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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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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의 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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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산 이광정(82) 원불교 상사는 현존하는 원불교 ‘최고어른’이다. 원불교 교조인 박중빈 대종사-송정산-김대산에 이어 4번째로 종법사가 되어 1994~2006년에 교단을 이끌었다. 그가 최근 <국가경영지혜>(원불교출판사)라는 책을 냈다. 현실정치와 선을 긋기 마련인 종교지도자가 ‘국가 경영’이라니? 그는 베스트셀러 <마음수업>(휴 펴냄)과 <믿음수업>(휴 펴냄)의 저자로 마음공부의 고수다.

 

그러나 현실정치를 언급하는 것도 의외는 아니다. 이미 종법사 때 <분단역사 극복의 길>이라는 책을 낸 그는 종법사를 퇴임하면서 ‘남북통일과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했고, 그 기도 일념으로 10여 년을 달려왔다. 그 일심은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후보로 확정된 뒤 가장 먼저 전화를 한 이가 좌산 상사로 알려져 있다. 또 그는 2013년 열반한 김혜성 종사와 그의 자녀인 홍라희 전 리움 관장과 홍석현 전 <제이티비시> 회장의 멘토이다. 홍 전 회장이 ’한반도평화만들기’를 만들고 최근 <한반도평화오디세이>를 펴내며 평화운동에 의지를 보이는 것도 그의 영향으로 알려진다. 좌산 상사를 22일 충남 논산시 벌곡면 원불교 삼동원에서 만났다.


 “대종사님이 원불교와 교법을 만들 때, 우리끼리만 잘 살자고 한 게 아니다. 온 세상을 좋게 만들려고 한 것이다. 이 나라가 잘되게 하는데 어찌 종교인이라고 책임이 없겠는가.”

 그는 책을 쓴 이유를 먼저 ‘책임감’이라고 했다. 책은 ‘정상국가’를 만들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으로 시작해 정치 체제와 지도자의 요건, 인사의 원칙과 재해 예방까지 안내하고 있다. 강태공이 주 문왕에게 혹은 장량이 한 고조에게 주는 메시지 같다. 책 말미엔 원불교 2대 종법사인 송정산의 <건국론>과 함께 ‘황석공’이라는 도인이 장량에게 주었다는 비서(秘書)인 <황석공소서>도 번역해 실었다. 이 책은 여러 인연을 통해 벌써 청와대에 1백권, 국회에 2백권이 배포됐단다.

 그가 일러주는 말들은 자칫 ‘다 아는 얘기’라고 소홀히 여기기 쉽다. 하지만 늘 같은 잘못이 되풀이되어 지도자 개인과 사회의 재앙이 되곤 한다. ‘권력이란 남을 위해 쓰면 무한 복이 되고 자신만 위해 쓰면 무한 독이 되며, 권력은 명예와 재물과 아부가 따르고 마약처럼 중독되기 쉽다’는 말도 그렇다.

 그는 ‘지도자란 무엇이냐’란 물음에 “네 가지 실력을 갖춘 자”라고 답한다. 네 가지란 ‘구성원 전체의 집단 일심을 끌어낼 응집력, 구성원 전체의 감동을 끌어낼 감화력, 상반된 의견이나 이해를 조정해 합의를 끌어낼 조정력, 목표 달성을 위해 어떤 난관도 돌파하며 전진해 갈 추진력’이라고 한다.

 좌산상사는 남북문제에 대해선 “이번 기회를 놓쳐저는 안된다”며 “남북 문제만은 정치권이 여야를 떠나 남북문제위원회를 만들어 이슈가 있을 때 토론하고 또 토론해 합리적인 접점을 찾아 한목소리를 내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그는 또 “현실에선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이 혼재하기 마련이지만 역량 있는 정치인과 언론은 부정적인 것마저 긍정적인 것으로 바꿀 수 있으므로, 자꾸은 기운을 긍정으로 돌리고 여건을 만드는 지혜를 내줘 이 나라의 미래를 열어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김정은 북 국방위원장에 대해서도 “한국전쟁에 대해 사과하면 남한 보수의 증오심을 없앨 수 있을 것”이라며 “독일처럼 진심어린 사과를 하면 될 것을 끝내 사과하지않아 증오심을 부추기는 일본의 지도자들을 반면교사로 삼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또 평생 수행해온 수도자답게 지도자와 경영자가 되려면 5가지 심법이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첫째 나만이 아니라 타인과 서로 가꾸며 살아가는 마음, 둘째 이미 안다는 오만을 넘어 사리를 깨쳐가는 마음, 셋째 충언을 소중하게 받아 활용하는 마음, 넷째 옳고 지혜로운 제안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 다섯째 받아 활용한 결과에 대한 보상을 잊지 않는 마음’이라고 한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에 대해 “사리사욕이나 권모술수를 쓰지않고 정도로 가려는 것 아니냐”면서 “남북문제야 말로 순수가 아니라 그렇게 신뢰를 쌓아가지않으면 풀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경제와 일자리 정책에서는 국민들의 인정을 받지 못한듯한데 장기적으로 우리가 지행해 가야할 이상도 현실에 바탕해서 가야한다”고 조언했다.좌산 상사는 국민들에 대해서도 당부의 말을 잊지않았다.

 “사회와 나라는 대통령이나 정치인에게만 있는 것이다. 국민들이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내 이익만 보면 된다는 소아주의로 아우성만 치고 불만만 내뱉는다면 어느 누가와도 제대로 될 수가 없다. 현실에는 어떤 정책도 완전무결한건 있을 수 없다. 다 모순이 있게 마련이다. 그걸 대체로 잡아서 한쪽이 미흡해도 대체가 옳으면 합력하는 분위기가 되는 것이 되는 집안, 되는 나라다.”

 그는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가 쉽게 못하는 금융실명제, 김영란법, 인성교육진흥법도 하는 나라니 긍정하고 자족할 줄도 알아야 한다”면서 “여건이 성숙되지도 않는 상황에서 과욕과 탐욕을 부리는 것이 우리 모두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말을 맺었다.

 


아파본자들의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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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시절에는 사제는 공부한게 많아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이들어보니 더 중요한것이 느껴지네요. 사제는 아픈경험이 많아야 한다는것입니다. 정신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왜냐. 아파본적이 없던 사람들은 남의 아픔에 공감하지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상담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사람이 자기에게 상담가 자격증이 안나오자 항의를 했더니 협회에서 말하길 `당신은 유복한집안에서 순탄하게 자라서 아픈사람들에게 공감을 못하기에'라고 하더랍니다

사제나 상담가나 가장 중요한 사목방법 치유방법은 공감입니다. 공감이 깊을수록 아픈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몸으로 느끼지만, 몸으로 같이 아프지않으면 얄팍한 지식으로 주둥이질만 하게 됩니다.

강론때마다 공감없이 주둥이 질만 해온 제 모습이 보여서 주절이 써 놓습니다.

선수행의 대전제는 바른 행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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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묵대림-.jpg» 초기불전연구원장 대림스님(왼쪽)과 <위방가>를 번역한 각묵스님

 

‘선(禪)수행자라면 자고로 첫째, 바른 행실과 행동을 해야한다. 즉 계율을 지켜야한다. 둘째, 감각기능들의 문을 잘 보호해야한다. 세째, 음식을 적당히 취해야한다. 네째, 초저녁부터 늦은 밤까지 깨어있어야한다. 다섯째, 끈기있고 슬기롭게 깨달음을 위한 수행에 몰두해야한다. 여섯째, 어묵동정 일체 행동을 할 때도 알아차려야한다. 일곱째, 숲속이나 외딴 처소 등 한적한 곳에서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세우고 마음챙김을 확립한 가운데 앉는다. 여덟째, 세상에 대한 욕심과 악의와 성냄을 제거하고 생명에 대한 연민심으로 마음을 청정하게 하고 해태와 혼침 없이 청정한 가운데 머문다.  아홉째, 마음을 오염시키고 통찰을 무력하게 만드는 장애들을 제거해 감각적 쾌락들을 완전히 떨치고 희열과 행복이 있는 초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열번째,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2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열한번째, 평온에 머물러 마음을 채이고 알아차려 몸으로 행복을 경험한다.  열두번째,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마음챙김이 청정한 제4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이 내용은 초기불교 경전 <위방가> 12장 ‘선(禪)위방가’에 나오는 대목이다. 우리나라에서 선수행이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언어도단(言語道斷)’에 따라 교학에 따른 체계적이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접근을 중시하지않는 것과 상당히 차이가 있다. 특히 한국의 선이 막행막식을 수용하는 것과도 달리, 계율 즉 바른 행실과 행동을 선수행의 대전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도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위방가>는 초기불교 교학과 수행의 18가지 핵심 주제를 분석한 논서다. 이를 팔리어 원전 번역에 앞장서운 각묵 스님이 초기불전연구에서 펴냈다.
 불교 경전은 크게 승단의 규범을 담은 율장(律藏), 부처와 직계 제자들의 설법을 담은 경장(經藏), 불법(佛法)에 대한 분석과 설명을 담은 논장(論藏)으로 나뉜다. ‘위방가’는 이 가운데 논장에 속하는 일곱 가지 논서(論書), 즉 칠론(七論)의 두 번째에 해당한다.

 각묵 스님은 26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책에 담긴 내용은 승가를 위한 전문적인 가르침이어서 일반 불자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면서“그러나 승가가 해야 할 근본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처님께서는 ‘나의 제자는 법의 상속자가 되지 재물의 상속자가 되지 말라’고 하셨는데, 우리 승가는 법의 상속자가 되기보다는 재물의 상속자가 되는 것에더 몰두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불교계가 문화재 같은 재물 상속에 관심을 가지고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기본을 놓치고 있다. 승려의 본분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살려내는 것이라고 본다.”

 각묵 스님은 1979년 사미계, 1982년 비구계를 받고 7년간 선원에서 안거한 뒤 인도로 유학을 떠났다. 이어 인도 뿌나 대학교에서 10여년간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등을 배웠으며, 초기불전연구원장 대림 스님과 함께 율장·경장·논장 등 팔리어 삼장(三藏)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각묵 스님은 앞서 경장 5부 중 첫 번째인 ‘디가 니까야’를 교계 최초로 2006년 번역했으며, 2009년에는 ‘상윳따 니까야’를 6권으로 번역해 출간했다. ‘위방가’는 2권으로 출간됐다. 1권은 18장으로 구성된 ‘위방가’ 원문 중에서 1~8장을, 2권은 9~18장을 싣고 있다. ‘위방가’ 18장은 초기불교의 교학, 수행, 지혜, 법 등 네 가지 큰 주제로 구성된다. 각 장은 여러 분석 방법을 동원해 이러한 주제들을 종합적으로 설명한다. 각묵 스님은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해 많은 주해를 달았다.

 

석가-.jpg» 인도 사슴동산(녹야원)에서 대각을 얻은 뒤 최초로 5명의 비구들에게 법을 설하는 석가모니의 모습을 형상화한 그림


 각묵 스님은 제대로 이론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깨달음을 얻으려 하는 한국불교 현실에 쓴소리를 했다.
 그는 “부처님의 제자로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관심을 가지고 그분의 가르침을통해 화두를 해결해야 한다”며 “그런데 지금은 ‘무대포’로 수행하면서 부처님 가르침이라는 기본을 놓친 채 깨달음을 얻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초기불전연구원장 대립 스님도 “초기 불교에서 말하는 온(蘊), 처(處), 계(界), 체(諦), 근(根), 연(緣) 등 수행의 핵심 주제들을 놓치면 선수행이 하늘로 올라갈지, 당으로 내려갈 지 알수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각묵 스님은 “대림 스님도 <청정도론>을 번역할 때부터 너무 무리를 해 몸을 상했고, 나도 뇌수술과 갑상선암 수술을 하면서도 초기 번역을 놓을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라면서 “그나마 우리나라엔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를 공부하고 온 20여명의 실력파들이 초기 불교 경전들을 번역해내 현재 65권의 경율론 3장 저서가운데 20권을 번역해냈다”고 밝혔다.

김영교수가 거리에 나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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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JPG» 서울 용산구 효창동 효창공원 내 의열사 앞에서 이야기중인 김영 교수

 

김영 교수님을 모시고 숙대에서 공부하는 <인문학적 상상력을 위한 한문강의> 10. 사서삼경뿐만 아니라, 순자, 묵자, 박지원, 정약용, 채근담 등 다양한 텍스트가 너무 재밌어서 단 한 회도 빼놓지 않고 배우고 있다. 그 어려운 문장들을 너무도 쉽고 깊게 가르쳐 주신다. 선생님 나이에 내가 저렇게 강연할 수 있을지.”

 최근 윤동주 연구가로 유명한 김응교 숙대 교수가 자신이 위원장으로 있는 한국작가회의 국제위원회의에서 연 제4회 세계문학아카데미 초청강사인 김영 교수의 강의를 듣는 소회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아주대 의대 최영화 교수와 최근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한 김준영 거문고연구가 겸 작곡가 등과 함께 강좌를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것이다. 수강생들은 내친김에 내년에도 더 장기적인 법석을 펼치자며 추가 강연을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이를 거절했다. ‘서울시내에선 강사료만 주면 얼마든지 좋은 강사를 모실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자기는 인천의 작은 도서관에서 강의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더민주당 인천시 선거대책위 공동위원장을 맡았으면서도 문재인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는 날 에스엔에스에 선거에 공을 세운 사람들은 모두 물러나고 이제부터 적재적소에 인물을 기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선언한 그다운 모습이다.

 

 인문학적 상상력 위한 한문강의 유명

 지난 19일 숙대 옆 효창공원에서 김영(65)교수를 만났다. 그는 백범 김구 선생의 묘를 보자 백범은 군사강국이나 경제강국이 아니라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 하지 않았느냐그 힘이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효창공원의 백범이나 삼의사 같은 해방전사들과 인문학자는 전혀 통할 것 같지 않지만 그렇지 않다. 김 교수가 바로 그 증인이다.

 김 교수는 문학소년이었다. 소설가 김동리, 시인 박목월, 아동문학가 김성도가 나온 대구 계성고에 진학해 경북 의성의 시골에선 본적이 없던 문학서들을 보자 그는 갈증 난 사람처럼 마음껏 들이켜다가 연세대 국문학과에 진학했다. 그런 문학소년을 뒤흔든 것은 우선 학내 자유교양회라는 독서모임이었고 그 다음이 학내까지 군인들을 진주시킨 박정희 독재였다. 그는 “1971년 위수령이 발동돼 교련반대를 주모한 학생회와 이념동아리 학생들이 모두 잡혀가 이가 빠지자 잇몸 격인 독서모임에서 삭발을 하고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뜻하지 않게 책에만 안주할 수 없게 된 그는 자신이 좀 더 강인해질 필요를 느끼고 해병대에 입대했다. 제대 뒤엔 복학해 민족사학의 계보를 이은 김용섭 교수와 역사주의적 인문학자 임형택 교수를 사사하며 식민지근대화론에 맞서 주체적 문학발전론을 정립해갔다. 이런 노력은 민족문학사연구소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임형택 교수를 대표로 모시고 그가 기획실장으로, 지배층들만의 고전을 민본사상으로 재해석한 다산 정약용과 연암 박지원 등의 실학 사상과 문학을 알리는데 앞장섰다. 학교 밖에서는 향린교회 대학생부에 다니며 안병무 박사를 통해 억압 받고 가난한 자들을 위한 민중신학에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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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락서당 훈장하며 교육공동체

 그가 필생의 학문이 된 한문의 세계에 들어선 것은 대학원 때 한국고등교육재단 장학생으로 선발되면서부터였다. 그 재단은 대가 끊길 위기에 있는 한학을 공부할 이들을 에스케이가 선발해 경기도 남양주 태동고전연구소 지곡서당 임창순 선생에게 3년간 맡겨 전통식으로 배우게 했다. 김 교수는 그때 논어, 맹자를 외느라 머리가 다 희어졌다고 했다.

 그는 태동고전연구소를 마치고 강원대 국문학과 교수에 이어 1992년부터 인하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옮겨 사대 학장과 교육대학원장, 교수회 의장까지 지냈다. 교수 시절 민족문학사학회 대표, 한국한문학회 회장 등을 지내고, 2016년엔 인하대 총동창회가 주는 인하참스승상을 수상하기도 한 그는 지난 8월 정년퇴직했다. 그러나 월급 없는 자락서당 훈장만은 놓지 않았다. 고향 마을 자락리에서 따온 자락(自樂)서당은 교사임용고시에 떨어진 학생들이 낙방을 부끄러워하고 사람도 만나지 않으려 하자 달래 논어, 맹자, 장자를 공부해보자며 시작한 것이다. 그 덕에 공부에 재미를 붙인 이들은 교사가 되고 교감, 교장이 되어서도 함께 했고 늘 10~15명을 유지한 교육공동체가 되었다.

 그런데 그는 일반인들이 꼰대로 생각하기 쉬운 그런 책상물림 훈장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광화문 시위 현장에 개근상감인 그다. 그가 광화문 촛불시위에 빠짐없이 나온 것은 남성과 소수 권력자들에게 억압받은 가난한 자들이 인간답게 사는 길을 열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그는 고전의 핵심이 옛 것을 본받아 새 것을 창조한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이며, 지금 새롭게 해야 할 것은 지배자가 아닌 백성이 근본민유방본(民惟邦本)’이니 이를 실현해야 한다거리의 인문학자가 되었다.

 

지방교강연1-.jpg» 지난해 10월 경북 안동 경안여고에서 '드림렉쳐'를 한뒤 학생들과 함께 한 김영 교수. 사진 김영 교수 제공

 

 런던 가보니 교수 갑질커녕 헌신

 또한 함께 사는대지혜를 가르치지 않고, 나만 잘되면 된다는 소지혜 교육으로 김기춘, 우병우 같은 엘리트들을 기른 이 나라 교육계의 일원으로서 반성과 혁신의 길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거리엔 여성민우회와 가족과성상담소 창립멤버인 부인 서은숙(62)씨가 늘 함께 했다.

 부부는 다양한 북콘서트와 강좌의 청중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최근에도 함세웅 신부의 <이땅의 정의를>, 김근수 가톨릭해방신학연구소장의 <평화의 예수>, 정혜신 박사의 <당신이 옳다>, 전호근 교수의 <장자>를 들었다. 법륜 스님이 어떻게 대중과 공감하는지 즉문즉설도 함께했다. 김 교수는 연암 박지원은 모르는 게 있으면 길 가는 아이에게라도 물어라고 했다배우면 다 내 것이 되는데, 왜 배우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런던에 공부하러 가보니 대학교수들이 갑질은커녕 다 파티를 준비하고 학생들은 와서 먹고 가면 교수들이 치우더라에헴 하며 제자들이 찾아오기만 기다려서 뭐 할 건가. 나는 이렇게 찾아다니며 배우는 학생이 되겠다고 했다.

 그의 소통은 더 아랫세대로 내려간다. 한국고등교육재단이 장학 혜택을 본 이들이 학문을 지방 고교생들에게 환원하는 드림렉쳐 너만의 꿈을 키워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그는 매번 강의료로 책을 사서 나눠주며 좌절감이 큰 지방의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었다. 이름만큼이나 젊은(Young) 그대.

 

패자와 승자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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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자의 주머니 속에는 꿈이 들어 있으나

패자의 주머니 속에는 욕심이 들어 있다.

 

           -J.하비스

못난이와 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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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사람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다루는 방식에서

참다운 위대성을 보여준다.

 

  -토머스 칼라일

부탄에 없는 네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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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국왕.jpg» 부탄 국왕 부부가 아기를 바라보고 있다.

 

부탄의 국조는 까마귀이다. 국왕의 모자에는 까마귀 머리가 장식되어 있다. 태양신을 상징하는 까마귀는 조류중에서도 머리가 좋기로 유명하다. 고구려인들이 삼족오를 받들었다. 고구려 샤먼들과 까마귀들은 의사를 소통할수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까마귀들은 적진을 날아가 동태를 파악하는데 활용됐다고 한다. 그래서 고구려 관리들도 까마귀 깃털을 머리에 꼽았는데 시체를 처리하는 까마귀처럼 세상의 부정부패를 처리하는  청렴의 상징이었다.

 

부탄1-.jpg» 부탄의 전경


 부탄의 국기는 궁술이다. 궁술의 표적까지 거리는 130미터로 올림픽 양궁의 90미터보다 먼거리다. 화살을 날릴때마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경기보다 축제에 가깝다. 부탄과 우리나라는 “아빠 엄마”의 발음조차 같아서 신기하다. 이뿐이 아니다. 부탄인들이 매운 고추를 좋아하고 술마시고 노래하기를 좋아하는 것까지도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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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탄은 전국토가 금연지역이며 담배를 마약처럼 엄격히 통제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취미로 낚시와 사냥을 하지만 부탄에서 낚시를 하면 종신형에 처해진다. 양과 소.돼지등의 도축도 법률로 금지되어 있다. 부탄에는 도살장이 없다. 필요한 육류는 인도와 태국에서 수입한다. 부탄의 야생동물들과  가축들은 거의 천수를 누린다. 심지어 장식을 위해서  꽃을 꺽어 꽃꽃이도 하지 않는다. 자연 그대로를 즐길뿐이다. 불교의 불살생 계율을 개인적으로도 지키기 어려운데 국가적으로 지키는 나라가 부탄이다. 그래서 동물들과 식물들의 지상천국이 됐다.

 한민족의  국조 단군의 정신을 홍익인간 이화세계로 표현한다. 널리 인간세상을 이롭게 하고 진리로 다스려지는 세상을 뜻한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을 바로 알아야 한다. 시베리아 원주민이나 인디언들은 늑대를 늑대사람이라 부른다. 독수리사람, 구름사람, 나무사람으로 부른다. 사람만 사람이 아니고 나와 다른 모든 사람뿐 아니라 늑대.나무.대지.구름등이 나와 다른 사람인것이다. 그런 홍익인간의 정신이 부탄에선 동물과 식물에도 적용되고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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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탄엔 네가지가 없다고 한다. 첫째, 노숙자와 거지.고아가 없다. 부탄공동체가 불행해진 이웃을 버려두지 읺기 때문이라고 한다. 둘째, 정신질환자와 우울증환자가의 거의 없다. 세째, 자살자, 범죄자등이 거의 없다. 이생의 삶이 끝나면 내세로 이어진다고 믿기 때문에 남을 해치면서까지 이익을 챙기려들지않는다고 한다. 현재 부탄의 죄수 16명은 낚시를 했거나 허가없이 나무를 벌목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넷째, 공무원들의 부정부패가 거의 없다.그들은 인과를  믿고 공짜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국왕이 앞장섰다. 국왕은 토지를 모두 농민들에게 돌려주고 왕궁은 국가에 돌려주고 권력은 국민들에게 돌려주고 자전거로 출퇴근 한다.

 또 부탄인들이 행복한 이유를 ‘4s’가 꼽힌다. 첫째, 심플(Simple)-단순하게 산다. 둘째, 스몰(Smal)-작은 것으로 만족한다. 셋째, 스마일(Smile)- 화내지 않고 웃으면서 산다. 넷째, 슬로우(Slow)- 천천히 느리게 산다.

엄마와 딸, 역할을 바꿔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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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다닌 유치원은 아이 걸음에 맞춰 걸어가면 25분 정도, 자전거 뒤에 태우고 가면 10분 정도 걸렸습니다. 운하를 따라 나있는 산책길을 아이와 오가던 시간이 이 어미에게는 아직도 예쁘고 행복한 기억들로 가득합니다. 종알종알 질문도 많고, 계절이 변해가는 것을 보며 그에 맞는 동요도 부르고, 누구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얘기도 하고, 흙탕물 같은 데를 지날 때는 장화로 첨벙거리며 즉흥적으로 노래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독일말을 하는 시간이 더 길어지고 방과후에도 독일말로 동무들과 놀게 되니, 한국 노래를 하고 한국말을 하는 시간은 점점 아침과 오후의 산책 때로만 줄어들기 시작했지요. 유치원도 버스로 데리러 오고 데려다 주는 한국에 비하면 엄마 (혹은 아빠)의 공이 더 드는 듯 하지만 아이가 세상을 만나가는 모습을 함께 할 수 있는, 생에서 유일한 시간이라 참 고맙고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딸아이가 만 네댓 살 정도 되었을까요, 어느 초겨울 아침이었나 봅니다. 눈이 좀 왔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지 않고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내가 딸이고, 네가 엄마가 되어볼까라고 제안했더니 신나 했지요. 늘 ‘공부’를 하는 버릇일까요, 아이가 사계절을 분명히 알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생각에 질문을 시작합니다. 

 

 “엄마, 나뭇잎들이 다 어디 갔어요?” “아아, 겨울이니까 다 내려앉았지.” 내려앉았다는 표현에 은근히 감동하면서도, 징징대는 시늉을 하며 내처 물어봅니다. “그럼 다시는 나뭇잎을 못 보는 거에요?” “아니야, 아기야. 봄이 되면 다시 나뭇잎이 나오지.” “그 다음에는?” “여름이 오면 해가 많이 나고 꽃도 많이 핀단다! 아기가 좋아하는 복숭아도 먹을 수 있어.” 엄마의 이름을 불러 본 적이 없는 딸은 저를 아기라고 부르며 상냥하고 진지하게 설명해주었습니다. 

 

 길을 더 가다 보니 어느 집 담벼락에 상록수가 여러 그루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엄마, 그런데 왜 저 나무들은 아직도 파래요?”하고 물었습니다. 아이가 과연 뭐라고 답할 것인지 무척 궁금했는데 사실 제 자신 어떻게 답할지 막막했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아이는, “초록색이 뭔지 잊어버리지 말라고!”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와아! 너무 기가 막힌 대답에 감동했습니다. 

 

 그리고는 아이는 잔디밭 쪽으로 달려가 하얀 눈을 가리키며 “아기야, 이게 하얀 색이야. 하얀 색이 뭔지 잊어버리지 말라고 눈이 온 거야!” “와아~ 우리 엄마, 최고다!”하며 저는 환호성을 터뜨렸, 아이도 자기의 대답에 흡족한지 진지했던 얼굴이 환하게 펴졌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유치원에 다다랐고 행복한 마음으로 “안녕!” 한 뒤, 저는 카페로 가서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이 날의 대화를 잊지 않으려고 기록했습니다.

 그렇듯 유치원 가는 길에서 아이에게 참 많이 배웠습니다. 모든 것은 볼 수 있는 마음만 있다면 다 있는 그대로 좋은 것이라는 것을요.


채워지지않는 욕망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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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시칸다왕은 엄청난 권력과 재물을 가진 욕심 많은 왕이었다. 어느 날 그에게 한 거지성자가 찾아왔다. 거지성자는 동냥그릇을 내밀면서 거기에 물건을 좀 채워 달라고 했다. 시칸다왕은 그를 힐끗 쳐다보면서, 핀잔을 주었다. “나에게 겨우 그 정도를 요구하느냐?” 그리고 그 그릇에 음식과 보석을 넣었다. 그런데 아무리 음식과 보석과 비단을 넣어도 항상 반 정도만 채워져 있는 것이 아닌가.왕은 깜짝 놀라 거지성자를 보면서 말했다. “아이구, 도인이시여. 당신은 놀라운 그릇을 가지고 있군요. 그렇게 많은 금은보화를 넣었는데도 아직도 비어 있다니.” 그러자 거지성자가 대답했다. “시칸다왕이여! 세상의 모든 보물을 여기 담는다 해도 그릇은 항상 비어 있을 것이요. 이 그릇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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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행복을 얻기 위해 욕망의 그릇을 채우려 들지만 채워도 채워도 여전히 부족한 빈 자리가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행복은 부족함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플라톤은 행복하기 위한 다섯 가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첫째, 먹고 입고 살기에 조금은 부족한 듯한 재산 둘째,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엔 약간 부족한 외모 셋째,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절반 밖에는 인정받지 못하는 명예 넷째, 남과 겨루었을 때 한 사람에게는 이기고, 두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 다섯째, 연설을 했을 때 듣는 사람의 절반 정도만 박수를 보내는 말솜씨 플라톤이 제시한 행복의 조건의 공통점은 "부족함"입니다. 뭐든지 약간 부족한 게 좋습니다.

최인호의 소설 상도에 나오는 임상옥은 장사를 하러 다니면서도 계영배(戒盈杯)라는 물건을 늘 몸에 지니고 다녔다고 합니다. 계영배라 하면 ‘가득 차는 것을 경계하는 잔’입니다. 그는 늘 그 잔을 보면서 다짐을 했습니다. ‘나는 가득 채우지 않겠다. 혹 내 평생 가득 채울 수 있는 기회가 오더라도 나는 그렇게 채우는 것을 경계하고 또 경계하겠다’ 승자 독식의 자본주의 시스템은 천박한 인심을 만들고 인정도 도덕도 사라진 게걸스러운 사람을 양산합니다. 욕심만을 가지고 추구하면 그 일은 안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마음을 비우고 ‘그거 없어도 살아’ 그렇게 집착을 버리면 의외로 쉽게 일이 풀립니다. 좀 모자라게 살면서 자기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며 사는 게 참으로 행복한 삶을 누리는 길입니다.

최선 다해 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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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은 공과 다름 아니요 공도 색과 다르지 않으니
따라서 색이 곧 공이요 공은 곧 색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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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玄·602~664)법사의 본명은 진위(陳褘)이며 허난성(河南省) 뤄양(洛陽) 인근에서 태어났다. 10대 초반에 승려이던 둘째 형을 따라 출가했다. 29세 때 인도로 유학했으며 45세 때 당나라로 귀국했다. 이후 범어(梵語)로 된 수많은 불교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하며 일생을 보냈다. 그중에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역작은 《반야심경》이다. 이유는 본문이 260자로 짧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길이가 짧다고 내용까지 쉬운 것은 아니다. 짧지만 동시에 압축미를 담고 있는 것이 오래도록 변함없는 인기 비결이라고 하겠다. 그 가운데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다’라는 구절이 가장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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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날씨는 종잡을 수 없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고 안개가 앞을 가리더니 진눈깨비가 쌀알 같은 우박을 쏟아내며 잠시 후드득 소리를 내다 말고 이내 빗방울로 바뀐다. 조금 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또 구름 사이로 햇살이 뻗친다. 그런 변화무쌍함(空)을 짧은 시간에 두루 경험하며 ‘두모악’갤러리에 도착했다. ‘색즉시공’을 가장 잘 가르쳐주는 공부방인 까닭에 바람 많은 삼다도에 올 때마다 들르게 된다. 바람은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므로 공(空)이라 하겠다. 사진작가 김영갑 선생(1957~2005)은 그 바람을 순간포착한 후 캔버스에 고정시켜 색(色·존재하는 것)으로 변환시키는 탁월한 감각을 지녔다. 이런 걸 ‘공즉시색’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작품(色)은 바람(空)이 없었다면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러므로 ‘색즉시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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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역시 생로병사(生老病死)인 삶의 변화라는 틀(空)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그래서 육신(色)은 10여년 전에 우리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럼에도 그의 갤러리에는 젊은 시절 사진이 또 다른 색(色)으로 남아있다. 돌아가실 무렵 지인의 안내로 잠깐 뵙는 시간을 가졌다. 병고(病苦)로 인해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우리를 맞았다. 그 모습이 내 생각 속에 또 하나의 색(色)으로 머물러 있다. 어쨌거나 모든 것이 공(空)인 줄 알기 때문에 매 순간 최선의 존재(色)로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지금 세대 인간들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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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으로서 남북한의 평화와 통일을 반대한다면 이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전세계 정교회 3억신자의 영적지도자인 바르톨로메오스 세계총대주교가 4일 서울 마포구 아현동 성니콜라스성당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한국정교회 주교좌인 성니콜라스성당 건축 50돌을 맞아  3~8일 일정으로 방한한 그는 “세계총대주교청에서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항상 기도하고 있다”면서 “6일 축성 50돌 기도식과 당일 비무장지대 방문 기도를 통해서도 한반도가 통일을 이뤄 이산가족들이 만날 수 있도록 평화를 위한 기도를 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한 내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방남을 불편해하는 시각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 “한민족이 자신들이 원치않게 외적인 영향으로 인해 분단이 됐는데, 흩어진 가족들이 하나가 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자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것 아니냐”며 “어떤 이득도 가족들을 하나가 되게 하는 일치와 사랑보다 더 위에 놓을 수 있는 것은 없기에 남한에서도 남북한 화해와 통일을 반대하는 이들이 많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국을 네번째 방문한 그는 “7일 청와대를 찾아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서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애쓰고 있는데 대해 감사와 격려를 드리고, 임기내 통일을 이루기를 기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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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교회는 104년 동·서교회의 분열로 가톨릭과 결별했지만 바르톨로메오스 총대주교는 1991년 착좌 이후 종교간 화해와 대화에 앞장서 열린 종교지도자로 알려져있다. 에에 걸맞게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북한을 방문하겠다고 한 것을 환영한다”며 “겸손한 교황이 남북한 화해와 통일을 위해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덕담을 했다.
 그는 환경운동가로서도 유명하다. 그는 생태계 위기 극복을 위해 프란치스코 교황 및 캔터베리 성공회 대주교와 만나 협력해왔고, 2009년 ‘코펜하겐 기후정상회담’의 합의를 위해 모든 국가들이 협력할 수 있도록 역설하고, 아마존과 다뉴브강 등에서 9번의 국제환경심포지엄을 개최한 바 있다. 이어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의 부군인 에든버러 공작의 후원으로 다양한 환경보호 세미나를 개최해 엘고어 전 미국대통령으로부터 ‘녹색총대주교’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강대국 지도자들이 오히려 지구 환경문제를 도외시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한국이 재활용을 열심히 하며 환경 보전에 앞장서고 있어 자랑스럽다”고 평했다. 그는 “우리에겐 다음세대를 위해 환경을 보전해야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오는 7일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국제환경심포지엄에서도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정교회 전통에서 본 창조물에 대한 신학적 관점’이란 주제 발표를 직접 할 예정이다.
 그는 또 아이들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보여 ‘아이들의 총대주교’란 별칭도 가지고 있다. 그는 2016년 성탄절 메시지에서 2017년을 ‘아이들을 보호하는 해’로 정하자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는 “지금 아이들이 디지탈에 포위되어 있다”면서 “아이들에 대한 옳바른 교육과 지도를 포기한다면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보전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싸가지없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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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짓지말아라 바르게 살아라
참 쉽게들 말합니다. 혹자는 간음한여인에게 주님이 그러셧으니 말씀대로 살아야한다고 강변하기도 합니다.  틀린말은 아니지요. 공동체가 함께 잘 살기위해서는 죄짓지않는 삶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의 삶이 불공평 하다는데 잇습니다. 어떤이는 유복한집ㅡ따뜻한부모 밑에서 자라서 마음이 풍요롭지만 많은이들이 가난한집에서 결핍욕구에 시달리며 크거나 혹은 문제부모밑에서 혹독한 어린시절을 겪으며 기형적성격을 갗습니다. 죄짓지않고 바르게 살려면 내적인 힘ㅡ여유로움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애써도 쉽지않은 사람들이 많다는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깔끔한 삶을 사는것에 만족하고 죄짓고 사는사람들을 눈쌀찌푸리며 볼일이 아니라 주님께 가는길에 한사람도 낙오하지않도록  챙기는 배려심을 가져야 합니다
 
나혼자 죄안짓고 깨끗한 영혼으로 천당갈거야 하는 생각은  그야말로 주님 보시기에 싸가지없는 생각입니다

천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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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재란 노력을 계속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다.

 

            -에디슨

하버드 졸업장보다 나은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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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 마을의 도서관이었다.

하버드 졸업장보다 소중한 것이 독서하는 습관이다.


-빌 게이츠

패자를 승자로 바꾸는 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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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자를 승자로 바꿀 수 있는 비법이 있다면

그건 바로 당신이 원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앤드류 매튜스


가장 두려운 것은 삶의 권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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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 영혼의 윤활유 역할을 하는 술자리가 길어져 과음하게 되었다면, 나는 다음날 아침 해장국집이 아닌 공원이나 숲속으로 향한다. 그곳에 최고의 해장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노란 낙엽이 사각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코를 지나 허파 깊숙한 곳까지 전해지는 짙은 낙엽 냄새를 맡으며 걷는다. 그러다보면 이 계절이 아니면 절대로 즐길 수 없는 차갑고도 상쾌한 기분이 든다. 나무들의 모양이 ‘활엽수’에서 ‘침엽수’로 바뀌는 이 시간은 눈과 귀, 코와 입, 그리고 발바닥의 촉감에 이르기까지 모든 감각기관을 열어 오감으로 즐기기에 너무도 좋은 계절이다.
 
 11월은 그런 점에서 ‘발바닥 철학자’의 계절이다. 걸으며 사유한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의 교수인 다비드 르 브르통은 대표적인 발바닥 철학자다. 그는 저서 <걷기 예찬>에서 사람들은 발로 걸으면서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을 되찾는다고 강조했다.
 
 
 “숲이나 길, 혹은 오솔길에 몸을 맡기고 걷는다고 해서 무질서한 세상이 지워주는 늘어만 가는 의무들을 면제받는 것은 아니지만, 그 덕분에 숨을 가다듬고 전신의 감각들을 예리하게 갈고 호기심을 새로이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걷는 동안 똑같은 신발을 신은 이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 시대의 도시인에게 운동화란 곧 자유와 개성을 뜻한다. 언제든지 걸을 태세가 갖춰져 있다. 공원 산책자이건 도시 산책자이건 상관없다. 걷기를 통해 육체의 허파뿐 아니라 정신의 허파를 건강하게 만들고자 하는 욕구로 가득하다. 저마다 신고 있는 운동화가 다르듯 나만의 삶을 열망한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두 가지가 진정한 ‘나’를 정의한다.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있다고 믿을 때의 교만함의 정도, 그리고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할 때 인내심과 품위의 정도다. 도심 근처에 있는 야산의 숲속을 걷다 가끔 다치는 사람을 본다. 대부분 올라갈 때가 아니라 내려올 때다. 내리막길에서 젖은 낙엽에 미끄러지는 것을 더 조심하라지만, 맘먹은 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다.
 
 먼저 허물어지는 것은 몸이 아니라 정신이다. 활엽수에서 잎이 떨어지듯, 하루가 다르게 머리카락이 빠져나가고, 우리의 손안에서 소중한 것들이 빠져나간다는 두려움에 빠진다. 돈, 권력, 체력, 명성, 피부의 탄력 같은 것들이다. 삶의 활력을 잃기 쉽다. 하지만 마키아벨리가 이렇게 말했던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빈곤도 걱정도 질병도 슬픔도 아니다. 그것은 삶에 대한 권태다.”
 
 그렇다. 가장 두려운 것은 권태와 삶의 무료함이다. 그럴 때 이국적인 음악이 묘약이다. 차가운 날씨에는 하모니카 소리가 제격이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신선한 커피콩을 갈아서 아로마 향이 풍기는 커피 한잔 준비하는 동안 지그문트 그로븐의 하모니카 연주로 ‘솔베이지의 노래’를 듣는다. 박제화되어버린 지금의 시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떠나라고 재촉하는 여인 솔베이지의 목소리가 어디서 들리는 듯하다.
 
 이 곡을 작곡한 그리그와 연주자 지그문트 그로븐, 그리고 이곡의 배경인 <페르 귄트>라는 극을 쓴 극작가 입센 모두 북유럽 노르웨이 출신이다. <페르 귄트>는 노르웨이 구브란스달렌 지방의 민담을 기초로 한, 방랑 끝에 고향으로 돌아와 삶을 마친 한 남자의 이야기다. 그 가운데 ‘솔베이지의 노래’는 극의 마지막에 노인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페르 귄트를 품에 안은, 이제는 백발의 노인이 된 여인 솔베이지가 사랑하던 사람을 향해 부르는 노래다.
 
 “아마도 겨울이 가고 봄도 가겠지, 겨울 가고 봄도/ 그런 후에 오는 여름도 가고 한 해 전부도, 한 해 전부도/ 그러나 언젠가 너는 올 거야, 난 확실히 알아, 확실히 난 알아/ 그리고 난 분명히 기다릴 거야, 전에 그렇게 약속했으니까….”
 
 우리는 살면서 참으로 많은 약속을 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 약속도 있고, 가족과 친구,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약속을 하고 또 잊어버린다. 하지만 누군가는 솔베이지라는 여인처럼 끝까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전통적으로 서양에서는 11은 10보다는 크고 12보다는 작기 때문에 환영받는 숫자는 아니었다. 10과 12라는 중요한 두 숫자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이 바로 11이다. 하지만 11은 완성수 12를 향해 한발 한발 다가가는 숫자이기도 하다. 11을 인간의 불완전성과 관련지어 해석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르네 그농이라는 학자가 그중 한 사람으로, 11은 5(2+3)와 6(2×3), 즉 지상과 천상이 결합된 수라는 견해를 제시하였다. 가장 인간다운 숫자라는 뜻이다. 완벽하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완전을 지향하는 인간들의 불안한 마음을 대변하는 시기가 바로 11월이다. 계획을 세웠지만 못다 한 일들을 돌아봐야 할 시간이다.
 
 이 노래와 이야기가 만들어진 노르웨이의 11월은 위도가 높은 탓에 서울보다 훨씬 어둡고 춥다. 비나 진눈깨비가 자주 내린다. 비록 날씨는 점차 나빠지지만 역설적으로 자기 자신을 만나기에 알맞은 계절이다. 화려한 자연에 눈을 돌리는 대신 자신의 내면으로 향할 수 있기 때문이다.
 
 11월은 우주의 신비를 체험하는 계절이다. 수확을 위해 씨를 뿌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위대한 작업인지 새삼 절감하게 된다. 반면에 잎이 떨어져 또 다른 탄생의 밑거름이 되는 것처럼, 나 역시 언젠가는 세상의 거름이 되어야 한다. 구름처럼 혼자 왔다가 혼자 가야 한다. 홀로 걷지 못하면 함께 걸어도 외롭다. 외로워본 사람만이 외로운 사람의 맘을 이해한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또 다른 솔베이지에게 찾아갈 시간이다.
 

늘 생각으로 정리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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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찬 것은 생각을 굴리는 것입니다.
답답한 것은 생각이 이어가는 것입니다. 
화가 나는 것은 생각을 믿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우울한 것은 생각에 잠긴 것입니다. 
불안한 것은 생각에 중요성을 둔 것입니다.

마음이 편안한 것은 생각을 내려놓은 것입니다. 
자유로운 것은 알아차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유로운 것은 잡념이 없는 것입니다. 
고통이 없는 것은 생각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왜 이리 힘들게 삽니까? 
항상 생각으로 정리할 필요가 없습니다. 
몰라도 되요. 
기다려 봐요. 
개념 짓지 않으면 다 괜찮습니다.

끝없는 정진은  끝없는 내려놓음 입니다. 

알아차림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면 
다 괜찮습니다.

To be dumbfounded means we are spinning our head. 
To be frustrated means thoughts have continued one after another. 
To be angry means we believe and follow our thoughts. 
To be depressed means we are emersed in our thoughts.
To be nervous means we have given importance to our thoughts.

To have peace of mind is to let go of thinking. 
To be free is to have awareness.
To be at ease is to be free from discursive thinking.
To be free of suffering is to be free of thinking.

Why do we make it so hard on ourselves? 
We don't need to figure everything out.
Wait it out.
If we don't conceptualize, then all is well.

Persistently rest the thinking mind. 
If we never give up on awareness, then everything will be all right.

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괴롭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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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9월12일 3개월마다 한번씩 열리는 서울시 전직원 조례에서 조현 기자가 '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괴로운 이들을 위한 마을공동체 탐사기'<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휴 펴냄)로 강의한 내용을 <씨알의 소리> 11·12월호에 발췌해 정리해 실은 내용임 )

 

 

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괴롭다면 어떻게 살아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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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외로움과 고독의 시대

 누구의 보살핌도 받지 못한체 홀로 쓸쓸하게 삶을 마감하는 고독사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지금은 누군가 고독사를 당하면 뉴스가 되기도 하지만, 앞으로 고독사는 너무 많아 뉴스거리조차 되지못하는 시대가 될지 모른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홀몸노인 무연고 사망자는 최근 5년간 3331명에 달했다. 연도별로 보면 2014538, 2015661, 2016750, 2017835명으로 크게 늘고 있는 추세다. 2018년엔 6월현재 지난 2014년도 고독사 수를 추월한 547명이다.

 앞으로는 고독사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배우자나 자녀 없이 살아가는 65세 이상의 홀몸 노인이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홀몸노인 인구는 20141152673, 20151202854, 20161266190, 20171336909명 등으로 늘었다. 20186월 현재는 140585명으로 2014년에 비해 17.9% 증가했다. 현재 홀몸노인 중 가장 많은 연령대는 75~79세로 345524명이었고, 90세 이상 초고령 홀몸노인도 42127명에 달했다. 최근 5년간 전체 노인 고독사를 성별로 보면 남성 2103, 여성 1228명으로 남성이 월등하게 많다.

 고독사만이 아니다. 홀로 사는 1인가구가 급증하고 있다. 2017년 현재 우리나라에서 1인가구수는 5618677가구다. 평균 가구원수는 2.5명이지만, 전체 가구가운데 28.6%1인 가구다. 모든 가구수 가운데 1인 가구가 가장 많다. 그 다음이 526만 가구(26.7%)2인 가구, 4179천 가구(21.2%)3인 가구, 3474천 가구(17.7%)4인 가구, 1142천가구(5.8%)5인 가구 순이다.

 1인 가구는 늘어나는데, 이들의 삶의 여건은 궁핍하다. 한 금융연구원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조사했는데도 1인가구의 순자산이 1억원 남짓에 불과하다고 했다. 65세 노인인구의 상대적 빈곤율(중위소득의 50% 미만인 계층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2017년 기준으로 45.7%를 보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1위로 가장 높다. OECD 가입국 평균 노인 빈곤율은 12.5%이다.

우리나라 1인가구들의 궁핍한 처지는 주거 현실에도 반영돼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1인 가구의 현황 및 특성에 따르면 1875천 가구(36%)가 월세집에 살고, 831천 가구(16%)가 전세로 산다. 월세나 전세로 사는 비율이 52%, 자가에서 사는 34%(1774천 가구)를 크게 상회하고 있다.

 이런 객관적인 수치들이 말해주는 것은 홀로 사는 사람들은 급증하고 있는데, ‘화려한 싱글과는 거리가 멀며, 상당수가 고립과 고독사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2.외로움이 가져다주는 것들

 인간은 고립을 가장 두려워하기에 누군가와 연결되고 만나기를 갈망한다. 인터넷은 만남을 너무도 쉽게 만들었다. 생후 한 달 만에 생모와 떨어져 입양돼 외톨이로 자란 스티브 잡스는 인간들을 연결하고 싶어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발명했다. 그것은 단절의 아픔을 딛고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은 잡스 개인의 꿈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의 꿈대로 세상과 단절돼 친구 한 명 없는 사람도 SNS에서는 수백 수천 명의 친구를 손쉽게 만들 수 있다. 그 연결이 가족과 마을, 공동체 같은 걸 대체할 수 있을까.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은 외로움을 다소 위로해줄지언정 심층의 외로움을 달래주긴 어렵다. 오늘날 홍대 앞과 강남역 일대 등 아날로그적 장소로 나와 배회하는 이들은 상당수가 디지털 세대다.

 얼마 전 영국이 체육·시민사회장관을 외로움담당 장관으로 겸직 임명했다. 영국 내 조콕스 고독위원회201712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외로움은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만큼 건강에 해롭다. 위원회는 고독이 개인적 불행에서 사회적 전염병으로 확산됐다면서 고독을 질병으로 규정했다.

 외로움이 병을 낳는 것과 달리 결혼이나 친밀한 관계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연구로 밝혀지고 있다. 영국 러프버러대학의 에프 호헤르보르스트 생물심리학 교수 연구팀이 52~906677명을 6년 동안 조사한 바에 따르면 친밀한 관계가 알츠하이머 치매를 막는 데 크게 도움이 됐다. 조사 기간 내 220명이 치매 진단을 받았는데, 친밀한 관계를 지속적으로 맺은 사람은 치매 발생률이 60퍼센트가량이나 낮았다. 이에 비해 독신 남녀는 치매 발생률이 35~44퍼센트로 높았다.

 경제적으로 상류층에 속한 이들이라고 혼삶에 문제가 없지는 않다. 아주 가까운 한 지인은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상위 1퍼센트 이내에 들만큼 성취를 이룬 분이다. 그는 20년 전쯤 이혼을 했고, 자녀들은 모두 외국에 있어 홀로 서울의 대저택에 살고 있다. 얼마 전 그는 건강검진으로 장에 용종이 생긴 것을 알게 되었다. 병원에서 시술을 위해 보호자를 데려오라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데려갈 만한 마땅한 사람이 없어서 애를 먹었다. 현대인은 하나같이 바쁘니,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나 공동체원이 아니면 그런 사소한 부탁을 할 사람이 마땅치 않은 게 현실이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10~20년 앞선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고령화가 우리나라보다 앞서 진행됐고, 고립과 고독사 같은 문제들이 앞서 문제시됐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거울일 수 있다. 그런 일본에서 최근 일부러 교도소에 가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일본은 65세 이상의 노인이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가족, 파트너와 살지 않는 독거노인의 숫자는 1985년에 비해 2015년에 600% 가량 증가했다.

그런데 노인들이 고독과 병치료등의 어려움 때문에 일부러 편의점에서 물건을 훔쳐 교도소행을 택한다. 2016년 입소자 2467명 중 2498(12.2%)65세 이상 고령자다. 1997596(2.6%)보다 4.2배 증가한 수치다. 여성 수감자는 40명에서 363명으로 20년 사이 10배 가까이 늘었다.

이들은 교도소에 함께 식사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치료까지 해주기 때문에 홀로 고독하게 지내는 것보다 낫다고 한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로는 노인 수감자의 경우 치료비등을 포함해 1년에 2만 달러(2139만원)의 비용이 소요돼 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교도소 수감자의 생활 여건이 연 78만엔(790만원)으로 최저생계비 98만엔(992만원)80% 수준인 연금 수혜자보다 낫다고 평한다고 한다.

 

 3.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외로움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과 친밀하게 지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조사가 있었다. 하버드대학이 1938년부터 79년간 724명의 삶을 추적 연구해 인간의 육체적·정신적 건강과 행복이 인간관계의 친밀함에 달려 있음을 밝혀낸 것이다. 이 연구에 따르면 삶을 가장 윤택하게 만드는 것은 좋은 인간관계이고, 사람을 죽음에 내모는 것은 외로움이었다. 4번째 연구 책임자였던 월딩거 박사는 가족과 친구, 공동체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더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영위했다인간관계가 좋은 사람은 건강했고, 더 장수했다고 밝혔다. 그는 조직 생활이나 결혼 생활을 하면서도 외로움을 경험할 수 있다외로움은 흡연이나 알코올중독만큼 강력하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친구의 숫자보다 친밀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옆에 누군가 있다 하더라도 앙숙처럼 다투며 고통을 주고받는 당사자끼리 함께 있는 것은 따로 있는 것만 못하다는 것이다. 월딩거 박사는 주변인과 갈등 속에서 생활하는 것은 건강에 나쁘다다툼이 심한 부부보다 이혼한 사람이 건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최근엔 가족이 많을수록 암 위험이 낮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호주 애들레이드대 연구팀은 전 세계 178개국 데이터를 토대로 가족 구성원의 수와 암 발병 위험의 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가족이 많을수록 암 발병 위험이 낮았다. 구체적으로 인구 100만명당 암 발병률은 7인 가족의 경우 226인 가족 255인 가족 294인 가족 343인 가족 432인 가족 581인 가족 100명 등이었다. 한국인의 암 발병률은 2015년 기준 인구 100만명당 42명이다.

 연구팀은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추측하고 있다. 첫째, 옥시토신의 영향이다. 옥시토신은 인체 면역·신경계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고 결과적으로 암세포의 증식을 막는데, 사회적 유대감이 강력할수록 옥시토신의 분비량이 늘어난다고 한다. 둘째, 가족의 지지다. 가족이 많을수록 서로의 건강을 챙기게 되고, 이로 인해 더 건강하게 지낸다는 것이다. 셋째, 유전적 영향이다. 연구를 진행한 유웬펑 박사는 유전적으로 출산 자녀수가 많을수록 자녀들의 암 유전자와 돌연변이 축적이 감소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특히 가족에서 나아가 이웃들까지 함께 어우러져 지내는 이들의 행복도는 보는 이들을 놀라게 한다. ‘함께 살면아이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삶의 여유와 재미를 더해주고, 실직이나 힘든 일을 당해도 내 일처럼 함께 해결해주고, 경제적으로도 절감 효과가 대단하다. 내 감으로는 평균적으로 공동체원들은 우리나라 하위 20~30퍼센트 소득계층 정도의 지출만으로도 상위 70~80퍼센트 계층의 여유 있는 삶을 누리는 듯 보였다. 저소득층 정도의 지출만으로도 중산층 정도의 여유를 향유한다는 뜻이다. 공동체가 자본주의 자본가 입장에선 반경제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각자 개인으로서는 적게 쓰면서도 몇 배의 효과를 누리는 가장 경제적 시스템인 셈이다. ‘함께 산다는 것의 강점은 경제적 효율만이 아니다. 그들이 바깥세상에선 느껴본 적이 없는 치유와 살맛을 줘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상위 90퍼센트 이상의 행복도를 경험케 한다. 외로우면 아무리 먹어도 허기가 지고, 사랑을 받으면 조금 덜 먹어도 든든하고 힘이 난다는 것을 마을공동체 사람들의 삶이 증명한다.

인간은 자기 홀로는 호랑이나 표범에 비해서도 무력하기 그지없지만, 서로 의지하고 돌보고 협조하고 힘이 되어주고 위로해주고 사랑해주면서 행복해지고 강해질 수도 있다. 스웨덴은 국민의 5분의 1 이상이 공유 주택에서 살고 있다. 공유 주택으로 함께 거주하는 이들이 잘 조화되면 10개의 보험을 들어두거나, 북유럽 수준의 복지 시스템을 구축한 것보다 행복에 더 나아 보였다. 나을 수 있다.

 많은 사람이 복지 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유럽에서 살아보고 싶은 열망을 가진다. 살고싶다고 한다. 나도 유럽에 사는 지인들이 있지만, 내가 아는 한 국내의 마을"E공동체살이를 하는 분들의 만족도가 더 컸다. 유럽의 한 지인은 내가 쓴 국내 마을 이야기를 보고는 그곳에 와서 살고 싶다고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마을공동체살이를 하는 이들은 자신의 선택에 대부분 안도했다. 더 이상 미래만을 걱정하며 평생 준비만 하는 인생을 살 필요가 없다며, 아이들에게도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라고 닦달하지 않았다. 직장을 포기하거나 재산을 헌납하거나 절대 고독의 수행을 하지 않고도 행복을 만들어낸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들에겐 휴식과 여백이 있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초스피드 사회에서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앞집에도 옆집에도 뒷집에도 죽도록 뛰는 사람들이 아니라 불안해하지 않고 여유 있는 표정으로 쉬는 사람들이 있는 것만큼 평온한 환경이 또 있을까. 남들 다 달려가는데 나만 쉬면 큰일 날 것 같은 불안과 비교와 부러움과 질시로 괴로운 사람들을 그만큼 편하게 쉬게 해주는 환경이 분위기가 있을까.

 사람들이 평생을 찾아 헤매고, 자본주의적 성공을 거둔 사람들조차 요원해 보이는 행복이 그렇게 가깝게 있다는 것을 고난의 행군 중인 한국인이 쉽게 믿을 성 싶지는 않다. 그래서 그것이 소수의 독특한 사람들만이 체험하는, 정신적 모르핀 같은 것일 수 있다는 의구심에서 더 많은 이의 인터뷰가 필요했다. 무려 3백여 명을 인터뷰해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는 책을 쓴 것도 그런 의구심 때문이었다.

 인터뷰와 만남이 더해갈수록 그들을 마을공동체사람들이 보통의 사람들보다 행복하게 사는 행복하게 하는 비결이 선명해졌다. 그들은 혼자만 잘 살아보겠다는 이기적 욕망의 동굴을 나와 사람들과 함께했다. 아니다. 함께 사는 게 행복하기에 더 욕심을 내지 않을 수 있었고, 상처의 동굴에서 나올 수 있었다고 역으로 말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마을공동체 자체가 주는 치유와 자족의 효과가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의지가 되는 이들은 가족임에 두말할 나위가 없다. 공동체는 닫힌 가족주의와는 다르다. 애증이 짙은 또 하나의 동굴인 가족 내에만 갇혀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마을·공동체살이를 하는 이들이 바깥사람들보다 훨씬 더 가족과 많은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는 건 맞지만 그들이 더 많은 여유와 재미를 갖게 된 건 가족만 아니라 이웃 가족들과 함께 협력하고 의지하고 서로 돌보며 친밀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말이 통하고, 필요할 때 서로 도움과 힘이 되는 사람들을 만나고, 어울려 살아가는 것은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거나, 어느 나라에서 사는 것만큼이나 삶의 행복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대부분이 이토록 중요한 것을 도외시한채 정 반대의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다.

 

서울시-.jpg» 9월12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서울시 박원순 시장을 비롯한 간부들과 전직원 1천여명을 대상으로 강연중인 조현 기자

 

 4.왜 관계를 어려워하는가

 현재를 4차 혁명 시대라고 한다. 4차 혁명으로 인한 경제적 변화만큼 중대한 변화가 바로 인간의 탈포유류 현상이다. 포유류의 라틴어 맘마(mamma)는 젖가슴이란 뜻이다. 어린 시절 엄마는 젖을 줄 때 맘마 먹자고 한다. 젖을 먹이는 어미는 본능적으로 목숨을 걸고 새끼를 보호하고, 새끼는 어미의 보호를 받고 받으면 안정감을 느끼며 자라는 것이 포유류의 특징이다.

 엄마는 100만 년 전에도 10만 년 전에도 1만 년 전에도 1천 년 전에도 다른 포유류와 다름없이 온 신경을 새끼에게 쏟았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도래하면서 경쟁이 가속되고, 아기에 대한 엄마의 집중도가 현저히 떨어지면서 오랜 세월 공고하게 맘마로 유지되어온 연결고리에 심각한 균열이 발생했다. 한국은 그 균열이 훨씬 단시간에 벌어졌다.

 고향 마을 출신 지인은 1960년 초 처음 서울에 올라와서 영등포 시장에 나가 노점을 차려 장사를 했다. 부부는 막 젖을 뗀 아들과 태어난 지 몇 개월밖에 안 된 딸을 두고 나가야 했다. 둘이 나가서 온종일 일을 해야 겨우 입에 풀칠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어린 아기들 발에 줄을 묶어 문고리에 매어두고, 방에 밥과 물을 담은 그릇을 놓은 채 시장으로 향했다고 한다. 부부가 장사를 끝내고 돌아와보면 밥과 물그릇은 엎어지고 아기들은 얼굴과 몸에 밥풀을 덕지덕지 묻히고, 문을 향해 나오다 줄이 서로 엉켜 울다 눈물과 콧물이 굳은 채로 잠들어 있었다고 했다. 부모들이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이 부모로부터 온종일 떨어져 포유류로선 상상키 어려운 상실감을 아이들이 겪은 셈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급격한 성장 시대 이런 상실감은 보편적이다. 신문사의 한 후배는 어린 시절 직장 맘인 엄마가 곁에 없어서 늘 우울했다고 고백했다. 언젠가 엄마가 보고 싶어서 찾아 나섰는데 가도 가도 논밖에 없어서 논 한가운데 서서 울던 기억이 또렷하다고 했다. 한 여자 후배도 부모님이 맞벌이였는데, 시골 할머니 집에 데리고 가서는 자기만 떨어뜨려놓고 가버리곤 했을 때의 아픔과 쓸쓸함을 마흔이 넘은 지금도 떨쳐버릴 수 없다고 한다. 아무리 서너 살 아이라도 알아듣게 얘기하고 설득하면 좋으련만 엄마, 아빠는 매번 아이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려놓고는 한순간에 내빼곤 했다는 것이다. 어린 그는 엄마, 아빠와 오빠로부터 자기만 홀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지만, 온 식구들이 쓰는 속임수에 잠시 한눈을 팔면 언제나 엄마, 아빠는 사라지고 없어서 마을 동구 밖까지 종종걸음으로 쫓아갔다가는 울며 되돌아오곤 했다. 그로 인해 대학 시절 캐나다로 한 학기 동안 교환학생으로 갔을 때도 분리 공포로 두 달 동안 거의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두려웠다고 한다.

 아이 때만이 아니다. 그 이후 성장 과정에서도 아이들은 제대로 돌봄이나 공감을 받기보다는 정글 같은 경쟁에 내던져졌다. 우리 시대 많은 부모는 노후 준비도 못하고 자식 뒷바라지하다가 노년을 맞았다. 그런데 자식들이 엉뚱한 소리를 한다. “누가 그러라고 했냐는 것이다. 먹이고 재워가며 학비와 학원비 대느라 허리가 휜 부모는 억장이 무너진다. 배우자도 없이 홀로 자식을 돌본 경우라면 더욱더 기가 막힐 수밖에 없다. 자식은 부모가 먹고사니즘을 위해 자식을 버려두고 떠났다가 뒤늦게 나타나 감 놔라 배 놔라 한다면서 내가 외롭고 힘들어 울고 있을 때 엄마, 아빠는 도대체 어디에 있었느냐고 울분을 토한다. ‘밥 먹여주고 등록금, 학원비만 대주면 다냐는 것이다. 부모는 물질과 경제적 헌신을 얘기하고 있는 반면, 자식 세대는 그로 인해 겪은 정신적 고통을 호소한다. 수백만 년의 인류사에서 이 시대만이 겪는 각별한 세대 간 간극이 아닐 수 없다. , 굶어죽지 않기 위해 올인해야 했던 부모 세대와 생계에 엄마를 빼앗긴 자식 세대 간의 간극이다.

 정신적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자식에게 부모 세대는 배부른 소리한다고 치부한다. 자신에게 가장 큰 고통을 준 대상이 서로 다른 것이다. 젊은 세대도 부모 세대가 얼마나 윗세대, 즉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면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는지를 모르지 않는다. 고생한 부모에 대한 한없는 연민도 있다. 한부모였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럼에도 내면에 부모에 대한 분노가 휴화산처럼 잠재돼 있어 서로 떨어져 있을 때는 그리워하면서도 정작 만나면 알 수 없는 분노가 폭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분리 트라우마를 준 데 대한 원망때문이다.

 인간은 일차적인 욕구가 해결이 안 되면, 즉 배가 고프면 오직 먹는 데 온 신경을 쓰게 된다. 그러나 식량을 비축한다고 모든 고통이 일거에 해결되는 게 아니다. 그 이후에도 많은 고통이 있으며, 또 다른 욕구가 생기게 마련이다.

 일차적 생존 욕구가 해결되면 정신적 욕구로 이행된다. 정신적 욕구 가운데 특히 아기에게 가장 중대한 것은 안전이다. 아기에게는 안전을 지켜주는 절대자, 즉 신이 바로 엄마다. 윗세대는 당장 먹고 살 게 없었기에 일차적인 욕구에 매진했지만, 그 이후 세대는 굶어죽을 일은 거의 사라져 기아는 고통의 종류에 들지도 않는다. 그들에겐 생존 이후의 욕구, 엄마가 가장 중대했고, 모정의 상실과 결핍이 가장 큰 트라우마가 되었다. 행동심리학자들은 어린 시절 형성된 안전 기지가 평생 동안 안정적인 삶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안전 기지란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지켜주는 엄마가 있다는 믿음을 통해 형성된다.

 아이 때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애착 시스템에 이상이 생겨 회피형 인간이 되기 쉽다고 한다. 어려서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믿음을 배반당하는 일이 반복되면 사람을 잘 믿지 못하고, 더 상처 입지 않기 위해 관계를 회피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려서 엄마와 애착이 형성되고 정서를 공유해 기쁨을 맛보면 타인과의 정서 교류에서 오는 즐거운 체험 때문에 늘 쉽게 타인과 교감하지만, 일찍이 단절과 차단을 경험하면 타인과 관계 맺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그런 두려움으로 나는 아무에게도 사랑 받지 못한다는 불신이 내장되는 것만큼 큰 불행이 있을까. 회피형 인간은 개인주의와 도시화, 핵가족화 증가에 따라 급격히 늘었다. 농경 사회의 대가족 사회에서는 그 수가 극히 희박하다. 따라서 혼인율과 출산율 저하는 경제적 요인만이 아니라 회피형 인간의 증가라는 심리적 요인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기들에겐 생물학적 엄마만이 엄마는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엄마를 대체해온 엄마들로부터도 분리됐다. 여기서 엄마들이란 전통 사회에서 사정이 있어 엄마가 일터에 나가거나 다른 일을 해 아이를 돌보지 않더라도 아이를 대신 보살필 수 있었던 대가족과 친인척, 마당, 놀이터를 말한다. 급격한 도시화로 대가족과 고향 마을이 붕괴되기 전에는 엄마만이 아니라 더 큰 엄마인 대가족과 마을공동체가 있었다.

 한국의 도시화와 핵가족화는 너무도 급작스럽게 진행됐다. 유럽은 산업혁명 이후 수백년간 서서히 변화해왔지만 한국은 1960년 이후 너무도 급작스런 변화에 미쳐 적응할 틈이 없이 스트레스가 그대로 무의식에 내장돼 트라우마를 남겼다. 인간이 수백만 년간 사회적 동물로서 익숙해진 공동체가 한순간에 빙하가 녹듯 녹아 이들이 디딜 안전판이 사라져버린 것이 현대 한국 젊은이들의 깊은 상처를 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도시 지역 거주 비율은 1960년엔 40퍼센트 미만이었으나 1990년에는 81.95퍼센트로, 2017년엔 91.82퍼센트로 늘었다. 농촌 마을에서는 부모가 농사일이나 다른 일을 하더라도 많은 형제자매와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고모, 친척, 이웃집 아줌마, 아저씨, , 누나 등 제2, 3의 안전망이 있었다. 엄마가 아니라도 누군가는 아이를 지켜보는 대가족과 마당이라는 천연의 안전망이 있었다. 이 안전망이 오직 엄마에게만 지워지는 부담을 덜게 했다. 설사 엄마를 잃더라도 엄마를 대신할 제2, 3의 엄마가 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도시의 핵가족하에서 아이들은 고립된 채 방치됐고, 나중엔 방과 후 학원에 맡겨졌다. 250만 년간 엄마와 대가족 공동체의 보살핌을 받던 아이들을 떼어놓은 채 부모는 먹고사니즘에 올인했고, 정부도 성장이 급해 복지에 미처 눈을 돌리지 못했다.

 급작스런 자본주의에 엄마와 대가족을 빼앗긴 이들은 분리공포로 인해 홀로 떨어지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어 관계를 회피하고, 이로 인해 타인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도 더욱더 힘들어진다. 그래서 홀로 있어도 함께 있어도 괴로운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돌봄을 제대로 받지못해 이런 고통에 처한 개인이 가장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숨는 것이다. 타인들 앞에 나서는 데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지만 일단 숨는 것은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숨는 것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하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에서 은둔형 외톨이가 증가하고, 자살률이 OECD 국가 평균의 약 2.5배에 달하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자살 전문가들은 만약 자살자가 속내를 터놓을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자살을 실행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트라우마와 고립은 생명까지 앗아갈 정도로 위험하다. 고립은 생명을 앗아가는 문제로서만 아니라 개인의 행복권을 박탈하는 데도 심각성이 크다.

 이미 성인이 된 이들이 다시 아기로 돌아가 엄마의 젖을 먹으며 안전 기지를 찾을 수는 없다. 그래도 이처럼 마을공동체를 안전 기지로 삼고 안정감을 되찾을 수 있는 길은 있다.

 엄마에게 입은 상처를 가장 빨리 치유케 하는 이 역시 엄마다. 땅에서 넘어지면 땅을 짚고 일어서야 한다. 엄마와 공동체를 잃은 트라우마는 엄마를 대신해줄 수 있는 공동체를 통해 회복할 수 있다.

 엄마란 생물학적 마더만이 아니라 따사로운 품을 포괄한다. 엄마와 가장 유사한 품이 바로 공동체다. 인류는 실제 그렇게 마을에서 마당에서 대가족이 아이를 공동으로 길러왔다. 그 공동체가 바로 사회적 엄마. 다시 아기로 돌아갈 수는 없기 때문에 대부분은 사회적 엄마인 공동체를 통해 잃어버린 안전 기지를 되찾고 치유해야 한다.

 이제 엄마들이 아기를 두고 일터로 나가는 일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아기를 위한다며 엄마를 아기 곁에 묶어둘 수도 없다. 오히려 오랜 세월 육아 부담을 홀로 감당해야 했던 직장맘들을 위해서도, 그들의 아이를 위해서도 사회적 엄마인 마을공동체가 가장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5.자본주의는 혼삶과 각자도생을 부추긴다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는 욕망과 불안을 먹이로 살쪄간다. 제국이 아프리카와 아시아와 중동을 집어삼켜 지배할 때 쓰는 기본 전략이 디바이드 앤 룰(divide and rule)’이다. , 분열하게 해서 힘을 분산시켜 개개인을 노예처럼 부려먹는 것이다. 자본가들이 이 시대 인간을 노예화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서울을 보자. 인구는 줄어들지만 집은 갈수록 부족하다. 사람들이 집을 나가서 흩어지기에 더 많은 집이 필요하고, 집을 지어도 지어도 부족하다. 건축업자는 더 많은 집이 필요한 핵가족과 1인 가구화를 고대한다. 4명이 한 집에 살 때는 텔레비전도, 냉장고도, 세탁기도, 가스레인지도, 헤어드라이기도, 청소기도 한 대면 됐지만 혼자씩 살면 모두 네 대씩 필요하다. 기업이 어느 쪽으로 유도할지는 자명하다. 혼자 살면 불안하니, 보험이나 연금을 들게 하기도 용이하다.

 홀로 살면 생일날 딩동하고 알람을 울려주는 것도 인터넷 쇼핑몰이나 보험회사다. 외로움과 허전함을 소비로 메우게 한다. 기업들은 인간의 무의식적 습관까지 코딩화해 구매케 한다. 카드 내역을 파악해 소비 패턴을 읽어 자기보다 자기를 훨씬 더 잘 아는 기업의 마케팅을 개인이 당해내긴 어렵다. 텔레비전과 영화, 게임, 인터넷의 정보와 재밋거리는 얼마나 무궁무진한가. 이를 즐기는 동안 우리의 데이터는 낱낱이 자본가의 빅 데이터에 헌납되고, 이를 바탕으로 광고와 마케팅이 신 같은 위력으로 다시 나를 조종한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핸드폰을 손에 놓지 않고, 카드 결제를 하는 이상 일거수일투족이 자본에 파악돼 그 노예로 살아가는 걸 피하기 어렵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자유롭게 선택하고 소비하고 즐기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살아간다.

 자본에 복무하는 매스미디어의 최대 해악은 그렇게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프레임을 정해준다는 데 있다. 그래서 인생을 스타들을 모방하는 데 보내버리게 한다. 라캉의 말대로 남의 욕망을 내 욕망으로 착각하게 부추겨 소비하는 노예와 로봇을 만드는 것이다. 개인이 원했든 원치 않았던 자본가들의 욕구에 충실하게 반응한 결과 세계 최고 갑부 8명에게 전 세계 하위 50퍼센트인 36억 명이 보유한 만큼의 재산을 안겨주었다. 국제구호기구 옥스팜이 2017년 다보스포럼 개막을 앞두고 발표한 ‘99퍼센트를 위한 경제 보고서는 여왕벌이 바벨탑을 쌓는 데 죽도록 헌신하는 일벌들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마을과 공동체가 주는 최대 장점은 노예살이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자본가들의 사냥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히말라야의 산양들은 상위 포식자인 설표에게 사냥 당하지 않으려고 천 길 낭떠러지 위만 돌아다니며 생명을 유지한다. 마을이나 공동체는 벼랑 끝은커녕 가장 좋은 환경, 친절한 동지들이 모여 있는, 가장 안전하고 행복한 곳이니 피난처도 그런 피난처가 없다.

 마을공동체살이란 부익부 빈익빈과 지구 황폐화를 가속화는 소비와 환경 파괴에 맞서는 혁명에 가담하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만난 마을과 공동체 사람들은 이웃과 재밌게 어울리느라 인터넷이나 게임이나 텔레비전에 빠져 있을 틈이 없었다. 남한테 으스대려는 경쟁이 없어 부러움으로 사치를 부추기는 마케팅의 충동에 동요되지 않고, 쓸데없이 돈을 지출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혼삶이 대세가 되어가는 추세이지만, 홀로 살아가는 게 불리하다 것은 진화론자 다윈도 일찍이 간파했다. 다윈은 경쟁해서 승리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식의 적자생존을 언급한 바가 없다. 그는 서로 협력하는 것이 진화에 유리하다고 했다. 공동체 사람들은 서로 의지하고 협력해 생존을 도모하는 데서 나아가 함께 행복해진다. 마을공동체살이의 이점은 개인도 행복하게 하지만, 세상을 행복하게 하는데 기여한다는 것이다. 행복은 개인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더 큰 의의가 있다. 개인적 이기심의 감옥을 뛰쳐나와 함께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고래가 뱃속에 8킬로의 폐비닐봉지를 몽땅 담고 죽어 있다는 뉴스에도 대부분의 사람이 가엾다는 한마디로 스쳐보내지만, 공동체 사람들은 그날부터 비닐이나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단하고 일회용품 안 쓰기를 실행한다.

 

 6.함께해야 치유된다

 세계보건기구(WHO)세계질병평가’(GHE)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 세계 우울증 환자는 32200만 명이다. 세계 인구의 5퍼센트 가까이가 우울증 환자라는 이야기다. 나머지는 모두 건강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은 변화가 필요하며 치유할 때라는 신호다. 실제 공동체가 더 필요한 사람들은 현대 문명으로 인해 좌절을 겪고, 상처 입은 사람이다. 상처 입은 사람일수록 타인과 섞이는 걸 꺼려 숨어드는 게 문제다. ‘히키코모리’(은둔형 인간)가 되어 해결되는 건 없다.

 공동체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공동체의 주요 기능의 하나로 치유를 꼽는다. 함께 살아가는 것만으로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자신을 꽁꽁 닫아둔 채로는 공동체에서 살아갈 수 없기에 마음을 열고 소통하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해결된 거나 다름없다.

 마을공동체는 돌담에 비유되곤 한다. 돌담을 쌓을 때 큰 돌은 큰대로 작은 돌은 작은 대로 자기 쓰임새대로 서로 의지하며 오목볼록을 채워주며 제몫을 하듯 마을공동체도 그렇다.

 공동체 안에서 무엇이건 자기 역할과 쓰임새를 찾으면서 자기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사람이라는 열패감을 극복하고 자존감을 회복해 치유의 길을 당당히 갈 수 있다.

 공동체가 가져다주는 보다 본능적이고 본능적인 화학 작용도 있다. 공동체는 어디나 어린 아기들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평소 아기를 가까이 해본 적이 없는 싱글이라 하더라도 귀여운 아기를 보거나, 아무런 선입견 없이 다가서며 장난을 치는 아이들을 대하다 보면, 옥시토신이 생성된다. 옥시토신은 모성 본능과 부부애 등을 촉진하는 사랑의 묘약이라고 불리는 호르몬이다. ‘돌봄은 돌보아야 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을 힘들게 하는 면도 있지만 실제 돌보는 본인을 가장 행복하게 해준다. 사랑의 묘약이 흘러넘치게 해주기 때문이다. 서울 수유동 밝은누리공동체에서는 싱글들도 30~40명 가량이 함께 사는데, 이들도 아기를 포함한 공동체원들과 어울리면서 대부분 결혼과 출산을 선호하는 쪽으로 변화된다고 한다. 서울 마포 성미산의 소행주나 도봉동 은혜공동체에서 만나본 청소년도 나중에 크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이런 공동체에서 키우고 싶다는 소망을 나타냈다.

 공동체가 치유력을 지니는 것은 사랑이 많은 이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공동체 자체가 소통하고 공감하고 배려하는 분위기를 만들어가기 때문일 수도 있다. 특히 서로 돌봄이 옥시토신을 많이 생성하게 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여럿이 모여 서로를 응원하면 고가의 비용을 내야만 할 수 있는 정신과 상담이나 집단 상담과 같은 치유 효과를 체험할 수도 있다. 파주 문발동은 공동체가 아니라 마을 내에서 다양한 동아리가 생겨나 활기 넘치는 공동체 마을이 되어가는 곳인데, 합창 한 번 해본 적이 없는 마을 사람들이 남녀 혼성 합창단 파노라마를 꾸려 주말마다 노래를 부르면서 느끼는 치유력이 크다. 이 마을엔 여성들만 하는 천불퀸이란 모임도 있다. 이 모임은 여성들 십여 명이 아이들을 재워놓고 밤 10시 이후 만나 새벽 3시쯤까지 얘기를 나눈다. 보통 생일이 된 사람을 천불퀸으로 모셔, 그가 최근에, 혹은 지금까지 사는 동안 천불이 난속내를 꺼내놓으면, 모두 그에게 공감하고 지지하고 응원하고 조언도 해준다. 그러면 십년 묵은 체증이 풀리듯 켜켜이 쌓아온 화가 녹는 체험을 한다. 마음속에 맺힌 원한을 풀어주는 현대판 해원굿인 셈이다.

 이 마을에 또 하나 흥미로운 모임이 영씨네마. 영씨네마는 주말 밤 8시 이후 2시간가량 각자 자유롭고 편한 자세로 영화를 본 뒤에 포도주를 한 잔씩 마시면서 얘기를 나눈다. 사랑 영화를 보고는 자기 첫사랑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사랑으로 입었던 상처를 고백하기도 한다. 지난번엔 가족 영화의 고전으로 꼽히는 <길버트그레이프>를 보았는데, 영화가 끝난 뒤 한 분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대학 시절 등록금도 내지 못하고 학비를 벌기 위해 알바를 하면서 친구 집을 전전해 숙식을 해결하고 겨우 대학을 다녔던 삶을 고백했다. 그는 결혼을 해서도 늙은 부모와 아이들까지 모두 책임지며 살아온 가장으로서 고단한 삶을 고백해 함께 눈시울을 적셨다. 함께 울어주는 공명만큼 한을 풀어주는 것도 없다. 평생 혼자 짐을 지고 사느라 힘들었던 무거운 짐이 동조의 눈물 속에서 녹아내리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공동체는 내적 상처나 감정적 앙금을 해소하는 데 적극적이다. 관계에 문제가 있을 때 작은 균열이 결국 공동체의 분열을 야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폭력 대화법 같은 배려의 대화는 기본이다.

 요즘처럼 변화가 급속한 시대엔 어디 가나 세대 간 불통이 큰 문제다. 한마디로 코드가 다를 뿐 아니라 같은 한국어도 세대가 다르면 통하지 않을 때가 많다. 또래끼리 모이는 동아리와 달리 마을에선 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세대가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교감과 소통, 조율의 문제가 더 필요하다. 여러 세대가 함께 지내다 보면 정서적 밑바탕이 다르기 때문에 이해하는 속도에도 차이가 있어 오해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을공동체들은 소통을 위한 기법들을 배우고 실행한다.

 서울 도봉동 은혜공동체의 경우 관계에서 터져 나오는 분노나 갈등을 해결하는 데 소그룹 토론과 심리상담을 활용한다.

박민수 대표는 상담전문가인 아내의 도움으로 심리 상담을 공부하며 일대일 상담에 집중했다. 한 명 한 명의 상처까지 껴안느라 건강이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심리상담은 놀라운 치유력을 보여주었다. 또 일부 공동체원들 간의 갈등까지도 해소돼 소통되는 변화를 가져왔다.

 또 은혜공동체에서는 누구에게나 가톨릭의 대부와 같은 목자가 있어 문제가 있을 때마다 목자와 상담을 한다. 아이들도 부모 외에 멘토가 정해져 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다. 속의 말까지 터놓고 얘기하는 시스템이 있어 심리적인 걸림돌이 해소되다 보니, 공동체원들은 시간적으로는 좀 더 많이, 공간적으로는 좀 더 가까이 있고 싶어 한다.

 함께하는 것은 변화를 촉진한다. 감자와 고구마 당근을 씻을 때 한 바가지에 넣고 씻으면 서로 부딪치며 빨리 씻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게 씻기는 과정은 좀 더 세련되고 원만해지는 과정이자 아픔의 여정이기도 하다. 부딪침, 즉 갈등을 무조건 미봉하려는 것은 성장에 좋은 방식이 아니다. 공동체 밖에서 이웃 간에나 친구 모임, 직장에서도 의례적인 인사치레를 하며 문제는 그냥 덮고 가고자 한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는 식이다. 괜히 건드려봐야 좋을 게 없다는 경험칙이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속 깊은 애기를 하는 게 이상한 하지않는 의례적인 사이에서는 그런 게 일상적이다. 그러나 공동체엔 늘 함께 살아가야 하기에 앙금을 미봉해버리면 더 큰 사달이 날 수 있다. 보기 싫으면 안 봐도 되는 이들이 아니다. 함께 잘 살아보려고 작정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따라서 갈등을 성숙의 여정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속마음을 풀어내는 대화를 통해 상대가 무엇을 아파하고 무엇에 불안해하는지 충분히 듣지 않고, 그냥 덮고 넘어가면 피상적인 관계 그 이상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혈육도 마찬가지다. 아픔까지 한번 얽혀서 껴안아본 사이가 아니면, 사소한 것에 빈정이 상하고, 불편해질 수 있다. 한 번이라도 깊게 대화하고 상대를 깊게 이해하고 나면 오랫동안 그토록 못마땅하게만 보였던 상대의 행동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가령 늘 만나는 사람 중에 심한 사시가 있다고 하자. 그는 대화 중에도 엉뚱한 곳을 보는 것 같다. 눈동자가 엉뚱한 곳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상태를 정확히 모른다면 말을 할 때마다 저 사람은 내가 이야기하면 왜 내게 집중하지 않고 늘 딴 데를 쳐다보지라며 불쾌할 것이다. 갈등과 오해는 내 진심을 알릴 기회이자 상대의 진면목을 진심을 알 수 있는 기회이다. 상대가 진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모든 갈등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네가 진짜 아파하는 것은 무엇이고, 네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뭐냐를 알아가는 장이라는 점이다.

 갈등은 진정으로 친밀해지기 위해 서로 잘 소통하며 장애물을 치우는 과정이나 다름없다. 장애물이 있음에도 없다고 하며 그냥 살자고 하는 게 아니라 둘이 합심해서 치우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문제가 있음에도 대충 참고 사는 게 아니라 갈등을 거쳐 해결해가며 친밀해질 필요가 있다. 이렇게 나아갈 때 의례적인 모임에서 나누는 피상적인 대화와는 깊이가 다른 공감과 위로와 심리적 보살핌이 되면서 행복감을 충만하게 해준다.

 

7.개인과 사회 문제의 해법이 마을공동체에 있다

 마을공동체는 주거, 비혼, 출산, 육아, 교육 등 우리 사회 가장 골치 아픈 문제와 직결돼 있다. 간디는 평생 마을공동체에서만 살았다. 인도의 독립보다 마을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간디는 마을공동체가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고 했다. 마을공동체는 국가적 과제 난제들을 해결에도 큰 영감을 줄 것이다. 누군가는 고독사도 모든 것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시스템과 복지는 강화될수록 좋지만, 모든 것을 국가가 해결하기도 어렵거니와 그에 따른 엄청난 예산과 세금 부담을 감당해내기도 어렵다. 일차적으로 공동체가 서로 의지하며 돌보는 사회야말로 가장 건강한 사회라 할 것이다. 행정 비용과 복지 예산 10억으로도 만들기 어려운 행복한 마을을 마을 사람들의 자발적인 협력으로 거의 돈을 들이지 않고도 만들어내는 게 마을공동체의 신비다.

 두렵고 험난한 세상의 모든 파고를 홀로 넘어야 하는 것만큼 큰 재난은 없다. 개인을 옥죄는 게 자본만은 아니다. 누구나 살면서 몇 번쯤은 사기를 당할 수도 있고, 억울한 일을 당할 수도,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 이럴 때 하소연하고, 물어보고 도움 받을 사람 한명 없는 세상이 지옥이 아니겠는가. 힘든 일이 있을 때 함께 걱정하고 내 일처럼 나서주고 도와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 즉 힘겨운 세상에서 내 편인 공동체가 있다는 것이 천국이고 극락이 아니겠는가.

 진짜 재난은 쓰나미나 지진이 아니라 몸이 아플 때, 혼자 죽어갈 때조차 모든 고통을 온전히 홀로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 목숨을 다하는 순간 누군가 곁에 있고, 함께 아파하는 이가 있다는 것만큼 큰 위로가 있겠는가. 인간은 누구나 약함이 있다. 그리고 늘 만생명과 만물에 의존해서 숨쉬며 먹고 살아가고 있다. 홀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서로 의지하고 돌봐주고 사랑해주고 지켜주는 공동체적 삶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필수적인 것이다.

 

요즘 밥값하고 사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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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우공양2.jpg» 절에서 발우공양하는 모습

 

종교계가 때론 일반인들보다 더 추한 꼴을 보이기도 해 동네북이 되는게 요즘 세상이지만, 그래도 가끔 청량한 바람 한줄기를 느끼게 해주는 종교인들이 있다. 일반인들은 생소한 종교계와 종교인들의 모습을 통해 고단한 사람의 바다, 그 너머의 세계를 엿본다. 일간지 종교전문기자로 활동하는 김갑식 기자의 신간 <요즘, 밥값하고 사십니까?>(PDF 펴냄)가 그런 책이다.

 

 밥값-.jpg요즘 밥값하고 사십니까?’란 공양주에 대한 이야기 가운데 나온 말이다. 공양주란 절집에서 음식을 만들어주는 분을 말한다. ‘공양주 보살가운데는 생계도 생계지만, 수행 삼아 그 일을 하는 분들도 적지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은 절집에서 공양주 보살을 구하기 어려워 불교계 신문에 공양주 보살을 구합니다란 구인광고가 눈에 뜨인다. 저자는 그 절집의 공양이야기를 전하면서 식사 전에 올리는 공양게를 듣는 순간 어느 공양주 보살로부터 밥값이나 제대로 하고 있느냐는 불호령을 듣는듯했다고 한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허물을 모두 버리고/ 욕심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기독교로 치면 일종의 식사 전 기도인 이 공양게를 들으며 무심코 수저를 들다가 죽비를 맞은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난 것이 정호승 시인의 시 <밥값>이란다.

 어머니/아무래도 제가 지옥에 한번 다녀오겠습니다/아무리 멀어도/아침에 출근하듯이 갔다가/ 저녁에 퇴근하듯이 다녀오겠습니다//지옥도 사람 사는 곳이겠지요/지금이라도 밥값을 하러 지옥에 가면/비로소 제가 인간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가톨릭 이야기 가운데는 94세를 일기로 선종한 이춘선씨의 사연이 인상적이다. 그의 7남녀 중 아들 넷이 사제가 됐고, 유일한 딸도 수녀로 수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고인은 20년 전, 막 사제품을 받고 강원 홍천본당으로 떠나는 막내아들 신부에게 작은 보따리를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풀어보라며 주었다고 한다. 그 보따리에는 막내아들이 세 살 때 입었던 저고리가 들어있다고 한다. 작은 저고리들은 성직자가의 권위가 아나라 자신이 이처럼 작은 존재였음을 기억하고 살라는 당부였다. 그 어머니는 생전 자녀들에게 수백 통의 편지를 썼다고 한다. 또 장례미사에 참석한 신자들이 너무 슬퍼하지않도록 두 번 웃겨 드리라는 당부를 남겼다. 그래서 막내아들 신부는 미사 중 갑자기 선글라스를 껴 참석자들에게 잠깐의 웃음을 줬다고 한다.

 

 93살 원로목사의 사부곡은 눈물겹다. 조부 때부터 아들까지 4대 목회의 신앙 일가를 이룬 림인식 노량진교회 목사는 20년 동안 생활비를 가져다주지않은 무능한 남편이었다고 한다. 가족 생일은 예수님 생일인 크리스마스에 공동생일로 대신하고, 교인들에게 폐 끼치는 게 싫다며 아들을을 연고도 없는 곳에서 결혼시킨 고집쟁이였다고 한다. 세상 잣대로 볼 때 무능한 고집쟁이 남편은 말년 당뇨병과 파킨슨병을 앓은 부인의 병시중을 도맡았고, 2012년 아내를 떠나보내는 장례식 예배에서 당신은 나에게 특별한 천사였소라고 고백했다고 한다.

 저자는 몸 따로, 마음 따로가 아니라 조화된 삶의 길을 전하고싶었다면서 사람들의 뫔길을 시원하게 뚫어줄 수 있는 그런 종교의 진정한 모습을 기다려본다고 썼다.

 

사는게 아닌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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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다'는 것은 드문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지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오스카 와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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