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ntcast
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Viewing all 3077 articles
Browse latest View live

침묵에도 이유가 있다

$
0
0


남편의 침묵에 더 이상 개입하지 마세요

화나면 말문 닫는 남편에 쩔쩔매는 결혼 4년 차 주부, “눈치 보다 가슴 답답해 미쳐”


사진18-.jpg»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Q) 결혼 4년 차 주부입니다. 남편의 태도 때문에 연애 기간 포함 5년간 마음을 졸이며 살았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나 예상치 못한 상황들, 마음 상하는 상황, 화나거나 짜증 나는 상황이 되면 남편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 일의 원인 제공자가 저든 아니든 상관없이 모든 상황에서 제게 입을 닫아버립니다. 처음에는 그 상황이 너무 힘들어서 풀어주려고 엄청 노력했는데, 그러다 보니 습관이 됐나 봅니다. 가령, 본인이 피곤하게 일을 하고 늦게 집에 들어왔는데 집에 아무것도 먹을 게 없다, 라면도 떨어졌다, 그러면 짜증을 내고 말을 안 합니다. “라면 없어?” 했을 때 제가 “응, 내가 하나 남은 거 먹었어. 지금 사다 줄까?” 하면 아니라며 짜증 내고 말을 안 합니다. 그게 며칠을 갑니다. 그리고 사과하는 법은 한 번도 없습니다. 제가 항상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을 걸어야 하구요. 화가 풀어진 뒤 왜 그랬는지 물어보면 말을 돌립니다. 지난 추석에 시댁 가는 길에도, 차가 너무 막히니 짜증이 났나 봅니다. 계속 한숨을 쉬며 짜증을 내길래 저는 조용히 있었습니다. 친정에 먼저 가기로 했는데, 그러려니 시댁에 가는 시간이 너무 늦어질 거 같았습니다. 아마도 저희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시댁에 가면 저녁 늦게 도착할 생각에 짜증이 났나 봅니다.

그래서 엄마에게 전화해서 시댁에 먼저 가겠다고 하고, 신랑에게 행선지를 바꾸라고 몇 번이나 말했습니다. 대답을 안 하고 한참 있다가 내비를 수정하더군요. 저는 서러워서 눈물이 터졌습니다. 그리고 도착해서 이틀간 제게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튿날 밤에 시댁에서 너무 서러워 울면서 말했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서럽고 억울하다. 차가 막히는데 왜 내게 짜증을 내냐. 무슨 이유냐. 당신이 그러면 내가 얼마나 지옥 같은 시간을 견뎌야 하는지 아느냐 했습니다. 여전히 대답은 없지요. 다음 날 아침 남편을 깨우는데 정말…여섯 살 아이가 자기가 맘에 들지 않는 상황에서 친구를 째려보듯이 저를 째려봅니다. 제가 일으키려 하면 손을 내치고 분노가 가득한 눈으로 저를 째려보더라구요. 저는 그런 상황들을 결혼 내내 수도 없이 견뎠습니다. 또 저는 모든 의사 결정에서 남편 눈치를 보며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혹시 남편이 화내지 않을까? 삐치지 않을까? 매번 이렇게 살다 보니 가슴이 답답해 미칠 것 같습니다. 이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까요? - 도리


A) 물리적으로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도 아닌데 유난히 남편을 조심스러워하고 두려워하는 여성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아내를 두려워해서 늘 숨죽이고 있거나 도망치고 싶어하는 남편들도 많지요. 아마 이런 부부들은 동동한 배우자 관계이기보다는 아버지와 딸, 또는 어머니와 아들 관계를 재현하고 있는 상태일 겁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아버지 같은 남자, 어머니 같은 여자에 끌려 결혼하고 바로 그 점 때문에 숨 막히는 결혼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로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과거 부모가 그런 부부관계를 자식들에게 보여줬거나 자신이 무서운 아버지나 어머니 밑에서 자랐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니까 어린 시절 자신이 보거나 경험한 것을 자신의 부부관계에서 반복하는 것이지요. 두 번째로는 어릴 적 경험과 상관없이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엄격하고 혹독한 아버지상이나 어머니상을 배우자에게 투사해서 그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희한하게도 우리는 이런 심리적 역동의 짝이 될 사람에게 끌리고 그래서 상대에게 자신의 대역을 무의식적으로 요청한다고 하지요. 무서운 사람을 싫어한다고 말하면서도 엄격한 아버지나 어머니의 모습을 잘 구현해줄 사람에게 사랑을 느끼고, 또 배우자에게서 엄부, 엄모의 태도를 이끌어낸다는 것이지요. 반대로 지나치게 부성애와 모성애가 강한 사람들은 배우자를 딸이나 아들처럼 무력한 상대로 만들어버립니다.


도리 님은 어떠세요? 과거 아버지와의 관계는 어땠나요? 또 부모님은 어떤 부부관계를 유지하셨나요? 그토록 마음 졸이게 하는 남편과 결혼하시게 된 이유는요? 그리고 생각해보세요. 연애와 신혼 시절에 도리 님이 어떻게 남편의 침묵에 동조하고 그것을 강화시켰는지 말이지요. 그가 화나서 침묵할 때 기분을 풀어주려고 애쓰는 것, 그의 욕구를 미루어 짐작해서 미리 충족시켜주는 것, 남편 때문에 쩔쩔매고, 남편의 침묵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의 침묵을 부추기고, 말할 기회를 차단하는 일입니다. 심지어 그의 침묵을 신비화하고, 힘을 부여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희망적인 것은, 도리 님이 이런 관계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어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그런 감정을, 당신의 불편함을 계속 얘기해주세요. 지금처럼 6살 아이의 투정쯤으로 바라보세요. 물론 위기감을 느낀 남편이 강하게 저항하겠지만 그것은 새로운 관계, 그러니까 동등한 부부관계로 가기 위한 필연적인 불편감입니다. 남편의 침묵에 더 이상 개입하지 마세요. 대신 그의 침묵을 끈질기게 말없이 버텨보세요. 그가 스스로 어른스럽게 입을 열게 될 때까지 말이지요.


거리를 두고 그를 지켜보면서 왜 자주 삐치고 침묵하는지 이유도 찾아보세요. 추측건대 남편에게는 뿌리 깊은 두려움과 망설임이 있을 겁니다. 자신의 욕구를 말로 표현하는 것에 대한, 화가 폭발하는 것에 대한, 싸움으로 비화될 것에 대한, 언쟁에서 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대한, 남자답지 못하다는 평가에 대한, 더 나아가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과 그로 인한 망설임 말이지요. 어쩌면 침묵이 가장 좋은 자기보호라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 있었을 수도 있고요.


침묵의 사연에 대해 정확히 알면 알수록 그에게 느꼈던 모호한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두려움이 사라지면 그때 비로소 당신은 남편 앞에 당당하고 동등한 배우자로 서게 될 것입니다.


멋진삶의 첫출발은 자기존중

$
0
0


손관승-.JPG


Q “저는 정말 평범한 사람입니다. 어느 날 거울을 들여다보니 광화문 네거리에서 손쉽게 만날 수 있는 직장인의 얼굴이 바로 제 얼굴이 되고 말았네요. 학창 시절 주변에서는 저에 대한 기대도 꽤 컸고, 저 역시 무엇인가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평범하기 짝이 없는 샐러리맨이 되고 만 지금의 제 모습이 가끔 실망스럽습니다. 언론에 소개되는 제 또래의 사람들은 이미 뭔가를 이루고 또 멋지게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저만 멋없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혼자 생각을 해봅니다. 확 달라지고 싶은데 뾰족한 수가 없네요. 그게 요즘 저의 고민입니다.”


A 직장 생활 15년 차에 접어든 40대 초반 직장인이라고 자신을 밝힌 한 남성의 사연이었습니다. 많은 직장인들이 퇴근 후 동료들과 함께하는 술자리에서 이와 비슷한 고민을 털어놓고, 또 공감하는 주제일 겁니다. 이 직장인의 고민이 담긴 편지를 받고 세 가지를 생각해봅니다.


첫째, ‘차별 포인트’입니다. 다른 사람과 다른 나만의 이미지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그것은 과연 뭘까요? 남자이지만 머리를 뒤로 묶고 다니거나 턱수염을 기르고 다닌다면 그것도 하나의 이미지입니다. 다른 사람과 자신이 다르게 인식되고 싶다는 의사 표현입니다. 개화기 시대의 지식인처럼 둥근 모양의 개성 있는 안경을 쓰고 다니는 사람 역시 은유적으로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겁니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요즘 직장인들은 외모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내적인 것은 금방 알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과거에 비해 이 시대의 직장인들은 남녀 불문하고 외모 유지를 위한 자본, 즉 외모 자본이 많이 듭니다. 모두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직장인으로서, 혹은 직업인으로 본질적인 질문은 다릅니다. 나의 직(직위, 직무)은 대리, 과장, 차장, 부장으로 쉽게 알 수 있지만, 나의 업(직업)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는 훌륭한 컴퓨터 엔지니어인가? 나는 최고의 기획자인가? 아니면 파이낸싱 전문가로 자처할 만한가? 내가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진정한 차별 포인트는 과연 뭘까? 아니면 최소한 어떤 사람, 무슨 능력자로 기억되고 싶은 건가요?


둘째, 자기 객관화입니다. 앞서의 질문에 정확한 대답은 본인이 알기 힘듭니다. 주변 동료와 업계에서 하는 것이 더 정확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 능력과 주변에서 인정해주는 본인의 이미지는 다를 때가 많습니다. 많은 이들이 혼란을 겪고 좌절하는 이유입니다. 주관과 객관의 불일치라고 할까요. 그 좌절의 결정적 순간은 인사 발령입니다. 자기 자신은 피카소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회사에서는 피카소의 일을 돕는 말단 조수로 판단하게 된다면, 충격과 좌절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가진 능력 가운데 최고는 자기 객관화라고 합니다만, 유감스럽게도 많은 이들은 자기 객관화 연습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주관과 객관의 불일치입니다.

“학교 다닐 때 나보다 훨씬 공부도 못하던 친구가 그 자리까지 올라갔는데, 나는 그동안 뭘 한 걸까?”


가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흔히 상위권 대학을 나온 사람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습관입니다. 영어에 ‘스트리트 와이즈’(street wise, 세상 물정에 밝다)란 표현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출신 학교와 관련 없이 사회생활을 잘하는 법을 말합니다. 비록 학교 다닐 때 공부 능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졌지만, 동료 관계와 소통에 능숙하고 사회생활 문제 해결 능력에는 탁월한 사람입니다. 학교에서는 ‘책’을 잘 읽고 표현하는 데 현명한 사람이 이긴다면, 직장과 사회는 ‘거리의 생존능력’이 더 요구되는 곳입니다.


사회생활의 문법이 달라져야 한다는 이유입니다. 거리의 생존능력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부터 떠올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부와 청탁 능력 같은 부정적 단어들입니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사람과의 관계는 학교에서 배우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공부 잘하는 법을 학교에서 배우듯, 사회에 나오면 사회생활 잘하는 법 역시 배워야 합니다. 학교 공부는 잘했지만 직원 소통에 빵점인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셋째, 우리는 누구나 예술가입니다. 직업적 예술가는 아닐지언정 일과 삶의 예술가는 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주목받는 예술가가 되고 싶은 게 함정입니다. 여기서 행복과 불행의 차이가 시작됩니다. 주목받지 않아도 행복한 예술가는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미디어로 보는 사람들은 행복해 보입니다. 온라인이나 소셜 미디어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행복해 죽겠다는 소식들만 전합니다. 그러나 사실 곰곰이 따져보면 ‘왕자병’에 걸려 있거나 공주 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우리는 ‘영웅 신드롬’에서 삽니다. 드라마, 소설, 영화 같은 곳에서는 늘 우리에게 영웅이 될 것을 강박하고 있습니다. 비범은 좋은 것, 평범함은 나쁜 것이라는 등식이 늘 존재하는 곳입니다. 예술에서 평범함은 경계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비범함과 평범함의 개념을 너무 협소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외모가 뛰어나다고 훌륭한 예술가가 아니듯, 삶과 일의 예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점에서 앞서 비유를 한 피카소의 명언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프로처럼 규칙을 배워라! 그래야 당신이 예술가처럼 그 규칙을 깰 수 있으니 말이다.”


인생의 훌륭한 예술가가 되려면 우선 자기 존중부터 배워야 합니다. 사람은 스스로 느끼는 만큼 행복하니까요. 행복은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행복해야 주변도 행복해집니다. 행복이라는 이름의 예술을 배우는 데 늦은 나이란 결코 없습니다.


신상환이 서쪽에서 온 까닭은

$
0
0


신상환-.JPG» '대승불교의 아버지'인 용수의 6대 저작 <중론>,<회쟁론>,<세마론>,<육십송여리론>,<칠십공성론>,<보행왕정론> 티베트어본을 10년간 한글로 번역한 신상환 박사가 경남 함양 안의면 장자골 중관학당에서 용수의 사상을 설명하고 있다.


삶은 뜻하지않게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그러나 뒤돌아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신상환(50) 박사의 삶이 그렇다. 

 신 박사는 1980~90년 민주화를 위해 몸을 던진 투쟁가였다. 독재의 심장을 향해 화엄경을 던지던 시위의 주역인 그가 산골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불경을 번역하는 너무도 소박한 삶을 살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중관-.jpg» 용수의 6대 티베트본을 한글로 번역해 3권으로 낸 <중관이취육론> 신 박사가 ‘용수’(150?~250?)의 5대 대표작을 티베트어에서 한역으로 번역한 <중관이취육론>(도서출판b) 3권을 펴냈다. 용수의 한문본이 아닌 티베트어  저작을 우리말로 옮긴 것은 이번에 최초다. 용수는 ‘제2의 붓다’ 또는 ‘대승불교의 아버지’로 불린다. 남인도 출신인 용수는 젊은시절 희대의 난봉꾼이었으나 ‘공(空)사상’을 통해 ‘불법의 이치’를 깨달아 불교계의 북두성이 되었다. 2천년을 뛰어넘어 용수의 대변인이 되어 나타난 신 박사를 찾아 경남 함양군 안의면 장자골 고반재를 찾았다. 고반재는 고려대장경연구소장 종림 스님이 고향마을에 지은 책박물관이다. 고려대장경을 디지탈화한 종림스님과 티베트어를 전공한 신박사가 고반재에서 함께 사는 것이다. 고려대장경과 티베트대장경의 해후가 아닐 수 없다.


 붓다와 보살들은 인연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신 박사도 여러 모습을 하고 있다. 새벽 3시반부터 오전까지는 번역가로서 용수의 저작들을 투관하고, 오후엔 5백평의 밭작물을 가꾸는 농부로서 비지땀을 흘린다. 밤엔 고반재를 찾는 식객들과 통음을 마다하지않았다. 오전 오후 밤의 생활이 달랐던 그가 전에 없이 해사한 얼굴로 맞는다. 100일 넘게 금주 중이란다. 무려 10년 동안 공을 들린 이번 역경(譯經)을 세상에 내놓는 마음가짐이 남달랐다는 의미다. 

  

 신 박사는 1989년 임수경씨를 방북시켜 평양축전에 참석케 한 전대협3기 의장단의 일원이었다. 한양대 총학생회장이던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전대협 의장이었고, 아주대 총학생회장이던 신 박사는 수원지역대학생협의회 회장이었다. 그는 국가보안법과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위반 등으로 수배 중 학내시위에 참여했다가 검거를 피해 학생회관 2층에 뛰어내리다 허리를 다쳐 붙들려갔다. 평양축전협의회 의장단 일원으로 그에게 ‘잡히면 옥바라지 해줄 사람이나 있느냐’면서 형처럼 걱정해주고 챙겨주던 중앙대총학생회장 이내창씨가 거문도 앞바다에 주검으로 떠오른 날이었다. 감옥에 들어간 뒤 눈을 감고 있어도 ‘내창이 형’의 환영이 보였다는 그는 분노와 저항으로 수갑이 채워진채 징벌방에 갇히는 고난을 반복했다. 그렇게 2년의 징역을 살고, 복학해 졸업을 하자마자 1994년 중국으로 떠났다. 머나먼 방랑의 시작이었다.

 

 사회주의가 붕괴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온 아노미와 함께 어린시절부터 배태된 한을 국내에선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는지 모른다. 전남 광양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시절 그 때만 해도 흔치않던 부모의 이혼을 경험했다. 그로 인해 형은 자살을 감행하다 결국 출가했고, 그도 적지않게 방황했다. 아버지는 조합장을 하고 4만평의 땅을 경작하고 있었지만, 그는 부친의 신세를 지고 싶지않았다. 당시 호남 최고의 명문고였던 순천고를 졸업한 그가 아주대 환경공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해 4년간 장학금을 보장받는, 고학의 길을 택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고 한다.


카라콜람-.jpg» 신상환 박사가 2년의 징역살이를 마치고, 방랑을 떠나 넘었던 카라콜람 산맥

 

 그는 중국에서 파미르고원을 넘어 파키스탄을 지나 인도로 들어갔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총격전 현장까지 통과하고,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서는 눈사태를 만나 영원히 묻힐뻔 했다. 그런데도 그 위험들을 감수할 수 있었던 것은 오랜 내면의 내전을 치러온 그에겐 그다지 생소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그는 한 서양인에게 100달러를 주고 산 자전거를 타고 인도 전역을 비박하며 하루에 3달러로 돌아다녔다.  고비사막에서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인디언처럼 홀로 춤을 추면서 ‘지금 이대로 죽어도 상관 없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1997년 다르질링에서 일본인 여행객을 만나 결혼을 했다. 그후 귀국했다가 1999년 다시 인도로 가 타고르가 산티니케탄에 설립한 비스바 바라티 대학에서 아내는 미술을, 그는 티베트어를 공부했다. 애초엔 불경을 티베트어 원전으로 읽고싶어 1년만 공부할 셈이었는데, 티베트어 어원을 알기 위해 산스크리트어까지 배우다보니, 10년이 훌쩍 지나가렸다고 한다. 그 사이 티베트학어 산스크리트어 석사에 이어 캘커타대 파알리어과 철학박사까지 따고  비스바 바라티대 인도·티베트어과 조교수로 일했다. 그가 이번 번역에서 번역문 이상의 분량의 주석을 달아 이해를 도울 수 있었던 것은 용수 사상의 본고장에서 공부하고 교수까지 했던 때문이다.

 

 그는 한국을 떠난지 20년이 된 2013년 귀국했다. 전임교수조차 매년 갱신하지않으면 안되게 되어있는 비자 받기에 지친데다가,  그 때쯤 돌아가지않으면 인도에 뼈를 묻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당시 세미나 참석차 귀국했다가 종림스님이 보여주는 고반재 설계 팸플릿을 보고, 그곳에서 종림 스님의 밥이나 해주며 번역을 할 셈이었다. 그런데 막상 함양에 가보니, 그곳엔 고반재 건설을 준비하기 위해 가져다놓은 컨테이너 뿐이었다. 그는 그 컨테이너에 중관학당이라 이름 짓고, 고반재 건축을 돕는 감독관으로, 밥해주는 공양주로, 틈틈이 농사를 짓는 농부로 살면서 틈틈이 역경을 했다. 그 고생을 하면서도 종림 스님으로부터 “일체가 공하다는 중관을 전공한 놈이 ‘종이 쪼가리’(팸플릿) 하나에 속냐”는 핀잔까지 들어야 했다. 


콘테-.JPG» 그가 멋들어지게 지어진 신식 건물 고반재를 두고 굳이 번역작업을 하면서 자는 거처로 쓰며 고행을 자처하는 컨테이너 중관학당

 

 고반재는 2년 전 다 지어졌다. 콘테이너상자에 비하면 아방궁이다. 그런데도 그는 고반재에 들어오지않고, 그 옆 ’콘테이너 중관학당’살이를 고집한다. 밥은 같이 먹는 식구지만, 고반재는 고반재고, 중관학당은 중관학당이라는 칼같은 성깔 때문일 것이다. 일본에서 사는 아내와 고1 아들과 1년에 견우직녀처럼 고작 한두번만 보고, 그는 이 콘테이너에서 살며 농사를 짓고 역경을 하는 고행을 자처하며 자신을 채근해온 것이다.

 

 그가 용수에 미친 것은 모든 이론과 고정관념까지 논리로서 샅샅이 부숴버리는 용수의 ‘중관(中觀)과 공성(空性)’에 형언할 수 없는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가 이번에 번역한 책 가운데서 대표적인 <중론>(中論)에서 용수는 ‘사성제도 없고, 열반도 없고, 오온도 없고, 삼독도 없고. 여래도 없고, 업도 없고, 과보다 없다’고 한다. 석가가 말한 대표적인 깨달음의 진리조차 부정해버린 것이다. 그 조차 관념이고 말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제가 다 공한데 깨달음은 왜 필요하며, 공덕은 쌓아서 무엇하느냐’는 허무주의와 단견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한다.

  신박사는 “용수의 원음이 제대로 전달되어야하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 불자들이 예불 때마다 독경하는 <반야심경>이 ‘공사상’을 전하고 있음에도 핵심을 놓치고 있어서 오해를 불러오고 있다는 것이다.


3인공동체-.JPG부엌-.JPG

신상환 박사는 농부이자 고반재의 식사를 준비하는 공양주이기도 하다. 고반재에서

함께 살아가는 고려대장경연구소장 종림 스님(왼쪽 사진 맨왼쪽)과 안의면 경희한의원 한의사인 

신윤상 원장(왼쪽사진 가운데)과 함께 식탁에 앉은 신상환 박사.

 

 불교의 핵심은 공과 연기(緣起)다. 연기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 혹은 ‘내가 있으므로 너가 있고, 너가 있으므로 내가 있다’며 우리는 그 어떤 것도 서로에 의지해 있다는 깨달음을 전해준다. 그런데 ‘공과 연기가 실은 같은 것인데, <반야심경>에서 이를 말해주지않아서 오해를 낳고 있다’는 게 신 박사의 설명이다.

 “ 공을 연기로 봐야 나와 너가 다름 없게 됩니다. 즉 자기한테만 좋은 게 아니라 남한테도 좋은 게 공덕이고, 이를 명확히 아는 것이 지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내가 죽기 싫으니 다른 생명도 죽이지 마라’는 불상생 계율과 같은 불교의 대원칙이 이로부터 출발했다는 것이다. 

 

 불교는 깨달음과 자비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혹은 왜 수행을 해도 자비와 실천이 없느냐는 질문에 봉착한다. 신 박사는 “공이 연기라는 것을 모르고, 단견적으로 보기에 너와 나를 함께 이롭게 해야한다는 ‘대승’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가 용수 저작에 생을 바치기로 한 것은 이름 뿐인 대승불교를 진짜 대승불교로 만들기 위한 뿌리가 용수의 사상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앞으로는 중론의 3대 주석서를 비교하고 자신의 주석을 곁들인 책과 함께, 용수의 사유를 현대 서양철학 관점에서 해석하는 책을 펴낼 계획을 하고 있다. 매년 겨울방학과 여름방학에 1박2일씩 고반재와 해남 일지암에서 용수의 핵심 사상도 전하는 '중관학당 캠프'도 계속 연다.

 

북콘서트-.png


 북콘서트는 30일 오후2시30분 서울 세종문화회관, 7월3일 오후7시 대구 자비선원, 4일 오후7시 부산 부산일보사 소강당, 5일 오후7시 대전 계룡문고, 11일 오후7시 광주 자비신행회에서 열린다.


신비한 본능, 두려운 본능

$
0
0


개와 고양이2-.jpg


강원도 산골에서 살다보니 많은 생명들과 함께 사는 즐거움이 있다. 새벽, 아침, 낮, 밤, 때에 따라 다양한 새 소리가 울린다. 딱따구리, 뻐꾸기, 부엉이, 물소리, 바람소리 어우러지면 평화의 기운이 감돈다. 메주콩, 고무마순 다 먹어 치우는 얄미운 고라니는 약해 보이지만 소리는 꽤 위협적이다. 처음 들을 때는 뭔가 엄청난 놈이 있나했다. 토종벌 키울 때는, 날아다니는 수많은 벌들과 함께 살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자연 속 생명들을 알아 갈수록 겸손하게 마음 비우고 살아야함을 깨닫게 된다. 집 지을 때는 생각지 못했는데, 새, 박쥐, 벌, 다람쥐들이 제 집처럼 여긴다. 


 진돗개 화랑이는 한 살도 되기 전 임신해 새끼를 낳았다. 영하 29도까지 내려간 추운 겨울, 밤늦도록 애타는 마음으로 지켜봤다. 혼자 탯줄을 자르고, 새끼들 배설물을 핥아 먹으며 야생 동물로부터 보호하는 모습을 보며 많이 놀랐다. 사람들은 이미 스스로 아이 낳고 기르는 능력을 잃어 가는데, 화랑이는 생명을 낳고 살리는 본능을 잘 보존하고 있었다. 아내 도움으로 임신 출산 과정에 도사린 폭력문화를 알게 되었고, 출산을 부모와 아기가 함께 만드는 평화로운 사건으로 회복시켜야 함을 배운 적이 있다. 그 때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꼈는데, 화랑이 출산을 보며 그 감흥이 다시 살아났다. 


 화랑이가 산책 간 사이 새끼 한 마리를 잠시 다른 곳에 두었다. 기분 좋게 산책 다녀 온 화랑이는 집과 마당을 두리번거리며 당황해 했다. 불안한 기색으로 여섯 새끼들을 집 안에 물어넣고, 우리 눈을 쳐다보고 낑낑거리며 새끼를 찾았다. 잠깐 사이에 벌어진 일이지만, 이 모습 또한 놀라웠다. 어떻게 알았을까? 어떤 수 관념이 있는 걸까? 이런 질문 자체가 사람이라는 존재가 지닌 편견이겠지!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하는데, 개나 사람이나 똑같다. 비가 많이 오면 우울한 눈빛, 집 지키느라 고생한 날에는 생색내는 눈빛, 산책이라는 말이 나오면 선동하는 눈빛이 된다. 

홍천1-.JPG» 강원도 홍천 밝은누리공동체

    

 화랑이와 마을에 있는 삼일학림에 산책 갔다가 일이 생겼다. 학림에서 키우는 고양이집을 지나다 서로 화들짝 놀랐다. 고양이가 키우게 된 후, 화랑이를 데리고 학림에 산책간 적이 없어서 나도 깜박했다. 모두 생명평화 순례를 떠났고 나도 내일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하지? 두고 가면, 화랑이한테 닭들도 성하지 못할 텐데!  도망갔던 고양이가 돌아 왔는데, ‘살금살금’이 뭔지 제대로 봤다. 화랑이와 고양이의 추격전이 벌어졌다. 본능이니까 존중하지만, 순간 미워지고 내 마음은 평화가 깨졌다. 


 뒷간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오니, 화랑이가 사랑채 앞 나무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나무 위로 도망간 고양이 주위를 맴돌고 있는거다. 고양이를 잡고 싶은 본능에 충실하다 나에게 잡혔다. 나와 고양이는 평화를 회복했지만, 화랑이는 잠시 자유를 잃었다. 평화는 고정된 어떤 상태가 아니라 과정인 듯하다. 서로 다른 생명이 때에 맞게 곱게 어우러지는 과정이 평화가 아닐까!


지혜와 선정은 불가분의 관계

$
0
0


 지혜 없는 선정 없고

 선정 없는 지혜도 없습니다.

 누군가 저 둘을 갖추면 윤회의

 바다를 소 발자국처럼 (작은 것으로) 만듭니다.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용수보살의 권계왕송>(용수 지음, 신상환 옮김, 도서출판b 펴냄)

군자 화이부동, 소인 동이불화

$
0
0


군자는 화이부동()하고 소인은 동이불화()한다.

(군자는 화합하되 붙어 다니진 않고, 소인은 붙어 다니되 화합하지 못한다.)


       -<논어> 자로편.

가장 아름다운 종소리

$
0
0


종-.jpg


얼마전, 베를린에서 이레 동안 침묵하며 참선할 기회가 있었는데, 아침 예불의 타종을 맡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절에 있는 그런 큰 범종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높이 60 센티 정도는 되는 꽤 괜찮은 한국종이 아담하게 나무틀에 매달려 있습니다. 나무망치로 치는데, 종과 닿는 부분엔 날카로운 소리를 피하기 위해 펠트를 붙여 놓았습니다. 그런데도 가끔은 찢어지는 듯한 쇳소리가 났습니다. 종 하단의 동그란 무늬가 있는 곳에 마음을 모아 치는데도, 시종 부드러운 울림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불쾌한 소리가 나는 것은 내가 종을 잘 몰라서 그런 것이니 종을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어디를 어떤 강도와 각도로 치면 될까 다양한 시도를 하던 어느 날 아침, 이 종에 내재하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끌어내기 위해 온 정성을 기울이는 나는, 종과 지극한 사랑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내 남편이 가지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끌어내기 위해 내가 이만큼의 정성을 들였던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때 부터인가 나는 그를 잘 알고 있다는 생각으로 더이상 정성도 안들이고, 그의 ‘쇳소리’를 그의 탓으로만 돌린 것은 아니었던가? 그에게 내재하는 그만의 아름다운 소리가 있다는 것을 잊어버렸거나 포기한 것은 아닌가? 결국 부족한 건 나의 사랑이 아닌가?

 

 우리 딸은? 그 애가 가진 아름다운 소리라는 것이 이러저러한 것일거라는 내 생각에 집착해서, 진정 그애의 아름다운 소리가 뭣인지는 알려고도 않는 것은 아닌가? 어쩌다 울림이 미미하다고 다구치지는 않았던가? 이런 생각이 들자 커다란 바람에 파도가 이는 듯 온 몸과 마음이 일렁이기 시작했습니다.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것들, 떠다니던 것들이 파도에 쓸려서 해변으로 내동댕이 쳐지듯 그렇게 제 모습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스스로의 모습을 보는 건 참 아픕니다.

 

 어느 시인은, 네가 내 이름을 불러줄 때 나는 네게 꽃이 된다고 했습니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그 존재를 알아준다는 뜻일테고, 꽃이 된다는 것은 그 존재의 최상의 모습이 드러난다는 말이겠지요. 종은 울려줄 때에 비로소 소리를 냅니다. 아무도 울려주지 않는 종은 그저 쇳덩어리일 뿐입니다. 그런데 종에게는 아름답고 은은한 소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갖은 소리가 다 내재해 있습니다.

 

 이런 소리, 저런 소리를 내어보며, 그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울려내겠다는 마음으로 계속 탐구해가는 것이 바로 사랑인 것 같습니다. 나 자신을 향해서도 마찬가지가 아닌지요. 예쁜 소리를 못낸다고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끌어내려고 탐구하고 정성을 들이는 사람이 바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여름휴가 나를찾아떠나는여행

$
0
0


템플1.JPG» 템플스테이 현장들


휴가철에 산사나 수도원에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바쁜 삶 속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관광지에 가서 눈도장 사진 찍고, 먹방에 나온 맛집을 찾아 나서는 식의 천편일률적 여행문화에서 탈피하려는 이들이 색다른 여행 풍토를 만들어내고 있다. 일시적 소비문화에 편승했을 때 피로가 더 쌓이고, 삶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는 이들이 휴가를 활용해 삶의 템포를 한 박자 쉬면서 흐트러진 몸과 마음도 추스리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려는 것이다.

 

사찰과 수도원은 그런 여행지로 최고다. 성찰을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습관적 삶과의 단절이다. 따라서 침묵하며 수도하는 분위기에 산사와 수도원은 일상에서 단절해 다른 환경에서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기에 적격이다.

 

새로운 휴가맞이 풍속에 따라 사찰과 수도원들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해 손님맞이에 나서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템플스테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점으로 한국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시작된 템플스테이는 200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낸 보고서에서 세계 5대 관광문화자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템플스테이 참가자는 연인원 447만여명에 이른다. 참여자가 매년 평균 13%씩 증가하고 있다. 특히 외국인 참가자들도 크게 늘어 지난 한 해에만 외국인 연인원 7만명이 넘었다.

 

템플스테이는 현재 전국 130여개 사찰에서 운영하고 있다. 템플스테이엔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 하루만 체험하는 당일형 2일 이상 머물며 발우공양, 참선, 108, 스님과 대화 등에 참여하는 체험형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과 호흡하며 지친 몸과 마음을 쉬게 도와주는 휴식형 등 세 가지 유형이 있다. 백담사에서 체험형에 참여했던 강민주(41)씨는 주변 계곡과 등산로에서 산책을 하면서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비구니 스님이 뭔가를 가르치려 하기보다 편하게 응대해주고, 낡아떨어진 모자를 쓰고도 편안해 보여 뭔가 쫓기는 듯한 내 내면에도 안식이 자리잡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템플스테이는 전남 순천 송광사의 참나를 찾아서전남 해남 미황사의 어린이 한문학당참사람의 향기부산 범어사와 경남 양산 통도사의 초등·청소년 여름 수련회 등이 전통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휴가철과 방학철이 되면 프로그램이 훨씬 다양해진다. 특히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대부분의 사찰이 운영할 정도다. 성인들을 위해서도 강원도 양양 낙산사의 파랑새를 찾아서강원도 인제 백담사의 간화선 실참경기도 양주 육지장사의 반려견과 함께하는 템플스테이전북 남원 귀정사의 산야초 만들기전북 남원 실상사의 초기경전 <니까야> 강독등이 눈에 띈다. 템플스테이 홈페이지(www.templestay.com)에서 상세히 알수 있다.


산위의마을.JPG» 경북 단양 소백산 산위의마을

 

가톨릭도 전국 수도원에서 피정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가톨릭에서는 10년 이상 지속되어온 베네딕도회 경북 왜관수도원의 수도생활 체험학교와 경기도 파주 성심수녀회 예수마음배움터의 예수마음기도 등이 유명하다. 서울 성북동 영원한도움의성모수도회는 비신자와 타 종교인들의 수도원 체험도 받고 있다. 올해는 성베네딕도회 전남 화순수도원의 ‘8일단식’ ‘성경통독과 전북 완주 천호성지의 순교와 선교 영성 피정이 새롭게 선보였다. 도시에서 멀리 벗어나 자연 속에서 진행되는 피정들도 여름엔 더욱 주목받는다. 충북 단양 소백산 산위의마을 단기입촌전남 구례 지리산 피아골 피정의집의 지리산 휴가피정전남 고흥 소록도성당 피정 제주시 성이시돌자연피정 제주 서귀포 제주면형의집 피정 등이 그런 곳이다.

 

그러나 피정이 자연 속에서 휴식만 취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오랫동안 정리되지 않은 삶을 정리하거나 신앙관, 역사관 등을 바로 세우는 계기로 삼기도 한다. 제주면형의집에서 산들평화순례에 참여한 김대희(41)씨는 제주 4·3현장과 강정마을 등 역사적인 곳들을 순례하면서 불편함다름없이 음주를 해서 다른 피정객들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사례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수원.JPG» 강원도 태백 예수원

 

개신교에서도 영성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 크게 늘고 있다. 개신교에서는 강원도 태백 예수원 경기도 가평 다일영성수련원 서울 서초동 크리스찬치유상담연구원 등이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어 크리스찬들의 영성수련터로 각광받았다. 근래 들어서는 강원도 홍천 밝은누리공동체 경기도 가평 필그림하우스 경기도 양평 모새골 경남 사천 헤세드공동체 등이 휴식과 영성수련을 겸한 곳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문적인 수련단체들은 좀 더 전문화한 프로그램들을 제공하고 있다. 정토회의 경북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진행하는 깨달음의장1000회 넘게 운영될 만큼 대표적인 성찰·깨달음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한겨레휴센터가 충남 공주 천선원에서 진행하는 해독단식캠프도 오랫동안 체내에 쌓인 독소를 빼내 활력을 되찾는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이 밖에도 강원도 홍천 행복공장의 감옥체험과 무문관 경기도 화성 산안마을의 야마기시즘연찬회 인천시 강화도의 사이엔즈스쿨코리아 등에도 여름에 몸과 마음을 추스릴 프로그램들이 있다. 프로그램마다 독특한 특성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몸과 마음 상태에 맞는 것을 골라야 한다. 대부분의 프로그램 운영단체들은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어 포털에서 검색할 수 있으므로 홈페이지에 들어가 일정과 특성을 미리 점검하고 예약하는 게 좋다.


순간을 소유하라

$
0
0


칼렌츠3.jpg


셔츠 단추는 두개 쯤 풀어서 가슴을 드러내고, 목거리를 하고, 팔엔 문신을 하고, 아이돌 같은 머리 스타일의 칼렌츠. 그는 개신교 목사다. 그것도 미국 뉴욕에서도 ‘핫’한 힐송교회 목사다. 힐송교회는 노래와 연주 등 콘서트형 예배로 분위기를 ‘업’ 시키는 곳이다. 칼렌츠는 미국의 슈퍼스타 가수 저스틴 비버를 비롯한 대중스타들의 멘토다. 또한 교회는 ‘노잼’이라는 수많은 젊은이들을 예배로 불러들이고 있다.


 그의 책 <순간을 소유하라>(정민규 옮김, 움직이는서재 펴냄)가 출간됐다. ‘흔들리지 않고 사는 법’이란 부제를 달아서다. 처음 그 책을 펴들었을 때만 해도 그렇고 그런 책이려거니 했다. 수많은 스타군단을 거느린다고 그가 훌륭하라는 법이 없다는 것은 익히 봐왔기에 그랬다. 그런데 아니다. 저스틴 비버 같은 젊은이들의 마음에 콕 박힐만한 그만의 뭔가가 있다는 것을 <순간을…>이 보여준다.


 그는 외모와 차림새는 자유분방하고 상당히 진보적인 주장도 서슴지 않지만, 그의 설교는 상당히 도덕적이고, 전통적인 요소가 적지않다. 그가 젊은이들의 자유주의적 경향에 무조건 동조함으로써 지지와 인기를 얻어내는 류는 아니라는 뜻이다. 표피적인 것을 건드리기보다는 오히려 본질적인 것을 건드리려 들기때문에, 진부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청소년들이 그의 말에 동조하는 것은 그의 진솔함 때문인지 모른다.

 칼렌츠는 “두려움이 모두 사라질 수는 없지만 두려움을 다루는 방식은 바뀔 수 있다”면서 자신의 체험을 이렇게 고백한다. 

 

 젊은이들로 가득 찼던 어느 모임에서 있는 힘껏 설교했던 기억이 나네요. 청중은 150명 정도 됐었습니다. 청중 가운데는 오기 싫은데 마지못해 온 사람도 있어 보였습니다. 젊은이들은 아무 말 하지 않고도 표정만으로 앞에서 말하는 사람의 자신감을 떨어뜨릴 수 있죠. 표정으로 그들은 모두 표현하거든요. ‘지루해요. 저는 당신이 별로거든요. 도대체 언제 끝나죠? 기다리기 정말 힘드네요’ 이렇게 표정으로 모두 말해버리니까요.

 설교를 마친 후에 우연히 그곳에 계셨던 한 어르신이 말씀하시더라고요. “잘 들었네. 하지만 카펫을 새로 바꿔야겠어. 자네가 하도 왔다갔다 해서 구멍이 난 것 같아.”

 나중에 그 설교를 녹화한 영상을 봤는데, 제가 모든 두려움을 제 발에 쏟아붓고 있었나봅니다. 보기엔 산만할 정도로 왔다갔다 했었는데 제 자신은 의식하지 못한 거죠.

 하지만 그날, 저는 한 걸음 나아간 겁니다. 모든 경기의 첫 라운드에서 상대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12라운드쯤 가면 온갖 의심을 이겨 내고 승리를 거둡니다. 핵심은, 계속해서 싸우는 겁니다. 혼들리더라도,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아서 누군가를 믿게 되는 게 두려운 사람에게는 데이트란 겁나고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무조건 거절부터 하고 봅니다. 그러나 거절을 하고 나면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닙니다. 아쉬움이 남으니까요. 그럴 땐 가만히 앉아서 차분하게 생각해 보는 거예요. ‘세상에는 아직도 좋은 사람들이 많아. 나는 그들을 만나게 될 거야.’ 그럼, 당신은 한 걸음 나아간 겁니다.


 

 책 표지-.jpg그는 또 자신을 따르는 대중의 영웅들이나 자신도 다른 사람들과 다름이 없다는 점을 상기키켜준다. 그는 저스틴 비버가 수많은 가십성 기사에 시달리는 것과 관련해 이렇게 묻는다.

 “만약 당신이 13세 정도에 세계적으로 유명인이 되어 음악, 명성, 돈, 좋은 사람, 나쁨 사람들이 뒤섞인 인생을 살게 된다면, 그리고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어떨 거 같나요? 아무런 흔들림 없이, 아무런 실수도 없이 늘 똑바로 살아갈 자신이 있나요? ”

 그는 “저스틴과 어울려 보니, 왜 그 많은 스타들이 마약에 빠지고, 미쳐 가고, 그러다 더 나빠지고, 나중에는 아예 자신의 존재 자체가 영영 사라지기를 원하는지 알게 되었다”면서 “그래서 그런 싸움을 잘 이겨낸 저스틴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엄청난 돈과 명성을 가진 그도 다른 젊은이들과 똑같은 것, 즉 사랑, 지지, 반응, 경청을 원하고, 당신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쉽게 상처 받는다”는 말도 잊지않았다.


 칼렌츠는 자신이 깨달은 ’관계의 비법’도 말한다. 즉 ‘강한 척하지 않고 산다면 우리는 서로 연결될 수 있다’면서 스타플레이어 출신의 성공한 사업가인 챈들러와 친해진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강한 척을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서로에게 약함을 보여줄 수 있었기에 진정으로 연결된 관계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저스틴이 제 곁에 계속 머물러 있는 이유도 제가 강한 척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저의 부족함과 약점과 실수를 모두 보여주기 때문일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관계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는 것일 수 있다’며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해준다.

 “결국 우리 인생의 모든 목적은 내가 나아지는 만큼 다른 사람들도 더 나아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져서 당신이 얻는다면 내가 져도 됩니다. 진짜 ‘윈-윈’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주로 젊은이들을 많이 상대하지만, ’되는대로 살아라’, ‘마음 편한대로 하라’는 식의 조언은 하지않는다. 오히려 제대로 살아야함을 채근하고, ‘높은 곳을 향해 뛸 것’을 이렇게 촉구한다.

 “‘당신이 무엇을 믿는지, 무엇에 대해 열정적인지 당신은 더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당신 스스로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살고 있는 도시와 그곳의 문화가 당신을 원하지 않는 곳으로 끌고 가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많은 청년들이 결코 위대하거나 전설적인 일들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평범한 일상만을 살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나느 매 주일 교회에 모인 청년들에게 달라져야 한다고 설교합니다. 평범한 일상도 소중하지만, 위대하거나 전설적인 일들을 갈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어느 설교자로부터 구절을 인용해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분명히 애기한다.

 “필요하지도 않은 것들을 구매하느라 돈을 낭비하지 마세요. 불필요한 것들을 사고 나서 돈이 없다고 말하지 마세요. 또한, 자기가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남으려고 인생을 허비하지 마세요.”


 그는 “한때 프로선수를 꿈 꿀만큼 승부욕이 강해 가족끼리 게임에서도 승부욕을 불살라 분위기를 망치기도 한다”고 고백하면서, 아주 현실적인 삶의 지혜도 전해준다.

 “우리는 무엇이든 승리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작은 승리의 경험이 쌓여 큰 자신감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승리를 추구해야 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에 승리하려고 하는 태도에는 반대합니다. 뭐든지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그 무엇에도 최고가 되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의 등 뒤에는 언제나 비교하는 게 숨어 있고, 비교하게 되면 사람은 방어적이 되지요. 그러면서 훨씬 더 열심히 노력합니다. 하지만 그 노력은 대부분 진정한 승리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스스로를 소모시키는 노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특정 분야의 최일선에 있는 리더들은 자기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기가 뭘 못하는지 정말 잘 알아 자기가 잘 못하는 특정 분야에 대해서는 주변에 전문가를 많이 둔다”면서 “그렇게 되면 모두가 더 나아지고, 같이 성장한다”고 말한다.


 칼렌츠는 “지혜에게 가장 좋은 친구가 있다면, 그의 이름은 ‘관점’일 것이고, 이 두 친구가 손을 맞잡고 함께 일한다면 거의 무적의 힘이 발휘될 것”이라며 “우리의 모든 문제는 지혜의 부족함에서 오는 경우도 있지만 관점의 결여에서 오는 경우가 더 많다”고 꼬집는다.

 칼렌츠는 소셜 미디어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악성 댓글이나 가짜 뉴스와 같은 골칫거리에도 불구하고, 소셜미디어가 제공하는 연결성 때문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소식이나 각종 사건과 그 원인에 대한 생각들을 한꺼번에 알 수 있어서 좋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인스타그람을 즐겨한다.

 그런데 소셜미디어를 하면서 다른 사람의 삶과 비교하게 되고, 내가 할 수 있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해 스스로 소유권이 있음을 잃어버리면 큰 일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사람들이 인생에서 겪은 놀라운 변화에 관심이 많은데, 그런 인생의 기적같은 일들은 기승전결이 분명한 스토리 라인에서 온다기보다는 순간과 순간이 연결되는 곳에서 온다”고 말한다. 그는 인스타그램을 좋아하는 이유도 우리에게 ‘순간’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라며 이렇게 말한다.

 “낭비되는 순간이 없다면, 그리고 우리의 순간순간에 에너지가 살아 있다면 우리 인생의 가치는 굉장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좌절감과 피로감이 인생의 매 순간을 축소시키도록 내버려 두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거의 ‘지금 이 순간은 사진으로 찍을 만한 가치조차 없어’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결국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지는 무기력한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꼭 알아 두어야 할 게 있습니다. 우리가 보내는 하루하루는 대부분 특별해 보이지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무덤덤한 시간에도 초자연적인 힘이 늘 우리 가까이게 있답니다.”


스트레스 날리는 힐링 굿판

$
0
0


무2--.jpg


지역에서 전해져내려온 굿이 서울 한폭판에서 공연장에 올려진다. 야단법석과 무천문화연구소는 굿 힐링 페스티벌 <소원을 말해 봐> 공연을 3일부터 8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돈화문국악당에서 펼친다. 특히 이번 공연은 향토적 전통 굿판을 유료 공연화한 최초의 시도다.


 공연에는 서울 천신굿 보존회장 김순희 만신, 함경도 망묵굿 보존회장 서유정 만신, 강원도 내륙굿 보존회장 고춘자 만신, 황해도 작두굿 김주은 만신, 남해안 별신굿 김현숙 만신, 진도씻김굿 송순단 만신이 직접 출연한다. 굿은 만신들이 각 지역의 특징적인 요소로 산 사람과 망자(죽은사람) 사이에서 재수와 복을 기원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 가운데 서울 천신굿은 무교와 불교, 유교의 의례가 적절히 혼합된 굿으로 궁중 문화의 영향으로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망묵굿은 함경도 지방의 전통굿으로 구천에 떠도는 망자의 넋을 천도하는 굿이다. 강원도 내륙지방굿은 동해안 굿의 영향을 받아 구수한 소리와 가벼운 춤동작으로 이루어진 경쾌한 굿이며 황해도굿은 강신무의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나는 작두굿이다. 남해안 별신굿은 마을과 집안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굿이며, 진도 씻김굿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춤과 노래로 천도하는 세습무들의 굿이다. 전국의 전통 굿판을 한자리에도 모두 일별해 볼 수 있는 셈이다.


무3-.jpg


 이번 굿판을 기획한 무천문화연구소장 조성제 예술감독은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일상의 스트레스와 불안을 떨쳐내고 건강한 몸과 마음을 챙겨 돌아갈 수 있도록 최고의 굿판이 펼쳐질 것”이라며 “우리 문화의 원형인 굿이 묵은 상처에서 벗어나고, 삶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구실을 한다는 것을 재발견하는 현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람자들은 공연에 앞서 신점 보기, 사주 쓰기, 소원지 쓰기, 조상해원 동참하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문화재단, ㈜상승피에프의 후원으로 진행되는 이 공연 시간은 평일 오후 7시30분, 토요일 오후 5시, 일요일 오후 3시며, 관람료는 회당 3만원이다.(02)929-2183.


매순간 죽고 부활한다

$
0
0


고래4-.jpg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려 컴퓨터를 켜니 첫 화면에 북해(北海)의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집니다. 푸르게 투명한 하늘 아래 하얀 설산(雪山)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그 아래, 하늘보다 더 짙푸른 바다 수면 위로 커다란 고래 한 마리가 유유히 물살을 가릅니다.

순간 전율울 느낍니다. 꼬리를 높이 치켜들고 반지르르 기름기 도는 검은 피부를 자랑하며 차디찬 북해를 늠름하게 헤엄쳐가는 저 고래. 너무 아름답고 너무 경이롭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무()에서 어찌 저리도 멋진 생명체가 있게() 되었을까.

기독교인이며 힌두교도들은 무한하신 창조주 하느님께 깊이 머리 숙일 터이고, 불자들은 저 고래에게서 부처님의 비어있는 성품, 즉 공()을 볼 겁니다. 노자는 도덕경 첫머리에서 ()는 천지의 시작을 이름이요, ()는 만물의 어미를 이름이라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와 유, 이 둘은 본시 같은 것인데 이름이 다를 뿐이라 했습니다.

현대 과학은 무에서 빅뱅이 일어나 유가 시작되었고, 원소, 먼지, 별의 순서를 거쳐 마침내 생명체가 나타났답니다. 그리고 기나긴 진화의 무대에 북쪽 바다의 저 아름다운 고래며, 우리 집 마당가를 꼬물꼬물 기어 다니는 신퉁방퉁한 개미들이며, 빤짝빤짝 빛나는 꼬마 녀석이며, 빨간 꽃망울 유도화 화분 한 귀퉁이를 염치없이 가득 채운 까마중들이 등장해서 저마다 있음()의 기쁨을 노래합니다.


긴 세월 이런 저런 생각들 사이를 헤매 다니다가 이제는 이 모든 생각들이 다, 같은 말씀의 여러 변주곡이라 여기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의 피조물이란 말은 저 스스로 독립적으로 고유 성품을 유지하며 영원히 존재할 수는 없다는 뜻이니, 있음()도 아니고 있지 않음()도 아닌 공()한 성품이라는 불교의 개념과 같은 소리요, 무와 유가 본시 같은데 이름이 다를 뿐이라는 노자 말씀이나 빅뱅이며 진화론이 다 그 소리가 그 소리지 싶습니다.


우리는 말이나 이름, 개념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이니 유니 무니 불성이니 하며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으나, 한번 말이 되고 나면 결국 그 말에 매여 본래의 뜻을 잃어버리기 십상입니다. ‘하느님하고 이름 붙이니 우리 보다 힘 센 존재의 하나로 여겨 살려 달라 빕니다. 하지만 주역에서 신은 어떤 고유의 모습이 없고 단지 어짐()으로 나타나고 사랑이라는 작용 속에 숨어 있다고 합니다.


비가 온다는 말을 생각해 봅니다. 습도가 높아지고 찬 공기와 더운 공기가 만나는 조건의 결과물이 내리는 비입니다. 그런데 비가 온다고 해 버리면 마치 라는 고정된 존재가 있어 어디 숨어 있다가 지금 여기로 떨어지는 양 착각을 하게 됩니다. 착각을 피하려면 용수 스님 식으로 내리는 비가 내린다고 말하는 게 좋을 듯도 합니다. 비는 피조물이고, ()합니다.


도 그렇습니다. ‘라고 말하고 나니 이 도 우주 시작 이전부터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지금 이 생에 나타났고 죽은 뒤에도 다시 어디로 이동하는 걸로 생각지어 집니다.

그런가?


오래전, 그러니까 2005, <공동선> 5, 6월호에서 오현 스님도 이 이야기를 하셨더군요.

불교에서는 기독교의 부활을 어찌 보느냐는 물음에 스님은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내가 아는 부활은 시체가 다시 사는 게 아닙니다. 순간순간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는 게 부활이죠.


 불교에는 一日一夜(일일일야) 萬生萬死(만생만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루 낮 하루 밤에도 만 번이나 태어나고 만 번이나 죽는다는 뜻입니다. 매 순간 생과 사가 갈린다는 거죠. 그러니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죠. 과거에도 얽매이지 말고, 미래를 걱정하지도 말고 오로지 오늘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타력신앙인 기독교와 자력신앙인 불교는 서로 다른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한 스님 답변은 이랬습니다.

교인이 천 명이면 하느님도 천 분이라고,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사람에게는 모두 하느님의 씨 예수님이 깃들어 있다는 겁니다. 사람들의 탐욕과 죄로 인해 예수님의 모습이 가려져 있을 뿐이죠. 거듭남을 통해 참된 나를 회복하면 내 마음 안에 있는 예수님을 볼 수 있고 되살릴 수 있습니다. 인간의 오염되지 않은 모습 그대로가 예수이고, 따라서 우리 모두가 예수입니다.


오3-.jpg» 생전의 조오현 스님


 불교가 불상을 갖다놓고 부처라 하며 복을 구하듯이, 십자가를 세워두고 복을 구하다보니 이런 본래의 뜻을 잃어버린 거죠.”

불교 윤회사상이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기독교 맹신자들 생각과 비슷한 데가 있지 않느냐고 묻는 데는 이렇게 답하십니다.

내가 누군가를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 나는 보살로 태어나며, 누군가를 못 살게 굴어야겠다고 생각하면 그 순간 아수라로 태어나는 거죠. 착한 마음은 보살과 선인으로, 악한 마음은 아수라와 악인으로 윤회하게 합니다. 윤회는 죽어서 하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끝없이 반복해서 이루어지는 거죠. 부활도 이생에서 끝없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옛 것을 버리는 순간 우리는 거듭나고, 바로 그 거듭남이 곧 부활인겁니다.”

바오로 사도의 코린트 후서 517절이 떠오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


오현 스님은 생전에 종교 기득권자들에게 이렇게 일갈하셨습니다.

절집은 승려들의 숙소일 뿐이니 절집에만 당신들의 천국을 만들지 말고 세상 속에서 진리를 찾고 세상과 함께 하라. 고통받는 중생이 없으면 부처도 필요없다. 천년 전 중국 산 속 늙은이들이 뱉어 놓는 죽은 말들(선사들의 법어)만 듣고 살지 말고 프란치스코 교황처럼 중생들과 고통을 나누라

교회 안에만 머물지 말고 모욕받고 상처받더라도 저자거리로 나가라. “그리스도인이 자기가 속한 모임이나 본당, 거기서 이루어지는 활동에만 갇혀있다면 병이 들고 말 것입니다. 저는 병든 교회보다 길거리에서 사고를 당한 교회가 수 만배 더 좋습니다.”라 외치신 교황님 말씀과 꼭 같습니다.

스님은 이렇게 삶과 죽음을 노래하셨습니다.


삶의 즐거움을 모르는 놈이 죽음의 즐거움을 알겠느냐/ 어차피 한 마리 기는 벌레가 아니더냐/ 이 다음 숲에 사는 새의 먹이로 가야겠다

엊그제 오현 스님이 정말 새의 먹이로 가셨습니다. 어디, 고정 불변의 오현 스님이 있어 이 욕계(慾界)에 오셨다가 저 무색계(無色界)로 해탈하신 게 아니라새의 먹이로’. 아니, 새의 먹이가 되시는 게 바로 해탈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차디 찬 북쪽 바다를 유유히 헤엄쳐가는 저 아름다운 고래나 오현 스님이나 벌레나 숲속의 새가 다 하느님의 피조물이요, 진화의 산물이요, 그 본 모습은 공()한 불성을 지녔답니다


 이글은 <공동선> 7, 8월호에 실린 것입니다

계율과 이익의 갈림길

$
0
0


금년 호적나이 백세를 맞이하는 태종사 조실 도성큰스님 이야기


현장1-.jpg» 필자 현장 스님과 태종사 조실 도성 스님(오른쪽)

 

나는 남 잘하는 것은 못하지만 남 못하는 것은 잘하는 사람이야.”

부산 태종대 태종사 수국축제를 다녀왔다. 태종대는 해운대와 함께 부산의 대표적인 명소이다. 태종대의 중심에 태종사가 자리잡고 있다.꽃가꾸기를 좋아하는 도성 큰스님께서 30년 전부터 심고 가꾼 수국꽃들이 크게 자라 영도구의 대표축제로 자리잡았다.

 

수국종류만 200여종 3000그루의 수국이 만개하니 만다라 화장세계가 펼쳐진다.태종대에 오는 모든 사람들이 태종사를 먼저 찾게된다.태종사 수국 축제기간에만 수만명이 찾아와 수국의 화려하고 다양한 꽃을 즐긴다.

 

마침 종무소에서 도성큰스님을 뵐수 있었다. 먼저 시유지이고 공원지역에 어떻게 사찰을 지을수 있었는지 물었다.태종대가 6.25이후에는 피난민들의 난민촌이 있었다.70년대 공원으로 정비되면서 모두 철거되었다.태종사는 그때 건립되고 건물을 모두 부산시에 기부 체납하였다.

절을 지어서 부산시에 기부하니까 처음에는 안좋은지 알았어 그런데 시에서 관리해주니까 너무좋아..그리고 다음에 상좌들이 이 절을 팔아 먹을수도 없거든.”

 

큰스님은 1919년 출생으로 금년 연세가 백세이다.

내가 물었다..신문과 잡지에 큰스님 나이가 두가지로 나오는데 실제 연세가 어떻게 되시나요?

호적 나이는 금년 백세이고 실제는 94세 을축생이야

보통 생년이 늦을수는 있는데 어떻게 6년이 넘게 호적에 올렸나요?

그게 남모르는 기술이야

 

현장--.jpg현장2--.jpg


스님께서는 북한출신으로 인민군으로 참전하여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왔다.인천상륙작전으로 보급로가 끊기고 포로가 되어 거제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다. 그때 포로 수용소장이 미군장교 딘소장이었다. 북한군 포로들이 포로수용소장을 포로로 잡은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제네바 포로협약을 제대로 준수하라고 훈계를 하고 석방해주었다.

 

1953년 반공포로 석방으로 풀려났다.그는 지체없이 절을 찾아 출가했다.그때 찾아간 절이 부산 선암사였다. 여덟번을 쫒겨났다가 아홉번을 찾아가 출가를 허락받았다.석암스님과 지월스님이 계셨는데 지월스님의 제자로 사미계를 받았다.

 

그때 호적을 만들었는데 또 군대가지 않으려고 여섯살 올려 호적을 만들었다고 고백하신다. 너는 생긴것도 못나고 성질도 급하니 매일 108배를 하고 참회문을 써서 항상 참회하면서 살아라...,하는 석암스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왔다.

 

북한에서 절에 다녔는가 물어보았다.효봉스님 속가집하고 이웃마을에 살았단다.평안도 우랑사라는 절에 다녔고 함께 내려온 인민군중에 스님출신도 있었다고 한다.

 

도성스님께서는 우리나라에 위빠사나수행을 최초로 소개시킨 분이다.한국불교에 출가해서 당대의 선지식들을 만나 보니 언행에서 존경심이 생기지 않았다. 해인사 총무할적에 거해스님께 차비를 마련해 주고 부탁하였다.남방스님들은 출가해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수행하는지 알아보고 오라고 하였다.

 

거해스님이 미얀마가서 위빠사나 수행을 익히고 돌아왔다.1988년 마하시쎈타의 우판디 사야도가 처음으로 한국에 오셨다.서울 승가사 비구니선원에서 21일간 집중수행이 마련되었다.한국불교에 공식적으로 위빠사나수행이 전수되는 현장이었다.


현장3--.jpg현장4--.jpg

 

지난 2009년에는 테라바다불교의 상가라자로 추대되었다.근본불교 승왕이란 뜻이다. 1978년 해인사 주지를 역임하셨으며 1989년에는 대흥사주지와 교구본사주지연합회 회장직도 역임하셨다. 스님께서는 한국불교에 출가했지만 남방불교에 귀의하여 남방가사를 걸치고 맨발에 샌달을 신고 지내신다.태종사는 조석예불도 빠리어로 모신다.

 

도성 큰스님께서 남긴 유명한 말씀이 있다.

남방스님들은 무슨 일을 할려면 부처님 계율에 맞는지 점검하고 결정한다.그런데 한국 스님네들은 무슨일을 할려고 하면 계율보다 이익이 얼마나 남는가를 계산해 보고 결정을 한다.”

부부의 '면접'

묻지마 수용은 멍청한 짓

$
0
0


공부-.jpg


사람은 음식을 먹을때 치아를 사용합니다
음식을 그냥 삼키면 체하거나 설사를 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아무리 맛잇는 음식도 잘 씹어서 먹는것입니다
그런데 음식에 대해서는 그렇게 강조하면서
책이나 다른사람이 하는 말에 대해서는
무방비 적으로 삼킵니다
누가 쓴책이 좋다더라 누가 강론이나 강의를 잘한다더라 하면
그냥 삼켜버리는것입니다.


묵상하면서 잘게 씹는시간을 갖지않고
그냥삼키면
대화할때 자기생각이 아닌
다른사람의 생각을 말하게 됩니다.
이런현상은 특히 신앙인들ㅡ종교를 불문하고ㅡ특히 신실한 신앙인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뭔가 체한듯한 모습으로 사는것이지요.

ㅡㅡㅡㅡ
음식이건 사상이건 씹고 비판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 자아가 건강해질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성종교인들은 순종운운하면서
사람들에게 자기생각을 하느님 혹은 부처님의 뜻인양 강제로 먹이우는 멍청한짓을 번복하고 있습니다.


생물 있는곳에 권력욕 있다

$
0
0


 생물이 존재하는 곳에는 권력에 대한 욕구가 있다.


            니체(독일의 철학자)


세상은 아름다운가

$
0
0


 세상은 아름다운 책이지만 그것을 읽을 수 없는 사람에게는 거의 쓸모가 없다.


                  C.골도니(이탈리아의 극작가)

눈물과 땀이 주는 것

$
0
0


 눈물로 씻어지지 않는 슬픔은 없다.

땀으로 낫지 않는 번민도 없다.

눈물은 인생을 위로하고 땀은 인생에게 보답을 준다.

 

              -서양 격언

빛보다 어둠이 익숙한 사람들

$
0
0


민주주의-.jpg


서화담 (花潭은 徐敬德의 호) 선생이 길가에서 우는 사람을 보고 이유를 물었다.
"저는 다섯 살 때 눈이 멀어서 지금 20년이나 되었답니다. 
오늘 아침나절에 밖으로 나왔다가 
홀연 천지만물이 맑고 밝게 보이기에 
기쁜 나머지 집으로 돌아가려 하니 길은 여러 갈래요, 
대문들이 서로 어슷비슷 같아 저희 집을 찾아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 지금 울고 있습지요."
화담이 그에게 말했다.
"네게 집에 돌아가는 방법을 깨우쳐주겠다. 
도로 눈을 감아라. 
그러면 곧 너의 집이 있을 것이다."
그러자 소경은 다시 눈을 감고 지팡이를 두드리며 
익숙한 걸음걸이로 걸어서 곧장 집에 돌아갔다.
연암 박지원(1737∼1805)의 산문 에 나오는 글이다.

+

일제에 길들여졌던 사람들이 말끝마다 “조선 놈은...”라고 말하듯 

독재에 익숙한 사람들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종북이라고 몰아갑니다.

어둠에 익숙해지면 빛이 오히려 방해로 느껴집니다.

진정 바라던 것을 찾게 되었어도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 되는 용기가 없어서 

도로 눈을 감고 있지나 않습니까?

행복의 가장 큰 장애는 미움

$
0
0


마음-.jpg


수행은 에고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어려운 수행입니다. 
원치 않는 상황이 있을 때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기회입니다. 
배신을 당할 때가 아집을 내려 놀 수 있고 인욕바라밀 수행을 할 수 있고 용서를 배울 수 있습니다. 
모든 고통을 만드는 나만 생각하는 습관도 볼 수 있고 마음을 엄청 많이 닦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 볼 줄 모르고 아집을 곽 붙잡아서 남탓하고 갈등을 키웁니다. 
아집을 내려놓는 것을 비하면 3000배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빨 뽑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입니다. 
남과 갈등이 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갈등을 키우는 말과 생각과 행동을 자제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면 우리가 힘듭니다. 당장 용서를 못 하더라도 말과 생각을 조심해야 합니다. 

마음이 일어날 때마다 깨어있으므로 향하고 아집이 지나가게 내버려두십시오. 이렇게 반복을 하면 미움이 약해집니다. 나쁜 말은 절대 자제하시고요. 기회 있을 때마다 상대방에 대한 좋은 마음을 조금씩 가져 보구요. 
다른 사람에 대한 안 좋은 마음이 얼마나 해로운지 인지만 해도 큰 도움이 됩니다. 나만 생각하는 아집을 원수로 알아 보는 것이 높은 수행입니다. 인지와 해탈은 동시에 일어납니다.

남들에 대한 좋은 마음, 싫은 마음, 둘 다 우리를 늘 속이는 지각뿐입니다. 좋아하면 좋은 성품이 대상에 자체적으로 있는 것 같이 보이고 싫어하면 나쁜 성품이 대상에 자체적으로 있는 것 같이 보입니다. 둘다 우리 마음 뿐입니다. 좋을 때는 집착을 키우지 말고 싫을 때는 미움을 키우지 말아야 합니다. 

집착은 아주 나쁘지는 않지만 미움은 엄청 안 좋습니다. 남을 배타하고 싫어하는 것이 행복의 가장 큰 장애입니다. 미움을 해결하지 못하면 자신의 마음을 썩게 합니다. 잠시 덮어놓더라도 우리 마음에 독으로 남습니다. 미움은 나중에 암으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수행자.jpg


에고에게 안 좋은 것이 우리에게 좋은 것입니다. 에고가 당하는 것은 마음공부에 이롭습니다. 상대방 때문에 힘든 것이 아닙니다. 아집 때문입니다.

스승님께서도 주지 못하는 이런 훌륭한 수행의 기회가 있다면 꼭 수행으로 탈바꿈 하세요. 용서하고 남에 대한 좋은 마음을 다시 가질 수 있다면 무엇보다 큰 공부가 됩니다. 마음을 일어나게 한 그분에게도 진정한 감사의 마음도 일어납니다.
언제 용서를 배울 수 있을까요? 언제 인욕수행을 할 수 있을까요? 언제 자비심을 기를 수 있을까요? 지금 아니면 언제요?


전두환을 사랑하라던 장일순

$
0
0


구법모-.JPG» 구법모 무위당사람들 이사가 1988년 결혼할 당시 스승 장일순 선생이 써준 서화를 가리키고 있다.


風雨豈能籠淸香(풍우기능농청향). 서울 종로구 옥인동 길담서원 한뼘미술관에 전시중인 ‘무위당장일순서화전’에 걸린 서화다. ‘비바람이 어찌 맑은 향기를 가둘 수 있으리’란 뜻의 이 서화는 구법모(57) ‘무위당사람들’ 이사가 결혼할 때 주례였던 장일순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이번 전시회엔 구 이사가 소장한 장일순의 서화 10 점이 걸려있다. 


 장일순(1924~94)은 가톨릭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와 함께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했고, 이후 한살림을 설립하며 생명평화운동을 개척했던 선구자였다. 그는 저작을 남기지않았고, 오직 서화만을 남겼다. ‘나는 미쳐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 ‘무엇을 이루려하지마라’ 등의 서화엔 장일순의 풍모가 생생히 살아있다. 20살때 장일순을 만나 스승으로 모셨던 애제자이자 서화 소장자 구 이사를 만났다.


 구이사는 서울에서 고교 1학년때부터 흥사단 활동을 하며 함석헌 등의 강의를 들고 일찍부터 투사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1년 재수 뒤 연세대원주캠퍼스 영문과에 진학했다. 구 이사는 원주지역 민주화운동가들의 단골집이던 ‘천하태평’이란 식당에서 장일순, 이창복, 김지하, 김민기 등을 통해 민주화의 세례를 받았다. 가톨릭 모태신앙인 그는 대학2학년 뒤 가톨릭원주교구대학생연합회를 조직했고, 1984년 첫직선제 총학생회장으로 선출돼 시위를 주동했다. 당시 다른 시위주동자들처럼 그도 응당 감옥행을 예비한 몸이었지만 그 때마다 방패막이 되어준 것은 지주교와 장일순이었다. 그가 민주화운동청년연합으로부터 입수한 ‘광주사태일지’를 터트리겠다고 나서자, 지 주교는 ‘내가 해야지 아무나 할 수 없는 건’이라며 직접 폭로했다. 또 구법모의 구속을 막기 위해 관계당국자들을 주교관으로 초청해 만찬을 베풀기도 했다. 


3-.JPG5-.JPG


 장일순이 가톨릭 세례교인이었지만, 동학의 2대 교조 해월 최시형의 생명사상을 사숙한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구 이사도 장일순이 밥과 소금을 앞에 놓고 여러명이 맞절을 하도록 하며 ‘밥이며 말로 우주의 조화로운 결정체이고,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했던 것을 회고한다. 장일순이 ‘선천은 폭력이 주도했지만 후천은 상생의 시대’라고 한 것도 해월의 생명사상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구 이사는 지금껏 세상에 알려진 적이 없는, 새로운 장일순을 말한다. 그가 말하는 장일순은 ‘선사(禪師)’다. 구법모가 처음 원주에 간 스무살 때 장일순을 처음 만나 던진 질문은 “원주가 민주화의 성지라고해서 왔는데, 왜 이리 조용하냐”는 거였다. 그런데 장일순의 일성은 “전두환을 사랑하라”는 것이었다. 구데타와 광주학살의 주범인 전두환도 죽이고 자기도 죽겠다고 분기탱천해 있던 열혈청년의 귀를 의심치않을 수 없는 말이었다. 장일순은 “만약 네가 전두환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것 같니?”라고 물었다. 그리고 장일순이 말했다. "거울 앞에서 죽도록 뛰어봐라. 네 모습이 제대로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 그것이 장일순이 구법모에게 준 첫 화두였다. 그리고 장일순이 그에게 읽어보라고 처음으로 권한 책은 사회과학서적이 아니라 서산대사의 <선문귀감>이었다. 그런 다음엔 권한 책을 읽어보았는지 반드시 물었다. 그는 운동권 친구와 선후배들을 데려가곤 했으나 그들은 장일순의 선문답에 손사래를 저으며 두 번 다시 가려하지않았다. 그러나 그는 자석에 끌리듯 장일순을 찾곤했다. 의문 많고 질문 많던 청년이 찾아서 온종일 질문을 퍼부어도 장일순은 싫은 기색 한번 없이 답해주었다고 한다.


장일순-.jpg» 원주지역 민주화운동가이자 생명살림운동의 선구자인 무위당 장일순


 “언젠가는 ‘비행기가 뜰려면 뭐가 있어야하느냐’고 물어요. ‘팬이 있어야 하죠’라고 했더니, ‘요즘 사람들은 팬이 너무 작아 날 수가 없다’고 해요. 그러며 ‘독재는 이제 곧 끝난다’며 ‘그 뒤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어요.”

 장일순은 ‘조급해하지 말라’거나 ‘미래를 준비해야한다’는 답 대신 그렇게 화두를 주었다고 한다. 구 이사는 “그런 화두로 발심이 돼 대학졸업 뒤 서울 방배동에 탄허불교문화재단이 설립한 삼일선원 등에서 불교공부를 하며 지금까지도 삶과 세상 문제의 해법을 불교와 선(禪)에서 찾아왔다”고 말했다.


4--.JPG


 구 이사는 “전시된 서화에도 선사로서 장일순의 면모가 드러나 있다”고 했다. 서화 중엔 서산대사가 ‘만국의 도성들이 개미둑에 불과하다’고 한 시가 담겨있다. 그는 장일순이 얼마나 열과 성을 다해 땀을 흘리며 서화에 집중했는지 잘 알고 있다. 1988년 인사동 민에서 장일순서화전을 할 때는 3김씨가 다 올만큼 성황이었다고 한다. 장일순은 원주의 유지라고 부고가 많이 왔는데 부의금도 못내고 예만 표했을만큼 생계가 곤란했는데도 서화전에서 모인 수천만원을 한푼도 안빼고 한살림에 다 내놨다. 이것이 한살림 창립의 밑천이 됐다는 것이다. 또 민주화운동 구속자 가족들에게도 서화들을 써줘서 이를 팔아 쓰도록 했다고 한다.


1-.JPG2-.JPG


 “박정희의 5·16 구데타를 비판했다가 사회안전법에 걸려 평생 원주지역을 벗어나지 못한채 살아야했던 선생님이 그린 난은 단순한 난이 아니지요. 그 때는 어려서 그렇게 귀한 것을 주셔도 그 가치를 몰랐어요. 돌아가시고 난 뒤에 그걸 보면 선생님의 마음이 느껴져 눈물이 나요."

 그가 운동권 동지들과 달리 에스케이와 케이티 상무 등으로 사업 일선에서 일하면서도 이한열기념사업회, 장준하기념사업회, 몽양여운형기념사업회 이사로 힘을 보태온 것은 말과 삶이 관통했던 장일순을 떠날 수 없어서였다고 한다.  


 서화전은 18일까지 열린다. 14일 오후 3시 길담서원에서 구 이사가 ‘소장자와 대화’를 한다.


Viewing all 3077 articles
Browse latest View l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