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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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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수업의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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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 가면 낯설은 것이 여러 가지이지만 그 중의 하나가 대중 교통이다. 대도시처럼 수시로 버스가 오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약속 시간에 맞추거나, 목적지를 가기 위해서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그래도 가끔 실수를 한다. 그 동네 사람들이나 기사님이 알려주는 지명과 인터넷에 나와 있는 공식 지명이 다를 데가 있어 목적지에 내리지 못하고 방송에만 귀 기울이다가 종점까지 간적이 있다. 날은 어두워진 산골의 버스 종점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기사님이 ‘버스 잠깐 쉬고 다시 출발합니다’라고 하신다. 순간 종점이 시점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끝이라고 생각하는 종점이 모든 것을 시작할 수 있는 시점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스승이 있었다. 


   난 강의를 다니면서 늘 이야기한다. 내게 호스피스를 가르쳐 준 스승은 앞서 돌아가신 많은 환자들이었고 유일한 교재도 그분들이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사실이다. 호스피스 현장에 오래 있었다고 해서 내가 말기 암이 걸려본 것은 아니다. 게다가 죽어본 것은 더욱 아니다. 그러기에 말기 암환자로서 우리와 함께 머물다가 하늘 나라로 옮겨 가신 그 분들은 진정 나의 스승이고 교재이다. 


   유난히 덥고 모기가 극성이던 어느 여름 날 밤, 아니 새벽 세시쯤 중년의 아저씨가 병실에서 복도로 걸어 나오셨다. 간암 말기이신 그 아저씨는 얼굴도 황달이 심했고 복수 때문에 배도 볼록 나와 있었다. 오랜 투병으로 치아도 몇 개 빠졌지만 늘 씨익 웃는 모습이 매력적이신 분이었다. 간호사실 앞에 있는 노트에 뭔가를 오래 쓰시더니 또 그냥 병실로 들어가셨다. 노트 한 장 분량을 가득 채운 내용은 내게 인생수업이라는 또 한 과목의 귀한 공부를 시켜 주었다. 


   ‘모든 이들의 종착역 종점, 우리 자신이 생각해 본 종점, 과연 모든 것이 끝인가. ‘아니다.’라고 나 자신은 이야기하고 싶다. 종점은 출발선의 시작이라고, 우리의 인생은 끝이 있으면 시작이 있다. 모든 이들이여, 종점에 다 왔다고 조급하거나 초조해 지지 말자. 여유를 갖고 또 시작을 음미해보자. 모든 이들은 죽음을 맞이함으로 인생의 종점에 다가온 줄 안다. 그러나 두려워마라. 종점은 축복이다. 앞으로 전개될 미지의 세계에 대한 시작이며 축복의 문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종점에 다다르자. 지난 일에 만족은 못할망정 한 점의 부끄러움이라도 주님께 내려놓고 용서를 빌듯이 우리의 인생을 새로 시작해보자. 즐거운 마음으로, 피는 꽃도 예쁘지만 지는 꽃 또한 피는 꽃 못지않게 예쁘다. 모든 이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깃들길 바라며....‘


  하늘 나라에 먼저 올라가 계신 수 많은 스승님들을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슬며시 번진다. 그리고 우리들과 귀한 삶의 마지막 시간들을 인생수업으로 남겨주셔서 참 고맙다. 



자선냄비, 노숙인 재활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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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수사령관-.jpg» 한국구세군 최고지도자인 김필수 사령관


지난해 12월 우리나라에서 걷힌 자선냄비 모금액은 거리모금 34억3400만원과 기업모금을 합쳐 63억여원이었다. 한국구세군은 이를 모두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쓸 계획이다.

 한국구세군 지도자인 김필수 사령관(63)은 22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기부문화가 위축된 상황에서도 자선냄비 모금액은 전해보다 5퍼센트 가량 늘었다”면서 “모두 불우아동과 장애인, 에이즈환자, 노숙인 등 사회적 약자들을 돕는데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 사령관은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할 정도로 가정 형편이 어려워 배를 곯은채 신문배달을 하면서 미진학자들을 위한 학교인 새마을고등공민학교를 다니던 시절 서울 영등포에 있는 구세군 영문에 친구를 따라갔다가 구세군을 만났다. 그는 자신이 구세군 성직자가 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제복 가슴에 달린 ‘S’자 배지를 보여주며 “구세군의 모토는 ‘3S’로 △배고픈자에게 먼저 먹이는 것(soup·수프) △씻기는 것(soap·비누) △그 뒤 영혼을 돕는 것(salvation·구원)”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역 노숙인들을 돕는데도 노숙인쉼터에서 먹일 뿐만 아니라 목욕탕을 두고 씻기고 세탁실에서 옷까지 세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면서 “쉼터에 작은 쪽방을 마련해 그곳에서 기거하며 일하도록 직업을 알선해준 뒤 저축을 하게 하고, 2천~3천만원이 모이면  한국토지주택공사와 제휴해 싼가격에 임대주택을 얻어 사회로 복귀할 수 있기까지 돕고 있다”고 밝혔다. 구세군은 이런 노숙인 돕기 사업을 서울에서 대전,대구,부산, 광주로 확대하고 있다. 김 사령관은 “노숙인들  재활을 막는 가장 큰 요인이 알콜중독이기에 이들이 알콜과 노숙의 굴레로부터 빠져나오도록 돕는 것을 우리의 주요 의무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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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구세군은 심장병 어린이들의 수술을 돕는 사업을 하다가 10여년 전부터 한국에서 어린이 심장병 환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게 되자 몽골 캄보디아 필리핀 키르키스탄의 어린이 환자들을 초청해 돕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구세군은 1865년 영국 런던에서 감리교 목사이던 윌리엄 부스와 캐서린 부스 부부에 의해 군대식 조직으로 따 창시됐다. 자선냄비는 1908년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배가 난파되자 그 이재민들을 돕기 위해 구세군 조세머피 사관(성직자 호칭)이 냄비를 들고나와 수프를 끓여주면서부터 시작됐다.  

 한국구세군은 250개 영문(교회)와 150여개 사회복지 시설이 있으며, 등록신도가 10만명, 출석신도가 5만5천명 가량이라고 밝혔다.


아이들도 은근 내공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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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암1-.jpg» 전남 해남 일지암 인근 김남주 시인 생가에 함께 들른 법인 스님(맨왼쪽)과 아이들


2년 전 겨울, 내 산거에서 인문학당이라는 이름 아래 중학생 7명과 함께 스마트폰 등 문명의 도구 없이 보름 동안 지낸 적이 있었다. 그때 참가했던 제주도에 사는 학생이 2월 초순에 가족과 함께 나를 다시 찾았다. 그날은 마침 산중에 눈이 펄펄 내리고 찬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며칠째 온수가 끊기고 방안은 냉기가 감돌았다. 은근히 아이들이 걱정되었다. 요즘 애들은 유독 깔끔하고 불편한 환경을 참지 못한다. 그래서 아랫 절 대흥사에 욕실이 딸린 따뜻한 방을 권했다. 모두들 좋아할 줄 알았는데 엄마를 비롯하여 중학생 딸 둘과 초등학생 아들이 별 반응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일지암에 올라가 욕실도 없는 두평 남짓한 초당 단칸방에서 자겠다고 한다. 나의 배려가 좀 무색해졌다. 초당 앞에서 초등 4학년 수한이는 신이 났다. 어린 아이가 무거운 도끼로 나무를 패고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누나 수빈이와 수현이가 추임새를 넣는다. “우리 수한이는 체질이야, 아마 전생에 일지암 머슴이었을거야” 하하 호호. 그날 밤, 4명의 가족은 뜨끈뜨끈한 구들에 누워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며 산중 설경에 흠뻑 젖었다. 신통하게도 아이 셋은 스마트 폰 없이도 즐겁게 긴긴 겨울밤을 보냈다. 


 다음 날은 암자에서 매월 한번씩 열리는 작은 음악회. 이른 아침부터 눈이 내렸다. 오는 손님들이 걱정되어 쌓인 눈을 치워야 했다. 애들에게 함께 하자고 하니 기꺼이 따라나선다. 무려 3시간 동안 치우는데 아이들이 짜증을 내지 않고 즐거워한다. 눈을 치우면서 내리는 하얀 눈을 바라보며 연신 감탄한다. 사흘을 지내면서 내심 놀란 것은, 애들이 책과 자연과 사람들에게 골고루 눈을 마주하고 몸을 놀리는 일을 즐거워한다는 점이었다. 틈틈 스마트폰도 만지작거렸지만 많은 시간을 소비하지는 않았다. 애들은 아주 작은 풍경에도 눈길을 주고 살피며 아름다움을 가슴으로 느끼고 있었다. 신통하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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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곳에 눈길을 준다는 것은 바로 그곳에 마음을 주는 일이다. 보고 듣고 맛보고 생각하는 우리는, 그 무엇과 마주하면서 의미와 재미를 생산한다. 그러므로 먼저 감각기능이 마주하는 그 무엇에 대한 ‘선택’과 ‘반응’이 각자 삶의 내용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의 눈길은 온전히 연모할 대상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다. 스티븐 나흐마노비치의 한마디가 떠오른다. “인간이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건 텅빈 상태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티브이, 술, 담배, 마약 산업은 이를 기반으로 한다. 눈과 두뇌가 두려움을 망각케하는 것이다. 두려움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화려하고 풍성한 시대에 우리들의 시선은 매우 편협하고 빈곤하다. 내면의 고독을 견디지 못해 사람들은 보다 자극적인 감각대상을 찾는다. 잘못된 선택과 그에 따른 반응의 악순환으로 일상의 시간을 연명하고 있다. ‘텅빈 충만’과 ‘텅빈 공허함’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성철 선사는 이렇게 노래했다. “보이는 만물은 관음이요, 들리는 소리는 묘음이라. 보고 듣고 이 밖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   


운명은 사람을 차별치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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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명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사람 자신이 운명을 무겁게 짊어지기도 하고 가볍게 짊어지기도 할 뿐이다.

 운명이 무거운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약한 것이다.

 내가 약하면 운명은 그만큼 무거워진다.

 운명을 두려워하면 그 갈퀴에 걸리고 말 것이다.


                      -세네카

실패자와 성공자들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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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실패자들은 대개 포기의 순간에 자신이 어느 정도 성공에 다가섰는지를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다.


                                                         -에디슨

당신은 어떤 친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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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제왕 독수리의 무기는 발톱(爪)이고 
지상의 왕 호랑이의 무기는 이빨(牙)이다
독수리의 발톱과 호랑이의 이빨은 
자기를 보호해주는 강력한 무기인데 이것을 조아(爪牙)라고 한다. 
사람에게 있어서 조아(爪牙)는 힘들고 어려울 때 
자기를 위해 진정한 충고를 해주고 도와줄 수 있는 친구나, 
위기에 처했을 때 몸을 던져 적들로부터 
구해줄 수 있는 신하를 말한다.
공자는 그런 사람을 쟁우(諍友)라고 불렀다. 
쟁우란 상호간에 할 말을 확실히 하면서도 
따뜻한 우정을 유지하는 인간관계를 말한다. 
진정한 선비가 되려면 쟁우가 적어도 
한 명 이상 있어야 한다고 했다. 
황제는 諍臣七人(쟁신칠인), 제후는 諍臣五人(쟁신오인), 
대부는 諍臣三人(쟁신삼인), 아비에게도 諍子(쟁자)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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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친구를 네 종류로 나눕니다. 
첫째는 꽃과 같은 친구입니다. 
꽃이 피어서 예쁠 때는 그 아름다움에 찬사를 아끼지 않지만
꽃이 지고 나면 돌아보는 이 하나 없듯이 자기 좋을 때만
찾아오는 친구는 바로 꽃과 같은 친구입니다. 


둘째는 저울과 같은 친구입니다. 
저울은 무게에 따라 이쪽으로 또는 저쪽으로 기웁니다. 
그처럼 자신에게 이익이 있는지 없는지를 따져 이익이 
큰 쪽으로만 움직이는 친구가 바로 저울과 같은 친구입니다. 

셋째는 산과 같은 친구입니다. 
산이란 온갖 새와 짐승의 안식처이며 
멀리서 보거나 가까이 가거나 늘 그 자리에서 반겨줍니다. 
그처럼 생각만 해도 편안하고 마음 든든하고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친구가 바로 산과 같은 친구입니다. 

넷째는 땅과 같은 친구입니다. 
땅은 뭇 생명의 싹을 틔워주고 곡식을 길러내며 누구에게도 조건없이 기쁜 마음으로 은혜를 베풉니다. 
한결 같은 마음으로 지지해 주는 친구가 
바로 땅과 같은 친구입니다. 

친구는 많음보다 깊이가 중요합니다. 
산과 같고 땅과 같은 친구가 우리의 진정한 조아(爪牙)입니다. 
그런 친구를 얻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그런 친구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좌절의 근육이 주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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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편안치 않은 상황 그리고 편안치 않은 사람들을 조우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마음은 풍랑을 만난듯 힘이 들고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나 당혹스런 감정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건 반드시 의미는 있습니다.

이런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첫번째 의미는 좌절의 근육을 만들기 위해서 입니다.

마음도 근육이 있는데 운동을 안하면 근육이 약해지듯이 마음도 그렇습니다.

마음의 근육을 만드는 방법은 불편한 상황 불편한사람들을 참아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악조건을 견뎌내다 보면 마음에 근육이 생겨서

웬만한 일에 넘어지지 않는 힘이 생깁니다.


두번째는

세상이 내 뜻대로 되어야 한다는 우리들의 유아적인 이기심을 부수기 위해서 입니다.

세상 일이 내 마음대로 안된다는 것을 경험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만약 기도가 뜻대로 이루어지고 세상 일이 내 마음대로 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겸손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까요?

초기에는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교만의 극을 달리게 됩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인생사의 불편함은 유익함이 있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좌절과 시련에 시달릴 때 하느님을 원망하고 사람들을 원망하였습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마음은 우울하고 불안하고

잠도 못 자고 이러다가 죽는 것 아닌가 하는 무력감은 몰려 오고

기도에 대한 응답은 없고

하루 하루가 사는 게 아니라 버티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힘겨운 시간이 끝나고 돌아보면

예전보다 더 강해진 제 모습이 보이더군요.

새해, 새날, 새각오


죽음 만찬 참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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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마스크-.jpg» 죽음의 마스크



 내일이 먼저 올지 내세가 먼저 올지 우리는 알수없다.‥티벳 격언.

 삶은 불확실하다. 확실한 것은 한가지 밖에 없다.그것은 우리 모두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이다.

 우리 모두에게 평등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죽음이다.

 

 미국의 킨대학에서 개설한 죽음학 강좌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노마 보위교수가 진행하는 긴안목으로 보는 죽음.강좌가 그것이다.죽음학 수강생들은 검시관 사무실을 방문하여 시신을 부검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인상을 찡그리고 역겨워 뛰쳐 나가기도 한다.캠퍼스를 떠나 공동묘지를 찾고 호스피스병동을 찾아 임종을 앞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갖는다.

 

 장례식장을 찾은 학생들은 자신의 관을 고른다.내가 죽으면 어떤 관에 들어가 영면을 취하고 싶은지 선택한다.그리고 유언장을 쓰고 사랑했던 사람에게 작별편지도 쓴다.

 노마 보위교수의 죽음강좌를 이수한 학생들은 중요한 기술을 습득하게 된다.죽음 앞에 당당히 나설수 있고 죽음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말할수 있는 능력이 생겨난다.

 

 최근 미국에서는 저녁을 먹으면서 죽음을 주제로 대화하는 최후의 만찬이 인기를 끌고 있다.맥주를 마시면서 죽음에 대해 토론하는 죽음살롱도 있다.리지 마일즈는 지난 2012년 7월 오하이오주 웨스터빌에 최초로 죽음카페를 개설한 인물이다.차와 케이크를 즐기면서 죽음을 주제로 대화하는 죽음카페가 미국에 100개이상 생겨났다.미국 대학에서는 600개 이상의 죽음학 강좌가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몇몇대학이 죽음학을 교과과정으로 개설하고 있다.동국대학에서는 삶과 죽음의 철학이라는 주제로 죽음학을 강의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죽음을 못본척 하고 죽음을 주제로 얘기하려고 하지 않는다.하루가 낮과 밤으로 이루어지듯이 인생은 삶과 죽음으로 진행된다.죽음은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기 위한 밤과 같은 것이다.

 

 춘천 한림대 오진탁교수는 죽음이라는 주제를 붙잡고 10년 넘는 세월을 보내고 있다.1997년 교양과목으로 죽음학강좌를 시작하고 2004년 생사학연구소를 개설하였다.

 한림대 생사학연구소는 지난 2012년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주관하는 인문한국지원사업에 선정되었다.과제명은 한국적 생사학정립과 자살예방 지역네트워크 구축이다.생사학연구소에서는 죽음준비교육과 자살예방교육을 시행한다.죽음학총서도 발간하고 있다. 인문한국 지원사업 선정을 계기로 한림대 생사학연구소는 매년 5억씩 10년간 50억의 지원을 받는다. 춘천 한림대학교 생사학연구소에서 주관하는 제 4회 국제학술대회에 다녀 왔다.이번 주제는 죽음과 임종에 대한 동아시아의 이해.이다.

 첫번째 발표자는 베리커진 교수이다. 그는 의학박사이면서 일본도쿄의 인간가치 연구소 연구위원이다.그는 특이 하게도 미국인이며 티벳라마이기도 하다. 베리 커진은 30년간 티벳불교를 학문적으로 의학적으로 명상적으로 수행한 이력을 갖고 있다.그는 의학박사로서 달라이라마의 양방 주치의이기도 하다.

 베리커진 박사는 티벳 사자의서에 의거하여 죽음의 정의와 죽음의 과정 8단계를 내적.외적현상으로 구분하여 명쾌하게 설명해 주었다.특히 가장 위대한 죽음이자 마지막 명상인 뚝담에 대한 의학적 견해를 표현하기도 하였다.


죽음1-.jpg» 춘천 한림 대학교 생사학연구소 주관으로 열린 국제 학술 세미나에 함께한 사람들이다.주제는 동아시아의 임종과 죽음에 대한 이해이다


 죽음2-.jpg» 티벳불교의 죽음이해에 대해서 발표하는 베리 커진 박사


 육신은 죽었지만 마음은 명상속에서 계속 작용하고 있을때 두뇌와 몸으로 부터 분리되어 있는 마음 또는 의식의 문제가 제기된다. 미묘한 마음이나 의식은 두뇌로 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할수 있는가? 이런 방식의 연구는 이제까지 연구해온 죽음과 의식에 관한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우리가 죽음을 잘 맞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핵심은 다른 사람을 위한 자비수행을 하는 것이다.이것은 행복한 삶을 살고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하는 최선의 약이다.

 베리 커진박사의 끝맺는 말이다.지루한 학술논문발표가 아니라 위대한 스승의 법문을 듣는 감동이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참가자들에게 기념촬영때 준비해간 티벳 행운의 스카프 카타를 목에 하나씩 걸어 주었다.달라이라마의 축복이 순간적으로 베풀어졌다.

 

 내가 태어났을때 나는 울었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은 웃고 즐거워 하였다.

 내가 내 몸을 떠날때 나는 웃었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슬피 울고 괴로워 하였다.

서로를 발견하는 과정,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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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정책까지, 갈등을 변화 에너지로

[328호 커버스토리] 박지호 한국갈등전환센터 센터장

            <복음과상황> 옥평호 편집장  poemgene@goscon.co.kr


1.jpg» ▲ 2박3일간 진행된 신고리 5·6호기 시민참여단 종합토론회 장면 (사진: 박지호 제공)


어느 사회 어떤 조직이든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갈등은 항존할 터, 그럼에도 한국 사회(그리고 개신교회)의 갈등지수는 특별히 높다. 2009년 어느 대기업 산하 경제연구소에서 개발한 ‘사회갈등지수’(social conflict index)에서 한국은 줄곧 OECD 국가 중 상위권을 놓치지 않고 있다. 우리 사회 곳곳마다 골이 깊어진 갈등은 해소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갈등을 정의에 부합하면서도 상호 화해에 이르도록 풀어나갈 수 있을까? 이론과 이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이에 지난 5년 동안 크고 작은 공동체의 갈등을 화해의 에너지로 바꾸는 일을 해온 박지호 한국갈등전환센터 센터장을 만났다. 그는 작년 신고리 5·6호기 공론조사에 참여하여 국민숙의 과정에 기여한 바 있다. 일상의 층간소음으로 인한 이웃 분쟁부터 국가정책에 대한 갈등에 이르기까지, 심각한 충돌과 대립의 현장을 경험한 그에게서 갈등 해결의 현실성 여부를 들었다.  


― 5년 전 한국에 와 갈등전환센터를 세웠다. ‘갈등전환’이라는 게 무엇인지 간결하게 설명한다면?

간단히 말해 갈등전환(conflict transformation)은 갈등을 공동체의 변화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갈등 자체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있고, 그 에너지가 개인과 공동체를 건설적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다. 공무원들 대상으로 강의할 때 “갈등을 변화의 신호로 인식해야 한다”고 쉽게 설명하곤 한다. 갈등을 변화의 신호로 읽게 되면, 개인, 관계, 문화, 구조 등 어디에 변화가 필요한지 볼 수 있게 된다. ‘제거’가 아닌 ‘변화’의 렌즈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런 인식과 접근으로 지속 가능한 문제 해결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 미국 이스턴 메노나이트대학에서 ‘갈등전환학’을 공부했다. 생소한 학문 분야인데.

갈등해결학의 역사는 무척 짧다. 제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갈등과 폭력의 문제를 다루는 학문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주로 ‘관리와 해결’에만 초점을 두는 한계가 있었다. 갈등을 통한 건강한 사회로의 변화를 위해서는 지속가능한 변화 프로세스 구축이나, 문화나 관계적인 차원의 화해와 치유가 필요하다. 그런 근본적이고 지속 가능한 갈등 해결에 초점을 맞춘 학문이 갈등해결·갈등전환학이다.


― ‘모든 그리스도인은 평화를 위해 일하도록 부름 받았다’는 메노나이트의 신학과도 연관이 있나?

오랜 기간 형성된 평화주의 신학과 영성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영성적 측면의 중요성을 강조하긴 하지만, 갈등전환학이란 학문적 차원에서 특정 종교적 색채나 신학적인 면이 두드러지게 드러나거나 하진 않는다. 함께 공부하던 이들은 각기 다른 종교와 고유한 문화를 갖고 있었다. 나보다 2년 앞서 공부한 선배 중에는 아프리카 출신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평화운동가 레이마 그보위(Leymah Gbowee)가 있었고,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 중에는 르완다 대학살을 경험했던 친구, 수단 내전 중 총상을 입은 친구, 미얀마나 중동 분쟁 현장에서 온 친구 등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현장에서 어떻게 평화를 만들어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연구했다.  


― 갈등전환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는?

<미주뉴스앤조이>에서 기자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한인) 교회 분쟁 현장을 경험했다. 경찰이 교회에 매주 오고, 심각한 경우 경찰 헬기도 떠 있었다. 6년 정도 취재하면서, 광기 어린 교회 분쟁 현장을 많이 보니까 정말 힘들었던 것 같다. 어느 순간 분쟁 현장을 다녀올 때면 차 안에서 신나는 음악을 엄청 크게 틀어 놓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생각보다 스트레스가 컸던 모양이다. 소송으로 법정을 찾는 한인교회들도 많았다. (아는 한인 변호사에게 듣기로) 미국 판사들이 한인교회는 왜 이렇게 많이 싸우냐고 비아냥거릴 정도였다. 교회가 세상 법정에서 평화를 구걸하는 듯 보였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절망의 끝에 있을 때 현지 메노나이트 교회 허현 목사님께 “우리가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하소연했는데, 대뜸 “지호 형제가 해봐요” 하더라. 그래, 내가 해보자, 해서 2012년에 학교에 입학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때 존 폴 레더락 교수의 책 《갈등전환》(Conflict Transformation, KAP 역간)도 번역할 기회가 생겼고, 여기까지 오게 됐다.


― 센터 설립 후 갈등전환 강의, 양성 프로그램은 물론 서울시 이웃분쟁조정센터 조정위원, 함께하는경청 기획운영위원 등 공공영역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해오셨다.

갈등 관련 요청은 점점 더 많아지는 추세다. 서울시가 이와 관련한 시스템을 가장 잘 구축해가는 것 같다. 지자체 중에서 서울시가 처음 갈등조정담당관을 만들었다. 이제 6년째인데, 초기 시행착오가 있었겠지만 지금은 관련 프로세스가 꽤 체계적으로 마련되었다. 나름의 진단을 해서 개입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외부 전문가를 위촉해 주도면밀하게 갈등을 관리한다. 최근에는 50인 이상의 집단민원은 즉시 전담부서에 전달해 관리하도록 했다. 서울시를 모델로 수원시, 대구시, 부평구(인천시) 등이 벤치마킹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본적으로 현장 조정이나 교육 등의 요청이 많아졌다.


― 한국의 ‘사회갈등지수’가 OECD 국가 상위권이라는데, 우리 사회의 갈등지수가 높은 이유는 무엇으로 보나?

일단은 갈등지수를 측정하는 방식에 다양한 의견이 있음을 전제하더라도, 4년 연속 90%의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사회갈등지수가 높다고 응답한다는 사실은, 실제로 갈등지수가 높으냐의 문제를 떠나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갈등관리 역량은 낮게 나온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사회갈등이 많을 수밖에 없다. 시민의 변화, 사회의 변화가 갈등을 만들어내는 측면이 있다. 일제 강점기부터 독재정권, 군사정권, 산업화와 민주화까지 급격한 사회 변화가 진행됐고, 그 사이 시민들의 권리의식과 힘은 한층 강해졌다. 시장이나 구청장을 시민이 뽑는 시대다. 예전에는 공무원들이 집앞에 공사를 하면 주민들이 고생한다고 막걸리를 사줬단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떻겠나? 소음, 분진 등으로 민원을 안 넣으면 다행이다. 행정이 시민의 눈치를 봐야 하는 시대다. 시민과 사회가 그만큼 변했기 때문에 갈등이 없을 수가 없다.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은 진정한 평화는 갈등을 통해 정의가 실현되는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정의와 평화가 구축되는 과정으로 갈등을 보면, 갈등이 나쁜 것은 아니다.


2.jpg» ▲ ⓒ복음과상황 오지은



― ‘갈등은 나쁜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우리나라는 ‘이견(異見) 알레르기’가 있다.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오랫동안 병영 문화에 젖어있었기에 다른 생각이나 다른 행동을 못 견딘다. 교회는 말할 것도 없고, 진보적인 단체라고 다르지 않더라. 나와 다른 생각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정답사회, 집단주의 문화에서 갈등이 발생한다. 그 갈등이 폭력으로 이어진다. 일본의 한 이지메(왕따) 전문가는 이지메를 만들어내는 동력은 전체주의 사고라고 진단했다. 다른 생각, 다른 행동으로 인해 생기는 갈등을 긍정적인 변화로 이어가지 못하고 공격하고 억누르니까 관계의 골이 더 깊어진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입장이 없는 사람도 있는 것인데,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다. 그러니 우리 사회에서 심각한 갈등이 생겼을 때도 그것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할 생각을 못 한다. 세월호 참사의 경우도, 정부가 처벌과 보상으로 문제를 빨리 ‘해결’하려고만 하면서 관계의 골만 더 깊어졌다. 유병언 잡으러 다니고, 보상금이 얼마라는 그런 이야기만 나오고….


― 서울시 이웃분쟁조정센터 조정위원으로 참여했는데, 일상에서 겪는 실질적인 갈등을 조정하는 경험이었겠다.

대표적인 사례가 층간소음 문제다. 사람들이 조정에 대한 개념이나 경험이 없다 보니 처음에는 정답을 찾아주길 바란다. 판사 역할을 기대하는 거다. 그렇기에 가장 먼저 나의 역할과 정체성부터 밝힌다. 나는 문제 해결(판결)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함께 정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설계하는 사람, ‘과정 전문가’라고 말한다. 보통은 갈등이 생기면, 핵심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감정싸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대화가 제대로 되도록 돕는 게 내 역할이다. 대화의 규칙을 이야기해주고, 규칙에 어긋나지 않게 대화하면서 핵심으로 들어가게 돕는다.


― 층간소음 갈등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 대다수가 겪는 어려움이다. 조정에 따른 효과가 있었나?

층간소음 갈등이 생겼을 때 분쟁 조정에 대해 조정 신청자와 신청자의 상대방도 동의해야 하는데, 조정에 대한 경험이 없어서 실제로 상대방이 동의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 1,390여 건 신청 중 실제 조정이 성립된 것은 3%밖에 안 된다. 판결 내려주지도 않을 거 왜 하느냐고 말하는 분들도 있다. 관계성이 없는 상태에서 외부 조정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실제로 동의가 이루어져서 조정을 해보면 당사자들의 만족감은 아주 크다. 여기서 내가 하는 역할은 질문을 찾아주는 것이다. 많은 부분이 다르지만, 서로 얻고자 하는 목표는 동일하다.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에서 지내고 싶다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서로 지킬 수 있는 약속을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을 거친다. ‘소리 지르거나 욕하지 않고 문자나 전화로 소통하기’ ‘특정 시간대에 특히 조심하기’ 등 약속을 정하고 합의문을 쓴다. 물론 법률적으로 구속력이 없기에 약속을 하고도 잘 지켜지지 않을까 봐 불안해하는 분들도 있다. 그런 경우 한 달 뒤에 합의문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확인해주기도 한다. 확인 전화를 했더니 아래층에 살던 할머니(신청자)가 윗층과 별 문제 없이 잘 지낸다며 무척 고마워하시더라.


― 조정을 넘어 화해까지 가는 경우도 있나?

쉽지는 않지만, 갈등전환 관점에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관계 회복으로 이끄는 것이다. 과거부터 쌓인 감정적인 부분을 정리할 수 있도록 가이드해주고, 만족스러운 사과를 주고받도록 준비를 돕는다. 층간소음의 경우 과거부터 쌓여온 사건들과 연관되어 갈등이 증폭된 경우가 많다. 사건이 겹쳐서 감정도 뒤섞여 있는데, 사안별로 분리해서 생각하고, 구분해서 이야기하도록 돕는다. 그 과정에서 사과할 마음이 있다고 하면, 만족스러운 사과를 위해 가이드를 해주기도 한다.


― ‘만족스러운 사과’를 위한 가이드라면?

우리 사회가 사과하는 방법과 과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사과를 한다면서도 “미안하지만, 당신이 먼저 그렇게 하니까…” 이러면서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경우도 있다. 진심으로 사과할 마음이 있더라도 그 진정성을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서 전달되지 않기도 한다. 상황마다 다르긴 한데, 일단 자기 잘못부터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내 잘못으로 인해 어떤 피해가 발생했는지 이야기하고, 그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 재발의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약속 등이 내용에 담기면 대체로 진정성 있는 사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런데 현장에서 느끼는 건, 사과를 받는 사람도 어떤 게 진정한 사과인지, 내가 만족하는 사과는 무엇인지 잘 모른다. 그럼 그걸 찾는 과정도 돕는 게 내 일이다.


― 가족, 직장, 교회 등 일상의 영역에서 적용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 공동체에서는 필연적으로 사과할 일이 생긴다. 인간은 실수를 하니까. 그런 상황에서 사과의 기술이 없다 보니까 마음이 제대로 전달이 안 되고, 또 다른 갈등으로 비화된다. 공동체의 리더십이 가이드를 잘 할 수 있으면 좋다. 무슨 대단한 기술이 있는 게 아니다. 몇 가지 원칙과 원리만 숙지하고 계속 훈련하고 연습하면 된다. 물론 갈등 조정 프로세스는 복잡하고 세밀하지만, 일반적인 대화 모임을 진행하는 것은 금방 익힐 수 있다. 중요한 건 대화 중 적절한 질문을 만드는 거다. 


― 공무원 대상 교육이나 강의를 하고, 공공영역 조정 활동을 하고 있다. 교회에 특별히 필요한 영역인 것 같은데.

교회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다. 갈등이 없다고 얘기하고 싶으니까 갈등이 생기면 묻어두기 바쁘다. 무엇보다 지금의 상태가 담임목사(리더십) 입장에서는 편할 수 있다. 서울시나 자치단체가 어떤 사안을 결정하기 전에 시민을 참여시켜서 숙의(熟議)하는 과정을 밟고 있는데, 교회에서 그렇게 한다고 생각해봐라. 리더십 입장에서는 번거로울 수 있다. 교인들에게 의사결정권이 있는 것이 아니니까 대화의 장을 만들 필요도 없고. 회사도 마찬가지다. 일사불란하게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게 중요하니 갈등 문제에는 큰 관심이 없다. 이는 진보적이라는 공동체도 마찬가지인데, 갈등전환을 어떤 ‘기술’로 인식해서 하찮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교회, 회사, 단체들은 대화하기보다는 힘으로 의사결정을 밀어붙이는 경우가 많다. 사실 우리는 다수결이 최선의 의사결정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소수 입장에서는 폭력일 수도 있다. 대화도 힘의 균형이 맞아야 가능한 일이다. 힘의 균형이 깨진 상태에서 대화를 하면, 힘이 강한 쪽이 원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 그건 갈등을 풀어나가는 대화라고 할 수 없다. ‘좋은 정답’은 함께 찾아가는 것이다.  


― 힘의 균형이 맞아야 대화가 가능하다는 말이 와닿는다.

상대방보다 자기 힘이 더 크다면 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힘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유가족을 참사 이후 한참이 지나서야 청와대로 부른 건 왜일까. 세월호 유족이 시민들의 지지로 ‘힘’을 얻어가니까 그제서야 부른 것이다. 무조건 대화를 시도하는 것보다 대화를 통해 실질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도록 힘의 균형을 먼저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 북미 관계를 갈등전환의 관점으로 보면, 미국에 비해 절대적으로 열세인 북한이 핵을 통해 힘의 균형을 맞추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래야 미국이 대화를 고민할 것이기 때문이다.


― 의사 결정을 위한 대화라는 것 자체가 낯선 과정인 것 같다.

나름 건강한 공동체를 지향하는 교회들도 다수결을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한다. 앞서 말했지만 다수결도 다수의 힘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일종의 강압적인 문제해결 수단이다. 투표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참여와 숙의 과정이 생략된 투표가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적인 정관이 건강한 교회의 핵심으로 비춰지는 것도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신앙공동체가 충분한 공론화 과정 없이 어떤 결정을 하거나 누군가를 선출하면 구성원들이 폭발하는데, 이게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 예방되고 해소되기보다 다른 방식의 갈등으로 비화된다. 담임목사의 결정을 구성원 전체의 숙의 과정 없이 투표에 부쳐서 통과시켰는데, 여기에 동의하지 못하는 구성원들이 담임목사 논문이랑 설교 파헤쳐서 표절했다고 피켓 드는 식으로. 최종 의사 결정을 내리기까지 구성원들을 최대한 참여시키고 숙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 ‘숙의’라는 표현을 자주 쓰신다. 최근 교육부는 방과 후 영어수업금지, 자사고 외고 폐지, 수능절대평가제 도입 등 교육현안에 대해 ‘정책숙려제’를, 방통위는 주요 방송통신 정책에 대해 ‘국민숙의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숙의는 학습하는 과정이다. 쉽게 말해 공부를 시키는 것이다. ‘신고리 5·6호기 공론조사’ 과정도 그 핵심은 숙의에 있다. ‘최초 여론조사 ― 전문가 토론 청취 ― 시민참여단 상호토론 ― 전문가 질의응답 ― 최종 여론조사’ 과정이 모두 숙의다. 471명의 ‘작은 대한민국’ 시민참여단이 2박 3일간 숙의 과정을 밟은 것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 다 하며 토론하는 것이다. 결과를 떠나서 이런 과정을 밟으면 어떤 결과가 나와도 그 수용성이 높아진다. 시민참여단 중 93%가 내 의견과 다른 결과가 나오더라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걸 보면 의사 결정에서 사람들은 그 결정 내용 자체 때문에 분노하기도 하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강압적이고 독단적인 결정 과정 때문에 분노한다. 사드 배치 결정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올림픽 단일팀 이슈가 있는데, 공정성 차원의 문제 이전에 기본적으로 의사 결정 과정에서 소외된 구조에서 갈등이 촉발됐다. 혹자는 2008년의 광우병 촛불집회를 두고 미국 소고기 먹어도 아무도 광우병 안 걸리지 않았냐며 비판하는데, 국가가 일방적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결정했다는 데서 갈등이 시작되었다는 게 핵심이다. 숙의하는 과정을 밟아야 하는 이유는 그런 갈등을 줄이고 같이 답을 찾아가기 위해서다.


3.jpg‘신고리 5·6호기 공론조사’에 모더레이터 및 질문 취합팀으로 참여했다.

모더레이터(moderater)는 시민참여단이 자칫 논쟁에 빠져들 수 있는 상황에서, 사안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대화가 진행되도록 돕는 사람이다. 토론의 목표에 맞게 대화가 진행되도록 돕는 역할이었는데, 토론을 공정하게 진행하려고 호명 순서까지 고려하며 상당히 예민하게 신경 썼다. 공론화 프로세스에 참여한 것이 신고리 공론조사가 네 번째였다. 2014년 국민대통합위 주최 ‘대한민국 국민에게 길을 묻다, 2014 국민대토론회’, 2015년 사용후핵연료재처리 공론조사, 2016년 국민의당 숙의배심원제 후보 경선 등에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 조력자)나 기획으로 참여했다. 이전과는 달리 이번 신고리 공론조사 때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니까 그 자체로 좋았다. 공론조사 과정을 단순화해서 표현하자면, 공부(숙의)하고 나서 여론조사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 거칠수록 ‘잘 모르겠다’라는 의견은 줄어든다. 라면 한 봉지를 살 때도 가격과 성분을 비교하는데, 국가적인 중요한 사안을 충분한 정보도 없이, 공부도 하지 않은 시민들에게 묻고 판단을 맡길 수는 없지 않은가?


― 일부 전문가 그룹에서는 그런 중요한 사안의 결정을 비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옳으냐는 문제제기를 했었다.

심지어 공론조사에 참여한 분들 중에서도 ‘이런 결정을 왜 우리가 하느냐, 청와대에서 해야지’라고 말하는 분이 있었다. 사실 정책 결정을 통해 주민들이 영향을 받는 사안에 대해 주민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보는 게 맞다. 또한 공론조사와 관련한 오해들에 대해서 <오마이뉴스>에 정리해서 올리기도 했는데, 공론조사는 문제 해결의 수단이 아니고 결정을 돕는 하나의 기준일 뿐이다.(“비전문가에게 판단 맡긴다? ‘공론조사’에 대한 오해들”, 2017.10.23.) 자문의 성격이 강하다. 찬성이나 반대가 약간 많다고 그대로 결정하지는 않는다. 판단을 하는 하나의 근거로 삼을 뿐이다. 신고리 공론조사 때문에 사람들이 공론조사를 의사결정 수단으로 여길까 하는 염려가 있다. 공론조사는 분쟁해결책도, 최종판결도 아니다. 신고리 공론조사는 전형 사례가 아니라 변형 적용된 사례로 보면 된다.


― 신고리 공론조사 관련 아쉬운 부분은 없었나?

보통 공론조사는 갈등 예방에 초점을 맞춰 진행하는 프로세스다. 신고리의 경우 갈등이 첨예한 상태에서 시작되었기에 전문가들 사이에서 공론조사의 적절성에 대한 이견이 있었다. 게다가 준비 기간이 3개월로, 너무 짧았다. 보통 프랑스의 국가공공토론위원회는 1년의 준비 기간을 거치는데, 3억 유로(약 4,045억 원) 이상의 예산이 들어가는 공공사업은 이 위원회를 반드시 거치도록 법으로 규정했다. 국민 표본도 2천 명을 선발한다. 그에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이제 막 시도해보는 단계다. 시행착오를 거치는 과정이고, 시간이 더 필요하다. 원활하게 진행되고 자리 잡으려면 제도적으로도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 때 대통령령으로 제정한 ‘갈등관리규정’이 전부다. 이것을 근거로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들이 조례를 만들어 시행하고 있는 정도다.


― 시민들의 역할이 커진다는 것은 긍정적인 부분인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제도적 뒷받침도 이어지지 않을까?

그렇다. 공론화 프로세스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기존에 국가 행정이 독점하던 것을 시민들과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참여하는 방식도 그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 사실 공무원들은 설명회 정도의 정보제공 단계, 공청회 같은 의견 수렴 단계까지밖에 생각 못 했는데 요즘은 시민들 역할이 더 확장되는 추세다. 시민들로 구성된 자문회를 두거나 공론조사를 하는 것, 시민과 행정이 함께 결정하는 조정협의체, 시민들이 판단하고 결정하는 시민배심원제 등이 있다. 모든 걸 신고리 공론조사처럼 할 수는 없고, 사안과 여건에 맞게 어떤 방식으로 프로세스를 밟을지 결정해야 한다. 최근에는 사용후핵연료 연구와 관련된 공론화 과정 설계에 참여했는데, 원자력 산업과 무관한 외부 전문가를 구성해 일종의 배심원제로 설계했다. 이처럼 이해당사자들 직접 다 만나서, 어떤 이해관심사가 있는지, 어떤 프로세스를 원하는지 묻고 그것을 분석한 것을 기반으로 프로세스를 설계한다.


― 시민단체 입장에서는 공론조사가 자리를 잡아갈수록 ‘시민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다시 고민할 수밖에 없겠다. 조언해주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대화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할 수밖에 없다. 중간에서 ‘잘 모르겠다’는 입장을 가진 사람을 설득할 때에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말하는 태도와 대화하는 방식도 또 다른 메시지가 된다. 내용이 아무리 옳더라도 상대를 조롱하거나 인신공격성의 비아냥거리는 태도가 거듭되면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 공론조사의 경우 시민들이 비전문가들이지만 토론 때 의외로 날카로운 질문을 쏟아낸다. 시민들끼리 토론하며 나온 질문을 전문가에게 묻고, 그 질문을 주제로 또 토론이 이어지기 때문에 준비를 정말 꼼꼼하게 해야 한다. 옳은 일이라는 확신과 별개로, 내가 옳다고 여기는 변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한 노력도 치열하게 해야 한다고 본다. 이상적이지만, 정부 차원에서 양측이 충분히 잘 준비할 수 있도록 재정적, 환경적으로 지원하는 과정도 별도로 마련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 우리가 대화하는 법을 몰랐구나 반성하게 된다.

공동체 내 대화하는 문화가 많지 않은 것 같다. 갈등이 생겼을 때 대화로 이어가기보다는 논쟁으로 가져간다. 논쟁(debate)은 나의 옳음과 상대방의 틀렸음을 합리적으로 증명하는 과정이라면, 대화(dialogue)는 내가 몰랐던 상대방의 일말의 옳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진보·개혁을 외치는 공동체도 승패가 나뉘는 논쟁에는 익숙하지만, 서로를 발견하는 대화의 과정에는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대화는 좋고 논쟁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갈등을 통한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려면 논쟁뿐 아니라, 대화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또 한 가지는 우리 안의 폭력성에 더 예민해져야 한다. 개인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말은 물론 남의 약점을 공격하는 것도 엄연히 폭력이다. 우리 사회는 ‘그래도 그 사람, 능력이 있잖아’ 하면서 덮고 가는 문화가 있는데, 그래선 안 된다. ‘남의 약점을 공격하는 건 나쁘지만 그래도 능력 있는 사람이잖아’라는 말과,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폭력은 나쁜 거다’라는 말은 큰 차이가 있다.


― 갈등 상황 중에서 피해자가 명백한 경우에는 대화로만 끝낼 수 없을 것 같다.

갈등이 생겨나는 원인을 크게 불편(不便)하냐 혹은 불의(不義)하냐로 구분해서 본다. 피해자가 명백한 경우는 불의한 경우다. 대화로 풀 것인지, 처벌을 할 것인지, 법정에 넘길 것인지 등 상황에 맞게 과정을 밟으면 된다. 중요한 것은 이런 과정을 통해서 공동체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계속 발견해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구조의 문제일 수도 있고, 문화의 문제일 수도 있다. 교회 내에서 재정 부정이 발생했을 때, 감사(監査)가 제대로 진행되었는지, 재정 시스템에 허점은 없었는지, 리더십 차원의 문제는 없었는지 교회 내 변화의 지점을 발견해나가는 거다. 불의에 의한 갈등과 피해 상황은 주로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회복적 정의’나 ‘갈등전환’ 둘다 지속 가능한 관계를 추구하고 강조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갈등전환은 주로 이해관계나 불편함으로 인한 갈등을 다룬다.


― 앞서 교회 분쟁을 취재하면서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갈등전환을 공부하면서는 회복이 되었는지.

농담반 진담반으로 어디를 가도 교회 분쟁 현장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웃음) 그런데 교회 분쟁 현장이나 다양한 갈등의 현장을 계속 경험하다보니 과거에 비해 공감하는 감수성이 현저히 무뎌지는 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누군가는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게 트라우마 증상 중 하나일 수 있다고 했는데, 이게 갈등 현장에서는 장점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갈등 현장에서 ‘거리 두기’가 자연스럽게 되니까 좀 덜 힘들기도 하고, 그래서 프로세스를 밟아가는 게 더 수월하기도 한 거 같다. 


― 갈등전환 전문가로서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SNS) 상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갈등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안타깝다. 만나서 대화하면 좀더 건설적인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고, 다양한 변화의 지점을 발견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문자로 주고받게 되면 왜곡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른 갈등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오프라인에서 건강한 공론의 장이 많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싶다. 올해는 한국갈등학회와 연계해서 그런 자리를 만들고자 준비하는 중이다.

 

진행 옥평호 편집장, 정리 이범진 기자


 이 글은 <복음과 상황>에 실린 것입니다.






성철스님이 법문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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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4-.jpg» 생전에 해인사에서 법문하는 성철 스님


 ‘수행자들이여! 참으로 대선지식이라아만 비로소 감히 부처와 조사를 비방하고, 천하의 선지식을 옳다 그르다 비판하며, 경·율·론 삼장의 가르침을 배척하고, 촐싹거리며 우왕좌왕 몰려다니는 소견머리 없는 무리들을 꾸짖고 욕하며, 어려운 경계와 순응하는 경계를 활용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험하여 참된 수행인을 찾고자 하였다.

 그래서 나는 12년 동안 한 개의 될성부른 소질을 가진 업성이라도 찾고자 했지만 겨자씨만큼도 얻을 수 없었다. 

 시어머니를 무서워하는 새색시 같은 선사라면 절에서 쫓겨나 밥도 얻어먹지 못할가봐 불안하고 즐겁지도 않을 것이다. 예로부터 위대한 선의 거장들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믿지 아니하여 쫓겨나곤 했으나, 그가 떠난 뒤에야 비로소 귀하고 훌륭한 선승인 줄 깨닫곤 했다.

 만약 가는 곳마다에서 비위를 맞춰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인정해준다면 이런 사람이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 그러므로 “사자의 포효 한 번에 들여우의 뇌가 찢어진다”고 했던 것이다.’ 


 (道流·도류야 夫大善知識·부대선지식이 始敢毁佛毁祖·시감훼불훼조하며 是非天下·시비천하하며 排斥三藏敎·배척삼장교하며 罵辱諸小兒·매욕제소아하야 向逆順中覓人·향역순중멱인하나니 所以·소이로 我於十二年中·아어십이년중은 求一箇業性·구일개업성을 如芥子許·여개자호도 不可得·불가득이니라 

 若似新婦子禪師·약사신부자선사하면 便卽怕趁出院·변즉파진출원하야 不與飯喫·불여반끽하야 不安不樂·불안불락이어니와 自古先輩·자고선배가 到處人不信·도처인불신하고 被趁出·피진출하야 始知是貴·시지시귀하나니 若到處人盡肯·약도처인진긍하면 堪作什麽·감작십마오 所以·소이로 師子一吼·사자일후에 野干·야간이 腦裂·뇌렬이니라)


성철5-.jpg» 해인사에서 안거중에 선승들의 참선을 독려하는 해인사 방장 성철 스님


 이처럼 활발발한 법문으로 대중을 깨운 이는 바로 당나라말기 대선사 임제의현(?~867) 이다. 임제는 한국 불교에도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선사다. 대한불교조계종의 전신이 바로 임제선사의 이름을 딴 임제종이었다. 임제는 달마-혜가-승찬-도신-홍인-혜능-남악-마조-백장-황벽에 이은 법맥을 이어받아 동아시아 선종의 황금시대를 여는데 큰 기여한 인물이다.


 선어록 가운데 가장 많이 회자되는 살불살조(殺佛殺祖·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와 무위진인(無位眞人·일체의 속박에서 벗어나 아무런 장애나 막힘이 없는 경지에 오른 참사람),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立處皆眞· 어디든지 주인이 되면, 그곳이 바로 불국토)라는 말들이 <임제록>에서 나왔다.


  그 임제록이 성철 스님(1912~1993)의 입을 통해 새롭게 전해졌다. 조계종 6~7대 종정을 지낸 성철 스님이 해인사 방장으로 있던 1974년  하안거(여름 3개월 참선정진 기간)에서 이듬해인 1975년 하안거까지 보름마다 <임제록>을 가지고 강설한 법문 <임제록>(장경각 펴냄)이 출간됐다.

 성철 스님을 시봉했던 상좌로 성철 스님의 선사상을 선양하는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인 원택 스님이 자신의 상좌들의 힘을 빌어 법문녹음테이프를 풀어 정리 보완해 출간했다. 


  <임제록>은 임제의현스님의 말씀을 제자 삼성혜연이 기록한 법문집으로, 흔히 불교계에선 ‘선어록의 왕’이라 지칭한다. 성철 스님도 이 책에서 <임제록>에 대해 “세계 4대 귀서(貴書)”라고 평했다. 일본 교토학파의 창시자 니시타 기타로도 일본이 전쟁으로 모든 책이 불타더라도 <임제록> 한권만 있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극찬한 책이다.


성철3-.jpg» 성철스님과 제자인 원택 스님(왼쪽 뒷모습)


성철2-.jpg» 해인사를 포행중인 가야산호랑이 성철스님


 성철 스님은 옛조사들의 선문답을 상세히 풀어 해설해줌으로써 오히려 간화선의 핵심인 의심-의정-의단을 향해 일로매진하는데 해가 되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이 법문에서도 “본분사로만 대중을 대할 뿐이지 절대로 근기를 살펴 설파하거나 해설하거나 하지 않는다는 바로 이 점이 우리 선불교의 근본 생명이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중생의 근기가 너무나 하열해 부처님이 성문·연각·보살의 법문을 차례로 말씀한 것을 비유하며 “오늘부터는 방침을 좀 고치려 한다”며 나름대로 쉽게 법문해준 것이다.


 성철 스님은 임제록 평석을 마치면서 법문을 듣던 스님들에게 1.애기하지 마라. 2. 잠 많이 자지 마라. 3. 책 보지 마라. 4.음식에 조심하여 적게 먹어라. 5.돌아다니지 마라는 다섯가지 지침을 강조했다. 이 지침은 성철 스님이 선승들에게 책을 보지말라고 해서 선가에 무식한 풍토를 조장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성철 스님은 안거중인 이들에게 안거중에 화두일심에 방해가 되는 장애를 제거하기 위해 지침을 내린 것이지, 안거가 끝난 뒤에도 책을 보지 말라고 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원택 스님은 “이 책이 기존에 나온 <임제록>과 차이가 있다”면서 “선어록과 선을 보는 성철 스님의 관점이 분명히 드러나있다” 고 밝혔다. 원택 스님은 “이 책에서 선종은 ‘스스로의 힘으로 스스로를 제도한다’는 자성자도(自性自度)와 ‘절대로 화두를 설명하지 않는다’는 불설파(不設破)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원칙을 분명히 지키면서 <임제록>의 역사적·문화적·사상적 배경을 누구보다 자세히 밝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택 스님은 “성철스님이 <임제록> 전체가 아닌 앞부분의 중요한 대목만 평석했고, 마지막엔 학자가 아닌 선사로서 서에 대한 안목과 관점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며 “이 책을 단순히 이해한다는 심정으로 읽지말고, 마치 스승을 옆에 모시고 있듯이 대하고, 또 책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한다면 선과 선종 그리고 선학에 대한 독자 자신의 관점을 확립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배움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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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할 때는 배움의 자세를 유지해야 하며, 남을 가르치려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고집과 교만한 태도를 버리고, 겸손해야 한다. 겸손하다고 해서 재능이 사라지거나 이성이 마비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의 주목을 받고 자기 생각을 인정받을 수 있다.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

남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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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이 독립적인 사고력이 부족하면서도 배움과 자아성찰로 자신의 관점을 세우지 않는다. 그저 이웃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살피고 그것을 따라 하기 바쁘다.

 

                                                -마크 트웨인

내탓 강박서 벗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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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관승-.JPG»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병원은 인생의 축소판입니다.

무더웠던 여름 저는 어머니의 병환으로 피서지 대신 응급실과 입원실을 드나들어야 했습니다. 대기실에 있다 보면 가끔 낯 뜨거운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어르신 환자의 경우 처음엔 환자의 용태를 주목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앞으로 누가 환자를 돌볼 것인지를 놓고 자식들 사이에 묘한 신경전이 펼쳐집니다. 가끔은 날 선 언쟁과 책임 공방이 오가기도 합니다.


어머니의 병상을 지키다 어떤 환자 가족의 가슴 아픈 사연이 담긴 편지를 읽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투병하던 남편을 몇달 전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40대 후반 여성의 이야기였습니다. 아픈 남편을 돌보느라 너무도 지쳐 있었기에 기분 전환하라고 주변에서 등 떠미는 바람에 친구들과 함께 동해안으로 여행을 떠났다 합니다. 산길을 걷고 동해의 바닷물에 손도 담그며 실로 얼마 만에 느껴본 자유로운 공기인지 실감이 안 났다고 했습니다. 저녁 식사하러 들어간 식당에서 이것저것 주문하며 한창 흥이 돋던 무렵입니다.


접시에 먹음직한 모양으로 생선이 담겨 나왔는데, 가자미조림이었습니다. 그것은 남편이 가장 좋아하던 음식이었습니다. 그 순간 자기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떠나버린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생전에 좀 더 잘해주지 못했다는 자탄, 혼자 남은 자기 자신과 앞으로 버텨야 할 세월에 대한 막막함과 서러움, 이런 온갖 감정이 한꺼번에 뒤엉겨 튀어나왔습니다. 친구들이 위로한다고 맥주를 권했지만, 먹고사느라 남편과 작은 가게를 운영하며 함께 뛰어다녔던 기억과 그러면서도 아이들이 뒤처지지 않도록 늘 허둥대던 장면들이 겹쳐 보이자 그만 주책없이 엉엉 소리 내어 울어버렸다고 합니다. 왜 자신에게 이런 시련이 닥쳤는지 너무나 야속하기도 했다 합니다.


그런데 설명하기 더 어려운 것은 알 수 없는 해방감이었습니다. 오랜만에 가져본 기쁜 감정은 또 무엇일까? 남편은 고통 속에 저세상으로 떠났는데도 자기 자신은 굴레에서 벗어났다는 기분, 게다가 친구들과 즐거운 자리는 왠지 비현실적이고, 죄스러웠다고 합니다. 결국 그날 저녁 자리는 엉엉 울다가 엉망진창으로 끝났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도대체 복잡한 이 감정을 뭐라 설명해야 할까요? 아무래도 제가 나쁜 사람 같아요. 그렇겠죠?”

이 편지를 읽으며 저는 ‘강박’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많은 것들에 눌려 삽니다. 특히 사랑하는 가족들과 관련된 문제라면 ‘내 탓’ ‘무한책임’ 의식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는 어디서나 강박이 있지만, 혈연 의식이 강한 한국에서 특히 심한 듯합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광기와 우연의 역사>에서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어떤 예술가도 매일 스물네 시간을 끊임없이 예술가로 있을 수는 없다.”


이 표현을 패러디하면 어떤 자식도 일주일 내내, 그리고 하루 스물네 시간 끊임없이 효자와 효녀로 있을 수는 없습니다. 장기 환자가 있으면 그 강박 때문에 몇몇 사람은 과도한 노동시간에 시달립니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 몸과 마음에 과부하가 걸립니다. 극진한 아내와 남편도 체력적으로 한계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간직해야 하지만 지혜롭게 대처해야 합니다. 주기적으로 쉬어야 합니다.


사연을 주신 분처럼 배우자를 잃었을 경우 더더욱 치유와 회복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세월이 약이라고 그냥 집에서 우두커니 지내기만 하다가는 부정적인 생각들로 자칫 우울증도 걱정됩니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국제기구에서는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처럼 테러가 많고 정신적 스트레스가 극심한 곳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4주 또는 6주에 한번씩 ‘R&R’이라는 이름의 휴가를 명령합니다. ‘Rest & Recuperation’(레스트 앤 리큐퍼레이션)의 준말로, 휴식과 회복을 의미합니다. 휴가라고 하면 ‘논다’는 것을 먼저 떠올리지만, 스트레스에서 해방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몸과 마음의 균형이 무너져 병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장하는 자녀들에게 좌절하지 말고 위기를 극복하는 법을 강조합니다. 괜찮다고 툭툭 털고 일어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견디기 힘든 좌절과 역경에 대처하는 연습은 어른에게도 필요합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 가혹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사망, 이혼, 자녀의 좌절, 질병, 승진 탈락, 사업 실패, 퇴사, 실직 같은 것들의 고통은 그 하나하나가 너무도 견디기 힘든 것들입니다. 역경을 이겨내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의 경우를 우리는 종종 봅니다.


최근 <뉴욕타임스>에 실린 ‘중년에 회복 탄력성을 키우는 법’(How to Build Resilience in Midlife)이란 제목의 기사는 참조할 만합니다. 이 신문은 저명한 조직 심리학자인 애덤 그랜트 펜실베이니아 대학 와튼스쿨 교수 등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통해 ‘회복 탄력성’이라는 열쇳말을 제시합니다. 튼튼한 나무는 강풍에 휘청거리지만 결국은 제자리에 돌아오는데, 그것을 가리켜 회복 탄력성, 혹은 탄성이라 합니다. 그 탄력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심리적 근육’ 단련법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육체적 근육이 약하면 자주 다치고 허약해지듯이, 심리적으로도 근육이 단련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 금방 좌절해버린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먼저 해야 하는 것이 ‘긍정적인 연습’입니다. 고인의 죽음이 내 탓이라는 죄의식, 자탄에서 하루빨리 빠져나오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뭐든지 그냥 이뤄지는 법은 없습니다. 연습하고 단련해야 합니다. 고통이나 역경을 이기는 법도 그렇습니다. 내 탓이라는 강박에서 졸업해야 할 때입니다.

예수살이로, 소유에서 자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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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살이 20, “소유에서 자유거듭 강조

멕시코 출신 등 정회원 4명 늘어

 

예수살이공동체가 창립 20주년 감사미사를 봉헌하며, 무소유와 가난한 삶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다짐했다. 

31일 서울 마포구 예수회 센터에서 회원 2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봉헌된 기념미사 중에는 한주희(카타리나), 허광진(토마스), 류경주(실비아), 그리고 멕시코인인 마리아 사라 할리페 씨가 민들레’(정회원) 서원을 했다. 외국인 회원이 민들레 서원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이로써 예수살이공동체 정회원은 모두 87명이 됐다.

 

이들 네 사람은 서원식에서 계획적 소비를 위해 가계부를 일상화하고, 체크카드와 신용카드 사용 비율을 82로 하겠다”, “상대가 말할 때 온전히 집중해 듣고 대화하겠다”, “1개 이상의 두레(공동체 지역 모임)를 더 양성하겠다등 크고 작은 다짐을 했다.

 예수살이공동체 김미애 사무국장은 “‘민들레는 공동체에서 교육받고 1년 이상 활동한 회원이 평생 예수살이공동체에 속해 살겠다고 서원하는 것이라며 이들은 총회에 대한 의무, 권한을 갖고, 회비를 내며, 공동체와 더 깊게 결합하게 된다<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1.JPG» 3월 2일 예수회 센터에서 열린 예수살이공동체 20주년 기념 행사에서 (왼쪽부터) 류경주, 허광진, 마리아 사라 할리페, 한주희 씨 등 4명이 '민들레'(정회원)로 살아가겠다고 서원하고 있다. ⓒ강한 기자


박기호 신부, 기술문명과 소비문화 대응 강조

 

미사에 앞서 강의에서 박기호 신부(서울대교구)우리 공동체가 20년을 맞아 군대 갈 나이가 됐는데, 요즘은 나이 스무 살이 돼도 다 제 앞가림을 잘 못한다우리가 조금 더 힘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신부는 1990년대 후반 공동체 운동을 구상하고 동료 사제, 청년들을 초대해 예수살이공동체가 만들어지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는 2003년부터 충북 단양에 농촌공동체 산 위의 마을을 만들어, 아이들이 있는 가족, 독신자 등 20여 명과 함께 지내고 있다.

 

박 신부는 예수살이 운동은 인간을 복원하는 운동이라며, 건강한 사람에게는 노동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오늘날 인간은 노동의 결과로 만들어진 기술문명 속에 완전히 편입돼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과 사람 사이의 주도권이 뒤집어지는 시대와 사회가 어떻게 변해 가는가 생각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박 신부는 오늘날 가장 큰 힘을 가진 것은 소비문화 마케팅이라며 그것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고, 인간답지 못한 모습으로 살게 하는지 질문하고 성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20년을 맞으며 뿌리는 길게 뻗어 있는 듯한데 잎사귀가 푸르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면, 나의 실천이 그만큼 떨어진 것 아닌가 성찰해야 한다한번 힘을 내 보자고 격려했다.

 

한편, 이날 미사를 주례한 유경촌 보좌주교(서울대교구)는 강론에서 예수살이 공동체의 모토 지상에서 천국처럼의 가장 뚜렷한 식별기준은 지금 행복하기라며, “우리는 이렇게 사는 것 자체가 행복한 사람들이고, 그 기쁨과 행복을 나중에 받을 것으로 생각하며 사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2.JPG» 3월 2일 예수회 센터에서 열린 예수살이공동체 창립 20주년 기념 행사에서 박기호 신부가 강연하고 있다. ⓒ강한 기자



청년공동체 운동 열망으로 1990년대에 만들어져

20주년 맞아 역사 돌아보고 수행 생활 점검하기로

 

예수살이공동체는 1990년대 후반 젊은 사제와 신자들이 모여 청년공동체 운동을 꿈꾸면서 싹트기 시작해, 199831일 서울 역삼동 성당에서 창립미사를 봉헌하며 만들어졌다. 소비문화와 물질지배를 거부하고, 예수의 제자로서 하느님나라를 만드는 운동을 목적으로 한다.

 청년들을 위한 영성, 신앙 재교육 프로그램 배동교육’, 장년을 위한 제자교육을 각각 매년 2번씩 하고 있다. 그동안 2221명이 교육을 받았다.

 농촌에 박기호 신부가 이끄는 산 위의 마을이 있다면, 서울에는 청년들이 한 집에 모여 사는 밀알공동체가 있다.

 공동체의 신앙인상으로 안중근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특이한 점이다. 31일 창립 20주년 기념미사 중에도 안중근의 어록이 낭독됐다.

 

예수살이공동체 20주년 준비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공동체는 1년간 지난 역사를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깊이 논의하기로 했다. 큰 행사로 오는 6월 심포지엄, 12월 송년감사 미사가 예정돼 있다. 또한 공동체의 영성과 정체성에 대한 신학 검토, 수행 생활 점검과 재조정을 논의할 계획이다.

 

3.JPG» 3월 2일 예수회 센터에서 열린 예수살이공동체 창립 20주년 기념 행사에서 '민들레'(정회원)로 살아가겠다고 서원한 4명이 무릎을 꿇고 동료 평신도들의 안수를 받고 있다. ⓒ강한 기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에 실린 글입니다.



악마가 군자가 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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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분노의 불길과 욕망의 물결이 끓어오르는 순간을 분명히 느낄 수 있지만,

알면서도 잘못을 저지르고 만다. 

아는 것은 누구이고,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또 누구인가?

이 순간 단호하게 한 생각을 돌릴 수 있다면, 악마도 군자가 될 수 있다.


              -채근담

나르시스트 부모 대응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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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남편과 공동전선이 필요합니다

끊임없이 금전적 부담 주는 시어머니 때문에 골머리 앓는 며느리 “언제까지 참야야”


사진11-.jpg»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Q)시어머니는 막내아들인 우리 가정이 제일 잘산다고 생각하고 부모가 원하는 대로 돈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십니다. 우리는 열심히 살고 있고 지출보다 저축을 더 많이 합니다. 두 아이의 교육도 책임져야 하고 노후 준비도 해야 하니까요. 물론 부모를 위해 좋은 선물 해드리고 좋은 음식 대접하는 건 자식으로서 당연한 도리지만, 우리 시어머니는 본인의 품위 유지를 위해 자식이 끝도 없이 돈 쓰길 원하십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미국 여행을 두어 달 전 시부모 두 분이 함께 다녀오셨습니다. 세 자녀가 각각 200만원씩 갹출해 여행 경비로 드렸습니다. 시어머니는 자식들 돈으로 간 네 번째 미국 방문이었지만 평생 미국 한 번 못 가보고 죽는 사람들도 많지요. 우리 부모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미국 여행에서 경비가 모자라 쇼핑도 제대로 못 하고 돈도 맘대로 쓰질 못했다고 저에게 화를 내시네요. 오직 자식들이 주는 경비에만 의존하시면서요.


거기다 일 년에 한 번도 어려운 여행을 또 가시게 되었습니다. 미국 여행 다녀온 서너 개월 후에 중국 여행 가고 싶다 하시니, 막내아들이 덜컥 모시겠다고 나섭니다. 남편도 꼴 보기 싫어요. 그래서 이루어진 두 번째 여행은 지난달 중국 상해로. 물론 모든 경비는 우리 돈으로 내드렸습니다.


저에겐 사올 것이 하나도 없어 아무것도 못 샀다는 문자를 보내시고, 덧붙여 아들이 기내에서 뭐 하나 고르라 해서 덜컥 지갑 하나 고르셨답니다. 면세점에서 더 살 거 없나 돌아보다 ‘스와로브스키’ 귀걸이가 또 덜컥 눈에 들어왔고, 아들에게 사달라고 말씀하셨으나 아들이 사왔는진 저도 모릅니다. 그것까진 겁나서 묻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만약 부모 입장이라면 ‘아들아, 여행 경비도 많이 썼는데 또 무슨 돈을 쓰려고 그러니? 나 필요 없다’ 할 거 같습니다. 한 푼이라도 자식새끼 주려고 노심초사하시는 우리 친정부모와는 너무도 다른 그림이라 난 이 그림을 어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엄마는 백화점 구석 세일 코너에서 비싸지도 않은 가방을 만지작거리고 사지도 못하고 돌아섭니다. 우리 시어머니는 롯데 본점 ‘루이비통’에서 색깔만 다른 가방 두 개를 덜컥 사들고 오십니다. 통장에 돈이 없고 다음 달 카드값 전전긍긍하시는 분이….


이건 모두가 팩트. 시어머니의 입장은 이렇습니다. ‘어머니 그게 사고 싶으셨어요? 마음껏 사세요. 다 사드릴게요’라고 해야 맞는 거 아니냐는.


‘내가 군소리 없이 다 받아들이고 원하시는 걸 다 해드려야 하는 걸까? 우리는? 나는? 죽어라 아끼고 저축해서 시어머니 백화점 카드값 내드려야 하는 걸까? 난 동대문시장에서 옷 사입고 어머니는 명품관에서 아들이 사주는 옷을 입어야 하는 걸까?’ 도대체 언제까지, 어디까지 이래야 하는 걸까요? 성현순


A)성현순 님의 시어머니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르시시스트란 단어가 떠오릅니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이 그 누구보다도 우월하고 특별하다고 느끼길 원하지요. 당신의 시어머니는 친구들 사이에선 돈 잘 버는 효자 자식을 둔 부러운 마나님으로 우쭐한 기분을 느낄 거고, 또 집안에선 자식들이 쩔쩔매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권위를 확인할 겁니다. 아들을 사이에 둔 고부간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즐거움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의외로 나르시시즘 부모가 많습니다. 완벽한 부모가 되어 자식들을 압도하고 늘 그들의 존경과 찬탄을 받고 싶어하는 부모도 나르시시스트에 속하지만, 단지 부모라는 이유로 자식을 꼼짝 못 하게 하고 자식의 시간과 돈을 착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과 착취의 심리>를 쓴 샌디 호치키스는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를 합니다. 공공연한 나르시시스트의 뒤에는 ‘감춰진 나르시시스트’들이 있다는 거지요. 감춰진 나르시시스트들은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타인에게 바람을 잔뜩 불어넣어 그를 나르시시스트로 만들고, 이를 통해 자신의 위대성과 전능성을 만끽한다는 겁니다. 감춰진 나르시시스트의 또 다른 의미는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적 나르시시스트일 겁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가요? 당신의 남편과 그의 형제자매와 배우자들은요? 혹시 그녀의 나르시시즘을 부추긴 감춰진 나르시시스트들은 아니었나요? 부모님이 원하신다면, 그까짓 거, 즐거우셨다니 좋네요, 부모님께 정성을 다하는 건 당연한 도리지요, 하면서 거짓 미소로 부모님의 허영심을 부추기진 않았습니까? 그렇지 않고서는 그토록 시어머니가 당당할 리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효로 가장된 그 거짓 미소와 거짓말을 멈춰야 합니다. 거짓 미소와 거짓말은 증오와 경멸을 낳습니다. 거짓 찬사를 보낸 상대를 사랑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증오가 깊어지면 솔직하고 담백한 의사 표명이 어려워집니다. 미움을 억누르기 위해 애쓰느라, 그리고 죄책감 때문에 진실을 말할 힘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며느리 혼자 시부모의 뜻을 거역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이제까지 시부모에게 착한 며느리였다면 더더욱이요. 그렇다면 남편을 잘 설득하고 이해시켜서 자신과 한목소리를 내달라고 요구하세요. 남편에게 당신 집안은 왜 그래, 하면서 화풀이하지 마시고, 시부모에게 드릴 돈의 한계를 정해서 가계지출을 예측 가능하게 하고 싶다고 말씀하세요.


자신의 욕구를 말하는 데 당당하세요.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미워하고 싸워야 하나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시어머니의 욕구와 똑같이 당신의 감정과 욕구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덧붙인다면 성현순 님이 친정엄마처럼 살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보다는 미래를 위해서, 나보다는 자식을 위해서 사는 삶은 자칫 당신의 욕구를 희생시킬 수 있습니다. 내면의 희생이 커지면 그 누구를 보더라도 억울하고 원망스러울 수 있답니다.


일본인의 마음엔 무엇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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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씨튼연구원 원장 최현민 수녀 인터뷰


신도 기둥 일왕만 절대적

선악보다 절대복종 우선


일본인 마음 밑바닥 99% 채우는 

종교 넘어  자체인 토착종교 신도

 

신사참배의 뿌리는 원령신앙

더러움 씻고 죽은   푸는 제사

 

일본 불교깨달음 따로 보지 않고

수행하는 지금 이대로가 깨달음

 

상대방 정신세계 모르면 피상적일 

불교·개신교 수도자 등과 종교간 대화

 

광화문 촛불시위  마음에 돌덩이

 지경  때까지 종교는  했는지

 

영성적으로 불교에 빚졌지만 의문도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


최현민-.JPG» 최현민 수녀가 꺼풀을 제거해준 책으로 소개한 일본 조동종 개조 도겐선사의 <정법안장>을 들어보이고 있다


일본 종교 강의하는 최현민 수녀 

일본 종교를 알아야 일본인이 보인다 강좌가 서울 성북동 씨튼영성센터에서 열린다강사는 씨튼연구원 원장인 최현민(59) 수녀다일본은 그리스도교 인구가 1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하고 신도(神道) 불교가 주류 종교로 자리한 나라다그런데  일본의 종교 강좌를 가톨릭 수녀가 하다니 신기하다그러나  원장은 지난 25년간 불교와 일본 종교를 붙들고 놓지 않은  분야의 고수다그는 서강대 종교학과에서도  분야 강의를   오래다 원장이 12  강의를 시작으로 12월까지 매달(7~8 제외셋째주 월요일 진행할 ‘일본 종교와 일본인의 실체 미리 들어보았다.

 

 일본인의 마음 밑바닥을 99퍼센트 채우고 있는 것은 토착종교 신도다신도는 일본인들에게 종교를 넘어  자체다이를 알지 못하면 주변국들이 그렇게 질색을 하는데도 일본 총리가 2차대전 전범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신사를  기어코 참배하는지를 이해할  없다.”

 

  원장은 신사참배의 근거로 애니메이션 <원령공주> 모태인 ‘원령(怨靈)신앙 설명했다. “일본 신화에서 일본열도를 만들었다는 신인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는 남매이자 부부인데불의 신을 낳다가 죽어 황천에  이자나미를 만나러  이자나기가 처참한 몰골의 아내이자 여동생의 모습을 보고 도망쳐 나와 ‘황천의 더러움 씻기 위해 정화하는 모습이 나온다일본인들의 축제인 마쓰리의 정화의식도 여기서 유래했다일본인들이 목욕에 집착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일본은 비명횡사하거나 한을 품고 죽은 원령들이  사람을 괴롭히고 재앙을 불러온다고 두려워하기에 제사를 지내줘야 한다고 믿는다.”


아베.jpg»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아베 일본총리. 사진 연합뉴스

 

수치심의 문화할복도 서슴지 않아

 따라서 죽은 자가 무슨 짓을 했든  선악이 중요한  아니고해코지를 못하게 제사로 달래준다는 것이다그는 “루스 베네딕트가  <국화와 >에서 서양은 ‘죄의 문화이고일본은 ‘수치심의 문화라고 했다 차이를 설명했다. “죄의 문화에선 선악이 중요하다우리나라의 미투운동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그러나 일본에서는 선악보다 주인에 대한 절대복종을 거스르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긴다그러니 세계대전의 책임자인데도 왕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끝까지 지지하고그의 명예가 더럽혀지면 자신이 할복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원장은 인접국이지만 한국과 중국일본의 종교적 심성에도  차이가 있다고 한다. “중국은 ‘천명(하늘의 ) 받는다 (·하늘신앙이 뿌리깊다유교로 넘어와서는 천인합일(하늘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이 일치)하는 것을 인격의 완성으로 보았다주자에 이르러 ‘ ‘’() 변형된다우리나라는 단군신앙이 있어서 고조선 때부터 고유의 (하늘신앙을 가졌다우리나라에서 실학자들이 자발적으로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일  있었던 것은 우리 안에 절대성에 대한 신앙이 있어서였다그러나 일본에서는 신도만이 절대적이다따라서 절대성을 지닌 유일신 신앙은 살아남지 못했다초창기에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것은 그리스도를 잘못 이해해 수많은 외래신  하나로 여겨서였다.”

 

  원장은 “일본에서는 신도의 기둥인 일왕이라는 절대성 외에는  어떤 것의 절대성도 인정되지 않는다 “신도가 현세의 삶을 중시하는데 죽음 의례가 없었기에 불교에서 이를 차용했고유교도 국학과 고학으로 변형했다 “엔도 슈사쿠(소설가) 말대로 일본은  어떤 것이 외래에서 들어오든지 변조할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했다.

 

3.JPG» 씨튼연구원에서 종교간대화모임을 하고있는 이웃종교인들


  “외래의 어떤 것도 변조할  있는 

 상대방의 정신세계를 모르면 피상적인 대화에 그치고거짓 평화만이 지배해 진정한 평화로 나아갈  없다.”  원장이 종교간 대화에 심혈을 기울여온 것도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다그는 지금도 불교·개신교의 수도자  학자 10여명과 대화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모임은 전임 원장으로 유학 전공자인 김승혜 수녀가 1994 시작했다초기부터 모임 간사를 맡은  원장은 김승혜 수녀가 ‘사랑의 씨튼 수녀회’ 총장으로 4  부임해 미국 본원으로 떠난  모임을 주관하고 있다.

 

 그는 1  ‘광화문 촛불시위 나갔다가 돌덩이가 마음에 던져져 소용돌이치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사랑과 자비정의평화를 추구하는 종교의 인구가 50퍼센트나 되는데 나라가  지경이 되기까지 과연 무엇을 했느냐는 물음이 멈추지 않더라는 것이다그래서 지금 종교간 대화모임의 주제는 ‘참여와 명상함께 가능한가이다그는 “영성적으로 불교에 너무 많은 것을 빚졌고불교는 2 고향 같은 이라고 고백하면서도, 25년간의 탐구에도 풀리지 않은 의문도 진솔하게 물었다.

 

  불교의 ‘십우도’(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그린 그림)에서 마지막엔 하산해 세상 속으로 들어가 깨달음과 자비를 실천하는 것으로 나온다불교는 지혜와 자비가 둘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현실에선 출가자와 재가자를 양분하고출가자는  깨달음만 지향하고보살행은 재가자의 몫으로 돌린다그들은 언제 깨닫고 중생들을 구제하러 나오는가.”

 

   “그들은 언제 깨닫고 구제하러 오나 

 그는 “사랑의 씨튼 수녀회 영성의 뿌리인 빈첸시오  바오로 성인(1581~1660) 경우 자비행의 실천을 통해 더욱 깊은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역동성을 보여줬다 “현재 세상의 문제와 함께 고민하고 아파하며 지금 여기에서 어떤 모습으로 함께 나누며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아니냐 말했다그것은 그가 2004 일본 난잔대학 종교문화연구소에서 연구할 당시 꺼풀이 벗겨지는 체험의 계기를  <정법안장> 저자 도겐 선사(1200~1253·일본 조동종의 개조) 깨달음과도 일맥상통한다.

 

 선불교는 ‘돈오’(頓悟·단박에 깨달음)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도겐 선사에 오면 그런 얘기가 없다도겐은 깨달음이 따로 있는  아니라 수행하는 지금 이대로가 깨달음이라고 했다따라서 지금 여기가 바로 깨달음의 자리인 것을 깨닫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따라서 ‘무엇보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아니냐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 몸치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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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폭력피해여성치유상담센터 `샵위드유'여는 송길원 목사와 김향숙 신체심리학자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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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날인 8일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도장리 ‘행복발전소 하이패밀리’에 ‘성폭력피해 여성치유 상담센터’인 ‘#WITHYOU’(샵위드유)를 개관한다

 지난 25년간 가정사역을 해온 하이패밀리 대표인 송길원 목사(61)는 7일 센터장을 맡을 부인 김향숙(58)씨와 함께 개관설명회를 열어 “미투운동을 지지하고 지원하기 위해 센터를 연다”고 밝혔다. 


 ‘샵위드유’의 김센터장은 명지대 예술심리치료학과 객원교수로 있으면서 몸을 통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도록 이끄는 신체심리학자다. 그가 ‘몸’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11년전 갱년기로 인한 분노 조절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김씨는 “마음도 댐수위처럼 용량이 있는데, 분노가 조절이 안되면 흘러 넘쳐 화가 주위 사람들에게 향하게 된다”면서 “당시 1박2일 몸워크숍에 참여해보고 소리와 호흡 등을 통해 분노 조절 효과를 본뒤 신체심리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김 센터장은 “성폭력의 경우 마음에만 기억되는게 아니라 ‘기분 나쁜 접촉’을 몸이 기억하고 있어서 피해자가 자기 몸에 대해 ‘망가졌다’거나 ‘이제 결혼도 할 수 없다’는 등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재생하기에 언어 치료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치료중에 피해자가 성폭력 장면을 떠올리면 몸에 엄청난 긴장이 유발되기에 심호흡을 유도하고, 치료자나 가족이 쓰다듬어주는 등의 몸치료와 긍정적 기억 등을 통해 자신의 몸을 새롭게 만나도록 함으로써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송·김 부부는 주로 개신교인들을 대상으로 사역을 해온만큼 성폭력 문제는 남 얘기가 아니라. ‘한국 교회의 발등의 불’임을 분명히 했다. 송 목사는 “최근에 별세한 세계적 복음전도자 빌리 그레함 목사는 1948년 사역을 시작하면서부터 머데스토선언인 ‘그래함룰’ 일종의 도덕률을 정해 성적농담도 금하고, 아내 아닌 여성과 단 둘이 만나거나 식사도 금해 그 큰조직에서 성적인 문제가 거의 발생하지않았다”면서 “그런데 한국에선 목회자 윤리도 자리 잡지못한데다, 신자들도 목사를 건드리면 벌을 받는다는 생각이 팽배해 개선이 안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김센터장도 “몇년전 여동생이 기도원에서 기도 중 목사가 기도해주겠다며 별도의 공간으로 데려가 성추행을 시도해 새벽에 놀라 뛰어온 적이 있다”면서 “목사들이 성서를 왜곡하는 경우가 많아 신도들이 성폭력을 당하면서도 그것이 성폭력인지 인지하지못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가령 목사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거나 ‘너는 나의 라헬(야곱의 두번째 아내)’이라고 하며 다가올때 ‘우리 목사님이 나를 특별하게 사랑하는구나’라고만 방기하다가 성폭력 당한 것을 한참뒤에야 깨닫고 충격과 상처를 받곤한다는 것이다. 김센터장은 “목사가 가해자인 경우 교회에서 남에게 비춰지는 모습이 아니라 ‘진짜 모습’을 본 ‘가해자의 부인’이 받는 상처도 피해자 못지않다”며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도 시급하다”고 밝혔다.

 송 목사는 성폭력 피해 여성 상담을 위해 “법률지원팀과 의료지원팀을 구성해 피해자를 전체적으로 치료하고 구제할 수 방안을 강구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신은 어떤 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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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jpg» 수선화


 올 겨울 이 엘베강 하류에는 유난히 축축한 진눈깨비만 쏟아져 눈 쌓인 것을 볼 수 없었는데, 어제 왼종일 함박눈이 오더니 오늘은 세상이 하얗고, 바람도 없고, 해까지 나네요. (진눈깨비, 함박눈, 싸락눈 - 독일말에는 없는 이런 눈이름들은 참 예쁩니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벤치에 쌓인 눈을 쓸어내리고 앉아 눈을 감고 겨울 해바라기가 됩니다. 문득, 아주 어릴 때, 시골집에서 처마 밑에 매달린 고드름이 햇볕에 반짝이며 녹아 방울방울 떨어지는 것을 무심히 바라보다 아늑한 졸음에 들었던 느낌으로 빠져듭니다. 


 그런데, 살짝 코를 스치는 흙냄새. 어? 봄? 듬성듬성 눈이 녹은 벤치 주변의 잔디밭에서 나는 흙냄새는 저를 현재로 되돌려 왔습니다. 그리고 크로커스 싹이 빼꼼이 올라오고 있는 게 보이겠지요! 아, 너는 우리가 봄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우울해 하고 있는 동안 그렇게도 열심히 땅 속에서 자라고 있었구나! 고마운 마음이 하나 가득합니다.


 크로커스는 북유럽에서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첫 꽃이지요. 크로커스, 수선화, 히야신스, 튜울립과 모란들의 꽃을 보려면, 서리가 내리기 전에 뿌리를 땅에 묻어주어야 합니다. 이 녀석들은 겨울의 모진 추위를 땅 속에서 이겨내야만 꽃을 피울 수 있다고 합니다. 매년 첫 서리 내리기 전 늦가을 한 달 동안만, 저희 동네 보행자 거리에서는 이런 꽃뿌리를 팝니다. 정원이나 발코니가 있는 사람들은 부지런히 사다가 땅에 박아놓고, 겨울 내 그저 잊고 있어야 합니다. 기다리지 말고 그냥 그리워하다보면 어느 새 크로커스를 앞세우고서 수선화가 피고, 튜울립이 필 즈음이면 모란도 잎파리를 피우기 시작하지요. 사실 제가 모란 뿌리를 처음 사서 심을 땐, 이런 칡뿌리 같이 생긴 놈에게서 그 현란한 꽃이 필거라고 정말 믿진 않았습니다.그런데 정말 피더라고요. “모란이 피기까지는…” 소쩍새 울음과 천둥과 서리가, 뿌리를 얼레고 다독이고 애무하는 거름이 되는 모양입니다. 모란의 뿌리를 본 사람에게 모란의 꽃은 그래서 현란한 아름다움 이상의 감동을 안겨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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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커스(왼쪽)와 튜울립


 작은 씨알 하나하나에, 하잘 것 없어보이는 양파 모양의 뿌리에, 죽은 나무뿌리처럼 보이는 꽃뿌리에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꽃들의 생애가 완전히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저마다’의 꽃이 되어 피어 나려고 온갖 힘을 다합니다. 모란은 오로지 모란이 되기 위해, 민들레는 민들레가, 해바라기는 해바라기가, 고사리는 고사리가 되기 위해 아래로는 뿌리를 내리고 위로는 잎을 내고 자라갑니다.


 가뭄이 와도 홍수가 있어도 꽃들은 최선을 다합니다. 그리고 그 최선에는 ‘생명’ 외에는 아무런 목적도 목표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욕심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기적이라고 하지도 않습니다.그래서 꽃들은 포기라는 것도 모릅니다. 당신 자신이, 당신의 자녀가 어떤 꽃인지 혹시 아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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