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사랑할 것,
나약하고 초라하고 불쌍한 인간도 사랑할 것,
그리고 그들을 심판하지 말 것.
-생텍쥐페리
인간을 사랑할 것,
나약하고 초라하고 불쌍한 인간도 사랑할 것,
그리고 그들을 심판하지 말 것.
-생텍쥐페리
자식 때문에 이혼 못한다는 말, 핑계일 수도
남편 없는 삶에 지친 40대 주부 “한심한 인간 용서할 수 없어”
Q. 가식적인 삶에 지치네요. 제 나이 45살, 누가 봐도 성격 좋고 애들 잘 키우고 화려하진 않지만 잘 살고 있어 부러움을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저처럼 우환 덩어리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실제 삶은 최악입니다. 굉장히 낙천적인 성격이라 여태 버티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결혼 뒤 남편이 돈을 벌어 온 건 처음 3개월, 예상치 못한 일에 엄청 싸우기만 하고, 거기다가 남편은 돈은 못 벌면서 교회 골수 분자였습니다. 돈은 포기해도 주말에 교회 가느라 가족과 함께 못하는 건 정말 최악이었어요.
사이비 교회. 그후로도 회사 취직을 해도 예배 가느라 야근하는 회사는 들어가지도 않고, 가족을 먹여 살리려는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으며 여태 살고 있습니다. 1년 살고 2년 집 나가고, 1년 살고 집 나가고, 용서하고 받아 주면 또 싸우고 나가기를 반복했습니다. 저런 한심한 인간을 이제는 애들 아빠라는 이름으로도 용서할 수가 없어요. 미움도 사치, 싸움도 사치, 이젠 싸우기도 지쳐서 무조건 입 다물고 살고 있네요. 말만 하면 닥쳐 꺼져….
그런 사람이랑 살면서 친정과도 아예 연을 끊고 정말 혼자 발버둥치며 큰애가 중학교, 작은애가 초등학교를 다니도록 이렇게 잘 키웠습니다. 그동안도 제가 티를 내지 않아 아이들은 저런 애비인지 모르고 자랐습니다. 남편이 없는 세월, 파견 갔다 출장 갔다 얘기하며 버텼죠.
제가 이렇게 애들 키우며 딴짓 한 번 안 하고 성실하게 사는 거 주위 사람들이 다 아는데, 왜 나를 욕하는지…. 애 잘 키워 줘서 고맙다는 얘기는 이젠 바라지도 않네요. 어쩌다가 돈 50만 원 주며 줄 거 다 준 양 큰소리치고, 50만 원도 아쉬워서 거절하지 않고 받아 삼키는 제 상황도 싫습니다.
애들에게 이혼 가정이라는 굴레를 주기 싫어 여태 호적으로만 가족으로 버티고 살고 있는데, 이혼을 해야 할지 걱정입니다. 다 잘라내고 애들 친권 뺏고 홀가분하게 살고 싶은데, 지금 제 주위 사람들이 제 진실을 알면 배신감에 저보다 먼저 쓰러질지도 모르겠어요. 이목이 두려워 이혼도 못하고 남들은 제 남편이 돈 잘 벌어 제가 엄청 속 편하게 사는 팔자 좋은 여자인지 알고 있으니 그 허울 벗는 게 두렵기만 합니다. 도와주세요.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이렇게라도 소통하고 싶어 용기를 냈습니다. 로라
A.자신의 삶을 ‘가식적인 삶’이라고 이야기하시니 일종의 ‘자기 고발’ 같은 느낌입니다. 겉으로는 화목한 가정의 안주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내적으로는 오랜 기간 남편 없는 가정을 홀로 지키며 사셨군요.
이미지를 관리하느라 개인의 삶을 희생하셨으니 정말 괴로우셨을 겁니다. 멋진 이미지를 유지하느라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많이 하셨겠지요. 자신의 감정도 감추셨을 거고요. 남편 때문에 불행한 날이 무척 많으셨을 텐데 그 고통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못하고 숨죽여 울면서, 이러지 말아야 한다고 자신을 다그치셨겠지요. 그러니 사람들에게 위로 받는 경험도 못하셨을 겁니다. 자신의 본성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허용하지 못하는 것, 그것이 바로 개인적 희생입니다.
포장된 이미지와 현실의 차이가 크다는 것도 굉장히 심각한 심리적 문제들을 만들어냅니다. 괴리가 클수록 자아는 그 어느 곳에도 안착하지 못하고 공허한 방황을 계속하지요. 멋진 이미지를 고수할수록 그걸 비난하는 목소리도 커집니다. 넌 거짓말쟁이야, 위선자야라고 스스로를 비난하면서 멋진 이미지와 반대되는 비참한 감정과 생각을 내면에 키우게 되는 겁니다.
참으로 희한하게도 우리가 무슨 행동을 하든 마음은 그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우리가 ‘멋진 사람’으로 보이려고 애쓸수록 그만큼의 공허가 내면으로 밀려들어와 정신적 배고픔을 호소합니다. 이것이 바로 정신의 보상 작용입니다. 멋진 이미지라고 하는 한쪽 극단과 동일시할수록 균형을 잡기 위해 반대편의 부정적 특성이 강화되는 것이지요.
다행히도 로라 님은 자신의 삶이 가식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인정하셨네요. 당신의 용기에 격려와 지지의 박수를 보냅니다. 사실 당신만 그런 게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쿨한 척 멋진 척하려고 애쓰고 있으며, 가장 괴리가 없어야 할 ‘내추럴하다’는 말도 이제는 연출해야 하는 시대니까요. 그러니 ‘유독 나만 최악’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조금씩 소탈하게 자신을 드러내 보세요.
타인의 이목이 이혼의 가장 큰 방해물이라고 생각하신다고요? 그런데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편 잘 만나 근심 걱정 없는, 아이 때문에 속 썩어 보지 않은 현모양처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시기와 질투 때문이겠지만 더 중요하게는 그림자 없는 사람을 매력적으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남들이 보기에는 당신이 그런 사람일 겁니다. 부럽다고 칭찬은 해 주지만 깊게 교류하고 싶지 않은 존재 말이지요. 이제부터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진짜 친구들과 만나세요.
그리고 이혼에 대한 편견을 내려놓으세요. 추측건대 당신은 단란한 가정을 가장 큰 가치로 여기고, 이혼 가정에 대해 유난히 짙은 색안경을 끼고 계셨던 거 같습니다. 이혼하는 사람들은 아주 큰 문제가 있는 사람들일 거야. 이혼은 인생의 파탄이나 마찬가지야. 굉장히 수치스러운 거야. 나는 절대 이혼하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을 하셨다면 정작 그 일이 자신에게 닥쳤을 때 해결할 힘이 없습니다. 너무 당황해서 문제를 성찰할 겨를이 없을 뿐 아니라 상의하고 자문을 구할 사람들도 주위에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보는 우리의 편견이 어느 순간 우리 자신의 족쇄가 되는 것이지요.
이혼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시고, 부부 관계를 점검해 보세요. 먼저 자신이 진짜 이혼을 원하는지 자신의 욕구부터 살펴보세요. 자식 때문에, 남의 이목 때문에 이혼하지 못한다는 말은 어쩌면 핑계일 수도 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남편이 가정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면서요.
만약 그런 마음이 있다면 인정하시고 부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해 보세요. 저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시기를 권합니다. 오랜 시간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던 부부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노력해 본 뒤 결정을 내리신다면 아마 어떤 미련도 남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성찰이라는 선물을 덤으로 받게 되실 겁니다.
» 영화 <바람의 파이터>의 한장면
제자는 오랜 수행 끝에 드디어 검은 띠를 받기 위해 스승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 동안 각고의 노력을 해온 결과였다. 그런데 스승이 제자를 보며 말했다. "너는 검은 띠를 수여하기 전에 한 가지 시험이 남아 있다.” 제자는 스승과 직접 대련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마지막 시험은 스승의 질문에 답하는 것이었다. “너는 가장 중요한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검은 띠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냐?” 제자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제 수련 과정의 끝이며, 제가 오랫동안 노력한 결과로 주어지는 보상입니다.” 스승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는 아직 검은 띠를 받을 준비가 안 되어 있다. 1년 후에 다시 오너라.”
1년 후 제자는 다시 스승 앞에 무릎을 꿇고 검은 띠 수여를 기다렸다. 그러자 스승은 또 질문을 했다. “검은 띠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냐?” 제자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대답했다. “뛰어남의 상징이며, 우리 무술에 있어서 최고의 성취를 의미합니다.” 그러자 이번에도 만족스런 대답을 얻지 못한 스승은 또 다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는 아직도 검은 띠를 받을 준비가 안 되어 있다. 1년 후에 다시 오너라.” 1년 후 제자는 다시 스승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번에도 스승은 또 한번 묻습니다.
“검은 띠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냐?” 제자는 겸손히 말했다. “검은 띠는 시작을 의미합니다. 자기 극복, 꾸준한 노력, 보다 높은 수준의 추구라는 영원한 여행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스승은 그 대답에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래 맞다. 이제 너는 검은 띠를 받고 너의 노력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구나."
+
완성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노력의 결과로부터 얻는 것을 기초로 살아갑니다. 그러기에 나 또한 그 바턴을 이어 다른 이들에게 유익한 것을 남겨야 합니다. 우리는 덕의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입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 수는 없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아 덕을 베푼 이들에게 함께 손을 잡아야 합니다. 손을 뿌리치는 사람들,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는 사람들, 손을 휘저으며 손사래를 치는 사람들, 그럼에도 그들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고해성사에 대하여 비판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왜 사람이 사람에게 죄를 고백하고 사죄를 받아야 하느냐는 것인데. 신학적인 설명은 다른 분들이 이미 수없이 해서 저는 고해성사의 심리치유적인 면을 논할까 합니다.
1. 확인심리
사람들은 죄에 대한 보속을 하고 나면 용서 받았다는 확인을 받고 싶어 합니다. 혼자 기도하고 혼자 용서해 주시겠지 하는 것은 나중에는 자기합리화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자책감에 빠질 위험이 큽니다. 정신의학자인 칼 매닝거는 정신병원 환자들이 자기가 용서 받았다는 확신이 든다면 절반은 퇴원할 거라 했습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해주는 말입니다.
2. 털어놓기
마음 안의 응어리진 스토리는 그냥 두면 심리적 체증에 걸립니다. 체하면 토하듯이 마음 안 차마 말 못한 이야기들도 말로 토해 내야 합니다. 그래서 고해사제는 비밀을 지켜야하는 것입니다.
3. 자기점검
고해성사를 보기 전 준비시간에 자기 인생의 궤도가 제대로 가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고해성사는 가톨릭교회가 가진 심리치유 시스템 중에서 아주 탁월한 효능을 갖는 것이기에 사제들은 늘 고해성사를 해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행은 노력하는 겁니다.
생각을 따라가지 않으려고
믿지 않으려고 하는 노력입니다.
우리는 못된 생각을 많이 해요.
생각들이 우리 아니에요.
우리가 우리의 생각이라면 우리는 정말 못되었어요.
생각을 믿고 따라가는 것이 업을 만들고 모든 고통의 원인입니다.
생각에 중요성을 두지 않고
생각을 믿지 않고
바른 말과 행동을 하는 겁니다.
우리는 무엇이 바른 말이고 행동인지 직각적으로 알고 있어요.
자신을 믿어보세요. 자신감을 가지면 내면의 무한한 지혜를 활용할 수 있어요.
좋지 않은 생각은 어쩔 수 없이 일어나요. 좋은 생각이 일어나게 하려면 오랜 수행이 필요해요.
하지만 좋은 말과 행동은 바로 할 수 있어요.
우리는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이에요. 그렇게 말하고 행하려고 노력하면 되요.
» 부르더호프공동체중 하나인 미국 메이플리지 마을에서 말기암 환자인 유치원 교사 이바가 유치원 아이들과 크리스마스 연극을 하고있다.
일주일전크리스마스트리농장을관리하는형제대니엘이들뜬목소리로“올해는우리가심은크리스마스트리로성탄절장식을할수있게되었어요.”라며공동식사시간에광고를하자모두가와 !하며즐겁게함성을질렸습니다. 우리모두가오랫동안기다려온기쁜소식이였습니다.
7년전손바닥만한작은나무를구해다그동안여러형제들의땀과수고로 크리스마스트리를 키웠습니다. 처음어느누구도나무심는일을잘몰랐습니다. 하지만여러해가지나가면서조금씩나무심는일을알아가기시작했지요. 저도 7년동안이일을돕다보니이제는크리스마스트리전문가가다된기분입니다.
우리공동체에서는매년마다이웃이나펜실베니아에서크리스마스트리를주문을했습니다. 하지만올해부터우리가직접기른나무를가족들이함께나무를선택하고톱으로잘라집까지운반하는가족프로젝트가되어우리에게새로운행복을가져다주는크리스마스이벤트가되었습니다.
» 크리스마스 트리 농장
드디어토요일그랜드오픈식날입니다. 농장문을여는시간은오후한시였습니다. 우리가족은조금늦게갔더니이미많은이들이와서나무를고르고있었습니다. 트리농장문에다가가자흥겨운캐롤송이울려펴지고, 사이먼과지니부부는가을에수확해놓은밤을열심히바베큐그릴에굽고있었습니다. 그모습을보니 얼음이꽁꽁얼던추운겨울날어머니께서 방안화로에서구워주시던군밤생각도나고, 매서운바람이쌩쌩불어추운거리를벙어리장갑낀손으로귀를막으며걸어가다보면어디선가군밤장수의외침이들려오던생각도나 나무고르는것을제쳐두었습니다. 그러고는 인심팍팍쓰며맛난군밤을공짜로나누어주는군밤장수주위에몰려있던(사실이곳은모든것이공짜?입니다.^^) 어른들과아이들사이를비집고들어가 구운밤을한끼식사를하듯엄청나게먹었습니다.
군밤에눈길을판순간에이미많은가족들은저마다좋아보이는트리를열심히자르고, 어린새 나무를심기위해뿌리를삽이나괭이로파내고있었습니다. 같은가족이라도 각자 취향이달라이나무도살펴보고저나무도살펴보며모두가마음에드는나무를선택해야하는일이여간쉽지가않아보입니다. 나이든할아버지, 할머니부부들이 골라놓은나무들을중.고등학생들이자르고뿌리도파내고집까지배달해주는 모습에마음이흐뭇해옵니다.
우리가족도그많은나무중에가장폼난놈을골라톱으로자르고유빈이는친구의도움으로남은뿌리를파냈습니다. 자른나무를 손수레에실어집으로가지고와거실한쪽에세웠습니다. 거실전체에그윽한전나무향이퍼져아로마향을맡듯내마음도평안해지고느긋하게쉬는것같았습니다. 이제세상에서하나뿐인근사한성탄절트리에아내가장식할일만남았습니다.
아내는하빈이가블랙월넛나무로만든목동, 천사, 동방박사, 아기예수등의장신구와 유빈이가도토리를말려빨갛게칠한작은종들과뾰족한나무열매로만든별들을걸었습니다. 올해는특별히오렌지를말려크리스마스전등위에걸쳐 놓으니오렌지빛스테인드글라스같이은은한빛이비치는것이상큼한맛이나는것같습니다. 동그랗게엮은포도가지위에크리스마스나무잎과솔잎으로감싸리스를만들어조그맣고빨간사과도달고, 부패되지않도록소금과계피를엄청넣어구운별모양과자도달고, 하빈이의나무장신구도달아놓아천장에걸어놓으니집안가득아늑하고포근한것이 제마음도따뜻해지는것같습니다.
» 유빈이가 그린 그림
다음날주일은 Advent(대강절)이시작되는첫번째날입니다. Advent는아기예수님이오시기전 4주부터시작하게됩니다. 매주 Advent 마다 하나씩초를더해크리스마스전주일에는 4개의초를밝혀아기예수의오심을축하합니다. 이곳에서는첫번째 Advent주일이예수님의탄생을알리는신호탄같은날이기때문에주일날아침 7시부터 몇몇브라스밴드형제들이트럼펫과트럼본등의악기로아기예수님맞을준비하라고캐롤송을연주합니다.
그소리를듣고하나둘씩공동체가함께식사하는식당앞으로모두모여들어‘Happy Advent’라며서로악수하며인사합니다. 8시식당문이열리면모두함께들어가 빨간초와크리스마스나무잎으로멋있게장식한테이블에각사람의이름이이쁘게쓰여진이름카드를찾아가앉습니다. 식당벽에는유빈이네반아이들이크리스마스를상징하는그림들을비왁스를이용해염색한천을걸어놓았습니다. 유빈이는작은아기예수의구유에큰별이하늘로부터내려오는것을멋지게염색했네요. 드디어 Advent calendar(대강절달력)을여는시간입니다. Advent calendar는예수님오시기전 까지 25일간을달력으로만들어하루씩여는것인데매일어린아이들이달력상자를열면천사와목동등의크리스마스를상징하는것이들어있습니다.
금년에는청년들이하늘의문이열리고야곱의계단이예수님이태어날마굿간으로연결되는걸설치했습니다. 한어린아이가나와달력상자를열자천사가나와야곱의계단맨위에올려놓았습니다. 성탄절엔마굿간에마리와요셉, 그리고아기예수가놓여질것을상상해봅니다.
» 대강절 달력
공동체식구들이아침식사를하고나자샵에서함께일하는존과미리암이나와초등학교 2학년아이들에게성경을나누어주었습니다. 얼마전존의아내미리암이계속몸이않좋아병원에서치료를받다가심장에희귀하게생기는암에걸렸다는것을발견했습니다. 문제는심장에있는암을치료하다가다른기관들을크게손상시킬수있기에의학으로는더이상치료방법이없다는결론을내렸습니다. 미리암은제아내하고도몇년을같은일터에서일하며늘친엄마같이공동체많은자매들을돌보아왔기에우리모두에게큰충격이었습니다.
존과미리암이아프기전에는자녀들은전세계공동체에흩어져있다가지금은자녀들모두가미리암곁에있습니다. 미리암은얼마남지않은삶을가족들과형제들과보내면서하나님나라를준비하고있습니다. 하루하루아니매순간순간을소중하게여기면서살고있는미리암은우리모두에게격려와도전을줍니다.
“저는지금까지형제자매로여러분과함께살면서오늘같이더불어사는삶이이처럼소중하게느껴본적이없어요. 우리는가끔이소중함을잊거나형제자매를진정으로존중하지않고있어요. 우리가더마음을열어형제자매를한몸으로받아드리고진실하게사랑하면우리가사는이곳을더행복한세상을만들거예요. 난여러분들을더사랑하고기쁘게하나님나라를향해가고싶어요. ”
미리암이암에걸린사실을안얼마후우리는유치원생부터어른들모두가참여하는예배가있었습니다. 예배실한가운데나무농장에서잘라온크리스마스트리위에는초들이타고있었습니다. 유치원생아이들이천사의옷을입고크리스마스트리주위에앉아있었습니다. 다함께성탄절노래를부르고나서뜻밖의이야기를듣게되었습니다.
» 아이들의 크리스마스 연극
유치원선생님인싱글자매이바가암이온몸에펴지고있어서언제까지살지모르겠다는내용이였습니다. 이바의나이는겨우 50살을넘겼습니다. 미리암의소식에서채헤어나오지도못했는데이바의소식은우리에게큰충격과아픔으로다가왔습니다. 하나님께서우리에게무엇인가말씀하시길원하시는것같았습니다.
자신이 가르치는 유치원 아이들과같이앉아있던이바는밝게빛나고있는트리앞에서서“나는내생명이주어지는날까지가능하면유치원 아이들과함께하고싶어요. 크리스마스가다가오고있어요. 그누구도크리스마스를막을수없어요.”라고고백을하며아이들과함께성탄노래를불렀습니다.
얼마후이바는아이들과함께성탄연극을준비했습니다. 온갖동물들이예수님이태어나신마굿간을찾아가는이야기로 천사가지키는한동굴을지나야하는데그동굴은너무낮아자신을낮추어야만통과할수있어교만하던낙타도자신이가진모든자랑거리를버리고 몸을낮추고무릎을끓고통과해아기예수님께나아가경배하게됩니다. 이바는아이들을안으면가슴에통증이심해아이들을더이상안아줄수없어안타까워했지만연극내내함께했습니다.
» 말기암환자인 미리암과 남편 존
미리암과이바는우리의마음을어린아이같이부드럽게하고낮추어아기예수께나오라는하나님의살아있는메세지였습니다.
이두자매의삶은우리가자주부르는성탄노래‘베들레헴까지는얼마나먼가How far is it to Bethlehem’을연상케합니다.
베들레헴까지는얼마나먼가
그리멀지않지
별이비치는마굿간을찾으러갈까
어린아기를볼수있을까
그안에있을까
나무빗장을열면들어가게될까
마굿간에있는황소와당나귀와양을쓰다듬어도될까
마굿간동물들처럼아기예수가잠든것을엿볼수있을까
아주조그마한손을만진다면아기가깰까
아기를만나기위해우리가이렇게먼길을온걸을알까
동방박사들은귀중한선물을가지고있지만우린아무것도없네
작은미소와작은눈물이우리가가져온전부지
모든지친아이들을위해마리아는울어야하네
여기 짚으로만든아기침대에
잘자라 아이들아잘자라
요람에 있는아기같이하나님이어머니품속에있네
마음속갈망을이룬자들이자듯
잘자라
Happy Advent!
티베트의 한 노승이 한국인 불자들을 울렸다. 삼동린포체(79)가 나란다불교학술원 주최로 지난 12~16일 4박5일간 경북 경주 보문단지 황룡원에서 연 보리도차제실참대법회에서였다. ‘보리도차제’란 달라이라마가 속한 겔룩파의 개조인 총카파(1357 ~ 1419)가 ‘깨달음의 단계’에 대해 저술한 것으로, 삼동린포체는 총카파가 깨달음을 얻은 뒤 지은 ‘약송게’(깨달음의 노래)를 교재로 설법했다.
삼동린포체는 티베트가 중국의 침공으로 나라를 잃자 1951년 12세때 달라이라마와 함께 인도로 망명했다. 그는 인도 히말라야 다람살라에 있는 티베트망명정부에서 1991년부터 국회의장을 지내고, 2001년부터 10년간 선출직 총리를 지냈다. 그는 최고의 불교학자이면서도 티베트망명정부를 이끌면서 삼권분립을 이뤄내는등 이판사판(수행과 행정)를 겸비한 고승으로 꼽힌다. 티베트 카규파의 수장인 카르마파는 “삼동린포체는 달라이라마가 의지하는 유일한 존재임에 두말 할 나위가 없다”고 말할만큼 달라이라마의 절대적 신임과 티베트불자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두 차례 방한한 적이 있지만 직접 강의프로그램을 운영하기는 처음이다. 고령인데다 법회 스케줄상 시간을 내기 어려운 그가 이런 가르침의 기회를 해외에서 갖는 것은 드문일이다. 그런데 달라이라마의 통역자였던 박은정 나란다불교학술원장이 여러차례 편지를 보내 한국불자들에게 직접 가르침을 청해줄 것을 요청함에 따라 12~20일 방한했다.
숙식을 하면서 진행된 법회엔 30여명의 승려를 비롯한 140여명의 불자들이 참여했다. 승려들과 불자들 모두 어지간한 불교수행들은 섭렵해본 참석자들은 오전 오후 2차례 법문에 집중했다. 삼동린포체는 여느 고승들과 달리 농담도 웃음기도 없었다. 철저히 오후불식(정오 이후엔 일체의 곡기를 먹지않음)과 계율을 철저히 지키면서도 개인적으로 아무것도 지니지않은 무소유적 삶을 살아온 이의 엄정함 그대로였다.
“인간의 몸은 여의주보다 뛰어나다. 여의주에 빌면 만사가 뜻대로 된다고 하지만, 여의주가 삼악도(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지않고 해탈을 이루고 붓다게 되게 할 수는 없지만, 인간의 몸은 이게 가능하다.”
그의 냉엄함이 더해져 법문은 심층으로 파고들었다. 그의 설법은 곧 이타심을 격발시키는데 집중됐다.
“보살은 중생이 고통에 시달리는 것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이를 해결하겠다는 책임의식을 가지고 이타행(타인을 돕는 행동)을 한다.”
그는 “이타를 목적으로 하지않고 특별한 경지를 달성하려는 생각으로 부처를 이루고자하는 마음은 보리심이 아니다”며 “중생을 도울 완전한 역량을 갖추기 위해 그 수단으로 성불이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동린포체는 또 용수보살의 자타상환법(自他相換法)과 무착보살의 칠종인과법(七種因果法)을 세세히 설명하며 타인에 대한 이타행을 불러일으켰다. ‘자타상환법’은 나와 남을 바꿔보는 것이다. ‘칠종인과법’은 수많은 생을 윤회하는 동안 모든 중생이 전생에 한 번 이상은 나의 어머니였던 적이 있음을 생각해 자비심을 발하는 것이다.
4박5일의 법문이 끝나자 환희심이 젖은 대중들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언제 이런 법(진리)를 또 들을 수 있겠느냐”며 “부디 내년에도 다시 와 법문을 해달라”며 눈물로 청했다. 그러자 린포체는 엷은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 법회기간 중 오후 삼동린포체의 법문이 끝난 뒤에는 라다크불교대학의 콘촉 왕두 총장이 불자들의 질문에 상세히 답했다. 오른쪽은 이를 통역하고있는 박은정 나란다불교학술원 원장
다음은 17일 <한겨레>와 단독 인터뷰의 일문일답이다.
-티베트불교에서 강조하는 ‘공성(空性·자성이 없는 빈성품)’을 터득하면 자비심이 저절로 생기는것인가. 아니면 자비심을 따로 발해야하는 것인가.
=공성을 깨달았다고 반드시 대승의 자비심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연민의 마음을 일으키는 보살이 공성을 깨달으면 자비심이 강화될 수 있다. 그러나 인과관계는 아니다. 그렇기에 자비심을 계발하기 위해서 노력할 필요가 있다.
-한국불교는 견성성불 즉 깨달음을 얻으면 즉각 붓다가 된다면서도 계행을 중요하게 여기지않아 언행일치가 되지않은 경우가 있어 비판을 산다.
=인도 나란다대학으로부터 이어져온 법통에서는 견성성불이라는 말이 있는데 견성, 즉 마음을 보는데엔 두가지가 있다. 속제(俗諦)는 마음을 비추는 성품을 보는 것이다. 즉 불이 있다면 ‘불로인한 뜨거움’을 보는 것이다. 진제(眞諦)는 불도 본질적으로는 ‘비어있음’(실체가 없음)을 보는 것이다. 나란다전통에선 ‘성품을 보는 것’(견성)에 그치지않고 성품을 보는 ‘견도’(見道)에 이어 닦는 ‘수도’(修道)를 하고, 번뇌의 소지장(所知障)까지 다 제거해야 성불에 이른다고 한다. 부처님은 견성성불을 하고도 계행에 어긋남이 없었다. 그 어떤 경전에서도 견성 후 막행해도 좋다는 구절은 없다.
-한국인들이 가정과 학교, 직장 등에서 상처를 받아 인간관계를 힘들어하고 공동체성이 사라지고 홀로 살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한국 뿐만이 아니라 물질을 추구하는 모든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다. 어릴 때부터 함께 공존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경쟁하는 것을 가르쳐서다. ‘옆집 아이는 5살인데도 글을 읽는데 왜 우리집 아이는 왜 못읽지. 우리 아이도 어서 시켜야지’하고 부모가 성급해지면 아이도 위기의식을 느낀다. 서로 기대고 의지하며 함께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을 배우는게 아니라 가정 학교에서부터 경쟁을 시킨다. 인간이 가진 따뜻함을 발하고, 가정과 학교 등 사회 전반에서 각성이 일어나야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
-빈부차이가 심하다. 불교에서는 전생의 공덕과 업의 결과로도 보는데, 요즘은 부자가 탐욕으로 부를 이루고 이를 나누지않아 빈부차이가 더해진다는 비난이 높아간다.
=신이 모든 것을 만들었다는 운명론과 불교의 가르침은 분명히 다르다. 운명을 개선할 여지가 없는가,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불교는 전적으로 후자다. 만약 부자가 빈자나 병자를 도와준다면 전생으로부터 선업은 더욱 확대된다. 그러나 인색하고 나누지않으면 선업은 감소한다. 이처럼 카르마는 확대되기도 하고 줄기도 한다. 카르마를 받는 과정에서 인간의 의지와 선택이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따라서 빈자도 자신의 의지로 부유해질 수 있으며, 부자들도 이들을 돕는 것이 곧 자신을 돕는 것이 된다.
몇 년 전,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조문을 받지 않고 조용히 장례를 치뤘다. 장례식장은 삼촌이 마련해 두신 상태라,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고 장례식장에서 조용히 기도하며 보내드렸다. 삼촌도 내 생각을 존중해 주셔서 다른 친척들 조문도 받지 않았다. 삼촌은 어릴 때부터, 늘 나를 아끼고 존중해 주신 고마운 분이셨다. 난처하고 어려운 부탁이지만, 동의해 주셨다. 삼촌도 장례식장 관련된 일만 도와주고 자리를 피해 주셨다. 번잡하고 정신없는 장례식을 피하고, 삶과 죽음을 조용하게 묵상하며 기도하고 싶었다. 죽음을 특별한 슬픔이 아니라 삶의 한 조각으로 담담히 내 삶에 들이고자 했다. 그렇게 조용히 앉아 온전히 아버님의 삶과 죽음에 집중할 수 있었다.
아버님은 자수성가해서 젊을 때 나름 큰 성공을 거뒀지만, 곧 여러 면에서 실패하셨다. 가부장시대 많은 아버지들처럼 두 얼굴을 가지고 계셨다. 밖에서는 정의롭고 친절했지만, 집에서는 무섭고 거친 분이셨다. 동네 분들을 잘 챙기고, 어려운 일을 당하면 자기 일처럼 도우셨지만, 어머니에게는 무자비하셨고, 평생 힘들게 하셨다. 누나와 동생도 거칠게 대하셨다. 나에게도 무섭고 두려운 분이었지만, 아들인 나에게는 잘 해주려 하셨다.
가부장 지배문화가 일상 속에서 어떻게 이중적으로 작동하는지, 그 속에서 혜택을 입은 사람이 얼마나 큰 착각에 빠질 수 있는지 경험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게 잘 난체만 한다” 어릴 때, 누나가 내게 자주 했던 말인데, 그 때는 그 의미를 몰랐다. 커서야, 아니 결혼 이후에야, ‘가부장문화의 수혜자’인 내 모습을 아내가 깨우쳐 줄 때마다, 그 의미를 다시 제대로 깨우쳐 간다.
장례식장에 있는 다른 상주들, 조문객들이 자꾸 쳐다보고 수근 거렸다. 조문 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그럴 만도 했다. 예기치 않은 이상한 눈길을 받으며 순간 깨달았다. 아! 죽음까지도 비교당하고, 침묵조차 멸시당할 수 있구나! 나는 원해서 선택한 상황이지만, 조문객 별로 없이 장례를 치룰 수밖에 없는 많은 사람들은 또 다른 어려움에 시달리겠구나! 다른 조문 호실들은 장례예배와 예불로 북적거렸다. 유가족들이 위로를 받았겠지만, 한 켠에서는 그로 인해 더 큰 소외와 외로움을 느끼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그때 다시 깨달았다.
얼마 전, 화장장에 갔다가 아무도 찾지 않는 주검을 지키는 이들을 보았다. 주변은 예배와 예불, 큰 울음소리로 북적거렸지만, 이주외국인 노동자 4명은 화장을 앞둔 동료 앞에서 말없이, 눈물도 없이 앉아있었다. 나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말없는 동료가 되어 화로에 들어갈 때까지 함께 했다. 돌아보면 이 땅에는 죽음조차 외롭게 맞이할 수밖에 없는 고단한 생명들이 많다. 조용히 기도했다. 신음하고 애통하는 자의 눈물을 닦아 주시고, 죽은 자가 새 생명으로 다시 사는 은혜가 있기를!
감사를 나누는 한 해의 마지막 달, 감사할 것 하나도 없을 것 같은, 아니 도리어 원망과 한탄, 통곡으로 살아도 모자랄 것 같은 한 여인의 고백은 나를 더욱 감사하게 만든다.
‘하나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은 제게 생명을 주셨나이다. 제가 당신의 것임을 압니다. 그리고 당신이 저를 사랑하심을 압니다. 저를 50평생 아무 탈 없이 잘 살수 있게 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나를 지어내신 분이 누구인지 알게 해 주시어 감사드립니다. 남편을 만나게 해 주시어 감사드립니다. 그 남편이 알콜 중독자여서 중환자실을 자기 집보다 더 많이 드나들어도 난 남편을 사랑합니다. 그는 약하지만 가족을 사랑하니까요. 하루 하루 살아보겠다고 짐승 먹이를 찾아 새벽에 트럭을 끌고 나가다 사고가 나서 이렇게 제가 7개월째 병원 침대에 누워 있지만 그래도 저는 참 기쁩니다. 참 인생에 있어 오래간만에 쉬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성서도 많이 읽고, 쓰고, 당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아들이 오토바이 사고가 나서 응급실로 들어왔어도 저는 감사합니다. 훤칠하고 잘생긴 아들이 얼굴도 다치지 않고 죽지도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저희들이 집을 비운 동안 도둑이 들어 와서 가게의 물건들을 몽땅 털어갔다는군요. 얼마나 행운이고 다행인지 모릅니다. 집에 아무도 없을 때라 누구 하나 다친 사람도 없으니...
10여년전부터 중풍으로 누워 계신 아버님이 계시지만 제가 벌어 생활비도 보탤수 있고 또 가끔 외출증을 끊어서 휠체어를 타고라도 가서 보살펴 드릴 수 있으니 참 좋지 않습니까. 부모도 없고 자식도 없는 이들에 비해 저는 참 복이 많은 것이지요. 아버님을 돌보던 어머님이 쓰러지셔서 서울 큰 병원으로 갔더니 위암 말기라네요. 수술하시고 경과를 기다리고 있지만 이것도 다행이지요. 아예 수술할 엄두조차 못내는 환자들도 참 많은데....
이제 병원에서 해줄게 없다고 퇴원하라고 하는 데 저는 아직 무척 아프고 휠체어를 사용해야만 움직일수 있거든요. 그래도 자동차 사고라 보험이 잘 되어 있어 작은 병원으로 옮겨도 의료비가 나온다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병원에 있으면서 입원비 때문에 그냥 퇴원해야 하는 사람 많이 봤거든요.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날마다 실컷 기도할 수 있었고 예수님 앞에서 아주 오래도록 앉아 있을 수 있었다는 것, 이것이 제가 지금 가지고 있는 가장 복된 일이지요. 아무나 이런 은혜를 받을수가 있겠습니까.
지난 몇 달동안 일어났던 많은 일들이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이렇게 입으로 감사하다고 외친 일들이 사실 저의 허풍이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나쁜 시간들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일들이 지나갔을지라도 아니 아직 진행되고 있을지라도 저는 감사합니다. 저는 너무나 큰 것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갖고 있거든요. 하나님 당신과의 사랑의 기억말입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고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그 기억이 저를 기쁘게도 만들고 감사하게도 만들어 주거든요. 그래서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늘 감사의 삶을 사는 사람도 있고 이 모든 것에 하나도 해당되지 않는 평온한 삶을 살아도 늘 불만인 삶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쪽인가요?
승자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만나도 친구가 될 수 있으나
패자는 지배가 되려 한다.
-J.하비스
상대가 비록 불쾌한 말을 하더라도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 이야기를 들어주어서
조금이라도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라.
그렇게 되면 상대도 당신의 의견을 존중하게 된다.
-벤자민 프랭클린
감정의 폭발은 이성의 결함이다.
어리석은 사람이 격분하고 있을 때
냉정을 잃지 않는 사람은 성숙한 인간의 징표이다.
-발타자르 그라시안
법향만리(法香萬里)를 생각한다
- 삼동 린포체 서울 법문 소감
지난 12월 18일 화요일, 서울 법련사에서 삼동 린뽀체 서울 법회가 열렸다. 이 법회를 후원한 자비선사의 지운 스님께서는 지난번 티벳 고승을 모시고 대론(對論)했던 ‘중론, 그 지혜를 논하다’의 두 번째로 이번 일을 기획하고 계셨다. 그러나 ‘스승의 스승’인 삼동 린포체와 대론이란 상상할 수도 없는 일, 그저 귀한 말씀을 들어보는 자리가 나을 듯해서 ‘밀교와 공사상’이라고, 어찌 되었든 티벳 불교에서 강조하는 공사상에 대해서 들어볼 기회를 마련하게 되었다.
“제 이야기는 다음에도 들을 수 있으나 경주에서 열리는 삼동 린포체의 법문은 다시 접하기 어려운 일이니 그쪽으로 가시라!”
1년을 계획표대로 움직이는 중관학당의 겨울캠프 일정과 겹쳐 경주에서 직접 배울 기회를 놓친 대신에 지운스님과 나란다 불교학술원 원장인 박은정 선생의 공덕으로 서울에서도 귀한 말씀을 들을 자리를 열게 되었다.
삼동 린포체, 각기 다른 넓이와 깊이로 다가올 분이시지만 ‘나에게는 이렇게 들린 것(이다)’는 ‘에밤 마야 스루땀(evam maya srutam)’, 한역의 ‘여시아문(如是我聞)’을 흉내 내면, 반세기 동안 사부님의 친구이신지라 마음 한 쪽을 아리게 하는 분으로 다가온다. 녹야원으로 유명한 사르나스의 티벳 고등 연구소(CIHTS, Central Institute of Higher Tibetan Studies)의 부총장(인도의 대학 총장은 수상이 겸직한다)으로 재직하던 시절, 무수한 제자들을 배출하셔서 당신에게는 그저 그런 1/N로, 기억 너머의 1인이겠으나 사부님 인연 덕분에 20여 년 전부터 뵐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사르나스 출신의 선생들은 모두 당신의 제자들이니 샨띠의 인도-티벳학과의 사르나스 출신 동료 선생들은 모두 당신의 제자들, 당신의 ‘전설’에 대해서는 인이 박히게 많이 들었다. 떠나온 곳을 생각하게 만드는 분이시라 법문만 듣고 ‘스르르’ 사라질 생각이었는데 법련사 대법당으로 올라오는 계단에서 지운 스님과 동행하는 삼동 린포체와 마주쳤다.
“게라, 로 니쑤 뇌라 나 샨띠니께따니 케랑 텔빠인. (선생님, 20년 전에 샨띠에서 뵈었습니다)”
“로 니쑤 뇌라! (20년 전이라)”
스치기만 해도 느끼게 되는 ‘너희들 공부 안 하냐!’는 얼음짱 같은 냉기, ‘존재 자체로 쫄게’ 만드는 분이셨는데 당신의 손을 맞잡는 순간 느껴지는 기력이 쇄한 노친네의 기운,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노사(老死)를 통한, 그 육체적인 쇄함을 통해서도 다가오는 ‘항상한 것은 없다’는 그 깊은 여운을 뒤로 하고 시작한 법문은 ‘당신’다우셨다. 그나마 달라이 라마 존자님께서 강조하시는 불교를 먼저 받아들인 한국이 상가의 전통에 따르자면 사형에 해당한다는 것이 당신께서 하실 수 있는 유머라면 유머?
청한 법문의 주제가 ‘밀교와 공사상’인지라 밀교 입문, 즉 관정(灌頂)을 받지 않은 이들이 들어도 되는 이야기만 하시겠다고.
“전해진 것만 말해라!”
인도로 망명 올 때 몸에 지니고 오셨다는 샨띠 데바의 ‘입보리행론’이 전해진 배경이 떠올랐다. 나란다 대학에서 ‘두쎄 쑴바’, ‘먹고 자고 싸는 것만 아는’ 삼식이, 즉 바보가 헛소리를 할까봐, 다른 도반들이 자신들이 모르는 이야기를 할까봐 전승된 것만 청한 덕에 샨띠 데바는 앞으로 올 법을 설할 기회를,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배울 기회를 놓쳤다. 청한 자들이 그것을 청했기 때문에. ‘당신에게 다른 주제의 말씀을 청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것이 두루 존재하는, 편재(遍在)하는 법이다. 대중 법문의 주제로 ‘고수는 터칭이 다르다’는 것만 확인하면 충분할 수도 있었겠으나 ‘언제 다시 당신의 말씀을 들을 기회가 있을까?’를 생각하니 청법의 수준을 깊게 생각하지 못한 것이 깊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티베트 고승의 법문을 들을 때 크게 가닥을 잡아야 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그가 어느 종파에 속한 가르침인지부터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현밀쌍수를 강조한다지만 닝마빠나 까귀빠는 밀교에 강조의 방점을, 그리고 샤카파나 게룩파는 현교의 전통에 강조의 방점을 찍는다. 쌍수(雙修), 즉 함께 닦는다지만 말이다.
티베트 망명 정부의 총리를 역임하셨으나 삼동 린포체는 기본적으로 게룩파의 교학체계를 따르신다. 이것은 당신 말씀이 게룩빠의 전통에 따른 것으로, 격렬한 종파 투쟁의 시기에 승리하여 티베트인의 90%를 차지하는 절대적인 가르침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는 말이다.
간략하게 현밀쌍수의 전통을 정리하자면 현교는 바라밀다승(波羅密多乘), 즉 지혜를 강조하는 점수적인, 그리고 밀승(密乘)은 이것을 축약, 압축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어떤 종파가 되었든 티베트 불교에서는 보리심과 공성의 지혜를 강조하는데 게룩파에서는 현교의 바탕이 되어 있지 않는 경우, 아예 입문의 벽마저 높이 쌓아둔다. 즉, 보리도(菩提道), 그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보리심과 공성의 지혜로 나누는 데는 차이가 없지만 게룩파에서는 밀교 수행의 경우, 그 ‘축약과 압축’에 강조의 방점을 찍어두고 있는 셈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중생 구제’라는 서원을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하늘’이라는 도솔천에서 세워 삼아승겁 동안 복덕과 지혜의 공덕을 쌓아 금생에 깨달음을 이루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불교 신화의 바탕이다. 밀교는 삼아승겁이라는 긴 세월 동안 중생이 당할 고통에 대한 강한 연민심으로 금생에 깨달음을 이루겠다는 원력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만큼 강한 연민심이 바탕이 되어 있어야만 가능한 길, ‘중생 구제’라는 대승의 ‘더불어 함께’ 하고자 하는 길에서 그 원력의 크기와 근기가 현교와 밀교를 가르는 경계선인 것이다.
티베트불교를 이루는 기본적인 틀인 ‘공덕=복덕+지혜’에서 강조되어야 마땅한 지혜는 번뇌장과 소지장의 소멸을, 즉 한역 전통의 아공법공을 적용할 경우, 명확하게 그 그림이 그려진다. 달라이 라마 존자님께서 강조하시는 ‘공성의 지혜’란 일상을 관통하는 지혜로운 삶, 항상 깨어 있는 그 삶을 뜻할 뿐, 그다지 특별한 가르침도 아니다. 그렇게 살지 못해서 문제지.
2시간 동안 당신의 법문이야 본존불 수행, 죽음 그 이후까지도 수행의 영역을 확장하는 ‘바르도(Bar do)’ 수행, 법신을 위주로 한 삼신불 수행, 부처님의 32상 80종호를 그 대상으로 삼는 것 등, ‘과(果)로 인(因)을 삼는’ 수행법 등에 관한 것들이었다. 청법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이 지나자 모인 분들과의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다.
‘보리심과 공성의 지혜, 즉 바른 견해가 없는 수행은 사견(邪見)일 뿐이다.’
순간, 한국의 티벳 불교에 대한 경향성, 기복과 밀교에 대한 경향성 생각나고, 티벳에서 유일무이하게 ‘판디타(현자)’라는 칭호가 붙은’ 샤카 판디타가 언급한 ‘짐승의 수행법’이 떠올랐다.
‘명상하면 듣고 (배울) 필요가 없다’는 것은
어리석은 자의 심지心地가 좁은 말이다.
듣고 (배움이) 없는 명상이란 다만
애써 (노력)해도 짐승의 수행법이다.
-졸역, 『티벳 현자의 말씀』, 441. [9-43]번 게송.
‘사견’이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해 주시니 청법을 제대로 한 것 같기도 하지만 ‘공성의 지혜’라는 게 널리 알려지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경주에서 이곳 서울까지 올 때 매우 빠른 열차를 타고 왔습니다. ...”
당신께서는 자비심과 공성의 지혜에 대해서 강조하시면서 현교에서 배우는 여러 교학적 바탕을 ‘중생 구제의 발원’만큼 빠르게 배워야만 밀교의 입문이 가능하지, 그것을 빼놓고는 결코 밀교를 수행할 수 없다고 반복 또 반복하셨다.
한국 스님들에 대한 존경을 내려놓은 한국의 불자들은 그 대체제로 티베트 스님들을 찾는다. 즉 ‘Made in Korea’ 대신에 ‘Made in Tibet’를 찾는 셈이다. ‘공급자’가 백만 가지 상품을 팔 때 ‘수요자’는 오직 하나 상품, 즉 복만 바란다. 불자들이 ‘공성의 지혜’를 배울 자세를 갖추지 않으면 달라이 라마 존자님의 가르침, 공성의 지혜는 그저 그림 속의 떡일 뿐이다.
‘스승의 가르침에 대한 존경이 좀 더 빨리 성취를 이루게 도와줍니다.’
그 가르침에 따라 살려 하지 않고 그 스승을 경배할 뿐이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경주 법문 준비하기에도 바빴던 박은정 선생은 서울 법회의 통역을 준비하느라 얼굴에 주름 하나가 더 늘었다. 그 덕분에 무념무상에 대한 대중의 질문을 제대로 옮겼나 약간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삼동 린포체의 답은 간단했다. 마음은 언제나 분별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무념무상을 지법(止法), 즉 사마타의 경지라고 옮기고 청법을 했으면 어땠을까?’
그럼 뒤따라 나오는 관법(觀法), 즉 위파사나까지 나가기 위한 전제 조건이라고 강조하시지 않았을까 싶어 드는 생각이다. 자신의 말씀이 아닌 용수나 미륵, 즉 인도의 전통에 따른 말씀과 그에 대한 해석이라는 ‘나란다 전통’에 그 근거를 둔, 성현의 말씀을 그 근거로 삼는 성언량(聖言量)에 따라 해석하셨는데, 한국에서 강조되는 이 ‘무념무상’이 ‘마음’에 관한 문제가 아닌 수행의 방법임을, 통역의 차이에서 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것도 그리 나쁜 게 아니기에.
만약 삼동 린포체에게 남선생에게 ‘형’을 뜻하는 ‘무슨 무슨 다(da)’라고, 여선생에게는 ‘누나’를 뜻하는 ‘무슨 무슨 디(di)’라고 부르는 샨티니께탄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뵈었더라면, 느리고 빠를 차이가 있을 지언정 ‘보리심과 공성의 지혜’라는 그 지나는 길이 같음을 KTX에 대한 비유로 말씀하실 때 일단 한번 틀어보고 답을 기다렸을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 오는 방법도 있다!’
자리가 자리인지라 티베트 불교에 빠져있는 ‘팔불중도 연기사상을 곧 공’으로 정리한 우리의 중관사상에 대한 전통을, 희론(戱論)의 타파를 강조하는 전통, 선종의 전통에 말씀드릴 기회조차 없었다. 다음에 뵐 기회도 없을 터인데.
큰 스승의 가르침, 그 법향(法香)에 젖어 있는 사이 청전 스님께서 이메일을 보내오셨다. ‘스님께서 이야기 안 하셨다고 해서 제가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곧장 답장을 드렸다. ‘동종업종의 종사자’인 지운 스님에게 귀국 인사를 드린 것에 대해 이미 들었던 바라 언제 즈음 주변 정리 마치고 연락하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딱 열흘’ 후에 연락을 해오셨다. 전화를 드렸더니 ‘아직도 컨테이너에 사냐?’고 걱정부터 ...
‘청전 스님은 어떤 법상(法床)에 앉으실까?’
‘내 밥상 차리기도 귀찮다.’고 하실 게 눈에 선하다. 사부님과 은사 스님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은혜를 입었으나 고작 여기까지 오지 못함을, 아직도 옮겨야할 저 무수한 말씀들을 생각해 본다. 법향만리(法香萬里), 정법의 그 향기 천하에 두루 퍼지길 바라며, 큰 스승님들이 좀 더 이 세간에 머물러 주시기를 바라며.
피콜라네 집은 매우 가난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엄마는 불치병을 앓고 있어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피콜라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오늘밤에 산타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오실까요?” 엄마는 말없이 고개만 저었다. 피콜라는 엄마의 슬픈 표정 앞에서 더 이상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피콜라는 혹시나 하면서 작은 나무 구두를 벗어 굴뚝 밑에 놓아두었다. 그날 밤, 매섭게 몰아치는 눈바람 속에 심하게 날개를 다친 아기새 한 마리가 피콜라네 집 굴뚝에 들어왔다. 그러고 피콜라의 나무 구두 속에 들어가 잠이 들었다.
크리스마스 날 아침, 아무 선물도 넣어놓지 못한 엄마는 곧 일어나 빈 신발을 보며 실망할 피콜라를 생각하며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그런데 일어나자마자 굴뚝 밑으로 달려간 피콜라가 갑자기 환호성을 내지르는 것이었다. “엄마, 산타 할아버지가 왔다 가셨어요. 저를 위해 선물도 주고 가셨어요. 이것 봐요. 아주 이쁜 새예요. 그런데 새가 날개를 다쳤네요. 아마 제가 잘 돌봐줄 거란 걸 아시고 이 선물을 주셨나봐요.” 피콜라네 크리스마스 아침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분주하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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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오실 때 가장 작은 이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가장 보잘 곳 없는 곳에 가장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 분을 축하하는 성탄절은 가장 화려한 곳에 가장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번쩍거리는 점멸등과 붉은 색 꽃, 쌓여있는 선물 꾸러미, 열광하는 찬송 소리, 주님이 오심을 환영하지만 그 어디에도 주님의 자취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우리가 눈 여겨 보지 않는 곳에 가장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주님은 오십니다.
분노의 대물림 끊을 수 있는 기회, 놓치지 마세요
어머니께 학대당한 30대 전업주부 “내 아이에게 내 어머니와 같은 행동을”
Q.어린 아들 둘을 키우고 있는 30대 전업주부입니다. 저는 딸 둘, 아들 하나인 가정에서 장녀로 자랐습니다. 남동생은 지능장애가 있었고, 어려운 집안 살림 속에서 어머니는 버티기가 힘드셨던 거 같아요. 저는 큰아이란 이유로 어머니의 분풀이 대상이었습니다. 제가 잘못하지 않아도, 조그만 잘못에도 늘 매를 맞았지요. 어릴 때 기억을 떠올려 보면 맞은 기억만 있습니다. 아버지는 기억도 나지 않구요.
하지만 우리가 어려운 환경에 있다는 걸 어린 나이에도 알았고 어머니를 이해한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보니 도저히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하겠더군요. 우연히 대화 도중 예전 이야기가 나왔고 저는 웃으며 왜 어릴 때 그렇게 많이 때린 거냐, 기억은 나냐 했더니 어머니는 기억이 나지 않는답니다. 제가 큰딸이라 솔직히 분풀이했던 거 같다고는 하더군요.
아이를 키울수록 어머니에 대한 원망도 함께 자랍니다. 우리 어머니는 왜 이렇게 나한테 안 해 준 거지 하는 원망, 예민한 사춘기 시절 예쁜 옷 한 벌, 메이커 신발 한번 사 준 적이 없고, 따뜻한 포옹 한번 기억나는 게 없고….
제 아이는 사랑 충만하게 키우리라 다짐했습니다. 정말 몸이 부서져라 사랑해 줬어요. 하지만 아이가 둘이 되고 도저히 컨트롤이 안 될 때는 저도 모르게 손이 나갑니다. 엉덩이 한 대 정도 때리는 게 아니라, 머리를 휘어갈길 때도 있고 뺨을 때린 적도 있습니다. 물론 세게는 아니지요. 때리곤 바로 미안해지지만 화가 또 치밉니다. 제가 이렇게 아이를 때릴 때마다 친정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나도 아이에게 우리 어머니처럼 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순간적인 두려움 때문이겠지요.
왠지 어머니에게 분풀이하고 싶습니다. 왜 어릴 때 그렇게 때렸는지, 왜 한 번 안아 준 기억이 없는 건지, 때렸으면 기억이라도 해야 되는 게 아닌지, 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그걸 잊어버렸다고 하다니, 왜 지금도 어머니의 관심을 받고 싶은지….
어머니는 분명 절 사랑하지만 무뚝뚝한 탓에 표현을 못 하고 사신 거겠지요. 평생 가족을 위해 희생하셨고 헌신하신 것도 맞습니다. 지금도 고생하고 계시구요. 이런 말을 어머니한테 하면 엄청 상처 받으시겠지요. 절대 입 밖으로는 낼 수 없습니다.
푸른나무
A.푸른나무 님 사연을 들으니 참 마음이 아픕니다. 제 한 몸 지탱하기도 아직 불안한 어린아이가 엄마의 감정받이가 되어 엄마의 분노와 냉대를 모두 감당하셨군요. 얼마나 무섭고 슬펐을까요.
당연히 화가 나실 겁니다. 분노는 대물림되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부모가 아이에게 한 행동은 모두 두뇌 회로에, 그리고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에 저장된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하지요. 트라우마 전문가들은 또 폭력이 육체에 저장되어 우리 안에서 소용돌이치면서 우리를 끌어당긴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굳이 심리학적인 접근이 아니더라도, 매 맞고 화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어렸을 때는 화낼 수 없었을 거예요.
어린아이는 엄마를 미워할 수 없습니다. 아이에게 부모는 자신의 전 존재를 의탁한, 온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의지한 세상을 나쁘다고 미워하는 건 아이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요. 엄마가 힘들어서 그런 거야. 내가 참아 주고, 엄마를 도와줘야 해,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랬던 아이가 자라 엄마가 되어서,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리게 됐군요. 많은 엄마들이 그런 경험을 하지요. 아이 나이와 같은 시절의 자신이 떠오르면서 그 시절 감정이 활성화되는 것을 느낍니다. 어린 시절이 행복하지 않았던 여성들은 엄마가 되면 마음고생을 많이 하지요.
내 안의 심리적 아이를 살펴보세요
푸른나무 님, 그 고통스러운 시간이 사실은 기회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오래 밀쳐두었던 아픔을 의식의 장으로 끌어올려서 치유해 줄 수 있는 기회,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 말입니다. 이때 엄마들은 두 차원에서 아이를 길러야 합니다. 내가 낳은 아이들과 내 마음속의 상처 입은 심리적 아이가 그들입니다.
화내고 싶은 만큼 충분히 화내세요. 충분히 원망하세요. 지금은 당신이 어린 시절 겪은 아픔에 대해 분노할 시간인 것 같습니다. 친구들을 만나 그들에게 하소연하시고, 글쓰기를 통해서 분노를 표현하세요. 과거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그 기억과 지금 느껴지는 감정을 모두 기록해 보세요. 이렇게 사연을 보내신 것도 좋은 시도입니다. 다양한 마음 치유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으시는 것도 추천하고 싶네요.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화내지 마세요. 아이들에게 화낸다는 건 분노와 폭력의 대물림을 지속시킨다는 얘기이고, 어머니에게 난 화를 자신에게 돌리는 걸 의미합니다. 자신의 분신과 같은 아이를 때리고 또 괴로워하면서 당신의 마음은 전쟁터가 되겠지요. 결국 상처는 회복되지 않고 분노는 더욱 깊어질 겁니다.
‘네 탓이 아니다’라는 위로 필요
아직도 어머니의 관심을 받고 싶다 하셨나요? 아마 당신이 스스로 자기 문제의 어머니가 되지 못했기 때문일 겁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부모나 주위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다면 당신이 자신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어른들이 내게 그랬듯이 내가 나에 대해 차갑고 비판적이기 때문에 다른 이의 사랑과 지지에 매달리는 것이지요.
그러니 충분히 화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화내는 자신에게 관심을 쏟아 주고 따뜻하게 위로해 주세요.
화난 자신과 동일시하지 마시고, 화난 자신을 보살피고 위로하는 내면의 어머니와 동일시하세요. 화내지 말라고 다그치지 마시고, 빨리 어른스러워지라고 잔소리도 하지 마세요. 그렇게 할수록 심리적 아이는 점점 더 지체될 겁니다. 앞으로도 오래 내면의 하소연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하시고, 그동안 힘들었겠다고, 네 탓이 아니라고 위로해 주세요.
푸른나무 님, 당신도 잘 아시겠지만 과거 당신의 어머니는 가난과 장애가 있는 아들, 그리고 어린 딸들을 혼자 책임지느라 새파랗게 겁에 질린 젊은 여자였습니다. 어머니야말로 공포와 분노에 사로잡힌 심리적인 아이에게 사로잡혀 살았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은 나이 들고 무력해져서 더 이상 당신이 원하는 사랑을 줄 수가 없겠네요.
이제 당신이 자신의 아픔을 보살피는 보호자가 되어 주세요. 분노와 폭력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는 기회, 당신이 한층 더 성숙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 북한산 문수봉 일출
아송구년 (我送舊年) 나는 묵은 해를 보낼 터이니
여영신년 (汝迎新年) 당신은 새로운 해를 맞으소서
100여년 전의 연하장은 닥종이에 정성스럽게 먹을 갈아 글씨를 썼을 것이다. 여덟 글자라는 절제미로써 더 높은 완성도를 추구했으리라. 발신인은 일본 가마쿠라(鎌倉)에 소재한 원각사(圓覺寺) 관장(최고어른)인 샤구소우엔(釋宗演·1860~1919) 선사다. 선사는 교토(京都)의 하나조노(花園)대학 학장을 지냈다. 선(禪)을 ‘젠(ZEN)’이란 명칭으로 미국과 유럽사회에 처음 소개했으며, 그 과업은 제자인 스즈키 다이세쓰(鈴木大拙·1870~1966)로 이어졌다. 수신인은 조선 변산반도 월명암(月明庵)의 백학명(白鶴鳴·1867~1929) 선사다. 두 선사는 1915년 원각사 방장실에서 처음 만났다. 고수끼리는 긴말이 필요 없다. 이 인연으로 이듬해 1916년 새해 인사와 안부를 묻는 한시 연하장이 도착한 것이다.
» 백학명 선사
» 서양에 젠(zen)을 전한 스즈키 다이세쓰의 스승 샤구소우엔 선사
구년과 신년은 섣달 그믐날(12월31일) 밤 12시를 기점으로 바뀐다. 12시는 마지막 시각이지만 0시는 새로 시작하는 시각이다. 하지만
12시가 곧 0시다. 따라서 끝인 동시에 시작인 것이다. 그래서 학명 스님은 ‘세월(歲月)’이라는 시를 통해 “끝과 시작을 구별해 말하지
말라(妄道始終分兩頭)”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작년의 하늘을 보고 또 신년의 하늘을 봐도 별다른 차이가 없다(試看長天何二相)”고 부연설명 삼아
한 줄을 더 보탰다.
그럼에도 현실 세계는 구년은 구년이고 신년은 신년이다. 인쇄체로 박은 ‘영혼 없는’ 연하장을 몇 통 받았다. 2년 전 마지막 해넘이와
첫 해돋이를 겸하고자 북한산 둘레길을 걸었다. 문수봉 자락에서 그 해 마지막 일몰을 감상하고 일출을 보기 위해 대남문(大南門) 인근의 사찰에서
신발끈을 풀고서 하루를 묵었던 적이 있다. 신년의 총총한 새벽별 아래 모자에 랜턴을 단 해돋이 참가 행렬이 산 아래까지 드문드문 이어졌지만
정작 해 뜰 무렵에는 구름이 희뿌옇게 산과 하늘을 가린다. 이를 어쩌나! 학명 스님 표현을 빌리자면 작년 해와 올해의 해가 다를 리 없으니 어제
해넘이 감동을 오늘 아침 해돋이 느낌으로 대치하면 될 터이다.
나도 당신도 그도 늙는다는 것
나도 당신도 그도 결국은 죽는다는것
아무도 홀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
세상은 많은 것을 선택할 수 있지만, 선택할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위의 세가지입니다.
고령화와 1인가구화와 급격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40년 후가 되면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80살이 넘고, 또 혼자 살게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가 따라가는 선진국들이 이미 보여주듯이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관계망의 파괴는 환경오염이나 자원고갈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입니다.
앞으로는 부모와 자식세대가 같이 사는 이는 더욱 더 희귀한 사례가 될 것이고, 고령화시대엔 부부라하더라도 한명이 암같은 질병이나 사고로 사망할 경우 40~50년을 늘고 병든 상태로 양노원이나 요양원이나 혼삶족으로 지속해야하는 경우도 더욱 많아질 것입니다.
그러기에 관계망이 절실합니다. 하버드대학교가 1938년부터 무려 79년간 724명을 장기 추적조사한 결과 불행한 사람들은 홀로 고립된 사람들이고, 행복한 사람들은 인간관계, 즉 관계망이 끊어지지않은 사람들이라고 발표한 바있지요.
그런데 이는 공동체성이 살아있었던 과거시대보다 300만년 포유류의 역사상 최초로 관계망이 처절히 깨져가고, 함께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현재와 미래시대에 더욱 절실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그래서 마을을 이야기합니다. 반드시 함께 삼시세끼밥을 같이 먹는 공동체가 아니라도 최소한 이웃끼리 알고 지내고, 어울리며, 홀로 앓고 있는지, 죽어가고 있지않은지도 살펴주고, 서로 돕고 돌봐주고 의지하는 이웃공동체가 절실하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함께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갈등을 두려워하고 인간을 믿기 어려워서 모래알이 되어가 관계망이 끊어지는 시기로 치닫기에 역설적으로 관계망을 회복하지않으면 인간적 삶을 기약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멀리 있는 자식 친인척보다 가까이에 있는 공동체성 삶의 위기엔 가장 절실하고, 일상의 행불행에도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일찍 함께 사는 삶을 선택해 마을공동체에서 살아가는, 특히 마을공동체를 만든 촌장들로부터 함께 살아가는 이유가 함께 살 때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내는지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들어봤습니다. 지난 12일 서울 수유동 한신대학원에서 #우린다르게살기로했다 에 나오는 마을공동체의 촌장들을 초청해 진행한 북콘서트의 내용을 그대로 전합니다.
다음 촌장들을 초청한 북콘서트는 1월12일(토) 오후2시 광주광역시 광산구 옛 본량면) 남산동 신흥마을(본량초등학교 뒤)공동체 커뮤니티센터에서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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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 북콘서트 및 좌담회는 12월 서울을 시작으로 1월 광주, 2월 대전, 3월 부산에서 이어진다.
우리는 왜 함께 살게 되었나
조현 : 이렇게 뜻 깊은 곳에 와서 좌담회를 하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오늘 우리가 행복에 대해 논의할 할 겁니다. 책을 내고 그동안 저 혼자 북콘서트를 했는데 아쉬웠던 것이 직접 공동체 사시는, 제가 촌장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이분들 모시고 자세한 이야기 들으면 좋겠다 늘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이런 기회 마련해 주셔서 직접 공동체 하시는 분들과 의미 깊은 자리 갖게 됐습니다. 먼저 공동체 소개부터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채상병 : 저는 부산 온배움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온생명론 말씀하신 장회익 선생님, 장호원 선생님 등이 인재를 키우자는 생각으로 2003년 함양에 녹색대학을 만듭니다. 한신대에서 공부하신 허병섭 목사님이 그때 참여하셨습니다. 녹색대학이 어려움을 겪다가 허병섭 목사님이 2008년에 대표가 되시고 이름을 온배움터로 개명하셨습니다.
그 후 자신은 함양이라는 지역을 생태문화 공간으로 창조하겠다, 지역별로 온배움터가 있어서 그 지역을 생태문화 공간으로 창조하도록 하자 제안을 하셨어요. 부산에 오셨을 때 한 번 뵀는데 그때 부산에도 만들어라 하신 다음 2009년에 쓰러지셔서 3년 뒤 돌아가십니다. 그 말씀을 유지로 받아서 부산에 온배움터 만들게 됐습니다. 온배움터는 의식주 관련된 전문 기술 배웁니다. 먹거리 분과, 옷살림 분과, 생태건축 세 가지를 기본으로 하고, 대체의학 분과, 마을공동체 분과, 대안교육교사양성과정, 청년대안활동가과정 등을 열어서 부산 지역 사람들을 일꾼으로 만드는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저는 작년부터 혼자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밭에서 산양을 키워서 산양유 짜서 양산에 산양유 공급하고 닭도 40~50마리 키우는데 계란도 공급하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청년대안활동가 양성과정을 했는데 청년들이 전국 대안적 공동체 돌아본 다음, 우리도 뭔가 하자 해서 청년자급자립생태예술축제 '온나'(온전한 나)를 열기도 했습니다.
정민철 : 저희 농장 이름은 젊은협업농장입니다. 시설하우스 1,500평, 논 3,000평 정도 농사를 짓습니다. 다 임대해서 합니다. 시작한 계기는 공동체 하려 한 것 아니라 배우고 싶은 사람들이 저희 농장에 자꾸 오려고 하더라고요. 오라고 한 적 없는데 농사를 배우고 싶다 해서 다 받아 주었습니다. 농사 배우겠다는데 귀하니까 같이하자 했지만 이 사람들 모여서 행복하게 오소도손 공동체적으로 살고 있구나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는 1, 2년 후에는 나가라 합니다. 농장 독립시키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새로운 사람이 계속 진입할 수 있도록요.
농촌 인구가 감소한 것이 오래된 것 아닙니다. 1980~1990, 1990~2000년대 넘어가면서 반통씩 감소합니다. 최근에 일어난 변화라고 생각되고, 학교들 어떻게 하면 폐교시키지 않을까 고민하면서 면 단위가 하나의 커뮤니티 되어야 하고 그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뭐가 있을까 고민합니다.
저희는 장례식에 제일 열심히 참여합니다. 동네 주민들이 제일 많이 모이는 곳입니다. 동네 어르신이 92세에 돌아가셨는데 91세까지 농사를 지었거든요. 이분이 돌아가실 때 꼭 상여를 매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다 70대 노인들만 계셔서 저희 농장 사람들이 가서 상여를 맸습니다.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면 그 집은 청년들이 들어가고, 농사짓던 땅도 받아서 농사를 연결시켜 짓고 있습니다. 그 시스템을 지역 사회에 구축해야 합니다. 저희 농장 청년들은 자기 부모님께 물려받은 땅이 한 평도 없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호미를 잡아본 친구들만 같이하거든요.
장곡면 학생들을 다 모으면 46명인데 학교가 중요한 것이 청년들을 아무리 받더라도 초등학교가 사라지면…. 장곡면이 커뮤니티라 했는데 초등학교 중심으로 생활권이 묶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초등학교를 유지시키려고 청년들 대상으로 학생들 교육을 하도록 하고, 자녀들을 이 학교로 보냅니다.
키워드는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어떻게 농업 지속할 것인가. 농업 가치 어떻게 유지 재생산할 것인가. 두 번째는 소속된 마을 어떻게 건강하게 만들까, 세 번째는 이걸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인데 학습 체제 구축입니다.
또다시 학교라는 틀을 만들지는 말자 해서 농장에서 흩어져 일하는 사람들 매일 모여서 학습을 같이 합니다. 매일 저녁 있습니다. 강사 선생님이 2~3시간 강의해서는 전달이 잘 안 됩니다. 그래서 8시간짜리 강의를 해보자 했고, 하는 김에 더 하자 해서 1년에 두 번 16시간 연속합니다. 1박 2일간 농촌에서 가장 더울 때, 가장 추울 때 합니다. 1년 전 약속을 하고, 강사가 평생 공부한 것을 같이 학습합니다. 이런 식으로 학습이 그 마을 유지시키는 기초가 되고, 그게 없다면 농업이나 마을이나 지속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박민수 : 은혜공동체는 일반 교회로 시작했습니다. 복음서를 통해서 예수의 길 알게 되었고 예수의 길 따라가면서 공동체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어떡하면 예수가 바라는 공동체 꾸릴 수 있을까를 길게 보면 20년 정도 고민하다가 같이 사는 실험도 해보았고요, 그래도 근접할 수 있는 삶은 생활공동체이겠다 싶어서 생활공동체 꾸려서 살아보자고 마음을 같이 품었습니다.
재작년부터 생활공동체 건물 짓기 시작했고, 작년에 입주해서 올해까지 1년 3, 4개월을 한 건물에서 살아오고 있습니다. 방은 각자 독립된 공간이지만 대부분은 공유공간이고, 한 가족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같이 살다가 싸우고 패배하고 나오지 않을까 우려감 있었는데 실제 살아보니까 단독 세대로 살아갈 때보다 몇십 배는 더 재밌고 즐겁고 행복합니다. 지금은 쫓겨만 나가지 않고 살면 인생은 성공이라는 마음으로 구성원들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웃음).
생활공동체로 사는 사람들은 돌아가며 바비큐 파티를 주관합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야유회도 가는데, 전국의 좋다는 산은 다 다니고 있습니다. 도봉 이사 와서는 주변 산을 숙지하자는 차원에서 불함산, 수라산, 도봉산, 북한산, 사패산을 한 달 한 번씩 오르는 중입니다. 축제가 1년에 4번 정도 있고, 한 달 한 번씩 인문학 강의가 있는데 1년 학기제로 운영됩니다. 올해는 1월부터 장자를 배워가고 있는데 11번째 강의 듣고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가 무한행복을 누리는데, 적극적으로 지역 사회와 작은 일들이라도 하자 해서 한국 사회에서 어려움 겪는 분들 누구일까 찾다가 조작간첩 희생자분들을 만났습니다. 사회에서 찍혀 나가서 사시는 분들 찾아다니면서 함께하는 시간 가졌습니다. 그분들 모시고 파티를 했고, 그분 중 한 명이 우리 공동체 주변에 이사를 오셨는데 집들이 파티를 공동체에서 열어 드렸습니다. 그리고 콜트콜텍 해고노동자 농성장도 찾아갔습니다. 몇 평 안 되는 텐트 안에 80명이 들어갔습니다. 쌍용자동차, 지금은 타결됐지만 코오롱 해고노동자, 굴뚝에 계신 분들 구미에서 300일 넘게 투쟁하시는데 함께하길 원하는 곳 적극 다니려 합니다.
최철호 : 인수마을에서는 밤에 아이 데리고 마실 갈 수 있는 거리, 즉 일상적 삶의 동선 겹치는 공간을 마을이라 생각합니다. 행정구역 단위로 마을에 접근하는 것 지양합니다. 홍천에서는 면 단위를 마을로 생각합니다. 저희는 토박이 씨앗 중심으로 농사를 합니다. 봄 되면 채종한 씨앗을 나누는 잔치를 합니다. 채종한 씨의 역사 기록하고 가져간 사람이 어떻게 또 씨를 남기게 되었는지 서로 이어가는 씨앗 잔치입니다.
홍천에 필요한 학교 공간, 집들은 직접 짓고 있는데 짓다보니 전문적으로 하는 친구들이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생태건축 공법이 다양한데, 대안적 이야기 속에는 경직된 내용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우리가 직접 경험하면서 책임 있게 나누자 해서 짓고 있습니다. 양파망 공법, 계란판 공법, 전통한옥 벽채 단열 문제가 큰 문제인데 어떻게 생태적으로 복원할 건지, 시멘트 쓰지 않고 기초 어떻게 할 건지 등을 나름 점검하면서 해보고 있습니다.
결혼, 임신, 출산, 육아를 통과하는 일상적 삶의 양식에서 사람들이 세상에 지배당한다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대안적 문화, 마을잔치로서 결혼식, 돌잔치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결혼식할 때는 기획하고 진행하는 사람들을 자원 받아서, 결혼 당사자와 같이 기획을 합니다. 부모님들이 개입해서 방향을 틀지 않는 선에서 재밌게 하고 있고요, 부모님들도 문화공연 느낌도 받으시고, 결혼식이 경직된 것 아니라 신랑, 신부가 주인 되고 함께 사는 사람들이 주인 되는 마당잔치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작년 가을 전쟁이 곧 날 것 같았던 때에 동북아생명평화 기도순례를 다니기로 하고 한 달에 한 지역씩 다니면서 이 땅 곳곳 상처와 아픔, 원통함 서린 곳을 해원하는 기도, 치유하는 기도 하며 다니고 있습니다. 파주 남북출입사무소를 넘어가면 개성 가는 길인데 차로 갈 수 있는 마지막 지점입니다. 이곳은 11월에 다녀왔고요, 생명평화 고운울림 기도순례 길벗이 많이 있는데 그 지역에서 같이 참여하기도 합니다.
저희 공동체는 1991년에 시작했고, 21~23세 청년들이었습니다. 개별화된 사람들이 뚫고 갈 수 있는 한계를 어떻게 함께 힘을 모아서 뚫고 갈 수 있을까, 늘 하던 이야기를 30-40대에도 반복하지 않도록 지켜주고 독려하는 관계가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7, 8년 지나니까 결혼, 임신, 출산, 육아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청년 때 문제의식과 결혼 이후 직면하는 문제의식은 성격이 다르고, 풀어가는 방식도 완전히 다릅니다. 청년 때는 아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이런 과정을 통과하려면 마을공동체가 회복되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마을이 깨진 상태에서 가정 위기도 오고, 생태 위기도 발생합니다. 마을을 어떻게 생태적으로 회복할 수 있을까, 더불어 사는 삶의 양식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으로 2000년부터 인수마을 공동체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도시에서 더불어 사는 삶이 도시 문명 자체에서 가능한가, 도시 문명 자체가 농촌과 함께하지 않으면 지속 불가능 하겠다 생각했고, 농촌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삶의 양식 필요하겠다 싶어서 2009~2010년을 거쳐서 강원도 홍천으로 공동체 귀농귀촌을 하게 되었습니다. 홍천에서는 중등 과정, 고등대학 통합 과정을 하고 있고, 초등과 어린이집은 폐교 위기 직면한 분교를 살리자 해서 아이들을 거기에 보내고 있습니다.
함께 살 때 골치 아픈 일이 생기면 어떻게 푸나
조현 : 저는 몸이 몹시 아파서 1년 휴직을 하게 되었고, 병원을 다녀도 차도가 없었기 때문에 소개받아 태국 아속 공동체를 가보게 됐습니다. 이 사람들처럼 살면 세상이 달라질 수 있겠다 기대를 갖고, 애초 계획을 초과해서 아속 마을을 여섯 군데 돌아다니다가 외국 공동체를 몇 군데 더 방문했습니다. 그 이후에 한국의 공동체를 정리할 필요 있겠다 싶어서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를 쓰게 했습니다. 공동체로 더불어 살 때 골치 아플 때도 있을 텐데 힘들 때 어떻게 하는지 일단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채상병 : 저희 집 주변에 청년들이 세 명 정도 왔습니다. 아픈 마음, 오해가 쌓이면 아침 시간에 같이 모여서 명상하며 푸는 것도 좋습니다. 제가 고생을 많이 하는데 아내가 안 도와주고 해서 답답할 때 많은데 아내를 위해서, 그리고 공동체 친구들 위해 기도하면서 내 아픔 넘어서려 합니다. 그런데 그런 문제의 핵심은 사실 저한테 있더라고요. 제 아집, 에고가 드러날 때마다 부딪치는 것이죠. 돌아보고 있습니다.
정민철 : 충돌이 많이 일어납니다. 저는 기존에 계신 분들과 이주해 온, 이주하려고 타진해 보는 젊은 청년들 중간에 끼어 있는 셈입니다. 어르신들은 '아니, 젊은 것들이 잠도 안 자고 일해서 돈 벌어야지'하시고, 청년들은 농사지어서 수익 이것밖에 안 나오면 너무 노동 강도가 센 것 아닌가 합니다. 농촌의 전통적 공동체성 있는데 그것을 도회지에서 온 청년들이 이해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저는 그것 이해하는 데 8년 걸리더라고요. 8년 지나니까 '아, 이렇게 돌아가는구나'싶었습니다. 이해하기 전에는 아주 불합리해 보입니다.
결론적으로는 정답만 찾지 않으면 됩니다. 그런 불만이 저한테 올 거잖아요. 저는 알았다고만 하고 답을 안 해줍니다. 논쟁이 벌어지면 마을 파탄날 것처럼 심각해지기도 하지만 누가 맞다 틀렸다 말을 안 해주려고 합니다. 제가 스트레스 안 받는 이유가 답을 안 찾기 때문에 스트레스 안 받습니다. ^^ 설득은 소용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스트레스 때문에 잠수 타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남의 일이다 생각하기 때문에…. ^^
박민수 :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보면 저는 내면화되는 성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많이 그렇지는 않은데 초기만 해도 속으로 앓는 거죠. 한 1년 넘게 불면증 겪은 적도 있습니다. 내가 수용이 안 되니까 감당이 안 되는 거죠. 쳐다보기도 힘들고, 괴성을 지를 수도 없고. 어떻게든 살아야 되니까 그때 썼던 방법은 공부였습니다. 사람이 각자 독특한 내면이나 지향을 갖고 있기에 사람의 다양성에 대해 공부를 했습니다. 이해가 생기는 만큼 가벼워지는 것 같습니다.
몇 년 공부하고부터는 편해졌는데 요즘도 힘든 시간은 있죠. 그럴 때 산책을 많이 합니다. 예전보다는 좀 성장한 것 같고요. 사람에 대한 이해가 넓어졌다 할까요. 공동체원들도 자기 문제에서 살다 보면 성장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하늘 벗 삼아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늘 많이 쳐다봅니다. ^^
최철호 : 저는 사람들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없는 편이고요, 정신적으로 피곤한 일이 생긴다거나 풀어야 할 일이 생기면 스승을 찾아갑니다. 스승이 가깝게 살고 있는데 얘기를 많이 하고요. 풀을 베다 보면 생각이 없어지죠. 그때그때 하다 보면 생각이 없어질 수 있는 그런 반복노동을 찾아서 해요. 노동을 통한 치유라고 할까요.
20대 때 생각이 많고, 떠오르는 게 많아서 잠이 안 올 때 있었어요. 잠을 못 자면 힘드니까 저 나름대로 터득한 게 있어요. 복잡한 마음을 탁 떨어뜨리는 방법인데 우연히 터득한 게 있어요. ^^ 생각을 지우는 노동을 할 때도 있고, 스승을 찾아가서 한참 떠드는 때도 있고, 이렇게 세 가지 방법론이 있습니다.
함께 살면 좋을 것 같지만… '나는 힘들 것 같아요'
조현 : 제가 강연을 30번 정도 했는데 핵심적이고도 어려운 질문이 뭐냐 하면 '강연도 좋고, 마을공동체가 너무 행복하고 좋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안 될 것 같다. 나는 힘들 것 같다'였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인데 실제 살아보니 어떤지 자기 공동체 사례를 말씀해 주십시오.
정민철 : 저희 농장에 온 청년들이 6개월 살아보면 이런 말을 합니다. 도시에서 사람과의 관계가 싫어서 농촌 오면 혼자 생활할 수 있지 않나 싶었는데 도시보다 관계가 더 복잡하고 더 얽히고 더 많은 관계 만들어야 된다고요. 그런데 처음에는 엄청 두려워합니다. 공개적 자리 가는 것, 여러 관계망 형성하는 것 두려워합니다. 청년들이 도시에서 관계를 형성해 본 적 없는 것 같더라고요. 막연한 두려움일 뿐이고, 그걸 경험해 본 사람은 겁을 적게 냅니다. 생각 외로 두려워하는 것은 안 해봐서 두려울 뿐입니다. 해보면 자기 재능을 발굴할 수가 있습니다. 더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으로 가서 경험해보면 됩니다. 공동체라든가, 농촌이라든가 생존을 위해 만날 수밖에 없는 곳 가면 숨은 재능을 발견할 수 있지 않나 합니다.
저희 농장은 마을 한가운데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다 쳐다봐요. 일상적으로 사람들을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 청년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건 '숨을 곳 좀 만들어 달라'입니다. 숨을 곳이 없으면 서울로 가요. 여기 오면 할머니들을 일상적으로 만나죠. 그 경험 속에서 이 친구들이 일상적 만남에서 사람을 어떻게 만나고 어떤 관계 맺어야 할지 터득해 갑니다. 일상적으로 경험해 보는 것 중요하지 않나 합니다. 특별한 프로그램은 없습니다.
박민수 : 요즘 시대만큼 개인화된 사회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개인화된 사회에서는 각자 자기 세계에서 왕이 되어 있습니다. 왕들이 한 공간에 모여 있을 경우 그 모습은 자명하지 않을까 합니다. 평민이 되어야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왕이 되면 자기 말이 곧 법이 되어야 하고 자기 의견이 관철되어야 합니다. 자기 말에 동의하지 않으면 자기를 공격한다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인 사회는 결코 쉽지 않다 생각합니다.
함께 살자 했을 때 두려움부터 갖는 것은 사실인데 그걸 어떻게 넘어갈 것인가는 각자 과제입니다. 일단 나는 왕이 되지 말자 생각합니다. 함께 모인 사람들이 그런 생각 가져주면 좋죠. 나부터 왕이 되려는 지향을 내려놓자 하면 가능성 있다 생각합니다.
최철호 : 우울하면 어울리려 하지 않잖아요. 정신적으로 힘들 때 그것을 가속시키는 것이 개체화로 가는 길입니다. 심리적 아픔이나 자살 충동 등을 겪는 사람은 누구도 내 고민 이해할 사람 없다고 대부분 개별화됩니다. 그게 생명의 위기의 전형적 형태라는 것을 확인하는 대화를 많이 합니다.
도시에 몰려 뭔가 내몰린 채 자기를 잃어버리고 살 수밖에 없는, 나를 상품으로 팔지 않으면 내 노동, 삶이 인정받지 못하는 삶의 질서를 누구나 문제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끄는 계기가 개체화입니다. 개체화되어 있으면 지배하기 효과적입니다. 뜻을 공유하거나, 대안을 함께 풀어 가고 있으면 지배하기 어려워집니다. 돈, 자본이 우리를 지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 개체화입니다. 그걸 토대로 대중소비문화가 형성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을 사회 문제 분석, 문명의 질서 해석하는 책, 고전을 읽으며 함께 공부하고 있습니다.
채상병 : 저희 공동체에 청년 한 명이 같이 농사지으려고 왔는데 이 청년이 안 보이는 겁니다. 1주일 내내 산야초 수업 들어가고, 킥복싱까지 배우러 다닙니다. 도대체 여기 왜 왔냐 했더니 자기도 모르겠다는 거예요. 왜 함께하지 않냐 물으니까 자기도 뭔가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관계 맺으려니 불안하고, 뭔가 갖추어서 관계 맺어야겠다 해서 돌아다니는 겁니다. 좋은 모습, 잘난 모습으로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생각에 갇혀 있었습니다. 자신의 낮은 곳까지도 용서할 수 있어야 관계를 맺을 수 있지 않겠나 합니다.
마을공동체가 아이들 키우기에 가장 좋은 이유는
조현 :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화위원회에서 10년간 126조 원을 퍼부어도 문제가 개선이 안 됩니다. 이번에 삶의 질을 높이는 쪽으로 로드맵을 제시했는데 큰 방향은 잘 잡았다 싶지만 공동체성을 보완한다는 등의 얘기는 전혀 없습니다. 현대는 부자이건 가난하건 애 키우는 것을 너무 힘들어합니다. 품앗이 육아, 공동육아가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잃어버린 마을공동체, 공동체성 보완으로 정책 방향을 잡아야 한다 생각합니다. 같이 살아보니 애를 낳고 기르는 데 실제 유익이 어떤 건지 박민수 대표님부터 이야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박민수 : 생활공동체 꾸렸을 때 입주에 대한 열망이 컸던 분들이 어린아이 키우는 부부였습니다. 같이 살 때 아이뿐 아니라 부모도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은혜공동체의 경우 부모들이 팀을 꾸려서 순번제로 돌봄을 했습니다. 열 팀이면 스무 명이 한 조 되어서 열 명의 아이들을 두 명이 돌봅니다. 돌보미라고 이름 붙여 운영을 했습니다. 나중에는 함께 사는 싱글들도 참여하겠다 했습니다.
지금은 성인 스무 명 정도가 2인 1조가 되어서 아이 열 명 정도를 돌봅니다. 열흘에 한 번 정도 아이와 함께 놀고 나머지에는 시간이 남으니까 다양한 동아리 활동 많이 하고 있습니다. 초등 아이들 경우는 한 공간 있다 보니까 자기들끼리 다양한 활동을 합니다. 청소년도 그렇고요.
최철호 : 아이를 같이 키울 때 가장 큰 유익은 아이들 성품, 인성이 좋아지는 것 같아요. 인성교육은 프로그램으로 되는 것 아니고 그 아이를 사랑하는 마을 어른들의 말, 잔소리가 어우러져서 된다고 생각합니다. '잔소리하지 마라'가 요즘 중요한데 그건 잔소리 주체가 엄마아빠로 개별화되어 있기 때문에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는 것이고요. 옛날 어르신들은 자기 아이처럼 마을 아이들에게 잔소리하고 가르쳐주고 보호했습니다. 한 아이에게 마을 어른의 여러 인성이 내려지기 때문에 좋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도시에서 마을공동체 개념을 밤에 아이 데리고 마실 갈 수 있는 거리라고 잡은 건 출산, 육아가 중요하다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옛 어른들이 집에서 아이 돌보는 것을 자식농사라 했습니다. 밭에서 생명 돌보는 것은 농사라고 했습니다. 농은 안팎으로 생명살림을 얘기합니다. 한 공동체, 사회는 생명살림 문화, 문명을 얼마나 잘 구현하느냐에서 결정된다 생각합니다. 그 집단이 가진 사상, 가치가 아니라, 하는 사업이 아니라 그 집단에서 생명살림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입니다. 마을에서 실제로 아이들이 어떻게 생명으로 살려지고 있나, 밭에서 어떻게 생명으로 살려지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1999년도에 뜻 있는 친구들이 결혼, 임신, 출산, 육아 거치면서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는 걸 봤습니다. 그래서 마을이 필요하다, 아이를 같이 키워야 한다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수유에 살 때 저희 집에 아이가 둘 있었는데 제가 월, 수, 금 아이를 보고, 아내가 화, 목, 토 보는 식으로 부부 품앗이를 했습니다. 다른 집도 집집마다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신촌에 살던 친구가 우리 집 앞으로 이사 오니까 품앗이를 같이하게 됩니다. 그 집도 아이가 둘인데 아이 넷을 같이 보는 거죠. 아이 넷을 같이 보면 기본놀이 구성은 아이들끼리 이루어집니다. 그만큼 육아 중압감, 스트레스가 줄어듭니다.
지금도 저희는 품앗이를 거의 일상적으로 하고 있어요. 지금도 어디선가 품앗이가 있고요, 공부를 한다든가 하면서 매일 품앗이가 돌아갑니다. 그렇게 하다가 육아와 관련해서 뜻 있는 친구들과 부모들이 힘을 모아서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마련했고, 아이 아빠가 아이랑 운동장 가서 노는 모습이 좋으셨던 할머니가 자기 손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 아이들이 자라면서 초등 대안학교를 하게 됐고 그 아이들이 또 중학생 되면서 홍천에 생동중 개교를 했고, 고등 나이 될 때 고등대학 통합으로 학교를 세웠습니다. 아이들이 있는 학년만 세웁니다. 내가 어느 학교 교사다 소개하는데 학생이 1학년밖에 없다 하면 웃기잖아요. 하지만 사회적 코드에 맞게 학교를 세우면 그 안에서 자라는 생명은 그것을 위한 도구가 됩니다. 개인으로 있을 때는 풀기 어려운데, 먹고 자고 입는 것을 한 마을에서 같이 풀어가는 장이 확보되면 큰 힘과 유익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품앗이하는 엄마아빠가 준비했는데 아이들이 늘어나니까 밥을 따로 준비하는 사람이 생깁니다. 기왕 먹일 거면 주변에서 지내는 사람들도 같이 먹게 마을식당으로 시작합니다. 아이 키우면서 필요한 것을 자연스럽게 함께 풀어가면서 그것을 지역 사회와 공유하는 방식으로 하니까 사업에 대한 스트레스 받을 것도 없고, 수지 안 맞아서 망할 염려도 없고, 지역민과 함께하는 소통의 고리가 되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채상병 : 저희 집 뒤편에 이사 온 청년이 계획 없이 임신이 됐습니다. 축하해 주니까 '좋지요'하는데 눈빛에 불안이 깃들어 있는 거예요. 마을에 사는 부모님들이 '걱정하지 마라. 같이 키워줄게'하니까 점점 기대하는 눈빛으로 바뀝니다. 임신하면 좋지만 어떻게 키우지 하는 마음이 청년들에게 있는 것 같습니다.
육아, 출산 교육을 해야겠다 싶어서 작년부터 마인드벨 과정을 만들었어요. 서로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는 거거든요. 그 과정을 듣는 부모님들이 많이 웁니다. 자기 속에서 올라오는 소리를 듣고 키워야 하는데 자기 소리 안 듣고 각종 서적을 찾아보는 거죠. 자기 안의 소리 듣기가 혼자서는 힘드니까 함께 공부하면서 용기를 줄 때 그제야 자기 소리를 듣게 됩니다.
정민철 : 보험을 어디 들 거냐고 청년들에게 자주 질문합니다. 자기 문제 해결하는 방식은 보험회사에 드는 방식이 있고, 마을에 드는 방식이 있습니다. 마을에 보험을 어떻게 구축하느냐 따라 내 이후 진로 결정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제가 활동하는 장곡면은 초등학교 하나만 있습니다. 작년에 어린이집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아이는 농장에 기본적으로 그냥 데려옵니다. 아이를 데려와서 같이 생활을 하는 방식입니다. 에너지 쏟는 것이 장기적으로 내 문제를 해결하는 보험에 드는 것이다로 접근하면 좋겠다 생각합니다.
내 삶 가까이에 나를 지켜주는 안전망이 있다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다
조현 : 사람에 대한 안 좋은 감정, 상처가 각인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같이 있는 게 행복하다는 경험, 조직의 단맛을 알아야겠다 싶습니다. 사람이 좋다는 체험이 필요하지 않나 합니다. 함께하면서 왜 행복한지 마지막으로 말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정민철 : 농장에서 독립해 나갈 때 청년들이 '독립하면 사람들과 일하지 않겠다. 너무 비효율적이고 타당성 없다'합니다. 그래서 나갈 때는 꼭 개인농장 만들어서 독립해요. 그런데 2년 뒤에는 반드시 공동농장으로 다시 갑니다. 이건 경험의 문제거든요. 두 개를 비교해야 선택을 하는데, 둘 중 어느 것이 삶의 질이 나은가 보면 선택하게 됩니다.
저희는 협업농장이라 해서 공동으로 농사를 짓습니다. 엄밀히 노동공동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루 8~10시간 정도 노동을 같이합니다. 그리고 생활은 철저히 개인적으로 합니다. 노동하는 동안 많은 다툼이 일어나는데 그걸 보게 해줍니다. 예를 들어 상추를 심어라 일을 시켜놓고 오면 청상추를 먼저 심을 거냐, 적상추를 먼저 심을 거냐 싸우고 있습니다. 뭘 먼저 심어도 상관없는데 말이죠. 1년간 같이 노동해 보면 사람의 성향이 대충 파악됩니다. 독특성을 인정하고 나면 그다음에 생활공동체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생활 전에 노동공동체 같이해 보면 좋겠다 생각합니다.
농장 교육은 독립시키는 것 목표로 합니다. 공동으로 하지만 목표는 독립입니다. 독립된 인간이 협동을 잘합니다. 독립되지 않은 개체가 협동하면 서로 의지하는 것밖에 안 됩니다. 올해 새로 온 친구가 열여섯 살입니다. 새벽 5시 반에 나와서 농사지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6개월 만에 어른으로 성장을 하더라고요. 성장하고 독립할 기회를 제공한 이후에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인데 앞부분을 고려하지 않고 모이는 것 중심으로 자꾸 고민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는 청년들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계속 확인시켜 줍니다. 그 과정에서 청년들이 같이하는 게 훨씬 좋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그 속에서 올바른 공동체가 확산되지 않겠나 합니다.
저희는 농장에 분업체계를 만들지 않습니다. 독립시키려면 전체를 다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효율이 떨어지죠. 청년들이 너무 비효율적이라고 불만을 토로합니다. '너는 도시에서 왜 왔냐'라고 물으면 '도시의 톱니바퀴와 같은 시스템 속에서 부속품같이 느껴져서…' (청중 웃음) 머리로는 공동체를 생각하지만 몸은 자본주의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그걸 인정하자는 겁니다. 그러면 그걸 하고 있는 곳에 가서 몸을 교육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어리면 어릴수록 빨리 배워요. 연식이 있을수록 어렵습니다.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에. 함께한다는 것을 내 몸이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그걸 배울 시간을 주고 교육을 받아야 됩니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확인하고 학습으로 접근하면서 공동체에 접근해야 초기의 어려움이 없지 않나 합니다.
박민수 : 홀로 있을 때의 외로움이 같이 있으면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저희는 우울증 앓았던 분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단 한 분도 없을 정도입니다. 공동체로 살면 사람 맛 느껴가는 재미가 큰 것 같습니다. 무엇을 하지 않아도 다양한 사람 있다는 것 자체가 만족을 줍니다. 아이나 어른이나 어떤 목적, 의미 없이 무언가를 같이하는 것 자체가 큰 만족입니다. 오늘 뭔가가 하고 싶은데 옆에 사람이 있으면 같이하자 할 수 있습니다. 저희 공동체에 50명이 사는데 소그룹은 100개쯤 됩니다. 그만큼 행복해진다 말하고 싶습니다.
최철호 : 하늘과 땅이라는 생태 즉 자연이라는 안전망을 제거시켜 버렸기 때문에 우리에게 근본적 불안이 있습니다. 그런데 잘 못 느낍니다. 미세먼지 정도 되니까 안전망이 없으면 숨도 쉬기 어렵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가정도 안전망인데 위기 상황입니다. 그런데 가정과 자연을 현실적으로 매개하는 가장 중요한 안전망이 있는데 아직도 감각을 못하고 있습니다. 다 깨져버린 안전망, 그게 마을이라고 생각해요. 마을이 없으면 가정의 어려움을 가정 단위로 해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정 단위로 간다면 마을이 없을 때 어렵습니다.
불안을 조장하는 구조에 내몰리는데 생태는 그래도 다가오고, 가정은 많이 공론화되었는데 그 매개인 마을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된다 생각들을 합니다. 마을운동하는 사람도 프로그램화된 마을에 관심이 있고, 실제 안전망으로 마을이 있나 없나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경우는 참 드뭅니다.
이런 세 가지 안전망이 없다면 우리를 지키는 안전망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돈입니다. 내가 벌어내는 돈 외에는 어떤 것도 내 안전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가고 싶었던 학교, 가고 싶었던 직장 얻고 나서도, 사고 싶은 것 사고 나서도 불안에 내몰리고 욕망에 조작을 당합니다. 이런 구조적 불안과 안전망 상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립지대는 없습니다. 무엇에 지배된 상태로 살 것인가, 그 힘을 거부하는 삶을 어떻게 구성해 갈지가 과제가 아닌가 절박하게 생각합니다.
어릴 때 가정에서 형제관계가 좋으면 커서 누나는 윗집 살고, 나는 아랫집 살자, 친구관계가 좋으면 우리 각자 결혼하더라도 같이 살자 합니다. 같이 산다는 건 생명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 동심이고, 그것을 회복해야 하지 않나 합니다. 그 행복감은 뭔가 목적을 달성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근본적 행복감입니다.
저희 공동체는 공부를 열심히 합니다. 라이선스 따는 공부가 아니라 우리 삶을 성찰하는 공부를 합니다. 1991년부터 저희가 쉬지 않고 하는 게 공부입니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묵자를 120명이 같이 공부했습니다. 10월부터는 도덕경을 공부하는데 130명 정도가 등록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1991년부터 계속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고 매회 격주로 열 명 이상씩 발제를 합니다. 꾸준히 자기를 성찰하는 공부가 일상을 지배하는 미시적 권력에 대처하는 힘을 줍니다.
그런데 책으로 하는 공부보다 신비롭고, 감격스럽고, 훨씬 행복감을 주는 공부가 사람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소우주인 이 생명이 가진 깊이가 너무 새로운 거죠. 사람을 깊이 이해하고 알아가는 행복감은 굉장히 좋은 책을 읽고 감격을 누리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힘이 있습니다. 사람 공부는 가깝지 않으면, 서로가 서로를 비추겠다 하는 공간이 없으면 거기서 읽어낼 수 없는 공부입니다. 더불어 사는 삶이 주는 행복은 소소한 곳에 많이 있다 생각합니다.
조현 : 이곳 한신대는 함석헌 선생님, 문익환 목사님, 문동환 목사님, 서남동 목사님, 안병무 교수님 등 다른 삶을 사셨던 분이 가르쳤고, 또 우리 사회에서 다르게 사신 분들이 공부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오늘 이 자리가 다른 삶, 다르게 살아보는 계기를 마련하는 자리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나도 나를 모르겠다>저자인 권수영 연세대 상담·코칭지원센터 소장 인터뷰
<나도 나를 모르겠다>(레드박스 펴냄). 연세대 상담·코칭지원센터 권수영(53) 소장이 펴낸 신간 제목이다. 내 마음을 모르니, 남의 마음을 알 리 없고, 그러니 서로 통할 리 없다. 구랍 28일 서울 신촌 연세대 신과대학에서 저자를 만나 불통시대의 해법을 물었다. 권소장은 연세대 신과대학장 겸 연합신학대학원장을 맡고 있다.
개신교 초교파인 연세대 연합신과대학원임에도 상담전공자가 크게 늘어 신학과 전공자가 엇비슷해 조만간 추월할 기세다. 연세대만에도 심리학과 교육학과 아동가족학과 등에서 심리상담을 가르치는데, 신학대학교에도 상담 전공자가 이렇게 늘어난다는 것은 목회현장에서조차 신학 이상으로 심리상담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권소장도 미국 보스턴대와 하버드대에선 신학을 공부하고, 미국인교회에서 3년간 목회도 했지만, 버클리연합신학대학원에서 ‘종교와 심리학’ 으로 바꿨다. 그는 “우리의 살길이 ‘영혼의 돌봄»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상담·코칭지원센타 직원들과 대화하는 권수영 소장’에 있다는 확신이 들어서였다”고 했다.
감정 표현과 본능을 억누른 댓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고난 뒤 느낀점을 얘기하라고 한다. 가령 ‘한석봉과 어머니’ 이야기를 읽고 한석봉이 혼 나는 장면을 읽고 난 뒤 ‘공부엔 끝이 없다’거나 ‘어머니는 위대하다’고 하면 그건 생각이다. 아이들이 ‘헐, 억울하겠다’고 한게 느낌이다. 그런데 이렇게 감정 표현을 하면 ‘미친 놈’취급을 한다.”
이렇게 이성과 지성만 강조하고 감성을 죽이면서 아이들이 숨을 쉬기 어렵게 됐다고 한다. 학교폭력, 가정 폭력도 이처럼 감성이 죽은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닥으로 떨어진 인성 회복을 위한 인성교육진흥법을 만들어 학교 현장에서 주로 철학이나 윤리, 인문 교육만을 시키는 것도 아직 감을 제대로 잡지못해서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아이들이 공자, 맹자를 몰라서 인성이 망가졌나. 인터넷의 심각한 댓글 폭력도 공감상실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폭력적인 댓글을 달거나 언어폭력 신체 폭력을 가하면 상대가 얼마나 아플까, 얼마나 수치스러울까’란 감성이 살아나야하는데, 아이큐만 강조하고 감정이나 본능을 억제하도록만 한 댓가다. 엄마도 매니저나 감시자 같은 말만하고, 학교나 직장에 가서도 따뜻한 말 한마디 들을 수 없는 분위가가 아이들을 좀비로 만들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인성이 나빠진게 아니라 지나치게 감성을 죽인 당연한 귀결이라는 것이다. 그는 감성적 공감을 영혼의 산소라고 말한다. 라틴어로 영혼과 숨은 어원이 같다고 한다. 그는 ‘영혼의 숨’인 감정교감이 없으면 살아도 산 것 같지않게 된다고 했다.
“자해를 하는 아이들도 자신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 공감을 받지못해 영혼의 숨을 쉬지못하면 살아도 산 것 같지않다. 그래서 정말 살아있는지 보려고 자해를 해 피가 나게 하는 것이다.”
빠른 해결보다 아픔에 공감해주는 게 더 중요
그는 감정 교감이 사라지면 영혼이 질식한다고 경고한다. 감정 교감이 없으면 아무리 호화주택에 살아도 숨이 막히는데, 그간 우리는 먹고사는 일만 중시하는 대신 감정 교감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공감을 뒤로하고 기계적 성과만 중시하면서 청소년들은 이제 로봇만도 못하다고 스스로를 비하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하지만 로봇의 좌뇌는 만들 수 있지만 우뇌는 만들 수가 없다. 인공지능은 미리 가지고 있는 정보로 일방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가슴으로 교감하는게 아니기 때문에 그를 붙들고 엉엉 울 수는 없다.”
그런데 지금까지 빠른 성과만을 고대하는 학부모들은 마치 로봇처럼 자녀들에게도 빨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접근법만을 사용했다고 꼬집었다. 가령 ‘수학 문제가 안 풀린다’고 공책을 던져버리는 아이를 두고 엄마는 ‘그 성질머리부터 고치라’고 소리를 지르는데 이 때 중요한 것은 머리로 파악해 신속한 해결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 공감해주는 것이란다. 즉 ‘많이 속상하지? 내일이 시험인데, 문제가 그렇게 잘 안 풀리면 정말 불안할거야.’라고 교감하면 아이가 훨씬 쉽게 감정조절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은 청년들이 은둔형외톨이로 숨어들거나 니트족이 되는 것도 그게 좋아서라기보다는 더 이상 타인으로인해 상처 받지않겠다는 절규이고, 자살 시도도 단 한명이라도 내게 공감해달라는 신호라고 한다. 그는 ‘힐링’이라는 것도 맛있는 것 먹고, 여행하고, 공연 보는 개인주의로만 흘러 늘 마을에서 함께 해온 공유를 배제해 서로 감정을 나눔으로써 나를 사랑하고 타인도 살리는 치유의 본질에서 멀어져가고 있다고 꼬집는다. 권소장이 아이들을 죽이는 또 다른 독으로 꼽은 건 ‘비교’다.
“우리는 늘 약점을 가지고 비교를 하는 버릇이 있다. 반대로 강점으로 비교해보자. 가령 ‘형은 공부를 잘 하는데 너는 왜 이 모양이냐’고 하는 대신에 ‘형은 공부를 잘하지만, 너는 튼튼하잖아’라고 하면 전자와는 크게 달라진다. 피겨 김연아 선수가 트리플 악셀을 아사다마오처럼 못해 슬럼프에 빠졌을 때 오셔 코치를 만났는데 오셔는 ‘트리플 악셀에 집착하지말고 넌 너의 것을 찾아라’고 권유해 그만의 강점은 예술적 표현력을 살리도록 해 결국 챔피언이 되게했다.”
» 연세대 신학대학 상담·코칭지원센타 직원들과 대화하는 권수영 소장
성인병과 과체중도 내 몸에 공감해주면서 나아져
권소장은 자녀 가운데 공부를 좋아하는 첫아이와 달리 둘째 아이가 공부를 싫어하자 고교를 그만두게 하고, 미국으로 보냈다. 자기만의 강점을 찾도록 하기 위해서서였다고 한다.
그는 비교하고 경쟁하는 분위기에서 아이들이 삶을 격투기로 생각하지만, 오히려 삶은 활쏘기라고 한다. 남을 의식하기보다는 자기 감정이나 강점에 집중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여유와 숨을 되찾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자신의 몸으로 확인한 바 있다. 그는 2004년 교수로 임용된 뒤 일중독자로 살면서 과체중에 고혈압등 온갖 성인병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2010년 명상이 생활화된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8개월간 안식년을 보내면서 건강을 회복했다.
“마음챙김명상을 하는듯한 피트니스 코치는 ‘왜 한국인들은 극기훈련하듯이 운동을 하고, 런닝머신 위에서 달리면서 티브이를 보느냐’고 했다. 무리하지말고 아침저녁으로 15분씩만 하라며 질리지않게 습관을 들이는게 중요하다며 몸과 대화를 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내 몸이 사랑스러워지기 시작하고, 아름다운 몸을 상상하며 내 영혼에 발동이 걸렸다.”
그 뒤 하루도 빼지않고 운동을 지속해 체중은 15킬로그램이 빠졌고, 고혈압약도 8년째 끊었다고 한다. 그는 “내 몸과의 공감이 나를 살렸듯이 그 곰감이야말로 나와 타인을 동시에 살리는 길”이라고 했다.
“여러분들이 열심히 기도하시면 아기예수께서 여러분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해주시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성당에 입교해 첫 교리수업에서 수녀님이 기도를 열심히 하라고 한 말인데 고지식한 한분은 이 말을 곧이 곧대로 믿고 그날부터 아기예수상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자기머리를 만져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년이 가고 이년이 가고 몇 년이 흘러도 아기예수상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않았다. 십년이 되기 하루전 날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술을 퍼마신후 성당을 찾아가 아기예수상에게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야 꼬맹아, 내가 너한테 십년을 공을 들였는데 뭐 그리 잘났다고 꼼짝도 안하냐. 어린 것이 버르장머리없이” 그리고는 소주병을 빨고 있는데 느닷없이 누군가 군밤을 때려 취한눈을 들어보니 아기예수가 일어나 자기를 노려보며 “십년에서 하루 모자라잖아”라는 것이었다. 그가 동네방네 다니며 아기예수에게 얻어맞은 사연을 이야기하자 수많은 신자들이 그 아기예수상을 찾아가 군밤이라도 맞겠다고 아기예수에게 온갖 욕설을 다한다는 믿거나 말거나한 이야기가 있다.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란 말이 있다. 99도까지는 끓지않던 물이 1도 차이인 100도에 펄펄끊는것처럼 지속적인 노력을 하면 어느순간 삶의 전환점이 다가온다는것이다. <아웃라이어>(OUT LIERS)라는 책의 저자 말콤 글래드 웰은 일만시간의 노력을 기울이면 누구나 아웃라이어 즉 보통사람의 범주를 넘어 성공한다고 했다. 하루 세시간씩 십년이면 일만시간이다. 신경과학자인 다니엘 레비턴도 일만시간의 연습을 강조했다. 사람들은 비틀즈가 세계 최고가 됐다는 것은 잘 알지만 십년이란 세월을 하루 8시간씩 연주연습을 했다는 사실은 간과한다.
상담공부도 유사하다. 십년은 해야 똥오줌을 가리는 수준이 되고, 이십년은 해야 자기자리가 잡히고, 삼십년은 해야 이름값을 한다. 그러나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이란 말도 있다. 그냥 시간만 보낸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다. 여성심리학자인 수잔 코바사는 세가지 조건을 가져야 십년의 세월에 대한 보상을 받을수 있다고 했다. 도전과 몰입과 통제, 이 세가지를 가지고 십년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것이다. 도전이란 위기를 위협이 아닌 도전으로 보는 자세를 의미하고, 통제란 외부상황을 통제할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대한 대처방식은 통제하고자 하는 자세를 말하며, 몰입이란 가치있는 일에 몰입함으로서 위기와 고난을 성장의 발판으로 만드는 자세를 의미한다. 이 세가지를 갖추고 십년의 노력을 해야 성공한 인생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렇게 성공한사람들은 조경수로 쓰이는 나무에 비유되기도 한다. 조경수들은 곧게 뻗은 나무들이 아니다. 이리 저리 뒤틀린 나무들이 조경수로 쓰이는데 이들은 바위틈새에서도 가지를 뻗으려고 뿌리를 내려리고 안간힘을 쓴 나무들이다. 그래서 멋없이 키만 큰 나무들보다 훨씬 더 값이 나가는 것이다.