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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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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리고 있는 나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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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수1.jpg용수2.jpg


우리는 바보 같이 삽니다. 막막하고 앞이 안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복이 없어서 아니라 복이 없다고 생각해서 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속에 살기 때문입니다. 생각으로 제한과 불안과 우울을 만듭니다.


생각의 종류가 세가지가 있습니다. 유익한 생각, 불유익한 생각, 유익하지도 불유익하지도 않는 중립적인 생각입니다. 유익한 생각은 마음을 행복하게 하고 자신감을 갖게 하고 건설적입니다. 만족하고 감사하고 충만하고 착한 마음입니다. 불유익한 생각은 마음을 불행하게 하고 절망적이고 파괴적인 생각입니다. 바라는 마음, 모자른 마음, 못 한다는 마음과 착하지 못한 이기적인 남을 원망하는 마음입니다. 이 두가지를 구별하는 지혜는 정지(正知)라고 합니다. 부정적인 마음을 알아보는 자체가 마음을 좋게 바꿔줍니다. 


고통이 있을 때 습관적인 전략으로 한꺼번에 고치려고 머리를 굴립니다. 일시적으로 도움이 되더라도 결국은 틀어집니다. 이런 전략보다는 순간순간 부정적인 마음을 정지의 눈으로 알아 보고 유익한 생각으로 돌리는 것이 차근차근 삶을 더 밝게 하며 참된 변화를 갖게 합니다. 

나아지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미 잘하고 있고 많이 좋아졌다는 것을 알아 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복을 쌓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미 있는 복을 알아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이 변화와 행복을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과 남들과 삶을 안좋게 그립니다. 인생은 우리가 그리는 지각 뿐입니다.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면 아름다운 삶을 사는 것이고 고통스러운 그림을 그리면 고통스럽게 사는 것입니다. 행복과 불행은 우리가 창조한 그림입니다.

정지를 기르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유익한 생각이 일어나면 오른손을, 불유익한 생각이 일어나면 왼손을 살짝 쥐었다 놓으세요. 이 수행을 하다 보면 처음에는 왼손에 쥐가 날 수 있어요. 나중에는 오른손에 쥐가 날 수 있고요. 자신의 불유익한 마음을 망상으로 알아 볼 수만 있다면 마음이 저절로 변합니다.  우리는 정지가 없어서 고통에 빠집니다. 정지수행은 높은 수행입니다. 알아차림과 정지로 아름다운 삶을 만들 수 있습니다.



출세하지 못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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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에서 출세하지 못하는 이유는 기회가 문을 두드릴 때 뒤뜰에서 네 잎 클로버를 찾기 때문이다.


                                                                       -윌터 크라이슬러

스승 따라 화엄경 불밝힌 서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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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59만자 한글음  서우담 대표

 

서화담-.JPG» 화엄경 한자 59만자에 한글음을 붙인 서우담 대표. 그가 작업한 컴퓨터 바탕화면 사진은 그의 스승 탄허 스님이 제3공화국 당시 청와대에 초청 받아 박정희 대통령에게 국가 경영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을 청와대에서 찍은 것이다.


서화담 16대손으로 어려서 개구져

고향사람들 “  중됐단   믿어

 

대종사 탄허 스님 알아보고 거둬 출가

16  환속하고도 숙겁의 인연 

 

화엄학연구소 이어받아 탄허  

유불선 한문 원전 줄줄 외는 ‘박학

 

어느   스님 찾아와 떠보며 무례

어찌 마음 잃고 찾을줄 모르나” 일갈

 

며칠   다시  사과하며 속말

한자 몰라  한권 제대로 못봐

 

애잔한 마음에 최근 3년간 독음 몰두

 일은 여기까지출간은 다른 인연이

 

검사들의 성추행이 잇따라 폭로되면서 ‘미투 운동 번져가고 있다어찌 검찰뿐이겠는가승려들까지 은처자 의혹이 끊이지 않는 시대다하지만 권력과 부를 쥐고 있다고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율곡 이이가 평양 원접사로 갔을 때였다기생이 수청을 들기 위해 방에 들었다율곡도 혈기 왕성한 때여서 초저녁이 되자 음심이 심히 동했다그러자 율곡은 좌정을 하고 “숙헌(율곡의 )숙헌이!” 하고 부르며 음심을 가라앉혔다율곡은 이렇게 자정과 새벽에   동했지만 그때마다 자신을 불러 안정을 찾을  있었다탄허 스님(1913~83) 제자들의 일탈을 미리 막으려 이런 예화를 들어 ‘성교육 시켰다고 한다.


순자글-.JPG» 서울 인사동 서대표가 탄허스님 사후에도 지켜온 화엄학연구소에 걸린 탄허스님의 글씨. 하늘 아래 두 길이 없고 성인에게는 두 마음이 없다는 天下無二道 聖人無兩心(천하무이도 성인무양심)


노무현 김근태 이용훈  드나들어

 서울 종로구 인사동 건국빌딩의 화엄학연구소에서 ‘도서출판 교림 서우담(79) 대표가 탄허의 숨은 일화를 들려준다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탄허의 분신이다. 1960 21  오대산 월정사로 출가해 1976 절을 떠날 때까지 탄허 스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셨다.  서 대표는 애초 출가할 때부터 끝내 절집에서 머물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그는 비록 환속했지만 탄허와의 숙겁의 인연은 이어졌다그는 탄허의 속가 딸과 결혼했다 딸은 어머니 뱃속에 있을  탄허가 출가해 유복자나 다름없이 자랐다 대표는 탄허가 세상을  이후에도 탄허의 육필원고를 정리하고 교열하고 출판하는 것을 필생으로 업으로 삼았다 대표가 실무를 맡은  연구소에서 탄허는 말년에 춘성·고암·서운·경산·청담  당대의 고승들을 만나곤 했다 ··법조·경제계의 거물들도 탄허에게 ‘ 묻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탄허가 세상을  뒤에도  대표는 지금까지 34년을 줄곧  연구소를 지켰다노무현·권노갑·김근태·임채정·이용훈  정치·법조인들도 이곳을 드나들었다신영복의 감방 스승인 한학자 노촌 이구영(1920~2006)  건너에 사무실을 두고 있어서  방을 드나들며 고담준론을 나눴다.

 

 탄허도 없이  대표가 외롭게 지키는 이곳에  그들이 찾았을까 대표의 얼굴은 어려서 앓은 마맛자국으로 얽어 있다. <삼국지>에서 제갈공명과 같은 재주를 지니고도 외모 때문에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봉추 선생 방통 처지였을까유불선에 통달한 당대의 천재 탄허를 잃고 허전해하던 이들은  대표의 ‘박학 들으며 아쉬움을 달랬다본명이 ‘서상기  대표는 전남 나주에서 ‘조선의 천재 유학자’ 서화담의 16대손으로 태어났다그런데 탄허가 한문 경전에 대한 그의 비상한 기억력과 이해력을 보고는 ‘서화담이 다시 왔다 뜻의 ‘우담’(又潭)이라고 부른 뒤부터 ‘서우담 됐다.

 

탄허와서우담-.JPG» 서대표가 출가해서 스승과 함께 전남 해남 대흥사에 방문해서 찍은 사진. 두번째줄 왼쪽에서 다섯번째가 탄허 스님이고, 맨 아래 왼쪽에서 첫번째가 서대표다.


원고지 6만장에 국한문 혼용 해석

  대표는 어려서 개구진 짓을 많이 했다고 한다그래서 그가 출가했다고 했을  고향 사람들이 ‘천하 사람이  중이 되어도 저놈이  됐다는 말은 믿을  없다 했을 정도였다그런  대표에게 자신을 알아봐주고 거둬준 탄허는 그야말로 구세불이었다.

 

탄허는 20대에 이미 당대의 고승들을 상대로 <화엄경>을 강의할 정도로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또 사회에서도 자신보다 10년도 더 연상인 당대의 철학자 함석헌(1901~89)`자칭 국보양주동(1903~73)이 배울 정도로 고준한 경지를 거닐었다. 서 대표도 그런 탄허를 시봉한 덕분에 당대의 고승들 뿐 아니라 양주동, 이은상 같은 당대의 거목들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었다.

 

 그런 인재들로 늘 문전성시던 화엄학연구소는 탄허의 열반 직후 적막강산이 됐다.  이는 그가 예상했던 바이기도 했다. 그는 스승이 아직은 너무나 할 일이 많다고 여겼기에 자신의 죽음을 예고한 스승의 유촉을 받들기 어려웠다. 그는 스승이 하루라도 더 지상에 머무기를 바라며, 열반 전 3개월간 잠 한숨을 자지않고 곁을 지켰다. 스승의 다비식을 치른뒤엔 3일간 죽은 듯이 잠만 잤다. 잠에서 깨고 보니, 이불과 온 방안이 피범벅이었다. 서 대표의 눈과 귀와 코에서 나온 피였다. 서 대표는 "스님을 보내고 난 뒤 말로만 듣던 피눈물이 실재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그는 스승의 유지를 받들기엔 힘이 미력했다. 그토록 화엄경을 좋아해 평생을 화엄학 연구에 바치고, <화엄경합론>을 쓴 당나라 이통현 장자의 방 이름을 따 월정사 조실채도 방산굴에라 명했던 스승이 목숨을 걸고 해석해 마친 <신화엄경합론>조차 계속 발행할 힘이 없었다. <화엄경> 석가모니가 대각  21 동안 설한 불교의 정수로이를 이해하지 못하자 하나하나 설명을 덧붙인 것이 팔만대장경이 됐다고 전한다. <화엄경> 한자로만 100만자에 이르러 누구도 해석할 엄두를 내지 못한 경전이었다탄허는 이를 무려 6만여장의 원고지에 국한문 혼용으로 해석하고 현토를 붙여 <신화엄경합론> 23권을 냈다그런데  책마저 동나버린 것이다.

 

  대표는 그즈음 꿈에 탄허가 나타나 “책이 떨어졌으면 만들어야지  하고 있느냐 하자 “ 만들 돈이 어디 있느냐 “그깟 책은 내서  하냐 항변했다고 한다꿈을 깨고 나서 그냥 장난삼아 지인인 석불암 비구니 혜윤 스님에게 전화를  “돈이 없어 책을  내고 있다 하자 그다음날  지으려 모아둔 돈이라며 5천만원을 보내왔다고 한다그래서 <신화엄경합론> 다시 찍었고책을 팔아  돈을 갚아줄  있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최근 3년간 불철주야 다시 <화엄경> 놓고 씨름했다탄허 스님은 한자에 너무 밝아서  방대한 책을 해석하면서도 음은 붙이지 않았다가령 ‘모든 이치를 꿰뚫어 본래 마음을 밝힌다 ‘通萬法 明一心으로 해놓을  ‘통만법 명일심이란 한글 독음을 달지 않았다한문세대엔 아무런 문제가  됐지만 승려들조차 한자를 모르는 이가 태반인 지금에 와서는 한자를 모르는 사람은 접근조차   없다 대표는 한자로 59만여자에 모두 음을 붙였다 작업은  스님과의 만남이 계기가 됐다.


탄허스님 책들-.JPG» 서대표가 도서출판 교림에서 펴낸 탄허 스님의 책들. 그는 탄허스님의 육필원고를 정리해 출간하는데 인생을 바쳤다.

 

  봤나참선 했나경계 아나?”

 화엄경1-.jpg» 한글음을 붙인 화엄경어느   스님이 찾아와 ‘경을  봤느냐 물었다. ‘눈가림으로  보았다 했더니  ‘참선도 했냐 물어 ‘선방에서  졸아봤다 답했다그러자  스님이 턱밑에 고개를 들이밀고는 ‘하늘도 땅도 녹아지고 천지 만물이 녹아지는 경계를 봤는데당신도 그런 경계를 아느냐 대차게 물었다그러자  대표는 주먹으로 얼굴을 날려버렸다그러고는  “맹자가 ‘인유계견방 즉지구지 유방심 이부지구’(人有鷄犬放 則知求之 有放心 而不知求) 했다. ‘닭이나 개를 잃어버리면 찾을  알면서 어찌 마음을 잃어버리고는 찾을  모르느냐 것이다 마음을 어디 두고 어디로 찾아 헤매고 다니느냐 일갈했다. 3   스님이 다시 찾아와 전날의 무례를 사과하며 속말을 했다. ‘30 넘게 선방을 다녔지만 무식해서 한자를 몰라   권을 제대로  봤는데, <화엄경읽어보는 것이 소원이니 한글 음을 달아달라 것이었다 말을 듣고 그는 애잔한 마음이 들어 불철주야 3년간 무려 59만여 한자에 모두 음을 붙였다고 한다그는 “ 일은 여기까지라고 한다 불사가 진정으로 중생을 위한 것이라면  어느 인연이 나타나 출간이 되리라는 거다그는 유불선 한문 원전을 줄줄 외는 박학임에도  현학을 놓고 무식자처럼 껄껄 웃었다. “<화엄경> 불교의 진수라 어렵다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지금까지 읽을  없어서 그랬지 읽기만 하면 남녀노소 유무식을 떠나 누구든  진리에 다가설  있을 만큼 쉽다오.” 

사랑은 기다려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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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아리-.jpg


  “아빠, 같이 가~, 같이 가자구우!!” 서울의 어느 복잡한 매장 안에서 어린 여자아이의 다급하면서도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 어딘가 하고 소리 나는 쪽을 찾았습니다. 대여섯 살 쯤 된 계집아이는 앞서 가버린 아빠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어른들의 가랭이 사이를 헤쳐가고 있었습니다. 아빠의 다리를 겨우 낚아챈 아이는 “같이 가자구 했잖아~”하고 울부짖으며 서럽게 울었습니다. 그제서야 멈춰 아이를 안아주는 아빠의 가슴을, 아이는 작은 주먹으로 치고 있었습니다. “아이구, 우리 ㅇㅇ가 잘 따라오는 줄 알았지. 미안해~” 제 마음 속에선 여러가지 생각과 감정이 그 짧은 장면 속에서 교차됐습니다. 울부짖으며 아빠를 찾는 아이에 대한 안타까움, 자기가 살 물건만 챙기고는 자기의 속도에 따라 가버린 아빠라는 그 남자에 대한 분노, 동시에 그렇게 당당하게 자기의 욕구를 표현할 수 있는 아이에 대한 부러움. 하지만 딸에 대한 아빠의 태도엔 은근히 놀랐고 마음이 따스해졌습니다. 전 사실 그 아빠가 아이를 야단치거나 핀잔을 줄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어른도 그렇지만, 특히 어린아이들이 혼자 남겨질 때, 그들은 버려졌다는 느낌, 자신이 중요치 않은 존재라는 느낌으로 상처를 받게 됩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아이들의 감정을 묵살시켜버리는 어른의 태도지요. 독일에서도 흔히 보는 이 사소한 일상의 한 장면이 인상 깊게 남아있는 이유는 뭘까요?


 아마 기다려 줌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과 상대방의 감정을 존중하고 인정해주는 모습 때문인지요.

 심리치유사 자격시험을 치기 전, 독일의 한 종합병원의 정신과 병동에서 임상실습을 할 때의 일입니다. 과장 선생님께 면담을 청구한 한 환자와의 만남에 동석할 수 있었는데, 환자는 나이가 좀 지긋한 남자로 근무 중 좀 높은 곳에서 떨어져 뇌상을 입어 몸과 생각이 어눌해진 분이었습니다. 간호사가 그간의 경과를 짧게 보고하는 동안, 의사는 의자를 바짝 그 사람의 휠체어 앞으로 당겨 마주보고 앉았습니다. 환자가 자기 손에 쥔 손목시계를 계속 만지작거리는 걸 본 의사는 이유를 물었고, 환자는, 시계를 차고 싶은데 잘 되질 않는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차겠다고 하는 환자에게 의사는 한 번 해보라고 격려했고, 환자는 자꾸만 손에서 빠져나가는 시계를 채우려고 거듭거듭 시도를 했습니다. 간호사도 저도 숨죽이고 오로지 그의 손과 시계에 집중하는데, 의사는 이 세상에 내 환자는 오직 당신 뿐이라는 듯이 아무 말도 않고 여유롭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15분이 걸려 환자는 드디어 손목시계를 차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때까지 간호사도 가족도 그 어느 누구도 그에게 그 15분을 함께 해주지 않았던 겁니다. 그의 행복해 하던 얼굴! 그는, 해야 할 더 중요한 얘기는 없다면서 어린아이처럼 환한 얼굴로 면담을 끝냈지요. 정말 중요한 것을 저는 그 날 배웠습니다. 그 과장 의사 선생님이 독일의 의사들을 대표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환자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뭔지를 알아채는 특별한 분이죠.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어디로, 쉬지도 않고 기다려주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빨리빨리’ 가고 있는 걸까요? ‘빨리빨리’로 결국에는 더 많은 금전과 시간과 심지어 목숨까지 희생하게 만드는 일들이 허다한데도 우리는 기다릴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기다림이 가져다 주는 진짜 풍요를 잃어가고 있지 않나요? 사랑은 기다려주는 힘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같은 질문에 대답해 주어야 하듯, 치매가 온 노부모님께도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우리는 같은 대답을 해드리고, 기다려드려야 합니다. ‘잡아당긴다고 잔디가 더 빨리 자라지 않는다’는 독일 속담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달려들어 빨리 그리고 대신 해결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곁에 있으면서 기다려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삶의 연금술은..

몸살 앓으며 버린 꼰대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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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jpg» 밝은누리공동체에서 남녀가 함께 김장을 하고 있다.


남자가 집에서 살림하고 육아하면 한 번 더 쳐다보던 시절이 있었다. 시대가 달라졌다지만 지금도 그것을 현실로 사는 건 쉽지 않을 거다. 8~90년대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지만, 일상에 드리운 가부장 의식과 문화는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독재타도 민주쟁취를 외칠 때에도 지금 생각하면 내게 이상한 감정이 있었다. 현장을 외면하는 남자들을 보면 “남자들이 어떻게 저렇게 생각 없이 살까!”하면서도, 함께 외치는 여자들을 보면서는 “여자들이 뭐 이러고 있냐!”하는 마음이 들곤 했다. 


 어릴 때, 할머니는 손자를 특별대우 하셨고, 남자는 부엌일이나 살림에 얼씬도 못하게 하셨다. 20대 젊은 시절 내 모든 것이 질풍노도와 같이 변했지만 이 부분은 굳건했다.

 결혼은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직면하게 했다. 아내는 따뜻하고 냉철하게 근원에서 물었다. 물론 아내에게는 불쑥 다가온 십자가였을 거다. 차분하게 할 말 다하는 아내의 물음과 문제제기에 말씨름이 길어질수록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나를 보곤 했다. 엄격한 인식론을 재밌게 공부했고, 많은 논쟁으로 훈련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다 부질없었다. 궁색할수록 큰 소리 치거나 엉뚱한 걸 갖다 붙여 논점을 흐렸다. 


 호주제가 있던 그 시절, 혼인신고 하려는데 호주 란에 남편이름을 써야했다. 아내가 생각 좀 해보자고 했다. 말씨름이 벌어졌다.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그러지 말고, 그냥 쓰자. 내가 호주라고 뭘 어떻게 하냐?”하며 짜증을 냈다. “별 것도 아닌데 왜 꼭 이렇게 써야해?” 그래, 맞다. 미세하게 작동하는 부당한 지배문화는 당연한 문제제기를 까칠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니 멍청하게 잘난 체하는 남편이 내는 짜증으로 더 힘들었을 게다. 이후 아내 손에 이끌려 호주제 반대운동을 함께 했다.

 민주, 평화, 생태, 통일이라는 관념이 살아있으려면, 먹고 살림하고 아이 키우는 일상의 삶이 뿌리를 내려야 한다. 내가 감동하고 깨달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관념의 진정성과 실제성은 삶에서 검증된다. 


형제기도회-.JPG» 밝은누리공동체의 남자들


 나름 잘 나가던 남자들이 밝은누리에 함께 한 뒤, 한동안 혼란을 겪는 일이 생겼다. 아이와 놀아‘주고’, 설거지 ‘해주는’ 좋은 남편, 아빠라 자부했는데, 그 생각 자체가 문제 되기 시작했다. “네가 먹은 것 치우는 데 해주긴 뭘 해줘!” “네 삶 네가 사는 건데!”

 옛 삶에 길들여진 말과 무의식이 새 삶에 적응하느라 몸살을 앓곤했다. 간혹 사태파악 못하고 길게 헤매는 안타까운 이들도 있지만, 그래도 그 때 내가 살았던 꼴 보다는 모두 나은 것 같다.


 이제 밝은누리에는 살림하고 아이 키우는 아빠들이 낯설지 않다. 엄마 아빠가 이모 삼촌들과 함께 아이들을 돌보는 자연스럽다. 회의나 공부 할 때도 남자들이 아기들이 함께 하는 게 일상이다. 살림과 육아, 생명살림을 자기 일로 알고 배우지 못한 남자가 지배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삶과 괴리된 공허한 관념을 즐기고, 뭔 일이든 경쟁하고, 툭하면 싸우고, 전쟁 소문 무성한 세상이겠지! 


거인들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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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편적인 역사, 즉 인간이 이 세상에서 이룩한 업적의 역사는 본질적으로 여기서 활동했던 `거인들의 역사'다.


                                                                         -토머스 칼라일

불평등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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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상의 각 지역마다 역사의 진행이 판이하게 달랐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최종 빙하기가 끝나고 1만3천 년이라는 기간 동안 세계의 한편에서는 문자와 철기를 가진 산업사회가 발달했고, 다른 곳에서는 문맹 상태의 농경 사회가 발달했으며, 또 다른 지역에서는 석기를 가진 수렵 채집민 사회가 발전했다.

 그러한 역사의 불균형은 현대 세계에까지 길고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문자와 철기를 가진 사회들은 그런 편리하고 강한 힘을 발휘하는 이기를 갖지 못한 다른 사회들을 정복하거나 멸망시켰기 때문이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


경청과 리엑션은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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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JPG»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간혹 오해를 받습니다. 본심과 달리 업무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합니다. 얄미운 동료라도 있으면 더 곤혹스럽습니다. 흔히 ‘얌체’라고 하는 부류이지요. 30대 후반의 직장 여성 B씨가 갖고 있는 답답함과 고민은 여기에 있습니다.


“얼마 전 인사고과를 받고난 뒤, 너무 속상했습니다. 나름 묵묵하게 회사에 기여했다고 생각하는데, 제 동료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았더군요. 저는 생색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입니다. 자기과시를 하는 스타일도 아닙니다. 반면에 그 동료는 윗사람이 동석한 자리에서는 매우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의사 표현도 적극적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불만이 많고 일도 거칠게 처리합니다. 저를 비롯한 다른 동료들에게 그 뒷마무리가 돌아올 때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저절로 피해의식이 생기는군요. 회사가 크지 않았을 때 사장님은 합리적이고 매력적인 보스였는데, 회사의 덩치가 커지면서 많이 바뀌었습니다. 사람을 보는 눈이 흐려진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생기네요. 다가가기 힘들 정도로 무서운 표정을 지을 때가 있습니다. ‘저분이 내가 알던 바로 그 사장님 맞나?’ 하는 의문이 들곤 합니다. 경직되어가는 회사의 조직 문화, 이럴 때 저는 어떻게 처신하는 게 좋을까요?”


이 하소연을 들으니 ‘작은 충성을 행하는 것이 곧 큰 충성의 적’이라던 중국 고사가 떠오릅니다. 어지럽던 춘추전국시대의 한비자가 꼬집은 현실이었습니다. 국가나 보스에게 해가 되는 줄 알면서도, 당장 자기에게 돌아올 피해가 두려워 달콤함을 제공하는 행태에 대한 경고입니다. 우리가 리더십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현대인의 사회생활은 2000여 년 전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생존경쟁이 치열하다보면 ‘사내 정치’라는 현상이 생기고 왜곡된 신상필벌(공이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상을 주고, 죄가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벌을 준다는 뜻)로도 이어집니다. 그 결과 직장마다 독특한 ‘기업 문화’가 생깁니다. 곰곰이 되돌아보면 저 역시 대표이사로 재임하는 동안 가끔 평가에 착각이나 실수도 있었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리더들이 걸려서 넘어지는 것은 대부분 큰 바위가 아니라 작은 돌부리입니다. 큰 바위는 늘 조심하기에 부딪힐 염려는 거의 없는 데 반해, 작은 돌부리는 잠시라도 방심하면 걸려 넘어집니다. 달콤한 말에 현혹되는 것입니다. 아부를 조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특히 ‘맛있는 음식은 내가 먹을 테니, 설거지는 네가 하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분별해야 합니다.


리더에게 그러한 분별력이 중요하다면, 팔로어(리더를 보좌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뭐가 바뀌어야 할까요? 업무적으로 소극적이라는 인식을 갖게 한 데 대해서는 이쪽에서도 어딘가 미진했던 부분이 있었던 건 아닐까요? 저는 조직의 말단에도 있었고, 조직을 이끄는 자리에도 서보았습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입장이 바뀌면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던 것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상대를 알아야 해답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먼저 ‘리액션’을 아부라 착각하는 것입니다. 행위가 있으면 그에 따른 반응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리액션입니다. 큰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할 때는 그 나름 이유가 있고 고민도 있습니다. 묵묵부답으로 있으면 반대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물론 ‘영혼 없는 맞장구’를 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것을 감별해내야 하는 것은 리더의 몫입니다.


반면에 팔로어인 이쪽에서는 리더의 고민을 함께 경청하고 있다는 느낌을 적극적으로 전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동의한다는 말은 유보하더라도 최소한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다는 의사가 전달되어야 합니다. 아무런 질문도 반응도 없을 때, 리더는 외로워집니다. 그 자리를 아부꾼이 비집고 들어갑니다. 미국의 커뮤니케이션 학자 앨버트 머레이비언 교수의 이론에 따르면 말이 차지하는 비중은 불과 7%, 보디랭기지와 청각 등 나머지 요소가 압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말을 하지 않더라도 표정을 통해 또는 눈길을 통해서 얼마든지 의사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리액션은 상대방의 입장 배려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상대가 사장이건, 부장이건, 혹은 친구이건, 업무상 아랫사람이건, 누구건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제안한 아이디어에 상사가 묵묵부답이면 기분이 좋던가요? 리액션은 배려입니다.


다음으로 반대 의견을 개진하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상사의 의견과 달리 말하는 것은 물론 용기가 필요합니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 일리 있지만 그게 최선은 아닙니다. 좋은 약을 복용하게 하려면 쓴맛을 줄여줘야 합니다. 내 생각이 그의 귀에 들어가게 하려면 먼저 마음이 열려야 합니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니까요. ‘노’(No)라는 말은 거북합니다. 열심히 고민하는 흔적을 보인 뒤 거절해도 늦지 않습니다. 상대방은 오히려 미안해하고 더 존중합니다. 바로 ‘아름다운 거절’입니다.


그래서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언제 나서야 하고 언제 멈춰야 할까요? 시간으로 정의 내리기 어렵기에 수학이 아니라 예술에 가깝습니다. 직장 생활이란 타이밍의 예술이기도 합니다. 너무 빨리 나서면 일이 다 몰려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직장인의 진가는 타이밍에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기왕 할 일이라면 먼저 손을 드는 것이 좋습니다. 마지못해 떠밀려서 한다는 느낌이 들면 인식도 좋지 않고 업무 의욕도 나지 않습니다. 그동안 소극적이라는 느낌을 줬다면 이전보다 타이밍을 반 박자 빠르게 가져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그래도 변화가 없다면 그때는 또 다른 고민을 해봐야겠죠. 답답한가요? 먼저 손을 들어보세요. 그리고 마음속으로 요즘 유행어를 외쳐보는 겁니다, “가즈아~~!”


빈말 해도 따뜻함은 잊지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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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과제리-.png» 애니메이션 <톰과 제리>의 한장면


한 동네 사는 쥐 세 마리가 모여 누가 더 터프한 지 자랑을 했다
첫 번째 쥐가 위스키 잔을 단숨에 비우고 
빈 잔으로 식탁을 내리치며 말했다.
"난 말야, 쥐덫을 보면 거기서 댄스를 춘다구.
그리고 나서 미끼로 쓰인
치즈를 물고 유유히 사라지는 게 나야."
이말을 들은 두번째 쥐가 럼주를 두 잔이나 연거푸 비운 후
유리병을 머리로 깨 부수며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난 말야, 쥐약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지.
보이는 대로 모아 가루로 만들어
모닝 커피에 넣어 마셔야 개운하거든."
그러자 마지막 쥐가 지루하다는 듯이 하품을 하며 말했다.
"난 이렇게 노닥거릴 시간이 없어.
오늘 밤도 고양이와 뜨거운 밤을 보내야 혀,"

=

‘허풍’虛風은 한자로 ‘쓸데없는 바람’으로 ‘쓸데없고 실속이 없는 말, 부풀려진 말’입니다. 허풍을 치는 사람을 북한에서는 ‘꽝포쟁이’라고 합니다. 꽝포’는 ‘꽝! 소리만 요란한 대포’로 ‘거짓말’을 뜻합니다. 여기에 ‘-쟁이’가 붙으면 ‘앞말의 속성을 많이 가진 사람’이 됩니다.

목사들이 듣고 또 하는 대표적인 허풍이 헤어지면서 "언제 시간 되시면 식사 한번 같이 합시다."라는 인사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그저 인사치레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 말을 스스럼 없이 하면서도 스스로 허풍쟁이라는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듣는 사람도 꼭 식사해야겠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허풍을 떨면서도 따뜻하게 느낀다면 허풍도 떨어볼 만 하지 않을까요?

관음보살이 된 명성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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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상-.jpg» 일본 성복사에서 석조 관음상을 살펴보고 있는 현장 스님


관음상1-.jpg» 일본 성복사에 관음상이 조성된 유래를 설명하고있는 비문


관세음보살이 아기를 안고 있으면 송자관음이라 부른다.아들이없고 자식이 없는사람들이 관음에게 빌면 자식을 갖게 된다는 관세음보살 보문품에 따라 조성된 관음이다.

지장보살이 아기를 안고 있으면 수자지장이라 부른다.수자지장은 낙태유산아의 영혼을 구제해주는 보살이다.

송자관음은 중국불교에서 생겨났고 수자지장은 일본불교에서 생겨난 불교신앙이다.

그런데 아래의 관음상은 우리나라 명성황후가 죽어서 다시 환생한 모습이라고 한다.


지금부터 명성황후가 관음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그 내력을 이야기한다.

일본 후꾸오까에는 일본 선종의 최초사원인 성복사가 있다.송나라에 유학한 영서선사가 귀국하여 창건한 임제종의 최초사찰이다.

성복사의 부속암자인 셋신원에는 명성황후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여 조성했다는 석조관음상이 계신다.
오른손에는 연꽃봉오리를 들고 왼손에는 동자를 안고 있는 모습이다.


1895년 10월8일 새벽5시30분 조선의 왕궁 경복궁 내전에 일본공사 미우라의 지휘로 48명의 낭인들이 칼을 뽑아들고 나타났다.

그들은 고종황제를 위협하고 건청궁 옥호루를 향해 달려갔다.

칼을 든 낭인들은 한 여인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두번째 낭인의 칼이 그 여인의 가슴을 파고 들자 그녀는 부릅뜬 눈으로 상대방을 쳐다보며 숨을 거둔다.


이른 새벽에 일본 낭인의 손에 죽임을 당한 여인의 이름은 여흥민씨 민자영. 바로 조선의 국모 명성황후이다.

을미사변으로 불리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이다.명성황후 살해계획의 작전명은 여우사냥이었다.

그때 황후의 가슴을 파고든 칼이 후쿠오카의 쿠시다신사에 보존되어 있다.전체 길이120센치 칼날길이 90센치 칼집에는 선명하게 글귀가 새겨져 있다.ᆢ늙은 여우를 단숨에 베었다.

명성황후는 일본의 늙은여우가 되어 비극의 새벽에 처참하게 살해되었다.시신은 바로 불태워 지고 한줌의 뼛가루는 향원정의 연못에 뿌려졌다.


그 후 황후의 가슴에 칼을 꽃은 사무라이 토오 가쓰야키는 죽어가면서 자기를 노려보던 황후의 눈빛을 잊을수가 없었다.

꿈에서도 악몽에 시달리고 원한에 찬 황후의 눈빛에 고통받았다.

그는 할머니가 다니던 성복사 셋신원을 찿아와 주지스님께 칼을 바치고 살생의 업보에서 벗어날수 있는 길을 물었다.

스님이 살생한 칼은 사원에 둘 수 없으니 신사에 맡기고 명성황후의 모습을 본딴 관음상을 조성해 모시기를 권하였다.저승에서라도 이승의 원한을 풀고 고통받는 중생을 널리 구제하는 관음이 되어 달라고 기도하기를 권하였다.

이와 같은 연유로 일본 최초의 선종사원 성복사 셋신원에는 명성황후의 모습을 형상화한 자안관음상이 모셔지게 되었다.

알아차리지 못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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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0.JPG  


시시비비 가리지 말고, 그냥 들어주세요

엄마에게 폭발한 큰언니의 반란에 당황한 막내 “연이 끊어질까 두려워요”


Q) 저희의 문제는 큰언니의 우울증(?)으로 인한 집안의 갈등입니다.

간략하게 저희 집은 네 자매이고 저는 그중 막내입니다. 친정아버지는 돌아가셔서 친정어머니 혼자 대구에 살고 계시구요. 자매들이 서울, 울산, 대구에 각자 살고 있어서 자주 모이지 못하지만 그래도 모두 시집가서 30년 넘게 큰 문제 없이 잘 지냈고 사이좋은 자매라 여겼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첫째 언니가 갱년기와 함께 우울증이 오면서 가족들을 멀리합니다. 본인의 삶이 이렇게 된 것이 모두 가족들로 인한 것이라 생각하면서 저희와의 모든 접촉을 끊어버린 것인데요.


제 추측입니다만, 첫째로 자라면서 맏이의 책임감, 엄격함을 어쩔 수 없이 받게 되고 어머니의 냉담함으로 인한 상처가 어렸을 때부터 지속되었고,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생각이 스트레스로 쌓인 거 같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한번 어머니와 큰소리로 다투면서 참아왔던 것들을 다 터뜨렸는데, 문제는 상대방이 80대 노인이 된 어머니라는 점입니다.


본인이 했던 일을 전혀 기억 못 하시고, 설사 했다 하더라도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 그래도 내가 엄마인데 어떻게 나한테 이러냐”는 주장이어서 큰언니로서는 엄마의 따뜻한 말 한마디를 기대했다가 더 실망하고 우울해지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거기다 큰언니는 엄마가 무시하니, 동생들도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생들은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생각이에요.


처음엔 오해를 풀기 위해 사과도 하고, 달래기도 하고, 먼 지방에서 서울까지 찾아가 얘기도 나눠보는 등 큰언니의 맘을 되돌려보려고 했지만 요지부동이에요. 그리고 자매들은 그간 자신들이 살아온 세월에 대해 마치 고해성사하듯, 큰언니 앞에 털어놓게 되었습니다. 본인들도 죽을 만큼 힘들고 괴로운 일들이 있었다고요.


그러다 보니 또 네 자매의 몰랐던 개인사를 모두 다 알게 되고, 그렇게 속속들이 다 알아버리게 되니, 자매들을 만나도 예전만큼 맘이 편하지는 않습니다.


이제 어머니 팔순 생신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대로 해결 못 하고 넘어가면 분명 큰언니는 참석하지 않겠지요.


솔직히 노인이 된 어머니를 이제 와서 변하게 만든다는 건 무리일 거 같고요, 우리가 둘 사이의 깊은 골을 메울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자매들이 따로 해야 할 일은 없을까요.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면 골이 더 깊어져, 가족 간의 연이 아예 끊어질까 두렵기도 합니다. 캣


A) 중년 이후 여성들의 심리적 반란을 갱년기 우울증 탓으로 돌리는 것에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노화에 따른 단순한 생리적 현상이 아니고, “더 이상은 이렇게 참으며 살지 않겠다”는 일종의 몸부림일 겁니다. ‘참을 만큼 참았다. 그러나 더 이상은 세상의 요구에 따라 살지 않겠다’라는 자기 선언이지요. 인내가 한계치에 다다라 내면 깊숙이 숨어 있던 개인의 욕구와 욕망과 감정이 폭발하듯 올라온 것이지요.


그런데 이 경험의 내용과 강도가 개인마다 굉장히 다릅니다. 우울해지는 방식으로, 또는 화를 내고 원망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이혼이나 가출 등의 돌발적인 행동을 통해서 참았던 마음을 드러냅니다. 어떤 태도가 정상이다, 지나치다고 평가할 수 없습니다.


혹시 동생들이 언니의 분노를 우려하면서 어서 화를 풀라고 설득하려 한 것은 아니었나요? 이제 와서 어쩌겠어. 나도 고통이 있었지만 다 참았어. 그러니 가족의 평화를 위해 언니도 참아, 라는 식의 논리로 말이지요. 그랬다면 언니는 무시당한다고 느꼈을 것이고, 가족들은 역시 달라진 게 없다고 노여워했을 겁니다.


큰언니의 갑작스러운 반란으로 네 자매의 관계에 균열이 생긴 것 같은데, 저는 그 점이 희망적으로 보입니다. 사랑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관계 아래 숨겨진 불편함을, 숨겨진 진실을 큰언니가 드러나게 했네요. 이제 가짜 관계에서 진짜 관계로 전환되기 위한 기회가 마련된 것입니다.


인생의 어떤 위기는 기회가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심리적인 문제도 예외가 아닙니다. 융 심리학은 중년기에 뜻하지 않게 맞닥뜨린 신경증이 우리를 성숙하게 완성해줄 중요한 신호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우울, 불안, 분노, 불면증 등은 우리가 외면한 욕구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결핍된 것이 무엇이며, 삶에서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인이라는 겁니다.


캣 님의 큰언니가 경험하는 어머니에 대한 원망은 사실 자기 돌봄, 자기 사랑에 대한 간절한 바람입니다. 이제까지 큰언니는 어머니의 태도를 내면화해서 자기 자신을 엄격하고 냉담하게 대하며 살았을 겁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자신에게 충분한 인정과 사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중년의 시기는 거듭 태어나는 시기입니다. 청년, 자식, 부모 등의 정체성에서 벗어나 본연의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내면의 요구에 직면합니다. 이때 자신의 인생과 인간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부정과 회의가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익숙한 고통, 낡은 삶의 방식이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때 비로소 가족에 대한 의존과 동일시, 의무감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재탄생을 지켜봐줄 따뜻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겠지만 주위 사람들의 지지도 필수입니다.


큰언니의 변화 과정을 불안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큰언니가 하는 말의 시시비비를 가려주려 하지 말고 그냥 들어주세요. 그랬구나. 그럴 만하다. 언니가 이해돼. 우리가 알아봐주지 못해서 미안해, 라고 말한다면 정말 감동일 겁니다. 그러면 큰언니는 가족에 대한 사랑을 재확인하면서 스스로 균형을 잡아갈 것이고, 한층 성숙한 중년과 노년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오래 흥미롭게 지켜봐주세요. 그녀가 펼치는 변화의 길은 우리 여성들이 언젠가는 지나가야 할 길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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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는 괴로움도 없다. 그런 사람에겐 슬픔도 번민도 없게 된다. 그러나 그런 사람에게는 의욕도 없다.


                                                          -붓다

인간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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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가치는 얼마나 사랑을 받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었느냐에 달려 있다.


                                 -에픽테투스

수백만명의 미움을 해소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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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한 사람의 인간이 최고의 사랑을 성취한다면 그것은 수백만의 사람들의 미움을 해소시키는 데 충분하다.


                                            -마하트마 간디


공손하기만 한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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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체로 사람들은 지나친 공손과 친절로 자신을 망친다. 이런 사람들과의 대화는 전혀 이롭지 못하다. 이들은 너무 타협적이라서 언제라도 당신에게 동의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들의 지나친 인내심과 친절은 잠깐만 대화를 해봐도 그대로 드러난다. 나는 주의를 집중하게 만드는 기이한 사람들과 만나고 싶다. 서로에게 말 상대가 되어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은 완전히 사라지고 상대의 태도에 몰입하게 된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


행복에 이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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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른  나이에 행복에 이르는 길을 깨달았다. 나에게는 늘 규칙이 있었다. 즐거운 일 더 하기, 즐겁지 않은 일 하지 않기,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이든 즐기려고 노력하기, 내 나이 여덟 살,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한 나는 전혀 중요하지 않는 일에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모르니까. 


     <유쾌한 혁명을 작당하는 공동체 가이드북>(세실 앤드류스 지음, 강정임 옮김, 한빛비즈 펴냄)에서

스님의 연애조언 10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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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애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연애 안하고 싶어서 안하는 것도 아니다. 인연이 닿으면 연애를 할 것이고 인연이 없으면 못하는 것이다. 연애하고 싶은 마음, 하기 싫은 마음, 내려 놓아라. 미래는 알 수 없다. 열린 마음으로 인연을 지켜 보아라. 
• 스스로 행복을 찾으라. 남을 의지해서 행복하면 언젠가는 실망과 불행이 찾아온다. 혼자 행복한 사람은 혼자 있어도 같이 있어도 행복하다. 
• 절박한 갈망을 버려라. 갈망은 연인을 멀리하게 하고 인연이 있어도 도망가게 한다. 스스로 튼튼하고 만족하면 연인들이 매력의 힘으로 끌려온다. 
• 연애할 때는 연인에게 자유를 주어라. 매순간 뭐 하고 있는지 집착하지 마라. 궁금증을 버려고 신뢰를 가져라. 
• 지나친 집착의 말과 행동은 삼가하여라. 느끼한 애교는 나중에 미움으로 변하기 쉽다. 존중과 존경을 유지하여라. 
• 열병에 빠져도 의지성을 키우지 말아라. 좋아하는 것은 괜찮지만 ‘당신없이 못산다’는 마음은 분명히 고통을 갖게 한다. 
• 사랑은 오고 간다. 강할때도 약할 때도 있을 것이다. 사랑의 무상함을 잘 지켜 봐라. 사랑도 유효기간이 있다. 
• 어느날에 헤어질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같이 있는 시간을 즐기고 이별을 염두해 두어라. 이별을 알면 같이 있는 시간이 소중하고 이별의 고통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 신뢰와 존경을 기반으로 해서 사귀면 허니문 기간을 오래 할 수 있다. 연인과 best friend 되어라. 
• ‘나’가 먼저이면 집찹이고 ‘너’가 먼저이면 사랑이다. 연인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면 오래오래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을 업그레이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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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각스님-.jpg» 26일부터 선불교대학을 여는 공생선원장 무각스님


선(禪)은 곧바로 붓다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따라서 선은 세수하다가 코 만지기 만큼이나 쉽다고 했다. 하지만 출가자들도 그 맛을 보지못해 평생을 헤맬만큼 어렵다도 한다. 그 선(禪)만을 2년간 집중적으로 배우는 선불교대학이 생겼다. 불교대학은 전국에 수백곳이 넘고, 선불교대학이란 이름을 내세운 곳도 있었지만 대부분 불교대학 교과목에 선과목과 참선을 일부 첨가한 정도였다. 하지만 간화선 위주의 정통선공부를 표방한 선불교대학을 연 공생선원장 무각스님(60)을  서울 도봉구 도봉로 575 삼환프라자 7층 공생선원에서 19일 만났다.


 “선을 하는데는 종교라는 말도, 불교라는 말도 필요 없다. 종교인일 필요도 없다.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대자유와 ‘완전한 행복’이다. 이를 불교적 용어로 바꾸면 해탈과 열반이지만, 그 조차 군더더기다. 선은 모든 군더더기를 떼어내고, 오직 대자유와 ‘완전한 행복’에만 오로지 매진하는 것이다.”


 창밖으로 도봉산 장군봉에 펼쳐져있는 공생선원에서 그는 “선은 삶을 업그레이드시키는 직접적인 방법”이라고 했다. 2000년 조계사에서 처음으로 참선반을 개설해 초기 10여명에 불과했던 참여자를 450명까지 늘린데 이어 2002년 공생선원을 열어 서울 외곽임에도 매주 100명 가까운 이들이 참선에 함께하는 선도량을 일군 자신감이 배어있었다. 


 무각 스님은 법랍 15년이상된 스님들의 공부모임인 경전연구회를 7년간 이끌었다. 경전연구회는 2005년부터 10년간 대표적인 선 스승들인 고우·무비·지안·통광·혜거 스님등을 초청해 절차탁마해 중진 스님들의 수행·공부 바람을 일으켰다. 무각 스님은 또 대부분의 도심포교당이 기도와 기복신앙 위주로 운영되는 것과 달리 공생선원에서 출가자도 공부하기 쉽지않은 <선요>, <임제록>과 <화엄경>등을 강의해왔다. 지난해엔  조계종 포교원이 일반 대중들을 위해 만들려는 참선 입문프로그램 교재를 만드는 주요 위원으로 참석할만큼 조계종 내 대표적인 ‘공부파’다.


참선-.JPG» 참선 정진하는 공생선원 사람들


경전공부-.JPG» 무각스님의 선어록 강의를 듣고 있는 사람들


 그러나 그는 공부의 공자도 모르고 인생을 마감할뻔한 청춘이었다. 전남 무안에서 경찰공무원인 부친에게서 4형제의 둘째로 태어나는 그는 공부 잘해 원하는 대학에 간 형제들과 달리 어려서부터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았다. 따라서 대학진학도 남얘기일 뿐이었다. 그는 “빛하나 없는 뿌연 구름으로 뒤덮힌 하늘이었다”고 청춘시절을 회고했다.그러다 서점에서 우연히 불교책을 읽는 순간 ‘구름 틈새로 내리쬐는 햇볕을 처음으로 보았다’고 한다. 그 뒤 불서 백여권을 읽었다. 처음 해보는 독서다운 독서였다. 그제서야 ‘동국대 불교학과’ 입학이라는 목표가 생겼다. 친구들은 이미 대학을 졸업한 나이였다. 하지만 기초실력이 너무 바닥이어서 대학진학 꿈꾸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러나 언듯 본 햇살을 제대로 보기 위한 강렬한 욕구로 얼마나 몰입했던지, 그는 믿기지않는 성적을 얻어 부모로부터 한의대에 진학하라는 강권을 받기도 했다. 


 공생선원 앞엔 ‘선은 이론이 아니라 체험이다’라고 쓰여 있다. 그가 이렇게 ‘살아있는 체험’을 우선시한데는 자신의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스승을 찾기 위해서도 직접 부딪혔다. 전국으로 이름께나 알려진 스님들을 직접 찾아가 만나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래서 그가 택한 스승이 한마음선원을 설립한 비구니 대행스님(1927~2012)였다. 하지만 아무리 스승이 지고한 진리를 직설적으로 가르쳐줘도 자기 체험이 없으면 ‘남의 보물’일 뿐이었다. 그는 출가 이후 오히려 온갖 갈등이 밀려들어 이를 잠재우기 위해 6개월 내내 절 계단만을 닦았다고 한다. 그러던중 부처님께 3배를 올리다 절을 받는 이와 절 하는 이가 둘이 아님을 보았다고 한다. 그는  출가 한지 오래되었다고 수행이 되는게 아니라 초창기 발심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요즘처럼 출가자 하나 나오기기 하늘의 별따기여서 군대의 훈련병에 해당하는 행자기간을 옛날 3년쯤에서 수개월로 줄여주는게 현 풍토임에도 그가 두 상좌(제자)들에게 “갈테면 가라”며 3년간 행자훈련을 시킨 것도 이 때문이었다. 공생선원에서는 그의 두 상좌말고도 8명의 비구니 출가자가 나와 ‘발심사관학교’로 자리잡았다.


참선정진-.jpg» 공생선원 참선반 참가자들이 무각 스님과 함께 참선하고 있다.


 그는 출가 이후 수행과 공부와 대중교화를 함께 하느라 달려왔다. 그는 “1990년대 미국 뉴욕과 오하이오의 한마음선원에서 5년을 보냈는데, 그 가운데 한적한 오하이오 웰팅턴의 한적한 절에서 보낸 2년반이 특히 좋았다”고 했다. 절 마당이 학교 운동장처럼 넓은데도 신자들이 일요일 외엔 거의 오지않아 홀로 토굴생활같은 적막함 속에서 동식물들과도 교감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야생너구리와 들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도량에서 살아가는 개미와 뱀까지도 교감이 되는 것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는 어느날 법당에서 부처님쪽으로 엎드린 자세로 좌복에서 죽어있는 쥐를 잊지 못한다.


 “그 전에 절에서 쥐는 한번도 본적이 없었는데, 쥐가 죽어있었다. 쥐는 윤기가 나서 늙거나 병들어 죽지않은 것 같았다. 학생들이 그 쥐를 보더니 ‘하프 스마일링’이라며 반쯤 웃고 있다고 했다. 그 모습을 보니 놀라워 뒷마당에 잘 묻어주었다. 쥐를 묻으면서 ‘네가 나보다 낫구나. 나는 내 마음대로 이 몸을 못벗는데, 너는 무명의 껍데기를 웃으면서 벗어버렸구나’라고 했다. 쥐를 묻고 나서 밤이 되어도 그 쥐의 모습이 놀랍고, ‘저 하찮은 미물도 자유자재로 몸을 벗는데 나의 수행력은 어떤가’라는 생각에 마음에 착잡해서 오가다가 쥐 무덤을 향해 불현듯 질문이 나왔다. ‘너는 지금 어디 있는가?’ 그러자 그 자리에서 새파란 불꽃이 확 피어올랐다. 깜짝 놀랐다. 아, 죽지않았다는 것이구나. 무명의 껍데기만 벗었지 영원하다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 했다.”


 선불교대학은 오는 26일 개강해 입문과정 1년반은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30분부터 2시간, 심화과정 1년반은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30분부터 두시간 강의와 참선으로 진행된다. 강의는 무각 스님과 조계사 선림원장을 지낸 남양주 성관사 주지 성진 스님, 잠실 불광사 교무인 석두 스님, 불교인재원의 박희승 교수가 맡는다. 무각 스님은 “선불교대학의 커리큘럼을 전국의 어느 사찰에서나 활용하게 해 누구나 햇살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도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40만원세대에게도 행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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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년허브 내 창문카페 카페지기들의 느긋한 삶


1주일에 하루 6시간씩 이틀 근무

카페지기 8 40만원씩 받아

 

불광역 ‘서울시청년허브’ 건물 입주

서울시 공모사업으로 임대료  

 

행사있는  손님 한꺼번에 몰리면

아예  잠시 닫고 밖에 나가 쉬어 

 

 메뉴로 토스트 만들다 엉망 돼도

 번밖에 안해봤잖아” 토닥토닥

 

공동출자해 만든 서초동 카페오공과

주거공동체 우동사가 모태 인연

 

쪼들리지만 전쟁터 직장 미련 없어

 인생 꿈꾸는 정거장 일터 필요

 

카페5녀1-.JPG» 수입을 목표로 삼지 않고 자신들의 소통과 행복을 중시하는 창문카페의 카페지기들. 왼쪽부터 오연주씨, 이현정씨, 이지혜씨, 김윤희씨, 김세리씨.


 

서울 은평구 불광역 인근 ‘서울시 청년허브’ 앞엔 이곳  지명 ‘양천리(兩千里) 유래’ 비석이  있다양천리가 북쪽  의주까지 천리남쪽  동래까지 천리의 한가운데여서 불린 이름이라고 한다양천리는 노력해봤자 희망이 없으니 따뜻한 해변으로  현재나마 행복하게 보낼지추위 감수하고라도 도전을 거듭해 희망의 불씨를 살려내야 할지 고민스러운 청년의 갈림길인 것만 같다.

 

 공원 가운데 ‘서울시 청년허브’ 건물 1층에도 그런 갈림길에  청년들이 일하는 곳이 있다. ‘창문카페통계청에 따르면 30 미만 저소득 청년들의 월평균 수입은 지난해 781600원이다 창문카페에서 일하는 카페지기 8명도 평균 1주일에 하루 6시간씩 이틀 일해 40만원가량을 받는다통상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저소득 청년들을 연애결혼출산내집 마련인간관계까지 포기한 5 세대라고 부른다저소득 청년들은 절망뿐이고 어떤 기쁨도 있기 어렵다는 ‘믿음 깔린 호칭이다.

 

2녀1-.JPG윤희등1-.JPG오공-.JPG카페-.JPG


 설거지 밀려도  쉬어도 눈치 안봐

  그런데 이곳 카페지기들은  믿음을 배신한다매일  건물에 드나드는 수백~천명의 사람들은 카페 홀에서 절망스러운 표정 대신 행복한 표정을 자주 본다.

  스포츠센터에 있는 카페에서 3년간 일한 적이 있다직원을 인간으로 보기보다는 돈을 버는 전투요원으로 생각하는 곳이었다사장이 외출해서도 시시티브이로 감시해 ‘  테이블 아직  치웠느냐 닦달했다그런데 여기서는 설거지가 밀려도 되고 쉬어도 아무도 뭐라는 사람이 없다.”

 

 이지혜(30)씨는 “일이라면 칼같이 해야 했던 성격인데이곳에 왔을  너무 널널해이렇게도 카페가 굴러간다는  신기했다 말했다이현정(40)씨는 “여기엔 커피를 많이 팔아서 수익을 많이 내야 한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없고그냥 놀러 오듯 일하고 간다 했다.

 

 창문카페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문을 연다그런데 오전 1130분부터  시간 동안은 문을 닫고카페지기들끼리 카페수익금으로 점심을 먹고 쉬며 논다그런데 더욱 희한한  있다이곳 다목적홀에서 행사가 있는 날이면 손님들이 한꺼번에 수백명이 몰려들어 주문이 늦어질 때가 있다그러면 여러 손님들이 화를 내기도 한다 카페 대표 격인 매니저 김윤희(37)씨는 “그럴 때는 아예 카페 문을 잠시 닫아걸고카페지기들은 밖에 나가 쉰다 했다분노의 와중에서 다투면서까지 일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이곳 카페지기들끼리는 실수해도 서로 비판하지 않고정서적으로 든든한 지지기반이 되어준다고 한다오연주(36)씨는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을 들려줬다.

 

  메뉴로 토스트를 내고 싶어서 윤희씨한테 집에 있는 재료들을 가져와달라고 부탁했다집도 먼데 일부러 가져와준 재료로 토스트를 만들었는데 엉망이 됐다만드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도 않고 재료부터 가져오라고 했냐고 타박을 당해도 쌌다그래서 그는 “마음이 위축됐는데 윤희씨가 오히려 ‘한번밖에  해봤잖아라고 말해줬다 했다.

 

명상-.JPG모자-.JPG카페지기-.JPG


 공통 관심사나 고민 터놓고 얘기

  4  문을   카페의 모태는 2012년에 서울 서초동에서 시작된 ‘카페오공이다불교수행단체 정토회에서 활동하던 청년  23명이 100만원씩 출자해 정토회관 옆에서 독서동아리  각종 모임을   있게 만든 것이다 ‘카페오공 하던 이들이 주축이  인천 검암에 빌라들을 빌려 시작한  ‘우동사’(우리동네사람들)라는 주거공동체다창문카페 카페지기  2명은 지금도 우동사에서 살고 있고나머지도 대부분 우동사를 거쳤다 우동사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 애즈원공동체에 몇달씩 유학도 다녀왔다따라서 애즈원이 하는 자아탐구 프로그램에 참여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데에 관심이 많다.

 

 이렇게 느긋하게 일할  있는  카페가 개인 소유가 아닌 협동조합이고서울시 공모사업이어서 저렴한 임대료가 뒷받침해줘서다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내적인 고민과 갈등과 불안에 대해서 대화하는 소통에 있다.

 

 이들이 아예 욕망이나 욕구나 꿈도 없고 걱정조차 없다고 생각하는  오해다김윤희씨는 재작년엔 청년연대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한달간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고작년엔 일본 여행도  번이나 갔다그는 “돈을 조금만  벌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지만  ‘조금  위해 일터를 바꾸고 싶지는 않다 했다.

 

5녀2-.JPG


 프리랜서나 뜨개질로 수입 벌충

  이지혜씨는 프리랜서로 일러스트레이션을 해서  것까지 합쳐도 한달 수입이 60~70만원 정도다요즘은 컴퓨터 프로그래밍도 배우고요가 지도자 과정에 참여하는 비용 마련마저 녹록지 않다그는 “주위 친구들이 취업하고 결혼하면 불안이 파도처럼 밀려들기도 한다 했다그런데도 그는 1 전까지 3년간 다녔던 직장생활로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대신 자신의 장기인 뜨개질을 해서 모자와 소품들을 만들어 카페에서 팔아 수입을 벌충하기로 했다그는 “직장에서는 사람들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그런 상태로 돌아가 지금의 평화를 깨고 싶지 않다 했다.

 

 결혼 11년차로 아이 없이 프리랜서 건축가인 남편과 사는 이현정씨도 마을여행을 하는 ‘마인드트립이란 사회적 기업과 요가·명상 클래스 운영을 겸하고 있지만 월수입은 100만원 정도로 10년간 직장에 다닐 때의 3분의 1  된다 역시 “수입이 쪼들리는  사실이지만 예전 직장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했다그는 “직장에 다닐  우울증이 너무 심해 울면서 다녔다 “그땐  달고 살던 과민성 설사가 어느새 사라졌고행복하다고  것까지는 없지만 지금 확실히  괴로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김윤희씨는 매니저로서 “카페지기들에게 우동사 주거생활비 35만원과 최소한의 용돈그리고 정토회 ‘깨달음의 이나 애즈원의 자아탐구 프로그램 참여비 정도를 보조해줄  있으면 좋겠다 “당장 저축까지는 못하더라도   편하게 다른 인생을 탐구해볼  있는 이런 정거장 같은 일터들이 있으면 좋지 않겠느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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