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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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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패배가 인생 패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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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JPG»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승자와 패자, 당신의 서랍은 몇 개인가요?

우리의 삶은 오디션의 연속입니다. 오디션이라고 하면 신인 가수가 되기 위해 심사위원 앞에서 벌이는 예능프로그램을 떠올리지만, 직장생활만큼 더 치열한 오디션도 없습니다. 입사 시험, 투자 심사, 인사 발령은 그 결과가 발표되는 날입니다. 승자의 환호 뒤에는 패자의 뜨거운 눈물이 있습니다. 포장마차에서 술 한잔 넘기며 어렵게 말을 꺼내던 40대 남자도 그 가운데 한명입니다.


“얼마 전 승진 인사에서 탈락했습니다. 입사 동기들 가운데 여러명, 심지어 후배 가운데 일부도 승진 명단에 포함되어 있는데, 제 이름만은 쏙 빠져 있더군요. 도대체 어떻게 감정을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창피했어요. 주변에서는 위로해준다고 하지만 패배자처럼 비칠까 술자리도 가기 싫습니다. 하루하루 가시방석 같습니다. 회사의 성장이 곧 저의 성장이라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달려왔는데, 우주가 무너지는 느낌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할 줄 아는 것은 회사생활 잘하는 것뿐이었는데,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막막합니다.”


탈락은 분명 위기입니다. 그런 날에는 아무리 술잔을 들이켜도 절대 취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패배는 쓰라리겠죠.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승진 여부가 결정되었을 수도 있고, 그래서 공정하지 않다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그저 앞만 보고 달려왔던 40대 남자에게는 큰 아픔입니다. 직장인 10명 가운데 8명이 우울증을 하소연한다는 통계가 있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의 경쟁은 정말로 심각합니다.


누구나 위기를 맞습니다. 위기는 그 단어가 내포하듯 위험과 기회라는 두 얼굴을 갖고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시간이겠지만, 길게 보면 진짜 인생이 시작되는 때입니다. 실연, 가난, 실패를 가리켜 ‘인생 최고의 스승 3명’이라고 서양에서는 말합니다. 살다 보면 원치 않지만 쓰라린 패배와 어려운 순간이 다가옵니다. 그때 나를 지켜주는 것은 무얼까요? 다시 일어나게 해주는 동력을 어디에서 찾을까요?


우선 실패 또는 패배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어색하고 두렵더라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실패노트를 쓰는 작업도 필요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어떻게 이 고비를 풀어가야 할까? 곤경에서 벗어나게 하는 신비한 묘약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습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일본 야구선수 다르빗슈 유의 처지가 떠오르는군요. 다르빗슈는 올해 엘에이(LA)다저스가 우승이란 염원을 안고 지난해 시즌 후반에 야심차게 영입한 투수였습니다. 엄청난 기대와 달리 월드시리즈에서 2경기 모두 조기 강판의 수모를 겪어야 했던 비운의 주인공입니다.

최고의 자리에 익숙한 그가 승리가 아닌 패배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미국 기자들 앞에 선 기분이 어떠했을까요? 우승에 목말랐던 엘에이다저스 담당 기자들은 그에게 직설법으로 혹독한 질문을 퍼부었습니다. 더구나 그는 상대팀인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선수에게 인종차별 수난까지 당한 터라 마음의 상처는 컸을 겁니다. 그럼에도 다르빗슈는 담담하게 이렇게 답하였습니다. “결국 투수로서 제가 더 많은 서랍을 갖추는 게 과제입니다.”


서랍의 원래 의미는 책상과 옷장에 달린 수납공간이지만, 여기서는 조금 다른 뜻입니다. 자기만의 기술, 승부수, 독특한 경험, 정신 자세 등을 의미하는 일본식 비유법입니다. 투수로서 그가 말하는 서랍이란 다양한 구종(투수가 던지는 공의 종류), 승부구, 기술, 경기운영 능력, 큰 승부에 임하는 심리 등을 의미할 겁니다. 인생 최고로 괴로웠을 패배 다음 날 다르빗슈는 트위터에 이런 말도 남겼습니다. “월드시리즈는 내 부족한 경기력 때문에 실망스러운 결과로 끝났지만 나는 이 경험을 토대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한 사람의 진면목은 승리가 아니라 패배했을 때 나타납니다. 이란계 혼혈인으로 일본에서 자란 때문인지 그는 정신적으로 성숙해 있었습니다. 남의 탓을 하지 않았습니다. 묵묵히 전진하겠다는 그의 자세에서 저는 ‘위대한 패배자’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야구에 비유하여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당신에게는 어떤 공이 있나요? 다른 경쟁자와 비교해 공의 속도는 빠른가요?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과 같은 다양한 공을 갖고 있나요? 생활인으로서 당신의 무기는 무엇인가요? 당신만의 킬러 콘텐츠는 어떤 건가요? 사회생활을 하며 돈을 번다는 것은 프로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엔씨(NC)다이노스 야구단의 이태일 사장은 프로야구 선수로서 새롭게 출발하는 루키(신인)들에게 이런 말을 던져줍니다. “프로 선수가 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보여준다는 것은 곧 오디션입니다. 영원한 1등은 없고, 영원한 고객도 없습니다. 프로 스포츠의 세계, 비즈니스 세계의 현실입니다. 결국은 더 많은 서랍을 마련해야 합니다. 한두개의 서랍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오디션에서 다양한 장르의 곡을 소화해야 올라갈 수 있듯이 사회생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실패를 겪어보지 않고 승승장구하는 사람은 매력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위기가 왔을 때 이겨내기 어려워합니다. 위기 극복 항체가 심리적으로 형성되어 있지 않은 까닭입니다.


받아들이기 나름입니다. 오늘의 패배가 결코 인생의 패배는 아닙니다. 자기 비하, 자기 의심은 절대 금물입니다. 얼굴을 들어야 합니다. 타이틀이라는 ‘직’(職, 직위·직무)의 경쟁에서는 비록 졌지만 진정한 프로로서 ‘업’(業, 일·전문성)의 힘을 키울 기회가 될 겁니다. 그러면 다시 일어나 전진할 수 있습니다.

패배는 통과의례입니다. 업의 힘을 한 단계 올려주는 기회로 삼으세요. 그러면 업그레이드가 됩니다. 남의 아픔을 헤아릴 줄 아는 멋진 리더로 성장시켜줄 겁니다. 기회는 또 옵니다.


자신에게 충실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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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자신에게 전력을 다하고 충실하라. 

자기를 내버려두고 남의 일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람은 자기의 갈 길을 잃은 사람이다.

                             -공자

                                  

 

자기의 세계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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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자기 자신을 의탁할 자기의 세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자기의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자기의 세계에 충실하였는가, 충실치 못하였는가각 항상 문제다.

사람에게 가장 슬픈 일은 자기가 마음속에 의지하고 있는 세계를 잃어버렸을 때이다.


 나비에게는 나비의 세계가 있고, 까마귀에게는 까마귀의 세계가 있듯이, 

사람도 각자 믿는 바에서 정신의 기둥이 될 세계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당신이 당신의 마음과 상관없는 곳에서 헤매고 있다면 다시 자기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


                                             -헤겔

남을 고치기 전에 자신부터 고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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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력을 다하여 자기 자신을 충실히 하기에 힘써라.

우리는 남의 마음과 성격을 변경시킬 수는 없으나 내 자신은 고칠 수 있다.

참으로 내 생각을 채울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다.


 어찌 남이 내 비위를 맞추어 주지 않는다고 탓하면서 자신의 마음과 몸을 자기의 뜻대로 복종시키려고 하지 않는가.


                     -마루쿠스 아우렐리우스(로마의 황제)

무애도인 오현 스님이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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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오현.jpg» 26일 몸을 벗은 무애도인 설악산 신흥사 조실 조오현 스님


이 시대 ’마지막 무애(無碍)도인’이 떠났다. 설악산 신흥사 조실 설악무산 조오현 스님이 26일 오후5시11분 강원도 속초 신흥사에서 입적했다. 승납 60년, 세납 87세다.

  고인은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7살에 입산해 1959년 성준 스님을 은사로 직지사에서 출가했으며, <불교신문> 주필과 신흥사·계림사·해운사·봉정사 주지를 거쳐 강원도 설악산권의 대표사찰인 신흥사와 백담사 조실과 조계종 조계종 원로의원을 맡고 있었다.


 특히 고인은 백담사가 출가 본사인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만해 한용운’의 애민·생명·평화 사상을 기리기 위해 1996년 만해사상실천선양회를 설립해 시작한 만해축전을 매년 8월 강원도 인제에서 개최해 전국의 문인, 지역민이 함께 하는 축전으로 만들고, 이 자리에서 시대정신과 양심을 상징하는 인사들에게 종교를 가리지않고 만해대상을 시상했다.   또 강원도 인제 백담사 초입에 2003년 만해마을을 조성해 문인들의 창작공간으로 내놓았다. 1999년 <불교평론>을 창간해 논쟁 없는 불교계가 논쟁으로 시대정신을 창출하게 했고, 만해가 창간했던 <유심>을 복간해 시와 학문과 세상이 회통하게 했다.


   고인은 무엇보다 이데올로기에 갇혀 물고뜯는 분단시대를 넘어선 국량을 보였으며, 종교와 승속, 국가의 벽을 넘어선 장쾌한 대장부였다. 그가 만든 만해축전은 만해와 <조선일보> 설립자와 방응모와의 각별한 인연을 들어 <조선일보>와 공동주최해 ‘독립운동가 만해와 친일신문은 어울리지않는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만해대상은 김대중 전대통령, 리영희 선생, 이소선여사, 고은 시인, 김지하 시인, 조정래 소설가, 강원용 목사, 함세웅 신부, 법륜 스님, 두봉주교, 백낙청 선생, 신영복 선생 등  당대 대표적인 진보인사들에게 종교의 벽을 넘어 시상됐다. 그가 아니면 남남갈등의 시대에 대표적 우익신문의 이름으로 ’좌익’으로 손꼽힌 이들에게 월계관을 씌워주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그 뿐이 아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 중동 등 제3세계에서 군부와 독재자들의 폭압 아래서 목숨을 걸고 외로운 투쟁을 전개하는 평화·인권운동가들을 발굴해 시상함으로써 그들의 운동을 간접 지원했다.


오현 설악.jpg» 3개월간 밖에서 열쇠가 채워진 백담사 무문관 수행을 마치고 나오는 조오현 스님


 그는 걸림이 없는 언행을 보인 무애도인이자 기인이었다. 그를 대면한 이들은 오불조불한 관념의 세계에 갇히지않은 호쾌함에 매료됐다. 그는 말년에 매년 3개월씩 두차례, 즉 일년의 절반을 백담사 무문관에서 보냈다. 무문관은 밖에서 열쇠를 잠그는 ’폐관 수행실’이어서 구멍으로 들어오는 하루 한끼의 식사를 받으며 3개월간 방안에 갇혀 오직 참선정진을 하는 곳이다. 그가 무문관 수행을 끝낸 뒤 대중들 앞에서 한 설법은 절집에서는 전에 듣지 못한 것들이었다. 천년전 선사들의 말을 되풀이하는 앵무새 설법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것이었다.


  그는 “부처님도 석가족이 멸망할 때 전쟁을 막기 위해 나 홀로 반전시위를 한 반전운동가였다”면서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화통하게 마음을 열 것을 촉구했다. 그는 “남북관계에서 ‘사과를 받아야겠다거나 용서를 못 하겠다는 것은 감정싸움이나 핑계에 불과하고 자기 것을 빼앗길까 봐 두려워하는 기득권층의 인식이나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춤추기 때문’이라며 “미움과 분단이 지속되면 우리 국민은 숨통이 막히니 우리 국민이 살아갈 길은 부산에서 출발한 열차가 이북·시베리아를 거쳐 유럽의 여러 나라에 도착하는 길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2015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한국학센터의 초청 강연 때 ‘북한 핵 폐기’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미국에선 서부 개척시대부터 총잡이들도 총을 동시에 꺼내고 내려놓는 게 정도 아니냐”며 “미국은 기독교 정신으로 나라를 세웠으니 핵과 살상 무기를 포기하는 모범을 보여 그 막대한 돈으로 복음 사업에 사용하라”고 권했다.


 그의 법문은 늘 허울의 불교를 던져버린 파격의 연속이었다. 그는 “절마다 교회마다 방송마다 신문마다 진리를 이야기하지만 시끄로운 소음이 된 지 오래다”면서 “노망기 있는 이 노승의 설법을 듣기보다 동해 바다의 파도소리와 설악산의 산새소리, 계곡 물소리를 듣는 게 낫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장경의 글과 말 속에 무슨 진리가 있느냐. 여러분이 오늘 산문을 나가 만나는 사람들과 노숙자들의 가슴 아픈 삶 속에서 진리를 찾아라”고 경책하며 “절집은 승려들의 숙소일 뿐이니 소설가 이청준의 말대로 절집에만 ’당신들만의 천국’을 만들지 말고 세상 속에서 진리를 찾고 세상과 함께 하라”고 했다.

 그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해 세월호 유족들을 위로하고 돌아간 뒤엔 “환자가 없으면 의사가 필요없듯이 고통받는 중생이 없으면 부처도 필요 없다”며 “천년 전 중국 신선주의자들, 산중 늙은이들이 뱉어놓은 사구(죽은 말)만 들고 살지 말고 교황처럼 중생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라”고 했다.



오현스님.jpg» 무문관 수행을 마치고 같은기간 설악산권 사찰에서 안거에서 참선정진한 선승들에게 설법을 하는 조오현 스님


 그의 행은 말만으로 그치지않았다. 겉모습은 격식을 떠난 파격적인 언행으로 기인이자 이인으로 비춰졌지만, 그는 가장 힘든 중생들의 손을 놓지않고 힘을 실어주는 ’자비보살’이었다. 

 기독교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청계촌 피복노동자로 노동운동을 하다 분신한 전태일을 기리는 전태일기념사업회에 아무도 몰래 매달 후원금을 보냈다. 이 사실은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늘 “조오현스님을 뵙고 싶다”고 했다는 소식을 들은 그가 2011년 이 여사의 장례식장에 조문을 감으로써 유족들에 의해 밝혀졌다. 고인은 백담사가 있는 인제 산골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아이들 수백명에게도 대학 재학 때까지 남몰래 장학금을 마지막까지 기부해왔다.

 고인은 또 2011년 반값등록금 촉구 집회에 나갔다가 집시법 위반으로 약식기소돼 대학생들이 1인당 15만~5백만원의 벌금고지서를 받고 힘들나다는 기사를 보고는 <한겨레>에 벌금총액인 1억3천만원을 기부해 벌금을 대납하게 했다. 이 사실도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않을 것을 전제로 해 당시 ‘조계종 소속의 한 스님의 기부’로만 알려졌다.


  불교계 대표적인 연구기관인 가산불교연구원이 현대 대장경 불사격으로 진행중인 불교대백과사전 <가산불교대사림 22권> 발간작업이 설립자인 전총무원장 지관 스님의 열반 후 위기에 봉착하자 아무도 몰래 연구원 대표를 맡아 수십명의 연구원들을 지원해온 것도 고인이었다. 2013년엔 동국대의 전신인 명진학교 1기 졸업생으로 동국대의 상징적 존재인 만해를 기린 만해마을 200억원대 전자산을 동국대에 기증해 만해의 뜻을 살려나가도록 했다. 갓 출가한 승려들을 교육하는 기본선원을 백담사에 설립해 교육을 한 것도 그였다.

 신흥사보다 사찰 재정이 넉넉한 사찰들에서도 자기 절을 키우거나 과시하는 것 이외 공익적인 지출이 거의 없는데 반해 고인은 불사금을 주머니에 정체시킨바 없이 당대 가장 필요한 곳과 사람들에게 지원해왔다. 


 그는 자신에 대해 “7살에 절머슴으로 들어가 늘어지게 낮잠이나 잤으니 언제 공부나 해봤겠느냐“며 ‘무식한 노승임’을 자처했지만, 실은 어린시절 대장경 원문을 외워 그대로 암송해낼 수 있는 천재적인 기억력의 소유자였다.

 그의 해탈의 정신세계와 파격의 언어, 세심한 내면은 시에 남았다. 그의 시에 대해 원로시인들중엔 “시인들조차 감히 넘 볼 수 없는 독특한 시세계”라고 평가했다.

  그의 시에선 7살 어린 나이에 원치않게 절집에 맡겨진 가엾은 동자승의 ’타는 목마름’과 중생들의 아픔이 그대로 배어있었다. 시조 ‘어미’에는 죽도록 일하다 힘이 떨어지자 미처 젖도 못 뗀 새끼를 두고 도살장으로 끌려가던 어미소가 당산 길 앞에서 주인을 떠박고 헐레벌떡 뛰어와 새끼에게 젖을 먹여주는 장면이 그려져있다.


 그의 시에선 고통의 암덩어리를 그대로 끌어안고 이를 영롱한 진주로 바꾸는 수도자의 내공이 들어있다.

 ‘한 그루 늙은 나무도 고목소리 들을라면/ 속은 으레껏 썩고 곧은 가지들은 다 부러져야/ 그 물론 굽은 등걸에 장독(杖毒)들도 남아 있어야’<고목소리>.

 무심한 한 덩이 바위도/ 바위 소리 들으려면// 들어도 들어올려도/ 끝내 들리지 않아야// 그 물론 검버섯 같은 것이/  거뭇거뭇 피어나야.<바위 소리 들으려면>>

  그의 시는 마침내 어둠이 빛이 되고, 고통이 자비가 되어 영원한 세계로 나아간다. <사랑의 거리>에서 그는 중생계와 피안계, 우리와 그의 머나먼 거리를 하나로 이었다.

 ‘사랑도 사랑 나름이지/ 정녕 사랑을 한다면// 연연한 여울목에/ 돌다리 하나는 놓아야// 그 물론 만나는 거리도/ 이승 저승쯤 되어야’


 권영민 서울대명예교수는 2005년 ‘세계평화시인대회’ 만찬장에서 오현 스님이 예정이 없이 즉흥적으로 발표한 일화를 소개한 바 있다.

 ‘삶의 즐거움을 모르는 놈이/죽음의 즐거움을 알겠느냐//어차피 한 마리/기는 벌레가 아니더냐//이다음 숲에서 사는/새의 먹이로 가야겠다.’

 <적멸을 위하여>란 시조다. 당시 이 시조를 들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월레 소잉카 시인은 “이 시 하나에 ‘평화’라는 우리의 주제가 다 압축되어 있다”면서 “대단한 인물”이라고 경탄했다고 한다.


손잡고오르는집.jpg» 서울 정릉 흥천사 조실채의 편액. 조오현 스님이 이름을 붙이고, 신영복 선생이 글씨를 썼다


 고인의 시들은 <아득한 성자>, <마음 하나>, <절간 이야기> 등 시집에 담겼으며, 그는 현대시조문학상(1992년), 남명문학상(1995년), 가람문학상(1996년), 한국문학상(2005년), 정지용문학상(2007년), 공초문학상(2008년)등을 수상했다.

 그가 서울에 올라오면 가끔 머물던 서울 정릉 흥천사 조실채엔 ‘손 잡고 오르는 집’이라고 신영복 선생의 글씨로 쓰인 편액이 걸려있다. 고인이 붙인 이름이다. 그의 정신 세계는 일찌기 중생의 관념과 애증의 골짜기를 뛰어올라 창공을 비상했지만, 그는 늘 그 골짜기로 내려와 구부러진 허리를 한채 고통중생들과 언덕을 함께 올랐다.


  영결식은 오는 30일 오전 10시 원로회의장으로 설악산 신흥사에서 엄수되며, 이어 금강산 건봉사 연화대에서 다비식이 봉행된다.


싫은 것을 제거해버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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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jpg



어느 나라에 진기한 나무가 있었다. 
메마른 황야에 오직 그 나무 한 그루만이 
두 줄기 가지를 펴고 서 있었다. 
지금껏 그 나무의 나이를 아는 사람도 
그 열매를 맛본 사람도 없었다. 


열매는 황금빛을 띠었는데 아주 탐스러웠다. 
두 개의 가지 가운데 하나는 생명을, 
하나는 죽음을 담고 있었기에 절반은 먹을 수 있는 열매였고, 
절반은 맹독성을 가진 열매였기 때문에 먹을 수 없었다.
그러나 어느 가지가 생명 열매를 맺고 
어느 가지가 사망 열매를 맺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무도 그 나무의 열매를 따먹으려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나라에 무서운 기근이 몰아닥쳤다. 
나라 안에 먹을 것이라고는 그 나무 열매 외에 아무 것도 없었다. 
굶주린 사람들은 그 진기한 나무 아래로 몰려갔지만 
아무도 선뜻 먼저 따먹지를 못했다.
어느 가지의 열매가 생명의 열매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 한 남자가 용기를 내어 그 중에 한 가지에서 열매를 따먹었다.
그 남자는 죽지 않았다. 
그러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그 가지의 열매를 따 먹게 되었다. 
아무리 먹어도 가지는 계속 열매를 맺었다.
사람들은 여드레 동안 잔치를 벌였다. 
사람들은 이제 어느 쪽 가지가 독을 갖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 후부터 나무의 영양분만을 빨아먹는 
그 가지에 증오의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못 먹을 열매를 맺는 가지를 잘라버릴 것을 결정했다. 
그런데 맹독성 열매를 달고 있는 가지를 자른 그 다음날 
생명나무 가지의 열매들이 다 떨어져버리더니 
그 나무에 앉아 지저귀던 새들도 날아가 버리고
나무는 시들시들 죽어가고 있었다.


사실은 독성의 나뭇가지가 있었기에 탐스러운 열매 맺는 가지도 존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좋은 것만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때론 안 좋은 것들도 정말 우리를 위해 필요한 것들이 많습니다. 정말 없었으면 하는 사람, 정말 없었으면 하는 것들, 늘 나를 찌르는 가시들, 어쩌면 그들이 있기에 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집단무의식이 물들이는 일상의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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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뤄지는 동북아 평화 만들기는 그 어떤 영화보다 극적이다. 반전 지점마다 그동안 상대를 일방적 악으로 규정했던 적대의식과 감성에 균열이 생긴다. 역사가 새 시대를 살아갈 인식능력과 정서를 훈련시키는 듯하다.

왜곡된 정서와 관습은 집단무의식이 되어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를 물들인다. 합리적 소통과 평화를 가로막는 것은 우리 일상과 내면에서도 작동하고 재생산된다는 것을 공부하면서 떠오른 게 있었다. 나는 어릴 때 프로야구를 좋아했다. 부산에서 나고 자라서인지 부산 연고 팀인 롯데 자이언츠를 좋아했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었다. 다른 경기는 그냥 재밌게 봤는데, 해태 타이거즈(기아)와의 경기는 달랐다. 꼭 이겨야 했다. 해태와의 경기에서 지면 후유증이 컸다. 내 친구들, 응원 온 부산 사람들 대부분 비슷했다. 빙그레 제품은 먹었는데 해태 제품은 먹지 않았다. 그렇게 하라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대부분 그랬다. 모르고 먹은 친구를 배신자라고 놀리기도 했다.
03053606_P_0.JPG» 야구장. 사진 한겨레 자료 사진.
야간 자율학습(실제는 강제학습)을 빠지고 야구장 간 친구들이 다음날 선생님께 야단을 맞았다. “공부 안 하고 도망가서 뭐 했어?” “어제 해태하고 붙은 경기는 꼭 이겨야 되는 중요한 거라서 응원 갔는데예.” 우리는 함께 외쳤다. “와! 선생님 한 번 봐주입시다. 어제 정말 중요했는데, 얘들 때문에 이겼다 아입니까.” 선생님도 웃음이 터졌고, 그 친구들은 의리있는 사람이 되었다. 말도 안 되는 얘기와 정서가 이상한 집단의식 속에서 통용되고 재생산된다.

나는 오비 베어스(두산) 어린이 회원이었다. 프로야구 영웅들이 첫해 우승팀인 오비 베어스에 있었다. 롯데도 좋고, 다른 팀이나 선수도 좋아했다. 친구들도 서로 다른 팀 홍보물을 가지고 있는 게 자연스러웠다. 지역주의에 갇히지 않고 야구경기를 즐겼다. 그런데 몇 년 사이에 이상한 정서가 생긴 거다. 고향 팀을 좋아하는 건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해태에 대해 가졌던 감정은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는 지역주의에 집단적으로 물든 거였다. 그저 야구를 좋아한 거였는데, 일상의 놀이와 문화 속에서 우리는 서서히 왜곡된 지역주의에 물들어갔다.

나중에 고향 친구들과 얘기를 나눴다. 한국 사회 모순을 극복하려는 열망을 지닌 친구들이지만, 극복해야 할 것이 우리 내면과 일상의 집단무의식을 통해 재생산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 니 잘났다. 서울 가더니 변했네. 이제 너는 부산 사람 아니다!” 처음에는 대부분 이런 반응이었다. 장난기 섞인 말이지만, 왜곡된 집단무의식을 건드리면 합리적이지 않고 감정적으로 반응한다는 걸 배웠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갈라놓는 거짓된 의식과 정서들은 많이 극복되었다. 이제 70년 분단체제 속에서 대립과 갈등을 조장했던, 조선과 미국에 대한 거짓된 집단무의식과 일상의 정서들을 정직하게 돌아봐야 할 때가 되었다. 최근 역사는 계속 그것을 깨우쳐준다.

오현 스님의 마지막 무언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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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오현 스님이 한편의 연극을 끝냈다. 30일 강원도 고성 건봉사에서 지난 26일 입적한 설악 무산 조오현 스님의 다비식이 열렸다.  건봉사는 비무장지대 부근 최북방사찰이어서 군부대 검문을 몇번이나 통과해야했다. 

 이날 10시 속초 설악산 신흥사에 영결식을 마치고 운구 행렬이 오는 동안 하늘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줬다. 영결식 때만해도 날은 더 할나위 없이 화창했다. 조계종 종정 진제스님과 원로회의의장 세민 스님, 총무원장 설정 스님, 해인사 방장 원각 스님, 석종사 선원장 혜국 스님, 손학규 바른미래당 고문과 하승창 청와대 사회혁신수석과 최문순 강원도지사 후보, 이수성 전국무총리, 양승태 전대법원장, 박한철 전헌법재판소장, 김진선 전강원도지사, 주호영 의원, 성낙인 서울대총장 등 추모객들이 영결식에 참석했다. 그의 사랑을 받은 이근배 신달자 홍성란 등 문학인들도 자리를 지켰다. 조정래 김초혜 부부도 말석에 앉아 고인을 추모했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과 진보적 인사들도 적지않았다. 사하촌의 주민 등 3천여명이 운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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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반 뒤 5일간 분향소엔 수만명이 고인을 찾았다. 거기엔 여야, 승속, 지위고하가 없었다. 조계종단의 전현직 종단 지도부들 뿐 아니라 조계종단 적폐청산을 요구하는 명진 스님도 왔다. 이날 영결식장에도 종단쪽과 적폐청산시민연대 쪽 사람들이 다 보였다. 한자리에 앉기 어려운 사람들도 설악의 품에는 함께 깃들었다. ‘내게 돌을 던진 사람도, 내게 꽃을 던지는 사람도 사랑하라’던 고인의 시 그대로 해맑은 모습의 영정 사진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런 안타까운 눈빛들을 뒤로하고 운구행렬은 미련없이 설악산을 떠났다. 설악산에서 금강산 건봉사까지 운구가 이운되는 한시간 동안 기상은 요동쳤다. 화창한 날을 비웃듯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사람들이 “비온다는 예보가 없었는데”라며 걱정했다. 그런데 건봉사가 가까워지자 비는 또 거짓말처럼 개었다. 그러다 다비식 10분전 운구행렬이 다비식장에 들어서는 순간 먹구름이 뒤덮더니 갑자기 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야외 다비장에 불이 붙지않을 수도 있는 비상 상황이어서 이곳까지 따라온 1천여명이 웅성그렸다. 그런데 오후 2시 고인의 관을 연화대에 넣는순간 다시 비가 거짓말처럼 멈췄다. 

4-.jpg» 부산의 토굴에서 홀로 은거 수행중이라는 무인이라는 노승이 다비장에서 걸림없는 오현 스님의 삶을 상징하는 무애춤을 즉흥적으로 추었다

 오랜 도반인 화암사 주지 정휴스님과 제자인 신흥사 주지 우송 스님, 낙산사 주지 금곡 스님, 백담사 무문관에서 함께 정진한 유나 영진 스님 등 수십명의 스님들이 불을 붙이며 눈시울을 적셨다. 이에 아랑곳없이 고인의 사진은 더욱 더 활짝 웃고 있었다. ’날씨가 스님처럼 개구지다’는 말에 금곡 스님은 “변화무쌍해도 결국 지금이 거화(불을 붙임)하기에 가장 좋은 날씨다”며 "스님이 원래 그런 분 아니냐"고 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이 보여도, 나중에 보면 사리가 분명했던 스님의 삶을 말한 것이었다. 

 일부러 꾸밀래야 꾸밀수 없는 천변만화였다. ‘일체가 꿈같고 환상 같고 물거품같고 그림자 같고 이슬 같고 번개 같으니 애증에 집착하지말라’는 <금강경>의 진리를 시현한 허공법계의 법문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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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인을 40년간 가까이서 모신 홍사성 <불교평론> 주간은 "너무도 세심하면서도 너무도 자상하고 너무도 컸던 이런 분을 이 생에 다시 만날 수 있겠느냐"며 허공으로 가뭇없이 사라지는 한줄기 연기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날더러 허수아비라 말하지만/맘 다 비우고 두 팔 쪽 벌리면/모든 것 하늘까지도 한 반 안에 다 들어오는 것을’ 스님은 자작시 <허수아비>처럼 하늘을 그렇게 안았다. 무산(霧山·안개산)이 걷히고 다시 해가났다. 오현 스님같은 분이 이시대에 우리 곁에 머물렀다는것도, 그가 한줌 재가 되어버렸다는 것도 이날 날씨처럼 거짓인것만 같았다.
 


청년 농부들의 주경야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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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융합 씨앗 뿌려, ‘신세대 농부’  틔운다

충남 홍성군 오미마을 젊은협업농장


1농장-.JPG» 함께하면 농사일도 즐겁게 할 수 있다고 한다. 더구나 같은 또래들끼리 하면 더욱 그런다는 젊은협동조합 청년들. 정민철 농장 대표(윗줄 오른쪽에서 두번째)와 농촌경제연구원 김정섭 연구위원(윗줄 오른쪽에서 세번째)와 농장 식구들이 체험활동을 온 학생들과 함께 했다.

 

청년 10여명과 견학생들 어울려

4천평 빌려 쌈채소 비닐하우스 8


아침 6  시작해 오후 4 마치고 

강의실에 모여 다양한 강좌 

유기농·마을만들기·철학·여행 

 

농업전문대 선생이던 정민철 대표

농사는 현장이라는 생각으로 설립


수십명 한달에서 1 넘게 머물며 

공감하고상처 치유   모색

농사일과 마을살이 익히면 독립

 

인근 갓골은 활기찬 문화지대

도서관도 있고 협동조합 30여개 


2-.jpg» 매일 오후4시면 손을 털고 강좌를 듣는 청년들.

 

충남 홍성군 장곡면 도산리 2 오미마을엔 여느 농촌과는 달리 온통 청년들뿐이다. 8동의 비닐하우스에서는 젊은협업농장 청년들 10명과 견학  학생들도 상추만큼이나 푸릇푸릇하다비닐하우스 속에서 어울려 일하는 청년들의 얼굴엔 찌든 기색이 없다친구들과  얘기  얘기 주고받고 농담하며 웃다 보면 언제 시간이 가는  모른다고 한다 어른들이  공동 노동조직인 두레를 만들고품앗이를 해서 ‘함께’ 일을 했는지  만하다.

 

 이들은 마을에서 각자 기거하면서 아침 6시면 이곳에  일을 시작한다아침은 건너뛰거나 간식으로 때우고 일하다  12시에 공동 식사를 한다다시 1시에 일을 재개하고 오후 4시가 되면 일을 마친다오후 4시면 아직 해가 중천에  있을 때다마을 어르신들은 젊디나 젊은 것들이 ‘바짝 조여서’ 수확을  하지 않고 일찍 손을 턴다고 못마땅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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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벌어 어떻게 사나” 눈치도

 그도 그럴 것이 젊은협업농장 4천평은 모두  마을 임응철 이장이 빌려준 것이다열명이 농사를 지어 쌈채소를 팔아 얻은 소득이 12천만원 정도다거기다 농촌 체험 프로그램  교육을 맡아 올린 수입 등을  합쳐도  소득은 14천만~15천만원에 불과하다. 점심값에 드는  2천만원에 임대료·운영비를 빼고 나면 1 미만의 인턴들은  50만원, 1년이 넘은 고참들은  100만원을 가져간다그러니 마을 어르신들은 “그렇게 벌어 어떻게   있겠느냐 “돈도 벌고 땅도 사려면 밤을 새워서라도 일을 해야   아니냐 채근한다

 

 그러나 이곳 청년들은 오후 4시가 되면 어김없이 손을 씻고 강의실에 모인다강좌는 유기농업이나 마을 만들기 강좌뿐 아니라 글쓰기철학예술여행 강좌까지 다양하다홍성 일대는 귀촌자들이 많아 특별히 외부에서  들여 모시지 않아도  만큼 강사 인력이 풍부하다.

 

 2012  농장을 설립한 정민철 대표는 홍성군 홍동면에 있는 풀무학교의 전공부 교사였다전공부는 전문적인 농부를 길러내는 2년제 전문대학이다그런데 전공부 졸업생들이 실제 농사를 지으러 마을에 들어가면  적응하지 못했다그래서 농사는 학교가 아니라 현장 마을 안에 들어가서 배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설립한  젊은협업농장이다따라서 농장이긴 하지만 교육을 목표로 한다어느 정도 농사일과 마을살이를 익히면 이곳을 떠나 독립해 마을 속에서 살아가도록 하는 교육농장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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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벌이 외에 다양한 욕구 충족돼야

  대표는 ‘젊은이들이 농촌에 온다고 농사일만 하라는 법은 없다 생각한다교사 출신인 자신이 교육과 농업을 결합했듯이 ‘아이티’(IT) 업계에 종사했으면 아이티와 농업을 연계하고염색을  사람은 염색 작물을 키우고장사에 소질이 있으면 농업과 경영을 결합한 융합 지점을 찾아 일을   있다는 것이다이곳 청년들이 일만 하지 않고 주경야독을 하는 것은 ‘새로운 농부 길을 찾아가기 위함이다 농장에서  푼도 받아 가지 않으면서 이런 독특한 실험을 하는  대표야말로 새로운 인간형이 아닐  없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정섭(48) 연구위원은 오랫동안 홍성 일대 농업을 연구해오다 안식월을 맞아 3개월째  농장에 머물고 있다그는 “돈만   있으면 젊은이들이 농촌에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청년들에겐 돈벌이 외에도 문화와 교육과 의료  삶의 다양한 욕구가 충족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곳처럼 청년들이 농사와 마을을 배우며 농촌 문화를 창출해갈 새로운 농민을 길러내는 일이 필요하다 설명했다.

 

 농장에서 멀지 않은 풀무농고와 전공부가 있는 홍동면 갓골은 농촌지역에서는 보기 어려운 문화지대다풀무농고 설립자인 이찬갑 선생의 호를  밝맑도서관이 있고마을활력소도 있다또한 흙건축얼렁뚱땅조합을 비롯해 만홧가게술집  협동조합만 30여개가 활동하고 있다 단위임에도 의료생협에 의사까지 있다풀무농고 출신으로  농장 시작  합류한 정영환(36) 스태프는 집에서 따로 농사를 짓는 부인과 5, 8 아이와 부모님과 귀농해 함께 살고 있다그는 “농촌 현실이 어렵고농장에서 청년들이 모두 나가 2주 동안 혼자 일한 적도 있을 만큼 녹록지 않지만협업농장도 농촌도 떠날 생각이 없다 말했다. 또 그는 “시골이지만 교육과 문화를 누리며 아이를 키우기 좋은 이곳이 마음에 든다 했다.


주형로정영환-.JPG» 젊은협동농장 정영환 스태프가 홍성군 홍농 문당리 이장이나 정농회 회장인 주형로 선생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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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골에서 지역활동의 촉매 구실을 하는 밝맑도서관(왼쪽)과 마을활력소

 

 공부만 하면 도깨비일만 하면 짐승

 지금까지  농장에서 한달 이상 머문 청년들은 모두 35명이었다. 1 이상 머문 이도 16명이었다이들은 이곳에서 앞으로 살아갈 길을 고민하면서 주경야독한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났다이곳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처받고 찌든 청년들이 땀을 흘리기도 하지만 또래들과 대화하고 공감하며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쉼터이기도 하다.

 

 이아무개(35)씨는 영업실적 때문에 스트레스에 힘들어하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지난해 12 이곳에 왔다그는 “사람에게 치여 점점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았는데 이곳에서 같이 일하니 힘도  들고 재미가 있다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박아무개(25)씨는 대학 졸업 뒤 6개월간 방황하다가 취업을 포기하고 같은  이곳에 왔다그는 “학교만 다니며 머리만 쓰고 살던 것과 180 다른 삶이지만  벌더라도  치이는 시골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많아지고 있다 말했다.

 

 유아무개(15)군은 홈스쿨로 중학까지 마쳤는데사람이 두려워 고교 진학을 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남들과 함께 지내보면 어떠냐 주위의 권유로 이곳에  그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함께 어울리다 보니 학교도   있을  같고친구가 필요한 것도 알았다 “학교를 마친 뒤엔 농촌에서 살아보고 싶다 말했다.

 

 함석헌의 스승 유영모는 ‘공부만 하면 도깨비가 되고일만 하면 짐승이 된다 ‘일학병진 권했다일하고 공부하면서 청년들이 치유되고 깨어나고 있다이렇게 전에 보기 어려웠던 ‘새로운 농부들이 자라고 있다.

낡았거나 퀴퀴해도… 냄새에 밴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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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서 처음 독일에 다녀가실 때, 저는 입으시던 잠옷을 두고 가시라 했어요. 엄마의 냄새를 맡으며 자고 싶었답니다. 엄마의 잠옷에 얼굴을 묻으면, 서른이 넘은 딸이 어릴 적 엄마의 무릎을 베고 잠들었던 그 아늑한 느낌으로 잠들 수 있었답니다.

딸애가 어렸을 때, 그야말로 자나 깨나 늘 함께 있는 한 ‘롱동’이란 이름의 곰인형이 있었지요. 마로 된 천으로 롱동의 원피스를 지을 때 아이는 신기해했지요. 밥 먹을 때도 같이, 잘 때도 곁에 끼고, 유치원에도 한국에도 데리고 가니, 롱동이의 털은 점점 눌려가고, 옷은 점점 해져서 찢어지기 직전이었지요. 그런데 어느 해 한국을 다녀올 때 그만 롱동이를 외할머니댁에 두고 나왔습니다. 공항 가는 차 안에서 뒤늦게 알아차린 아이는 엉엉 울었고, 손녀에게 롱동이가 얼마나 중요한 친구인지 알았던 외할머니는 우편으로 보내주셨지요. 기다리고 기다리던 롱동이가 왔는데, 글쎄 어머니가 롱동이 옷이 너무 더럽고 낡아서 버리고, 모직으로 새 옷을 지어 입혀 보냈지 뭐예요. 딸아이는 자기 냄새가 밴 낡은 원피스의 롱동이가 아니니 서럽게 울었습니다.

청국장 냄새와 얽힌 일이 있습니다. 미술대학을 다닐 때 기숙사에서 나오려고 집을 구하는데, 동포분에게서 학교에서 가깝고 싼 집이 하나 있다는 정보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집주인은 다시는 어떤 외국인에게도 세를 주지 않겠다고 하네요. 알고 보니 전의 세입자는 실직 뒤 혼자 사는 연세가 꽤 된 한국 남자분이었고, 부엌이 달린 방 한칸의 그 작은 아파트는 청국장 냄새로 찌들어 있었습니다. 이웃들의 불평이 심했고, 그분이 나간 뒤 냄새 때문에 아무도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없어 몇달째 비어 있었어요. 
soybean-1483809_960_720.jpg» 청국장. 사진 픽사베이.
주인에게 그 냄새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겠는데, 나는 그 음식을 만들 줄 모를 뿐 아니라 먹어본 적도 없다(이건 정말입니다), 벽지를 다 뜯어내고 수리해서 살 테니 비워놓고 있을 바에야 내게 달라고 사정했습니다. 제가 미더워 보였는지 결국 주인은 동의했고, 저는 약속대로 집수리를 하고 들어가 살았지요. 퀴퀴한 냄새가 들어박힌 벽지를 뜯어내며, 이역만리에서 실직까지 하고 괴로움과 외로움을 청국장에 담아 살며 이웃의 눈칫밥까지 먹어야 했던, 얼굴도 모르는 그 한국분 생각에 무척 마음이 아팠습니다.

쓴 약을 먹을 때 코를 막고 먹으면 덜 쓰게 느껴집니다. 그만큼 냄새는 우리 정신과 밀착되어 있다는 거지요. 너무 깊은 우울증에 빠져 있거나, 정신이 가닥가닥 쪼개져 있어 생각과 현실이 구별되지 않을 때, 냄새를 맡지 못하지요. 커피 향과 밥 냄새 등 냄새를 맡는다는 건 몸과 마음이 살아 있다는 거지요.

친구는 얻긴 어렵고 잃긴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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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친구를 얻는 데는 오래 걸리지만 잃는 데는 잠깐이다.


                  J.릴리(영국의 극작가)

경계해야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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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치게 호의를 베푸는 자를 경계하라. 

모든 일에 악의를 품는 자를 경계하라.

그리고 모든 일에 냉담한 사람을 경계하라.


                     -프랑스 속담

분별없는 친구를 갖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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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별없고 생각이 얕은 사람을 친구로 갖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라 퐁테에느(프랑스의 고전주의 시인)

노동을 잃어버린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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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수녀님 이야기사회복지 시설 책임자를 마치고 해외 선교를 다녀와 12년 만에 본당으로 소임을 받았다. ‘본당의 날’ 준비로 구역반장님들과 국수잔치에 대해 논의하는데 대다수 의견이 국수 준비를 식당에 주문하자는 것이었다육수도 만들고삶고 일할 시간에 다른 일을 할 수 있어 간편하고 쓰레기도 식당 쪽에서 책임지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좋다는 것이다그전에도 몇 번 해봤지만 당연히 교우들이 국수를 만들고 설거지를 하곤 했었는데 교우들이 돈은 자신들이 내겠다면서 직접 주방일 하자는 견해에 아무도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느 회사 중역 이야기여직원들이 회사 까페에서 차를 마신다마침 TV에서 저출산에 대한 멘트가 나온자각자 한 마디씩 하는 거다. “아이 하나를 낳고 기르는데 비용이 얼마가 들어가야 하는데 두 사람 수입으로 어떻게 둘째 셋째를 가질 수가 있겠어?” “가정과 직장을 오가는 하루 일과가 강제 노역처럼 힘들고 바쁘고 얘 하나도 친정 어머니가 길러줬는데 내가 장군이야?” “어유후배들에게도 결혼하라는 말은 생각해서 하게 돼결혼으로 한 번 뿐인 인생을 희생하라고 권하고 싶지 않아!”   


그 중역은 이렇게 말했다는 거지: “당신의 어머니는 부자였고 한가한 생활을 했기 때문에 당신과 형제간들을 낳고 기르며 대학까지 보냈나요당신의 어머니는 대학을 다니셨나요가부장적 관습의 시대에 진짜 전업주부로 살면서 밭노동을 하고 대가족과 대소가내의 온갖 집안일을 챙기면서 가족을 돌보고 자식을 낳고 길러내면서 가정의 중심으로 살아오시지 않았어요?”


나도 그런데 말하고 싶지만 그들은 확실히 꼰대으로 정리해 버릴 것이다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왜냐하면 지금 나와 함께 살아가는 동시대의 사람들을 불과 50여 년 전 이 땅에 살아가던 우리 부모님의 세대 사람들과 같은 인간으로 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상당한 세대 차이가 나는 정도가 아니라 전후의 두 인류는 이미 다른 것에 의해 양육되고 길러진 DNA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현대 문명의 DNA는 소비문화를 먹이로 주입시킨 기술문명의 산물이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책이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기술개발로 신상품을 출시하면 그 상품은 자신을 이용하는 사람에게서 돈만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척수와 신경세포까지 뽑아내버리는 것이다그로 인하여 사람이 태생적이고 창조적으로 지닌 노동의 능력과 공동체 의식성을 상실하고 편리와 향유에 빠진 호모 루덴스가 되는 것이다예수살이공동체는 입문교육에서 소비상품이 지닌 DMA를 상품주의 악령으로 규정짓고 그 성질을 편의성개별성기술성으로 깨우치고 있다.   


최근 유발 하라리라는 교수는 사피엔스라는 빅셀러를 냈다진화론적 역사관으로 침팬지에서 사이보그에 이르는 진화의 혁명과정을 인지혁명-농업혁명-문화혁명-과학혁명으로 분석한 흥미로운 저술이다인간은 침팬지를 조상으로 둔 생명체로부터 진화하여 신의 의지와 영역에 도전하는 호모 데우스’ 시대의 도래를 맞고 있다고 말한다창조의 생명을 DNA로 삼는 침팬지의 후손들은 설계된 지성인 인공지능의 사이보그에 더하여 그의 DNA로 길러진 변종된 인류라는 세 종류의 삶이 전개될 것이다그리고 사이보그와 변종인간이 공생하는 시대에 창조론적 인간은 멸종위기의 천연기념물처럼 사라져 가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이 주인노릇을 하는 근거와 환경은 딱 하나인데 새로운 시대의 노동과 생산을 주도한다는 것이다수 만 년을 통해 환경과 조화를 이루면서 삶을 건설하고 진화시켜온 힘은 노동이었다인간은 노동하는 인간인 것이다그러나 사람은 노동을 가장 싫고 저주스러운 대상으로 여긴다노동과 생산은 이제 피곤도 모르고 싫은 내색도 오류도 없는 노동자암호화 된 인공지능에게 맡기게 되었으니 삶의 주도권은 확실하게 넘어가게 된다이러한 미래의 현실을 2~3세기 그리스도론 논쟁의 이론에 빗대어 보는, ‘가현설(假現說)’도 아니고 양자설(養子說)도 아니다무엇일까사이보그는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이 창조의 질서를 벗어나 신의 의지와 영역을 탐하여 생겨난 인종 이다.   


하느님은 땀을 흘려야 먹고 살리라는 프로그램을 탑재시켜 인간을 창조하셨다그 존재론적 조건의 삶을 거부하며 땀흘리지 않고 살고자일을 쉽고 적게 하고 많이 받고자그리고 무신론적 행복자로 살고자 열망한 대가는 신과 인간의 관계를 멀어지게 한다신이 인간을 창조하셨기에 인간은 신을 지켜야만 신의 생명으로 살아갈 수 있다국수잔치도 할 수 없고결혼도 출산도 조건화 시켜버린 삶의 시대, AI 가 인간을 조종하는 시대에서 기쁜소식이란 무엇인가무엇을 선포할 것인가우리 시대의 복음선포는 노동하는 인간상의 복구이다제 삶에 필요한 것을 스스로 구하는 삶의 고유한 권리를 뺏기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 소백산이 흐려 보인다.


나에게 이런 사람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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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와 초의.jpg» 제주에 유배간 추사를 찾아 위로하러 갔다가 초막을 짓고 살았던 초의. 둘을 형상화한 인형으로 제주 추사 유배지에 전시돼 있다

 

 

구멍이 숭숭 뚫린 제주의 담벼락을 보며 빈틈의 유용함을 생각한다. 틈이 용납하지 않으면 균열이 되고 말리라. 완벽하게 쌓아올린 가치와 빼곡이 채운 시간들이 어느 순간 자신을 옥죄어 작은 바람에도 견디지 못하고 흔들리게 되고 말리라.

 

바람길을 만들어 줘야

들숨날숨 드나들고

생각도

마음도

인연도

사람도 자유롭게 노니는 집이 되리라.

 

은정 씨는 책과 술과 차와 사람을 좋아한다. 수수한 은정 씨는 소박한 일상을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이다. 출가수행자인 나를 친한 동네 오빠라고 생각한다. 내 기분이 아니 좋을 수 없다. 그는 근자에 서투른 희망보다 여유로운 직시라고 카톡의 문패를 달았다. 사유와 성찰의 인문학적 내공이 느껴진다. 그런 은정 씨가 제주를 여행하고 일지암 밴드에 위와 같은 소감을 남겼다. 이 글을 대하면서 홀연 추사가 떠올랐다. 그리고 8년 동안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한 추사를 찾아 함께 머문 초의와 소치가 자연스레 연상되었다. 이 연상은 단순히 제주라는 지역의 연고성만은 아니다. ‘틈을 용납하는 빈틈의 유용함, 바로 추사와 초의 선사에게 해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초의와 추사의 금란지교는 익히 알려졌다. 그런데 우리는 단순히 학문과 차를 나눈 교유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더 깊이 그들 교유의 행간을 들여다보면 빈틈 사이로 그들의 바람길과 들숨날숨을 만날 수 있다. 그 빈틈 사이로 그 둘의 생각도 마음도 인연도 자유롭게 오고갔던 것이다.

그들 사이의 빈틈은 무엇일까? 바로 그 어느 것도 감출 수 없는, 감출 일 없는 믿음과 사랑이다. 그들은 자연스레 서로가 서로에게 무장을 해제했다. 그들 사이는 권력과 명예를 다툴 일이 애초에 있지 않았다. 지식을 자랑하고 애써 자신을 포장할 필요가 없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진솔했기에 자신들의 인간적인 한계와 다른 이에게 하소연할 수 없는 속내를 드러내었다. 그런 빈틈의 들숨과 날숨을 지금 우리는 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편지에게 읽을 수 있다. 또 하나 그들의 우정이 놀라운 것은, 불교를 억압하는 유교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신분과 사상의 경계를 뛰어넘은 그들의 우정과 교유가 새삼스럽다.


추사는 불교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불교세계에 깊이 심취한 사람이다. 그는 젊은 나이에 학림암의 해붕대사와 불교철학의 진수인 공()사상에 대해 토론할 정도였다. 제주도 유배의 여정에서 일지암에 묵은 그는 달마대사의 <관심론><혈맥론>에 대해 초의와 견해를 주고 받았다. 또 제주에서 초의에게 보낸 편지에는 <법원주림><종경록>에 대해 토론해 보고 싶다고 했다. 이들 전적은 선사상을 논한 글들이다. 경전에 대한 깊은 천착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사상서이다. 또 추사는 백파 선사의 <선문수경>에 대해 이른바 망증 15를 공개적으로 던지며 논쟁했다. 추사의 불교인연은 집안의 내력이기도 하다. 그의 증조부 김한신은 예산에 화암사를 창건했다. <가야산 해인사 중건 상량문>을 쓰기도 했고, 여러 스님들의 화상에 찬을 하기도 했다. 200개가 넘는 호중에서 불교적 이름도 많다. 병거사(病士), 정선(靜禪), 불노(佛老), 단파(檀波)가 그것이다. 단파는 범어 단나바라밀을 음차한 이름이다. 보시의 뜻이다. 추사는 생애 마지막을 서울 봉은사에서 지냈으며 불교에 귀의하는 수계를 받기도 했다. 이는 상유현의 기록에 있다.


일지암.jpg» 초의와 추사가 함께 차를 마신 전남 해남 대흥사 일지암

 

당대의 금석학자요 고증학의 대가인 추사, 중국의 서예가들조차 혀를 내두른 탁월한 글씨, 그런 시대의 천재 추사가 단 한사람 초의에게는 그저 어린아이였고 응석받이였던 것이다. 늘 엄정하고 완벽주의자에 가까운 그도 숨 쉴 공간이 필요했던 것일까? 초의에게 보낸 편지에는 늘 장난이 가득하다. 초의가 보낸 편지와 차를 받고서 차가 맛있는 까닭은 오직 차에게 있지 스님과 스님의 편지에 있지 않다고 너스레를 친다. 산중에서 뭐 그리 바쁜 일이 있다고 편지 한 장 없느냐고 그리움을 은근히 내비친다. 나아가 스님을 보고 싶어 눈병이 날 지경이라고 솔직하게 속내를 털어놓는다. 두어해 묵은 차를 이번에는 보내지 않으면 고함소리와 몽둥이를 피할 길이 없다고 협박한다. 초의와 추사의 사이를 생각하면서 우리는 묻는다. “나에게 이런 사람이 있는가?” 그런 추사가 그리워 초의는 그의 사후 2년 후에 비통한 제문을 올린다.

 

슬프다. 선생이시여, 42년의 깊은 우정을 잊지 말고 저 세상에서는 오랫동안 인연을 맺읍시다. 생전에는 자주 만나지 못했지만, 도에 대해 담론할 때면 그대는 마치 폭우나 우레처럼 당당했고, 정담을 나눌 때면 그대는 실로 봄바람과 같고 따스한 햇살과도 같았지요.

손수 달인 차를 함께 나누며, 슬픈 소식을 들으면 그대는 눈물을 뿌려 옷깃을 적시곤 했지요. 생전에 말하던 그대 모습 지금도 거울처럼 또렷하여 그대 잃은 슬픔 이루 헤아릴 수 없나이다“ <완당 김공 제문>, 번역/유홍준

 

초의와 추사의 찻자리, 그 빈틈 사이에 꽃이 피고 물이 흐르네.

 


정직에 예가 없으면 잔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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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중함도 예가 지나치면 고통이 되고 신중함도 예가 지나치면 비겁함이 된다.

용맹에 예가 없으면 난폭하게 되고 정직에 예가 없으면 잔혹하게 된다.


                                -논어


예는 자기 자신 비우는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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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는 자기 자신을 비우는 거울이다.


           -괴테

죽음이 있어 오늘이 더욱 소중한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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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jpg


모든 일에 부정적인 남자가 있었다. 
전쟁 중에 상관의 명령의 불복종하였다는 이유로 총살형을 받았다. 
그런데 형 집행 얼마 전에 총살형이 교수형으로 바뀌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남자는 말했다.
"이 놈의 나라. 그렇게 전쟁을 하더니 결국 총알이 다 떨어졌군."
그런데 얼마 뒤에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는 다시 말했다. 
"망할 놈의 나라. 밧줄도 다 떨어졌네." 
다행스럽게도 며칠 뒤에는 사면이 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또 말했다.
"이런 빌어먹을. 이제는 죄수들에게 먹일 식량도 다 떨어졌군."


+
사람은 본성적으로 부정적입니다. 사람의 뇌는 긍정적인 생각보다 부정적인 생각에 더 빨리 반응을 합니다. 같은 사람에 대한 같은 수의 좋은 평가항목과 나쁜 평가항목을 동시에 보여 주고 나중에 물으면 나쁜 평가항목을 훨씬 많이 기억한다는 실험결과도 있습니다.


이러한 부정의 본질은 죽음 때문입니다.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살기 때문에 그 죽음의 무의식이 부정적인 생각을 양산합니다. 죽음은 세 가지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첫째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나도 죽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죽음을 보면서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 지구상에는 73억 이상의 인구가 사는데, 평균 매년 5천만 명이 죽습니다. 매일 14만명이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렇게 죽어가다 보면 머지않아 내 차례도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셋째는 죽음은 예기치 않고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오늘이 내 죽음의 날이 될 수 있다는 불안이 무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부정의 종결자인 죽음이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기에 사람은 본능적으로 부정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하며 모든 삶이 오로지 부정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행복이 존재하고, 긍정적인 일이 주변에 많습니다. 죽음 만을 생각하고 살면 염세적이지만 죽음이 있기에 생명이 더욱 귀한 것이며 죽음의 날이 있기에 오늘이 소중한 것으로 여긴다면 긍정적입니다. 오히려 부정의 바다에 긍정의 배를 띄워야 합니다. 바닷물에 사는 산 물고기는 소금에 쩔지 않습니다. 갤럽 선임연구자인 셰인 로페즈는 책 <인간의 강점 발견하기>에서 ‘세 개의 긍정이 하나의 부정을 이길 수 있다’고 말합니다. 부정적인 말을 들을 수도 있지만 그 보다 더 많은 긍정적인 말을 하고 긍정적인 말을 들어야 합니다.


긍정의 말은 격려와 칭찬으로 시작됩니다. 부정의 두려움을 이기는 것은 긍정의 용기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시나브로 들어올 때 좋은 사람에 대한 좋은 기억을 떠올려 보십시오, 오늘은 세 사람에게 세 가지의 긍정의 생각과 세 마디의 긍정적인 말을 하는 날로 정해봅시다.


두려움 속으로 들어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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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찍 랍돈의 5가지 화두
• 숨은 결함을 밝혀라. 우리의 허물은 숨어 있어서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에고가 허물을 숨기고 부인합니다. 숨은 허물을 인정하면 허물이 사라집니다. 알아차림은 불과 비유합니다. 모든 허물을 태워 버립니다. 이것이 알아차림의 힘입니다. 


• 불쾌한 것을 접하라. 평소에 거부하는 것을 환영하는 겁니다. 내면의 두려움과 슬픔과 우리를 힘들게 하는 모든 것을 열린 마음으로 친절하게 접합니다. 여기서 치유와 해탈이 일어납니다. 불쾌한 어떤 것도 분별없이 접합니다. 

• 돕기 싫은 사람을 도우라. 도와줄 수 없다고 생각하고 멀리하고 싶은 사람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실제로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이 아니고 적극적으로 도우라는 말도 아닙니다. 사람을 배제하고 도울 수 없는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성불 할 때까지 돕겠다는 순수한 의도를 가집니다. 조건에 맞으면 자비심을 갖는 나쁜 습관을 버리고 조건없이 평등하게 모든 중생의 해탈과 행복을 책임집니다. 

• 집착하는 것을 보시하라. 집착하는 것이 있으면 남에게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집착하는 모든 것을 무조건 남에게 주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합니다. 일체 집착하지 않도록 집착을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좋은 이름과 재산과 몸까지 다 줄 수 있는 무집착의 마음을 가집니다. 사람을 집착하면 집착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한다면 놓아줄줄도 알아야 합니다. 집착하는 마음에 고통이 있으며 집착없는 마음에 평화가 있습니다. 

• 무서운 곳으로 가라. '나'를 집착해서 두려움이 일어납니다. 두려움이 일어나게 하는 곳에서 수행할 수 있다면 두려움으로부터 해탈, 아집로부터 해탈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시체가 썩는 무덤에서 명상 했답니다. 내면의 그림자를 반깁니다. 어두움속으로 기꺼이 들어갑니다. 

마찍 랍돈은 12세기 티벳의 위대한 여성 수행자였습니다. '파맘빠 상계'스승께 받은 5가지 화두를 바탕으로 '쬐'수행을 하셨습니다. 쬐수행은 내면의 '귀신'(습관)을 직면하고 환영하는 심리치유 입니다. 


탕카-.jpg

Machig Labdron's Five Slogans, given to her by Padampa Sangye

1) Confess your hidden faults.
2) Approach what you find repulsive.
3) Help those you think you cannot help (sometimes translated as those you do not want to help).
4) Anything you are attached to, give that (up. As in, let it go).
5) Go to the places that scare you.

허드슨강가의 공동체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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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브루더호프공동체인 미국 메이폴리치에 살고 있는 한국교포 박성훈씨가 보내온 글입니다.>


박성훈-.jpg» 박성훈씨가 허드슨강에서 잡은 스트라이퍼베스를 들어보이고 있다

 

지난달 한국 방문 때부터 스트라이퍼 베스를 생각하며 손이 근질근질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돌아오자 마자 여러번 허드슨 강가에 들락날락 했지요. 그런데 이번엔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지요. 

 낚시대가 힘차게 휘어저 내려가 잡혔다 싶어 낚시줄을 감아 올리면 엄청 크고 무거운 메기나 장어만 자꾸 걸려 우리를 실망 시켰습니다.

 참고로 허드슨 강에 사는 메기나 장어는 오염상 먹지 않습니다. 스트라이퍼베스는 대서양에서 살다가 4월 중순에서 5월 말까지 이 시기에만 알을 낳으로 허드슨강으로 올라오기 때문에 안전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저희 공동체가 소유하고 있는 허드슨강가 부지에  스트라이퍼 베스 낚시 전용으로  보트를 타고 나가야 닿을 수 있는 작은 부두를 하나 설치해 놓은 것이 있는데,  허드슨 강 중심부에 근접해 강가에서 잡는 것보다 스트라이퍼 잡을 확률이 아주 높아 이 시기가 되면 뉴욕에 있는 전 공동체 형제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곳이라 사용하기가 여간 어려운 곳이 아닙니다.  그나마 shop(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형제들을 근무시간에 보내  지난 몇년간 시도를 해 봤는데 운이 없게도 저는 한번도 못잡고 우리가 떠나면 다음 팀은 몇 마리씩 잡곤해서  개인적으로 별로 좋은 기억이 없는  곳입니다.   


브루더.jpg» 허드슨강에 보트를 타고 나가는 브루더호프의 아이들


 그러던 중 어느 날  모임이  끝난 저녁   허드슨 강가에 설치한 부두를  관리하는 형제가 찾아와 오늘 저녁 우리 가족이 부두를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벌써 물이 차서 낚시할 시간이 별로 없는 것 같아 안 가겠다고 하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말했더니,  아내가 펄쩍 뛰면서 아니 이렇게 좋은 기회를 왜 안가냐면서 하빈이 유빈이가 가면 얼마나 좋아하겠냐고  해서 마음을 바꾸어 다시금 그 형제에게 전화해  지금도 사용 가능한지 물어본 후 아이들과 허드슨 강가로 갔습니다. 

 허드슨 강에 도착하니  오후 6시쯤 되었습니다.  유빈이는 혼자 강가에서 스트라이퍼베스 미끼로 사용할 청어를 열심히 잡았습니다.  스트라이퍼베스는 살아있는 청어를 좋아합니다. 


 플라스틱 고무 만든 청어와 비슷한 모양의 루어를 낚시 바늘에 달아 물속에 던지면 청어들이 자기 우두머리인줄 알고 졸졸 따라옵니다.  청어가 루어를 따라 오면 물속에 대기하고 있던 그물을 들어 올리면 잡히는데 사실 청어 잡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한국에선 청어로 과매기를 만들어 먹지만 이곳에선 가시가 많아 먹지 않고 미끼로만 사용합니다.  유럽 특히 독일 사람들은 청어로 피클을 만들어 뼈가 흐물어지게 해서 먹기도 합니다. 


 유빈이가 금방 잡은 펄덕이는 청어를 보트를 타고 부두까지 나가 낚시바늘에 달아 힘껏 강물로 던졌습니다. 그 중 2개는 다른 형제가 귀뜸해준 새로운 방법을 시도했습니다.  하빈이가 낚시대를 잡고 부두에 남아 있고 유빈이는 청어가 달려 있는 낚시줄 끝을 잡아 보트에 타고 제가 보트를 운전해  부두에서 더 깊은 데로 나아가 유빈이가 낚시줄을 떨어뜨렸습니다. 마치 007작전을 수행하듯…


하빈유빈-.jpg» 브루더호프공동체에서 하빈 유빈이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박성훈씨


 부두에 설치해 놓은 비치의자에 앉아 엄청 큰 스트라이퍼베스가 걸려 낚시대가 쑤욱 내려가길 기대하면서 허드슨 강의 저물어가는 태양을 한가롭게 즐기고 있었습니다.  하빈이는  기다리는 일이 심심한지 유빈이를 보트에 태워 주변을 돌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떨어지는 석양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라며 감사하면서 여유를 부리고 있었는데 물이 점점 빠지고 2시간이 흘러도 아무런 기척이 없자  조용히 하나님께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주님의 세계를 만끽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집에 왔는데 빈손으로 가게 하시면 안되죠…   저희 손에 큰 고기를 쥐어 보내시면 저희도 저희 집에 오는 사람들을 빈손으로 보내지 않겠습니다….  “ (전형적인 기복 신앙의 기도인가요.^^ 아뭏튼 마음은 평안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그리고 얼마후 맨 끝 낚시대, 바로 보트타고 낚시줄을 강 한 가운데로 멀리 떨어뜨린 낚시대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내가 ‘저거 낚시줄이 자꾸 움직이는 걸 보니 또 장어가 물렸나봐요, 한번 꺼내 봐요” 해서 낚시대를 감아 올리니 장어가 아니라 무지무지하게 큰  스트라이퍼 베스가 따라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낚시줄을 끊고 도망갈라 조심조심 힘겹게 낚시줄을 감아 올려 부두에 이 놈이 가까이 다가오자 아내가 뜰채로 스트라이퍼 베스를 퍼올려습니다. 그리곤 우리는 기쁘고 흥분이 된 상태로 아이들을 기다렸습니다.  하빈이와 유빈이가 부두로 다가오자 우리 부부는 집채만한 큰 메기를 잡았다며 능청을 떨며 어서 와 보라고 하자 아이들이 그섯을 들여다 보고는 너무 좋아합니다. 


 이래서 오늘도 또 어느 형제가 말한 격언을 되새깁니다. 

 “The husband is the head of the house. The wife is the decision maker.”(가장은 남편이지만, 결정권자는 아내다)


  한국에 다녀온 후에 우리 공동체 웹사이트에 제 글을 올렸습니다.

 https://www.bruderhof.com/en/voices-blog/world/korean-reunification-one-step-closer


 SungHoon & SoonOk Park

 www.Bruderhof.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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