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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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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안들고 끝내주는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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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삶을 가로막는 힘은 잡히지 않고 보이지 않는다. 말로 이길 수 있는 게 아니다. <밝은누리> 젊은이들은 혼인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정신과 물질 면에서 부모로부터 독립해 주체로서 새 삶을 사는 계기로 삼는다. 혼수품을 마련하고 살림집 장만하는 것도 가능한 한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 단순 소박하게 한다. 혼인식 때도 한 번 입고 마는 특별한 옷이 아니라 한복이나 평소 즐겨 입는 옷을 입는다. 혼인예식은 먼저 혼인한 이들과 젊은이들이 신랑 신부와 함께 기획하고 준비해 마을잔치로 한다. 혼인식마다 새롭고 창의적인 잔치다.

 그런데 이렇게 멋진 혼인 과정에서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다. 반대하는 ‘어떤 힘’에 부딪힌다. 주로 부모님 반대로 시작되지만, 반대하는 실체가 꼭 부모님이 아니다. 맞서야 할 실체가 뚜렷하지 않다. 가부장 문화에서는 엄마가 먼저 나선다. “나는 괜찮은데, 네 아빠가 이해하시겠냐?” 그럴 때면 큰맘 먹고 아빠를 만난다. 아빠와 어려운 얘기 나눌 생각 하면 심장부터 뛰는 딸들은 먼저 편지로 할 얘기를 전하는 슬기를 발휘한다. 아무리 무섭고 고집불통인 아빠라도 장성한 딸의 편지 받으면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그래도 반대가 꺾이지는 않는다. “나는 충분히 이해하겠는데, 큰아버지나 고모가 이해하시겠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만나서 해결해야 할 대상이 엄청 많아지고 모호해진다. 말이 큰아버지고 고모지, 집안 어른 누구든 등장할 수 있는 거다. 또 한 번 큰맘 먹고 거론된 집안 어른들을 찾아뵙고 말씀드린다. “네 혼인식인데 네가 알아서 하면 되지! 근데 손님들이 좀 이상하게 느끼지 않겠냐? 그냥 사람들이 하는 대로 사는 게 좋을 거다.” 이제 누구를 만나 풀어야 하지! 반대는 여전한데, 맞서야 할 실체가 뚜렷하지 않다. 제풀에 지치게 하는 구조다. 이러다 보면 많은 경우 그냥 지쳐서 포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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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습적인 삶을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려다 보면 이런 실체 없는 싸움에 자주 직면한다. 이럴 때는 말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정성껏 나누되 그냥 뜻한 바대로 살면 된다. 그 삶이 참되고 고운 것이라면 결국 삶을 보고 이해할 것이다. 관습의 힘은 그럴듯한 말로 이길 수 없다. 말은 천 냥 빚을 갚는 힘도 있지만, 우리 삶을 떠도는 말은 많은 경우 실체 없는 허상이다.


 말은 잘 주고받았는데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어릴 때 뚜렷하게 경험했다. 고등학생 때 우리 집을 어렵게 만든 사람을 만났다. 나름 담판 짓는 마음이었다. 다방이라는 곳을 처음 갔다. 엄청 긴장되었다. 준비한 얘기를 설득력 있게 했다. 반응도 기대 이상이라 뭔가 해결되는 듯했다. 근데 얘기를 마치고 나오는데 기분이 묘했다. 얘기는 잘되었는데, 달라질 게 아무것도 없었다. 허깨비와 싸운 느낌이었다. 세상을 지탱하는 다른 화법이 있다는 걸 느꼈다. 그때 깨달음이 이후 ‘말도 안 되는 세상’을 사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냥 뜻한 바대로 살면 된다!


중은 종의 다른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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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은 종이다. 
한국에서 스님으로 살면서 대우와 보시를 기대하게 됩니다. 스님이 신도보다 우월하고 다르다는 개념은 불교가 아닙니다. 부처님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보셨고 위아래를 구별하는 카스트제도를 부인하셨습니다. 스님들이 잘 못하면서 신도들이 못하는 꼴을 보지 못합니다. 잔소리하고 야단 치는 것이 일상이 됐습니다. 


원래 '비구'의 뜻은 거지입니다. 거지가 주인이 되었습니다. 가장 겸손해야 할 사람이 가장 오만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스님의 역할은 신도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해탈하는 것입니다. 승단은 사문(Shramana) 전통이며 소유가 없는 남의 은혜로 사는 출가수행자 법맥입니다. 

현대시대는 위아래 질서를 절대적으로 받들고 아래 사람을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시키는대로 하라는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불교계는 여전히 고지식하고 현대의 상황에 가장 느리게 적용을 하는 같습니다.
기대와 아집을 내려놓고 가장 낮은 자리에서 남을 존중하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온화하고 너그러운 사람이 바로 스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님의 고통은 남을 다스리려고 해서 있는 것이고 
스님의 행복은 자신을 다스리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은 마음을 다스리고 대중을 시중드는 종이라고 생각합니다.
~못난 중, 자신에게 하는 소리

지도자란 희망 파는 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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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자란 희망을 파는 상인이다

실수가 영원한 실수가 되지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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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실수를 하며 살아간다. 

다만 실수가 습관이 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실수를 통해 성숙해지는 사람이 있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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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일 저녁에는 공동체 가족회의가 있습니다. 보통 가족회의 때에는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들을 돌아보고 앞으로 있을 일들을 계획하고 서로 격려, 축복, 충고하는 시간입니다. 얼마 전 주일 저녁에 식사를 마치고 야외에서 가족 모임을 가졌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나뭇가지를 주워 모닥불을 피웠습니다. 밤공기는 약간 싸늘했지만 모닥불과 잘 어울리는 밤이었습니다. 밭에서 캔 감자와 고구마를 나중에 먹기 위해 모닥불 속에 넣어 두었습니다. 밤하늘에는 별들이 초롱초롱 빛나고 반달이 환하게 빛을 비추면서 엷은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와 찬양을 드렸습니다. “God is so good, God is so good. He is so good to me.”그때 저는 식구들에게 평상시 하던 대로 회의를 하지 않고 인생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을까?”"어떻게 밤하늘에 달과 별들이 존재할까?”“우리의 생김새는 왜 이럴까?” “인간과 우주 만물이 창조되기 전에 하나님은 어떻게 존재하셨을까?” 위의 질문들은 신학적이거나 혹은 철학적인 질문이 아닙니다. 무엇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존재의 신비함 때문에 생긴 질문들이었습니다. “정말 신비하다고 생각하지 않니?”라는 말에, “정말 신비해요.” 딸 샤론이가 대답했습니다. 


나의 존재뿐만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질문과 묵상을 하면 호흡이 멈추는 듯한 신비감을 맛봅니다. 존재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신비합니까! 흘러가는 맑은 물을 두 손으로 모아 쥐고 한 동안 바라봅니다. 그 후에 물을 마시면서 나와 물의 존재의 신비감에 빠져듭니다. 때때로 육체의 욕망에 흠뻑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도 있고, 분노의 감정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섭리 앞에서는 신비하기만 합니다.  


마침 그때 반딧불이 5~6마리가 주변을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샤론이가 어둔 밤을 무서워하지 않고 “너무 예뻐, 너무 예뻐”를 연발하면서 반딧불이를 잡겠다고 뛰어다닙니다. 샤론이와 함께 반딧불이를 쫓다가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조심스럽게 손위에 올려놓고 꽁무니에 야광의 영롱한 채를 발하는 작은 피조물의 존재의 신비함에 흠뻑 젖어들었습니다. 한국에서  반딧불이를 볼 수 있는 곳이 얼마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반딧불이가 더욱 소중했습니다. 


근본적인 질문들을 하면 그나마 내 영혼이 정결하게 되고 수많은 무거운 삶의 짐들이 어깨에서 벗어지는 듯합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많이 하면 할수록 저의 영혼은 많은 위로를 얻게 됩니다. “정직한 질문이 정직한 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 프란시스 쉐퍼의 말처럼 정직한 질문을 하나님 앞에 있는 나에게 할 때, 그 정직한 해답을 얻게 됨으로 인한 기쁨을 경험합니다. 저는 오늘도 근본적이 질문 앞에 서 있기를 원합니다. 근본적인 질문은 나의 영혼을 정화시켜 줍니다. 근본적인 질문은 나를 겸손하게 합니다. 근본적인 질문은 나의 존재를 귀하게 여길 뿐만 아니라 다른 존재도 귀하게 봅니다. 

바위 소리 들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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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위 소리 들으려면


             조오현


 무심한 한 덩이 바위도

 바위 소리 들으려면


 들어도 들어올려도

 끝내 들리지 않아야


 그 물론 검버섯 같은 것이

 거뭇거뭇 피어나야

섬에서 스트레스 가득한 서울을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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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섬-박종식-.jpg» 여의도한강공원에 앉아 밤섬쪽을 바라보는 사람들. 사진 박종식 기자


섬에서 육지를 보고 육지에서 섬을 보다

 

20대 예닐곱 명과 어울려 문화답사 삼아 주말에 선유도 공원을 찾았다. 겨울 끝자락의 강바람은 차가웠지만 그래도 봄기운을 살짝 머금은 따뜻함이 사이사이에 느껴진다. 양화대교 다리 위에 버스 정류장이 있다. 대뜸 섬 맞아요?”라는 질문아닌 질문이 튀어나온다. 공원 앞뒤로 강물이 흐르는 것을 보니 섬은 섬인 것 같다고 대답아닌 대답을 했다. 그런데 대교는 섬을 위한 것이 아니다. 강의 남북을 마주하고 있는 육지와 육지를 이어주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섬은 단지 교각을 세우기 쉽다는 공학적 경제적 이유로 스쳐 지나갈 뿐이다. 섬은 시각적으로 연결된 땅이지만 물리적으로 고립된 땅인 탓이다. 기여만 하고 혜택이 없던 섬에 공원이 조성되면서 끼워넣기 삼아 만들어진 진입로인지라 뭔지 모르게 구조가 불편하고 어색하다. 하지만 다리 밑의 강물은 교각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그저 무심하게 흘러왔을 것이다.

 

본래 섬이 아니였다고 한다. ()처럼 한강으로 돌출되어 신선이 노닐만큼 경치가 좋았던 선유봉은 시인묵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고 권력자의 정자가 세워졌으며 화가의 작품배경이 되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6.25 전후에 군사적으로 필요한 시설을 보강하면서 암석과 모래를 여기서 채취했다. 인정사정없이 파다보니 어느 새 인위적인 섬으로 바뀐 것이다. 용도가 다해 버려진 섬은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다시 필요에 의해 시멘트 구조물이 더해졌다. 도시민에게 수돗물을 공급하는 양수장으로 변신한 것이다. 한강이라는 물 위에 떠 있는 섬이지만 그 섬이 다시 물을 담게 되는 또다른 순환적 모습으로 바뀌었다. 인근의 밤섬 역시 여의도 개발을 위한 골재조달을 위해 없어지다시피 했다. 하지만 다시 그 자리에 자연스럽게 강물을 따라 온 모래와 흙이 퇴적되면서 수십년만에 본래보다 더 큰섬으로 회복되었다. 지금도 계속 넓어지고 있다고 한다. 섬도 자생력을 지닌 말없는 생명체인 것이다.


선유도 공원을 만든 조경가 정 영선 선생과 건축가 조성룡 선생은 모두 면식있는 어른이다. 스쳐가듯 맺어진 인연이지만 그것도 인연인지라 선유도 공원은 또다른 느낌으로 닿아온다. 왜냐하면 작품이란 그 사람의 또다른 모습인 까닭이다. 가장 어려운 화장은 안한듯한 화장이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가장 어려운 조경은 손대지 않은듯한 자연스런 조경이라고 한다. 정 선생은 그런 조경을 추구했다. 조 선생은 우리들의 몸이 세월을 느끼고 그 세월의 흔적을 새기는 것 처럼 그 땅이 지닌 과거의 기억을 존중코자 하는 철학의 소유자다. 어떤 장소이건 세월을 느끼고 세월을 살아가고 세월의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과거를 음미하면서 미래를 느낄 수 있는, 그런 현재의 모습을 추구한 당신의 건축관을 적극 반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는 말을 사석에서 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세우는 것만 건축이 아니라 부수는 것도 건축이라고 했다. 그래서 철거회사도 ‘00건축이란 상호를 사용하는 모양이다. 용도폐기된 양수장 건물에서 남길 것은 남기고 버릴 것은 버리고 보탤 것은 보탠 것이 현재의 선유도공원이다.


선유도3-이종근-.jpg» 밤섬과 선유도공원. 사진 이종근 기자

 

선유도4-김정효-.jpg» 선유도공원. 사진 김정효 기자


취수펌프장을 재활용하여 만든 카페의 창가에 앉았다. 삐죽한 낡은 기둥이 강바닥까지 맞닿아있다.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기념비 삼아 남겨 둔 몇 개의 시멘트 교각을 생각나게 한다. 눈을 돌리니 한강너머 높다란 빌딩들이 그리는 스카이라인 뒷편 북한산이 미세먼지 속에서 흐릿하게 보인다. 섬에서 섬을 보기도 하지만 섬은 육지를 보기 위한 장소도 된다. 젊은이들에게는 강건너 있는 대학캠퍼스에서 순위를 다투는 공부전쟁과 치열한 취업경쟁에서 한 발자국 비켜서서 잠시나마 마음을 추스르고 스스로의 긴장감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바다에도 섬이 있지만 강에도 섬이 있다. 바다의 섬은 나름의 독자성이 강하지만 강 속의 섬은 늘 육지와 함께 한다. 예전에 정치적인 이유로 유배를 당할 때 바다의 섬보다 육지의 섬이 더 선호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바다 섬보다는 육지 섬이 돌아올 확률이 훨씬 높고 유배기간이 짧았기 때문이다. 물론 죄의 경중에 따른 결과이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었다. 탱자나무 숲으로 두른 땅을 섬 삼아 가두어두는 위리안치(圍籬安置)는 육지 속의 심리적 섬이라 하겠다. 오늘날 스스로 이라고 하는 섬에 자기를 가두는 방콕족도 늘고 있다. 그 정도가 지나친 히끼코모리라는 말 조차 이제 낯설지 않는 단어가 되었다. 스스로의 유배를 통한 스스로의 구원방식인 셈이다.


당나라 때 마조(馬祖709~788)선사는 동그라미를 땅 바닥에 그려놓고 들어가도 때리고 들어가지 않아도 때리겠다(入也打不入也打)”고 했다. 이래도 맞아야 하고 저래도 맞아야 한다. 섬에 들어가도 맞아야 하고 섬을 나와도 맞아야 한다. 도피를 위해 섬으로 갔다면 자기에게 스트레스를 받고 섬에서 나와 삶의 현장에 서면 다른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갖가지 스트레스로 얻어맞을 일 밖에 없는 것이 사바세계인 것이다.

 

사람은 길을 만들고 길은 사람을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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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versity-of-notre-dame-1888208_960_720.jpg» 캠퍼스. 사진 픽사베이. 아이젠하워는 미국 대통령으로 2차 세계 대전의 영웅이었다. 
1948년에 퇴역한 그는 콜롬비아 대학교의 학장을 지냈다. 
당시 학생들이 건물에서 건물로 옮겨 다닐 때 
잔디밭을 밟고 다녔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만들어놓은 길이 아닌 
편리한 곳으로 다닌 것이다. 
아무리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팻말을 붙여 놓아도 
소용이 없었다. 
학교의 직원이 학장인 아이젠하워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였다. 
그 때 아이젠하워는 아주 간단한 해결방안을 내 놓았다. 
학생들이 다녀 누렇게 잔디가 죽고 자연적으로 길이 난 잔디밭에 
길을 내고 학생들이 다니지 않는 길에는 꽃을 심게 하였다. 
자연스런 길을 길로 내준 것이다. 
그랬더니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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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거성(水到渠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이 흐르면 자연히 도랑이 생긴다는 뜻으로 조건이 갖춰지면 일은 자연히 성사된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이 억지로 길을 만들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 길로 다니기만을 강요할 때 그 길에 저항할 것이냐 복종할 것이냐 하는  선택의 문제가 나오는 법입니다. 지는 꽃은 또 피지만 꺽인 꽃은 다시는 피지 못합니다. 모든 일이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세상을 보고 싶은 대로 보는 사람은 세상이 보이는 대로 보는 사람을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진리 안에는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 서로 다를 뿐입니다. 사람은 길을 만들고 길은 사람을 인도합니다. 그러나 그 길이 잘못된 길이면 길을 고쳐야 합니다.

'나도 그랬다'는 고백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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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시레기국은 맛이 참 좋구나”

 전통 산사에서는 삼삼오오 식탁에서 하지 않고 각자 4개의 식기(발우)를 펼치고 큰방에서 대중이 둘러 앉아 공양을 한다. 일종의 사찰 뷔페식이다. 그런데 많은 대중들이 수행하는 어느 큰 절의 아침 공양 시간에 황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날은 시레기 된장국이 나왔는데, 이를 어이하랴! 국에 멸치가 둥둥 떠있는 게 아닌가? 순간 당황한 스님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어쩔줄을 몰라했다. 이어 대중의 시선은 절의 제일 어른인 조실스님에게로 쏠렸다. 그런데 큰 스님은 아무런 표정없이 국을 드셨다. 이어 한말씀, “오늘 시레기국은 유난히 맛이 있구나”. 큰스님이 저리 말씀하시고 맛있게 드시니 대중스님들은 마지못해 멸치가 들어간 국을 먹으며 공양을 마쳤다. 공양이 끝나고 조실 스님은 공양간에 들러 오늘 누가 국을 끓였느냐고 물었다. 당사자는 얼마 전에 갓 입산한 행자였다. “절집에서는 육식이 금기인줄은 불자가 아니어도 모두가 아는 터인데 너는 어이하여 국에 멸치를 넣었느냐” 조실 스님의 물음에 잔뜩 주눅이 든 행자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대중 스님들에게 맛있는 국을 공양하고 싶은데 이리저리 해봐도 맛이 나지를 않아서 멸치를 양념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허허! 그런 뜻이 있었구나. 오늘 국은 참 맛이 있었다. 그렇지만 다음부터는 멸치를 넣지 말거라” 인자한 미소와 함께 조실 스님은 행자를 위로했다. 이 사연은 절집에서 ‘화합’을 강조하면서 거론하고 있다. 행위의 결과를 지나치게 따지기보다 의도와 동기를 먼저 파악하고 사태를 수습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너그러운 이해와 따뜻한 격려가 화합의 바탕이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

 

 실수에 대한 질책에 앞서 의도와 동기를 살피는 지혜 

 부처님 당시 수행승단은 늘 청정과 화합을 강조했다. 깨달음과 자비의 실천이라는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출가했지만, 각자의 기질과 습관,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갈등이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때로는 부처님의 설법에 대해 이해하는 견해가 달라 극심한 언쟁과 반목으로 편이 나뉘기도 했다. 사상과 견해가 갈리면 중재자의 요청에 따라 대화의 자리가 마련된다. 그리고 침착하고 진지하게 서로의 주장을 듣고 질문하고 답변하며 토론 한다. 대부분 의견의 일치를 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일지라도 그동안의 언행을 서로가 참회하고 감정적 앙금을 해소한다. 차이를 인정하면서 대화와 토론을 통해 접점을 추구하는 일이 화합의 요소임을 알았던 것이다.

 

 석가모니, “나의 허물을 지적해주십시오”  

 화합을 위하여 승단은 무엇보다도 ‘자기성찰’을 생활화하고 제도화하였다. 부처님 재세시부터 지금까지 승단은 포살과 자자라는 의식을 정기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포살은 승단이 규정하고 있는 금지사항들을 법사가 조목조목 낭송하면, 해당하는 금지를 범한 사람은 스스로 대중 앞에 고백하는 의식이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나도 당했다”(me too)가 아니라 “내가 그랬다”(I did)는 자발적인 고백인 셈이다. 자자는 삼개월 안거수행을 마치는 전날에 대중이 모여 서로 상대방의 허물을 지적해주는 의식이다. “대중들이여, 벗들의 도움으로 한철을 공부했습니다. 혹여 공부하는 동안 제가 저지른 잘못이 있다면 ‘자비로운 마음’으로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성찰과 참회를 일상화하고 있는 수행자일지라도 공개의 광장에서 허물을 지적 받는다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런데 이런 광장에서 석가모니부터 제일 먼저 대중 앞에서 자신의 허물을 지적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런 기록들을 볼 때마다 나는 가슴이 떨리고 부끄럽다. 

 

 오늘날 여기저기서 상생과 동반성장을 말하고 공동체의 붕괴를 염려하고 있다. 바른 가치의 정립, 자기성찰, 역지사지, 솔선수범, 고통분담, 감사와 격려, 친절과 우정... 이런 덕목들은 익숙하여 자칫 진부한 말일수도 있겠지만 함께 살아가는 세상, 공동체 실현의 바탕이다. 또한 ‘내부자들’의 화기애애한 공동체를 위하여. 

 

  * 이 글은 참여연대가 발행하는 월간 <참여사회> 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공동체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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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에서 목청을 돋우어 논쟁을 벌이다 사람을 죽이는 경우

이웃집끼리 주차문제로 싸우다 폭행을 하는 경우

이런 사건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혀를 찹니다

사람이 어째 저럴수 잇을까하고

나이들어서 웬 망령들이냐고

그런데 그런 사고를 치는사람들이 상습전과자가 아닌

그냥 평범한 우리 이웃들인것을 아시는지요

평범하다고 하는 우리의 생각은

인간이 열악한 환경에서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알면 그 생각이 바뀝니다


2마을-.jpg


담배한개피에 밥한덩이에 사람은 자기 목숨을 겁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능인것입니다

이런 공격적인 본능을 절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웃간의 깊은 정을 나누어야 합니다

6 25 때 북한에서 탈출한 미국선박에 가득탄 주민들


그런데 내려오는 내내 그 불편함 가운데에서도 싸움한번 일어나지 않앗다고 합니다

서로에 대한 배려심이 없엇으면 불가능햇을 ---

우리는 그런사람들을 진정한 양반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기의 욕구를 진정하고 배려를 한것인가?

그것은 아마도 오랜동안 마을사람들끼리 쌓아온 정 의리 예의 이런것들이

인간의 본연의 욕구를 절제하게 하지않앗나 싶습니다


그런의미에서 신앙공동체는 아주 중요합니다

사회적 범죄는 처벌만으로는 안됩니다

공동체가 형성되어야 범죄를 줄일수가 잇고

사소한것에 목숨거는 인간본능을 절제할수 잇습니다


아는사람에게는 관대하고

모르는사람에게는 냉정한 사람의 심리는

공동체를 통하여 바꿀수 잇습니다

동물의 왕국을 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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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1-.jpg  세살배기 외손자 녀석이 욕실에서 수도꼭지 틀어놓고 물장난에 신이 났습니다. “하부지 이리 들어와 보세요. 재미나요.”물에 젖은 타일 위로 미끄럼까지 타며 까불어대더니 결국은 꽈당, 바닥에 얼굴을 박고 넘어졌습니다. 왕하고 울음을 터뜨리면서 녀석이 하는 말이 이랬습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엉엉

아마 평소 까불대다가 사고칠 때마다 제 어미에게서 들었던 말을 그대로 따라 한 듯합니다. ‘그리하다가는 그리될 줄 아는 놈이 왜 그랬는고, 쯧쯧

, 하지만 저 어린 녀석만 그런 게 아니고 할아비인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우리 모두가 그렇습니다. 이리하다가는 이리될 줄 알면서도 이리합니다.

검사, 시인, 배우, 선생, 신부, 인권단체 활동가, 목사, 정치인...한 달 남짓 계속된 미투운동이 온 나라를 흔들고 있습니다. 한 명, 한 명 구체적으로 개인 이름이 불려 나오고 있지만 사실 남성 일반이 가해자라 해도 무방할 겁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가해자로 지탄받던 배우가 제 손으로 삶을 마감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사람을 포함해서 모든 생명들의 삶을 간단히 요약하면, 먹고 번식하는 일, 이 두 가지입니다. 이걸 위해 평생 수고하고 고통을 견뎌냅니다. 다른 개체를 죽이고 착취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동물의 왕국을 보노라면 종교나 윤리, 도덕에 회의가 일어납니다. 사자는 새끼 누우의 목덜미를 물고 숨이 끊어질 때까지 놓아주질 않습니다. 원숭이 우두머리는 다른 수컷들이 자신의 암컷들 주위에 얼씬도 못하게 합니다.

먼 옛날 유대 땅 예언자 이사야도 이런 현실이 아주 괴로웠나 봅니다.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리라.”메시아 평화의 왕국을 이렇게 기다렸습니다.

사자며 새끼 양, 어린 아이로 대변되는 개체들이 살아가는 이 현실에서 이런 일은 불가능하니 하나의 시적 비유일 터. 이 비유에서 평화의 왕국이란 본능이 지배하는 이 팍팍한 현실 속에서도 가능하면 다른 사람, 다른 개체들을 저 자신처럼 생각하고 배려하는 삶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요즘 한창인 미투운동의 대의도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혹은 동성끼리도 서로 상대방을 수단으로 여기지 말고 목적으로 여기자는 데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 운동의 방식도 그 본 뜻에 걸맞는 모습으로 진행되었으면 싶습니다. 가해자로 지목된 남자배우에게 쏟아진 여론의 비난과 심판 그리고 미움은 결국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공자님 말씀은 역시 실천하기 어려운 공염불이지 싶기도 합니다. 피해자와 사회 그 누구로 부터도 용서받지 못하고 죽어간 그의 마지막 순간. 아마 지옥도 그런 지옥이 없었을 겁니다. 최소한 용서라도 받고 죽었어야 할 것을...이토록 비참한 그의 영혼은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png


 성서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모세는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예수님은 성난 군중들에게 아무런 대꾸도 않으시고 그저 묵묵히 땅바닥에 손가락으로 무언가 글씨를 쓰십니다. 무얼 쓰셨을까요.

그리고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말씀하시고 또 무언가 쓰시기만 하니 나이 많은 자들부터자리를 떴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이번 미투 운동을 통해 여성을 남성의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만 여겨온 그간의 우리 문화는 점차 바뀌어 갈 것입니다. 부디 이 운동이 가해자를 그저 비난과 미움으로 사회에서 매장시키는데 머물러서는 안되고, 가해자가 죄를 고백하여 용서받고,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타인을 자신의 수단으로 삼지 않는, 저 이사야서의 평화의 왕국을 향해 한걸음 더 나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미워하지 않고 비판하는 일은 참 어렵기도 합니다.


이글은 <공동선> 발행인 김형태 변호사가 3,4월호 권두언으로 쓴 것입니다

아직도 봄을 맞지 못한 해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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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jpg» 1898년 참수 당하기 직전 해월 최시형의 모습


2검곡-.JPG» 경북 포항 신광면 마북리 금등골 해월 최시형이 화전을 가꾸어 살던 옛터에 오른 천도교인들


‘이 땅에서 우리 겨레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고, 온 세계 인류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정확하게 알려준 분이다. 우리 겨례로서는 가장 자주적으로 사는 길이 무엇이며, 또 그 자주적인 것은 일체와 평등한 관계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가장 거룩한 모범이 바로 해월 선생이다.’

 원주의 장일순(1928~1994)이 생전에 한 해월 최시형(1827~1898) 평이다. 원주지역 시민운동과 반독재투쟁의 멘토였던 장일순은 생활협동조합 ‘한살림’을 창립해 민주화운동을 문명전환의 생명운동으로 승화시킨 인물이다. 그는 천주교인이면서도 평생 해월을 흠모했다. 해월은 동학의 창도자 수운 최제우로부터 도통을 넘겨받은 천도교 2대 교조이면서 동학혁명의 최고 지도자였고, 생명운동의 뿌리였다. ‘사람을 하늘처럼 섬겨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의 실천을 통해 현재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사람 중심의 세상’을 만들자면서 근세의 첫새벽을 깨운 이가 바로 해월이었다.


 해월의 191번째 탄생일(21일)을 앞두고  지난 14~15일 그의 처절하고 치열한 발자취를 찾아나섰다. 먼저 해월이 태어난 경주시 황오동 229번지 ‘천도교 경주교구’. 이 교당은 해월의 제자이자 천도교 3대 교조인 의암 손병희가 1910년 해월의 탄생지 1천여평을 매입한 터의 일부다. 해월은 외가인 이곳에서 태어났다. 해월의 삶은 그야말로 고난으로 일관했다. 5살 때 어머니를, 12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천애 고아가 되어 천대 속에서 머슴살이를 하며 어린시절을 보냈다. 


1한옥-.JPG» 경주문화원 김윤근 원장과 천도교경주교당 지킴이 이화자 할머니가 3.1운동 특별기도터인 폐가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소박하기 그지없는 경주교당의 모습이 부서지고 찢긴 해월과 천도교의 풍상을 말해주는 듯하다. 천도교의 전신 동학은 봉건 계급사회와 외세에 정면으로 맞섰기에 왕조와 외세로부터 동시에 핍박을 받았고, 일제식민지 때인 3·1운동을 주도해 극심한 탄압을 받으면서 교세가 약화됐다. 일제의 탄압 때문에 각 교당의 소유권도 압수를 피해 개인등기화해 많은 땅과 건물이 사라져버렸다. 이 곳도 세필지 중 두필지가 일제 때 팔려버려 정작 해월의 탄생터는 교당 뒤뜰 담 너머 경주시공용주차장 부지에 있다. 


경주교당서-.JPG교당입구-.JPG교당할매-.JPG


 교당 옆엔 폐가가 된 한옥이 방치돼 있다. 애초 동학수련원으로 세워진 이 한옥도 외지인들 소유로 넘어간지 오래다. 이곳은 3·1운동을 준비한 기념비적인 장소다. 3.1운동 당시 민족지도자였던 의암은 거사를 앞두고 전국에 9개의 특별기도소를 설치해 1919년 1월8일부터 2월25일까지 49일간 특별기도를 하도록 했는데 이곳이 영남지역기도소였다. 이 사실은 경주교당 지킴이 이화자(89)씨가 살림을 정리하던중 1910년부터 작성된 ‘경주교구연혁’ 책자를 발견함으로써 증명됐다. 골목길을 되돌아 들어간 한옥은 마당에 풀이 무성하고, 기존에 살던 이들이 버리고간 살림들이 부식돼 쓰러지기 직전이다.


 경주문화원 김윤근 원장은 “민주정신의 태두인 해월의 탄생지이자 3·1운동의 발상지가 이렇게 폐허로 방치되어간다는 것은 기 막힌 일”이라면서 “정부와 경주시가 이 한옥을 매입해 동학과 3·1운동을 알리는 전시관으로 활용하고 공용주차장 부지 등을 공원화해서 해월의 사람존중·생명존중의 정신을 일깨우는 공간으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수운-.JPG주는 동학의 명실상부한 본가다.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엔 수운 최제우의 탄생지와 그가 득도한 용담정이 있다. 김종운 수도원장 부부가 지키고 있는 용담수도원에서 하룻밤을 지내보니, 늦은방과 새벽에도 ‘내 몸에 하늘(한울)을 모셨다’는 ‘시천주(侍天主) 주문’ 소리가 끊이지않는다.


수운생가-.JPG용담정-.JPG용담정심고-.JPG주문-.JPG


 인근 방정환한울어린이집은 동학정신의 실현지다. 의암의 사위인 소파 방정환(1899~1931)의 이름을 따 천도교한울연대가 만든 곳이다. 동학의 인간존중 사상과 자신의 숲생태 철학을 결합해 숲유치원운동을 펼치고 있는 임재택 부산대 명예교수의 도움을 받아 설립된 곳답게 32명의 아이들이 생명력이 넘쳐보인다. 이 아이들은 이곳보다 생태텃밭과 도랑, 숲이 있는 인근 야외어린이집에서 지낼 때가 많다. 정미라 대표(61)는 “보통의 어린이집은 어린이들 안전 위주로 무엇이든 ‘하지말라’고 주의를 주지만 이곳에선 텃밭에서도 숲에서도 아이가 무엇이든 해보며 자연의 생명력을 발현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돕고 있다”고 말했다.


어린이절-.JPG텃밭2-.JPG1.jpg2.jpg4.jpg5.jpg6.jpg7.jpg




검곡-.JPG검곡2-.JPG검곡길1-.JPG



 검곡3--.JPG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포항시 신광면 마북리 검악산이다. 해월이 33세 때부터 살던 깊은 산골이다. 해월이 수운의 가르침을 받아 수도를 한 곳도 이곳이다. 해월은 37세때 수운으로부터 도통을 전수받고 1년뒤 수운이 대구감형에서 참수를 당하자 동학을 이끌며 민초들을 깨운 해월은 1998년 참수 당할때까지 보따리 하나 끼고 36년간 관군에 쫓겨다녀 ‘최보따리’로 불렸다.

 박남문 전천도교청년회장(52)의 안내로 오르는 산길은 처음부터 난관이다. 포항시가 해월 유적지로 지정하고 곳곳에 푯말까지 세웠지만, 마북리 주민들이 상수도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자체적으로 저수지 옆길에 철조망을 쳐놓고 문엔 열쇠를 채워 등산로를 폐쇄해 순례마저 막아버렸다. 철조망을 간신히 넘었다. 아직 풀이 자라기전인데도 계곡을 덮은 마른풀로 길과 계곡이 구분이 안돼 신발이 흠뻑 젖은 가운데 10여리 산길을 올랐다. 1시간30분쯤 오르자 포항시에 설치한 푯말이 서있다. 그런데 글이 적힌 간판마저 떨어져있다.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지금까지도 ‘해월’에겐 아직도 봄이 오지않은 것만 같아 하산길이 더욱 쓸쓸하다.

 검등골을 내려와 신광온천 앞에 오니 해월어록비가 서있다. 그토록 평생 쫓기고 칼끝에 죽어가면서도 화평의 기운을 끝내 잊지말도록 독려한 그의 온화한 음성이 담긴 기록이다.

 “사람을 대할 때 항상 꽃이 피는 듯이 얼굴을 가지면 가히 사람을 융화하고 덕을 이루는 데 들어가리라. 누가 나에게 어른이 아니며 누가 나에게 스승이 아니리오. 나는 비록 부인과 어린아이의 말이라도 배울만한 것은 배우고 스승으로 모실만한 것은 스승으로 모시노라.”


남자에게도 눈물을 허락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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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jpg


어르신들은 ‘남자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세 번만 울어야 한다’고 말하곤했다. 그런데 이 세 번만 울어야 하는 기회에 아내나 자식을 먼저 떠나보냈을 때 울어도 된다는 것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지난 달 시작한 사별가족 모임 ‘샘터 27기’엔 아내를 떠나 보내신 세 남자가 있다. 남자라고 펑펑 울고 싶지 않겠는가마는 가족이나 친척, 사회에서는 이런 것을 별로 이해하지 못한다. 이 분들은 그저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분들과 이야기를 실컷 나누거나 눈물을 원 없이 쏟아내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는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무심코 아들의 방을 두드리면서 ‘아들, 빨리 일어나서 학교가야지’ 그러다가 그 방문앞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아들은 죽었지, 이 세상에 없지’라는 현실이 훅 다가온 것이다. 출근을 하려다가 이 모습을 본 남편이 호통을 쳤다. ‘남편 출근하는데 재수없게 여자가 아침부터 대성통곡한다’는 것이었다. 그 어머니는 바로 내게 뛰어오셨다. ‘이렇게도 모진 남편하고 살수가 없다, 자식 보내놓고도 어찌 저렇게 멀쩡하냐, 나 혼자 낳아 키운 자식이냐’라고 펑펑 우셨다. 나는 그 어머니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씀 드렸다. ‘남편도 울고 싶으실 거예요. 그런데 울 기회, 울 장소가 없어서 못 우시는 거예요. 오늘 저녁 퇴근하시면 두 분이서 아들 얘기하면서 같이 우세요’


 어느 날 경남 통영에서 어떤 아저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시면서 그냥 ‘아들 죽은 사람 한명만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마음을 알기에 ‘샘터’를 먼저 경험했던 인천에 사는, 아들 떠나보낸 분에게 전화를 걸어 동반해 줄 수 있냐고 했더니 흔쾌히 허락했다. ‘아들 떠나보낸 아버지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니 내가 만나주겠다’는 것이다. 그 통영의 아저씨는 서울까지 올라와 인천에서 오신 분과 하염없이 울고는 했다. 서너번 그렇게 하더니 ‘이제 됐어요, 감사합니다’하고는 내려 갔다.


   아내 떠나보낸 사람이 있으면 전화통화라도 한번 하게 해달라고 목포에서부터 연락온 분이나 일주일에 한번씩 광주에서 올라와서는 ‘실컷 울려고 일주일 기다렸어요’하는 분이나 모두 평생 세 번만 울기를 허락받은 남자들이었다. 우리 모두 남자들에게 평생 열 번, 백번 울어도 괜찮다고, 특히 사랑하는 가족을 죽음으로 이별을 했을 때에는 시도 때도 없이, 그리고 언제까지라도 울어도 괜찮다고 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냥 ‘그래도 된다, 그럴수 있다, 괜찮다’라는 말만 해 주어도 그들은 위로를 받고 용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자기말을 할줄 아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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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암-.jpg» 전남 해남 일지암에서 방문객들과 차담 중인 법인 스님


포근한 미소와 한 잔의 향기로운 차는 산중 암자를 찾아오는 벗들에게 최고의 선물이다. 자신을 성찰하고 남다른 사유의 시선을 탐구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대화는 늘 즐겁다. 차를 마시면서 부처님 말씀과 책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 책은 재미와 의미가 있는 차담을 만들어 준다. 그리고 차담이 끝나면 무엇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에 차나 책을 선물하기도 한다. 집으로 돌아간 이들은 독특한 방식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다. 


어느날 한폭의 수채화같은 얼굴을 가진 벗이 소식을 전해왔다. “그저 옆에 있어도 좋은 벗들이 찾아 와서 햇볕 바른 마루에서 스님이 주신 차를 마셨습니다. 향긋한 차향을 머금으며 서로가 흐뭇한 미소를 짓습니다. 이심전심의 경지가 멀리에 있지 않음을 알겠습니다” 스마트폰 화면에 차향과 미소가 어리는 듯 했다. 얼마 전에는 감동적인 선물 사례를 받았다. 법조계에 몸 담고 있는 분이 찾아와 차담을 나누었다. 평소 책을 가까이 하고 있다는 그는 유발 하라리의 <호모 사피엔스>에 대해 나의 의견을 물었다. 나도 그 책을 읽은지라 많은 공감을 확인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책을 좋아하는 그의 진심이 느껴져서 두 해 전에 출간한 나의 책을 선물했다. 다음 날 그 분의 전화를 받았다. 집으로 돌아와 책장을 펼쳤는데 마음이 열리고 공감되는 내용이 많아서 하루에 한두 편씩 ‘아껴가며’ 읽겠다는 것이다. 아껴가며 읽겠다,는 그의 말에 가슴이 찌릿했다. 부족하나마 글을 쓰는 입장에서 이만한 찬사가 없겠다 싶었다. 분에 넘치는 사랑이 아닐 수 없다. 


 차와 책을 받은 두 사람에게 주목하는 이유는 성의 있는 답신의 행간에서 그들이 ‘자기 말을 한다’는 믿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말은 곧 존재의 집이라고 한다. 존재의 집은 그만의 독특한 사유의 시선으로 포착한 세계이다. 그러한 세계에 사는 사람은 많은 사람들이 흔히 발설하는 단어와 문장을 사용하지 않는다. 자신의 체험과 느낌으로 말한다. 그러한 말이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 선사들은 선문답을 통하여 사구(死句와)와 활구(活句)를 가려낸다. 즉 다른 사람들의 좋은 말을 사유와 체험의 과정 없이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 자기의 말인양 착각하는 속내를 여지없이 깨뜨린다. 한 제가가 스승에게 “해탈이 무엇이냐”고 묻자 스승은 “누가 너를 묶어 놓았더냐”고 되물었다. 또 제자가 “무엇이 부처의 마음이냐”고 묻자 스승은 “누가 너를 더럽혔더냐”고 되물었다.


 나는 어느 농부의 말을 지금도 큰 울림으로 간직하고 있다. 온갖 자연환경과 동네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농사 짓는 결실의 과정에서 그는 나름의 깨달음을 이렇게 말했다. “나만 살고자 하면 나도 살수 없다”. 농부의 이 한마디에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다’는 경전의 가르침이 사람 사는 세상으로 나왔다. 자기 말을 하는 사람들의 한마디는 어디서나 생생한 법문이다. 


그림자와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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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가 두렵고 제 발자국이 싫어 도망치는자가 있었다

아무리 달려도 그림자와 발자국은 떨어지지않았다

그게 싫어서 더욱 달렸다.

그래서 결국 힘이 빠져 죽고말았다.

 

     -노자


꽃이 빛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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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은 그때 그곳에서 모든 것을 내맡긴다.


                      -작자 미상


 꽃은 묵묵히 피고 묵묵히 진다

 다시 가지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때 그곳에서 모든 것을 내맡긴다

 그것은 한 송이 꽃의 소리요

 한 가지 꽃의 모습

 영원히 시들지 않는 생명의 기쁨이

 후회 없이 거기서 빛나고 있다

우리가 깊이 사랑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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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깊이 사랑하는 모든 것들은 언젠가 마침내 우리 자신의 한 부분이 된다.


                                   -헨렌 켈러

진정한 리더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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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을 다스리려면 자신을 그들 아래에 두어야 한다.

 사람을 인도하려면 그들을 따르는 법을 알아야 한다.


                                -노자

눈뜨고싶지않은 취업준비생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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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어지럼증, 잉여라서가 아닙니다

반복되는 취업 탈락 27살 여성 “잉여처럼 느껴져 앞날이 두려워요”


사진12--.JPG»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Q) 저는 27살 여자이고, 취준생입니다. 말이 취준생이지 사실 백수입니다. 대학 다닐 때 취업 걱정을 별로 하지 않았는데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갈지 막연해서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나 봅니다.

졸업 뒤 1년 동안 공무원 시험공부를 했지만 낙방했습니다. 생각해보면 공부할 때가 제일 행복했습니다. 날마다 성취감을 느낄 수 있고, 합격에 대한 희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젠 학자금 대출도 갚아야 하고, 자립해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공부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취업을 생각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저는 사회과학 계열을 전공했는데, 어떤 기업도 사회 계열은 찾지 않더군요. 그럼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세무사 사무실에서 일해야겠다 싶어, 전산회계와 전산 세무를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어렵고, 또 연봉도 낮고, 야근도 많이 하고, 배우는 것도 별로 없는 등등 너무 안 좋은 정보가 많아 망설여졌습니다.


그러다가 웹디자인을 배워볼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국비 지원하는 학원을 택하면, 학원에서는 정부보조금만 챙기고 대충 가르친다 등등 또 안 좋은 글들을 보고 말았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경리, 사무보조뿐인 것 같아서 이력서를 내봤지만 모두 서류 탈락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집에서 가까운 리조트에 ‘프런트’(계산대) 업무 공고가 떠서 지원했습니다. 면접을 보러 처음 갔습니다. 그런데 제가 정장을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복장이 그게 뭐냐며 기본이 안 되어 있다고 차가운 말투로 말했습니다. “보아하니 나이는 있고, 취직해야겠다 싶어서 하고 싶은 일도 아닌데 지원했나 본데, 이러면 아무도 취직시켜주지 않아요”라는 겁니다. 면접장을 나오니 그냥 눈물만 나더군요. 내가 이렇게 쓸모없는 사람인가, 바퀴벌레만도 못한가 싶었습니다. 사실 다 맞는 말이었습니다. 서비스직은 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 이후로 면접 보기가 너무 무서워졌습니다. 온 지구가 저를 비난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저는 남한테 평가받는 것 자체를 무서워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엔 잠도 잘 못 자고, 해가 차라리 안 떴으면 하는 생각도 합니다. 깨어나도 할 일이 없으니까요.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셔서 아침마다 일하러 나가시는데, 제가 잉여처럼 느껴지고, 앞날을 생각하면 너무 무섭습니다. 울고 싶어서 부모님 일 나가시면 몰래 울고 그럽니다. 저는 어쩌면 좋죠? -서윤지


A) 서점에 가보면 청년 대상의 자기계발서가 꽤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 책의 저자들은 대부분 한때 심각한 열등생이었거나 고난의 청춘기를 보낸 사람들이어서 나름 젊은이들의 고민을 잘 이해하고 또 꽤 설득력 있게 조언합니다.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마라, 인생의 바닥을 경험하라, 자신만의 스펙을 쌓아라, 끈기를 가져라, 자신감을 가져라, 선택과 집중을 하라, 열정을 따르라 등으로요.


그런데 나는 50년을 넘게 살았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게 삶의 올바른 지침인지 말이지요. 이런 조언들은 마치 개인이 노력하면, 개인이 지혜로우면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은데, 정말 그럴까요? 그렇다면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들과 같은 노력을 해보지 않았을까요? 성공도 실패도 모두 한 개인만의 문제일까요?


요즘 젊은이들의 취업 문제는 그들의 어린 시절에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게 뭔지, 자신의 개성이 뭔지 철저히 외면하는 교육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빈부 격차와 학교 성적이 정확히 비례하는 시대를 살고 있어서 마음은 잔뜩 위축되어 있고요. 학교는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를 주로 고민하는 직업교육의 장이 된 지 오래지요. 또 우리 문화는 실수나 실패, 미숙함에 대해 유난히 혹독하고, 개인을 평가할 때는 일상의 행복보다 집단에 대한 기여도를 훨씬 우위에 두기 때문에 사람들은 늘 비난당하고 있다는 심정, 뭔가 의무를 해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긴장해 있습니다.


그렇게 자란 젊은이들이 세상에 나왔을 때 일종의 공황장애 증상을 경험하는 건 너무 당연한 것 같습니다. 나라고 하는 존재감 없이, 혼 없이 이 엄청난 속도의 세상으로 유입되었기 때문이에요.


따라서 서윤지 님, 당신이 이토록 심리적으로 고통받는 건 당신 개인이 문제라서, 쓸모없어서, 그리고 잉여라서 그런 게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당신이 느끼고 있는 어지럼증을, 이미 중·고등학교 때부터 호소하는 아이들이 부지기수니까요. 학교도 부모도, 이 예측 불가능의 사회에서 자기 자신을 좌표로 삼아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자신의 욕구를, 자기 생각을 믿을 때 가장 후회 없고, 안전하며 만약 실패해도 거기서 뭔가를 배울 수 있다고 말해주는 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신도 아무런 기준 없이 이런저런 정보에 따라 흔들리고 있는 겁니다.


서윤지 님, 서비스 직종의 일이 싫다는 자신의 감정을 믿어주세요. 그리고 직업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직업 선택의 기준이 자기 자신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 자신이 잘하는 것, 자신을 지치게 하지 않는 일 중에서 찾아야 합니다. 또는 자신의 판단과 직관도 믿어야 하고요. 그러려면 내가 원하는 것과 잘하는 게 무엇인지, 나는 어떤 성격 유형인지부터 알아야겠지요. 혼란스러운 지금의 시간도 아마 그걸 찾는 시기일 겁니다.


이 세상 무엇이든 결국 첫걸음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 첫걸음이 바로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여유를 부리다 낙오자가 되지 않을까 속이 타더라도 첫걸음 없이 시작되는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지구의 중력을 거스를 수 없는 것처럼 말이지요. 우리 사회 기성세대로서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으로 당신을 응원합니다.


양들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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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들-.jpg


목동은 주인으로부터 맡은 양을 치고 있었다.
목동은 양 떼를 이끌고 푸른 들판과 시냇가 등으로 두루 다녔다.
양 떼를 이끌던 목동이 앞에 서서 노래를 부르거나 
휘파람 소리를 내었는데,
그때마다 양들은 풀을 뜯는 일을 중단하고 
목동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양 떼는 목동을 따라 잔잔한 물가와 푸른 초장으로 옮겨 다니다가
정오가 되면 그늘로 가서 목동을 둘러싸고 휴식을 취했다.
밤이 되어 어둠이 땅에 덮히자 목동은 
양 떼를 우리로 이끌어 들였다.
목동은 양 한 마리 한 마리를 불러가며 우리로 들여보냈다.
그 때 목동의 친구들이 찾아왔다.
그러자 양들은 일순 긴장을 하였다.

그 날 밤 우리 속으로 들어가 잠자리에 든 양들은
안도의 숨을 내 쉬었다.
다음 날 아침, 양들은 그 밤에 사라진 친구의 자취를 뒤로 하고
목동의 부름에 바삐 움직였다.
그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양들은 침묵하였다.
그 밤에 양의 우리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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