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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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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들이 만든 사랑의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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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원장과안병년-.JPG» 경남 양산 죽산기슭 성모울타리 공동체 성모상 앞에서 얘기를 나누는 하용수 원장(가운데)과 안병년씨(왼쪽)와 정모석씨


선인과 악인이 태생적으로 정해진 것이고, 선인은 끝내 선하게, 악인은 끝내 악하게만 산다면 사람의 노력이나 교육이나 종교가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경남 양산 죽산기슭에 가면 인간이란 변하는 것이고, 선악도 태생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이들이 있다. 


 성모울타리에선 (주)이레우리밀이란 빵공장을 운영해 우리밀로 빵을 만들어 팔고 있다. 그런데 성모울타리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며 빵공장에서 일하는 40여명의 대부분이 ‘별’을 단 ‘형님’들이다. 살인, 강도, 폭력으로 10년, 15년, 22년형을 살고 나온 전과자들도 있다. 공장엔 공동체원들 뿐 아니라 외부에서 온 기술자와 노동자들까지 60여명이 함께 일한다. 누가 별을 달았고, 누가 별을 달지 않았는지 구분이 없다. 정답게 애기를 주고받으며 일하는 모습이 어느 공장보다 오히려 훈훈하다. 이 공동체와 공장을 이끌고 있는 이가 성모울타리 하용수(59) 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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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원장이야말로 산전 수전 공중전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왔다. 10대 때부터 소매치기로 소년원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고, 젊은시절엔 부산·서부경남 지역 터미날을 무대로 주먹을 휘두르던 이른바 ‘깡패’였다. 한때 ‘터니널파 오야붕 싸움’이란 제목으로 지역신문 1면에 대서특필된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는 도박과 마약 중독자였다. 


 그런데 역시 마약중독자였던 친형이 어느날 자살을 했다. 또 마약을 하던 주먹패거리들이 하나둘씩 간경화 등으로 죽어갔다. 이를 지켜본 그는 자신도 마약을 끊지않으면 그들과 다름 없는 죽음을 맞을 것임을 직감하고, 중독을 끊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탈출구가 보이지않았다. 그 때 아내와 함께 찾은 곳이 성당이었다. 처음엔 세례를 받기 전 이수하는 교리반도 나가는둥 마는둥이었다. 그러다 한 수도원 피정에 갔다가 그 전엔 한번도 믿기지않았던 세계를 체험했다. 그 때부터 ‘하느님’에게 ‘마약을 끊을 수 있는 힘을 달라’고 매달렸다. 피정을 나온 뒤 주먹만을 믿던 주먹전도사였던 그가 가톨릭전도사로 변했다. 지금으로부터 35년전인 그가 24살 때의 일이었다. 


 그는 그 뒤 터미널의 주먹들을 하나둘씩 성당으로 데려갔다. 주먹들은 경건하기 그지없는 성당 분위기에 ‘지금 뭐하자는 겁니까’라고 힐난했고, 성당 신자들은 ‘어깨들’의 등장에 위압감을 느꼈다. 더구나 하원장이 ‘주먹들’을 일회성으로 성당에 데려온다고 그들이 범죄나 도박, 마약을 단박에 끊을리 만무했다. 그들을 유혹으로부터 보호할 울타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의 집으로 한 명 두 명 데려오기 시작한게 공동체가 되어버렸다. 초기엔 터미널에 정차한 버스에 올라 오징어 등을 파는 장사를 해 공동체의 생계를 꾸리다가 나중엔 두개 터미날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해 그 수익금으로 살았다. 그러나 터미널 현대화로 그마저 용이치않자 12년전 양산으로 와 시작한게 빵공장이었다.


부부-.jpg» 성모울타리 하용수 원장 부부


 그러나 빵공장이 초기에 망해 공동체원들은 산 속의 빈수도원에 들어가 5년간 살다가 산 아래 폐가를 구해 고쳐 30명이 옹기종기 살기도 했다. 그러다 2년 전에 공장을 지어 이곳에 정착했다. 여기저기 피난다니다시피 살던 때에 비하면 이곳은 천국이지만, 실상 20억원의 대출을 받아 지은 공장이어서 빵공장은 이자도 갚기가 어려운 빚좋은 개살구다. 성모울타리는 부산서부터미널 진주 승강장 앞에 ‘빵장수 야곱’이라는 빵가게를 열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나마 성모울타리의 취지에 공감하는 이들이 일부러 그 가게를 찾거나, 공장으로 대량 주문을 해줘 60여명의 목숨줄을 지탱하고 있다.


  하 원장이 왜 굳이 갈곳없는 출소자들로 공동체를 꾸려가는 것일까. 아마도 동변상련때문일 것이다. 하원장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4살때 부모와 떨어져 부산에서 전남 구례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맹인인 외할머니와 사촌누나와 함께 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부산으로 돌아왔지만, 이미 부모와 정이 떨어져 겉돌다가 건달이 되고 말았다. 하 원장이 부모와 함께 살 수 없게된 아들과 딸 둘을 입양한 것도 어린 시절 부모와 떨어진 상처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 중  아들은 군대에 갔고, 하 원장은 이곳에서 아내, 장남, 딸과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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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어떻게 전과자들 틈에서 가족들도 함께 사느냐’고 하지만, 하 원장은 “어려서 정을 못 받아 그렇지, 속 정이 더 깊은 사람들”이라고 공동체원들을 감싼다. 정모석(45)씨는 교도소를 드나드느라 17살때 돌공장에서 잠시 일해본 것 외엔 돈벌이를 해본적도 없고, 가게에서 물건을 살 때도 감이 없어 힘들어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도 6년 전 성모울타리에 들어와 먹고 자며 월 80만원을 받고 있다. 정씨는 “여기가 좋다”면서 “조금씩 사회생활도 배우고, 얼마전엔 잃어버린 가족도 찾았다”고 말했다.


 이곳엔 출소자 출신이 아니면서 함께 사는 이도 있다. 안병년(72)씨다. 터미널에서 장사를 하다 하원장과 인연이 돼 20여년 전부터 함께 살게 된 안씨는 마치 엄마인양 공동체원들을 ‘아이들’이라고 불렀다. 안씨는 “성모울타리를 거쳐간 출소자들이 200여명인데 하나같이 어려서 엄마를 죽거나 개가해 돌봄을 제대로 못받았더라”며 “아마 어려서 보살핌을 받았더라면 십중팔구는 교도소 같은데 갈 일이 없는 심성 고운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씨는 “하원장님은 다른 사람들이 망나니라고 거들떠보지않는 이들조차 포기하지조차 일일이 챙기고, 자기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일을 잘 저지르는 사람은 일 보러 다니면서도 차에 태우고 다니며 보살피는 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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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원장이 공동체원들에게 하지말라는 규율은 딱 한가지다. ‘술 먹고 싸우지만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가끔 싸우는 일이 있어도 바로 쫓아내는 경우는 별로 없다. 하원장은 “같은 말을 해도 이들을 이해하는 입장에서 하는 것과 아해 없이 심판하듯이 하는 것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인생이 꼬여서 그렇지 원래 나쁜 사람이 어딨냐”고도 말했다. 그런 하원장 뒤에 성모 마리아가 서 있었다.



직선과 곡선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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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진만이 길이 아니다/굽이굽이 휘돌지 않는 강물이 어찌/노래하는 여울에 이를 수 있는가/부를 수 있겠는가' -박남준의 <마음의 북극성>


 요즘은 세간의 벗들이 오면 마당 아래 숲속 도서관에서 차를 나눈다. 일지암 다실은 자우홍련사 마루에 앉아 건너편 초당을 바라보며 펼친 찻자리가 일품이다. 그런데 일품의 찻자리는 굳이 어느 곳 하나만이 아닐 듯 하다. 한 생각 밝으면 소소한 모든 존재가 그대로 부처님 모습이요 처처가 극락세계가 아닐 수 없다. 찻자리 또한 마주하는 사람이 좋으면 그 자리가 명품이다. 숲속 도서관 다실의 묘미는 차경(借景)에 있다. 이 곳은 사방의 풍광을 품어 앉는다. 창을 연다. 옆으로는 도솔봉과 나란히 하고, 앞으로는 혈망봉과 눈을 맞춘다. 어렴풋이 멀리에 해창 바다가 호수와 같은 수면을 조금 비춰준다. 와! 눈물난다, 라고 감탄한다. 서로를 품어 안으니 서로가 서로를 빛내주는 존재가 된다.


 세간의 벗들이 차 한잔을 청한다. 도서관 다실에서는 직사각형의 판목 차탁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천연 염료로 물들인 차포에 다기를 올려 놓는다. 6개의 차포가 있다. 많은 사람들과 차담을 나눌 때 유용하다. 대략 5명이 둥그런 차포에 앉아 차를 마신다. 멋을 아는 이들은 산중에 있는 여러 나뭇가지와 풀잎과 꽃잎으로 다기와 함께 찻자리를 꾸민다. 그 애들이 옹기종기 어울려 있으니 참 이쁘다. 저마다 잘난 체 하지 않고 알맞게 놓여 있을 때 절로 어울림이 되나 보다.


 절집과 더불어 거의 모든 다실의 차탁은 직사각형이다. 반듯한 직선이다. 직선은 애초부터 굽이 돌고, 감아 돌고, 한 눈 팔며 천천히 걸을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타고 났다. 직선의 생리는 구분 짓는 일에 능숙하다. 서로가 정면으로 대면하고 대결한다. 그래서인가, 벗들과 직선의 차탁에서 차를 마시면 서로가 다소 긴장한다. 이러한 대면이 어색하다. 절로 형성되는 진지함이 조금은 불편하다. 직선의 찻자리가 그렇다.


감자캐기-.jpg» 전남 해남 사하촌에서 농사일을 도우며 감자를 캐는 법인 스님


 반면, 둥그런 차포는 곡선의 찻자리를 만든다. 곡선은 서로의 시선과 기운이 어깨동무할 수 있어 좋다. 둥그렇게 모여 앉으니 주인과 손님의 경계가 없다. 곡선은 금 긋지 않는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오직 한 점이다. 그 한 점 한 점이 곁을 내주며 어우러질 뿐이다. 경험으로 말하자면, 둥근 차포에 펼친 곡선 찻자리는 처음부터 사람들이 긴장하지 않는다. 처음 차를 마시는 사람들도 편안하다고 한다. 곡선의 찻자리는 사람과 사람을 금 긋지 않는다. 금 긋지 않으니 평등하다. 평등하니 절로 편안한가 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결코 편안할 수 없는 자리가 있다. 높으신 분이 오시면 직원들이 직선으로 도열하여 맞이한다. 높으신 분은 그 사이를 직진한다. 쓸쓸하고 슬픈 풍경이다. 직진만이 길이 아니라는데, 굽이굽이 휘도는 강물이 노래하는 여울에 이를 수 있다는데.


진정한 친구가 있다는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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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친구가 있다는 것의 의미는

나를 완전히 믿어주는 영혼이 

내 곁에 있다는 것이다.


-찰스 

위기가 뜻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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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의 글자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위험을 나타내고 다른 하나는 기회를 나타낸다.

-케네디

한번의 사별, 여러번의 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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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수도회는 28년째 사별가족 돌봄 모임을 하고 있다. 그 중 10여년을 내가 동반하고 있으니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사별가족들을 만났겠는가? 모두가 아프고 시린 사연들을 가지고 힘든 발걸음을 용기내서 남산 꼭대기까지 오지만 10여 차례의 모임을 한 번도 빠짐없이 오기는 쉽지 않다. 한 두명은 초반에 그만두시기도 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어쩌면 ‘상실의 자각’도 되지 않아 ‘아닌 척’, ‘안 슬픈척’하고 산 긴 세월 끝에 용기를 내었으니 본인도 낯설고 힘들기는 마찬가지이다.


     첫 모임은 ‘상실의 자각’부터 시작한다. 이제 그 분은 떠났고, 나는 남았고, 그 분은 저 세상에 있으며, 나는 이 세상에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강하게 인식시킨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주로 가장 간단하게 하는 방법은 모임 하는 장소 가장 중간에 고인의 이름을 명패에 쓰고 올려 놓는 것이다. ‘우리는 이 분을 애도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쉽지 않다.


     상실을 자각하고 나면 뒤 이어지는 ‘상실의 고통’은 또 얼마나 큰지 모른다. 이 때쯤이면 다른 가족들로부터 이런 말을 듣기도 한다. ‘그 모임 가서 더 힘들어 지는 데 가지 말라’, ‘여태 잘 견뎌왔는데 왜 그런데 가서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울고, 잊은 사람을 다시 끄집어 내서 고통받느냐’ 그런데 정말 그들이 잘 살아 왔고, 모든 것이 해결되고, 고인을 잊었다면 이런 모임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사별’은 일회성인 사건이다. 그러나 ‘상실’은 사별 이후에 계속해서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그래서 상실의 고통은 내가 죽어야 끝나는 것이다.


     남편을 떠나보내고 나서 잘 산다고 생각했다. 20여 년 동안 두 딸을 잘 키우면서 스스로를 칭찬해도 될 만큼 용기 있게 살았다. 어느 날 결혼을 앞두고 있는 큰 딸이 청첩장 시안을 가지고 왔다. 무심코 그 청첩장을 열었다. 그런데 남편 이름 앞에 ‘故’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그냥 주저앉고 말았다. ‘내가 남편이 없구나, 얘를 어떻게 시집 보내지, 예식장에는 누가 데리고 들어가지...’라는 생각부터 그 동안 힘들게 살았던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가면서 그 설움과 갑자기 떠오른 그리움과 주변 사람들로 받았던 여러 불편한 시선들과 사별로 인해 잃은 많은 상실들, 친척, 가족, 친구들과의 관계 단절과 경제적 문제 등이 아프게 다가왔다. 암튼 용기 있게 ‘식장에서 네 손 내가 잡고 들어가면 안 되겠니?’라며 사돈과도 의논이 잘 되어서 혼사를 잘 치루었다. 


     그런데 딸이 신혼여행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타자마자 두어달 동안 마음고생을 너무 해서인지 바로 탈진해서 쓰러진 그 어머니는 일주일동안 입원을 했다. 그리고는 퇴원 하자 마자 내게로 달려왔다. ‘저는 사별한지 20년 되었는 데 그 동안은 미친 듯이 사느라고 몰랐는 데 저는 애도도 충분히 못 했고 실컷 울어보지도 못했고 가슴에 멍이 들어가고 있었다는 걸 몰랐어요. 저 좀 살려주세요.’ 상실은 그런 것이다. 언제 어느 때 숨겨져 있던 내 안에서 불쑥 그 끝을 송곳처럼 내밀며 다가올지 모른다.  


예수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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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이 허물어진 건물더미들이나 보고 마는 것이라면 얼마나 허무할까. 모든 역사는 현재이듯이, 여행도 과거의 편린만 쫓는 것이어서는 곤란하다. 과거의 인물과 상황, 역사를 현재에서 만날 때 진정한 여행이 될 수 있다.


 <예수를 만나다>(아르테 펴냄)의 저자처럼 말이다.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다면서도, 성경이 성령으로 쓰여졌다는데도, 예수가 ‘백년손님’처럼 느껴지거나, 오직 교회를 가야만 만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면, 진정으로 예수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홀로 예루살렘을 순례하면서 예수의 발자취를 하나하나 더듬었다. 발로만 따라간 것이 아니었다. 이 순례의 남다른 점은 2천년 전의 예수를 현재의 예수로 살려냈다는 점이다.

 저자는 <중앙일보> 종교담당 백성호기자다. 아마도 기자란 인터뷰를 상시로 하며 궁금한 것을 묻는 직업이기에, 보통의 여행자와는 달리 예수에게 묻고 또 물었을 것이다. 그는 마치 어떤 사건의 주인공을 직접 등장시켜서 그 사건을 쫓아가는 다큐멘터리 작가처럼 예수와 동행하면서 예수사건을 샅샅이 훑었다. 예수가 태어나고 자라고 지나고 머물고 만나고 웃고 울고 죽었던 장소까지 말이다. ‘근원’을 탐구하면서 구도자적 자세를 견지해온 그대로 예수와 관련된 일화들의 근원을 파고 들었다. 그는 수년 전부터 신문과 인터넷, 에스엔에스 등에서 `현문우답'으로 `근원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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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가 첫번째 물은 것은 예수가 행한 숱한 기적들이다. ‘예수가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수천 군중을 배불리 먹이는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느냐’는건 너무도 인간적이고, 너무도 상식적인 궁금증이다. 그러나 제도권 교회에선 그런 상식적인 물음들이 쉽게 허락되지않았다. 저자의 말대로 설사 누군가 물었다고 해도, “그냥 믿어야 돼, 예수님 말씀은 그냥 믿는 거야 거기에 의문을 던지고 자꾸만 물음표를 달지마. 그건 네 믿음이 약해서 그런거야. 예수님은 인간적이고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물음을 초월하신 분이야.”라며 봉인되었던 것이다. 저자는 “그런 말을 들은 사람은 위축되고, 내 안에서 올라온 물음의 싹은 고개를 숙인 채 다시 땅속으로 쑥 들어가버리고, 자신이 그런 물음을 던진 것에 대해 묘한 죄의식마저 들어 다시는 그에 대해 묻지 않게 된다”며 “결국 ‘묻지마, 종교’가 되고만다”고 말한다. 저자는 “(기적을) 예수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초월적 힘으로만 풀이하면 그리스도교는 ‘물음이 없는 종교’가 되고말아 길이 없어진다”며 “물음을 던질 때 비로서 길이 생겨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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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는 물음으로 길을 열었다. 기적에 대한 물음의 시작은 ‘악령을 물리친 예수’다. 예수가 갈릴래야 호수 건너편 가라사에서 예수가 벌거벗은 사람 안의 마귀에게 그 몸에서 나와 돼지 속에 들어가라고 한 장면이다. 저자는 성서 속에 그려진 산비탈을 내려 호수가에서 마귀들린 사람과 악령과 돼지와 예수를 만났다. 먼저 마귀나 악령으로 표현되는 악마에 대한 물음으로 만남이 시작된다. 만남을 위한 오작교 구실은 성경이 한다.

 ‘예수가 악마를 처음 만난 곳은 광야였다. 그곳에서 40일 동안 악마와 싸웠다. 악마의 이름은 세 가지였다. 빵과 권력, 그리고 신에 대한 도전이었다.’

 저자는 “그 악마들은 도대체 어디서 생겨났을까” 라고 묻는다. 그는 예수가 앉은 그 자리에서 성서의 구절을 되새김하면서 물었다. 그런 질문의 과정은 기도일 수도 있고, 묵상일 수도 있고, 관상 수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그런 질문에 대해 가슴이 답한 것들을 이 책에 펼쳐냈다.

 ‘예수는 어떤 악마와 싸웠을까. 그렇다. 자기 안에서 올라오는 악마. 그와 싸웠다. 그 악마는 머리에 뿔이 달리고 삼지창을 든, 붉은 빛깔 악마가 아니다. 내 안의 가장 향긋한 욕망, 가장 달콤한 집착, 가장 끈적끈적한 고집. 그것이 바로 악마다. 그것이 신의 속성을 가리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렇게 묵상할 때 마귀 들린 사람과 돼지 떼 일화에서 굳건하게 닫혀 있는 문이 비로소 열린다”고 말한다. 또 예수가 이름을 묻자 마귀가 ‘군대’라고 답한 것에 대해서는 ‘내 안의 욕망, 내 안의 집착, 내 안의 고집 등 수많은 욕망’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돼지떼가 비탈을 달려  내려가 호수에 빠져 죽은 성서 속 사건에 대해서는 ‘천년에 걸쳐 쌓인 두꺼운 어둠이라 해도 촛불 하나 켜는 순간에 사라지고 마는 것처럼 신의 속성을 지닌 예수의 빛의 힘에 의한 것’으로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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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가 유대교 회당에서 12년간 하혈하던 여자를 치유한 기적도 저자는 ‘빛의 힘’으로 본다. 그가 갈릴래아 호수 북부의 마을 카파르나움에 가서 이 장면을 떠올릴 때 하혈하는 여자는 더 이상 3인칭이나 2인칭이 아니다. 저자는 ‘하혈하는 여자를 통해 하혈하는 나를 본다’고 했다.

 ‘저마다 삶의 상처가 있기에 피를 흘린다. 깊은 상처에서는 더 오래 피가 흐른다. 10년, 아니 20년, 30년이 지나도 피가 멈추지 않는다. 그 때마다 의사를 찾아가지만, 오래된 상처는 좀체 아물지않는다. 뿌리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렇게 오래도록 피를 질질 흘리는 상처를 치료해주는 것은 예수의 겉모습이 아닌 예수의 내면, 즉 예수 안에 깃든 신의 속성이라고 한다. 이런 신의 속성이 닿을 때 마음에 불이 켜지고, 마침내 상처의 뿌리가 무너진다는 것이다.

 

 저자가 예수와 2천년 전 사건을 만나는 건 심안을 통해서다. 심안을 통하지않으면 성서의 구절은 풀리지않은 수수께끼가 너무나 많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는 구절이 대표적이다. ‘평화의 왕’으로 불리는 예수가 평화를 깨러 온 악당이나 되는 듯이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고 표현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좀 더 근원적인 뿌리로 나아가기 위해 잎사귀를 치는, 즉 ‘진짜 평화’를 위해 ‘가짜 평화’와 ‘착각 평화’를 부순 것으로 본다. 선불교의 임제선사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아라한을 만나면 아라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척을 만나면 친척을 죽이고, 권속을 만나면 권속을 죽여라. 그래야 비로소 해탈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사물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자재하게 될 것이다’고 한 것과 일맥상통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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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는 ‘마음’을 잠시도 놓치지않고 나아간다. 그 마음의 문을 여는데 불경과 선어록, 노자의 도덕경까지 등장한다. 그는 아무리 예수의 설교를 열심히 듣고, 성경을 열심히 읽어도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문은 열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마음의 문고리는 안쪽에 달려 있기 때문에, 밖에서 아무리 두드려도 안에서 스스로 열어야만 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예수를 만나는데 동원되는 것들은 다양하다. 그는 유대역사서와 그리스어성경까지 동원해 2천년 전의 사건에 대해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그가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는 장면들은 그래서 마치 현재형인듯 생생하다. 그런 생생함으로 물음의 절정인 부활의 산을 넘는다. 그는 과거의 부활이 아니라 현재의 부활이 되도록 하기 위해 십자가를 2천년 전 예수의 십자가가 아니라 ‘자기의 십자가’로 끌어온다. 

 ‘십자가는 욕망의 소멸을 뜻한다. 그래서 예수는 각자의 십자가를 짊어지라고 했다. 십자가를 통해 자신을 무너뜨리라고 했다. 그렇게 영적으로 가난해지라고 했다. 그럴 때 비로소 ‘영원’에 거한다고 했다. 태초부터 우리 안에 깃들어 있던 신의 속성 속으로 말이다.’

 

 저자는 예수가 숨을 거두고 묻힌 곳은 골고타라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바로 ‘나의 가슴’이라고 한다. 그 뜨거운 아픔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그는 신의 속성, 빛을 발견하도록 추동하려는 시도를 끝까지 멈추지않는다.

 죽은 예수가 아니라 산 예수, 죽은 신앙이 아니라 산 신앙을 원하는 이들이 책의 순례를 거쳐, 성지 순례와 예수 순례를 하고, 마침내 ‘내면의 빛’을 순례하도록 이끌고 있는 것이다.


자야와 백석의 사랑이 낳은 길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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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에 올라 왔다. 오늘 초하루법회를 하기 위해서 이다.길상사에 올때마다 오늘의 길상사를 있게한 김영한 길상화보살의 사당에도 분향한다. 한국의 시인 156명에게 설문하였다.한국의 현대시 백년동안 최고의 시집을 물었다.영광의 1위에 오른 시집이 백석의 사슴이었다. 사슴은 1936년 100부한정판으로 발간된 시집이다.그당시 윤동주도 시집을 구하지 못해 지인에게 시집을 빌려 손수 필사하여 간직했다고 한다. 신경림시인은 백석시집 사슴을 읽으며 밥 한숟갈 먹고 꼬박 밤을 세웠다고 한다.


백석시인은 김영한의 연인이었다.백석은함흥 영생여고의 영어선생이었다.동료교사의 전별장소인 요정에서 당시 22세의 김영한과 처음 눈빛이 마주쳤다.백석은 26세 청년이었다. 단 한번 부딪친 한순간의 섬광이 바로 두 사람의 사랑의 시작이었다.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매듭이 없는 슬픈 사랑의 실타래는 이미 그때부터 풀려가고 있었다. 백석은 자야 김영한을 위하여 한편의 시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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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과 백석


 나와 나타샤와 힌당나귀/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내리는 밤 힌 당나귀를 타고 산곬로가자/.../출출히 우는 깊은 산곬로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내리고/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나타샤가 아니 올리 없다./언제 벌서 내속에 고조곤히와 이야기한다.산곬로 가는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세상 같은건 덜어워 벌이는 것이다.//

눈은 푹푹내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어데서 힌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 응앙 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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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의 집안에서는 기생과의 결혼을 반대하였다.백석은 만주로 떠났다.그후 그들은 다시 만나지 못했다. L.A고려사에 원주보살로 대도행보살이 있었다.김영한과 대도행보살은 친구사이이다. 무소유를 읽고 큰 감동을 받은 김영한은 대도행보살에게 법정스님을 소개받았다.몇번 만남끝에 성북동의 요정 대원각을 사찰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였다.번거로운 일 싫어하는 법정스님은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받아달라..싫다..십년간 되풀이 되었다.다른 큰스님들이 대원각을 자기에게 시주해달라고 물밑접촉도 몇차례 들어왔다. 그건 김영한 여사가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맑고 향기롭게 시민운동이 시작되면서 임원들로부터 공간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대원각을 아무 조건없이 사찰로 받아 들이기로 다시 대화가 되었다. 오랜 준비과정을 거쳐 마침내 오늘의 길상사 낙성식이 열렸다. 그때 김영한 여사가 대중들에게 말했다.그가 한 말은 짧고 분명했다.


법정.JPG» 법정스님


나는 배운것이 많지 않고 죄가 많아 아무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불교에 대해서는 더더구나 아무것도 모릅니다. 하지만 말년에 귀한 인연으로 제가 일군 이터에 절이 들어서고 마음속에 부처를 모시게 되어 한없이 기쁩니다.제소원은 여인들이 옷을 갈아 입던 저 팔각정에 종을 달아 힘껏 쳐보는 일입니다.


법정스님께서는 김영한 여사에게 길상화라는 법명을 내리고 백팔염주를 목에 걸어주었다. 낙성법요가 끝나고 기자가 물었다.오늘 수천억대 재산을 시주하여 사찰을 만들었는데 재산이 아깝지 않습니까? 내가 평생 모은 돈은 백석의 시한줄만 못하다.나에게 그의 시는 쓸쓸한 적막을 시들지 않게 하는 맑고 신선한 생명의 원천수였다. 다시 태어나면 나도 시를 쓰고싶다..길상화 보살의 짧은 답변이었다.


공덕비-.jpg기증-.jpg


대원각이 번창할때는 근무하는 젊은 여성들이 삼백명이 넘었다.이제 길상사에는 자원봉사자가 삼백명이넘는다. 사람도 하나의 요정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쾌락과 욕망만을 추구하던 사람이 어느 순간에 무상을 느끼고 수도승이 될수도 있다. 서울의 3대요정으로 손꼽히던 대원각도 주인이 맘먹으니 조석으로 목탁소리 끊이지 않는 삼보의 가람이 되었다. 다음은 김영한 길상화 보살의 간단한 약력이다.

김영한은 1916년 서울 관철동에서 태어났다.

16세 나이로 금하 하규일 문하에서 진향이란 이름을 받고 권번기생으로 입문하였다.여창가곡.궁중무등을 익히며 가무의 명인으로 성장하였다.

1937년 천재시인 백석을 만나 자야라는 아명을 받았다.

1955년 골짜기 맑은 물이 흐르는 성북동 배밭골을 사들여 대원각이란 한식당을 오픈하였다.

1987년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받아 생애의 가장 아름다운 회향을 생각하였다.7000평의 대원각터와 40여동의 건물을 수도사찰로 만들어 주기를 청하였다.

마침내 1997년 12월 14일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가 창건되었다.

김영한 길상화보살은 1999년 11월14일 육신의 옷을 벗었다.

다비후 그녀의 유골은 49재를 지내고 길상헌 뒤편 언덕에 뿌려졌다.그 자리에 길상화 공덕비와 사당이세워진 것이다.

*자야 김영한은 매년 7월 1일이 되면 일체음식을 입에 대지 않고 허공만을 바라 보았다.그날은 백석의 생일이었다.


'애'써야 사랑이다


10시간의 삶, 천년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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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미국 브루더호프공동체 케이폴릿지에서 사는 박성훈님이 보내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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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아주 가깝게 지내고 있는 데릭&새라 부부로부터 기쁘고 감사한 소식을 받았습니다. 이들에게 오랜동안 기다려 온 둘째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이들의 둘째 캐이틀린 마리아나는 루크 밀튼의 여동생입니다. 아기 루크 밀튼이 태어나던 감격이3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합니다.

 

20151014일 수요일 아침, 온 공동체 식구가 한 장소에 모였습니다. 갑자기 예배실 문이 열리더니 데릭과 세라가 첫 아이 루크 밀턴 짐머만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 왔습니다. 의사가 임신 5개월부터 아이가 살아서 태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예견해 와서 지난 몇 달동안 온 공동체 식구들이 이 부부를 마음에 품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의사의 예측과는 달리 살아서 태어난 아이 루크는 행복으로 가득찬 아빠의 품에 안겨 있었습니다. 그곳에 모인 모든 이들의 얼굴에는 감격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천사가 하늘에서 사랑스런 아기를 안고 내려와 우리 가운데 임재해 모두가 영원한 세계를 맛보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아기 루크는 채 하루도 살지 못하고 10시간만에,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자기가 세상에 있던 시간을 훨씬 넘는 여운을 우리 모두에게 남긴채 말입니다.

 

메이폴릿지에서

박성훈, 최순옥 올림

SungHoon & SoonOk Park

www.Bruderhof.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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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은 루크가 죽은후 세라가 앞으로 다시는 아기를 가지지 못할 거라고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허락하셨습니다. 이는 독일의 격언을 다시금 생각나게 합니다. (Der Mensch denkt, Gott lenkt. 인간은 생각하고, 하나님은 이끄신다.)

 

사람들은 세라가 캐이틀린을 임신했을때 아기를 무지개아기라고 불렀습니다. 무지개 아기는 유산이나 신생아때 아기를 잃고 비통함을 겪은 엄마들이 임신한 아이를 부르는 말입니다. 폭풍후 비가 갠후 무지개가 나타나듯이 아이를 잃은 부모의 비애를 폭풍우에 비유하며 새로운 탄생하는 아기를 희망의 신호탄으로 여기어 무지개아기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캐이틀린이 태어났을때 하늘에는 예쁜 무지개가 떠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일을 하던 손을 놓고 갓 태어난 아기 케이트린을 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짐머만 부부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두 사람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려 보는 우리 마음도 덩달아 기쁘고 행복해졌습니다. 그리고는 우리도 가만히 마음을 모아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올렸습니다.

아래 글은 두 아기의 아빠 데릭이 케이틀린 맞이하며 쓴 글입니다.


부루2-.png» 캐이틀린의 무지개


데릭 짐머만의 글입니다.

 

아내 세라가 임신한 아기를 두고 친구들은 무지개 아기라 불렀다. 어리둥절해 하는 우리를 보고 친구들은 이렇게 설명했다. 유산이나 사산, 신생아 때 아기를 잃고 비통함을 겪은 엄마들이 임신한 아이를 무지개 아기라고 부른다고 말이다.

 

브랜든과 케이트 쉴러 부부는 두 아이로 축복을 받기 전에 이미 아기 둘을 잃었다. 이들은 우리 첫째 아기가 임신 때부터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 우리에게 손길을 내밀었다. 우리 첫째 루크는 살 확률이 희박하다는 진단을 태어나기 전부터 받았기에 우리 부부는 참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곰곰이 생각할수록 우리 부부는 무지개 아기라는 말에 이끌렸다. 신생아 담당 간호사이자 블로거로 활동중인 엘리자베스 추카스는 이렇게 썼다. ‘무지개는 비가 갠 후에야 나타난다는 사실을 밝히며 아이를 잃은 부모의 비애를 폭풍우에 비유했다. “이 말을 사용하는 많은 엄마들은 자신들이 겪은 폭풍의 영향을 부인하지 않고, 오히려 풍경이 어둠에서 빛으로 바뀌는 것에 주목합니다. 희망의 신호탄으로 여기면서 말이에요.”

 

우리 둘째는 이번 주 초에 태어났다. 병원 가는 길은 아주 후덥지근했다. 이 병원은 우리 할아버지가 의사로서 출산을 도운 곳이자 내 아버지가 태어난 곳이다. 그리고 열 시간 후에 작별을 해야 했지만 우리 첫째 아기 루크를 낳고 환영한 곳이다.

 

아내 세라가 진통을 하는 동안 하늘은 시커멓게 변했다. 유월의 소나기는 창문을 때리고 있었다. 몇 시간 후, 우리는 새로 가족이 된 딸, 케이틀린 마리아나와 활짝 사진을 찍고, 기도하고 있던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텍스트를 보냈다. 몇 분 뒤, 우리는 답신을 받았다. 우리 집 위에 뜬 너무나 아름다운 무지개 사진이었다.

대부분의 상징들처럼 무지개도 각기 다른 의미로 쓰여지나 우리 부부는 케이틀린의 무지개를 가장 오래되고 심오한 하나님 약속의 신호로 받아들였다. 대홍수 이후에 다시는 지구를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하신 약속을 무지개로 보이시지 않았는가.(9)

 

케이틀린의 무지개는 우리가 완전히 슬픔에 굴복하거나 절망에 빠질 필요가 없다는 깨우침이기도 하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더라도 태양은 언젠가 다시 구름을 뚫고 나올 것이며 광채를 비출 것이다. 심지어 가장 위협적인 소나기 먹구름이 몰려 온다고 해도 햇빛이 프리즘을 통해 수백만의 빗방울을 아름다운 무지개 빛으로 바꾸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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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1-.jpg» 캐이틀린 마리아나 짐머만


이 글은 아기 할아버지의 크리스 짐머만이 장례식에서 한 이야기를 요약한 것입니다. 


굳이 여러 날을 생각할 필요가 있는가? 사람이 온갖 행복을 아는 데는 하루면 충분한데.”

- 표도르 도스또옙스키

 

1014일 수요일 아침, 뉴욕주 메이플 릿지 브루더호프에 사는 데릭과 세라 짐머만 부부는 첫 아이 루크 밀턴 짐머만의 탄생을 환영했다. 하지만 아기는 채 하루도 살지 못하고, 주변 사람과 공동체에 커다란 영향을 남긴 채 떠났다. 세상에 머물던 시간을 초월하는 여운을 남긴채 말이다. 이 글은 루크의 할아버지 크리스 짐머만이 장례식에서 했던 말을 정리한 것이다.

 

데릭과 세라 짐머만. 첫 아이 루크와 함께

 

시편 30편의 말씀으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우리는 이 말씀을 지난 수요일에 경험했습니다.

전문의 몇 분은 루크가 살아서 태어나지 못할 거라고 예견했지만, 갓 태어난 루크는 힘차게 발을 굴렀습니다. 분만실에 있던 의사는 기쁜 나머지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를 부르며 방금 일어난 기적을 알리기 위해 동료들을 불렀습니다. 기쁨이 분만실을 가득 채웠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집으로 향하는 자동차에 올라탔고, “환영해요, 루크 밀턴 짐머만.”이라는 간판이 걸린 공동체에 도착했습니다. 공동체 식구들이 모인 가운데 루크는 축복의 기도를 받았습니다. 기도해 주신 분은 18개월 전 루크의 부모님 결혼식을 주재했던 목사님이셨습니다.


아침나절 루크의 엄마는 아기에게 젖을 주고, 목욕을 시키고, 안아주고,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루크는 여러 번 눈을 떴고, 자기 이름을 부르면 반응했습니다. 손을 흔들고, 손가락을 빨고, 발을 차고, 칭얼대기도 했습니다. 사내아이답게 우렁찬 소리로 울기도 했습니다. 증조할머니 마리에나는 첫 증손자를 가만히 안아 주었습니다.

이른 오후 루크의 심장이 마지막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친구와 가족, 삼촌들과 이모들, 그리고 어린 사촌들이 방안을 가득 메우고 노래를 부르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루크를 데려가시려는 순간을 기다리며 그렇게 모였습니다. 그 소중한 시간을 절대 잊지 못할 겁니다. 늦은 오후, 부모님의 품에 안겨 루크는 마지막 숨을 내쉬었습니다. 열 시간 삼십 분을 이 세상에서 살고서 말입니다.


사실 루크는 더 오랫동안 지내다 갔습니다. 그 기쁜 탄생을 알렸을 때 이미 루크는 아홉 달이 된 아기였으니까요. 지난 5월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갔을 때 태아가 희귀한 염색체 이상을 안고 있고, 심장에 심각하고 복잡한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날 이후 데릭과 세라는 걱정으로 가슴 아픈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전문의들과 목회자들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전에 없이 더 절실히 기도했습니다. 어린 자식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수술을 통한 개입은 위험할 뿐만 아니라 아기의 생명을 구하지 못한다는 게 분명해지자 루크의 부모님은 의사들과 상의한 끝에 아기의 미래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루크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인간 생명의 신성과 존엄을 믿습니다. 아무리 건강이 좋지 않고 장애가 있더라도 새로 태어난 아이 하나 하나는 모두 창조주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그대로 루크를 환영하고 싶었습니다.”


그 결정에 깊은 영향을 준 것은 누가복음 18장의 말씀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아기들까지 예수께로 데려와서, 쓰다듬어 주시기를 바랐다. 제자들이 보고서, 그들을 꾸짖었다. 그러자 예수께서 아기들을 가까이에 부르시고, 말씀하셨다. ‘어린이들이 내게로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사람의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거기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지난 여름, 그리고 길고 찬란했던 가을 내내 우리 가족 모두는 마음속으로 깨어서 아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동안 아기의 용감한 작은 심장은 공동체의 삶의 리듬에 맞춰, 자연의 선율에 따라 박동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걱정과 두려움, 상황을 마음대로 바꾸거나 계획을 미리 짜고 싶은 욕망, 그리고 하나님께 ?”라고 반문하는 유혹을 내려놓기 위한 힘겨운 싸움을 이어나갔습니다. 그 시간을 겪으며 우리는 오래된 독일 격언의 참뜻을 배웠던 것 같습니다. “인간은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이끄신다.” (Der Mensch denkt, Gott lenkt.)

우리 모두 거듭 배워야 한다는 건 진실이 아닌가요? 데릭과 세라도 평화를 찾아야 했고, 젊은 부부로서 간직했던 꿈과 행복의 기준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게요. 그래서인지 저 역시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나는 무엇을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니 내가 내려놓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래서 하나님이 내 삶에서 일하실 수 있도록.’


우리가 어린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우리는 귀를 기울이고 있나요? 루크는 의학적으로 심장이 정상 크기의 반밖에 되지 않는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사실 좁은 마음을 지니고, 무정하며 마음이 삐딱한 건 - 이건 모두 우리의 자만심과 죄 때문입니다 - 우리가 아닌가요? 루크의 심장은, 여느 아기들처럼, 사실 완벽했습니다. 순결했고, 결백했으며, 사랑으로 가득했습니다.

지난 몇 주간 저녁 무렵 자주 우리는 데릭, 세라와 함께 집에서 3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허드슨 강변으로 갔습니다. 강물을 바라보노라면 쉽게 슬퍼집니다. 흐르는 물을 바라보면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눈 깜작할 사이에 자라서 훌쩍 떠나버린다는 게 실감이 났습니다. 모든 물질적인 것이, 우리 눈에 보이며 붙잡고 의지하는 것들은 결국 오래가지 못하고 허물어진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하지만 강물을 바라보노라면 깊은 행복이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허드슨 강을 보면서 우리는 모든 물의 순수한 근원에 관해 생각했습니다. 태양과 별들, 산을 지으시고 옮기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떠올렸습니다. 그러면서도 사랑스럽고 다정하셔서 작은 아기를 세상에 있게 하시며, 영혼을 부드럽게 쓰다듬으시고 어루만지시는 그분을 생각했습니다.

지난 며칠 우리는 모순된 역설 속에 살았습니다. 루크의 삶은 아주 짧았지만, 평생 남을 기억을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너무 짧게 머물러서 우리의 가슴은 무너졌지만, 동시에 우리 가슴을 깊은 기쁨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루크가 태어난 그 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숱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웃음이 눈물로 변했고, 주체 못할 기쁨이 감당하지 못할 슬픔으로 변했습니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온갖 감정을 하루에 다 경험했습니다.


브루더2-.jpg


이 시간을 되돌아보는 우리의 마음에는 감사함이 가득합니다. 다가올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보다 더 힘들 거로 생각합니다. 루크의 요람이 비어있는 탓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죽음으로 비롯된 분리는 영원한 것이 아님을 믿습니다. 끝이 아닙니다. 미래는 - 하나님의 미래는 - 기쁨으로 가득할 것을 압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약속을 들어 보십시오. “이와 같이, 지금 너희가 근심에 싸여 있지만, 내가 다시 너희를 볼 때에는, 너희의 마음이 기쁠 것이며, 그 기쁨을 너희에게서 빼앗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오늘 이런 믿음으로 무장하고 이 아름다운 어린 아기에게 작별을 고하기 위해 여기에 모였습니다. 루크는 너무나 완벽하고 너무나 순결하므로 우리와 계속 머무를 수 없었던 하늘의 전령이었습니다. 이런 확신으로 우리는 루크를 하나님께 - 우리의 하나님께 - 맡겨 드립니다. 주시기도 하시고, 가져가시기도 하는 그분께요.


루크의 영혼을 데려가기 위해 온 배는 물을 안전하게 건너, 비탄의 밤을 지나,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고요한 항구에 닿았다는 걸 우리는 잘 압니다. 그곳은 모두를 위한 영원한 쉼이 약속된 곳입니다. 일단 시작된 우리의 항해가 마침내 도달하는 곳입니다. 요한계시록은 그곳의 물이 수정처럼 맑고, 하늘은 천 개의 태양보다 밝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곳에는 더이상 눈물이 없습니다.

 

왜 고통을 진리라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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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성제의 첫 번째 진리는 고통(duhkha)이다. 

이 말은 붓다가 삶의 행복이나 만족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세상에는 행복도 있고 슬픔도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이 고통이라고 하는 이유는,

우리가 어떤 종류의 행복을 누릴지라도 그것이 영원하지 않으며

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티베트불교입문>(탈렉 캽괸 림포체 지음, 유기천 옮김, 청년사 펴냄)에서

고통의 근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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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이나 불만의 원인이 내부에 있는가, 아니면 외부의 어떤 상황이나 여건에 있는가?

붓다는 자신을 관찰하면서 자신이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하며 사물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가를 알면

고통의 원인이 내부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외부의 사회적, 경제적 여건이 고통을 선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가 느끼는 많은 고통이 주로 자신의 마음과 자세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고통 체험과 관련된 불만을 극복하고 싶다면

지나친 욕구에서 비롯된 갈망과 탐욕, 집착을 버려야 한다.

모든 욕구를 없애야 한다는 것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붓다는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그는 갊아과 탐욕 등을 낳는 지나친 욕구를 경계해야 한다고, 

그것은 부족감과 불만을 부추겨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라고 가르쳤던 것이다.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것은 강박적 욕구이다.

강박적 욕구가 있을 때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우리는 실망하고 화가 난다.

거기에는 항상 혐오감과 적개심 같은 것들이 뒤따른다.


또한 욕구 충족에 방해가 되는 것이 있으면 우리는 그것을 제거하려고 한다.

그래서 탐욕이나 갈망이 있는 곳에 폭력과 기만이 끼어든다.

붓다는 그런 극단적인 형태의 욕구를 잘 다스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욕구가 다 사라지는 것을 목표로 삼을 필요는 없다.

욕구는 얼마든지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티베트불교입문>(탈렉 캽괸 림포체, 유기천 옮김, 청년사 펴냄)에서


어떻게 고통이 멈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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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는 이승에 살면서도 열반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바로 이번 생에 열반을 성취할 수 있다.

열반을 성취한다는 것은 마음이 더 이상 망상이나 번뇌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행복은 더 이상 외부 상황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일이든 극단적으로 반응하지않으며 역경에 처하더라도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


 열반에 도달하면 탐욕, 분노, 무지의 세 가지 망상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마음이 좋고 싫은 격한 감정에 지배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잘못되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차분히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


   <티베트불교입문>(탈렉 걉괸 림포체 지음, 유기천 옮김, 청년사 펴냄)에서

문제투성이 자신을 받아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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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교회는 자기성찰을 하게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잘못 해석되고 잘못 사용되어서 자기성찰은 자기단죄라는 공식이 생겼고
그로인해 수많은 신자들이 죄인의식이라는 정신적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우울증 불안증에 시달리고 심지어는 정신병에 걸리기조차 했습니다
ㅡㅡㅡ
문제는 그런 심리적 상태가 영적인 삶이라고 여기고 병을 더 키웠다는것입니다
ㅡㅡㅡ
주님은 모든사람을 받아주신분이십니다
받아들임이 우리의 영성이란것입니다
무엇을 받아들여야하는가ㅡ?
우리가 문제가 많은 존재임을
우리가 의지가 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ㅡㅡㅡ
심리치료에서는
자신의 병을 인정하는것을 가장우선으로 여깁니다
이것은 신앙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허물을 먼저 받아들여야 하는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겸손인것입니다
이런 겸손은 상처를 회복하고 힘을 실어줍니다
그러나 거짓겸손은 자기포장과 자기기만이 늘어나게하고
결국에는 심리적 괴물이 되어가게 합니다
입으로는 늘 영적인 삶을 말하면서
삶은 그렇지않은.

부모님들이 새겨들어야할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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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쁘다, 잘 생겼다는 말보다 착하다는 말이 도움이 됩니다. 재능이 아니라 성품을 격려하세요. 특성보다 인품에 초점을 두세요. 운동을 잘하면 '빨리 뛸 수 있네'보다는 '참 열심히 하네'가 도움이 됩니다. 똑똑하다는 말 보다는 생각이 깊다는 말이, 공부 잘한다는 것보다 공부 열심히 한다는 말이 도움이 됩니다. 


•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보다는 '지금까지 참 잘했네’ 충분히 인정하고 칭찬해주세요. 아직 이루지 못한 성과보다 이미 잘 한 성과를 칭찬하면 그만큼 노력하게 됩니다. 

• 아이가 다른 사람과 갈등이 있을 때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무조건 아이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남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아이가 손해를 보더라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마세요.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사회적 이치입니다. 아이가 좀 삐지더라도 큰 교훈을 얻습니다. 부모의 지혜를 존경하게 됩니다. 모든 입장을 헤아릴 수 있는 관용적인 부모가 되세요. 내 아이 입장만 고집해서 남들에게 야단치는 부모는 정말 보기 흉합니다. 

• 내 아이가 소중한 만큼 아이의 친구들을 소중하게 대해주세요. 비교하거나 무시하지 마세요. 혼자서는 성장할 수 없습니다. 서로 함께 지지하며 평생의 친구가 되도록 남의 아이를 평등하게 대해주세요.

• 아이의 행복과 건강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좋지만 대학교 들어가게, 사업 성공하게, 결혼할 수 있게 기도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출세가 행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참된 마음의 행복을 찾을 수 있게 기도하세요. 

• 잔소리하는 것보다 들어주는 것을 연습하세요. 무엇을 해주는 것보다 옆에 있기만 해도 아이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부담을 주지 않는 벗이 되세요. 지친 우리아이가 가장 필요한 것이 판단없이 들어주는 귀, 언제든지 기대할 수 있는 어깨, 몸과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쉼터; 이런 의지처가 되어 주세요. 

• 아이의 개성과 창의성을 존중하고 아끼세요. 우리나라는 individuality and creativity를 너무 많이 억압합니다. 모든 사람은 독특합니다. 독특하게끔 허용하세요. Uniqueness가 좋은 것입니다. 무조건 남의 말을 믿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창의성을 개발하게 격려하세요. 우리나라가 자유국가라고 하더라도 생각조차도 자유롭게 못합니다. 아이들이 free thinking 하게 해주시면 마음이 열립니다. 

갓바위1.jpg


• 부모의 기대로, 부모의 욕심으로 아이에게 부담을 주고 해를 끼칩니다. 우리 부모님들의 욕심으로 우리가 고통을 받은 것처럼 우리도 똑같이 아이에게 고통을 계승합니다. 고통의 전통이 이어가지 않도록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부터 행복의 전통을 만들어 가세요.

• 아이는 말을 듣지 않고 행동을 따라합니다. 부모가 착하면 아이도 착합니다. 부모가 거짓말을 하면 아이도 거짓말을 합니다. 부모의 책임은 윤리적인 삶입니다. 자식의 교육은 부모의 행동에 달려 있습니다. 

• 스스로를 잘 보살피세요. 부모의 마음과 몸이 건강해야지 아이도 건강합니다. 부모의 마음이 치유가 되면 자식의 마음도 치유가 됩니다. 특히 마음 공부를 통하여 진정한 행복을 이루세요.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자신의 행복입니다.


어제 몇 분들이 아이 없는 스님이 어떻게 부모입장을 이렇게 잘 아는냐고 물어 보셨습니다. 
정말 말을 안듣는 못된 큰 아이 하나 키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방청소 안하고 공부해야 될 때 영화 보고 있습니다. 이 아이 때문에 참 힘듭니다. 우리용수 어떻게 하면 좋죠? 갓바위 가서 철야기도해야 되겠습니다.


부자의 가난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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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두 남자가 상담을 하러 찾아왔다. 

한 사람은 그 마을에서 가장 돈이 많은 부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매우 가난한 사람이었다.

돈이 많은 부자가 가난한 사람보다 몇 분 먼저 왔기 때문에

차례가 되어 먼저 방에 안내되었다. 

상담시간은 대단히 오래 걸려서 한 시간 이상이나 지체한 다음 

가난한 사람의 차례가 되어 방에 안내되었다. 

그런데 그 상담은 불과 15분 만에 끝나고 말았다. 

가난한 사람은 내심 분개하였다. 

'아무리 돈이 없는 사람이라고 이렇게 차별대우를 할 수 있는가? 

돈이 많은 부자에게는 성의를 다해서 한 시간 동안이나 상담에 응해 주고

나는 가난뱅이라고 적당히 하는 것이 아닌가?' 

눈치를 챈 상담자가 미소를 띄며 말했다.

"돈이 많은 사람은 그만큼 마음이 가난하니 

그 가난한 마음을 채워주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걸리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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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천시하거나 경원시하지도 않지만 돈만을 추구할 때에 사람의 마음은 빈약해질 가능성이 많습니다. 무엇이 삶의 기준인가가 중요합니다. 비록 가난한 사람이라할지라도 돈이 기준이 되지 않는다면 돈에 대해서 그는 부유한 사람입니다 . 마찬가지로 돈이 많다 하여도 지혜가 없다면 돈에 대해서는 부유할지 모르지만 지혜에 있어서는 가난한 사람입니다.


무더위 식힐 별유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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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는 천당, 땅에는 소주항주

 

1 항주-.jpg


휴가는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기쁨과 함께 언제 어디로 누구랑이라는 숙제를 안긴다. 날짜는 회사나 조직이 정해준다. 남의 힘에 의해 문제1은 저절로 해결된다. 문제2부터 결정 과정이 좀 복잡하다. 어디로 갈 것인가? 비용과 구성원의 요구 등 모든 경우의 수가 입력되면 선택의 폭이 별로 넓지 않다. 그럼에도 나름 최적의 답을 구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위해 이백(李伯·701~762) 시인이 말한 별유천지 비인간(別有天地 非人間: 별천지가 있는데 인간세상이 아니라 신선세계다)”이라는 숨겨진 비경까지 수소문해야 한다.

 

上有天堂 상유천당 下有蘇杭 하유소항

하늘에 천당이 있다면 땅에는 소주·항주가 있다

 

한자 문화권에서 살았던 선인들에게 기온이 온화하고 물산이 풍부하며 풍광이 아름답고 인심이 후한 저장성(浙江省)의 쑤저우(蘇州) 항저우(杭州)는 이상향이었다. 그 시절 힘 있는 권력자는 서울을 오래 비우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베이징(北京)에서 쑤저우 항저우까지 운하를 팠다. 앉은 자리에서 휴가지 문화와 분위기가 징항(京杭)운하의 수천리 물길을 타고 올라왔다.


1원철-.JPG

 

또 다른 유토피아는 윈난성(雲南省)의 샹그릴라(香格里拉). 본래 지명인 중톈(中甸)을 이름만 바꾸었다. 경제력에 별로 여유가 없는 오지의 유목민은 운하건설 비용을 들이지 않고 자기가 살고 있는 고장을 그대로 휴가지로 바꾸는 지혜를 발휘했다. 티베트 지역에 전설처럼 전해오는 신비의 도시 샴발라(香色拉·shambahla)가 그 어원이다. 평화롭고 고요한 땅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자기 자리를 별천지 혹은 유토피아로 만든 방콕 족의 역사를 추적하며 여유롭게 방 한쪽 구석에서 쭈그리고 앉아 관광지도를 훑으며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도 나름의 휴식이 된다

함께 산다고 같을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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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관승의 새벽 3

올빼미형 아내의 생활리듬 존중할 수밖에 없다

새벽잠이 없는 당신에게

 

오랜만에 만난 선배의 고민 토로

나를 잘 아느냐는 아내의 질문

5시에 일어나 부산 떨고 코골이까지

잠은 충분히 자도록 배려해야


손관승-.JPG

 

당신은 당신과 함께 사는 아내가 누구인지 잘 아세요?”

 

여자들은 이처럼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을 던져서 상대방을 당황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만약 아내에게 이런 질문을 들었다면 남편들은 바짝 긴장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배우자에 대한 불만, 원망, 미움 같은 감정이 잔뜩 묻어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만난 선배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그는 만나자마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미치겠어. 와이프가 느닷없이 자기에 대해 얼마나 아느냐고 하더니 벌써 며칠째 아무 말도 않고 있거든. 뭐가 불만인지 영문을 알아야 해명을 하든지 말든지 할 거 아냐? 남북한도 화해한다는데 우리 집은 요즘 거꾸로 냉전 상태야. 뭐가 문제일까?”

 

 

자기는 특별히 잘못한 것은 없는 것 같아 더욱 답답하다고 했다. 확실히 그는 행실이 불량한 남편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인생 사전에는 일탈이란 단어가 빠져 있다고 할 정도로 모범적인 사람이다. 단 한 가지 짐작되는 구석만 빼고는 말이다. 그 선배에게 살짝 물었다.

 

요즘도 새벽 일찍 일어나세요? 오전 시간은 어떻게 보내세요?”

 

매일 새벽 5시면 일어나지. 평생의 습관인걸. 그런데 퇴직하고 나니까 오전 시간이 그렇게 길 수가 없어. 점심은 약속이 있어 외출하는데, 그사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통스러울 때가 많아.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일단 커피머신을 들여놓았어. 새벽에 커피 만드는 게 재미있어서 와이프에게도 마셔보라고 했더니 짜증을 내는 거야. 왜 남의 성의를 무시하고 짜증부터 내는지 몰라.”

 

알고 보니 그의 부인은 올빼미형, 텔레비전에서 드라마를 보느라 밤늦게 잠자리에 든다. 반면 새벽에 일어나는 것을 무척 힘들어한다고 했다. 어쩌면 그것은 새벽형 인간과 올빼미형 인간 사이의 불가피한 라이프스타일의 충돌일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남편이 출근하고 자녀가 등교하고 나면 온전히 부인만의 공간과 시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공간과 시간을 비집고 남편이 들어온 것이다. 퇴직은 이처럼 본인뿐 아니라 집 안의 생태계까지 바꿔놓는다. 수십 년 동안 보이지 않게 유지되어오던 질서가 무너져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선배에게 조심스레 한 가지 더 물었다.

 

혹시 주무실 때 코골이 많이 하세요?”

 

그런가봐.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나이가 들면서 심해진 모양이야. , 그래서 그런가? 최근에 나보고 다른 방에서 자라고 하더라고.”

 

배우자의 심한 코골이에 새벽부터 커피를 만드는 에스프레소 머신의 굉음, 양치질하는 동안 욕실에서 들려오는 온갖 기이한 소리까지 실로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불쾌함이 길어지면 견디기 힘들다.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수면 방해는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고 더 나아가 면역력 활동을 약화시킨다. 연인은 힘들거나 불쾌하면 헤어지지만 부부는 참고 산다. 그게 차이다.

 

전통적으로 성공한 남자들일수록 새벽형 인간이 많다. 조찬 모임이란 일찍 일어나는 얼리버드들의 모임이다. 반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일수록 야행성이 많다. 시이오(CEO·최고경영자)로 재직하는 동안 엔터테인먼트 쪽 사람들과 함께 일할 때가 있었는데, 오전에 연락이 두절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 처음에 황당했지만 화급한 일이 아니라면 오전에는 서로 연락하지 않는 것이 그쪽 업계의 불문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연과 녹화, 방송 등 밤에 업무가 이뤄지는 탓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으르다는 부정적 인상은 새벽형 인간의 편견이었다.

 

잠과의 전쟁은 천재들도 피해갈 수 없었던 모양이다. 르네상스 시대 최고 스타 미켈란젤로는 작업하는 동안 신들린 사람처럼 일하다가 옷 입은 채 잠자리에 들곤 했다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만능 인간이라는 의미의 호모 우니베르살리스라 알려져 있는데 매우 특이한 수면 방식으로도 유명하다. 4시간마다 20분씩, 모두 6차례 짧은 잠을 자는 분할 수면 사이클이다. 6차례를 모두 합한다고 해도 하루 2시간에 불과한 극단적으로 짧은 수면 시간이지만, 워낙 건강했던 탓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었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천재가 아니다. 잠을 잘 자야 한다. 유심히 살펴보면 퇴직 후 새벽이 두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새벽형 인간들이다. 일찍 출근하는 라이프스타일은 직장에서 환영받지만 때로는 주변을 피곤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새벽 시간이면 어김없이 감동받은 글이라며 메시지를 전하는 분들은 대부분 성실한 인간이다. 멋진 글이라 하더라도 새벽 시간에 다른 사람의 잠을 깨게 해서는 곤란하다. 내가 깨어 있으니 다른 이들도 깨어 있어야 한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많은 남성은 사회생활을 통해 경쟁과 효율에 최적화되어 있다. 가족을 위해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쳤다. 하지만 가정은 기업이 아니다. 효율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배려와 사랑이다. 만약 가정에서까지 효율이라는 잣대를 들이댄다면 가족은 숨이 콱콱 막힐 것이다. 취향의 독재라 생각할 수도 있다. 아무리 가깝다고 해도 배우자의 생체리듬을 고려하지 않고 내 스타일을 강요해서는 곤란하다.

 

인생의 모범 답안이 가끔 틀릴 때도 있는 법이다. ‘나를 아느냐고 묻는 것은 바로 그 답안지를 다시 생각해보라는 뜻이다. 이제는 모범생이라는 이름의 넥타이를 조금씩 풀어보면 어떨까. 함께 산다고 해서 취향까지 같은 것은 아닐 테니까. 가까울수록 나와 다름을 더 존중해줘야 한다.

한국인에게 남다른것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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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마음 찾는’ 이기동 명예교수


이기동-.JPG» 성균관대 대성전에서 설명하고 있는 이기동 명예교수


지상천국 독자적 사상 우리 유전자 속에 각인

이색·조식·정약용 서원  14 순례, <나의 서원 나의 유학 펴내

유학자면서도 사대주의 족쇄 깨고, 조선 유학자들 우리 사상 파괴 비판

서원은 인격적 모범 모델 삼아, ‘이상적 인간상’ 교육 목표로

주자학  땅에 정착시킨 이색, 하늘과 인간 차이 없다는 사상 펼쳐

공자·맹자의 풀리지 않는 사상조차, 우리 환단고기를 보면 명쾌해져

중국 정사에서도 수없이 언급함에도, 정작 우리 역사학자들은 배타

 

성균관대 대학원장과 유교문화연구소장을 지낸 이기동(67) 명예교수가 <나의 서원 나의 유학>(사람의무늬 펴냄)이란 책을 출간했다. ‘한국인의 마음을 찾아 떠난 여행이란 부제를 붙여서다목은 이색의 서천 문헌서원남명 조식의 김해 산해정하서 김인후의 담양 소쇄원다산 정약용의 강진 다산초당  14 순례기다.

 

 저자가 평생 몸담고 후학을 길러낸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를 찾았다 책의 순례지  한곳인 성균관 들머리엔 영조가 세운 탕평비가 서있다. <논어>에서  글은 ‘ 편에 가서 줄만 서고 두루두루 어울리지 못한 것은 소인의 개인적인 욕심에서 비롯된다 되어 있다탕평비 옆엔 하마비가 있다성균관과 문묘 일원은 공자를 비롯한 여러 성인을 모신 곳이어서 ‘말에서 내리라 글이 쓰여있다하지만 21세기 한국에서 이런 경애와 겸허를 기대할  있을까 교수는 이런 세태를 먼저 꼬집는다.

  

서양학문에 변방 밀려나고 수모

 자기보다 착한 사람을 보면 존경하고 칭찬하기보다는 ‘저렇게 착해 빠져서는 세상을 제대로   없다 힐난한다자신보다 못된 사람을 봐도 ‘저런 놈들 때문에 나라가 안된다 욕을 한다그들이 존경하는 사람이란 오직 자기욕심을 자기보다 먼저 채운 사람들뿐이다.”

 

  교수는 이런 못된 습성이 성현을 사표로 삼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세상 기준으로 삼는 오만함에서 비롯됐다고 본다그가 현대인에게 잊혀지다시피한 서원을 들고 나온 것은 ‘이상적인 인간상이란 교육 목표를 잃어버린  뿌리 잘린 나무꼴을 면치 못한다는 우려 때문이다.

 

 조선시대 국립인 성균관이 공자와 맹자를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삼았다면 지방의 사립학교격인 서원은  지방과 인연이 있는  중에서 인격적으로 모범이 되는 분을 모델로 모셔 ‘나도  분처럼 되자 교육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조선이 패망하고 서양 학문이 파죽지세로 달려오면서 유학은 변방으로 밀려났다그도 대학  유학과 한국학을 배우며 서양철학 교수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기 일쑤였다고 한다동양이 서양의 물질과학에 패했다는 근대화 과정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유학은 중국에서 태동했기에 지금도 중국의 아류라는 인상이 짙다그러나  교수는 “한국인들에게는 남다른 것이 있다 강조한다서원만 보더라도 중국이나 일본은 크게 짓는 것을 선호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아담하게 짓는다고 했다그건 국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 자랑하는 것은 천박하다 여겼기 때문이라고 한다삶의 기준 자체를  자랑이 아니라 ‘참된 인간이나 ‘행복 두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이렇듯 그는 유학자이면서 ‘중국 사대주의 동양학 족쇄를 깨부순다그는 “정몽주·정도전의 스승인 목은 이색이 중국 주자학을  땅에 정착시키면서도 우리 민족의 고유사상을 펼쳤다 주장했다.

 

 동학의 인내천 사상으로 이어져

 목은이 한국적인 요소의 핵심으로  것은 ‘천인무간(天人無間)’이다하늘(하느님) 인간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이 일체라는 것이다이게 동학의 인내천(人乃天·사람이  하늘사상으로 이어졌다원래부터 돼지였다는 돼지는 돼지라고 불러도 불만이 없지만원래 사람이었는데 자고 일어나보니 돼지가 되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이를 돼지라고 부르면  화를 낸다자기는 돼지가 아니라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후자가 바로 한국인이다그러니 아줌마한테 아줌마라고 불러도 화를 내는  한국인이다자기가 원래 하늘이고 부처고 성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인을 ‘ 민족이라고 하는 것도 원한이 쌓여서가 아니라 ’본래 하늘인데 이를 회복하지 못한데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그래서  땅에서 지상천국이란 이상향을 일구려는 염원이 정암 조광조하서 김인후송강 정철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교수는 <천국을 거닐다소쇄원-김인후와 유토피아> 책을 내기도 했는데이상향의 꿈을 소쇄원에 담아낸 이야기다그는 “북한 공산주의도 ‘지상낙원을 건설한다 목표를 내세우지 않느냐 “지상천국으로의 회복은 우리의 유전자 속에 각인돼 있다 설명했다.

 

 그런데  교수는 유학자이면서도 유교를 국시로 삼은 조선의 정치인과 정치유학자들이 우리 고유의 역사와 사상을 파괴한 것에 비판적이다

 

 한국인들의 약점은 어떤 종교나 사상을 수용해 그것에 빠지면  이외의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태종도 세조도 단군시대부터 단군세기와 태백일사  책자를 모두 제출하게  불태워버렸다환단고기엔 자신들이 성인으로 추앙하는 순임금이 단군의 신하로 나오니중국의 눈치를 살피느라 미리 싹을 제거한 거다조광조도 주자학이 아니라는 이유로 일월성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소격서를 폐지했다.”


관람자들과-.JPG» 성균관 관람을 온 고교생들과 함께 대성전 앞에서 선 이기동 교수

  

잃어버린 양심 회복 훈련 나서

  교수는 “그런데도 안동의 임청각에 근세까지 고대사 책자들이 보존돼 왔다 한다임청각은 독립운동을 위해 팔았던 상해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이상용 선생의 99 자택으로일제가  가운데로 철도를 건설해버린 곳이다그는 “중국 정사에서도 수없이 언급함에도 정작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은 고대역사와 고유사상를 인정치 않고, ‘ 환빠냐 폭력적인 한마디로 배타해버리면 그만이라며하지만 자신의 생각은 다르다고 한다.

 

 가짜는 주류를 모방하게 마련이다진짜의 흉내를 내려 들기 때문이다그런데 우리 고대사상은 다르다독자적이고 고유하다조선시대 글씨를 놓고도 실력 있는 서예가들에겐 추사가  건지 아닌지 금방 보이기 마련이다그렇듯 그게 중국 고전의 짜깁기인지 고유한 것인지  모르겠는가공자맹자의 풀리지 않는 사상조차 환단고기를 보면 명쾌해져서 놀라게 된다. <논어>에서 공자가  ‘군자의 나라’ 구이에  살고 싶다고 했는지   있게 된다.”

 

 그래서 그는 환단고기 해설서를 펴낼 준비를 하고 있다 그가 설립해 20년간 고전을 가르친 동인문화원 일도 내려놓고 준비하는  있다우리 고대신화에서 곰이 21일간 동굴에서 지내다 사람이  과정을 본뜬 21일간의 수련프로그램 운영이다그는  신화의 의미는 ‘인간이 잃어버린 양심을 회복하는 이라고 본다짐승만이 넘치는 세상이니 인간다운 인간을 회복하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할 맛을 사라지게 하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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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때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방학 때 지하철에서 신문 파는 일을 했었다. 지금은 없어진 풍경이지만, 당시에는 젊은 사람들이 지하철 안에서 신문 파는 일을 많이 했다. 


 내가 일한 곳은 지하철 4호선 사당역과 이촌역 구간이었다. 여러 종류 신문을 들고 사당역에서 지하철을 타서 사람들에게 팔았다. 이촌역에서 내려 다시 사당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 파는 방식이었다. 사당역에서 이촌역 방향은 도심을 향해 가는 길이라 아침에 출근하는 이들이 많고, 이촌역에서 사당역으로 가는 차는 한산했다. 난 처음 안내를 제대로 받지 못해, 이촌역에서 내리지 않고 상계역까지 갔다가 그 구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욕을 먹기도 했다.


 출근 시간에는 인파 때문에 움직이기도 어렵지만 열심히 비집고 다니며 팔아야했다. 문 닫히기 직전까지 팔고 아슬아슬하게 내리기를 반복했다. 손놀림과 순간 판단에 재빠르지못하면 못 내리고 갇힌다. 이촌역 이후는 사람이 너무 많아 팔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갇히게 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복잡한 곳에서 어떻게 팔고 다녔는지 신기하다.


 이촌역에서 사당역으로 가는 지하철 안은 밤새 일하고 집으로 가는 이들이 눈 감고 쉬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신문 파는 이들도 이때는 앉아 쉬었다. 나는 그 때도 쉬지 않고 신문을 팔았다. 일 마치면 동대문역에 있는 배급소에서 정산을 하는데, 많이 팔았다고 자주 칭찬을 받았다. 


 일은 힘들었지만, 아슬아슬한 상황을 나름 재미있게 즐기던 때였다. 부지런히 일한 만큼 필요한 돈을 버는 것도 일하는 재미였다. 그런데 그 재미를 반감시킨 것은 일이 아니라 다른 곳이었다. 


 내가 일하는 곳이 학교에서 가까워 아는 이들을 간혹 만났다. 처음에는 왠지 부끄러웠다. 일하는 구역을 바꿀까도 생각했지만, 그러는 게 더 구차해서 그냥 했다. 나중에는 아무렇지 않았다. 


신문--.JPG» 사진 박주희 기자


 그 때 한 친구를 만났는데, 얼마 전 교수님에게서 장학금을 받았다고 자랑했다.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주는 장학금이 아니라 교수님들이 어딘 가에서 후원받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일이 있었다. 그러니 주로 친분관계에 따라 주어졌다. 학생 입장에서는 일종의 불로소득이었다. 나도 그런 게 있는지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일해서 벌려고 신문팔이를 하는데,  순간 유혹이 되었다. 


 그런 유혹이 주는 더 큰 문제는 노동의욕을 잃는 거였다. 새벽부터 열심히 일해야 벌 수 있는 걸, 어떤 이들은 그렇게 쉽게 가질 수 있다는 현실이 괜한 억울함, 상실감을 일으켰다. 즐겁게 열심히 일하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마음은 곧 잡을 수 있었지만, 생각은 계속 맴돌았다. 평생 힘든 노동환경에서도 즐겁고 열심히 일하며 사는 분들에게 온갖 불로소득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일까! 보다 인간적인 삶과 노동이 되기 위해서는 열악한 노동현실 뿐 아니라, 땀 흘린 대가가 정당하게 교환되지 않고 온갖 불로소득이 판치는 사회구조가 노동자들 팔다리 힘을 풀리게어야 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샅바매고 태어난 씨름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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