽제 동광원은 이현필이라는 걸출한 영성가가 온갖 이지러진 생명들을 사랑하다가 마침내 민족분단의 허리 지점에서 숨을 거둔 사랑의 동산이다. 케노시스, 자기를 비워 종교를 넘어 성속을 넘어 

 유기체의 통일을 염원하던 한 수행자가 몸을 누인 곳이다. 

 

 이제 동광원은 예수와 이현필의 뜻을 어떻게 수용하고 이어갈 것인지를 새겨보고 각 영역의 사람들은 자신이 지금 선 자리에서 어떻게 생명평화운동의 길에 나설 것인지를 생각하는 과제가 남았다.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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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원에서는 1년에 한 번씩 ‘연피정’이라는 이름으로 8박 9일의 침묵 피정이 정례화되어 있습니다. 한 해를 숨 가쁘게 정신없이 달리다 내가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헷갈릴 즈음이 되면 조용히 침묵으로 머무는 ‘연피정’의 시간이 다가왔다는 뜻입니다.

처음에는 쏟아지는 잠에 1년간 얼마나 긴장하고 살았는지 확인, 그 다음은 1년간 얼마나 하느님을 멀리하고 내 힘으로 내 뜻대로 살았는지 확인하게 되죠.

또한, 그럼에도 지난 시간 삶의 자락마다 하느님께서 항상 함께하셨다는 것에 머리 숙이는 시간을 갖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다시 세상으로 걸어 나갈 용기도 생기고 다시 사람들에게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하고 나눌 힘이 생깁니다.

1월 초 ‘연피정’을 끝내고 환해진 얼굴로 나오는 저를 만난 수녀님들이 한 말씀씩 하십니다. 평소에 제 얼굴이 어땠는지 가늠이 안 될 정도입니다.

“피정을 분기별로 하면 환해진 얼굴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유지를 위해서라면 그냥 매일 피정을 하지 그래요?”

피정 때만 잠시 얼굴이 환해지는 것은 일상의 매 순간에 멈추어 하느님의 시선에서의 나 자신과 하느님을 의식하지 않고 차곡차곡 쌓아 놨다가 연피정 시간에 몰아 만나서인 듯합니다.

강렬한 감동이 이어지지 않고 잠시 왔다 사라지기 때문이겠죠.

사실, 우린 삶의 트랙 위에서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 없이 그저 돌고 있는 쳇바퀴에 몸을 맡기고 열심히 굴러가고 있습니다. 이를 어찌 잘못되었다 하겠습니까.

현실에 충실히 살다 보니 의도하지 않게 나 자신이 어디 있는지, 누구인지, 내가 피조물이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내 힘으로 해 보려 애를 쓰고 있는 것이죠.

이렇게 살다 보면, -모두가 다 그렇진 않겠지만- 제가 그렇듯 얼굴이 점점 굳어지고 검은 색으로 변해 가고 있진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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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어느 장소라서, 어떤 시간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지금 쥐고 있는 것을 잠시 놓고 단 한마디라도 하느님과 나누어 본다면 그 자리가 피정의 자리가 아닐까요? 이 중 제일 어려운 것은 바로 잠시 놓는 것입니다. 멈춤! (이렇게 말하고 있는 제게도 가장 안 되는 것입니다.)

한참 달리던 것을 멈추려면 매개체가 필요합니다. 자동차로 치면 브레이크 페달인 셈이지요.

어떤 것에 몰입하게 되면 숨도 쉬지 않고 하는 저에게는 “멈춤 장면”이라 불리는 풍경이 하나 있습니다. 호숫가에 있는 나무가 물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모습인데요.

몇 년 전 이 풍경에 넋을 놓고 있는 제 옆을 지나시던 수녀님께서 조용히 다가와 한 마디를 던지고 가셨습니다.

“Reflection!”

‘물에 비친 그림자’ 라는 뜻도 있지만 ‘성찰’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어느 순간 주변이 고요해집니다. 그리고 굳어져 있는 얼굴, 숨쉬고 있지 않은 저 자신을 의식합니다. 지금 내가 어디 있는지,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는지 잠시 생각해 볼 짬이 생기죠. 그제야 늘 옆에 계시는 하느님께 한마디 건네 봅니다.

누구에게나 ‘멈춤 장면’은 하나씩 있을 겁니다. 저처럼 어떤 장면일 수도, 아니면 누구의 얼굴일 수도 있겠죠. 늘 들고 다니시는 휴대폰에 멈춤 사진을 하나 저장해 놓고 가장 바쁠 때 그 사진을 열고 멈추어 하느님과 대화를 해 보심을 권합니다. 정신없이 소용돌이 안에 있을 때, 그 장면 안에 잠시 머물며 내 안의, 내 주위의 하느님 위치를 확인해 봅시다.

자주 이런 시간을 가진다면, 하루하루가 피정이 되지 않을까요?

혹시 아직 저장할 만한 멈춤 장면이 없다면 지금이라도 잠시 하던 일을 놓으시고 자신만의 멈춤 장면을 찾아보세요.

며칠 전 제게 ‘Reflection’ 단어를 알려 주신 수녀님께서 보내 주신 따끈따끈한 저의 ‘멈춤 장면’을 공유합니다. 혹여 마음이 끌리신다면 여러분의 휴대폰에 저장하셔도 좋습니다.

2018년은 모든 날에 환한 얼굴로 건강히 지내시길 바라며....

이지현 로사수녀.jpg 이지현 수녀(로사)

성심여고에 재직중이다. 
청소년에게 삶을 노래하며 행복하게 살도록 돕는 꿈을 꾸며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에 실린 글입니다.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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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야지 생각한 것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


                      -코르넬리우스 구를리트

가출한 딸아이의 분노를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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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겐 고1 아들과 고3 딸이 있는데 딸아이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저희 부부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많은 갈등을 겪었습니다. 딸 초1 때 주말부부를 했고, 남편은 아주 가부장적이고 아이들에 관해서는 관심 갖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폭력적인 사람은 아니나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무섭게 키웠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남편이 많이 변해서 아이들과도 친해지기 시작했고 저와의 갈등도 거의 해소됐습니다.

제가 직장생활로 늦게 퇴근해서 아이 둘이 자주 싸웠습니다. 딸이 아들한테 매번 폭력을 행사했고 저는 그런 딸에게 폭력은 나쁘다고 강요했죠. 딸은 딸과 아들을 매사 엄마가 차별하고 아들이 말을 안 들음에도 매를 들지 않고 그냥 말로만 하지 마라 한다면서 불만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딸과 남편이 부딪쳐 아빠가 딸에게 폭력을 행사했고 집을 나가라고 했습니다. 집을 나간 딸은 4일 정도 친구 집에 머물다 돌아왔습니다.


그 이후로 딸과 아들의 갈등은 더 깊어졌고 아들이 커져서 방어를 시작해 싸움이 더 심각해졌습니다. 저는 이러다간 둘 다 망치겠다 싶어 딸아이에게 집과 학교 중간 정도에 방을 얻어주었습니다. 딸이 몇 년 전부터 혼자 나가 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구요. 저는 아이가 먹을 음식을 주말마다 날라주고 청소도 해줬는데 딸은 제가 드나드는 걸 싫어했습니다.


그러다 아빠가 외국에서 8개월 정도 일하다가 선물도 전해줄 겸 딸을 보러 갔죠. 딸을 만나고 나오는데 인사도 않고 문을 닫아버리자 순간 남편이 화가 나서 애한테 또 폭력을 행사하였습니다.


저도 남편을 말리고 있었는데 딸은 파출소에 가정폭력이라고 신고를 하더군요. 아이에게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한 것 같은데, 그때 딸은 엄마가 자기를 부끄럽다는 식의 말을 했다고 하고, 자기도 힘든데 엄마가 안아주지는 못할망정 자기한테 그런다며 그때부터 저한테 더 심해졌고, 아예 가족들과 단절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상담에서 딸은 아빠 같은 사람과 사는 엄마도 이해가 안 되고 엄마를 바보 같은 사람이라 했다네요. 하지만 애 아빠는 단순해서 잘 구슬리면 그지없이 편한 사람이에요.


친구도 없이 가족과도 단절한 채 혼자 살아가는 딸이 안타깝고, 어렸을 때 우리 부부의 갈등으로 원만한 가정에서 못 자라게 한 데 대한 미안함이 있기에 몇 번이나 사과하고 엄마도 잘 몰라서 그랬다고 했지만, 딸은 여전히 혼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나쁜 친구들과 사귄다든지 하지는 않고 자기 생활은 야무지게 하고 있으나, 제 나이에 할 수 있는 것들을 하지 않고 혼자만 잘났다는 생각에 사는 것이 정말 안됐고, 어찌해야 될지 모르겠네요. 김연희


사진9-.jpg»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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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에서 화해나 평화, 용서 같은 결과를 우선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절차의 합당함과 옳고 그름을 공정하고 명백하게 밝히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어찌어찌 해서 관계가 좋아졌다면 과거의 불편한 일 따위는 문제 삼지 않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시시비비를 가리고 따져서 진지한 사과와 평가가 있어야 마음을 푸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지요. 추측건대 김연희 님은 전자에, 따님은 후자에 해당하는 분 같네요. 더구나 10대 후반의 청소년이라면 논리적인 사고가 발달하고, 원칙적으로 무엇이 더 옳은가를 생각하는 시기입니다. 또 이상주의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주변의 실망스러운 모습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일 수 있습니다.


따님의 관점에선 아빠는 물론이거니와 엄마의 태도도 이해되지 않을 겁니다. 오랫동안 지속된 부모의 불화와 부재로 딸의 가슴속에서는 여전히 전쟁이 지속되고 있을지 모릅니다. 사실 부모의 싸움은 아이들에게 지진이나 해일 등의 천재지변처럼 공포스러운 것입니다. 아이들의 마음에선 세계의 중심이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엄마는 어느새 아빠를 이해했고, 심지어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과거 따님이 엄마 편이었다면 배신감도 느꼈을 거예요. 딸아이는 아직도 아빠와 불화하고 있으며 아빠를 용서하지 못했는데, 용서하지 못한 사람을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치는데 가족들은 자신을 이상한 애로 손가락질합니다. 결과적으로 가족 내 따돌림의 대상이 된 겁니다.


우리 문화는 화해나 용서를 성숙한 태도로, 시시비비를 가리고 따지는 행동은 경직되고 미숙한 태도로 흔히 평가합니다. 김연희 님 역시 따님의 행동을 ‘혼자만 잘났다’고 하는 철없는 짓쯤으로 여기시나 봅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선 아이의 분노를 절대 풀어줄 수 없습니다.


딸의 행동이 나보다 미숙하고 철없다고 생각지 마시고 나와 다르다고 생각해보세요. 다르다는 건 내가 함부로 추측하거나 평가할 수 없으며, 상대에게 직접 물어봐야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딸에게 미안해하는 것도, 사과조차도 엄마의 추측으로 하지 마시고, 어떻게 해주기를 원하는지 아이에게 물어보세요. 그 아이만의 독특한 생각 회로에서 나온 자기만의 의견이 있을 겁니다. 책임 추궁을 당하는 느낌이라 힘드시겠지만, 아이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보세요. 이해될 때까지 묻고 또 물으세요. 그러면 아이 관점에선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대목을 발견하실 겁니다. 무엇보다 아이의 분노가 부모에 대한 미움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겁니다.


사실 따님의 문제를 해결할 결정적인 사람은 남편인 것 같습니다. 남편이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지난 세월 가족에게, 특히 딸에게 가했던 고통에 대해 이해하고, 진지하게 사과하시면 좋겠습니다. 추측건대 따님은 아빠와 성격이 닮았을 겁니다. 그래서 서열과 권위를 중시하는 아빠의 ‘무서운’ 태도를 가장 많이 배웠는지도 모릅니다. 부모가 없는 동안 아빠에게서 배운 힘이나 위압적 태도로 동생을 다루려 했겠지요. 아이의 그런 경직된 마음은 아빠의 분명한 사과와 엄마의 수용적 태도가 가장 빠르게 녹여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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