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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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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말고 내가 원하는일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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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경쟁에서 이기는자가 행복한자라는 사회의식이 우리사회를 오염시키고 있습니다ㅡ일등을 하기 위해서라면 무슨짓을 해도 좋다는 병적인 신념은 결국 약자를 밢고 강자의 등을 치는 비겁한 행위를 조장하게 했습니다
더 안좋은것은 내가 좋아하는삶이 아니라 일등이라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삶을 사는것입니다ㅡ문제는 이런삶은 시간이 갈수록 공허감과 우울감을 불러옵니다ㅡ심지어 굴욕감을 느끼기도 합니다내가 좋아서가 아니라 남 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살다보니ㅡ남들이 나를 부러워하지않을때 심리적으로 허물어진다는것입니다
등수행복론이 가지는 허상의 실체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하는일에 재미와 흥미를 가질때 가장 행복합니다
그리고 그런 자기의 삶을 다른사람들에게 나누어줄때 그 행복감이 배가됩니다
이런 행복감을 느낀사람들은 남들과 비교하지않고 자족하고 즐겁게 삽니다


문제는 마음이 결핍욕구와 병적인 컴플렉스에 시달릴때 이런 마음을 가지기가 어렵다는것입니다
오랫동안 남의 인생을 부러워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늘 심리적으로 유기견 같은 상태엿는데
그러면서 그렇게 남의 것에 껄떡대는 자신을 심하게 혐오했습니다
그렇게 오래도록 심리적 악순환에 빠져살다가 상담을 받으면서 내안의 자원들을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곤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삶을 살기 시작한것입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사람들이 찾아오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말그대로 인생역전이라고나 할까요
변두리 찌질한 인생이 나름 자리를 잡은것이지요



지나친 방종, 지나친 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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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시절에 지나치게 

방종하면 마음의 원기를 잃으며 

너무 절제하면 융통성이 없어진다.


-C.A. 생트뵈에브(프랑스의 비평가 시인 소설가)

귀 길고 혀 짧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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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혜로운 사람은 귀가 길고 혀가 짧다.


                  -영국속담

아버지의 위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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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한 명이 스승 백 명보다 낫다.


        -E.허버트(영국의 철학자)

생명살림의 성자, 해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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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JPG» 해월 최시형의 순도 120돌인 6월2일 경기도 여주 천덕산 해월 묘사를 찾아 참례식을 거행하는 사람들


 해월--.jpg» 순도 직전 해월의 모습우리 민족 근현대 고난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해월 최시형(1827~1898)과 만난다. 고난사 만이 아니다. 기득권의 부패와 차별과 불평등에 맞선 저항과 투쟁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촛불-6·10항쟁-광주항쟁-4.19-독립운동-3·1운동-동학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해월이 있다. 이와는 결이 다른, 비폭력·평화·생명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도 그를 만난다. 그는 새로운 세상을 열려는 개벽 사상가이자 실천가였다.

 지난 2일은 해월이 관에 의해 처형된 지 120돌이 된 날이었다. 해월은 1861년 35살에 천도교(동학)에 입도해 2년 만인 1863년 37세에 1세 교조인 수운 최제우 대신사로부터 도통을 전수 받았다. 1년 뒤인 1864년 수운이 처형을 당하자 동학 최고 지도자가 되어 72세로 순도할 때까지 평생 쫓겨 다니며 개벽 세상을 열었다. 보따리 하나 짊어지고 무려 200곳을 옮겨 다녀 ’최보따리’로 불린 해월의 발자취를 찾았다. 해월 순도 120돌을 맞아 천도교가 연 1~2일 ’동학기행’ 동행이었다.


직동리-.JPG» 해월이 1년간 피신해있던 강원도 영월군 중동면 직동리에 세워진 해월 추모비 옆에 선 직동리 사람들과 천도교 순례자들. 사람이 즉 하늘(한울)이니 사람을 하늘처럼 대하라는 한자성어가 쓰여 있다.


직동--.JPG직동한옥--.JPG

 

 아직도 소 쟁기로 밭 가는 오지

 강원도 영월군 중동면 직동리는 해월이 관군의 검거를 피해 1871년 숨어든 곳이다. 해발 500미터의 밭들이 비탈져 아직도 쟁기로 밭을 가는 모습이 보인다. 해월은 처음 두위봉에 있는 호굴에 숨었다. 쟁기질을 하던 이철규(59)씨가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한 호굴은 비를 피해 능히 10명이 앉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호굴은 호랑이굴의 줄임말이다. 관군이 검거하러 왔을 때 굴 입구를 호랑이가 지키고 있어 해월을 검거하지 못하고 두려워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해월은 굴에서 내려와 이 마을에 1년을 머물렀다. 이때 한 설교가 유명한 ’사람과 사물을 대하는 법’인 대인접물(待人接物)이다. 해월은 사람을 다룰 때 ‘남의 악은 감추어 주고 선을 드러내 주라’고 했다. 또 사물에 대해서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내 몸같이 아끼라’고 했다. 이 마을 36가구 57명 가운데 천도교인은 남아있지 않다. 그런데 순례객을 맞이하는 마을의 인심이 남다르다. 윤경섭(54)이장이 마을회관으로 이끌어 음료수를 대접한다. 마을엔 멋진 회관이 지어지고 있다. 윤 이장은 “단 500만원으로, 마을분들이 자기 산의 나무를 베어오고 울력 봉사를 해 한옥으로 마을회관을 짓고 있다”며 “요즘 세상에 이런 인심과 협력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자랑했다.


송골-.JPG» 원주 송골에 있는 해월 추모비 옆에 선 '무위당사람들'김용우 이사

 

송골1-.JPG송골--.JPG


 가톨릭 신자면서도 정신적 스승으로 

 이어 간 곳이 강원 원주시 호저면 고산리다. ’송골’로도 불린 이곳은 해월이 1898년 4월5일 관헌에게 체포된 곳이다. 이 마을엔 당시 해월이 머문 원진여의 집이 복원돼 있다. 큰 길가엔 ’무위당  장일순’(1924~94) 등이 세운 비가 세워져 있다. 비엔 ’모든 이웃의 벗 최보따리 선생을 기리며’라고 쓰여있다. 장일순은 1970년대부터 가톨릭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와 민주화 운동을 했고, 1977년부터 생명살림 운동을 전개해 현재 유기농생산물 생산자 소비자 조직인 ’한살림 생협’을 세웠다. 

 장일순 선생을 모시고 활동했던 ’무위당사람들’ 김용우(55)이사는 “장 선생은 생전에 집안에 오는 모든 사람을 하늘처럼 공경했던 할아버지 장경호와 서화를 가르쳐준 차강 박기정, 그리고 해월 세 분만을 스승으로 언급했다”면서 “두 분은 직접 모신 분이지만, 해월은 뵙지 못했으나 삶에 깊은 감명을 받아 스승으로 모셨다”고 전했다. 장일순이 평생 가톨릭을 믿으면서도 해월을 정신적 스승으로 따랐다는 것이다. 

 그는 또 “장 선생이 1945년 경성공업전문대(서울대 공대 전신)에 합격했으나 총장에 미군 대위를 임명하는 것에 반대해 제적 당하고 원주에 내려와 1년간 서점주인 오창세 선생으로부터 동학을 공부했다”면서 “독재시대 투쟁을 거치며 누군가를 패배시키고 배제하는 서양사상에 한계를 느껴 1977년 획기적 회심을 통해 생명사상운동으로 전환했다”고 설명했다. 윤 이사는 “<녹색평론> 김종철 발행인은 ‘해월의 정신을 다시 살려낸 것만으로도 장 선생의 역할을 다한 것’이라고 평한다”면서 “장 선생의 뜻에 따라 지금도 해마다 여주 천덕산에 있는 해월의 묘소에 참배를 가는데, 원주의 치악산을 바라보고 있는 해월의 묘소를 볼 때마다 해월이 장 선생으로 환생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묘소2-.JPG» 해월 순도 120돌을 맞아 묘소 참배를 위해 여주 천덕산 중턱까지 올라온 참례객들

서울동학-.JPG» '사람이 하늘'이라는 동학사상을 공부하기 위해 모여 공부하며 해월 묘소를 찾은 '서울동학'회원들




 고손자·해외교포 등 300여명 참례식

 교령--.JPG» 이정희 천도교 교령해월의 묘소는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주록리 버스 정류장에서 1시간 가량을 걸어서 올라가야 하는 해발 550미터 천덕산 중턱에 있다. 살아서도 평생 쫓겨 다니던 삶은 죽어서도 그랬다. 해월은 처형 당한 뒤 서울 광희문 밖에 임시로 매장됐다. 이를 동학교도들이 한강 건너 송파로 옮겨 묻었으나 화를 입을 것을 두려워한 땅 소유주의 요청으로 제자들이 다시 유골을 수습해 한밤 중에 길도 없는 첩첩 산을 넘어 이곳에 안장했다고 한다.

 나이 든 교도들이 아래서부터 뗏장을 봉투에 담아 땀을 뻘뻘 흘리며 산길을 올아간다. 해월 묘는 새롭게 단장하기 위해 뗏장이 벗겨져 빨간 흙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 모습이 마치 갓 태어난 생명체인 핏덩이 같다. 그나마 2일 오전 11시 순도 120돌을 맞은 ‘참례식’엔 300여명이 올라와 고적한 묘소가 모처럼 북적였다. 해월의 고손자인 최인경씨를 비롯한 후손들도 자리했다. 더구나 천도교인들이 아닌 이들도 적지 않았다. 동학의 생명 존중 사상을 공부하는 ’서울동학’의 김기준 ‘우이령사람들’ 이사와 소리꾼 임진택씨 등 회원 40여명은 버스 한대를 빌려 왔다.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온 마가렛 김은 “미국에서 평화운동을 하면서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는’ 동학을 만나 우리 민족과 민주주의 뿌리임을 확신해 이를 교포 2세·3세들에게 전해주는 인내천운동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천도교 이정희 교령은 “우리 국민조차 노예해방을 한 링컨이나 비폭력운동가 간디는  알아도, 모든 차별 철폐에 앞장서면서도 비폭력 평화 생명살림 정신으로 일관한 해월은 모르고 있어 안타깝고, 스승께 죄송스럽다”며 해월 묘소에 고개를 숙였다.

엄마 엄아 우리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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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감각을 잃지 않고 살려고 꽤나 노력을 하는 편이고 또 늘 젊게 산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역시 나이는 못 속이는 것 같다. 나이도 나이지만 30여년을 수녀원 울타리에서 살다보니 세상의 것들에 둔해지기 마련이다. 그 중에 가장 빨리 변해 버리는 대중 매체의 움직임이나 청소년들의 은밀한 언어(?)들은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다. 어떤 청소년이 요즘은 ‘엄빠 가족’이 많아요 라고 하는 데 무슨 말인가 했더니 편부나 편모, 즉 한부모 가정을 지칭하는 신조어였다. 그러고 보니 내 주변에도 그 ‘엄빠 가정’이 참으로 많다.   


    늘 내가 만나고 있는 사별 가족들, 남편을 잃은 아내,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남편, 이들이 ‘엄빠’족이었다. 이들은 어린 자녀들을 두고 세상을 떠난 엄마를 대신해서 아빠는 엄마의 역할까지 해야 하고 반면 아빠를 일찍 잃은 아이들을 위해서 엄마는 이제 아빠의 몫까지 해내야 하는 것이다. 배우자 사별을 경험하신 이들은 ‘내가 밥하고 빨래하고 엄마의 몫까지 해야지, 내가 취직해서 돈 벌면서 아빠의 빈 자리를 채워 줄거야’라고 결심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지만 세상의 편견과 싸워야 하고 학부모로서의 역할에서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두배의 노력을 하지만 결과는 아니 아이들의 만족도는 그 반도 채워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살림만 하던 한 엄마는 남편이 떠난 후 당장 경제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특별한 경력이나 자격증도 없기에 오전에는 목욕탕 청소, 오후에는 음식점 식당 보조, 밤에는 대리 운전, 그리고 주말에는 대형 마트 주차 관리... 그저 자식들 남 부럽지 않게 먹이고 입히고 학교 다니게 하려고 자신의 몸도 잘 돌보지 않고 열심히 살았다. 경제적인 면에서 이제 아빠의 몫까지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아빠를 잃은 것만이 아니라 엄마도 잃어가고 있었다. 음식을 챙겨 놓고 일찍 나가는 엄마, 한 밤중이나 새벽에 들어오는 엄마, 주말에도 안 계시는 엄마는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도리어 아이들은 모든 면에서 무너져 가고 있었다. 초등학생 둘이서 주섬 주섬 챙겨먹고 나가는 음식, 편의점에서 사 먹는 음식이 그 아이들의 성장과 영양에 도움을 주지 못했던지 영양 실조와 결핵이 나타났고 서울 한 복판에서 보기 드문 이가 머리에 생기기 시작했다.  


   몸이 부서지는 것처럼 열심히 최선을 다했는데 정말 하늘이 무너지더란다. 이 때부터 그 엄마는 무리해서 ‘엄빠’로 살기보다는 우선 엄마로 열심히 살기로 하고 수입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고 일을 조정하고 아이들과 하루에 두 끼는 꼭 같이 먹기 시작했다. 몇 달만에 세 식구가 밥상앞에 같이 앉았을 때 아이들이 이렇게 말했단다. ‘엄마랑 같이 밥 먹으니까 너무 좋아, 김치랑만 먹어도 무지 맛있어’ 우리 모두는 결코 완벽한 ‘엄빠’가 될 수 없다. 


사는 즐거움, 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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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오현.jpg» 지난달 30일 강원도 고성 금강산 건봉사에 거행된 조오현 스님의 다비식장의 오현 스님 영정 사진


얼마 전 설악산의 큰 어른 무산 스님이 적멸의 세계에 들었다. 재작년 백담사 무문관 선원에서 스님을 모시고 참선정진을 함께한 인연의 복을 누렸다. “삶의 즐거움을 모르는 놈이 죽음의 즐거움을 알겠느냐” 조오현이라는 필명으로 알려진 스님의 시 <적멸을 위하여>는 스님의 입적 후 나의 화두가 되었다. ‘죽음의 즐거움’이라니! 생과 사가 본디 경계가 없고 뜬구름과 같이 실체가 없다는 선언은 이미 진부하다. 문득 ‘삶의 즐거움’이 발목을 잡는다. 분명 재물과 권력을 움켜쥐고, 혹은 감각에 취하는 즐거움은 아닐 터이다. 답은 ‘적멸’에 있을 것이다. 헛되고 부질없는 생각과 감정을 단박에 놓아버린 그 자리에서 일상의 소소한 일들이 소중한 의미와 즐거움으로 꽃 피는 경지라고 가늠해 본다. 


  스님의 내면은 엄정하고 치열했다. 아울러 스님의 시는 탈속의 적멸과 자유가 뿜어 나온다.. 그리고 일상은 범속한 격을 훌훌 벗어 버리고 호방하고 따뜻하고 세심했다. 무엇보다도 무산 스님의 매력은 경전과 절의 담장을 넘어 세간의 삶과 언어에서 진리를 보고 듣는 데 있다. 좋은 말씀이 무어냐고 물으면  우리가 흔히 하는 말들에 주목하라고 했다. 오랜 세월 전해오는 속담에 우리가 가야할 길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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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인지 수많은 세월 동안 우리 곁에 있는 말들이 새삼스럽다. 일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말들이 실은 경전의 말씀과 다르지 않고 오히려 생생하다. 나는 그 중에 인과율의 진리를 담고 있는 말들이 참 좋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어떤 행위에 상응하는 결과를 업보라고 한다. 악의 열매가 익기 전에는 악한 사람도 행운이 따르고 선의 열매가 익기 전에는 선한 사람도 화를 당한다. 그러나 악의 열매가 익고 선의 열매가 익으면 악한 사람은 화를 당하고 선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


  다만 시기의 다름이 있을 뿐 인과의 이치는 확연하다는 뜻이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미투와 적폐청산을 두고 어느 스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업보에 시차는 있을지언정 오차는 없다” 이 명문에 무릎을 치며 나는 이렇게 화답했다. “업보에는 오차도 없지만 시차도 없다”. 왜냐하면, 내가 누구에게 거짓말을 하면 당장에 그 거짓말이 드러날 수도 있고, 오랜 시간이 지나 드러날 수도 있다. 그 거짓이 묻힐 수도 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업보에 시차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내가 거짓말을 하면 나는 ‘즉시’에 ‘거짓말을 한 사람’이 된다. 거짓말을 하고 나서 사나흘 후에 내가 거짓말을 한 사람이 되는 결과는 있을 수 없으니까 말이다. 당연한 사실이 곧 진실이라는 깨우침을 준다. 


다비-.JPG» 오현 스님의 다비 모습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말은 이웃과의 관계에서 작동하는 매뉴얼이다.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이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라는 경구와 닿아있다. ‘먹는 데서 인심 난다’라는 말을 늘 새기면서 암자를 찾는 벗들에게 정성껏 차 한 잔 나눈다. 자비의 나눔이 그리 멀지 않음을 일상의 말들에서 실감한다.


  그러고 보니 삶의 즐거움이 그리 어렵지 않음을 알겠다. 움켜쥔 손 다시 털어버리는 일, 무어 그리 어려울까? 우리 곁에 있는 말들, 그 말들과 함께 사는 일이 삶의 즐거움 아니더냐. 그렇게 스님의 시처럼 죽음의 기쁨도 누려볼까? “어자피 한 마리 기는 벌레가 아니더냐/ 이다음 숲에서 사는 새의 먹이로 가야겠다”


질문이 달라져야 답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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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2-.jpg


세실과 모리스가 예배를 드리러 가는 중이었다.
세실이 물었다.
“모리스, 자네는 기도 중에 담배를 피워도 된다고 생각하나?”
모리스가 대답했다.
“글쎄 잘 모르겠는데.
신부님께 한번 여쭤보는 게 어떻겠나?”
세실이 먼저 신부님에게 다가가 물었다.
“선생님, 기도 중에 담배를 피워도 되나요?”
신부님은 정색을 하면서 대답했다.
“형제여, 기도는 하나님과 나누는 엄숙한 대화인데, 절대 그럴 순 없지."
세실로부터 신부님의 답을 들은 모리스가 말했다.
“그건 자네가 질문을 잘못했기 때문이야.
내가 가서 다시 여쭤보겠네.”
이번에는 모리스가 신부님에게 물었다.
“신부님, 담배 피우는 중에는 기도를 하면 안 되나요?”
신부님은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형제여, 기도는 때와 장소가 필요 없다네.
담배를 피는 중에도 기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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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달라져야 답이 달라집니다.
동일한 현상도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을
"프레임(frame)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여대생이 밤에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술집에서 일하는 아가씨가
낮에 학교를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한다고 하면,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까요?
원하는 답을 얻으려면 질문을 달리 해야 합니다.
질문이 달라지면 답이 달라집니다!


침묵은 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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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없는 화’ 정신의 생명력 갉아먹어요

남편 사고 치면 침묵 모드 일쑤인 주부 “이제 제 감정 믿지 못하겠어요”


말-.jpg


Q) ‘내 삶의 주인 되기’ 10월20일자 사연을 봤습니다. 그 사연에서는 남편이 입을 다무는데, 저는 상황이 반대입니다. 화가 나면 아무 말도 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말도 안 되는 남편의 실수를 보거나 실망스러운 상황을 보면 그냥 입을 딱 닫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제가 화가 나면 좀 무서운지 더 실수를 합니다. 그걸 보면 저는 또 더 화가 납니다. 너무 바보 같고 무식해 보여서 입을 열면 제가 무슨 말을 하게 될지, 어떤 모욕을 줄지 저도 조절이 어려울 거 같아요. 어쩔 땐 내가 너무 쪼잔해 보여서 말하고 싶지 않기도 합니다. 배우자의 실수에 한두 번은 아주 너그럽게 넘어갑니다. 그러다 연타를 치면 화가 납니다. 이렇게 바보였나 싶기도 하고요. 저희는 나이 차이가 좀 납니다. 그래서 뭘 하든, 뭘 사든, 뭘 선택하든 제가 나서야 일이 풀립니다. 어떨 땐 제가 우쭐대지만 어떨 땐 피곤하고, 못 미덥고… 그래서 그가 바보 같고 그렇습니다. 저는 화를 아주 끝까지 내는 거 같습니다.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지지는 않지만 말없이 끝까지 화를 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혼자 있고 싶다고 과감히 문을 닫아버리지만 그러다 하루 이틀 정도 지나면 화가 가라앉고 그러다 보면 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화낸 것을 사과합니다만 풀리고 나면 제가 그냥 변덕 부린 것 같고 유아적이고…. 그래서 이제는 저도 제 감정을 믿지 못하겠습니다. - 명진


이번에는 침묵하는 아내가 사연을 보내셨네요.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떤 감정을 느끼고 또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는 어느 정도 기질적 영향을 받습니다. 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마다 다르게 반응하는 건 그 때문일 거예요. 타고난 성격은 원래 바뀌기 어렵지만 불편한 감정을 느끼면 입을 다물고 자기만의 동굴로 들어가 버리는 성향은 더욱 그렇습니다. 명진 님은 그래도 지면을 빌어 자신의 마음을 여셨네요. 변화를 위한 그 용기를 칭찬합니다.


사실 침묵은 상당히 강력한 공격입니다. 침묵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참 무력하고 소극적으로 대응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막상 당하는 사람은 거절과 거부, 그리고 버림받음의 감정을 강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넌 나를 입 다물게 했어, 네가 얼마나 나쁜지 알아? 하는 의미를 던져놓고는 소통할 기회, 해명할 기회를 주지 않으니 그 또한 괴로운 노릇입니다.


너무 자주 버럭 해서 자신의 화를 객관적으로 의식할 수 없게 된 사람과 마찬가지로, 화를 참는 사람도 자기감정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화가 표현되지 않으면 내부에서 소용돌이치거나 요동하기 때문에, 그저 막연하게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게 되지요. 폭발하면 치명적일 거라고 상상하며 스스로 두려움에 떠는 것입니다.


그런데 침묵으로 대처하는 습관이 심각해지면 누구보다 명진 님 자신이 해를 입습니다. 우선 당신이 뭘 원하는지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황은 조정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제대로 이해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원망과 화가 더욱 깊어질 겁니다. 입을 다무는 대신 생각이 많아집니다. 당신의 화가 정당하다는 걸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상대가 얼마나 잘못했는지, 그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괴로운지 하는 생각이 꼬리를 뭅니다. 화난 이유를 백 가지쯤은 찾아놨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화가 풀리니 그 또한 당혹스러우셨나 봅니다.


감정이란 게 원래 그렇습니다. 어떤 감정이든 예외 없이 왔다가 갑니다. 그러니 어느새 화가 풀렸다고 부끄러워할 이유는 없습니다. 화가 영원히 풀리지 않는다면 그게 더 문제겠지요.


중요한 점은, 자주 느끼는 감정을 당신 자신이라고 여기면 안 된다는 겁니다. 자주 찾아오는 불편한 손님을 당신 자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감정도 어찌 보면 내 마음에 찾아오는 손님이며, 당신은 손님을 맞는 주인이지 그가 아닙니다. 그러니 그의 명예를 위해 너무 많은 변명거리를 만들지 않아도 됩니다. 이를테면 남편이 나를 화나게 할 만큼 바보 같고 실수를 많이 한다는 생각이 그것입니다.


남편이 바보 같아 보인다는 말씀을 반복하셨지요. 남편을 그토록 마음으로 비난하셨다면 그만큼 자기 비난도 맹렬했겠네요. 저는 그 무엇보다 당신을 괴롭혔을 자기 비난이 염려됩니다. 당신은 자신을 쪼잔함, 변덕, 유아적 등등으로 표현합니다. 추측건대 자기 비난이 두려워 이제까지 실수하지 않으려고, 바보 같지 않으려고 부단히 자신을 다그치며 사셨을 겁니다. 자신의 유능함을 남편에게 과시하며 나는 바보 같지 않다고 잠시 안도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바보 같은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실 자기 비난입니다. 정신의 생명력을 갉아먹으니까요. 유능함은 타인에게 자주 이용당하지만 미숙한 측면은 타인의 도움을 얻어내기도 하니 무엇이 더 옳은 건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자신을 유능함, 완벽함 안에 가둘 때 다른 부분이 희생당할 수 있다는 걸 명심하세요. 실수하는 바보 같은 측면에는 천진난만함이나 자유로움, 낙천성, 직관력 등의 긍정적 측면이 연결돼 있습니다. 실수를 막으려다 자칫 자신의 긍정적 측면이 질식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화의 뿌리는 거기에 있을 겁니다. 나 스스로 나를 가두고 억압하는 곳 말입니다. 실수하지 않으려고, 유아적이고 속 좁은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입을 자물쇠로 채울 때마다 다른 한편에선 분노가 자랐을 겁니다. 나도 말 좀 하자고, 난 수치스러운 존재가 아니란 말이야!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고! 하면서 말이지요.


서툴게 화내도 괜찮습니다. 붉어진 얼굴로,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거리며 말해도 괜찮습니다. 속 좁은 생각이어도 괜찮습니다. 화를 느낌과 동시에 입을 다무는 자신을 지켜보면서 한두 마디의 말이라도 꺼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해보세요. 답답해, 속상해, 한심해, 내가 지친다, 같은 말도 괜찮습니다. 말하기를 반복할수록 감정은 여유를 찾을 거고, 표현은 조금씩 능숙해질 것입니다.

닭이 천이면 봉이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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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닭이 천이면 봉이 하나.-많은 사람 중에는 반드시 위인이 있다.


               -한국 속담

통제가 쉬운 육체와 어려운 육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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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육체에는 요긴한 부분이 여섯 가지가 있다.

 그 중 세가지는 자기가 지배할 수 없지만

다른 세 가지는 자기의 힘으로 아무렇게나 된다.

눈, 귀, 코가 전자이고 입, 손, 발이 후자다


       -탈무드

돈없다고 가오까지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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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관승-.JPG»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글로생활자’로서 나의 삶을 정의한다면 ‘폐침망찬’(廢寢忘餐·침식을 잊고 일에 몰두함)이다. 마감에 쫓기다보면 잠을 거르고 식사도 잊은 채 일을 해야만 할 때가 많다. 그렇게 얼마 동안 몰입의 시간을 보낸 뒤 면도를 하려고 욕실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거울에서 낯선 남자가 나를 응시하고 있는 게 아닌가.

“너는 도대체 누구냐?”


거울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비춰주는 도구다. 지나칠 정도로 솔직해서 두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거울을 들여다보는 사람들도 있다. 카페에서 휴대전화기로 자기 얼굴을 찍거나 들여다보는 여성들을 본다. 그러다가 일행이 나타나면 이런 질문이 들려온다.


“내 얼굴 어때? 많이 망가졌지? 피곤해서 그런지 피부가 말이 아니야.”

이럴 때 눈치 없이 진실을 말하면 안 된다.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센스가 동료 관계에서는 중요하다. 다행히 옆자리의 상대는 펄쩍 뛰면서 이렇게 화답한다.

“무슨 말이야? 시간을 역주행하나봐! 피부가 탱탱한데! 요즘 무슨 화장품 쓰는지 가르쳐줘!”


과연 우리는 스스로의 외모에 얼마나 만족하는 걸까? 몇 년 전 라이프스타일을 다루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잡지에서 미국, 프랑스, 브라질 등 42개국 여성을 상대로 한 외모 만족도를 조사한 적이 있다. 한국이 차지한 순위는 39위로 최하위권에 속했다. 중국과 대만 등 아시아 여성이 상대적으로 외모 만족도가 낮았지만, 한국 여성들이 스스로 더 낮은 점수를 주었다. 조사 대상 3명 가운데 2명꼴로 외모 자신감이 낮다고 조사되었다.


한국인의 외모 불안감은 어디서 비롯되있는 걸까? 여성 자신에게 있는 걸까, 아니면 한국 사회에 있는 걸까? 정확한 답을 알기 어렵지만 타인이 그 사람에게 느끼는 것보다 자신의 평가가 현저히 낮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외모 자존감도 높지 않다.


최근 들어 나의 관심사는 자화상이다. 미국의 일간지 <뉴욕 타임스>는 2000년 밀레니엄 특집에서 최고의 발견으로 ‘나’의 발견을 선정했다. 그것은 거울의 발명과 르네상스 시대 원근법에 눈을 뜨면서 이뤄진 업적이다. 가장 많은 자화상을 남긴 화가는 네덜란드의 렘브란트였다. 화려했던 시절과 달리 인생 말년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헌 옷 몇 벌과 화구가 전부였다. 그는 63세의 나이로 죽기 직전까지 늙은 자화상을 남겼다.


“그것은 분명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렘브란트는 그의 추한 모습을 결코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아주 성실하게 관찰했다. 우리가 이 작품의 아름다움이나 용모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잊어버리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성실성 때문이다. 이것은 살아 있는 인간의 실제 얼굴이다. 여기에는 포즈를 취한 흔적도 없고 허영의 그림자도 없으며 다만 자신의 생김새를 샅샅이 훑어보는 탐구만이 있었을 뿐이다.”


저명한 미술사가 곰브리치의 말이다. 여기서 탐구란 익숙했던 것을 낯설게 하는 작업이다. 가장 익숙한 자기의 얼굴을 낯설게 만드는 작업이다. 자화상이란 화가 자신을 밖으로 끌어내는 작업이다.

“너는 누구냐?”


익숙한 자기 자신을 낯설게 만드는 질문이다. ‘빨강과 초록으로, 인간의 무서운 정념을 표현하고 싶다’던 고흐의 자화상, 르네상스 시대의 독일 화가 뒤러의 자화상은 그런 질문을 담았다. 조선시대에도 멋진 자화상을 남긴 화가가 있다. 그의 이름은 윤두서. 고산 윤선도의 증손자이며, 다산 정약용의 외증조부였다. 그는 집안이 당쟁에서 밀려나자 벼슬을 포기하고 시와 서화에 매진했다고 한다. 1710년 종이에 담채로 그린 자화상은 드물게도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수염으로 가득한 중년 남자에게서 유독 눈빛만은 형안(빛나는 눈)이었다. 그는 왜 자화상을 세상에 남겼을까? 유명 영화인의 말을 패러디하면 이렇게 들린다.

“내가 권력이 없고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여기서 ‘가오’란 얼굴 또는 표정을 뜻하는 일본말에서 비롯된 것으로, 한국에서는 ‘가오를 잡다’는 말로 변형되어 쓰였다. ‘가오를 잡는다’ 함은 자존심의 표출이다.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했을 때,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간다. 예술가들이 자화상에 집착하는 근본 이유다.


이 시대 우리는 다른 것에 탐구 작업을 열심히 하면서도 정작 자기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맹목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줄에 서 있기를 좋아한다. 낯선 ‘내’가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알지 못하는 미지의 분야임에 틀림없다. 분명 내 몸이고 내 마음이지만 탐구가 이뤄지지 않았다.


지금 우리는 행복 불감증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시대 많은 사람이 스스로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 행복하지 않은 이유를 대라고 하면 누구나 10가지를 손쉽게 말한다. 반면에 행복한 이유를 대라고 하면 주저한다. 타인을 자꾸 공격하는 것은 내 마음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불만이 많을수록, 불안할수록 남을 헐뜯는다. 그것이 곧 자기를 증명하는 것이라 착각한다.


가끔은 ‘거울 리추얼(의식, 의례)’이 필요하다. 거울을 보면서 허세가 아닌 당당한 나를 만나는 의식이다. 남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한탄하지 말고, 남에게 없는 나만의 것들을 발견해보는 시간이다. 비교가 아닌 자기다움을 보여주겠다는 결심이다. 자신이 얼마나 멋져 보이는지 자기만 모르고 있다. 오래된 시간의 흔적 속에 남들에게 없는 색다른 스토리, 남다른 인생이 숨 쉬고 있다. 그게 진정한 ‘가오’고 진정한 섹시함 아닐까. 행복이든 뭐든 바로 여기서 출발할 테니까. 오래된 나 자신을 사랑하자!


진정한 수행자는 명예를 탐하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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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스님이 불심 깊은 태수 현능의 집에 가서 양식을 구했다.
태수 현능의 집에 젊고 잘 생긴 스님이 찾아 와서 탁발 독경을 했다. 청아한 염불 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
무엇을 원하는 스님인가요?
걸승입니다. 집집마다 다니면서 구걸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사정이 생겨 양식을 구하러 왔습니다.
무슨 사정인지요?

매우 부끄러운 일이지만 한 젊은 여인과 친해져서 신변의 시중을 들게 되었는데 그녀가 그만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저의 큰 실수인지라 임신 중 목숨을 이을 정도의 식량을 주고 싶습니다.
태수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스님 거처로 양식을 보내 주겠다고 하였다.
정말로 창피한 일이라 제가 사는 토굴을 알리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질 수 있는 만큼만 가져 가겠습니다.

태수는 이상히 여겨 하인을 시켜 뒤를 밟았다. 스님은 시내를 벗어나 점점 깊은 산으로 들어 갔다.
한 칸짜리 오두막에 들어 가서 혼자 읊조렸다.
아, 피곤하다. 이제 한 철 지낼 양식은 마련되었구나. 하인은 너무 이상해서 나무 그늘에 숨어서 하룻밤을 지냈다.

밤이 깊어지니 낭낭한 음성으로 법화경 읽는 소리가 들려왔다. 독경은 밤새 계속되었다. 마치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았다. 그는 너무 감동해서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렸다.
하인은 날이 밝자 주인에게 돌아가 사실대로 말했다. 태수는 놀라워 하며 편지를 쓰고 양식을 보냈다.
스님께서 어제 원한 것이 안거 때 필요한 식량인 것 같습니다. 어제 드린 식량이 부족할 것 같아 다시 보냅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하인은 가지고 간 편지를 읽어 드렸다. 스님은 경을 읽느라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인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가져온 물건을 움막 앞에 놓고 돌아갔다.
태수는 수일이 지나 토굴의 스님을 직접 뵙고자 움막을 찾았다. 그런데 움막은 비어 있었다. 처음 드렸던 식량만 가져 가고 나중에 드린 양식은 그대로 두고 갔다.

옛부터 불도를 수행하는 사람은 자신의 덕을 감추려고 일부러 결점을 드러내고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것을 경계하였다.
만약 어떤 사람이 훌륭히 수행한다는 평판을 얻으려고 한다면 얼이 썩은 일이다.
출가 수행자가 명예를 구하는 것은 피로써 피를 씻는것과 같다고 하였다. 피를 씻기 위해 사용한 피로 더욱 더러워 지는 것이다.

*불교 설화 이야기를 요약정리하였다.

그의 친구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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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람을 모르거든 그 친구를 보라. 친구는 그 사람의 거울이다.


                 사마천(중국 전한시대 역사가)

자력교육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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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에는 타력교육과 자력교육 두 가지가 있는데 후자가 더 중요하다.


                      -E.기본(영국의 역사가)


학문 전에 해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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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유여력즉학문(文)


 사람의 도리를 다 행하고 남은 힘이 있거든 글을 배우라.

자기 안의 괴물을 직면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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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널 사랑해서 이러는거야 하면서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잇습니다
이게 사랑일까요ㅡ?
사랑은 상처를 아물게 하는것이지 상처를 주는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사랑운운 하면서 상처를 주는 행위를 하는것은 왜일까ㅡ?
상대방을 동등한 존재로 보지않고 개처럼 여긴대서 나온 행위입니다
사람의 잔인한 본성은 개를 대할때 잘 나타납니다
개를 학대하고 먹이를 주는 이중성을 보이는데도 그저 주인만 바라보는 개를 보면서 가학성 만족감 병적인 우월감을 느끼는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종종 종교인들 안에서도
나타납니다
신자들을 하느님의 뜻 혹은 영성운운ㅡ심리적 학대를 하면서
쾌감욕구를 충족시키는 성격장애자들이 수두룩합니다
신자들은 그저 괴물의 먹잇감에 지나지않을뿐
ㅡㅡㅡㅡ
그래서.종교인들은 자기포장을 뜯어내고
자기안의 상처 컴플렉스 자기안의 괴물을 직면하는 수련을 해야 하는것입니다
사제냐 괴물이냐는 자기자신을 얼미나 깊이 들여다보느냐에 달린것입니다

교회안에 구원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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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교회 안에 구원이 있는가? (이정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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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교회 이후의 교회(Post Church)를 생각한다

 청어람 월례강좌를 앞두고 광화문 광장 인근 카페에서 이정배 목사(전 감신대 교수)를 만났다. 그의 과거, 현재, 미래를 종횡하며 질문을 던져보았다.

 

청어람() : ‘거리의 신학자느낌으로 간간이 뵙긴 했지만,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어보기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이정배() : 청어람에 대해서는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기대가 됩니다.

 

신학적 물음은 진공상태에서 나오지 않는다

: 이번 강연에서 다룰 주제를 /으로 잡았습니다.

 

: 제가 그간 관여해온 작은 교회 운동의 모토로 말하고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신학적 물음은 진공상태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초대교회, 종교개혁시대, 오늘의 시대가 다 저마다의 질문을 가지고 있지요. 시공간이 달라지면 질문도 달라지고, 대답도 달라집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벗어나야 할 의 가치로 탈성직주의’, ‘탈성장주의’, ‘탈성별주의를 내놓았습니다. 이 내용은 종교개혁의 3대 원리에 대한 메타 크리틱(meta critic)이기도 합니다. 루터 시대의 이야기가 오늘날에는 역설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당시의 면죄부보다 더 타락한 것이 오직 믿음이 되고, ‘오직 은총이나 오직 성경도 그러합니다. 옛날의 구호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 종교철학을 연구하고 가르치셨는데, 그간 연구와 활동을 추동해 온 핵심적 문제의식은 어떤 것이었나요?

 

: 저는 원래 조직신학을 전공했습니다. 제가 공부한 스위스 바젤대학에는 조직신학 내에 종교철학과 윤리학이 함께 있습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종교철학을 선택했지만, 타종교 연구나 철학 분야로 나아가지 않고, 이런 맥락 위에서 기독교 신학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로 연구해왔지요.

 

제가 논문을 쓰던 무렵에 세계교회협의회(WCC)를 통해 JPIC(Justice, Peace, Integrity of Creation) 논의가 나왔어요. 이를 계기로 생태, 환경 등의 주제가 부각되었는데, 제가 몸담은 한국 감리교에는 토착화 신학 전통이 있어요. 저는 이런 흐름과 대화하며 신학 논의 내에 생태학이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하며 한국적 생명신학을 추구해왔어요. 하다 보니 자연이나 생명이란 것은 기독교만 독점할 수는 없는 주제라 타종교도 보게 되고, 종교와 과학의 대화도 보게 되어서 관심사가 확장되어 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세월호 참사가 컸습니다. 과거 아우슈비츠 이후에 신학이 가능한가같은 질문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지요. 그간 위축된 정치신학 담론을 다시 꺼내야 했어요. 발터 벤야민의 메시아주의 등을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에 책을 5권 엮었는데, 종교개혁 3대 원리를 비판하고, 정치신학 담론이 축소된 것에 대해 생각하며 토착화, 종교 신학, 발터 벤야민 등과의 연결을 생각하며 작업했습니다.

 

: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여러 활동을 많이 하셨어요. 어떻게 세월호 참사와 만나게 되셨나요?

 

: 그게 2014년 고난주간 수요일에 벌어진 사건이잖아요. 안산의 후배 목사가 도저히 그 주 부활절에 설교할 수가 없다고 해서 제가 설교자로 갔어요. 예레미야 애가의 구절로 설교를 했는데, 그때는 제가 그냥 머리로 아는 내용을 가지고 애가에 관하여, 안산이란 변방에 관하여 이야기하면서 유가족들 위로해야 하겠다는 수준이었지요. 그런데 그 교회에 세월호 유가족인 유경근·박은희 부부가 있었던 거예요. 이들과 진하게 만나고서, 세월호 문제를 보니 이게 큰일이구나 싶었어요. 단순히 사고라고 생각했는데, 풀리지 않는 질문이 너무 많은 거예요. 왜 출항했고, 왜 좌초했고, 왜 구하지 않았고, 왜 방해했는지 하나도 밝혀지지 않아요.

 

사람들이 세월호를 신과 같다라고도 했어요. 모두가 말은 많이 하지만 그 실체가 전혀 알려지지 않는 존재 같았다고 할까요? 유경근 부부가 모두 뿌리 깊은 감리교 집안입니다. 이들 이야기를 듣고, 그 주간에 학생들을 통해서 조사를 해봤어요. 주일 설교에서 세월호 언급한 교회가 얼마나 되는지 봤더니, 조사한 500개 교회 중에 12개 밖에 없었어요. 아주 간략한 언급뿐이었고, 신학적으로는 전혀 다루지 못했던 거죠. 그 이후에 신학생들이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에 올라가서 시위한 사건도 있었죠. 그 학생들이 학교에서 퇴출당할 위기가 닥쳤는데, 부모들이 감리교 목회자인데도 집이나 교회에서 더 심하게 공격을 받았어요. 그 친구들 보호하려고 노력도 했는데, 기득권 체제 안에서는 뭐 하나 풀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학교도 일찍 나오게 되었습니다.

 

사회적 감각은 실종되고, 사회적 영성이 불가능해진 한국교회, 교회 안에 구원이 있는가?

: 결국 우리 이야기가 앞으로 한국교회는 어떻게 가야 하는가로 넘어가게 될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 제가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용어는 이후 교회(Post-Church)’입니다. 그게 교회 이후일 수도 있고, 종교 이후일 수도 있어요. 미국의 신학자 존 캅(John Cobb)85세에 <영적인 파산>이란 책을 썼어요. 미국교회가 파산했다는 주장이었어요. 상담학, 심리학의 차원으로 축소된 교회, 사회적 관심은 잃어버린 교회가 되었다고 했어요. 한국교회는 예수가 누군지를 잊었어요. 초대교회로 돌아가려는 사람 하나 없고, 자기들만의 리그와 언어에 갇혔어요. 하나님 이름으로 뭐든 가능하게 만들어 버렸어요. 이건 영적 병이고, ‘영적 방종이에요. 교회가 이토록 철저한 무신론자가 되어 버린 거예요. 두꺼운 도그마에 안주하고, 경제적 안정만 바라고, 사회적 감각은 실종되었어요. 사회적 영성이 불가능해진 거지요.

 

작은 교회 운동을 하면서 보니, 세월호 유족들 곁에 서 있던 사람들이 작은 교회 사람들이었어요. 만 명 교회 하나보다 백 명 교회 백 개가 낫다고 생각해요. ‘교회 바깥에 구원이 없다고 해왔는데, 이제는 교회 안에 구원이 있는가되묻게 됩니다. 기독교 도그마를 근본적으로 다시 물어야 할 때입니다. ‘세월호 어머니들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부활의 공적 차원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저는 신앙에 세 가지 눈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신앙의 눈이죠. 믿음으로 바라보는 눈입니다. 둘째는 의심의 눈이예요. 질문하고,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눈이지요. 셋째는 자기발견의 눈입니다. 성서 안에 없더라도 성서의 시공간적 제한 바깥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발견하는 눈이 필요합니다. 우리 경험이나 사건들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눈이지요.

 

: 은퇴 이후의 생활이 궁금합니다. 곧 강연에서 만날 분들에게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17-8년 전부터 시골로 갈 생각이었어요. 조만간 횡성으로 이사합니다. 밭에서 일하니까 기도할 때보다 쉽게 마음이 하나가 됩디다. (웃음) 그간 못 읽었던 책을 몰아서 읽고 있는데, 책마다 독후감을 써서 남기고 있어요. 최근에 <제주 4.3사건 진상 보고서>를 읽었고, 한나 아렌트의 저서도 읽었고, 독립운동가 중 사회주의를 선택했던 여성들을 그린 <세 여자>도 읽었어요. 수도원의 일상이 원래 독서와 기도와 노동으로 이루어지는데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강연으로 청중을 만날 때, 말하는 자나 듣는 자나 공허해지지 않으려면 삶이 실려야 하거든요. 서양은 학문 따로 삶 따로인 경우가 많지만, 동양의 사상은 내 삶이 내 메시지(My life is my Message)’를 추구해요. 어쭙잖지만 제가 힘을 실어서 하는 말에 동감하고 이런 삶을 살아보자는 다짐을 피차에 주고받을 수 있는 자리가 되면 좋겠어요.

 

인터뷰/정리 : 양희송

 

청어람아카데미(http://ichungeoram.com/12982)에 게재된 글입니다

임종하는분을 보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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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을 앞둔 환자를 위한 보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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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는 과정을 잘 바춰주는 것이 우리의 할일입니다. 우리 뜻대로 하는 게 아니라 죽는 과정을 지켜 보고 지지해 주는 것입니다. 무엇을 안다고 기대를 가지면 환자에게 해가 될 수 있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상황에 맞게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주인공이 아니라 죽는 사람이 주인공 입니다. 환자를 돌보는 것을 에고의 자랑거리로 만들지 마세요. 

• 욕을 먹을 줄 알아야 합니다. 환자의 몸이 약해서 남을 탓하고 화도 쉽게 냅니다. 이것은 환자의 마음이 아니라 아픔의 표현입니다. 환자를 돌볼 때는 자신의 에고를 바로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 죽어가는 사람을 돌보는 게 고귀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불쾌하고 힘들고 깨끗하지 못 할 수 있습니다. 아프고 답답할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지극히 친절해야 합니다. 아파도 힘들어도 답답해도 괜찮습니다. 

• 환자를 잘 보살피려면 자신을 잘 보살펴야 합니다. 무리하면 자신에게도 환자에게도 도움이 안됩니다. 

•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환자가 용서하고 내려놓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생에 대한 용서와 미래 생에 대한 희망을 지원해 주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적극적으로 하는 것보다는 마음으로 합니다. 말을 하게 되면 매우 조심스럽게 지혜롭게 해야 합니다. 

• 가는 사람을 붙잡으면 잘 가지 못합니다. 사랑으로 보내드리고 우리는 괜찮을 거라고 안심하게 도와 드립니다. 늘 고맙고 늘 사랑 할 것이라고 잘 가시라고 순수하고 안정된 마음을 가집니다. 

• 임종의 환경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소란스럽고 복잡하면 죽는 사람에게 크게 해가 될 수 있습니다. 평화롭게 죽는 것이 몹시 중요합니다. 독방이나 집에서 임종하는 것이 이상적 입니다. 

• 환자가 고통없이 미련없이 편안하게 갈 수 있도록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기도는 도움이 됩니다.

• 몸은 죽더라도 우리 마음안에서는 죽지 않습니다. 환자의 삶을 축하하고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좋지 않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의미가 없고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환자도 우리도 내려놓고 감사와 사랑을 나눌 때 입니다. 이것이 죽음이 주는 선물입니다.


기대없이 부담없이 옆에 있어주고 반응만 안해도 잘 하는 겁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희망을 잃지 않으면 됩니다.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고 생각을 굴리지 마세요. 사랑은 내려놓는 것입니다.


~티벳불교 서적들에서 배운 내용입니다.

보이지않는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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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플랜트(Michael Plant)는 세계적인 요트 조종사였다.
단신으로 태평양과 대서양을 수차례 항해하였으며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기술과 명성을 얻었다.


그는 1992년 다시 항해를 준비했다.
최고의 항해 장치를 부착한 최신식 요트를 구입한 후에
그 배 이름을 '코요테'(The Coyote)라고 불렀다.
요트 코요테는 그의 꿈을 이루기에 가장 적합해 보였다.

그 최첨단 요트에는 자동무선레이더와 위치 인식시스템(GPS)이 설치되어
좌표 상에 그의 위치가 정확히 표시될 수 있었다.
그런데 플랜트가 이 요트를 타고 항해를 떠난 지 11일 만에
무전연락이 두절되었다.

수색팀이 구성되어 요트를 찾았지만 쉽게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포르투갈 근처에서 한 어부가 전복된 요트를 발견하였다.
전문가들은 코요테호가 전복된 상태로 발견되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요트는 그 구조상 거의 전복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뒤집힌 이유를 조사해보니 요트 밑에서 무게 중심을 잡아주는
밸러스트(ballast)가 선체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었다.
밸러스트는 3.6톤이나 되는 보트를 안전하게 해주는 중요한 부품인데
그런데 이것이 떨어져 나가 배가 전복된 것이다.

조사단은 요트 전복한 이유에 대한 결론을 내렸다.
"플랜트가 자기 기술과 힘만 믿고 요트를 만들 때부터
보이는 부분에는 신경을 썼지만,
보이지 않는 수면 아래의 밸러스트에 대해서 신경을 덜 쓴 것 같습니다.“

+
귀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욱더 그렇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이익에 집착하다 보면 ‘신의’나 ‘정직’과 같은
중요한 가치들은 등한시합니다.

‘속도’에 집착하다 보면 ‘안전’은 뒤편으로 물러납니다.
육신의 쾌락에 마음을 쏟다보면
정신의 사막화가 일어나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오늘은 내 인생에 있어 무엇이 더 소중한 것인가를
찾아보는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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