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미국 브루더호프공동체 케이폴릿지에서 사는 박성훈님이 보내온 것입니다.
평소 아주 가깝게 지내고 있는 데릭&새라 부부로부터 기쁘고 감사한 소식을 받았습니다. 이들에게 오랜동안 기다려 온 둘째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이들의 둘째 캐이틀린 마리아나는 루크 밀튼의 여동생입니다. 아기 루크 밀튼이 태어나던 감격이3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합니다.
2015년 10월 14일 수요일 아침, 온 공동체 식구가 한 장소에 모였습니다. 갑자기 예배실 문이 열리더니 데릭과 세라가 첫 아이 루크 밀턴 짐머만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 왔습니다. 의사가 임신 5개월부터 아이가 살아서 태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예견해 와서 지난 몇 달동안 온 공동체 식구들이 이 부부를 마음에 품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의사의 예측과는 달리 살아서 태어난 아이 루크는 행복으로 가득찬 아빠의 품에 안겨 있었습니다. 그곳에 모인 모든 이들의 얼굴에는 감격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천사가 하늘에서 사랑스런 아기를 안고 내려와 우리 가운데 임재해 모두가 영원한 세계를 맛보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아기 루크는 채 하루도 살지 못하고 10시간만에,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자기가 세상에 있던 시간을 훨씬 넘는 여운을 우리 모두에게 남긴채 말입니다.
메이폴릿지에서
박성훈, 최순옥 올림
SungHoon & SoonOk Park
www.Bruderhof.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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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은 루크가 죽은후 세라가 앞으로 다시는 아기를 가지지 못할 거라고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허락하셨습니다. 이는 독일의 격언을 다시금 생각나게 합니다. (Der Mensch denkt, Gott lenkt. 인간은 생각하고, 하나님은 이끄신다.)
사람들은 세라가 캐이틀린을 임신했을때 아기를 ‘무지개아기’라고 불렀습니다. 무지개 아기는 유산이나 신생아때 아기를 잃고 비통함을 겪은 엄마들이 임신한 아이를 부르는 말입니다. 폭풍후 비가 갠후 무지개가 나타나듯이 아이를 잃은 부모의 비애를 폭풍우에 비유하며 새로운 탄생하는 아기를 희망의 신호탄으로 여기어 무지개아기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캐이틀린이 태어났을때 하늘에는 예쁜 무지개가 떠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일을 하던 손을 놓고 갓 태어난 아기 케이트린을 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짐머만 부부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두 사람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려 보는 우리 마음도 덩달아 기쁘고 행복해졌습니다. 그리고는 우리도 가만히 마음을 모아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올렸습니다.
아래 글은 두 아기의 아빠 데릭이 케이틀린 맞이하며 쓴 글입니다.
» 캐이틀린의 무지개
데릭 짐머만의 글입니다.
아내 세라가 임신한 아기를 두고 친구들은 ‘무지개 아기’라 불렀다. 어리둥절해 하는 우리를 보고 친구들은 이렇게 설명했다. 유산이나 사산, 신생아 때 아기를 잃고 비통함을 겪은 엄마들이 임신한 아이를 무지개 아기라고 부른다고 말이다.
브랜든과 케이트 쉴러 부부는 두 아이로 축복을 받기 전에 이미 아기 둘을 잃었다. 이들은 우리 첫째 아기가 임신 때부터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 우리에게 손길을 내밀었다. 우리 첫째 루크는 살 확률이 희박하다는 진단을 태어나기 전부터 받았기에 우리 부부는 참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곰곰이 생각할수록 우리 부부는 ‘무지개 아기’라는 말에 이끌렸다. 신생아 담당 간호사이자 블로거로 활동중인 엘리자베스 추카스는 이렇게 썼다. ‘무지개는 비가 갠 후에야 나타난다는 사실’을 밝히며 아이를 잃은 부모의 비애를 폭풍우에 비유했다. “이 말을 사용하는 많은 엄마들은 자신들이 겪은 폭풍의 영향을 부인하지 않고, 오히려 풍경이 어둠에서 빛으로 바뀌는 것에 주목합니다. 희망의 신호탄으로 여기면서 말이에요.”
우리 둘째는 이번 주 초에 태어났다. 병원 가는 길은 아주 후덥지근했다. 이 병원은 우리 할아버지가 의사로서 출산을 도운 곳이자 내 아버지가 태어난 곳이다. 그리고 열 시간 후에 작별을 해야 했지만 우리 첫째 아기 루크를 낳고 환영한 곳이다.
아내 세라가 진통을 하는 동안 하늘은 시커멓게 변했다. 유월의 소나기는 창문을 때리고 있었다. 몇 시간 후, 우리는 새로 가족이 된 딸, 케이틀린 마리아나와 활짝 사진을 찍고, 기도하고 있던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텍스트를 보냈다. 몇 분 뒤, 우리는 답신을 받았다. 우리 집 위에 뜬 너무나 아름다운 무지개 사진이었다.
대부분의 상징들처럼 무지개도 각기 다른 의미로 쓰여지나 우리 부부는 케이틀린의 무지개를 가장 오래되고 심오한 하나님 약속의 신호로 받아들였다. 대홍수 이후에 다시는 지구를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하신 약속을 무지개로 보이시지 않았는가.(창 9)
케이틀린의 무지개는 우리가 완전히 슬픔에 굴복하거나 절망에 빠질 필요가 없다는 깨우침이기도 하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더라도 태양은 언젠가 다시 구름을 뚫고 나올 것이며 광채를 비출 것이다. 심지어 가장 위협적인 소나기 먹구름이 몰려 온다고 해도 햇빛이 프리즘을 통해 수백만의 빗방울을 아름다운 무지개 빛으로 바꾸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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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이틀린 마리아나 짐머만
이 글은 아기 할아버지의 크리스 짐머만이 장례식에서 한 이야기를 요약한 것입니다.
“굳이 여러 날을 생각할 필요가 있는가? 사람이 온갖 행복을 아는 데는 하루면 충분한데.”
- 표도르 도스또옙스키
10월 14일 수요일 아침, 뉴욕주 메이플 릿지 브루더호프에 사는 데릭과 세라 짐머만 부부는 첫 아이 루크 밀턴 짐머만의 탄생을 환영했다. 하지만 아기는 채 하루도 살지 못하고, 주변 사람과 공동체에 커다란 영향을 남긴 채 떠났다. 세상에 머물던 시간을 초월하는 여운을 남긴채 말이다. 이 글은 루크의 할아버지 크리스 짐머만이 장례식에서 했던 말을 정리한 것이다.
데릭과 세라 짐머만. 첫 아이 루크와 함께
시편 30편의 말씀으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우리는 이 말씀을 지난 수요일에 경험했습니다.
전문의 몇 분은 루크가 살아서 태어나지 못할 거라고 예견했지만, 갓 태어난 루크는 힘차게 발을 굴렀습니다. 분만실에 있던 의사는 기쁜 나머지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를 부르며 방금 일어난 기적을 알리기 위해 동료들을 불렀습니다. 기쁨이 분만실을 가득 채웠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집으로 향하는 자동차에 올라탔고, “환영해요, 루크 밀턴 짐머만.”이라는 간판이 걸린 공동체에 도착했습니다. 공동체 식구들이 모인 가운데 루크는 축복의 기도를 받았습니다. 기도해 주신 분은 18개월 전 루크의 부모님 결혼식을 주재했던 목사님이셨습니다.
아침나절 루크의 엄마는 아기에게 젖을 주고, 목욕을 시키고, 안아주고,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루크는 여러 번 눈을 떴고, 자기 이름을 부르면 반응했습니다. 손을 흔들고, 손가락을 빨고, 발을 차고, 칭얼대기도 했습니다. 사내아이답게 우렁찬 소리로 울기도 했습니다. 증조할머니 마리에나는 첫 증손자를 가만히 안아 주었습니다.
이른 오후 루크의 심장이 마지막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친구와 가족, 삼촌들과 이모들, 그리고 어린 사촌들이 방안을 가득 메우고 노래를 부르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루크를 데려가시려는 순간을 기다리며 그렇게 모였습니다. 그 소중한 시간을 절대 잊지 못할 겁니다. 늦은 오후, 부모님의 품에 안겨 루크는 마지막 숨을 내쉬었습니다. 열 시간 삼십 분을 이 세상에서 살고서 말입니다.
사실 루크는 더 오랫동안 지내다 갔습니다. 그 기쁜 탄생을 알렸을 때 이미 루크는 아홉 달이 된 아기였으니까요. 지난 5월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갔을 때 태아가 희귀한 염색체 이상을 안고 있고, 심장에 심각하고 복잡한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날 이후 데릭과 세라는 걱정으로 가슴 아픈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전문의들과 목회자들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전에 없이 더 절실히 기도했습니다. 어린 자식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수술을 통한 개입은 위험할 뿐만 아니라 아기의 생명을 구하지 못한다는 게 분명해지자 루크의 부모님은 의사들과 상의한 끝에 아기의 미래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루크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인간 생명의 신성과 존엄을 믿습니다. 아무리 건강이 좋지 않고 장애가 있더라도 새로 태어난 아이 하나 하나는 모두 창조주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그대로 루크를 환영하고 싶었습니다.”
그 결정에 깊은 영향을 준 것은 누가복음 18장의 말씀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아기들까지 예수께로 데려와서, 쓰다듬어 주시기를 바랐다. 제자들이 보고서, 그들을 꾸짖었다. 그러자 예수께서 아기들을 가까이에 부르시고, 말씀하셨다. ‘어린이들이 내게로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사람의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거기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지난 여름, 그리고 길고 찬란했던 가을 내내 우리 가족 모두는 마음속으로 깨어서 아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동안 아기의 용감한 작은 심장은 공동체의 삶의 리듬에 맞춰, 자연의 선율에 따라 박동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걱정과 두려움, 상황을 마음대로 바꾸거나 계획을 미리 짜고 싶은 욕망, 그리고 하나님께 “왜?”라고 반문하는 유혹을 내려놓기 위한 힘겨운 싸움을 이어나갔습니다. 그 시간을 겪으며 우리는 오래된 독일 격언의 참뜻을 배웠던 것 같습니다. “인간은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이끄신다.” (Der Mensch denkt, Gott lenkt.)
우리 모두 거듭 배워야 한다는 건 진실이 아닌가요? 데릭과 세라도 평화를 찾아야 했고, 젊은 부부로서 간직했던 꿈과 행복의 기준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게요. 그래서인지 저 역시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나는 무엇을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니 내가 내려놓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래서 하나님이 내 삶에서 일하실 수 있도록.’
“우리가 어린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우리는 귀를 기울이고 있나요? 루크는 의학적으로 심장이 정상 크기의 반밖에 되지 않는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사실 좁은 마음을 지니고, 무정하며 마음이 삐딱한 건 - 이건 모두 우리의 자만심과 죄 때문입니다 - 우리가 아닌가요? 루크의 심장은, 여느 아기들처럼, 사실 완벽했습니다. 순결했고, 결백했으며, 사랑으로 가득했습니다.
지난 몇 주간 저녁 무렵 자주 우리는 데릭, 세라와 함께 집에서 3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허드슨 강변으로 갔습니다. 강물을 바라보노라면 쉽게 슬퍼집니다. 흐르는 물을 바라보면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눈 깜작할 사이에 자라서 훌쩍 떠나버린다는 게 실감이 났습니다. 모든 물질적인 것이, 우리 눈에 보이며 붙잡고 의지하는 것들은 결국 오래가지 못하고 허물어진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하지만 강물을 바라보노라면 깊은 행복이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허드슨 강을 보면서 우리는 모든 물의 순수한 근원에 관해 생각했습니다. 태양과 별들, 산을 지으시고 옮기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떠올렸습니다. 그러면서도 사랑스럽고 다정하셔서 작은 아기를 세상에 있게 하시며, 영혼을 부드럽게 쓰다듬으시고 어루만지시는 그분을 생각했습니다.
지난 며칠 우리는 모순된 역설 속에 살았습니다. 루크의 삶은 아주 짧았지만, 평생 남을 기억을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너무 짧게 머물러서 우리의 가슴은 무너졌지만, 동시에 우리 가슴을 깊은 기쁨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루크가 태어난 그 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숱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웃음이 눈물로 변했고, 주체 못할 기쁨이 감당하지 못할 슬픔으로 변했습니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온갖 감정을 하루에 다 경험했습니다.
이 시간을 되돌아보는 우리의 마음에는 감사함이 가득합니다. 다가올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보다 더 힘들 거로 생각합니다. 루크의 요람이 비어있는 탓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죽음으로 비롯된 분리는 영원한 것이 아님을 믿습니다. 끝이 아닙니다. 미래는 - 하나님의 미래는 - 기쁨으로 가득할 것을 압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약속을 들어 보십시오. “이와 같이, 지금 너희가 근심에 싸여 있지만, 내가 다시 너희를 볼 때에는, 너희의 마음이 기쁠 것이며, 그 기쁨을 너희에게서 빼앗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오늘 이런 믿음으로 무장하고 이 아름다운 어린 아기에게 작별을 고하기 위해 여기에 모였습니다. 루크는 너무나 완벽하고 너무나 순결하므로 우리와 계속 머무를 수 없었던 하늘의 전령이었습니다. 이런 확신으로 우리는 루크를 하나님께 - 우리의 하나님께 - 맡겨 드립니다. 주시기도 하시고, 가져가시기도 하는 그분께요.
루크의 영혼을 데려가기 위해 온 배는 물을 안전하게 건너, 비탄의 밤을 지나,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고요한 항구에 닿았다는 걸 우리는 잘 압니다. 그곳은 모두를 위한 영원한 쉼이 약속된 곳입니다. 일단 시작된 우리의 항해가 마침내 도달하는 곳입니다. 요한계시록은 그곳의 물이 수정처럼 맑고, 하늘은 천 개의 태양보다 밝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곳에는 더이상 눈물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